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드워드 7세 이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이전 영국 총리 연혁에 대해서는 이쪽으로.

49대

50대

51대

52대

53대

54대

55대

솔즈베리 후작 로버트 게스코인세실

아서 밸푸어

헨리 캠벨배너먼 경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앤드루 보나 로

스탠리 볼드윈

56대

57대

58대

59대

60대

61대

62대

램지 맥도널드

스탠리 볼드윈

램지 맥도널드

스탠리 볼드윈

네빌 체임벌린

윈스턴 처칠 경

클레멘트 애틀리

63대

64대

65대

66대

67대

68대

69대

윈스턴 처칠 경

앤서니 이든 경

해럴드 맥밀런

앨릭 더글러스흄 경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해럴드 윌슨

70대

71대

72대

73대

74대

75대

76대

제임스 캘러헌

마가렛 대처

존 메이저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

토니 블레어 총리의 주요 수상 및 수훈 경력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de9e8 0%, #FFFFFF 20%, #FFFFFF 80%, #ede9e8)"

선정 위대한 영국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00 Greatest Britons

※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선정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윈스턴 처칠

이삼바드 킹덤 브루넬

다이애나 스펜서

찰스 로버트 다윈

윌리엄 셰익스피어

6위

7위

8위

9위

10위

아이작 뉴턴

엘리자베스 1세

존 레논

호레이쇼 넬슨

올리버 크롬웰

10위~10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어니스트 섀클턴

제임스 쿡

로버트 베이든 파월

알프레드 대왕

아서 웰즐리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마가렛 대처

마이클 크로포드

빅토리아 여왕

폴 매카트니

알렉산더 플레밍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앨런 튜링

마이클 패러데이

오와인 글린두르

엘리자베스 2세

스티븐 호킹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윌리엄 틴들

에멀린 팽크허스트

윌리엄 윌버포스

데이빗 보위

가이 포크스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레오나르드 체셔

에릭 모어캠브

데이비드 베컴

토머스 페인

부디카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스티브 레드그레이브

토머스 모어

윌리엄 블레이크

존 해리슨

헨리 8세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찰스 디킨스

프랭크 휘틀

존 필

존 로지 베어드

어나이린 베번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보이 조지

더글라스 베이더

윌리엄 월레스

프랜시스 드레이크

존 웨슬리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아서 왕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

로버트 스콧

이넉 파월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클리프 리처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프레디 머큐리

줄리 앤드루스

에드워드 엘가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조지 해리슨

데이비드 애튼버러

제임스 코널리

조지 스티븐슨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찰리 채플린

토니 블레어

윌리엄 캑스턴

바비 무어

제인 오스틴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윌리엄 부스

헨리 5세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로버트 1세

밥 겔도프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무명용사

로비 윌리엄스

에드워드 제너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찰스 배비지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제프리 초서

리처드 3세

J. K. 롤링

제임스 와트

밥 겔도프 (아일랜드인)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보노 (아일랜드인)

존 라이든

버나드 로 몽고메리

도날드 캠벨

헨리 2세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존 로널드 루엘 톨킨

월터 롤리

에드워드 1세

반스 월리스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리차드 버튼

토니 벤

데이비드 리빙스턴

팀 버너스리

마리 스톱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러시아인, 위대한 독일인, 위대한 프랑스인, 위대한 미국인

}}}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 color: #fede58;">Congressional Gold Medal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 color: #fede58;">의회 명예 황금 훈장</span>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마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우즈 2세
대위 에드워드 맥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톤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컵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윌락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즈

소장 알렉산더 마콤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의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던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데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우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자레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란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콤

중위 데이빗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사무엘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대령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즈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토머스 에디슨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 횡단 비행사들

소령 월터 리드

준장 리처드 에벌린 버드

링컨 엘스워스

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코한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안나 불리니

하워드 휴즈

목사 프란시스 퀸

윌리엄 시노트

1942년

1945년

1946년

롤랜드 바우처

1939-1941년 미국 남극 탐험대 멤버들

미합중국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미합중국 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미합중국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 전쟁의 참전 용사들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마스 안소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미합중국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C.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맥시 앤더슨
래리 뉴먼

