카디프 대첩

  관련 문서: 한일전/축구

1. 개요
2. 경기 전
2.1. 운명의 대결
2.2. 경기 예상
2.3. 그 외
3. 경기 진행
3.1. 박주영의 선제골
3.2. 오츠 유키의 파울
4. 일본의 반응
5. 뒷이야기
5.1. 김기희의 4분 면제
5.2.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
6. 둘러보기

2012 런던 올림픽/축구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동메달 결정전
2012.08.10. 19:45

밀레니엄 스타디움 (영국, 카디프)

주심:랍샨 이르마토프(우즈베키스탄)

2 : 0

대한민국

일본

37' 박주영
56' 구자철

-

관중:56,393 명

1. 개요

축구 한일전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놓고 겨룬,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단두대 매치이다.

병역특례 여부를 결정하는 경기가 하필 한일전이라는 점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과 구도가 같다. 단, 그렇다 하더라도 전 세계가 참여하는 올림픽과 아시아 국가만 참가하는 아시안 게임의 주목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물론 두 대회 모두 메달을 받기란 쉽지않다.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경기 중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8월 10일에 열린 한국과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경기를 의미한다. 그 전까지의 경기 진행 상황은 2012 런던 올림픽/축구 참조.

2. 경기 전

2.1. 운명의 대결

사실 단순한 동메달 결정전이 아니었는데, 한국 축구 입장에선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따느냐, 일본 축구 입장에선 44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획득할 기회나 다름없는 사활이 걸린 시합이었다.

또한, 그동안 무수한 한일전 축구 경기가 열렸지만,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가운데 치러진 한일전은 사실상 첫 번째다.[1] 또한 축구 종목은 육상 100m, 마라톤과 함께 올림픽 3대 종목이자 상업적 가치로서는 넘사벽급 1등 종목이다.

사실 그동안 한일전이 라이벌이니 뭐니해서, 한국 일본 당사국이나, 아시아쪽에서는 살짝 관심이 있는 정도였지, 세계구급 수준에서는 아시아 축구 자체가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한일전이 열리든 말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물론 한일전 자체가 별 거 아닌 더비 매치로 보인 게 아니라, 격렬한 수준의 라이벌이긴 한데 둘 다 엄청난 유명팀도 아니고 국제적으로 중요한 경기에서 마주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당장에 우리가 터키와 그리스 간의 A매치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 생각해보자. 이쪽도 전세계가 알아주는 격렬한 라이벌 관계이지만, 그들의 경기 결과에 사람들이 주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경기만큼은 올림픽 3/4위전이라는 중요한 경기에다가, 때마침 장소도 세계 축구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는 영국이었던만큼, 말이 필요없을 만큼 중요한 경기. 거기다 둘이 모두 AFC 소속이니[2] 주심을 AFC의 이마토프에게 맡겼다. 이마토프는 AFC 올해의 심판상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연속 수상했을 정도로 명성이 높으며 2011 AFC 아시안컵 결승전 주심이기도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초의 메달 매치 한일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분명히 동메달 결정전이지만, 한일 양국 팬의 입장에선 사실상 결승전이나 다름 없는 경기였다. 특히나 한국 선수들은 병역 문제까지 걸려있어서 거의 필드 위에서 죽을 각오로 사력을 다해서 승리해야 되는 상황. 그 중에서도 박주영의 경우, 대표팀 승선 전부터 병역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만큼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병역 면제 기회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은 8강 전에 라커룸 안에서 단체로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게 시켰다고 한다.

더불어 처음으로 아시아 2개 나라가 4강에 올랐는데 청소년 월드컵을 빼고[3][4]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큰 대회에서 16강 이후 대진표에서 아시아끼리 격돌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4강(4위)에 올라가서 아시아 국가로 첫 올림픽 축구 4강에 오른 인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한 이라크,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받은 아시아 유일의 축구 메달 국가 일본까지, 그동안 아시아권 국가로 4강에 올라온 건 이 세 나라밖에 없었다.

올림픽이라는 한일전 역사상 최고의 스테이지에서 아시아 팀으로는 최초로 메달을 걸고 격돌 + 한일전 특유 분위기 + 병역이라는 기가 막힌 조합으로 결국 모든 게 걸린 마지막 한판에서 숙명의 상대와 사생결단의 데스매치를 벌이게 된 상황. 이쯤되면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물론 최대의 무대는 당연히 월드컵이고 축구대회로서의 권위는 올림픽축구보다 아시안컵이 더 높다. 사실 올림픽 대표팀은 A대표팀도 아니다. 다만 월드컵 조별예선에서는 아시아 국가끼리의 매치업이 성사될 수 없고 설령 두 나라가 16강에 올라간다고 한들 둘 다 웬만하면 조 2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16강에서 맞붙기도 힘들다. 8강 이상이라면 거의 가능성이 없는 거고...

