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브라이언트

이름

코비 브라이언트(Kobe Bean Bryant)[1]

생년월일

1978년 8월 23일 (41살)

국적

미국

출신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출신학교

Lower Merion High School

신장

198cm (6' 6")

체중

96kg (212 lbs)

포지션

슈팅 가드

드래프트

1996년 드래프트 1라운드 13순위
샬럿 호네츠에 지명

소속팀

LA 레이커스(1996~2016)

등번호

8번[2], 24번

수상내역

NBA Champion 5회 (2000, 2001, 2002, 2009, 2010)
정규시즌 MVP (2008)
파이널 MVP 2회 (2009, 2010)
Olympic Gold Medal 2회 (2008, 2012)
All-NBA First Team 11회 (2002-2004, 2006-2013)
All-NBA Second Team 2회 (2000, 2001)
All-NBA Third Team 2회 (1999, 2005)
NBA All-Defensive First Team 9회 (2000, 2003, 2004, 2006-2011)
NBA All-Defensive Second Team 3회 (2001, 2002, 2012)
NBA All-Rookie Second Team (1997)
NBA All-star 18회 (1998, 2000-2016[3])
NBA All-Star Game MVP 4회 (2002, 2007, 2009, 2011)
NBA Slam Dunk Contest champion (1997)
Naismith Prep Player of the Year (1996)

NBA 파이널 우승 반지

2000

2001

2002

2009

2010

2008년 NBA 정규시즌 MVP

더크 노비츠키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2009~2010년 NBA 파이널 MVP

폴 피어스

코비 브라이언트

더크 노비츠키

2006년 ~ 2007년 NBA 올해의 득점왕

앨런 아이버슨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2002년 NBA 올스타 MVP

앨런 아이버슨

코비 브라이언트

케빈 가넷

2007년 NBA 올스타 MVP

르브론 제임스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2009년 NBA 올스타 MVP

르브론 제임스

코비 브라이언트 & 샤킬 오닐

드웨인 웨이드

2011년 NBA 올스타 MVP

드웨인 웨이드

코비 브라이언트

케빈 듀란트

1997년 NBA 슬램덩크 컨테스트 우승자

브렌트 베리

코비 브라이언트

슬램덩크 컨테스트 폐지[4]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영구결번

No. 8 & 24[5]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 상

제89회
(2017년)

제90회
(2018년)

제91회
(2019년)

파이퍼

디어 바스켓볼
(글렌 킨, 코비 브라이언트)

-
(-)

1. 개요
2. 유년기
3. 고등학교 시절
4. NBA 커리어
4.1. 2014-2015 시즌
4.2. 2015-2016 시즌
4.2.1. Mamba Out
5. 흑역사
6. 플레이 스타일
7. 여러가지 것들
8. 신발

1. 개요

What can I say, Mamba out.

"내가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맘바 아웃"

코트에서의 마지막 작별 인사[6]

Black Mamba

마이클 조던 이후 최고의 가드이자 LA 레이커스 역대 최고의 슈팅가드

NBA의 농구선수. 20년 가까이 LA 레이커스의 주전 슈팅 가드로 활약했으며 수 많은 팬과 안티를 같이 보유했던 레전드로, 유래와 실력이 조화를 이뤄 퍼스트 네임만으로도 누군지 아는 몇 안되는 선수가 되었다.[7]

2. 유년기

코비는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과거에 NBA선수였던 조 브라이언트.[8] 아버지인 Joe Bryant의 별명이 'Jellybean'이었다. 이에 따라 bean이라는 미들네임이 붙은 것으로 추정. 코비가 6살 때 가족들이 전부 이탈리아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그곳에서 NBA 녹화비디오를 보면서 나름 향수병도 달랬을듯 하다. 이탈리아에 있을때 축구를 접했는데, AC 밀란을 가장 좋아했다 한다. 아버지 조 브라이언트가 1991년에 은퇴를 선언하면서 코비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름의 유래는 고베(Kobe).[9] 코비 브라이언트의 아버지가 좋아하던 고베 스테이크에서 따왔다. 별명은 2007년 인터뷰에서 스스로 블랙맘바라고 붙였다. "99%의 정확도와 최고의 스피드로 연속해서 공격하는 블랙맘바의 능력"을 그의 농구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로. 2013년부터는 고급 와인과 같이 숙성되어 가는 그의 플레이를 묘사하기 위해 스스로를 'vino'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3. 고등학교 시절

코비는 로워 메리언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3년간 로워 메리언 고교가 기록한 전적은 77승 13패. 이때 코비는 무려 5개의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맹활약했다. [10] 평균 30.8점, 12리바운드, 6.5어시스트, 4.0스틸, 3.8블록을 기록했다. 그리고 Southeastern Pennsylvania의 최다득점 기록인 2,883득점 기록도 코비가 기록했다. 기존의 기록보유자는 윌트 체임벌린.

17세 시절

이렇게 고교 시절부터 활약상을 펼쳤기에 자신감이 생긴 코비는 대학진학 대신 NBA 드래프트를 신청 전체 13순위로 샬럿 호네츠에 지명되었다가 드래프트 당일 LA 레이커스의 당시 센터블라디 디박과 트레이드되었다. [11][12]

4. NBA 커리어

정규리그 평균득점 25.0점은 역대 1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통산 WS 172.7는 역대 15위, 효율성 22.9는 역대 2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코비가 역대 1위인건 역대 최다 야투 실패. 통산 득점은 단연 현역 1위이며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으나, 2014년 12월 14일(현지 시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원정경기에서 26득점을 기록하며, 마이클조던의 정규리그 통산득점 32292점을 제치고 32310점으로 역대 통산득점 3위에 올랐다. [13] 하지만 마이클 조던에 비해 약 200경기를 더 뛰고 난 이후에 이루어낸 성과인지라 기록달성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이로써 NBA 역사상 코비보다 많은 정규리그 득점을 올린 선수는 카림 압둘자바(38387점)와 칼 말론(36298점) 밖에 없다. 부상으로 인해 2014-15시즌을 일찌감치 마감했는데 이때 기준으로 통산득점은 32482점. [14] 결국 33,643점을 기록해서 역대 득점 순위 3위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루키 시즌은 대부분 벤치에서 보냈다. 개막전은 출전하지 못했고, 두 번째 경기인 미네소타와의 홈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전 기록은 6분 출전에 무득점 1리바운드 1블락. 데뷔 첫 득점은 세 번째 경기인 뉴욕 닉스와의 원정경기에서 3분을 출장해 자유투로 1득점을 기록한 것이다. 보다시피 데뷔 초창기엔 가비지 멤버였다. 당시 팀에는 에디 존스와 닉 반 엑셀이라는 좋은 가드진이 있었기 때문이고, 같은 신인이었던 데릭 피셔가 코비보다 훨씬 중용되었다.[15] 그러나 시즌 중반에 들어서면서 출전시간과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올스타 주간에 비트윈더레그로 슬램덩크 챔피언도 차지하며 전 세계 NBA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후반기에는 벤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주전으로 출장한 경기도 6경기나 되었다. 루키 정규시즌 기록은 71경기에 출전해 평균 15.5분을 뛰어 7.6점을 기록했다. 다만 이 시즌 플레이오프는 코비에게 있어 좋지 않은 추억이 있는데 바로 그 유명한 2라운드 5차전 클러치 에어볼 3연벙(...). [16]

2년차 시즌인 97-98시즌에도 79경기에 출전하는 와중에 단 1경기만 주전으로 출전하는 식스맨이었지만, 평균 출전시간은 26분으로 늘어났고, 득점은 15.4득점으로 두 배이상 상승했다. 인기도 크게 높아져서 팀에서도 주전이 아니면서 팬투표로 서부 올스타팀의 주전 가드로 뽑혔다(!). 아이러니하게 주전 슈팅 가드인 에디 존스는 올스타전에서 후보 선수(...). 인기가 꽤 높았던지 뉴스위크에도 두 페이지가량 그에 대한 기사를 싣기도 했으며, 코비의 인터뷰 도중에 레이커스의 광팬인 레전드 배우 잭 니콜슨난입해 사인을 받아가기도 했다.

게다가 이때 본인을 주인공으로 한 NBA게임이 나오기도 했다. 닌텐도 64용으로 나온 Kobe Bryrant on NBA Courtside란 게임인데, 당시론 그래픽이나 게임플레이도 제법 괜찮았던 농구 게임이다. 이런 식으로 게임에 이름이 걸리는 건 타이거 우즈같은 정상급 스타가 대부분이란 점에서 후보 가드주제에 게임의 주인공이 된 코비가 엄청 잘나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재밌게도 주인공인데 후보로 나오는 건 좀 그랬던지, 레이커스를 선택하면 주전 포인트 가드가 코비, 주전 슈팅 가드가 에디 존스로 되어있다. 진짜 주전이었던 닉 반 엑셀은 후보(...) 반 엑셀:이보시오!게임제작자 양반!! 이것 때문에 당시 미국 초딩 중 코비를 PG로 착각한 이들도 상당하다.

3년차 시즌. 단축시즌으로 치뤄진 98-99시즌에서는 레이커스가 팀의 주전 슈팅 가드로 에디 존스 대신 그를 선택함으로써[17]처음으로 풀타임 주전이 되었다. 그러나 코비 개인으로서는 다소 부진하다고 평가받은 시즌이었다. 전 경기를 주전으로 뛰었고 출장시간도 38분 수준으로 크게 늘어났지만, 당연할것이라 여겼던 평균 20득점 이상에 실패(19.9득점)한 부분은 아직 주전으로 뛸 레벨은 아니지 않느냐는 평가를 듣기에 이르렀다. 레이커스도 플레이오프에서 또 다시 유타한테 탈탈 털리며 좌절을 경험해야 했고, 결국 레이커스는 시카고를 여섯번 우승시킨 필 잭슨을 영입하게 된다.

트라이앵글 오펜스 하에서 샤크는 더욱 위력적인 선수가 되었고, 이는 코비도 마찬가지 였다. 코비는 조던의 역할뿐만 아니라 피펜의 역할인 볼 배급과 게임 리딩 그리고 상대 백코트 에이스 수비까지 다 혼자 해야했지만 전년도의 악평을 모두 날려버리려는듯이 그것을 모두 훌륭히 소화했고, 레이커스는 드디어 99-2000시즌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부터 코비는 서서히 자기가 팀의 1인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보인다. 어느 순간부터 코비의 팀내 발언권도 커져갔고, 샤킬 오닐이 이를 달가워할리가 없었다. 오닐이 처음부터 코비를 미워한건 아니었다.[18] 그러나 코비의 기량이 늘면서 서서히 1인자 자리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자 오닐의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또 농구연습 밖에 모르는 바보와도 같았던 코비가 오닐이 좀더 농구에 매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출하자 '애송이 주제 건방지다'며 오닐이 불쾌해했다. 오닐도 코비를 "페니 하더웨이 part 2"라고 부르거나 Showboat[19]라는 별명도 지어주는 등 조롱하기 시작했다. 당시 팀 동료들도 전부 샤킬 오닐 편에 섰다고 한다. 유일하게 코비 편을 들어준게 드래프트 동기였던 데릭 피셔 뿐. 그래서 코비가 피셔를 그리도 좋아하는거군 더군다나 활동적인 샤크에 비해 어린시절을 낯선 외국에서 보내 성격이 코트위에서와는 다르게 내성적인 코비의 성격차도 불화의 원인이기도 했다. 코트에서는 최고의 호흡을 과시했지만, 내심 불화는 점점 심해져만 갔다.