휴버트 호레이쇼 험프리

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프레드 워링

조 루이스

루이스 라머

레오 라이언

대니 토마스

1984년

1985년

해리 S. 트루먼

레이디 버드 존슨

엘리 비젤

로이 윌킨스

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6년

1987년

1988년

나탄 샤란스키
에비탈 샤란스키

해리 차핀

에런 코플런드

메리 래스커

제시 오언스

1988년

1990년

1991년

앤드루 와이어스

로렌스 록펠러

대장 매튜 B. 리지웨이

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 콜린 파월

1994년

1996년

1997년

랍비 메나헴 멘델 쉬니어슨

루스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프랭크 시나트라

마더 테레사

바르톨로메오스 1세

1998년

1999년

넬슨 만델라

리틀록 9인

제럴드 포드
베티 포드

로자 파크스

테오도르 헤스버그

2000년

존 오코너

찰스 먼로 슐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낸시 레이건

나바호 족 코드 토커

2002년

2003년

대장 휴 쉘튼

토니 블레어

재키 로빈슨

도로시 하이트 박사

조셉 디레인 [br[ 해리 & 엘리자 브릭스
레비 피어슨

2004년

2006년

마틴 루터 킹
코레타 스콧 킹

터스키기 에어맨

14대 달라이 라마

바이런 넬슨

노먼 볼로그 박사

2007년

2008년

마이클 데바키 박사

아웅산수지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에드워드 브룩

아메리카 원주민 코드 토커

2009년

2010년

여성 공군 서비스 조종사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존 글렌

아널드 파머

무함마드 유누스

100연대 보병 대대
442 연대 전투단
군사 정보국

2011년

2012년

2013년

몬트포드 포인트 해병대

2001년 9월 11일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남녀들

라울 발렌베리

애디 매 콜린스
데니스 맥네어
캐롤 로버트슨
신시아 웨슬리

제1 특수임무단

2014년

둘리틀 특공대 멤버들

미국의 공군 에이스들

제2차 세계 대전 민간 항공 초계 부대 멤버들

시몬 페레스

모뉴먼츠 맨

2014년

2015년

2016년

제65 보병연대

잭 니클라우스

셀마 몽고메리 행진

제2차 세계 대전 필리핀인 참전 용사들

OSS

2017년

밥 돌

}}}

영국 제73대 총리
The Right Honourable[1]
Anthony Charles Lynton Blair

본명

Anthony Charles Lynton Blair
앤서니 찰스 린튼 블레어[2]

국적

영국

출생

1953년 5월 6일 (만 66세)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신장

183cm

학력

페티스 컬리지 (졸업)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존스칼리지 (법학 / B.A.)
Inns of Court School of Law[3]

직업

정치인

정당

''' [[영국 노동당|{{{#!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C9151E ; font-size: .8em"

노동당}}}]]'''

재임 기간

1997년 5월 2일2007년 6월 27일

종교

성공회 (1953 - 2007)
가톨릭 (2007 - )

배우자

셰리 부스 (1980 ~ ), 3남1녀

서명

SNS

1. 개요
2. 생애
2.1. 정치 입문 전
2.2. 정치 입문
2.2.1. 총리 취임
2.2.2. 총리 퇴임
3. 여담

1. 개요

영국 제73대 총리

2. 생애

2.1. 정치 입문 전

1953년 5월 6일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엘리자베스 2세 시기의 역대 영국 총리 중, 엘리자베스의 재위 기간 때 태어난 최초의 총리이다.(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에 즉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성장기의 대부분을 스코틀랜드에서 지냈지만, 스코틀랜드인은 아니다. 집안은 원래 잉글랜드 북부 출신이고 정치적 입지를 다진 곳도 잉글랜드.[4] 그래서 그런지 스코틀랜드 출신인 고든 브라운 전 총리와 달리 스코틀랜드 억양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버지 리오 블레어는 법률가로 보수당을 지지했다.[5] 아버지가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교 로스쿨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3년 반 동안 호주에서 지내기도 했고, 이후에는 잉글랜드 북부(더럼)에서 살기도 했다. 10세 때 아버지가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페티스 칼리지(Fettes College)[6]을 다녔다. 엄격한 교칙과 선배 학생들에 의한 부조리에 반발하여 무단으로 교정을 이탈하기도 했으며, 록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71년에 페티스 칼리지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1년 정도 알바를 하며 지냈고 그 탓에 프랑스어가 유창하다. 돌아와서는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다녔다. 전공은 법학. 당시에는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다고.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록밴드 보컬을 하기도 했다. 밴드이름은 어글리 루머스. 대학 졸업 후에 영국 노동당에 입당했고 법률 사무소에서 만난 동료 셰리와 1980년에 결혼했다.