아시안컵에서는 만날 때도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시안컵에서의 목표는 우승이기 때문에 결승전에서 만나지 않는 이상 이번 올림픽만큼의 긴장감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이라는 상징성, 병역특례 여부가 걸린 경기, 올림픽 대표 중 월드컵 대표로 차출되는 선수가 적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A대표팀이 아니라고 무시할 수는 없으며 아시안컵보다 올림픽의 위상이 한국에서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시합 이전까지 한일 양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끼리의 상대 전적은 똑같이 4승 4무 4패였으며 이번 시합은 13번째 대결이다. 숫자와 역대 전적마저 참으로 절묘하다...하여튼 안 그래도 스포츠 아닌 전쟁이 한일전 고유 특성이라 하나 대회 규모부터 병역까지 여러 요인이 겹치며 정말로 '전쟁 아닌 전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또한 운명인건지 영국 현지기준으로 삿포로 참사 1주년이었다. 그야말로 양국 국민들에게 있어 이 시합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그 해가 임진년이었다.

거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독도를 방문하기로 했고, 이에 일본 측에서 강력히 반발하는 외교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로서 양쪽 모두 감정이 안 좋은 상태... 말 안해도 다들 알 거다. 선수들 역시나 무슨 전쟁 나가는 참전용사같은 비장한 표정으로 등장, 이 한일전에 모든 걸 걸겠다는 듯한 모션을 보였다.

2.2. 경기 예상

한국이나 일본 모두, 지면 헬게이트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었던 경기였다.

사실 일본은 본인들이 우승 후보라고 호언장담한 형편에 한국이 4강까지 올라오자 불안해 하기 시작했고 최악의 경우는 한국과 3, 4위전이라고 하며 "그래도 우린 결승 간다!"를 고수했다. 하지만 멕시코에게 처참히 깨졌고, 한국 역시 브라질에게 밀려 떨어지면서... 사실 지더라도 적어도 은메달은 얻을 수 있는 결승에서 붙든가 일본이 아닌 멕시코와 만났으면 이렇게까지 험한 분위기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일본은 멕시코와 치른 4강전에서 먼저 떨어지자 오히려 한일전을 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한국의 결승진출을 바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일본 축빠들이 그리도 꺼리던 최악의 축구 한일전이지만 올림픽 축구 전적만 보면 일본이 불리한 시합은 아니었다. 한국이 일본을 압도하는 국대 축구와 달리 1999년 한일전에선 4:1로 일본이 이기는 것을 비롯하여 일본과 한국이 막상막하고, 한국과 일본의 역대 올림픽 대표팀 전적은 12전 4승 4무 4패로 팽팽한 상황이었다.

참고로 이 대회로부터 4년 전에 있었던 2008년 AFC U-19 대회에선 한국이 8강에서 일본을 3:0으로 완승해서 이집트행을 가로막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4년 전 U-19 아시안컵에서 뛴 그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치르는 리턴매치. 일본은 조 1위를 했다는 이점 덕에 편한 상대를 만나 승승장구하면서 우승후보라고 자신들을 지칭하며 국민들의 기대를 한껏 높였고, 한국은 애써 올라온 8강에서 떡하니 홈팀과 붙게 되며 국민들을 멘붕시켰으나 위풍당당하게 4강 진출을 이루어 메달에 대한 기대가 높은 상황. 게다가 한국 대표팀의 감독은 일본전 스페셜리스트 홍명보였다.

홍명보가 참여한 한일전 중 패배는 94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이 유일하다. 이 경기에서 패배한 홍명보는 다음부터 한일전에서 패배하면 축구화를 벗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J리그에서 오래 뛰었기 때문에 일본 축구의 약점을 아주 잘 알았다. 두 팀 모두 이때까지 쌓은 업적이 인정 받을 수 있느냐는 이 한 경기에 달렸다.