2004년에 샤크가 마이애미로 트레이드 되면서 본격적으로 팀의 1인자로써 처음으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결과는 시망. 코비의 개인기량은 좋았지만, 팀멤버 구성은 콰미 브라운, 스무쉬 파커, 루크 월튼 등 다른 팀에서는 벤치멤버를 할 선수들이 주전일 정도로 레이커스 역대 최약체인 것이 함정.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동료들과 어울리기보단 농구에만 집중하는 코비의 성격이 리더로서 적합하지 못하는게 본격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실제로 코비는 예전부터 팀 내에서 드래프트 동기 데릭 피셔 정도를 제외하면 농구 외적으로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선수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결국 코비의 홀로서기 첫해는 그리 밝지 못했다. 결국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도 진출하지 못했고, 결국 오랜만에 로터리 픽 추첨식에 나오는 낯선풍경을 연출했다.

그후 필 잭슨 감독과 다시 재회하고 잭슨 역시 코비를 중심으로 한 팀 구성을 합의하면서 코비도 조금씩 날개를 달았다. 또한 04시즌 당시 최악이던 잭슨과 코비의 관계 역시 코비가 한 시즌을 철저하게 망하고 나서 리더 역할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스스로 표현한대로 "망아지같았던" 성격을 조금씩 죽이고 난 뒤에 다소 회복되었다. 실제로 이때 코비는 동료들과 낚시를 가는등 예전과 달리 리더로서 역할을 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81득점을 기록하면서 역대 한경기 최다득점 2위로 올라서면서 기량도 물이 올랐다.[20] 물론 2년동안은 1라운드 탈락이라는 쓰디쓴 성적표를 받아들여야만 했지만, 07-08시즌에 파우 가솔이 합류하면서 팀도 다시 우승권 팀으로 발돋음했다. 비록 그 시즌에 보스턴에 패해 우승은 실패했지만 이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뽑히게 된다. "올림픽 금메달이 NBA우승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대표팀의 에이스로써 활약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08-09시즌과 09-10시즌에 연속 우승을 하면서 코비도 드디어 제대로 인정받게 되었다. 10-11 시즌에는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의외로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4전전패를 당하면서 3연패 달성에는 실패했다. 필 잭슨이 은퇴를 선언하고, 새롭게 클리블랜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마이크 브라운이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는데, 코비는 내심 팀의 코치였던 브라이언 쇼가 감독이 되길 원했던 듯 보인다. 향후 시즌, 새로운 감독밑에서 코비가 어떠한 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

2012년 12월 5일 뉴올리언스 호네츠전에서 통산 30,000득점의 벽을 돌파했다. 역대 득점 순위는 카림 압둘 자바, 칼 말론, 마이클 조던, 윌트 체임벌린에 이은 5위. 그리고 3월에는 체임벌린의 기록도 넘어섰다. 그러나 12-13 시즌 레이커스의 엄청난 부진으로 인해 포풍까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플레이오프 진출마저 불확실해져 유타와 8위 순위다툼을 하는 4월, 매 경기 거의 쉬지 않고 40분 이상씩 무리해서 뛰다가 12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전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했다. 경기는 승리했지만 레이커스 입장에서는 마냥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 아킬레스건 파열로 최대 9개월 결장이 예상되는 심각한 부상이다.

그러나...현재 부상에서 완치되었고, 팀 연습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댄토니 감독 말에 따르면 11월 말쯤에 복귀가 가능하다하고 한다!! 20대도 재활에 1년이 넘게 소요되는 부상인데 30대를 훌쩍 넘은 그가 벌써 복귀를 노린다니 그의 자기관리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21] 본격 좀비영화 워킹코비 좀비를 제압하려면 헤드샷만이 답입니다.

2013년 11월 25일(현지시간) 레이커스와 새로 2년 연장 계약을 채결했다. 2년 총액 48.5M.(23.5+25) 15/16시즌후에 계약이 종료되고 2016년엔 만 38세가 되는 만큼 사실상 마지막 계약이 될 듯 하다.

그리고 12월 8일 토론토 랩터스전에서 복귀하긴 했는데...9득점 8리바운드 4어시스트에 8턴오버라는 많이 실망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12월 11일 피닉스 선즈전에서 스몰포워드로 뛰면서 20점 3어시스트라는 기록을 남겼다. 스코어링 포지션으로 복귀하자마자 20+기록을 남긴것. 아직 체중 감량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런 기록을 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카림 압둘 자바옹이 이 글을 싫어합니다.그리고 다음경기에서 1/6 야투와 폭풍 턴오버를 시전했다.

12월 17일 멤피스 그리즐리스전에서 이번에는 왼쪽 무릎부상으로 또 6주 이상은 결장해야된다는 소식이 나왔고, 결국은 시즌 아웃이 확정. 망했어요. 중간에 잠깐 나왔다는 이유로 연봉도 보험처리가 안된다고 한다.

통산 정규 기록

1346경기 33643점 7047리바운드 6306어시스트 1944스틸 4010턴오버 야투 11719/26200 3점 1827/5546 자유투 8378/10011

평균 정규 기록

1346경기 25.0점 5.2리바운드 4.7어시스트 1.4스틸 3.0턴오버 야투 44.7% 3점 32.9% 자유투 83.7% TS 55.0% eFG 48.2% WS 172.7 WS/48 0.170 PER 22.9 ORtg 110 BPM 3.9 VORP 72.7

4.1. 2014-2015 시즌

레이커스의 로스터가 망가진 14-15 시즌, 조던의 통산 스코어 추월을 목표로 열심히 득점을 하고는 있지만 40%가 안되는 야투율로 난사를 하며 좋지 않은 효율을 보여주고 있다. 팀도 서부 최하위권을 벗어나기 어려워보인다. 11월 11일 멤피스와의 경기에서 존 하블리첵의 종전 기록인 13,417개를 제치고 역대 최다 야투실패라는 기록아닌 기록도 세웠다.(….) 그 후에도 신나게 난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카를로스 부저와 제레미 린이 코비를 돌려까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코비는 "나도 팀동료들을 참여시키고 싶지만 지갑을 도둑맞았으면 일단 급하게 잡고봐야지"라면서 일단 경기를 이기는게 팀동료를 참여시킨다는 것보다 우선한다는 식의 인터뷰를 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게 어차피 농구는 팀스포츠다. 전성기 때야 혼자 날고기어서 몇 경기 잡는게 가능해도 지금 코비의 기량으론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야 "도둑을 겨우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승리와 팀동료를 공격에 참여시키는 것을 별개로 보고 있는(즉, 승리를 따내는 건 어디까지나 나란 마인드) 걸 알 수 있는데 팀 스포츠에서 에이스가, 게다가 19년차 베테랑이 이런 마인드면 심각한 문제다.[22]

12월 15일 마침내 마이클조던의 기록(32,292점)을 넘어서 통산 득점 3위(32,310점)에 올라섰다.

12월 23일 기준으로 NBA 전체 득점 4위인 24.6점을 올리고 있으나 슛 성공률은 상위권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기도 처참한 37.2%이다. 3점슛 성공률은 27.4%.... 그나마 27점으로 득점 1위에 올라있는 제임스 하든이 42.1%로 슛 성공률이 낮은 편이지만, 이것마저도 코비보다는 훨씬 높고, 삼점슛 시도 개수를 적용해서 계산한 TS성공률로 보면 하든 57.9%, 코비 47.5%로 1할 차이가 넘는다. 이렇게 처참한 성공률에도 슛을 경기당 22.4개나 시도하며 NBA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하든보다 세개나 많다) 다시 말해 06-07 시즌 득점왕을 했을 때(22.8개)와 거의 비슷하게 던져대고 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슛 시도가 많다는 것보다도, 성공률이 낮다는 것보다도, 경기력 자체가 극히 안 좋다는 점이다. 12월 21일 열렸던 경기는 이 모든 문제점이 드러난 경기다.

이 경기에서 코비는 25점 5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로 언뜻 보기엔 괜찮은 활약을 펼쳤으며 레이커스는 새크라멘토 킹스에게 108대 101로 분패했다. "코비는 잘했는데 팀동료들의 지원이 부족해서 졌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경기 내용을 보면 절대 이게 아니다.

이 경기에서 코비는 슛을 30개 던져서 8개 넣었다(26.7%). 이 수치는 코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주전 선수들의 슛시도를 합친 것(28개)보다도 많다. 참고로 벤치에서 출전한 닉 영은 코비의 절반도 안되는 14개를 던져 코비보다 많은 26점을 올렸다.

영상을 보면 더 가관인게 동료들이 완전히 오픈된 상태에서 손을 들고 있는데 코비가 수비를 달고 무리하게 슛을 쏴버려 동료들이 허탈하게 지켜보는 장면이 수차례나 된다. 공격경로가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무리하게 돌파하다 공격자 파울을 세 차례나 범하기도 한다. 심지어 한번은 골밑에서 다른 동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엔드라인 밖으로 밀려 나가면서 백보드 뒤를 향해 정말 택도 없는 페이더웨이슛을 날리기도 한다. 정말 웃긴 게 이게 백보드 위를 넘어와서 들어가더라도 규정 위반이라 무효처리다.[23]니들 주느니 허공에 날려버리겠어!! 이 경기에서 그가 범한 실책은 무려 9개.

이쯤되면 그냥 안 뛰는게 도움 니가 갱기를 망치고 있어!

니갱망 모드는 둘째치고 더 큰 문제는 코비가 19년차 베테랑이자 만 36세 노장이라는 점이다. 안 그래도 초반에 비해 경기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아직 시즌의 3분의 1밖에 안 지났다. 초반엔 그래도 27점 언저리였지만 어느새 25점 밑으로 내려왔으며 성공률은 더 떨어지고 있다. (최근 5경기 평균 20.6점 슛성공률 29.2%) 명예의 전당과 영구결번이 확실시되는데다 기량도 나이를 감안하면 괜찮은 편임에도 전성기 시절 플레이스타일을 버리길 거부하면서 안타까운 말년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코비가 빠진 레이커스가 NBA 전체 1위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즈를 시종일관 압도하다 잡아내는 일이 벌어져 입장이 뻘쭘하게 됐다. 물론 한 경기만으로 판단하는 건 무리지만... "도둑부터 잡고보자"했는데 자기 빼고 힘을 합쳐 도둑을 잡아버렸다...

복귀 이후 출장시간도 줄이고, 이틀연속 경기의 두번째 경기는 쉬는 등 뛰는 양을 조절하고 있다. 그러나 슛성공률은 여전히 낮으며 득점기록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1월 14일 기준 22.7점 5.6리바운드 5.4어시스트 필드골 성공률 36.9% 삼점슛 성공률 28.9% 자유투 성공률 81.4%.. 최근 페이스를 볼때 풀시즌 기준으로 2년차 이후 최악의 기록을 낼 것이 유력해보인다. 결국 한국 시간으로 1월 23일, 35경기만에 오른쪽 어께 회전근 파열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었다. 최종성적은 22.3점 5.7리바운드 5.6어시스트 필드골 성공률 37.3% 삼점슛 성공률 29.3% 자유투 성공률 81.3%.. 풀시즌을 기준으로 보면, 득점은 4년차 이후 최악, 전체생산성을 나타내는 player efficiency rating은 3년차 이후 최악. 특히 필드골 성공률은 모든 시즌 통틀어 커리어 최악이다.

사실상 이번 시즌은 조던의 통산득점을 넘은 것 빼고는 딱히 긍정적인 면이 없다. 최근 ESPN은 "레이커스가 코비 없이 더 나은 게 아닌가"란 기사를 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레이커스는 코비가 없을때 100포제션(공격권) 당 4점을 더 넣고, 10점을 덜 내줬다. 레이커스에서 코비보다 더 나쁜 영향을 끼친 선수는 조던 힐 뿐이다.

