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야마구치

크리스티 야마구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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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U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 챔피언

질 트레나리
(1990)

크리스티 야마구치
(1991, 1992)

옥사나 바이울
(1993)


ISU 주니어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 챔피언

신디 볼츠
(1987)

크리스티 야마구치
(1988)

제시카 밀스
(1989)


ISU 주니어 세계선수권 페어 챔피언

엘레나 레오노바 / 겐나디 크라스니스키
(1987)

크리스티 야마구치 / 러디 갈린도
(1988)

예브게니야 처니쇼바 / 드미트리 서키노브
(1989)


전미 피겨 선수권 여자 싱글 챔피언

토냐 하딩
(1991)

크리스티 야마구치
(1992)

낸시 케리건
(1993)


전미 피겨 선수권 페어 챔피언

질 왓슨 / 피터 오퍼가드
(1987)

크리스티 야마구치 / 러디 갈린도
(1989, 1990)

나타샤 쿠치키 / 토드 샌드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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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금메달 획득 당시

이름

크리스티 츠야 야마구치
Kristi Tsuya Yamaguchi

국적

미국

출생

1971년 6월 12일(48세)
캘리포니아 주 헤이워드

신체

151cm

종목

피겨 스케이팅

소속

St. Moritz ISC

페어 파트너

러디 갈린도

가족

배우자 브렛 헤디컨[1](1970년 8월 10일 생(49세), 2000년 결혼-현재)
장녀 키이라 키요미(2003년생)
차녀 엠마 요시코(2005년생)

링크

1. 소개
2. 생애
3. 선수 경력
3.1. 1984-85 시즌
3.2. 1985-86 시즌
3.3. 1986-87 시즌
3.4. 1987-88 시즌
3.5. 1988-89 시즌
3.6. 1989-90 시즌
3.7. 1990-91 시즌
3.8. 1991-92 시즌
4. 평가
5. 은퇴 이후
6. 수상 기록

1. 소개

일본계 미국인 前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2. 생애

1971년 캘리포니아에서 일본계 이민 2세인 치과의사 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조부모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진주만 공습 직후에 실시한 일본인 격리 정책으로 수용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3. 선수 경력

어린 시절 학교 클럽 활동의 일환으로 발레피겨 스케이팅을 처음 접했다.

3.1. 1984-85 시즌

루디 갈린도와 페어 팀을 결성해 1985 전미 주니어선수권에서 5위를 기록했다.

3.2. 1985-86 시즌

1986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5위를 하고 1986 전미 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했다.

3.3. 1986-87 시즌

1986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5위를 하며 시니어 데뷔를 했다. 1986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고 1987 전미선수권에서는 5위에 올랐다. 1987 전미 주니어선수권 싱글 부문에도 참가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3.4. 1987-88 시즌

198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 참가해 싱글과 페어 부문에서 모두 우승했다. 1988 전미선수권에서는 페어 5위, 싱글 10위를 기록했다.

3.5. 1988-89 시즌

페어 부문으로는 1988 NHK 트로피 동메달, 1988 스케이트 일렉트릭 챌린지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9 전미선수권에서 우승하였으며 1989 세계선수권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싱글 부문으로는 1988 스케이트 아메리카 동메달, 1988 NHK 트로피 은메달을 획득하고 1988 전미선수권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6위를 기록했다.

3.6. 1989-90 시즌

페어 부문으로는 1989 스케이트 아메리카 은메달, 1989 NHK 트로피 4위를 기록했다. 1990 전미선수권에서는 2연패를 달성하고 1990 세계선수권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싱글 부문으로는 1989 스케이트 캐나다 금메달, 1989 NHK 트로피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0 전미선수권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고 세계선수권에서는 4위에 올랐다. 시즌이 끝난 이후로는 싱글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 결정은 매우 탁월한 것으로, 싱글에만 집중하기 시작하자 수많은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었다.

3.7. 1990-91 시즌

1990 스케이트 아메리카, 1990 네이션스 컵, 친선경기에서 모두 우승했다. 1991 전미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1 세계선수권

1991 세계선수권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세계 정상급의 스케이터로 거듭났다. 또한 동료 토냐 하딩, 낸시 케리건과 함께 포디움 스윕을 했다.