2.3. 그 외

이 경기가 시작할 시간은 한국과 일본시간으로 8월 11일 새벽 3시 45분이었다[5]. 시합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마침 11일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6],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아예 밤을 새거나, 이 시합을 보기 위해 10일 저녁에 잠들어 11일 새벽에 일어나는 등, 유독 생방송으로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날은 한국이 홈 배정 받았음에도 원정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흑백 TV로 보면 유니폼이 헷갈린다며 둘 중 하나는 하얀 옷으로 해야 한다는 권고가 들어왔는데, 일본이 원정 유니폼으로 가져온 게 하얀 세컨드 킷이 아닌 빨간 서드 킷이어서 한국이 양보했다. 빈국에서는 아직도 흑백 TV를 쓰는 곳이 적지 않기 때문. 흑백 TV 뿐만 아니라 색약 문제도 있다.

해외 언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오죽하면 "결승전을 보지 말고 동메달 결정전을 봐라"라고 했을까. 어차피 금메달은 멕시코로 결정되었는데 굳이 볼 필요가...

그리고 3시 45분...[7] 한국 축구의 역사에 길이 남겨질 사상 최강의 한일전이 시작되었다.

3. 경기 진행

하이라이트

풀영상

경기장은 73%에 달하는 습기로 잔디의 상태가 좋지 않아 선수들이 미끄러지거나 헛발질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지기 좋은 환경이었으며 그 탓인지 이 날 유독 볼이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치솟는 경우가 많았다.

아기자기한 패스 축구의 일본을 상대로 홍명보 감독은 피지컬을 앞세운 압박을 주문했고 그래서인지 경기 내용은 거친 몸싸움의 향연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헤딩 경합 같은 상황에서 일본 선수들과 볼다툼을 하게 되면 "바셔버려."라는 무시무시한 주문을 했고 홍감독의 승리에 대한 절박함과 졌을 때의 자신들의 미래을 읽은 선수들은 그걸 그대로 실현. 옆의 일본선수를 견제해야 하겠다 싶으면 동료 선수에게 "야! 박아!조져!!!"라고 하며 거친 몸싸움을 보여줬다.

경기 시작 후 역시나 한일전답게 초반부터 구자철이 1분에 파울 하나씩을 쏟아내며 다소 과열된 양상으로 흘러가다 결국 피까지 봤다. 전반 42분에는 박주영이 오기하라 타카히로 선수와 헤딩 경합 도중 오기하라의 팔꿈치에 맞아 뺨에서 피가 나는 부상을 입었고, 이를 되돌려주기라도 하듯 후반전에서 또 다른 자리 싸움에서 야마무라 선수와 팔꿈치가 부딪혀서 야마무라가 피를 쏟았다. 설마 진짜로 바셔버릴 줄이야 그 후 야마무라는 붕대를 감고 다시 복귀.

전체적으로 기세등등하고 거센 플레이가 이어져 브라질 전에서 보여주었던 섬세한 패스보다는 피지컬로 때려박는 강한 압박플레이가 이어졌다. 전반전에만 한국은 몇분만에 세 명의 선수가 카드 3개를 받아내었다. 기성용과 오재석은 쿨하게 카드 수용. 반면 유독 캡틴인 구자철은 미친 듯이 뛰면서 평소의 상당히 침착한 모습과는 다른 면을 과시했다.

다른 선수들이 그냥 절박하게 뛰면 구자철은 그냥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분노의 질주를 하는 수준.폭주기관차 각성 그리고 전반 태클이 깊었다는 다소 미심쩍은 이유로 옐로카드를 받자 눈알 튀어나오는 비주얼에 핏대까지 세우며 심판한테 잡아먹을듯이 "와이?! 와이?! 왜왜왜?!"하면서 심한 폭력성을 보이며달려들었다.

사실 앞의 두 선수의 경우 몸싸움이라도 하고 받았지, 구자철은 정말로 공만 건드렸으므로 카드를 받을 상황은 아니었다. 뭐...이 경기에서 뛴 한국 선수들 중 가장 전투적이었던 선수가 구자철이라는 건 맞지만...