코비의 이번 시즌을 정리하자면,

  • 야투율이 최소 출장 규정을 채운 선수들 중 3번째로 나쁘고
  • 3점슛이 성공률이 최소 출장 규정을 채운 선수들 중 5번째로 나쁘고
  • PER은 74위
  • 윈셰어는 NBA에서 361위(!!!)이다

윈셰어는 공격과 수비를 통해 한 선수가 팀에 얼마만큼의 승수를 공헌했는지 계산하는 2차스탯인데, 코비는 이번 시즌 0.1을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그의 커리어 하이 윈셰어는 15.3인데 최고수준은 아니지만(그는 윈셰어로 리그 1위를 차지한 적이 없다) 상당히 높은편[24] 코비의 윈셰어 수치는 이번 시즌 최소 1200분 이상 뛴 선수 중 가장 적으며, 심지어 비효율의 대명사로 알려진 조쉬 스미스(0.2)보다도 낮다. 농구에서 2차 스탯의 신빙성이 낮다는 걸 감안해도 이 정도면 심각하다. 또한 이번 시즌 코비가 기록한 필드골 성공률 37.3%는 지난 50년간 NBA에서 평균 20점 이상을 득점한 선수를 통틀어 가장 낮았다. 기존기록은 난사로 팬들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앨런 아이버슨이며 03-04 시즌의 그는 38.7%로 26.4점을 기록했다.

그동안 ESPN이 코비를 집요하게 깠다는 걸 감안해도 해당 기사는 객관적인 기록만으로 분석한 만큼 "ESPN이 그렇지 뭐"하고 넘길 문제는 절대 아닌 듯 보인다.

농구 자체는 다른 팀 스포츠와 다르게 한 선수만으로 우승후보가 될 수 있단 점에서[25] 코비의 발언을 옹호하려는 주장들이 있지만, 이런 옹호론이 포인트를 좀 잘못 잡은 게 올해의 코비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비판의 주요 포인트라는 것이다. 코비 그 자신도 부상 자체에서 돌아와 패스를 적극적으로 하고 슛을 줄이는 스타일로 바꾸면서 평균 득점이 내려갔는데, 이러한 스타일 변화 자체가 코비 자신이 공격에 너무 참여한다고 느끼고 있는 명백한 증거다. 이러한 옹호론은 과거의 코비를 언급하며 옹호하는 생뚱맞은 옹호라 하겠다.

현재 레이커스에서 코비가 이탈하고 레이커스가 죽을 쑤고 있는 것은 코비가 이기적이었기 때문이란 얘기가 아니다. 물론, 현재 레이커스 로스터에는 쓸만한 선수가 별로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투율이 3할, 심할때는 2할대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혼자 슛을 30번씩 던지는 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4.2. 2015-2016 시즌

시즌이 시작되기 전 본인은 이제 늙었고 젊은 선수들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캐치 앤 슛에 집중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시즌이 시작되니 마구잡이로 던지는 슛은 여전했다. 다만 과거에 비해 슛성공률이 현저하게 떨어지며 팀을 망치는 주범이 되어가는 중. 전보다 패스를 하는 빈도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죽은 패스이며 잡으면 수비를 달고 던지는 확률 떨어지는 슛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다. 팬들의 반응도 차마 눈뜨고 못보겠다 할정도[26] 그리고...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코비만 몰랐다 - 워리어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 중

커리는 NBA 역사를, 코비는 '흑역사'를 썼다 - 가황 박세운 기자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과거 팀 동료였던 골든스테이트 룩 월튼 감독대행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 칼럼니스트 염용근

한국시간 11월 25일, 코비 커리어에 있어 최악의 흑역사가 그것도 인생 마지막 시즌에 생기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연승기록중인 디펜딩 챔피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이날 브라이언트는 경기에 앞서 골든스테이트의 연승을 저지할수있겠냐는 질문에 자신이 이렇게 못할줄 아무도 모른다라고 답했지만 총 14개의 슛을 던져 단 하나만 넣으며[27] 야투성공률 7.1%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는데 7개를 던진 3점슛도 하나만 림을 통과했고 4득점, 6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 3턴오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으로 경기에 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워리어스는 개막 16연승이라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한편, 코비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내 슛은 나아질 거다. 오늘 80점을 넣었을 수도 있었다"해보시든가라든가 "평균 35득점을 넣을 수도 있다. 그럼 팀성적이 3승 11패 정도 되려나?"[28]식의 발언을 했다.ESPN 기사

한국시간 11월 29일, 미국 프로스포츠 전·현직 선수들의 블로그 The Players Tribune[29]에 올린 '농구에게(Dear Basketball)'이라는 글을 통해 올 시즌이 끝나고 은퇴할 것임을 밝혔다. 복절 # 그리고 I'M BACK

그리고 인디애나와의 경기, 전반엔 골든스테이트와의 게임과 별반 다를바없는 경기력을 선보였는데[30] 후반들어 추격의 3점슛 두방과 어시스트로 팀을 구해내기 시작했다! 모르고있군 아무도 이 의미를... 그리고 시합종료가 얼마 안남은 결정적인 순간 역전을 위해 던진 슛이 하필이면 실패해도 에어볼로 나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1] 폴 조지의 빵터진 표현은 덤.

이후 필라델피아와의 탱킹대전에서 다시 한 번 충격과 공포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필라델피아의 첫 승을 만들어주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31분 42초동안 출장한 가운데 야투 26개를 시도해 7개, 3점은 17개 시도해 단 4개만을 기록했다. 득실 마진도 당연히 꼴찌.

하지만 그 다음날 열렸던 워싱턴 위저즈와의 매치는 코비팬뿐만이 아니라 그의 전성기부터 NBA를 봐왔던 사람들이라면 모두 향수에 젖게 만들었다. 35분 출장하며 야투 10/24 3점 4/11 자유투 7/8이라는 올 시즌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31득점을 기록, 수비에서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극후반까지 물고 물리는 승부 끝에 4쿼터 마지막 1분이 남았을 때 98대 99 상황에서 역전 3점슛과 101대 101 동점 상황에서 30.8초를 남기고 위닝샷을 넣으며 승부를 결착지었다.[32] 물론 다음 경기부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늙은 코비로 다시 복귀.

하지만 시즌이 진행되며 점점 부상 후유증에서 회복되고 신체 밸런스가 어느정도 되돌아옴에 따라 12월 10일 이후로는 슛이 안정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심적 부담이 덜해지자 후배들을 위한 이타적인 플레이까지 나오면서 이러다 은퇴번복하는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등 매경기 농구팬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역시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한 법이다.

12월 3/23일에는 31득점을 기록하여 시즌 하이 기록을 갱신하기도 하면서 클라스는 영원하다며 감탄을 듣는 중.

위에 언급된 31점(23일) 경기부터 시작해 8경기동안 평균 20.4점 (아투율 37.7%)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그 다음부터 8경기동안 평균 8.1점 (야투율 32.1%)의 슬픈 모습을 (네 경기 연속 한 자리수 득점은 덤) 보여주기도 했다.

각 경기의 기록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basketball-reference.com/players/b/bryanko01/gamelog/2016/

참고로 이번 시즌 39경기 중에 5할을 넘긴 적은 딱 다섯 번이다. 말 그대로 널뛰기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1월 페이스는 상당히 안 좋은 걸 볼 수 있다. 10경기에 출전해 평균 24.9분 출장 11.1점 3리바운드 3.7어시스트 0.8스틸 0.3블럭 2.4실책 야투 성공률 36.7% 삼점슛 성공률 20.5%

그나마 고무적인 게 시즌 초반에 비해 야투시도가 줄어들고 야투성공률이 소폭 상승했다는 것.

2월 1일(한국시간) 기준으로 39경기동안 29분 출장하며 평균 15.7점 3.9리바운드 3.5어시스트 0.9스틸 0.2블럭 2.3실책 야투성공률 34.6% 삼점슛 성공률 25% 자유투성공률 78.4%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을 이어가면 2년 연속으로 커리어 최악의 야투성공률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며, 삼점슛 성공률도 최하위, 득점은 2년차 이후 최악이다. 물론 커리어 말기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최악의 기록을 낸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나마 작년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진 것이 난사가 줄었다! 지난 시즌엔 택도 없는 성공률로 시즌 초반엔 거의 득점왕 시기만큼 던져대던 코비가 이번 시즌엔 슛 시도가 거의 5개나 줄었다. 물론 출장시간이 적어진 것을 감안해야하지만 지난 시즌처럼 무작정 탐욕을 부리는 모습은 아니다. 또한 출장시간 감소를 감안해도 실책갯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 시즌에 어림도 없는 공격을 억지로 하다가 공을 흘리던 모습과 비교하면 정말 감개무량할 정도로 나아진 모습.

종합하자면 초반의 부진을 딛고 그나마 나아진 모습을 보여준다는 모습과 20년을 뛰어온 팀에서 은퇴시즌을 홀라당 날려먹으면서 자신의 은퇴투어를 다니고 있는 중(...)이라는 식으로 국내의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찬반논란이 엄청나다. 결국 끝까지 제독이나 노비츠키, 가넷과 같이 후배선수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할 듯 하다.

은퇴선언을 한 뒤로는 마음 속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은 듯 몇몇 경기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덤으로 통산득점 3만3천점을 돌파했다. 그러나 오랜 선수 생활 동안 쌓였던 부상이 몸을 갉아먹고 있어 출장시간을 조절하고 있는 중이다.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은퇴날 전설을썼다

그리고 노장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압도적인 득표수를 받으며 전체 1위로 올스타 주전으로 뽑히게 되었다!

현지시간 2월 2일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미네소타와의 대 탱킹대전에서 3점슛을 코비다운 셀렉션으로 11개 시도해 7개나 적중시키는 퍼포먼스 끝에 38점이라는 시즌 최고득점 기록을 경신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더더욱 고무적이었던 건 외곽을 맹폭하고 골밑에서는 돌파 후 자유투 머신이던 00년대 중반 최전성기 코비의 모습이 보였다는 데 있다.

이틀 후 펼쳐진 뉴올리언스 원정 경기에서도 팀의 클러치를 담당하며 27점을 기록했고 팀은 승리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를 갖게되는데...

4.2.1. Mamba Out

[33]

팬도울고 안티들도 우러따

현지시간 4월 13일에 열린 유타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은퇴경기.. 38달러였던 티켓값이 한화 약 70만원으로 폭등할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그 경기에서 코비는 50개의 야투를 시도[34] , 게임 종료 30초를 남기고 위닝샷을 집어넣는 등 22개의 야투를 성공하며 60득점으로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자축했다. 커리어 통산 6번째 그야말로 코비이기에 할수있는 코비다운 마무리. 샤킬오닐이 반농담으로 50점 넣어보라 그랬는데 그것이...[35] 그리고 커리어 마지막 스탯은 코비답지않게 어시스트, 즉 패스였다.[36]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립박수속에 자신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37] [38]

동시간 열렸던 경기에서 골든스테이트가 73승, 커리가 3점슛 400개, 평득 30점으로 180클럽 득점왕 성공을 실현시키면서, 농구시청자들에게 한 시대가 새로운 시대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감동을 선사하며 은퇴하였다. 인터뷰에서 커리어 내내 패스 좀 하고 살라는 소리를 들어왔는데, 오히려 오늘은 마지막을 골로 장식했어야지 패스를 왜했었냐, 아예 패스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 아이러니 해서 재밌고 인상깊었다는 말을 했다. "Man!"으로 시작한 그의 은퇴사의 마지막 말이다.

"What can I say, Mamba Out."

본 경기를 중계하던 SPOTV는 경기가 끝나고 그동안의 코비의 모습을 담은 뮤직비디오를 보내며 레전드에 대한 예우를 보이기도. 음악은 015B이젠 안녕이었다 이날 NBA 모든 커뮤니티는 감동의 물결

그의 커리어 전체 야투율은 44%. 그의 마지막 경기 야투율 또한 22-50으로 44%였다.