2.2. 정치 입문

1983년 총선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공직에 입문한다. 하원의원 시절 노동당의 그림자내각(shadow cabinet)[7]에서 고용부, 에너지부 장관 등을 맡았고, 노동당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1994년 노동당 대표 존 스미스가 급사하면서 차기 노동당 대표를 뽑게 되었는데, 이때 당시 노동당의 차세대 지도자 후보로 각광받던 동료이자 라이벌 고든 브라운과 같이 식당에서 노동당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결국 두 명이 합의하여 블레어를 먼저 밀어주고 그 다음에 브라운을 밀어주기로 약속한다. 이에 힘입어 블레어는 손쉽게 노동당의 대표가 되었다.[8] 즉 노동당이 집권하면 총리가 되는 것.

2.2.1. 총리 취임

1997년 총선 결과 노동당이 43.2%의 득표율로 659석 가운데 418석을 획득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면서, 총리에 취임했다. 이때 노동당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양당 통틀어 사상 최다 의석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보수당은 1832년(!) 이후 최저 득표율(30.7%)이라는 충공깽스런 결과를 받아들어야 했다.

1997년 총선 승리 직후, 아내 셰리와 함께 다우닝가 10번지의 총리 관저에 도착한 모습.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2기와 같은 시기에 집권했고, 실제로도 클린턴의 선거 전략을 모방하여 1997년 총선에 승리하는 등 초기에는 중도 좌파의 이미지가 강했다. 동시기에 프랑스에서도 조기 총선에서 우파 여당(공화국연합)이 참패하여 리오넬 조스팽 내각이 설립되었고, 이듬해 독일에서도 독일 사회민주당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집권하면서 '제3의 길' 노선의 선두주자로 부각되었다.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 스펜서가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들의 추격을 피하려다가 교통사고로 서거했는데 영국 왕실을 압박하여 다이애나 스펜서를 추모하게 했다. 이 과정은 영화 더 퀸에 잘 나온다.[9]

노동당 출신이지만 노동당의 우경화가 계속된 탓에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쳤다. 때문에 안티들이 블레어를 부르는 멸칭을 여럿 만들어냈다. 블레어가 우파인지 좌파인지 애매하고 흐릿하다며 토니 블러(Tony Blur), 사실상 보수당원이라고 공격당해 토리 블레어(Tory Blair)[10] 등의 멸칭이 있으며, 둘이 합쳐져 최종판인 토리 블러(Tory Blur)(...)라고 까이기도 한다. 노동당도 Red Tories(색깔만 노동당 상징인 빨간색으로 칠한 보수당이라는 뜻)라고 공격당하기 일쑤였다.[11][12] 쉽게 말해서 "당신 정책이 보수당이랑 다를 것이 뭐냐?"는 지적. 이 시기의 미영관계도 상당히 밀월이라 테러와의 전쟁미군 다음으로 많은 규모의 숫자의 영국군을 파병했다. 오죽하면 부시의 푸들(Bush's Poodle)이란 얘기도 들었다.[13] 그래서 좌파 진영으로부터 부시와 함께 전범이라고 공격당하게 되었고 2010년대 중반 노동당 대표가 되는 '정통 좌파' 제레미 코빈이 대놓고 전범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는 소리를 하게 되었다. 블레어와 코빈 사이에는 같은 당 소속이라는 의식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간극이 넓은 것이다.

이 시기 영국인들 중엔 자존심의 상처를 겪은 이도 많았고 '러브 액츄얼리'에서 휴 그랜트가 하는 대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영뽕에 취한다 블레어 본인은 자신은 휴 그랜트가 아니며 정치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미 공화당 소속이었던 아놀드 슈워제네거와도 친했던 걸 보면 정말 노동당 출신이 맞는지 신기할 정도.

사실 이미 1999년코소보 내전 당시에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강경한 군사 개입을 주장한 바 있었다. 당시 미국은 클린턴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 위기까지 몰려서 무기력한 상태였는데, 블레어가 미국을 직접 방문하여 코소보에 대한 '인도적 개입'을 촉구했던 것. 이를 보면, 부시 행정부 시절의 대테러 전쟁 개입도 단순한 '변절', '줄서기'보다는 그의 정치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맹(이라고 쓰고 보스라고 읽는다)이 막장이어서 도매금으로 취급 당했다