거기에 반발하는 일본의 기요타케 히로시와 충돌까지 할 정도로 미친듯이 폭주했으나 기성용이(!) 말려서 상황 종료. 평상시엔 기성용이 날뛰고 구자철이 말리는데...[8]

사실 구자철이 이 경기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 밖에 없는게,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일본에 패했을 때 첫 번째 키커로 구자철이 나섰는데, 성공시키지 못했다. 거기다 7개월 후 삿포로에서 0-3으로 완패하면서 대차게 까였으니... 본인도 삿포로 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이 난투극은 일본 역시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기에 후반 20분을 지났을 때 한국 파울 16개, 일본 파울 21개, 한국 옐로카드 4장, 일본 옐로카드 2장이라는 대난투전이 기록되었다. 심지어 옷이 찢어진 채 뛰어다닌 선수(오기하라)도 있었다.특히 후반전에는 구자철에게 또 한 골 먹고 마음 급해진 일본팀의 맞불작전으로 거친 파울들이 속속 튀어나왔다. 나중에는 심판이 파울을 불다 불다 지쳐서 포기하고 파울 선언이 줄어들었을 정도. 표정을 보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젊은 애들 지도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전 경기들과 달리 시종일관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롱볼 전술을 들고 나왔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쏠쏠한 실적을 자랑하는 이 전술에 역시나 일본팀은 적절히 대응을 하지 못했다. 거기다 위에 서술된 거친 압박이 상당히 효과를 봤는지 후에 일본은 한국 선수들의 피지컬 어택이 유럽 선수와 맞먹는다고 패배 요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 역시 거친 몸싸움으로 맞서려 했지만 한국은 애초에 리그 스타일부터가 피지컬 위주인데다, 많은 국대 경험과 해외 경기로 거친 몸싸움에는 도가 튼 선수들이 대부분인지라 한국의 피지컬 어택에는 다소 못 미쳤다.

초반에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다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일본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는 브라질전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지만, 일본 개개인의 능력이 브라질급이 아닌지라 딱히 위협적인 장면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전반 37분경, 역습상황에서 박주영이 구자철의 패스를 받아서 혼자 수비수 4명을 제끼고 들어가 골을 넣었다.

이후에도 일본이 공세를 유지했으나 득점없이 전반전 종료. 후반전에도 전반과 비슷한 경기양상을 보였고, 이번에도 후반 11분경 박주영의 백헤딩 패스를 이어받은 구자철의 침투로 한국이 추가골을 성공했다. 일본은 계속해서 공격을 펼쳤으나 결정적인 상황에서 손발이 맞지 않는 플레이를 보이면서 헛수고만 했으며 오히려 후반 14분 김보경한테 한 골 더 헌납할 뻔했다.[9]

결국 일본이 아무런 반전 기회도 얻지 못하면서 한국 팀이 축구 종목에서 사상 첫 메달과 병역면제를 모두 가져갔다. 일본 선수 11명은 전원 필드에 주저앉아 멘붕 상태에 빠졌으며 한국 선수들은 금메달 딴 것마냥 기뻐하는 모습이 대조되기도.

이로써 올림픽 남자축구 대표팀의 2012년 런던 올림픽은 18명 모두 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고 병역혜택과 포상금까지 받게 되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 선수들은 "일본선수들이 발을 갖다댈 때 한국 선수들은 머리를 갖다댄다"라고 할 정도로 정신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던 한일전을 비롯해, 거의 모든 경기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올림픽이란 세계적 무대에서의 성과이기에 23세 이하의 젊은 선수들에게는 특히나 값진 경험이 되었다. 물론 지켜본 국민들은 한일전에서 일본을 꺾고 받아낸 메달이기에 특히나 더 기뻐했다.

홍명보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경기 직후 한국팀 라커룸은 미친놈들 집합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홍명보 감독과 그 선수들은 동메달을 받아서 현 국대감독인 최강희를 바로 사퇴시키고 그 차기 감독에 홍명보를 넣으라는 말까지 나왔다.[10]

이로부터 6년 후, 양국은 다시 한 번 군면제와 메달을 걸고 맞붙게 되는데...

3.1. 박주영의 선제골

영상

전반 37분, 일본 진영에서 홀로 패스를 넘겨받아 혼자서 드리블로 3명을 따돌린 후 골을 넣는 이 장면은 그동안 박주영을 까던 사람들마저 닥치고 칭찬을 하게 할 정도였다. 특히나 드리블로 수비수 3명을 굴비엮듯이 엮어 관광태우는게 리오넬 메시와 흡사하다고 하여 박메시 혹은 메시 빙의라는 별명도 추가 획득했다. 면제로이드의 위엄

이 골은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과 함께 한국축구 대표팀 베스트 골로 반드시 회자될 정도의 역사적인 골이 되었다. A대표팀이 아닌데도 그 어느 A팀 경기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하긴 올림픽 메달 자체가 최초이고 그 메달을 따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골이니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과 비교할 만한 사실상 유일한 골이다.