참고로 이 날의 기록은 은퇴경기 최다득점 및 최고령 선수의 60점 득점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렇게 커리어를 마무리한 코비의 마지막 시즌 기록은 66경기 28.2분 출장, 17.6점 2.8어시스트 3.7리바운드 0.9스틸 0.2블럭 2턴오버 필드골 성공률 35.8% 삼점슛 성공률 28.5%에 자유투 성공률 82.6%였다. 주요 2차 스탯인 윈셰어와 Value over replacement player(대체 선수가 출장시보다 얼마나 높은 가치를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스탯)은 둘다 마이너스에 PER은 고작 14.9를 기록하는 등 작년보다 더 떨어져 빈말로라도 좋은 활약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엄청난 고액의 연봉에도 불구하고 공수에서 커리어 최악의 활약을 보여주었으며, 게임 외적으로도 디안젤로 러셀의 병크로 개판오분전이된 팀내 분위기를 전혀 추스르지 못했다는점에서 부정적인 시즌일수밖에 없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전설의 마지막이라는 점,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 맹활약으로 코비답게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었다는 평도 많다. 반면 그와 한평생 선수생활을 라이벌로한 던컨은 그답게 시즌이 끝나자 조용히 은퇴했다. 코비는 코비답게, 던컨은 던컨답게 은퇴했다는게 흥미로운 점 참고로 저 기록을 내면서 받아간 연봉은 2천5백만달러로 NBA1위였다.

코비 팬들은 코비를 한 경기라도 더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좋았겠지만, 그가 말년에 보여준 모습을 객관적으로 정리해보면 돈 무지 많이 받는 먹튀가 1년 내내 돈값 전혀 못하고 민폐급의 활약만 하다가[* VORP가 마이너스란 건 replacement player(대체선수)가 더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 즉, 대체되는게 차라리 나은 정도의 활약이란 소리다.] 승패가 별 의미도 없는 마지막 한 경기에서만 맹활약을 한 정도다. 물론 그가 NBA역사에 남을 뛰어난 선수였고, 커리어 내내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 슈퍼스타였다는 걸 부정할 이는 없겠지만 말년의 그는 정말 못했다. 당장 코비가 은퇴하고 난 2016-17시즌에는 별 특별한 선수영입을 한 것도 아닌데[39] 26승을 거두며 전 시즌에 비해 9승이나 올랐다. 2003년에 은퇴하고 나서 팀이 길버트 아레나스를 영입했음에도 성적이 13승이나 떨어져 25승에 그친 마이클 조던과 비교된다. 심지어 조던은 이때 나이가 만 40세로 코비보다 많았다. 누적 경기수나 연차는 훨씬 적었지만...

2017년 9월 13일(한국시간), 코비의 등번호인 8번과 24번 모두 레이커스의 영구결번으로 확정되었다. 한 팀에 두 개의 번호가 영구결번 되는 경우는 코비가 NBA 역사상 최초이다. 영구결번 행사는 12월 19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홈경기에서 하프타임에 이루어졌다.

한 편 이날 은퇴식에선 코비의 은퇴편지를 애니메이션화 한 <Dear Basketball>이란 짧은 단편이 나왔는데 이 애니메이션이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부분을 수상했다. 감독과 코비가 나란히 단상에 올라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5. 흑역사

코비에게는 큰 흑역사가 있는데 2003년 덴버에서 Katelyn Faber라는 백인 여성이 코비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고소하여 경찰에 체포된 것. 코비는 혐의를 전면부인했고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맞섰다.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코비의 변호인단이 해당 여성의 남성 편력과 스스로 번복한 진술, 그리고 정신분열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무혐의 처분을 받고, 비공개로 합의함으로써 민사 소송도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이 일로 코비는 자신을 후원하던 스폰서와의 계약이 해지되고 한동안 엄청난 야유를 받아야만 했다. 특히나 덴버에서는 더 심했다. 유니폼 판매도 급락했다. 이 때문에 팬들 상당수가 그에게 등을 돌리기도 했다. 덕분에 국내에서 독특한 별명도 생겨났다.[40] 법정에서 무혐의로 판결이 났지만 코비가 주장한 것만 봐도 멀쩡한 부인을 두고 혼외정사를 한 것은 엄연히 사실이다. 이 사건은 영문위키에 따로 항목에 기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딴 사람들도 다하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 샤크를 봐라"는 식으로 당시 팀워크가 망가질데로 망가진 상황을 인증하는 것도 모자라 불똥을 팀원들에게 돌리는 듯한 뉘앙스로 인터뷰해버리는 바람에 당시 그가 팀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증해버리고 말았다.

그 외에 팔꿈치 사용 논란이 있다. 영상제작자가 코비까 농갤러라는 점을 감안해도...

특히 베티에한테 시전했던 니킥+엘보우 콤보는 "경기 매너 좋은 코비"의 반박영상으로 종종 등판한다. 사실, 코비가 매너가 좋다는 것은 존 스탁턴과 마찬가지로 대외이미지가 좋은 것 때문에 생긴 오해다. 실제로 외신이 뽑는 더티 플레이어 리스트에 가넷과 함께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선수이며, 이 점은 그가 팀의 중심이 된 2000년대 중반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동료 샤킬 오닐의 엘보우 문제가 커 비교적 묻힌 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초창기 밀레니엄 레이커스 시절까지는 아직 철썩 달라붙는 수비수를 떨쳐내는 스킬이 부족했기 때문에 팔꿈치를 지나치게 위협적으로 사용해 [41] 이미 잔뜩 쌓여있던 안티들에게 더럽다는 소리를 계속 듣고 있었다. 시끌시끌했던 새크라멘토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특히 잘 나타나는데 마이크 비비가 팔꿈치에 얻어맞고 피를 철철 흘리는 상황에서도 파울 한번 불리지 않아 가뜩이나 편파판정으로 말많은 시리즈에 기름을 부었다. 거대한 몸뚱이의 샤크가 팔꿈치를 휘두르거나 자유투라인에서 슬금슬금 벗어나 던지는게 더 눈에 띄어서 상대적으로 덜 언급 됐을 뿐...

또한 후기에 이르러 문제가 된 것은 슛동작 이후 파울을 당한 것처럼 팔을 휘두르는 동작인데, 이건 사실 다른 선수들도 하는 거지만[42] 코비의 경우 너무 자주하는 데다가 그 동작이 지나치게 커 상대선수들이 맞아서 다친 경우까지 있었다. 2007년에는 이걸 하다가 마누 지노빌리의 머리에 강하게 맞았고 피까지 났다. 이후 NBA에서 1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선수 말년에 흑역사를 시즌 내내 쓰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탐욕으로까지 보이는 투지가 코비를 이 정도의 선수로 성장시켰지만 오히려 커리어를 마무리 지어야하는 이 때에 양날의 칼이 되어 코비를 넘어 레이커스라는 팀 자체를 망치고 있는 중. 이 정도로 베테랑이 팀을 망가뜨리는 사례도 드물다. 던컨의 성장을 도우며 스퍼스를 지금의 강팀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데이비드 로빈슨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재 일선에서 물러나 어린 선수들을 돕는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고 있는 노비츠키나 케빈 가넷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모습. 노비츠키는 2018년에도 뛰고있다.

이러한 코비의 어리석은 모습은 심지어 그가 과거에 이룩한 업적들까지도 까이게 만들고 있다. '샤킬 오닐 덕분에 우승했다, 파우 가솔 덕분에 우승했다'는 이미 코비를 따라다니는 족쇄와도 같은 비아냥이다.[43]

6. 플레이 스타일

NBA 역사상 최고의 포스트 조던

사실 따지고본다면 모든 면에서 조던의 하위호환이란 점에서 은근히 평가에서 손해를 보는 선수이다. 그가 말년에 기량이 크게 떨어지고 공격효율이 조던보다 못하다고 해고 조던 외 다른 슈팅가드들에 비하면 오히려 상당히 늦은 나이까지(만34세)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효율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다만 조던과 너무나 스타일이 비슷한데 그 조던이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웠고 바로 전 세대였기 때문에 코비는 뭘 해도 조던과 비교된 것. 괜히 코비가 조던과의 비교에 치를 떨며 싫어하는게 아니다. 전국에서 2등했는데 반에서조차 2등을 하는 그런 느낌

물론 이 단어로 끝낼 선수는 아니다. 1 on 1으로 눈을 돌리면, 포스트업 - 훅 슛 과 페이드어웨이 점프슛을 주로 이용했던 빅맨 조던과 달리 미끄러지듯 베이스라인으로 빠지는 스윙을 선호한다. 이 외에도 수비를 달고도 3점슛을 곧잘 날리는데, 이게 터지는 날에는 아무도 못 막는다. 일단 조던에 비해서 운동능력과 프레임이 시야라던가 부족하기 때문에 조던이 간결하게 수비수를 제친다면 코비는 상대적으로 잔기술을 많이 섞는 편이다. 또한,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유연성을 활용해 조던에 비해 5% 부족한 운동능력을 메운다. 블랙 맘바라는 별명에 걸맞게 리버스 덩크, 더블 클러치 상황에서 몸을 마치 뱀처럼 뒤트는데 그 모습은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

스윙맨 포지션에서 조던 다음으로 역대급 포스트업을 구사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근래 NBA에서 포스트업 사관학교의 위상으로 떠오른 하킴스쿨의 초창기 수료자. 조던이 파워 포워드조차 밀어낼 수 있는 힘에다가 스킬셋, 풋워크를 모두 겸비했다면, 코비는 좀더 다양한 기술을 이용하며 효과를 보는 편.[44] 턴어라운드 페이드어웨이 샷도 매우 좋다. 특히 볼핸들링은 조던보다도 위로 평가받을 정도로 역대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손이 작아서인지 중요한 순간 잔기술로 수비를 다 속여놓고도 잔실수를 종종 저질러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리핏시절 손부상 이후로는 노쇠화와 맞물리며 더 빈도가 늘어났고.

다시는 패스하란 소리 하지마

이기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평이 커리어 내내 따라다녔고, '패스 안하는 코비' 는 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앞선 주특기 포스트업과도 연관이 있는데, 트라이앵글 포지션에서 실질적으로는 포워드처럼 플레이하면서 3점 라인 안쪽에서 프레쉬한 포지션을 잡은다음 간결하게 포스트업으로 밀고들어가는 조던의 베이스라인 공략과 달리, 코비는 베이스라인에서 자신이 플레이메이커처럼 활동하면서 하킴에게 배운 드림 쉐이크를 자기 스타일로 어레인지하여 상대 수비수를 흔든뒤 점퍼로 마무리하는 스타일을 즐긴다. 조던 못지 않게 코비도 이 모든 플레이에 상대 수비를 벗기기 위한 훼이크를 마구 섞기 때문에 플레이도 상대적으로 느리고, 다른 선수들보다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다. 다만 조던과의 차이점은 조던은 작은 페이크를 정말 순식간에 넣고 수비수가 잠깐 반응하는 사이 돌파하거나 슛을 던지는데, 코비는 이것저것 시도를 하느라 시간을 많이 끈다. 1대1플레이에서는 두 선수가 별 차이가 없을 수 있으나, 팀플레이는 다르다. 조던은 기본기를 잘 가르치기로 유명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딘 스미스의 제자답게 플레이가 매우 간결하지만, 코비는 그렇지 못한데 이 점이 조던과 코비의 효율성 차이에 한몫하기도 했다. 또한 조던의 공격이 더 위력적이기 때문에 조던이 페이크나 방향전환 한번에 수비를 무너뜨릴 것도, 코비는 페이크->크로스오버->슛 페이크로 자꾸 공격이 길어지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마인드를 패스나 돌파 선택지보다는 슛 우선으로 정하기 때문에 경기가 꼬이면 꼬일수록 난사에 들어간다. 조던 이후 현시대 베이스라인에서 가장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라는 평가도 있지만, 이게 기승전슛으로 결론이 나니 볼호그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대표적인 플레이가 페이크가 안 먹혔을때 후속 플레이인데, "결론은 슛"으로 정해놓고 하다보니 페이크를 네번 다섯번씩 집요하게 하다 억지로 우겨넣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코비는 죽어도 패스 안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어시스트 수치만 보면 괜찮은 편인데 슛하려고 맘먹었으면 죽어도 슛하고야 마는 고집이 볼호그란 인식에 한몫했다. 실제로 마음먹고 패스에 집중하는 경기에서는 르브론 못지않은 패스를 보여주지만, 한두 경기씩 보여주기식으로 패스를 뿌린 뒤에는 다시 본인의 슛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니 더 문제.

