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어 모렐

이름

테오도어 모렐
(Theodor Gilbert Morell)

연도

1886년 7월 22일 ~ 1948년 5월 26일

국적

나치 독일

1. 개요
2. 생애
2.1. 출생과 성장
2.2. 나치당 활동
2.3. 최후
3. 그가 히틀러에게 처방했던 약
4. 여담

1. 개요

아돌프 히틀러의 주치의, 그리고 히틀러를 마약중독자로 만든 걸로 유명한, 제대로 된 학위와 면허가 있는 돌팔이다. 그러나 그는 나치 독일이 자행했던 악행에 전혀 동조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며, 분명 의사로선 돌팔이었지만 피해자가 생체실험을 당해도 싼 인물인 데다 모렐을 기용하고 신임한 게 본인이니만큼 순전히 자업자득인 관계로, 여느 돌팔이들과는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2. 생애

2.1. 출생과 성장

모렐은 초등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그르노블과 파리의 산부인과에서 공부해서 1913년에 박사 학위를 땄다. 1차대전 때는 군의관으로 종군했으며, 종전 후 베를린에서 '구식 치료법에 얽매이지 않는 의사'로 명성을 얻었고, 페르시아루마니아의 국왕이 그를 주치의로 두길 바랐지만 거절했다. 잘했다 모렐은 후일의 노벨상 수상자 일리야 메치니코프에게 배움을 받기도 하고, 여러 대학의 교수로 활동했으며, 규모가 큰 제약회사의 대주주였고, 1936년에는 베를린의 번화가 쿠담 거리에서 잘 나가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요약하면 평범한 의사의 출세 이야기이겠지만, 어느 날 그에게 아주 특별한 인생의 전환점이 생겼다.

2.2. 나치당 활동

모렐은 1933년에 나치당에 가입했다. 그 후 아돌프 히틀러의 사진사인 하인리히 호프만을 치료해주면서 인맥을 쌓기 시작, 호프만과 에바 브라운에게 히틀러의 주치의 자리를 소개받는다. 당시 히틀러는 피부 발진과 위장 가스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모렐은 여러 의약품을 조합하여 히틀러를 치료하는 데에 성공했다. 대다수의 나치 지도자들은 그를 높게 평가했으나, 헤르만 괴링하인리히 힘러는 그가 돌팔이임을 직감했다고.[1] 정확한 판단 1936년 12월 31일 히틀러는 모렐을 자신의 공식적인 주치의로 임명했다.

한편 후술할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처방전들과는 달리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린 적도 있는데, 예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체코에서 영국 공작원에게 피습당해 심한 패혈증으로 중태에 빠지자, 모렐은 당시 독일에서 개발한 항생제인 술폰아미드의 처방을 권했다. 당시 독일에선 페니실린을 구할 수 없어서 대신 술폰아미드를 택한 것이다. 기술의 미비로 페니실린의 개발지인 영국 본토에서도 페니실린은 구하기 힘들었다. 현재에도 패혈증이 확실한 중환자에게 각종 항생제를 때려부어 수술을 진행하고 경과를 지켜보는 만큼, 이 처방 자체는 의외로 정상이었다. 하지만 하이드리히의 치료를 맡았던 카를 게프하르트가 이 처방을 무시하였고, 결국 하이드리히는 패혈증으로 사망했다.[2]

모렐은 이후 친위대 출신의 다른 주치의인 카를 브란트와 경쟁했는데, 히틀러는 모렐의 편을 자주 들어주었다. 이게 얼마나 심했냐면 1944년 10월 5일에 카를 브란트가 모렐의 약 처방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내자 히틀러는 이 의견서를 보고 역으로 카를 브란트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을 정도였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를은 아예 총통부 의사직에서 해임당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멸망테크를 타게 된다.