하지만 국제문제의 적극적 군사개입을 주장한 것과 별개로, 토니 블레어는 1998년 4월 10일 현대 영국 역사에 가장 중요한 결정인 벨파스트 협정을 아일랜드와 체결한다. 북아일랜드 문제의 핵심이었던 이 벨파스트 협정을 통해 1972년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폭발한 IRA의 무력투쟁 및 테러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2.2.2. 총리 퇴임

2007년 5월 10일에 10년간의 총리 생활을 마치고 퇴임했다. 총리 기간 중에는 명목상 성공회 신자였지만 가족이 모두 가톨릭이라 퇴임 후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총리가 되기 전 부터 가톨릭 미사 다녀오는 등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던 걸로 추정되지만[14]여러가지 제반 사정 등으로 개종은 퇴임 후에 했다.영문기사 가톨릭 개종 일치예식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치뤘다. 성경을 지속적으로 읽은 총리로 유명했다. 꾸란도 세 번 읽어봤다고. 나름 종교적인 신심이 있는 인물이라서 그런지 종교의 유용성에 관하여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TV 토론을 벌인적도 있다.

2010년에는 야인 자격으로 국회에 출석해 테러와의 전쟁은 정당한 것이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2015년 10월 25일, 2003년 당시 영국이라크전에 참전한 점과 또 전쟁의 여파로 ISIL의 세력확장 원인을 제공한 한 점에 대해 자신과 당시 영국행정부의 오판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음을 CNN과의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연합뉴스,BBC(비디오클립포함).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닌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은 2002-2003년 당시 미행정부가 주장했던 이라크 WMD보유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기인되었으며 전쟁의 결과로 이라크와 중동에서 일어난 오늘날의 후폭풍은 2003년 당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다. 또한 따지고 보면 해당지역의 오늘날 딜레마는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부터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고 더욱이 예로부터 시리아 및 이라크 북부에 존재해왔던 정치, 종교, 역사적 문제들과도 연결된 문제다' 로 일축 및 일관하는 떠넘기기식 뉘앙스를 보여 영국 내 이라크전 전사자 유가족들은 이리 무책임 할 수 없다며 포풍같이 분노하는중이다.

2016년 영국의 이라크 전쟁 참전에 대해 조사한 칠콧 보고서가 영국의 전쟁 참전이 블레어 총리의 오판에 의한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결론을 내리자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고 항변했으나 오히려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은 데다 분노한 전사자 유족들이 전쟁 범죄자로 고소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들고 일어났다.

2016년 9월 이라크 전쟁에서 영국군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블레어 본인이 직접 일으킨 전쟁인 만큼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블레어는 영국군을 두둔하고 있으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과 그 가족들에게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며 혐의를 조사하고 있는 위원회를 비판했다. 위원회 측은 영국 내에서 자체 조사를 면밀히 하지 않을 시, 국제 재판소에 기소될 수 있다며, 어느 측도 억울하지 않게 풀어가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여론 반응은 만약 군인들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으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며, 불법 전쟁을 일으킨 토니 블레어도 법의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는 반응이다.

2019년 3월에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영국의 EU 잔류 방안을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져 영국 내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11월에는 보수당, 노동당을 비판하였다.#

3. 여담

  • 1984년생인 아들인 유안 블레어가 꽤나 꽃미남으로 유명해서 2000년대 초반 한참 국내에 꽃미남 열풍이 불 때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16살때 음주운전으로 입건된적 있고, 2006년에는 미국 공화당 의원 사무실의 인턴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같은 센터의 한국인 여대생과 인턴 모임을 가졌다가 연애로 오인받아 기사화되는등 한때 꽤나 트러블 메이커였다. 2015년 총선 노동당 후보로 출마해 아버지의 정치 세습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그후 별다른 소식이 없다. 현재 유안은 블레어 가족이 50%의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회사 ‘올드베리 주택’의 이사로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맨체스터와 스톡포트에서 아파트 27채의 임대 사업을 벌이고 있다.
  • 비교적 근래에 활동했던 정치 지도자임에도 영화,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 편이다.

2007년의 영화 《더 퀸》, 2010년 HBO의 TV 영화 《특별관계》[15]가 대표적. 블레어 역으로는 모두 마이클 쉰이 출연.
  • 토니 블레어는 총리 시절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16]을 임명하지 않았다. 아내 셰리가 수렵보좌관을 매우 싫어해서 전임 보좌관인 험프리(Humphrey)를 1997년 해임한 이후 총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관저 수렵보좌관을 임명하지 않았다.[17] 이 때문에 후임 총리인 고든 브라운이 2007년 시빌(Sybil)을 수렵보좌관에 임명할 때까지 보좌관 직은 공석으로 남았다.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인 노무현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기 쉬운 환경에 자랐음에도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 지도자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소속 당 내에서 비주류로 분류되었다는 점[18], 참신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는 점, 아내의 처신 때문에 보수 진영과 당 내 반대파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는 점[19], 집권 후 우파적인 경제정책[20]과 외교안보정책[21]을 추진했다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 좌파 진영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는 점이 매우 비슷하다.