그래서 한 경기에 40개 이상의 야투를 시도한 게임이 아홉 번이나 될 정도라 별명이 코난사. 다만 코비의 통산 야투율은 45%, eFG는 48% 수준인데 이는 동시대 유명한 슈팅가드였던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빈스 카터등보다 못하지는 않는 수준이다. 하지만 코비의 샷 셀렉션은 6성슈가는 물론이고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듀란트, 르브론, 조던에 비해 무모하고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성공시키는 게 정상이 아닌 변태 같은 터프샷의 비중이 높다. 반대로 말하면 항상 상대 에이스 스톱퍼가 기를 쓰고 죽자고 틀어 막고 있는, 들어가는 게 억지같은 샷들을 코비는 어떻게든 45%의 야투율로 때려넣고 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수비하여 도저히 못 넣는다고 생각되는 샷들을 유도하여도, 이를 체감상 반반의 확률로 때려 넣는 선수를 상대하는 것은 상대에게는 상당히 무섭고 진 빠지는 일이다.

다만 또 하나 고려해볼면이 있는데, 동시대의 슈팅가드 중 동료복이 많았던 것도 코비다. 특히 아이버슨은 한때 수비왕과 함께 뛸때조차 공격에선 원맨팀에 가까웠으며 레이 알렌은 12년차가 되어서야 우승후보팀에서 뛰게 되었다. 피어스는 10년차. 데뷔하자마자 수비를 끌어오는 오닐이란 존재가 있었고, 3시즌 정도 원맨팀에서 뛰다가 가솔이란 훌륭한 득점원이 합류한 코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르브론의 히트시절 야투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원래 야투율은 팀동료들의 수준이 높을 수록 수비가 분산되어 올라간다. 간단히 말해 오닐이 있는데 코비에게 더블팀을 갈 수가 있겠는가? 반대로 오닐을 더블팀하면 그만큼 코비가 오픈된다. 그리고 그때 오닐은 반드시 더블팀해야하는 선수였다. 이 차이가 잘 드러난 게 바로 오닐을 거의 싱글 커버리지로 막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의 2004 파이널이다.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브라이언트는 서부 1,2,3라운드를 통틀어 25.1점, 42.4%의 필드골 성공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오닐에게 몰린 수비의 효과를 못 본 파이널에선 22.6점, 38.1%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물론 그를 막은 테이션 프린스가 훌륭한 수비수란 점도 크지만, 성공률 측면에서 오닐의 덕을 많이 본 건 확실하다.

어찌 보면 45%라는 준수한 야투율을 가지고도 난사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은 팬덤에서 자초한 면이 크다. 초창기 코비의 라이벌, 소위 6성슈가들을 깔 때 항상 나온 것이 효율성과 커리어였기 때문이다. 울분을 참고 기다리던 6성슈가 팬덤은 코비 팬덤이 조던과 정면충돌하는 것을 목격했고, 때마침 등장한 효율성괴물 르브론이 나타나자 자신들이 당했던 방식 그대로 코비를 까기 시작했다.[45] 거기다 말년에 들어서며 실력은 떨어지는데 플레이 스타일은 고집스럽게 고수하다보니 지금에 이르러 난사의 대명사가 되었다.

초창기에는 우수한 락다운 디펜더이기도 했으나 샤크가 나가고 홀로서기 때부턴 공수 모두 집중하기 어려웠기 따문에 수비에선 종종 집중력을 잃고 본인이 필요한 순간에만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식 디펜스를 선보였으며, 나이가 많아진 후에는 대인 수비에 기울이는 노력을 아예 없애버렸다.[46] 스스로의 기술은 날카롭지만 시스템에 적응하는 속도는 다소 느린 편인지 로테이션 수비를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문에 대인수비는 전성기 기준 조던과도 비견됐지만 팀 수비는 많이 차이가 난다고 평가받는다. 흔히들 전성기 코비의 대인수비에 웨이드의 운동능력과 헬핑, 블락능력을 합치면 조던일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Kobe Doin Work라는 영상에 코비가 플레이하면서 대화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코비가 팀 디펜스에 영향이 적다고는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에서 코비는 코트 위에서 동료들의 수비 위치를 일일이 지정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 동료들에게 이를 지적한 뒤에 본인이 움직인다. 이런 식으로 팀의 수비 전체를 총괄하려는 것이 본인의 수비 위치에 대응에 늦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동료들의 문제에 대해 일일이 경기 중에 다 지적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한다면 말년의 스탯은 훨씬 나아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조던도 비슷한데, 자신의 앞에서 한 명만 마음만 먹고 막으면 조던도 코비도 언제든 상대를 지워버릴 자신은 있었을 테지만 농구는 개인경기가 아닌만큼, 자신의 넓은 시야를 팀 전체의 수비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나 이것도 중년의 이야기고 판타스틱 4를 구축한 시점부터는 본인의 역량이 여건이 안되는지 아예 수비는 신경을 끊고 공격에만 신경쓰고 있다. 게다가 조던과의 비교는 좀 엄한 것이, 조던은 저렇게 수비 지휘를 하면서도 동시에 35세 나이까지 리그 최고수준의 대인수비를 선보였다. 당장 98년도만 해도 인디애나의 레지 밀러에게 플레이오프 7차전 4쿼터에게 붙어서 그를 무득점으로 묶은 적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조던은 코비와 달리 가끔 이렇게 수비를 잘한게 아니라 매 경기 훌륭한 수비력을 보였다. 그런데 코비는 그렇지가 못하니 문제. 애초에 팀수비는 조던이 훨씬 앞서는 분야다. 애초에 코비는 나이가 들면서 수비를 어느 정도 포기한 선수지만 조던은 만 35세이던 2차 은퇴 전까지 수비에서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던 선수이다.[47] 전성기 기준 둘의 수비는 조던의 근소우위 정도지만 30대 이후 둘의 수비력은 비교대상조차 못 된다. 코비와 달리 조던은 비슷한 나이이던 시카고 시절까지 실제로 상대를 지워버리는 리그 최고수준의 맨투맨 수비를 자랑했다.

또한 위와 같은 "커맨더형 수비수" 중 코비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케빈 가넷이다. 코비와 다르게 어린 시절부터 동료들과 활발히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능한데다가 코비와 다르게 빅맨이라 더 넓은 시야를 갖는 (가드는 1선 수비라 등 뒤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선수였기 때문. 이런 성향은 말년까지 계속되었는데, 가넷은 정상급 수비력을 잃자 이러한 수비지휘력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디펜스팀에 선정되지 못했다. 반면 코비는 계속해서 선정되니 디펜시브 팀에 관하여 논란이 일었다. 아무리 수비지휘력이 뛰어나도 실제 경기에서 수비력이 떨어지면 디펜스팀에는 선정되지 못해야 하는데, 코비는 실제 수비력이 리그 정상급에서 떨어진 후에도 몇번이나 선정이 된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코비의 오프 더 볼 무브먼트는 절대 나쁜 편이 아니라는건다. 코비가 오프 더 볼 무브먼트를 마치 쌩까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겠지만 볼 호그 기질이 심해서 눈에 띄지 않았을 뿐.

7. 여러가지 것들

  • 마이클 조던에게 전성기 컨디션으로 지금 NBA선수들과 1 on 1을 하면 이길 것 같냐는 질문에 "다른 선수들은 다 내가 이길수 있다. 하지만 코비만큼은 승패를 장담할수 없다." 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유는 "나의 모든 기술을 훔치기 때문이다." ("He steals all of my moves.”) 라고 인정 아닌 인정을 받았다. 이에 대해 코비는 "옛날엔 모두 당신의 플레이를 따라하고 나도 당신을 따라했지만, 지금은 다들 나를 따라한다."라는 패기로운 답문을 한것도 유명하다.
  • 코비는 20세때 당시 17살의 바네사를 만났다고 한다. 바네사는 당시 Tha Eastsidaz[48]라는 그룹의 백댄서로 활동했던것 같다. 이 둘은 결혼해서 두 딸을 두고 있다. 그후 잘 사나 싶더니...2011년 12월 결국 아내가 이혼을 신청했다. CNN에서는 이래서 고등학생 끝나자마자 결혼을 하면 안된다는 뉴스를 내보내기도. 그러나 2013년 01월 11일에 SNS를 통해 이혼소송은 취하할 것이며 다시 재결합할 것이라는 발표했다.
  • 한국에는 3번 방문했다. 98년도에 한창 젊을때 방문해서 당시 아디다스 주간의 3 대 3 농구대회를 방문해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자세도 잡아보고 방문기간에 자신의 생일파티도 하기도 했다. 두번째 방문때는 대스타가 되어서 농구 클리닉을 하기도 했는데, 정말 자세하나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당시 클리닉에 참석했던 어린선수들을 지도해줬다.

그리고 세번째로 한국 방문에서 한국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클리닉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서 댈러스에게 패배한 후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7일쉬고 바로 다음날에 훈련 시작했어요."라고 대답하며 진성 농덕후임을 다시한번 인증했다. "나는 지는게 너무 싫다"라는 말까지 더하면서, 직장폐쇄로 인해 오히려 준비할수 있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고 하면서 철저하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최고의 선수는 오직 연습뿐 직장폐쇄기간동안 KBL에서 뛸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고려해보겠다"라는 립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사실 말이 좋아 고려보겠다지, KBL 구단 전부를 매각해도 코비 1년 연봉이 안된다(...).[49]
  • 중국에서 인기가 엄청나다. 때문에 중국에서도 여러번 광고에 나왔는데 물론 돈은 두둑히 받았다. 중국에는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이 여러번 가서 시범경기에서도 뛰기도 하고 유소년 농구팀을 보러가는데 일절 소식없이 어느 학교 농구부에 잠깐 들렀는데 7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새 모여들었다고. 르브론 제임스나 여러 NBA 유명선수들과 같이 중국에 간 적도 있는데 압도적으로 코비에게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인을 받는다든지 여러모로 너무 차이가 나서 르브론 제임스가 웃으면서 중국에서는 아주 황제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 NBA 데뷰할 때만해도 건방진 신인의 이미지가 강했다. 가능성은 보였으나 많기도 많고 실속이 적은 포스트조던(Post Jordan) 중 하나로 여겨졌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막판 클러치 에어볼을 날리는 플레이로 안티팬을 모았다. 또한 제스쳐나 플레이 스타일, 언론 플레이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조던을 따라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NBA 데뷔 당시 신장을 201cm로 발표했으나, 이후 조던이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한 뒤에 신장 프로필을 조던의 신장과 같은 198cm로 바꾸기까지 했을 정도.
  •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참 후배인 크리스 폴에게 스크린을 타는 법을 배웠고, 하킴 올라주원에게 포스트업과 드림 쉐이크를 배웠다. 조던에게도 이런저런 조언을 받았으나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50].
  •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이야기로, 마이클 잭슨과도 인연이 있다. 데뷔 초기의 코비를 네버랜드로 초청해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줬다고. 이후로도 가끔 연락은 주고받다가, 두사람 모두 성추문으로 법정을 드나들게되며 연락이 끊겼다고한다. 이런 인연으로, 마이클 잭슨의 추모식에 뮤비에 출연했던 매직 존슨과 함께 참석하기도했다.
  • 워낙 투지가 강하고 농구덕후라서 가벼운 부상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 근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서 09-10 시즌에는 손가락 인대가 끊어졌는데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즌내내, 그리고 파이널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 NBA 한 경기 득점 2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 81점. 저거보다도 그 날 득점이 적은 팀들이 있는 마당에...[51]
  • 포스트조던을 노리는 선수라고 그의 열혈팬들은 주장하지만 객관적으로 선수 전반기의 우승은 샤크에 이어 조력자의 역할[52], 후반기의 우승은 코비 의 활약이 절대적 이였다. (사실 후반기 우승도 파우 가솔의 역할이 컸다..)( 알고 말하자 파이널때 가솔 활약은 대단했지만 딱 파이널 몇경기일뿐 플옵포스의 코비는 못말렸다 )
  • 농구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고 있고, 고등학교때 여자친구랑 집에서 마이클 조던 경기를 보면서 데이트 했다니 뭐.(...) 그의 아내 바네사는 다른 여자가 아니라 농구를 최고의 연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 국내에선 농구 오타쿠라 하여 '농덕후'라 불리고 있다. 그의 '하루' 연습 메뉴는 다음과 같다.