이렇게 모렐은 히틀러 옆에서 치료 활동을 했고, 1944년에 7월에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당시에도 모렐은 각종 약을 써서 히틀러의 기운을 차리게 했다. 이후 히틀러가 최후를 맞이하기 전까지 벙커에 있던 모렐이지만 언제까지 있었는지는 서술이 엇갈린다. 요하임 c 페스트 히틀러 평전에 의하면 1945년 4월 20일에 히틀러는 그의 도움이 이제 없어도 된다고 하며 그를 총통 방공호에서 떠나게 해주었다. 그가 얼마나 히틀러에게 신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가 신뢰를 받은 이유도 간단하게 추측할 수 있다. 히틀러는 앞서 언급한 암살 미수사건 이후 말년으로 갈수록 병적으로 사람들을 의심했다. 자신 주위의 모든 사람을 의심한 덕분에 히틀러는 나치 초기부터 동고동락한 괴링, 힘러 등의 측근들이 아니라 권력 서열의 저 아래에 있었던 해군 원수 카를 되니츠 제독을 자신의 후계자로 선정했다. 측근들이 야심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정치적 욕심을 보이지 않고 자기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렐은 히틀러에게 신뢰할 만한 몇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모렐이 맡은 임무는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것이다. 신뢰를 안 하려 해도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언 커쇼 책에서는 이렇게 신임받던 모렐조차 히틀러의 분노를 사 도망쳤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1945년 4월 21일 모렐은 서재에 있던 히틀러가 기운 없이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모렐은 인체에 무해한 포도당 주사를 히틀러에게 놓으려 했지만, 히틀러는 갑자기 화를 내면서 자신을 모르핀으로 중독시킬 셈이냐며 펄펄 뛰었다. 그러면서 장군들이 자기한테 약을 먹여서 베르히테스가덴으로 실어 가고 싶어하는지 자기도 안다고 했다. "자네는 나를 미치광이 취급하는 건가?"하고 히틀러는 고함을 질렀다. 모렐이 히틀러에게 처방한 약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약에 상당한 의지를 한 히틀러였지만 그렇게 의지했던 모렐을 이제는 쏴 죽이겠다고 위협했고, 모렐은 벌벌 떨면서 도망갔다고 한다.[3]

2.3. 최후

독일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타려던 모렐은 미합중국 육군에게 체포된다. 그러나 히틀러의 최측근이기는 했지만 카를 브란트카를 게프하르트 같이 의학실험을 핑계로 학살 같은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었다.

그 외에는 나치에 충성했으나 그가 한 일은 히틀러의 건강을 관리한 것 뿐이었기에 전범이나 학살자로 취급할 수도 없고, 잡아 가둘 죄도 명분도 없었다. 거기에 당시 모렐은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서 뇌졸중 등 여러 병을 앓던 상황이라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연합군은 모렐을 석방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사실 억지로 법정에 세워봤자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권력이 전혀 없는 일개 주치의인 모렐이 증언할 만한 것이라곤 히틀러의 사생활 같이 연합군에겐 영양가 제로인 정보들 뿐일 테고. 히틀러는 항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광기 어린 학살자라는 대외적인 이미지와 그에 걸맞는 정신나간 행보와는 달리, 사석에서는 말단 병사의 이름 하나하나를 다 외우고 있고, 주변인들이 자신의 직함인 총통으로 자신을 부르는 건 너무 딱딱하다며 편하게 '히틀러 씨'라고 불러줄 것을 요구한 데다가, 동물을 좋아해서 근대 국가들 중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제정할 정도로 '인심 좋은 동네 삼촌'이었다. 히틀러와 나치당의 이미지를 최대한 나쁘게 조성해놓아야 전쟁범죄를 물을 명분이 제대로 서기 때문에 이런 정보밖에 모르는 모렐은 전쟁 직후 연합군에게는 정말로 무쓸모했던 셈이다. 물론 모렐이 남긴 회고록과 증언은 훗날 역사가들이 히틀러의 사생활을 연구하는 데 소중한 자료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3년 뒤에 고향 테게른제에서 뇌졸중으로 별세한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히틀러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히틀러 주변에 있었던 인물들 중 몇 안되게 제대로 천수를 누리고 갔다.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들 대부분은 타자수이던 트라우들 융에처럼 히틀러의 주변인이되 정치나 군사엔 일절 관여하지 않은 인물들이었다.[4] 연합군의 처벌을 피하고자 도피하려 했지만 체포당한 덕에 역설적으로 무고함을 입증받아 자유로운 말년을 보내게 된 아이러니의 산 증인인 셈. 사실 상기했듯 건강 문제 때문에 풀어준 거라서 만약 건강 문제가 없었다면 루돌프 헤스처럼 무죄 여부를 떠나서 통제받는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전범으로 판정되어 징역을 살던 다른 나치당 인사들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가석방해줬고 이들 또한 모렐과 마찬가지로 얼마 안 가 지병으로 숨졌다.