3.8. 1991-92 시즌

1991 스케이트 아메리카와 1991 인터내셔널 드 파리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2 전미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이토 미도리와 맞대결을 펼쳐 금메달을 땄다. 당시 여자 싱글에서는 초고난도 기술인 트리플 악셀을 자랑하는 이토 미도리와 토냐 하딩이 있었지만, 우승한 건 야마구치였다. 안정적인 착지와 기술, 탁월한 예술성으로 쇼트와 프리에서 차례로 1위를 차지한 결과였다. 이는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자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첫 사례이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야마구치 본인도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는 경쟁자들에게 위협을 느끼긴 했다고 언급했다. 이토가 1989년 여자 선수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면서 피겨 스케이팅의 판도를 바꿔놓는 수준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야마구치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트리플 악셀을 연습했다고 한다.[2] 다만 트리플 악셀이 노력만으로 성공시키기에는 워낙 힘든 기술이기에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상에서도 스텝 아웃이 되는 등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보여진다.

그럼에도 워낙 착지가 훌륭하고, 전체적으로 약점[3]이 없는 것이 강점이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였기에 자신의 대표 강점인 예술성과 함께 다른 고난도 기술들을 준비했고, 대표적인 것이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이었다.

쇼트를 성공적으로 끝내면서 1위에 올랐다. 프리에서는 초반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을 성공시키면서 이대로 클린에 성공하나 싶던 찰나에 후반의 트리플 룹 점프에서 손을 짚고, 트리플 살코를 더블로 수행하면서 뒤에 이어지는 선수들의 경기에 메달 색깔이 결정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이토도 트리플 점프를 더블로 다운 그레이드시키고, 트리플 악셀 점프에서 넘어지는 등의 실수를 보였다. 다만 후반에 다시 시도하여 성공하기는 했다. 이로써 야마구치는 쇼트와 프리를 모두 1위로 마무리하면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녀의 프리 프로그램이였던 <말라게냐>는 현재까지도 수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야마구치의 올림픽 금메달 수상은 김연아와 유사점이 있는데, 둘 다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하고 직후에 열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또한 쇼트와 프리 모두 1위, 프리 1위이기도 했다. 야마구치 이후로 올림픽 여자 싱글에서는 쇼트에서 1위를 하면 우승을 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생겼는데[4] 이를 깬 것이 김연아이다. 또한 두 선수 모두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을 성공시키면서 트리플 악셀을 이겼다. 1992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했고,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4. 평가

동시대 이토 미도리토냐 하딩 등과 더불어 여자 싱글의 기술 상향화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토나 하딩과 같이 트리플 악셀을 뛰는 선수들에 가려져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은 현 채점제도에서 기본점만 10.3점에 달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그녀를 비롯해 1990년대의 스타 선수들이 은퇴한 뒤로 여자 피겨계는 기술 측면에서 발전이 부진해져서 고난도 3-3 콤비네이션을 시도하는 선수들이 적어졌고,[5] 2010년이 돼서야 1992년 올림픽 수준의 기술과 도전성을 보여주게 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의 네메시스 점프를 잘 시도하지 않는 반면 그녀는 약점인 데에도 불구하고 트리플 살코를 프로그램에 넣는다거나, 트리플 악셀을 연마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등[6]의 도전정신을 보여 진정으로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선구자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7]

5. 은퇴 이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지 얼마 안되어 프로로 전향했고, 2000년대 초에 은퇴했다. 프로 경기에서도 수많은 우승을 거두면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 만약 그녀가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면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우승하여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의견이 있을 정도의[8] 실력이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 은퇴한 이후인 2002년에도 무려 30대의 나이에 아이스 쇼에서 트리플 점프를 선보이는 등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아시아계 최초[9]의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챔피언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하자 아시아계 미국인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시아계 외의 미국인에게 존경받는 선수이며, 올림픽에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이후의 공개 활동과 사생활에서 모두 모범적인 모습으로 좋은 평판을 받았다. 또한 백인들이 판을 치던[10] 피겨 스케이팅에서 이토 미도리와 함께 아시아계 선수의 활약을 이끌었고, 이후 미셸 콴과 김연아 등 세계 정상급의 스케이터 중 아시아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선구자 역할을 해낸 셈이다.