아침 4시에 기상. 가볍게 몸을 풀고 5시 30분에 개인 체육관에서 훈련 시작. 각각 5개의 스팟에서 200개씩 던지며, 들어가는 것만 카운트.[53] 완료 후 같은 5개의 스팟에서 페이더웨이로 100개씩 카운트. 이후 팀훈련 종료 후 또다시 개인 훈련 시작. 이때 웨이트도 병행하는데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Day 1 & Day 4

Bench press

Lat pull-downs

Incline press

Military press

Abdominal crunches

Day 2 & Day 5

Lateral dumbbell raises

Bar dips

Tricep press-downs

Bicep curls

Abdominal crunches

Day 3 & Day 6

Back squats/Front squats

Leg curls

Leg extensions

Calf raises

Abdominal crunches

  • 출퇴근을 헬리콥터로 한다고 한다. 소화불량이 있는지라 그 지옥같은 LA 고속도로에서 2시간동안 차안에 앉아있을수가 없기 때문.
  • 한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2012년 런던올림픽 농구대표팀이 1992년 원조 드림팀보다 낫다는 주장을 했다. 2012년 드림팀에 자신감을 주려는 발언인 줄 알았으나 원조 드림팀은 유잉과 로빈슨등 센터진은 우리팀보다 낫지만 원조 드림팀은 나이가 많은 선수들 중심이라 단판승부로 이길 수 있다는 진지한 개소리.

그러자 찰스 바클리를 비롯한 당시 현역들이 돌아가면서 코비의 개드립을 맞받아치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바클리가 "나이 얘기 하니까 웃긴다. 지금 말한 코비는 34살이지만 92년 자신이나 조던은 29세의 최전성기였거든 ?" 그리고 "92년 드림팀에 뽑힐만한 지금 미국 국대선수는 코비, 르브론, 듀란트 뿐임. 즐" 하고 받아쳤다. 나이도 셀줄 모르는 코노인 바클리에 이어 쪼잔하기로 유명한 그 분도 "absolutely laughed", 그리고 "우리 팀엔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가 나 포함해 11명임. 니들도 11명 헌액되고 나서 비교 ㄱㄱ, 우리가 니들에게 배운게 아님. 니들이 우리보고 배운거임. 코비가 날 웃겼음. 덕분에 실컷 웃었음 ㅋㅋㅋ"라고 받아쳤고 래리 버드는 "걔네들이 이길거야. 난 뛰어본지 20년 됐고 우린 늙었거든"이라고 래리 버드 특유의 디스를 작렬하고, 스카티 피펜은 "우리가 25점차로 이긴다"라고 받아쳤다. [54][55]그도 그럴 것이 1992년 대표팀은 조던의 말처럼 선수 12명중 11명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 있는 레전드들이다. 래리 버드매직 존슨이 커리어를 마치는 시점이지만 마이클 조던스코티 피펜 등 주축선수 대부분은 20대 후반의 전성기였다. 게다가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칼 말론, 찰스 바클리로 구성된 원조 드림팀의 역대 최강 포스트[56] 센터기근을 맞고 있는 2012년 타이슨 챈들러, 케빈 러브 등의 골밑과 비교불가수준.
  • 데뷔 이후 처음 몇 년은 아프로 헤어스타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빡빡 밀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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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가 신던 신발인 하이퍼덩크 광고영상인데 코비가 하이퍼덩크를 신고 애스턴 마틴 을 뛰어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그것도 달려오는 차를!) 이 영상을 두고 조작이냐 아니냐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당사자인 코비는 간접적으로 조작을 시인했다.[57](영상에서 코비가 차를 뛰어넘자 같이 좋아하는 흑인은 당시 팀 동료였던 로니 튜리아프)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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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Inside the NBA라는 프로그램에서 코비를 인터뷰 하던 중 패널로 등장하는 케니 스미스가 자기도 저 영상을 따라해보겠다고(...) 직접 신발도 신고 시도했으나 실패.(물론 웃기려고 만든것이고 실제로 치인 건 아니다.) 스미스가 차에 치이는(...) 순간 진행자인 어니 존슨과 패널인 찰스 바클리, 그리고 코비까지 그야말로 정신줄을 놓고 웃었다. 참고로 저 영상에도 나오지만 스미스를 친 범인은 저 프로그램 진행자인 어니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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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에 잭애스에 출연해서(...) 뱀을 풀어놓은 튜브욕조(...)를 뛰어넘어 덩크를 성공시켰다. 애스턴 마틴을 뛰어넘을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제대로 성공했다.어지간히 뱀이 싫었는가 보다. 블랙맘바가!

  • LA 의회에서 Aug. 24. 2016을 "Kobe Bryant Day"로 의결 하였다. 20년 동안 LA Lakers 한 팀만을 위해서 뛴 프렌차이즈 스타이기 때문에. 날짜를 8월 24일로 한 이유는 코비가 8, 24 두개의 백넘버를 썼기 때문에 해당 일자로 정했다고 한다.
  • 조지 칼이 약물 이야기를 했을 때 언급한 내용 중 하나가 오프시즌 독일로 가던 선수라 언급을 했는데 조지 칼이 언급한 내용 전체를 대입하면 그 대상이 진짜 독일인인 노비츠키를 제외하면 코비 뿐이다. 코비는 실제로 오프시즌에 무릎 치료를 위해 독일로 자주 가곤 했다.
  • 농구 게임인 2K시리즈의 최신판인 2K8의 마이플레이어에서 레이커스를 상대하다보면 게스트 해설자로 코비가 나오는데, 이때 코비가 자신의 은퇴후 행보에 대해 언급한다. (물론 게임이지만 음성 파일 자체는 실제 인물이 녹음한 것이므로 당연히 코비 본인의 얘기가 맞다) 해설자인 케빈 할런이 감독할 계획이 있냐고 하자 딱 잘라 전혀 없다고 하며, 어느 팀에서 기술 자문으로라도 일할 생각이 있다고 묻자 그럴 계획도 없다고 얘기한다. 현재처럼 후배들이 가끔 물어보고[58] 자기가 도와주는 식이 좋다고. 또한 우승을 할 당시에 아기였던 딸들이 이제 컸는데, 딸들을 돌볼 수 없었던것이 아쉬웠다며 가족들과 더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조던처럼 감독할 생각은 전혀 없는듯. 근데 딸 농구팀을 감독하며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썼다고 한다(...) [59]
  • 하도 장거리 슈팅이 유명해서인지 FPS에서 장거리 수류탄 킬을 내면 KOBE로 도배하는 게 불문율이 되었다.

8. 신발

조던처럼 신발로 유명한 선수중에 하나인데, 초창기에는 아디다스의 전속 모델이었으나 나이키로 바꿨다. 나이키의 수석 디자이너 Eric Avar와 긴 상의 끝에 Nike Zoom Kobe IV를 내놓자 모든 농구계가 술렁였다. 런닝화처럼 생긴 신발로 어떻게 발목 부상을 안입고 82경기를 뛸 수 있냐는 말이 나왔으나,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엄청난 활약을 하고 우승도 거머쥐면서 그 이후 코비 시그내쳐 신발 라인은 (아킬레스건을 다치고 난 뒤 돌아온 뒤 나온 신발 Kobe IX를 제외하면) 다 로우탑으로 제작되었으며, 메시나 Flyknit처럼 가벼운 소재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60] 가장 먼저 런닝화나 크로스 트레이닝 신발에 많이 쓰는 나이키 Flyknit 테크놀로지를 농구화에 접목한 것도 코비였다. 코비 은퇴 이후 폴 조지나 존 월이 16/17시즌 까지 코비 10을 착용했고, 토마스와 드로잔은 코비 AD를 신고 플레이 할 정도.