3. 그가 히틀러에게 처방했던 약

모렐은 히틀러에게 전쟁 기간 동안 모두 90가지의 약을 처방했고 하루에 28가지 씩의 알약과 물약, 주사약을 처방했다. 하도 주사를 찔러대다 보니 모렐의 진료 기록에는 "주사바늘이 휘었다"는 기록도 간간히 나온다. 현대 기준으로는 주사기 재사용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19~20세기에는 위생, 의료 부분에서 큰 변혁이 일어난 시기여서 그때의 의료 관습은 지금과 많이 다르다. 가령 의무병들이 멸균된 붕대를 처음 지참하게 된 전쟁은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그 전에는 몰라서 살균하지 않은 붕대를 사용했다는 이야기. 이러한 의학적 변화는 주사기에도 유효하다. 주사기가 소모품으로 처음 인식된 시기는 히틀러 사후인 1950년대이고, 1회용 주사기가 상용화된 것은 1956년의 일이다. 주사기 재사용이 당대 기준으로는 상식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다. 이를 근거로 모렐을 돌팔이 취급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모렐이 히틀러에게 처방했던 약물들은 그 위험성이 나중에야 알려졌을 뿐, 당대 기준으로 완전히 잘못된 처방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방사성 물질인 라듐을 몸에 좋다고 먹던 시절의 의약품 안전을 지금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 라듐으로 만든 '라디톨'을 3년동안 1400병이나 마시다가 비참한 몰골에 엄청난 고통을 안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 바로 에벤 바이어스다.

다만 이건 당대의 기준이 그랬다는 거고, 당대의 인식이야 어쨌건 모렐의 처방은 장기간에 걸쳐 사람의 몸을 서서히 망가뜨리는 것이었다. 아래에 나오는 약물의 리스트는 단기간은 괜찮을지 몰라도 장기간 처방하면 안되는 약물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흥분제와 진정제를 같이, 장기투여한 점이 문제가 된다.