이전까지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헤딩셔틀과 수비 가담만 하던 박주영이 유독 이날 메시를 연상케 하는 환상적인 득점 장면을 연출하자, 누리꾼들은 농담 반 진담 반 '저 녀석 군대 가기 싫어서 저렇게 필사적으로 넣은 거 아냐?'라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박주영이 군대에 안 가려고 죽을 힘을 다한 것이 골을 넣은 원동력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 슛의 이름은 그대로 군대안가 슛, 병역면제슛, 또는 논산거부슛이 되었다.

이 골로 박주영은 박시탈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사실, 축구팬으로선 데자뷔를 느낄 만한 장면인데, 2004년 아시아 청소년 대회 때 중국과의 경기에서 수비수 네 명을 농락하며 만들어냈던 골을 연상케 했다. 사실 순간적인 바디페인팅과 수비수가 움직일 타이밍을 뺏는 드리블로 슈팅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본래 박주영이 가진 강력한 무기였지만 2012년 들어서 떨어진 폼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닥쳐도 아예 볼 키핑을 못하거나 슛이 빗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올림픽 동메달과 병역면제가 걸린 경기인데다가, 한일전이라는 일생일대의 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결국 이 인생역전 골과 후반전에서 구자철에게 준 백헤딩 어시스트로 사실상 '한일전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여담이지만, 경기 당시 해설을 하던 차범근 SBS 해설위원도 박주영 일생의 골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소속팀에서도 벤치만 지키고 있었던데다가 올림픽 대표팀 승선전부터 홍명보 감독을 군대 신참으로 만드느냐 마느냐로 말이 많았고[11], 승선 후에도 부진한 활약으로 미친듯이 까이다가 중요한 경기에서 해결사의 면모를 보였으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박주영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슛은 빗맞은 슛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골키퍼와 1:1 상황일때는 가급적이면 먼쪽을 보고 슛하는게 일반적(박지성이 일본 조깅 관광을 생각해봐도)이다. 키퍼 입장에서도 모르지 않기에 오른쪽으로 언제 올지 타이밍만 잡고 있는데, 갑자기 왼쪽으로 슛하니 타이밍을 늦게 잡아서 들어간 골. 김보경은 제대로 맞았는데...?#

3.2. 오츠 유키의 파울

후반 41분경 일본의 코너킥 상황에서 오츠 유키가 정성룡 골키퍼를 차징해 쓰러뜨린 사이 주장 요시다 마야가 헤더로 골을 성공시면서 경기장이 잠시 술렁였다. 하지만 이내 차징파울이 선언되고 골이 무효화됐다.

리플레이를 보면 코너킥을 차자마자 오츠가 달려나오면서 정성룡 골키퍼를 팔로 밀쳐 쓰러뜨리는 모습이 정확히 포착된다. 너무 완벽한 파울이라 일본에서도 판정 드립도 못하고 오츠를 깔 수준이었다. 그런데 정신 못 차린 일부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 심판이 오심이 아니냐는 헛웃음 나오는 드립을 쳤다. 설사 골로 인정한다 해도 경기 결과에는 영향이 없으니 무의미한 말이다.

참고로 오츠 유키는 경기 이전 일본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일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겠다"며 대회 득점왕에 대한 포부를 밝혔던 바 있다.[12] 결과적으로 본인의 해트트릭 기록은 커녕 일본의 완패로 끝이 났지만 말이다. 그는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도 "내가 3,4골을 넣었으면 이겼을 것"이라 밝히며 아쉬워했다.#

4. 일본의 반응

한 때 일본의 반응은 한국에게 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였고, 그래서였는지 한 주간 축구 잡지가 'メダルだメダルだメダルだ!'(메달이다메달이다메달이다!)라는 강렬한 문구가 표지에 있었다. 물론 그 경기가 펼쳐진 후엔 다 무의미하게 되었다.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이후 만들어진 짤.

일본 측에서는 충격을 많이 받았으며 심지어는 귀국할 때 좌석을 이코노미로 끊으라는[13] 반응이 많았고 한 술 더 떠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오라거나, 아예 화물칸 또는 화물선에 타거나 수영하면서 오라는 반응도 많았고, 런던에서 걸어 돌아오라는 둥,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라는 반응도 있었다(...) 심지어 그 전날 알려진 어떤 일과 맞물린 반응도 있었다. 게다가 이 경기가 그 삿포로 참사가 일어난지 1주년이라 홍명보는 이 경기로 완벽한 설욕을 한 셈이 되었다.