  1. [1] 사실 코비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서 멋있고 특이한 이름으로 받아들여지는거지, 따지고 보면 괴랄한 이름이다. 코비(Kobe)는 고베 와규 스테이크, 빈은 아버지의 별명인 젤리빈에서 따온 걸로 말 그대로 콩을 뜻한다. 고베 콩 브라이언트 (...)
  2. [2] 06년까지 사용
  3. [3] 2014,15년 올스타전은 부상으로 불참
  4. [4] 이후 빈스 카터의 존재로 부활했다.
  5. [5] 등번호 8번과 24번을 달고 경기를 뛰며 레이커스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두 번호 모두 영구결번이 되었다. 코비는 NBA 역사상 최초로 한 팀에서 두 번호가 모두 영구결번된 선수가 되었다.
  6. [6] 이후 이 멘트는 버락 오바마임기 마지막 백악관 만찬때 드립으로 써먹었다.(영상 1분 40초 부터)
  7. [7] 이런 식으로 독특한 퍼스트네임과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춘 선수들은 신화 속 괴물, 진짜 괴물, 80년대를 풍미한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2010년대의 강자 등이 있다.
  8. [8] 나름 농구 집안인데 NBA에서 8시즌 뛴 아버지 조를 포함해 외삼촌 John "Chubby" Cox도 잠깐 NBA에서 뛴 적이 있는 농구선수 출신이며, 이종사촌인 존 콕스 4세 역시 프로선수다. (NBA는 못 갔지만) 다만 이 방면 끝판왕은 70년대 NBA 레전드 릭 베리인데, 아들 넷이 전부 농구선수이며 첫째는 NBA에 못 갔지마 둘째와 셋째 존과 브렌트는 나름 탄탄한 커리어를 쌓았다. 늦둥이 막내는 현재 대학선수.
  9. [9] 여담이지만 중계나 NBA관련 방송을 보면 보통 선수들에 대해 전문가들이 설명할때 퍼스트네임보다 라스트 네임을 압도적으로 많이 부른다. 선수들이 워낙 많은데 같은 이름이 많은 퍼스트네임보다는 라스트네임으로 구분하는게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비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라스트네임보다 퍼스트네임으로 불리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코비란 이름 자체가 워낙에 희귀하고 특이하다 보니 코비하면 전세계 누구라도 웬만하면 코비 브라이언트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에서 라스트네임은 우리나라 식으로 치면 성까지 풀네임을 부르는 느낌이고, 퍼스트네임은 이름만 부르는 느낌이라 (Jordan이라고 부르는 느낌은 박찬호, Michael라고 찬호라고 부르는 느낌이다. 물론 아예 풀네임으로 부르기도 한다) 공식 석상이나 중계에서 Bryant라고 종종 지칭하기도 한다.
  10. [10] 미국 고등학교 농구의 경우 다재다능한 선수는 딱히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자신이 원하는 자유로운 플레이를 많이 하게 되는데, 코비도 그중 한 명이였다. 참고로 케빈 가넷의 경우 공식 포지션은 센터였지만 모든 포지션을 다 소화했고 가장 즐겨하는 포지션은 포인트가드였다고 한다.
  11. [11] 사실 코비가 이후 역대급 선수로 성장해서 그렇지 이 트레이드는 레이커스의 당시 단장 제리 웨스트의 선견지명이 빛나는 부분이다. 디박은 센터 포지션이 매우 두텁던 90년대에 올스타 바로 아랫급이던 수준급 센터(올스타전엔 01년 한번밖에 못 나갔지만, 한때 MVP투표 상위 5명 중 네명이 센터였던 90년대의 미친 뎁쓰만 아니면 올스타에 몇번 더 뽑혔을 것이다)이며 당시 20대 후반으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선수를 주고 18살짜리 신인 가드를 데려온 것이다. 바로 전해인 95년에 미네소타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고졸 신인 케빈 가넷을 뽑았고 그가 잘 성장하고 있긴 했지만 고졸 신인들에 대한 주가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모험을 건 것은 대단한 안목. 물론 97시즌에 가넷이, 98시즌에 코비가 올스타에 뽑히고 두 선수가 연달아 슈퍼스타급으로 성장세가 가팔랐던데다, 2년차까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트레이시 맥그레디까지 3년차에 포텐이 터지면서 당시 리그는 고졸스타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이는 01 드래프트에서 절정에 달해 사상 최초의 고졸 전체 1번 지명선수인 콰미 브라운,2픽 타이슨 챈들러, 4픽 에디 커리까지 톱 5중 3명이 고졸로 채워지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재앙의 루키시즌을 보냈다.
  12. [12] 굳이 코비와 트레이드하지 않았더라도 이후 샤킬 오닐을 영입한 레이커스 입장에서 어차피 디박은 결과적으로 정리해야 할 선수였다. 사실상 잉여전력을 내보내고 리그의 탑 슈퍼스타를 데려온 셈인데, 이 탓에 코비와 디박의 트레이드는 최악의 트레이드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13. [13] 이것을 두고 한 기사에서는 '24번이 23번을 눌렀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14. [14]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한 선수기 때문에 (드래프트 당시 만 17세에 불과하다. 데뷔 경기 기준으로 18세 72일로 역사상 세번째로 어린 선수) 한때 카림 압둘자바의 기록을 노려볼 만한 선수로 꼽혔지만 부상이 은근히 잦고 심지어 2012-2013시즌에 커리어에서 가장 심한 부상을 당해 바로 다음시즌을 거의 통으로 쉬면서, 압둘자바는 커녕 칼 말론의 기록도 어렵게 되었다. 15시즌에 코비는 35경기, 22.3점을 기록했는데, 말론의 기록에 도달하려면 다음 두 시즌간 '''단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82경기 전부 출장해 평균 23.55점을 넣어야 한다. 코비가 지난 두 시즌간 총 41경기 출장할 정도로 부상이 잦다는 점, 올해 난사라고 욕을 먹을 정도로 슛을 많이 던지면서도 (리그 1위) 22점을 조금 넘긴 점, 내년에 코비는 만 37세이자 통산 20번째 시즌을 맞이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말도 안되게 후하게 잡아서 한 시즌에 1,500점(올 시즌 평균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67경기나 뛰어야 한다) 넣는다고 쳐도 앞으로 세시즌은 더 뛰어야 말론의 기록을 깰 수 있다. 물론 지난 두 시즌간 코비는 865점을 기록했다는 걸 생각하면 한 시즌 1,500점도 말도 안되게 무리한 가정. 2016년을 끝으로 코비가 더 이상 뛰지 않을 의사를 밝히면서 말론의 기록을 깨는 건 사실상 절대 불가능할 듯 하다. 15시즌 종료시점 기준으로 코비와 말론의 득점 차이는 4446점인데, 이를 15-16 시즌 한 시즌만에 뛰어넘기 위해서는 다음 시즌에 전 경기 출전한다는 가정하에 경기당 54.22점(...)을 기록해야 한다. 참고로 코비의 한시즌 평균득점 중 가장 높은건 35.4점이고, 역사상 가장 높은 한 시즌 평균득점은 윌트 체임벌린의 50.4점이다.
  15. [15] 18세에 데뷔한 코비와 달리 22세였던 피셔는 대학을 졸업하고 왔고 당연히 훨씬 더 완성된 기량과 신체를 갖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르브론 제임스같이 고등학교부터 이미 근육질 몸을 만들어오는 선수들이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코비나 케빈 가넷, 트레이시 맥그레디같은 고졸들은 운동능력은 대단해도 근육이 부족한, NBA급은 아닌 몸이 대부분이었다.
  16. [16] 4쿼터 마지막 89 : 89 동점 상황에서 에어볼, 연장전 93 : 96의 약 40초가 남은 상황에서 3점 에어볼, 그리고 곧이어 다시 7초 남기고 3점 에어볼을 날렸다(...) . 다른 선수도 아니라 풋내기에 불과한 고졸 루키가 무리하게 영웅이 되려 시도하다 던져버린 경기였기에 이 때 코비는 정말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어떻게 보면 코비의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플레이 스타일은 이때부터 시작이었을지도. 당시 참사(...)의 현장.
  17. [17] 코비가 존스를 벤치로 밀어낸건 아니고 첫 20경기는 존스 또한 코비와 함께 주전으로 출장했으나 이후 샬럿으로 트래이드된다. (상대는 당시 정상급 슈터이자 스코어러이던 글렌 라이스) 존스는 이후 샬럿에서 잔여경기를 모두 주전으로 출장한다. 존스는 99-00시즌 동부 올스타 주전으로 선발되어 올스타전에서 코비와 동서부 주전가드로 맞붙는다.
  18. [18] 코비의 8번 저지를 입고 사진찍기도 했고, 태어날 아들 이름을 "ShaqKobe"로 하겠다는 립서비스도 하기도 했다(물론 실제로 그리하지는 않았다). 샼코비는 좀 오버긴 하지만 절친한 동료들끼리 상대의 이름을 따 자식의 이름을 짓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레전드 빌 월튼은 친한 동료 모리스 루카스의 이름을 따 아들 이름을 루크로 지었다. 이 아들이 코비의 동료로 상당 기간 뛰었던 루크 월튼이자 현 레이커스 감독
  19. [19] Showboat는 과시하다라는 뜻도 있는데 이는 부정적인 의미. 초창기 화려하지만 조금은 무리한 플레이를 간혹 보여준 코비를 비꼬는 별명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누구를 showboat라고 하거나 showboating이라고 하면 "잘난척"이란 의미로 통용된다
  20. [20] 1위로는 윌트 체임벌린의 한 경기 100득점.
  21. [21] 하지만 이 부상 이후 예전의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2. [22] 참고로 위저즈 시절 마이클 조던의 경우, 팀 동료들이 코비 못지 않게 안습이었지만 03 시즌 초반 후보 역할을 자처한 적도 있다. 결국 상상 이상으로 팀이 답이 없어서 주전으로 복귀하긴 했지만.
  23. [23] 참고로 슛도사 래리 버드도 이런 식의 슛을 던져 성공시킨 적이 있는데 이때는 주변에 동료도 없는데다 이미 승부가 난 경기 막판이라 장난으로 던진거고 코비의 경우 지고있는 상황에서 던진 것.
  24. [24] 마이클 조던의 경우, 커리어하이가 21.2이며, 20을 넘긴 시즌이 세번, 15을 넘긴 시즌이 10번에 달한다. 윈셰어로 리그 1위를 차지한 적은 9번.
  25. [25] 일반적인 팀 스포츠와는 다르게, 농구는 팀을 한 선수를 중심으로 전략을 짜고 그와 맞는 선수들을 영입한다.대표적으로 위에 언급된 아이버슨이 00-01시즌 철저하게 자신에 맞춰진 맞춤형 동료들을 데리고 팀을 파이널에 진출시켰다.
  26. [26] 조던과 피펜 그리고 코비의 팬으로 유명한 월간농구잡지 점프볼의 손대범편집장마저도 도대체 무엇을 더 증명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쉴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다.
  27. [27] 3쿼터 8분 35초를 남기고 45도 지점에서 뱅크샷을 시도했으나 공이 그대로 링과 백보드 사이에 끼는 장면도 나왔다.
  28. [28] 이 당시 레이커스는 2승 12패 중이었다.
  29. [29] 이전 문서에서 전·현직 NBA 선수들의 블로그라는 설명이 있었는데, 플레이어 트리뷴은 MLB의 전설 데릭 지터가 주도하여 만든 사이트로 NBA 뿐 아니라 모든 미국 프로스포츠 리그 선수들의 글이 올라온다.
  30. [30] 야투율이 2/15였다... 코비의 난사는!!! 끝나지 않아!!!!
  31. [31] 참고로 에어볼이 나온이후 레이커스는 멸망했다 폴 조지가 자유투를 던지게되었는데 사실상 그 코비가 말아먹은 역전의 찬스 이후 레이커스가 할수있는건 자유투작전외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폴 조지가 자유투를 실패했을땐 이미 인디애나가 승기를 잡은 상황이었고 경기는 레이커스의 패배로 끝나고말았다.
  32. [32] 여담으로 워싱턴 홈관중들은 마지막 원정을 온 코비가 클러치 슛을 연거푸 집어넣자 기립하는 등 좋아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33. [33] 현재 유튜브 나이키 채널에서 영상이 삭제 되어있는 듯 하다.
  34. [34] 이로써 코난사라는 그의 별명답게 '83년 이후 한경기 야투시도' 단독 1위에 올랐다.
  35. [35] 한국나이 39살 노장의 은퇴경기 기록이다... 그것도 15-16 시즌 단일경기 최다득점 기록...
  36. [36] 이날 중계를 하고있던 해설 가황박세운 기자는 그 패스가 마치 후배들에게 미래를 맡긴다는 의미같이 느껴졌단 말을 남겼다. 여담으로 박세운 기자는 손대범과 마찬가지로 레이커스와 코비의 오래된 골수팬이다.
  37. [37] 이 날은 샤킬 오닐을 비롯한 NBA 과거 레전드들과 함께 레이커스의 열혈팬 잭 니콜슨JAY Z, 데이비드 베컴, 스눕 독을 비롯한 많은 스타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38. [38] 다만 유타 언론들은 이날 코비의 은퇴를 축하하긴 했지만 대놓고 하는 접대 농구 + 접대 농구를 하는 유타 선수들을 꽤나 고까운 기사로 디스했다. 심지어 NBA는 억지드라마를 너무 좋아한다, 라고 비판한 패널도 있을 정도. 이전 글에는 의혹이라 했지만 워낙 빅네임의 은퇴라 묻혔을 뿐, 억지감동 만들기와 그 해의 철벽 유타수비가 코비를 아예 슛 쏘게 놔뒀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논란이 되는 경기였다.
  39. [39] 이해에 레이커스가 영입한 선수는 트래이드로 호세 칼데론, 코리 브루어, 타일러 에니스, 드래프트로 브랜든 잉그램, 이비카 주바치가 있는데, 이중 풀타임 주전은 없으며 그나마 잉그램이 79경기에서 40경기 주전으로 뛰며 9.4점 4리바운드 기록한게 가장 좋은 활약이었다. 나머지 선수들의 출장시간은 전부 10분대였다.