  • 브롬화칼륨: 1800년대부터 경련 억제제와 진정제로 쓰였다. 허나 지금은 동물병원의 개와 고양이를 위한 약품으로 쓴다. 테오도어 모렐이 의대 공부 시에 썼을 약품이다. 현재 동물에겐 전신 강직성 발작이 불응성일 때 페노바비탈과 병용하는 식으로 쓰인다. 약의 유행이나 안정적인 신물질 개발로 인해 쓰이지 않는 것이지 처방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여기긴 힘들다.
  • 마전자: 인도산 교목으로 신경 흥분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비장과 위장이 상하는 부작용이 있다.
  • 아트로핀: 유독성 알칼로이드로 경련 완화 효과가 있다. 유독하지만 오늘날은 독가스 해독제로 쓰인다. 다시 말해 분량과 사용 시점을 지키면 약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 당장 국군이 운용 중인 신경작용제 해독제인 KMARK-1은 이것과 옥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 나트륨 바르비탈: 진정제 및 수면제이다. 단, 호흡 곤란 또는 쇼크 시에 투입하면 위험하다. 그러나 당시엔 바르비탈을 대체할 수면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현대에 주로 쓰이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은 히틀러가 죽은 지 한참 지나 탄생했다.
  • 시네프린 타르타르산: 광귤나무 열매에서 추출하는 물질이다. 한국에선 식욕 억제 효과 때문네 인기가 높지만,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이므로 부작용이 심하고 과다 복용 시 사망할 수도 있다. 그 탓에 일각에서는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캐모마일: 쉽게 말하면 국화차로 한국에서도 규모가 제법 있는 카페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사람이 히틀러에게 처방한 약물 중 몇 안 되는 멀쩡한 성분.
  • 테스토스테론: 남성 호르몬의 일종. 가장 흔히 알려진 남성호르몬이기도 하다. 현대에도 도핑을 위해 사용되는 물질인데, 부작용만큼 효과도 쩔어주기 때문에 맞는 것뿐, 일반적으로는 투여해서 좋을 거 하나 없는 약품이다. 이유없이 남성 호르몬을 맞거나 복용할 때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부작용이 고환 축소이다. 고환의 역할이 줄어드니 굳이 클 필요가 없기 때문. 음모론에서 종종 나오는 "히틀러는 남성 호르몬 맞은 여자다"라는 헛소문이 이 처방 때문일지도 모른다.
  • 페르페나진: 조현병 치료제, 구토 치료제. 과다 복용 시 부작용으로 파킨슨병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히틀러가 말년에 파킨슨병 징후를 보인 것이 이것 때문이다.
  • 카페인: 정신을 각성시키고 피로를 가시게 해준다. 현대에 흔히 마시는 커피에너지 드링크에 들어 있다. 즉 그나마 정상적인 약품 중 하나. 그러나 너무 많이 섭취하면 카페인 의존증에 걸려 건강에 영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상기한 대로 재사용한 주삿바늘로 다량 주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 벨라도나: 관목의 일종으로 열매를 3알 이상 먹으면 죽을 수 있다. 심박 급속증, 환각, 조급함, 균형 상실, 변비, 굵은 목소리, 목의 건조를 일으킬 수 있다. 요즘에는 경련 완화제인 아트로핀의 원료로 경작하나, 종종 마약으로도 쓰인다.
  • 대장균: 거의 모든 사람의 대장에 살고 있는 그 균 맞다.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은 대장균의 종류에 따라서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처방한다고 건강에 큰 영향은 없지만, 사실상 처방할 이유 자체가 없는 물건이다. 돌팔이라도 이건 진짜 심하다
  • 디히드로코데인: 현재도 임상이나 외래에서 자주 쓰이는 무난한 진해제.
  • 술폰아미드: 종합 항생제의 일종으로 요제프 멩겔레, 카를 브란트 등이 인체실험할 때 쓴 술폰아미드와는 다른 물질이다. 그쪽은 멀쩡한 술폰아미드 항생제가 아니라 술폰산의 다른 화합물이다.
  • 코카인 & 아드레날린: 둘을 섞어서 안약으로 처방했다. 코카인의 경우, 1903년 이전의 코카콜라에는 마신 사람들이 중독자로 바뀌기 충분할 만큼의 코카인이 들어 있었다. 독일에서 마약류 관련법이 제정된 것은 1929년이다. 일상생활에서 코카인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인지하기 힘들었고, 대공황을 끼고 있던 패전 후 독일에서 코카인이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쓰였을지는 짐작조차 힘들다.
  • 비타민: 그나마 멀쩡한 성분 중에 하나이긴 하나 특정 비타민은 많이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된다. 특히 비타민A. 간 좋아지료다 되레 간 망친다.
  • 암페타민: 각성제의 일종으로, 과다복용 시 쇼크, 심정지 등의 위험이 있다.
  • 메스암페타민: 우리는 이 물질을 필로폰[5]이라 부른다. 사실 필로폰은 제2차 세계 대전 내내 연합국, 추축국을 가리지 않고 진통제나 각성제로 무분별하게 쓰였다. 헤르베르트 브루네거의 자서전에도 각성 약물을 지급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낫질 작전 당시 3일에 걸친 진격을 수행하기 위해 부대 내에서 필로폰을 사단 간부가 직접 관리했고, 일본군 비행사들은 일상적으로 필로폰을 빨았다. 그러니까 마치 오늘날 커피레드불 정도의 인식으로 무분별하게 쓰였다. 필로폰은 1960년대가 되어서야 마약류로 지정되었다. 장기전을 수행하느라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병사들을 움직이는 데 이만 한 물건도 없었다. 그 부작용을 모르는 이상 안 쓰는 것이 이상할 지경.
  • 지질: 지질은 단백질, 당질, 핵산의 결합체이나 그보다 더 많은 종류를 화합했으며, 생체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 옥시코돈: 마약. 당시에는 '오이코달'이라는 이름으로 모르핀보다 '비교적 무해'하다고 하여 쓰였지만, 막상 약효가 떨어지면 금단 현상, 특히 두려움에 사로잡히며 질식하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며, 치료하지 않을 경우 중독에 빠지게 된다. 이 약물은 알약 또는 주사로 투입할 수 있는데, 모렐이 항상 히틀러의 주위에 '알약'과 '비타민을 섞은 주사'를 놓아두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선 이 약도 매일 같이 투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 기준으로 위의 투여한 약물 목록을 쭉 훑어보면 의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더라도 이 정도의 약을 때려박았는데도 사람이 살아있었다는 것과 이걸 투여한 사람이 누굴 죽이려고 악감정을 품고 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해왔다는 사실에 신기하다 못해 어이없을 지경이다. 쉽게 말하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순식간에 환자로 만들 수 있는 약물 투여를 계속 해온 거다. 이와 거의 비슷한 케이스가 나치 독일에 하나 더 있는데, 다름 아닌 헤르만 괴링이다. 근데 괴링은 처방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직접 마약을 했다.