2ch 역시 당연히 대폭발. 패배한 자국 선수들을 두고 '헤엄쳐 돌아오라', '한국 선수 대신 군에 입대시켜야 한다' 라며 격분하는 한편 야구팬이 와서 "춍에게 발린 기분이 어때?" 라며 자학에 가까운 도발(168)도 가하는 등 각양각색의멘붕 반응이 나왔다. 대략 소개해주자면, 전부 죽어라, 계란을 쳐맞아도 찍소리도 못할 수준이다, 이코노미도 사치다, 패스를 300번 이어도 골은 안 들어간다, 옐로카드 수로는 이겼다, 곤다[14] 군대 보내라, 백패스 재팬으로 이름 바꿔라, 또 뻥축구에 졌다, 이집트한테 지는 게 나았다, 런던에서 걸어 돌아와라, 곤다 징병 결정, 일본은 역시 야구의 나라였어[15], 골키퍼한테 태클은 왜 하는데 등이다(...) 꼭 2ch 찌질이들이 아니더라도 몇 십년째 롱볼 전술에 계속 털리고 있고, 이걸 막아낼 대형 수비수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자신들의 오랜 라이벌 나라와의 데스매치에서 져버렸으니 일본 축구팬들의 입장에서도 욕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오죽하면, J리그를 경험한 홍명보 영향인지, J리그에 한국인 데려오지말라며, 데려오면 이적행위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2ch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일본은 조별예선에서 스페인을 꺾는 등 2승 1무를 기록했고 8강전에서도 이집트를 3:0으로 꺾는 등 파죽지세로 4강에 진출했지만, 결국 목메달만 가져갔다. 일본의 세키즈카 감독은 경기장 잔디 상태가 안 좋았다는 말과 체력적으로 딸렸다는 말을 했지만, 별로 수긍하는 사람은 없다.

사실 잔디 상태는 양쪽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고, 체력적으로 달린다는 말은 사실 한국 쪽이 더 안 좋았다. 한국은 토너먼트 때 연장전+승부차기까지 하면서 올라왔고 부상자도 발생했으며, 일본에 비해 체력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브라질과 준결승전을 치렀다. 동메달 결정전 때도 한국이 좀 더 쉴 시간이 적었다. 굳이 변호하자면 정말 잔디 상태가 영 안 좋았을 경우, 정교한 패싱 게임이 주특기인 일본팀에게는 나름 핸디캡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잔디 핑계나 대는 덕분에 일본 감독의 이 말은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어차피 메달 여부 상관없이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감독을 그만둔다고 밝혀왔는데 불명예스럽게 그만둔 셈이 되었다. 한편 일본 극우언론인 산케이신문은 습기 탓에 일본이 졌다고 보도하면서 역시 웃음거리를 주었다.

일본 축구 대표팀은 동메달을 획득했던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이후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는데도 대표팀 귀국 현장에 나와있던 기자는 딸랑 4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주장 요시다 마야"일본의 올림픽 도전 중에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다."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5. 뒷이야기

5.1. 김기희의 4분 면제

LTE 속도로 군대 전역증을 받는 김기희

올림픽 대표팀 중에서 유일하게 출전 기록이 없어 동메달을 따고도 병역면제를 받지 못하는게 아닌가 주목을 받았던 김기희[16] 승리가 확정적이었던 후반 45분 구자철을 대신하여 교체 투입됐다. 런던에서는 1초가 유독 길어서 사실 4분도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로써 올림픽 대표팀 전원이 병역면제를 받게 되는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사실 다른 선수들도 김기희에게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다.'라고 놀렸을 정도라고 하니 홍명보 감독이 팀을 더 중시한 것은 사실인 듯. 물론 농담이다. 같이 훈련하는 동료인 만큼 한명만 혜택을 못 받으면 양껏 기뻐할 수가 없을 테니 모두들 전원면제를 간절히 바랐고, 훗날 오재석은 김기희가 경기장 들어오는 순간이 골 들어갔을 때보다 더 행복했다고 인터뷰했다.