선수 생활을 끝낸 이후에도 댄싱 위드 더 스타[11]를 비롯한 TV 프로그램 출연, 동계올림픽 해설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6. 수상 기록

여자 싱글

올림픽

금메달

1992 알베르빌

여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1 뮌헨

여자 싱글

금메달

1992 오클랜드

여자 싱글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1988 브리즈번

여자 싱글

페어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1988 브리즈번

페어

동메달

1987 키치너

페어


  1. [1] 미국의 前 아이스하키 선수이다.
  2. [2] 이를 담은 연습 영상도 남아있다.
  3. [3] 다만 트리플 살코가 그녀의 네메시스 점프였고, 실전에서도 성공률이 비교적 낮았다. 올림픽에서도 트리플이었던 점프를 더블로 수행했다. 트리플 살코를 성공시킨 대표적인 경기가 1992 전미선수권이다.
  4. [4]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쇼트 1위 낸시 케리건, 2위 옥사나 바이울 / 프리 1위 옥사나 바이울(금), 2위 낸시 케리건(은)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 1위 미셸 콴, 2위 타라 리핀스키 / 프리 1위 타라 리핀스키(금), 2위 미셸 콴(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 1위 미셸 콴, 2위 이리나 슬루츠카야 / 프리 1위 사라 휴즈(금), 2위 이리나 슬루츠카야(은). 미셸 콴은 동메달을 수상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 1위 사샤 코헨, 2위 이리나 슬루츠카야 / 프리 1위 아라카와 시즈카(금), 2위 사샤 코헨(은)
  5. [5] 타라 리핀스키가 트리플 룹-트리플 룹 점프를 성공시켜 3-3을 시도하지 않은 미셸 콴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콤비네이션마저 야마구치의 3-3보다 점수가 낮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사라 휴즈는 트리플 살코-트리플 룹, 트리플 토룹-트리플 룹의 2개의 3-3 콤비네이션을 성공시켰다. 이마저도 트럿-트토보다 점수가 낮다. 은메달리스트인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콤비네이션으로 유명했지만 올림픽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다. 여담으로 (트리플 악셀이 제외된) 3-3 콤비네이션 점프 중 최고 난이도인 트럿-트룹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챔피언인 알리나 자기토바가 성공시켜 그녀를 1위에 올려놓았다. 올림픽에서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은 2010년 김연아가 성공시킬 때까지 아무도 올림픽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6. [6] 김연아도 트리플 악셀을 열심히 연습한 바가 있다. 야마구치와 마찬가지로 성공하지는 못해서 이후 3-3 등 다양한 고난도 기술을 정말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데 주력했다.
  7. [7] 물론 안정적인 프로그램을 선보여 득점을 해야하는 피겨 경기의 특성 상 네메시스 점프를 빼는 것은 문제점이 되지 않는다. 김연아도 그녀의 주특기 점프인 트리플 룹(트리플 룹을 하다가 크게 부딪힌 적이 있어서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한다.)을 성공률의 문제로 실전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 거 안 해도 최고인데 뭘 야마구치가 이 부분에서 높게 평가받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점프를 구사하려는 그녀의 노력과 도전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8. [8] 근데 이건 알베르빌 대회에서의 라이벌인 이토 미도리에 대해서도 나오는 평가다. 둘 다 또 나왔으면 역사에 남을 리턴매치가 되었을 뻔했다.
  9. [9] 아시아 '국적'으로 피겨 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한 남녀 첫 사례는 일본의 아라카와 시즈카, 하뉴 유즈루이다.
  10. [10] 출신 국가나 인종에 기대어 과분하게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오늘날에도 피겨 스케이팅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11. [11] 여기서도 우승했다. 포디움에 알박는 습관 어디 안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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