모렐이 처방한 약들은 캐모마일과 술폰아미드, 효소 등 일부를 빼면 하나같이 일시적으로 괜찮아 보일 뿐인, 잠깐의 효과만 내는 땜빵에 불과한 것들이며 그 대가로 장기적으로는 더 안 좋은 효과를 가져다주는 사실상 독약들이었다. 심지어 일부는 양을 조금만 더 늘렸다면 바로 죽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지독한 약들이었다. 이런 약을 죽지 않을 만큼 처방한 것을 보면 일단 학위가 있는 건 맞는 듯.

처방의 특징과 효과를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업 계열의 마약과 다운 계열의 마약을 같이 처방했기에, 진통 효과와 각성 효과가 동시에 나타난다. 각성과 진정이 동시에 일어나니 환각 같은 즉각적인 부작용은 드물었을 것이다. 아울러 필로폰 때문에 일시적으로 머리가 맑아지고 활기가 넘쳤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히틀러는 부작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독약에 가까운 것을 장기투여했으니,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심지어 비타민조차 과량투여 시 부작용을 일으키는데도 모렐은 상당한 양을 투여했다

아울러 모르핀을 비롯한 마약들은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 시 항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된다. 과거에는 의무병들이 1인 3회 제한만 두고 야전 병원과 전장에서 부상자들에게 모르핀 주사를 놓았다. 현대에는 중독과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말기 환자나 절단, 심한 화상 환자 등 정말 고통으로 쇼크사할 정도의 환자들한테만 진통제로 쓰인다. 즉, 모르핀 등의 마약은 부작용이 알려져 있던 당시에는 의미 있는 처방이었다. 모렐이 진통제를 썼다는 것 자체가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진통제를 먹는다고 병이 낫는 건 아니지만, 통증 완화를 통해 환자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환자도, 중증 외상환자도 아니고 안 좋은 생활습관 때문에 잔병치레나 하던 히틀러에게 저런 마약류를 다양하게 대량으로 때려부어야 할 이유는 없다.

모렐의 처방을 한 마디로 줄이면 이독제독이 된다. 독으로 독을 다스린 셈. 즉 하나하나만 보면 당시의 의학 수준에서는 적절한 때 적절한 양을 적절한 기간 동안 쓰면 효과적인 약들이었으나 모렐은 이를 지나치게 남용, 오용하였다. 요즘의 예를 들면 항생제나 소염진통제, 소화제 등 대중적인 약을 무식하게 처먹인 거나 마찬가지다.