1점차였으면 못 넣었을거라니 절묘한 상황. 참고로 이범영의 경우 골키퍼를 교체하기란 쉬운 게 아닌 만큼 영국전에서 정성룡의 부상으로 대타로 뛴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던 셈.# 이에 대해서 백업요원의 존재 자체가 전력인데다가[17], 백업요원이라고 노는 것도 아닌데 꼭 1분이라도 뛰어야 병역 혜택을 받는 형식적인 규정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꽤 있었으며 결국 규정이 바뀌어서 등록만 되더라도 혜택을 받게 되었다.

5.2.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

이 경기가 끝난 후 박종우가 경기 종료 직후 '독도 세리머니'를 한 게 밝혀져 문제가 되었는데 올림픽 규정상 선수들은 경기 도중 어떠한 정치적인 행위나 언행, 선전 활동도 금지되어 있기에 이건 큰 사건이다. IOC는 이 사건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으며, 박종우에게 메달 시상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통보했다.

또한 구자철이 골을 넣은 후 몇몇 동료들과 함께 보였던 '대한민국 만세' 세리머니가 원래는 독도 세리머니를 하려고 했던 걸 기성용이 '독도가 우리나라 땅인 건 당연한 사실이니 거기서 독도 세리머니를 하는 건 유치하다고 주장해서' 바꾼 거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러 네티즌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선수들은 이 규정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하다고. 하마터면, 대표팀 전원이 조사회에 강제 정모로 끌려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을 수도…

실제로 구자철이 경기 도중 독도 세리머니를 단체로 했으면 몰수패를 선언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선수 여러명이 중징계를 받는 건 피할 수 없으므로 외신들의 가십거리로 구설수에 올랐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독도 문서나 2012 런던 올림픽/사건사고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일본 우익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분개했던 게, 체조 종목 단체전에서 메달을 딴 일본 팀의 경우 욱일기 디자인의 경기복을 입고 참가했고, 이 사실에 대해 자크 로게 위원장이 그게 문제가 된다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면서 딱 잘라 말했기 때문. 물론 일본에서는 욱일기가 아니라 자국기인 일장기를 모티브로 디자인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5월달 아사히 신문 영문판 기사에서 '떠오르는 태양(rising sun)'을 형상화한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게 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일장기가 아닌 욱일기를 상징한다. 기사링크 물론 일본이 저렇게 강력하게 잡아떼고 있는데다가, IOC에서 문제삼지 않는다고 말한 이상 흐지부지되는 분위기.

IOC뿐만 아니라, FIFA 역시 같은 원칙을 갖고 있다. FIFA 규정에서는 "Players must not reveal undergarments showing slogans or advertising. The basic compulsory equipment must not have any political, religious or personal statements.", 속옷은 슬로건이나 광고를 하여서는 안 되며, 기본 장비(선수 포함)는 정치적, 종교적, 개인적 선전문구를 포함하여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고 있다. 실제로 이 규정 때문에 중동에서는 히잡을 쓰고 A매치를 해서 몰수패를 왕왕 당했고 세르비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 선수들이 유니폼에 "내 조국에 폭격하지 마라!" 글을 쓰고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면서 윗옷을 벗어 이걸 보여주다가 FIFA에게 징계를 먹은 바 있다.

이 때문에 한일전처럼 민감한 경기가 열릴 경우, 대한축구협회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사전에 선수들에게 주의를 당부한다(2008년 한일 올스타전 기사). home|top 일단 대한체육회는 나름대로 이 원칙을 선수들에게 알려준다고 하지만 문제는 축구팀의 경우 다른 종목의 선수들과 다른 곳에서 훈련한다는 것이다. 대한체육회가 나섰든 안 나섰든 축협이 신경 써줬어야 하는 문제인데, 이런 사건이 터졌다는 것은...애당초 대한축구협회가 올림픽 조별예선을 돌파하고 메달까지 딴다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 뒤 이 사건은 2012년 12월 3일, FIFA로부터 박종우의 A매치 2경기 출장 정지와 함께 메달은 수여하되 수여 관련 세리머니를 일절하지 않는다는 징계를 먹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자세한 내용은 2012 런던 올림픽/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자.

5.3. 펠레의 축복?

2012년 8월 10일 한일전이 열리기 전에, 펠레가 런던에서 중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동메달을 딸 것이라고 발언을 했다. 이때 그는 "중국 축구가 2016년 올림픽 본선에 진출할 것"이라는 덕담을 했으며 중국 축구 팬들은 2016년에도 올림픽 진출은 다 틀렸다고 멘붕.