  40. [40] 그래서 붙은 별명이 코두순코영욱(...).
  41. [41] 슬램덩크의 북산대 풍전전 서태웅의 눈을 가격하는 남훈을 모션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42. [42] 일종의 헐리우드 액션, 이상민의 "만세"를 생각하면 된다.
  43. [43] 사실 처음 3핏은 오닐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특히나 3핏 중 처음 우승은 그야말로 오닐과 아이들이라 해도 무방할 수준이었고, 필라델피아와의 결승에서 아이버슨은 평균 35.6득점을 기록했다. 그래도 네츠와의 결승전에서는 코비 역시 엄청난 야투 성공률과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면서 4대0으로 승리했다.
  44. [44] 물론 2번 포지션에서 포스트업으로 수비수를 압살하던 조던이 힘만으로 밀어내는 것은 당연히 아니며, 그의 스킬셋은 다양하기보다는 간결하고 효율적인 쪽이라 스킬만 따져도 우열을 매길 순 없다. 다만 스킬의 다양함에서 코비가 우위임은 필 잭슨도 인정한 사실. 완성도에서 이긴다고 한 적은 없다 야투율 차이만 봐도 조던이 더 효율적인 득점원임은 자명하다. 실제로 필 잭슨은 레이커스를 감독할 당시 두 선수를 비교해달라고 하면 "코비는 조던보다 스킬이 다양하다," "조던과 피펜의 역할을 둘 다 했다"는 식으로 애매하면서도 자기 팀의 스타를 띄우는 평가를 했었다. 그러나 은퇴 이후 내놓은 자서전에서 두 선수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면서 마이클 조던이 더 훌륭한 (superior) 리더에 더 카리스마적이고 활발한 인물이며, 수비력도 단연(no question) 더 뛰어나며 득점원으로서도 더 뛰어나다고 밝혔다. 잭슨: 마이클이 너보다 더 뛰어난게 두개 있어! 수비와 공격이야! 코비:.... 또한 슛이 안 들어갈때 조던은 무리해서 공격하지 않고 다른 방식(수비/패스/스크린 등)으로 팀에 공헌하는데 코비는 슛감이 돌아올때까지 계속해서 슛을 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부분 전문가들은 당연하다는 평을 내렸으며, 코비빠로 유명한 스티븐 A 스미스도 이를 인정했으나 그만큼 조던에 접근했다는 것을 높게 평가했다. 조던빠인 스킵 베일리스는 그야말로 무한찬양 모드... 반면 코비는 서로 스타일이 다른 선수들의 비교라며, "MJ가 샤크와 함께 뛰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언급했다. (조던은 시카고 시절 6시즌이나 팀내 유일한 올스타였다. 반면 코비는 올스타급 동료와 함께하지 않은 시즌은 05,06,07 세 시즌이다. 08시즌에도 올스타전에 나간 유일한 레이커스 선수였으나, 이때 영입한 파우가솔은 누가 봐도 올스타급이었으니...) 사실 자신이 뛴 2012올림픽팀이 1992년 드림팀을 이긴다는 망언발언을 할 만큼 자존심이 강한 코비가 상대가 조던이라도 자신이 떨어진다는 걸 순순히 인정할리는 없다. 이에 필 잭슨은 "두 선수를 감독한게 큰 행운이었다"며 수습... 그러나 최근 인터뷰에서 노력(work ethic)에 관해서는 코비가 조던조차 능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마이클은 동의 안하겠지만요"라고 덧붙이면서...근데 노력을 더 하는데 격차를 못 따라잡으면 더 굴욕이 아닌가
  45. [45] 한마디로 빠가 까를 만든다의 전형적인 케이스. 사실 팬덤이 크면 클수록 이와 비례해 무개념팬들이 많은 건 어디에서나 당연하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규모의 팬덤이 있었던 건 조던과 코비 정도였는데(아이버슨과 티맥 등도 인기가 많았지만 코비 팬들은 규모가 더 컸다), 은퇴선수인데다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여서 비교적 다른 팬덤과의 충돌이 적었던 조던팬덤(조던팬들이 주로 충돌했던 건 코비팬들이었다. 주 원인제공자가 누구였냐는 의견이 갈리므로 각자 해석에 맡긴다.)과 달리 코비는 다른 슈팅가드들과 같이 성장하며 실시간으로 계속 비교되는지라 누가 더 나은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코비가 맹활약을 하면 거대 팬덤으로 인해 NBA 게시판이 거의 마비될 정도로 비슷한 내용의 글이 도배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무개념 팬들로 인해 다른 팬덤이 피해를 보면서 코비 팬덤 자체를 적대시하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코비 팬들까지 욕을 먹으며 다른 팬덤을 적대시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많은 NBA 커뮤니티에서 코비팬 vs 非코비팬들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이게 폭발한 사례로 2000년대 후반 Daum의 I Love NBA 카페에서 일어난 서브카페 사건으로 I Love NBA의 코비팬들 중 일부가 자신들만의 카페를 만들어서 자신들과 충돌이 있었던 다른 회원들을 노골적으로 뒷담화한 것. 이 중에는 특정 회원의 실제 ID를 거론하며 병x같다, 게이같다는 등 인신공격성 댓글도 다수 있었다. 이 사실이 본 카페에 알려지면서 해당 레이커스 팬들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단체 뒷담화의 피해자가 된 회원 중 일부는 그 충격에 카페를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떠났고 가해자들 중 일부는 활동중지, 일부는 추방되었다. 잘못된 빠심과 편가르기가 만들어낸 추악한 사건.
  46. [46] 그럼에도 NBA 올 디펜시브 팀은 연금받듯이 타버려서 디펜시브 팀의 권의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아졌다.
  47. [47] 물론 이건 조던이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거지 코비가 못하는게 결코 아니다. 코비 나이 때면 이렇게 에너지가 떨어지는게 정상이다. 포인트는 애초에 수비력 차이가 큰 두 선수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게 적절치 못하다는 것.
  48. [48] 스눕독이 이 그룹의 멤버인데, 아무래도 프로젝트형 그룹인듯 하다.
  49. [49] 게다가 원래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리그에서 더 뛰어난 리그의 슈퍼스타를 영입하려면 그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줘서 꼬셔와야 한다. LA 갤럭시 시절 데이빗 베컴이 말도안되는 수준의 연봉을 받은 것처럼. 게다가 미국과 영국/스페인의 축구 수준 차이보다 미국과 한국의 농구 수준 차이가 훨씬 크다는 것, 또 NBA 연봉의 최소 두 배 이상은 줘야 고려해볼만하다.
  50. [50] 경기 도중 상대팀인 불스의 조던으로부터 '어이 애송이 그런식으로 하면 안되지'라는 둥으로 맞붙을 때마다 플레이에 대해서 이것저것 충고를 받았다는 모양이다. 암만 생각해도 조던의 트래쉬 토크였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코비에게는 순수한 조언으로 들렸던 모양(…).
  51. [51] 그런데, 저 기록은 2위다. 1위는 윌트 체임벌린이 기록한 100점. 그런데 더더욱 무서운 사실은 코비가 저 기록을 달성하기 전에 윌트체임벌린이 각각 78점, 73점으로 2위와 공동 3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52. [52] 그러니까 조던과 비교하면 조던이 아니라 피펜에 가까웠다는 소리. 그나마 쓰리핏중 1번정도가 샤크와 거의 동등한 수준의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그것도 서부플옵에 한정된 얘기지 파이널 활약은 넘사벽으로 샤크가 압도적이다.
  53. [53] 코비 본인 말로는 한번 훈련할 때마다 약 1,500여개를 던진다고 한다.
  54. [54] 만약 실제로 붙으면 코비는 전성기의 마이클 조던과 매치업되어 거의 활약을 못 할 것이다. 둘 다 전성기라도 딸리는데 29살의 조던과 34세가 다 되어가는 코비라면 상대가 될리가...이 시합에서라면 노쇠한 버드 대신 스카티 피펜이 주전으로 나올 확률이 높으나, 르브론과 듀란트 상대라면 아무리 피펜이라도 무리다. 그러나 이 라인업에서 가장 맹활약을 할 2012년 선수는 바로 러셀 웨스트브룩이다. 라인업을 통틀어 190이하가 존 스탁턴 한 명 뿐이었던 드림팀 1의 가장 큰 약점은 작고 빠른 가드였는데, 이 때문에 대학선발팀과의 경기에서 듀크의 바비 헐리에게 털렸었다. 게다가 185인 존 스탁턴은 웨스트브룩의 파워를 당해낼 수 없다. 만약 실제로 붙는다면 그나마 잘 막아낼 선수는 조던이다. 이 때문에 종합적으로 보면 조던-드렉슬러-피펜의 주전을 세우고 조던을 웨스트브룩에, 드렉슬러를 코비에 붙히는게 가장 효율적이다. (드렉슬러는 전성기 조던에게도 어느 정도 비비던 선수였고, 해당 시즌 MVP 투표 2위였다) 사실 아무리 1,3번에서 우위를 점해도 2번에서 드림팀이 절대우세고, 포스트에선 비교가 민망한 수준이기 때문에 전력차가 매우 심한 건 맞다.
  55. [55] 하지만 룰이 지역방어라면 어떨까. 사실상 시대가 다르다보니 실제 매치업을 비교해보는 것은 무의미한 가정이긴 하다. 다만 커리어로 봤을때는 92 드림팀이 우위인것은 확실. 다만 지역방어는 일부 팬들의 오해와 달리 현대 NBA에서 일부 팀들이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애초에 지역방어는 로우포스트에서 빅맨들의 포스트업을 상대로 효과적이지 돌파형 스윙맨들이나 스윙맨들의 포스트업을 상대로는 거의 효용성이 없다. 대표적인 돌파형 득점원인 아이버슨은 지역방어 전후로 득점 차이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드림팀의 센터들은 느리고 포스트업만 가능한 선수들이 아니라 페이스업, 중거리슛, 볼핸들링 모두 능한 선수들이다. 또한 현대농구에서도 포스트업이 능한 정통센터를 스몰라인업으로 막는건 극히 어렵다. 로이 히버트의 인디애나 시절에 마이애미가 그를 못 막은 걸 생각해보자. 지역방어가 무슨 만능키도 아니고, 애초에 NBA 선수들처럼 개인기와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은 지역방어로 못 막는다. 게다가 수비3초룰 때문에 완전한 2-3존도 못 써서 지역방어로 센터를 봉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NBA에서 지역방어를 주로 쓰는 팀은 없다. 모든 팀의 베이스는 맨투맨을 기반으로 한 팀수비이며, 빅맨들의 헷지와 리커버리, 로테이션을 이용한 팀수비를 하는데 이건 90년대 시카고나 시애틀, 닉스의 수비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팀수비 전술이 시대에 따라 발전하긴 했지만 현재 팀수비는 90년대 중후반과 크게 다를게 없으며, 지역방어 도입이 수비전술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것도 아니다. 지역방어 도입전에 은퇴한 마이클 조던이 지역방어 도입 후에 복귀했어도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걸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대가 다르다지만 당시 드림팀은 커리어 뿐 아니라 실제 실력 자체에서 2012팀보다 월등했다.
  56. [56] 샤킬 오닐하킴 올라주원이 가세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인 드림팀3가 센터진은 훨씬 강하기 때문에 역대 최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92년이 바클리의 전성기이기 때문에 파워포워드진은 더 강했다고는 볼 수 있다.
  57. [57] 당연한게 저건 조작을 하지 않고 직접 스턴트를 하는게 멍청한 짓이다. NBA 슈퍼스타들은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만큼 몸이 재산이고, 어쩌다 다치면 팀에게도 엄청난 손해를 끼친다. 실제로 마이클 조던이 은퇴 후 오프라 윈프리쇼에 나와서 한 말에 따르면 이들의 계약서에는 오토바이를 못 타는 건 물론이고 스키도 못 타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만약 금지조항에 있는 행위를 하다 다치면 팀은 연봉지급의 의무가 없다) 돈도 문제지만 저런 스타들이 다치면 팀 전력에도 크나큰 지장을 주고 그들을 보기 위해 비싼 돈 주고 오는 팬들에게도 민폐다. 그런데 코비가 전문 스턴트맨도 아닌데 저런 위험한 짓을 굳이 할 이유가 1도 없다. 아무리 코비가 운동능력이 뛰어나도 막말로 순간 삐끗하면 크게 다쳐서 장기결장하거나, 잘못하면 은퇴해야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바보짓을 광고 하나 찍자고 굳이 할리가 있는가?
  58. [58] 이 때 아이재아 토마스가 자신에게 전화해 물어본 걸 언급하고 그를 극찬한다.
  59. [59] http://bleacherreport.com/articles/2748354-kobe-bryant-coaches-daughters-basketball-team-runs-triangle-offense
  60. [60] 디자이너 Eric Avar는 코비가 신발을 제작하는 과정에 점점 더 많이 참여를 할수있도록 도와주었고, 코비는 항상 "나는 가장 가벼운 농구화를 원한다"는 어필을 해왔다. 사적으로도 많이 친했는데, 서로의 취미생활이나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이 비슷해서 디자인 작업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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