모렐은 단 한 번도 히틀러에게 자신이 뭘 처방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히틀러는 이게 뭔진 몰라도 효과가 죽여줬던 데다가, 타고난 귀차니즘 때문에 안 물어본 모양.[6] 아돌프 히틀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치통이 심했을 것이고 자리가 자리이다보니 관절염이나 만성 피로로 인한 통증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대부분의 환자는 의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자신의 몸 상태를 판단하지 않고 자기 몸에 일어나는 통증의 강도를 근거로 몸 상태를 판단하므로, 의사가 공들여 지은 약을 몇 달 동안 먹어 서서히 제대로 낫는 것보다 진통제 한 방 맞고 잠깐이라도 곧바로 쌩쌩해지는 쪽을 더욱 만족스러워한다.[7] 즉 모렐의 처방전은 뭐가 어찌되었든 바로바로 약빨이 서니 히틀러가 아니라 누가 대상자가 되었어도 모렐을 신임하였을 것이다.[8]

이 처방은 히틀러가 1944~45년에 파킨슨병 징후를 보인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나시르 가에미는 저서 『광기의 리더쉽』에서 모렐의 처방이 히틀러의 조울증 증세를 악화시켰다고 단언하며, 난폭하지만 부하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도 알았던 지도자에서 난폭하고 부하들의 말도 듣지 않는 지도자로 바뀌는 데엔 모렐의 처방이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모렐이 히틀러에게 악감정을 가져 이런 약물을 투여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모렐이 일부러 히틀러를 해치려 들었다는 주장은 지나친 주장이다. 비록 모렐이 뚱뚱하고 기름진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에서 비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고, 히틀러의 병이 깊어지면서 히틀러를 자주 만날 기회가 많았기에 히틀러의 측근들이 그를 질시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히틀러와의 관계를 이용하여 권력을 누리고 뇌물을 받기까지 했기에 모렐에 대한 악감정은 더욱 거세진 것은 사실이지만, 모렐은 의사로서는 부족했을지언정 히틀러가 벙커에서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까지도 벙커에 남아 있었던 측근으로 히틀러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헌신한 사람이지 히틀러를 해치려한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편 히틀러 전기를 서술한 이언 커쇼는 모렐이 처방한 약 때문에 히틀러의 몸이 망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히틀러가 미치광이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았다. 오히려 히틀러는 원래부터 심한 건강염려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모렐의 처방에 대단히 의지했고 실제로 이런 믿음은 히틀러의 심리적 불안감을 상당히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히틀러가 코카인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고, 피로를 이겨내려고 각성제를 먹었다는 것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설령 각성제를 먹었다고 하더라도 중독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며, 각성제가 히틀러의 행동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추측에 불과할 뿐 명확하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1944년부터 히틀러의 몸에 생긴 수많은 문제들은 모렐이 처방한 약들이 히틀러의 육체를 갉아먹는데 일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히틀러의 만성적인 생활 습관과 채식만을 고집하는 식습관, 운동 부족, 심한 스트레스에다 파킨슨병과 심장 질환 같은 선천적으로 안 좋은 문제들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히틀러는 원래부터 무엇인가에 대단히 집착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히틀러는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느껴 이 성격이 더욱 극단적이 되었다. 즉, 원래 격렬하게 분노하고 기분이 극과 극을 오가는 조울증 같은 증세는 원래 히틀러의 성격이였지만 전쟁 막판으로 갈수록 강도와 빈도가 높아진 것은 약 때문이 아니라 히틀러가 그만큼 격무에 시달리고 불리한 전세를 뒤집을 방법이 없었기에 그만큼 스트레스가 쌓였기 때문에 발현된 증상이라는 것이다.[9] 요약하자면 전세가 불리해지는 원인을 자신의 결정 때문이 아니라 장군들과 측근들에게 원인이 있다며 분노를 쏟아내고 상황판단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히틀러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격 장애나 정신 질환에 걸려 이성을 잃었다고 판단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원래부터 극단적이었던 히틀러의 성격이 공포증과 건강염려증, 히스테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더욱 극단적이 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히틀러는 벙커에서 자살하기 전까지 정신병을 앓는 증상이 있거나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전쟁 막판으로 갈수록 히틀러나치가 무자비한 광기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히틀러가 약물에 중독된 미치광이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며, 설령 히틀러가 미치광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치 독일에서 벌어진 참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나치 독일이 몰락하기 직전에 보여준 광기는 서부에서는 연합군이, 동부에서는 소련군이 몰려오면서 독일 내부의 분위기가 흉흉해지고 유대인 절멸을 빨리 실행시키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범행을 은폐하려고 서둘렀던 당시 상황이 나치와 히틀러를 무자비한 광기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더 적절한 해석이라는 것이다.[10]