그리고 예언대로 3년 6개월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6년 AFC U-23 챔피언십에서 A조에 속한 중국은 결국 조별예선 3전 전패로 올림픽에 진출하지 못했다.#[18]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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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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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아시안컵 결승전

2002 FIFA 월드컵

(2002)
對 폴란드 2:0 승

(2002)
對 미국 1:1 무

(2002)
對 포르투갈 1:0 승

(2002)
對 이탈리아 2:1 (연장) 승

(2002)
對 스페인 0:0 무
(PSO 5:3)

(2002)
對 독일 0:1 패

(2002)
對 터키 2:3 패

기타 경기

(1996)
對 이란 2:6 패

(1997)
對 일본 2:1 승

(1998)
對 네덜란드 0:5 패

(1998)
對 벨기에 1:1 무

(1998)
對 태국 1:2 (연장) 패

(2003)
對 오만 1:3 패

(2004)
對 몰디브 0:0 무

(2004)
對 독일 3:1 승

(2007)
對 바레인 1:2 패

(2010)
對 중국 0:3 패

(2011)
對 일본 0:3 패

(2014)
對 알제리 2:4 패

(2017)
對 일본 4:1 승

(2018)
對 독일 2:0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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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두번째는 그 유명한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의 한일전이었다. 단,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의 한일전이 국제적인 이목을 끈 것은 경기 자체보다는 손흥민의 군면제 여부 때문이었기에 굳이 한일전이 아니어도 되었다. 즉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일간의 피 튀기는 라이벌전'이라는 의미에서 세계적인 이목을 끈 경기는 런던 올림픽 동메달전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2] 흔히 알고 있는 타대륙 심판이 맡는다는 건 두 팀이 소속된 대륙 단체가 다를 때 이야기다. 같은 대륙 단체 대결이면 웬만하면 같은 대륙 심판을 배정한다. 100% 맞는 건 아니지만.
  3. [3] 2003년 U-20 아랍에미리트 월드컵에서 16강전에서 한국-일본 대결 결과 2:1로 일본 승리. 그 뒤 일본은 대회우승팀 브라질에게 8강전에서 5:1로 처발렸다.
  4. [4] 이로부터 16년 뒤 2019년 U-20 월드컵에서도 16강에서 한일전이 성사됐는데, 이번에는 한국이 오세훈의 결승골로 1대0으로 승리해 8강에 올랐다. 그리고 8강에서 세네갈, 4강에서 에콰도르를 이기며 남자 대표팀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결승 진출을 일궈냈다.
  5. [5] 잘 알겠지만, 한일 양국은 동경 135를 기준으로 한 표준+9:00의 시간을 사용한다.
  6. [6]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라는 얘기이다.
  7. [7] 영국 현지 시간 기준 8월 10일 저녁 7시 45분.(19시 45분, 서머타임 적용.)
  8. [8] 기성용이 후에 힐링캠프에서 자신과 구자철의 역할이 뒤바뀌었다고 인증. 참고로 이때 기성용은 짜증내면서 구자철을 떼어놓았다고...아, 좀 꺼지라고
  9. [9] 골기퍼 손을 스친 후 골대를 강타하고 튕겨 나왔다. 거의 다 들어간 것 같아서 당시 SBS 배성재 캐스터와 차범근 해설위원도 ''슛!!!!골!!아!!!!......."라고 했다.
  10. [10] 그리고 2년 뒤에 월드컵에서 쓴맛을 봤다.
  11. [11] 다만, 국방의 의무를 대신해서 하는 경우는 불법이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냥 홍명보 감독의 언플이라고 보면 된다.
  12. [12] 오츠 유키는 한일전 이전까지 3골로 득점 3위를 달리고 있었다.
  13. [13] 실제로 일본 여자축구팀은 이번에 이코노미로 끊어서 입성한 뒤 은메달을 땄다. 참고로 일본 여자축구 성인대표팀은 직전 FIFA 여자월드컵을 우승한 팀이다.
  14. [14] 이 경기에서 두골을 내준 골키퍼.
  15. [15] 근데 정작 한일전 야구도 한국이 우세하다(...)
  16. [16] 병역면제는 날먹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조건 그 대회에서 출전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17. [17] 주전으로 나선 골키퍼가 만약 자신이 무슨 사정 이 생겨서 못뛰게 되면 아무도 골키퍼 할사람이 없다. 라는 상황 자체로도 플레이가 위축되는데, 여기서 무슨 사정이 생기더라도 뛸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 도움이 될것이다.
  18. [18] 그 대신 여축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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