4. 여담

이드 소프트웨어의 전설적인 고전게임 울펜슈타인 3D에 등장하는 대머리 안경 돼지 매드 사이언티스트 샵스 박사의 모델로 추정된다. 다른 나치 의사들은 샵스 박사와는 거리가 있는 외모이기 때문. 하지만 상기했듯 정작 모렐은 인체실험은 절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몸만 모렐이고 속은 게프하르트인 셈이다.

헤르만 괴링은 비꼬는 투로 그를 '제국 주사부 장관'이라고 부르곤 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묘사된 모렐의 모습은 유대인을 닮은 외모에 음식을 소리 내서 먹고 몸에서 암내가 장난이 아니었다는 증언도 나온다.[11]


  1. [1] 괴링의 경우 이 당시 이미 모르핀에 찌든 약물중독자가 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파한 것은 상당한 의외이다.
  2. [2] 하이드리히를 껄끄럽게 여긴 힘러가 의사들을 매수해서 하이드리히를 암살했다는 의혹이 있다.
  3. [3] 이언 커쇼 히틀러 2권 17장 불타는 제국 977페이지
  4. [4] 전쟁범죄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트라우들은 결혼한 지 1년반 만에 SS 장교남편이 전사했고, 말년의 회고에서 젊었을 때 나치를 따랐던 것이 정말 후회된다고 남길 만큼 고통스러워했다.
  5. [5] 일명 히로뽕, '크리스탈 메스'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6. [6] 마르틴 보어만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 히틀러는 꼼꼼함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7. [7] 실제 약효는 거의 없이 진통 효과가 전부인 파스가 만년 스테디셀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단 빨리 쌩쌩해져야 투병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모르고 의사들이 처방전에 진통제를 넣는 것이 진통제값까지 더 받아먹으려고 그런다고 오해를 하는데 의약 분업 이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8. [8] 지금은 평균적인 교육 수준의 상승과 여러 정보 매체들의 발달 덕분에 나름대로 대중들의 건강, 의학 지식도 늘었고, 항생제 처방에 대해 국가적 통제와 정보공개도 하니까 저런 식의 오남용은 할 수 없다. 단지 의사, 약사와 상담 없이 혼자 약을 오남용하는 것을 주의하면 된다.
  9. [9] 독소전쟁 당시 히틀러의 하루 일과는 밤에는 잠을 잘 못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하루 종일 군 지도자들과 회의를 했고, 식사도 방에서 혼자서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잠깐 바람이나 쐬고 운동은 하지 않았으며 자기 전 매일 똑같은 보좌진들에게 긴 독백을 늘어놓다가 잠을 자려 했을 정도로 딱딱하고 빽빽한 일정을 매일 반복했다.
  10. [10] 이언 커쇼 히틀러 2권 887페이지
  11. [11] 원래 백인이 체취가 강렬한 편이지만, 독일인의 경우 같은 백인끼리도 꺼려할 정도라 어느 조사에서 체취 때문에 가장 연애하기 싫은 대상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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