  1. [1] 총리 본인에 대한 경칭
  2. [2] 이 이름으로도 들어올수 있다.
  3. [3]런던 시티 대학교 법학대학원
  4. [4] 한국적인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출생지, 성장지는 스코틀랜드이지만 부모 고향 및 본적지는 잉글랜드인 셈.
  5. [5] 아버지는 본래 사회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경제적으로 성공하면서 보수주의자로 전향했다.
  6. [6] '스코틀랜드의 이튼'이라 불리는 명문 칼리지로, 이름은 칼리지지만 대학이 아니라 고등학교이다. 미국에서는 college가 (단과)대학의 뜻이지만, 영국이나 유럽 대륙에서는 고등학교 레벨의 기숙사 학교(boarding school)도 college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에서는 이튼’스쿨’이라고 잘못 알려진 Eton College.
  7. [7] 의원내각제 국가에선 조건에 따라 언제든 수권정당이 될 수 있기에 미리 내각을 결정해둔다.
  8. [8] 그런데 블레어가 브라운을 밀어줄 차례가 된 2003년에 블레어 측이 통수를 쳤다. 그리고 2007년에 당권을 장악한 브라운이 분노의 빠와로 총리가 되면서 블레어의 정치적 인생은 끝장이 난다.
  9. [9] 영화에서 그의 아내 셰리는 공화주의자라고 표현된다. 이 점은 극중에서 엘리자베스 2세와 보좌관들이 토니 블레어의 정권 교체를 달가워 하지 않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10. [10] 보수당의 옛 이름과 별명이 Tory Party이다.
  11. [11] 노동당의 이념 투쟁과 무관하게, 2010년대 들어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에서 노동당을 싸잡아서 Red Tories라고 비방하는 경우도 있다.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 입장에서 노동당이나 보수당이나 그게 그거라는 얘기. 반대로 노동당 지지자들은 SNP가 보수당과 적대적 공생을 하니 스코틀랜드의 보수당이라는 뜻에서 Tartan Tories(타탄은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면직물이다)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더니 결국 2010년대 후반 스코틀랜드에서 노동당이 SNP와 보수당 모두에 밀려 3등으로 추락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12. [12]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멸칭은 보수당에도 있다. 보수당은 2010년대 이후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독립당(UKIP)과 다를 바 없다며 블루킵(Blukip: 색깔만 보수당 상징인 파란색으로 칠한 영국독립당이라는 뜻)이라고 까이기 일쑤다.
  13. [13] 게이바 노래를 편집한 것 중에 블레어와 부시가 나오는 패러디도 있다.
  14. [14] 성공회 신자 시절에도 가톨릭 미사에서 영성체도 참여했지만 1996년에는 영국 가톨릭 추기경으로부터 "더 이상 가톨릭 영성체에 참여하지 말라"는 경고 서한을 받기도 했다.(천주교에서 영성체는 세례받은 천주교 신자와 특수상황에 처한 정교회 신자만 할 수 있다) 추기경한테 경고 먹은 당시에 "이웃 교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경솔한 짓을 했다"며 캔터베리 대주교한테 한소리 얻어먹은 건 덤.
  15. [15] 원제는 'Special relationship'으로 미영 동맹관계를 지칭하는 관용어이기도 함. 내용 자체는 블레어의 집권 초기 클린턴 행정부와의 관계가 주를 이룬다. 르윈스키 스캔들, 코소보 전도 등장.
  16. [16] 모르는 사람을 위해 소개하자면, 고양이(...)다. 인간이 고양이 역할을 하는게 아니라 진짜 고양이다. 쥐를 제거해 총리 관저의 위생을 돕는 역할이랜다. 정식 총리 참모 중 하나(...)로 쳐 주는 듯 하다.
  17. [17] 참고로 체리 블레어는 영국 왕실의 폐지를 주장하는 공화주의자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이전의 영국 총리 배우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반골 성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18. [18] 새천년민주당의 당 내 주류 세력은 동교동계였고, 노무현 등 영남계 인사들은 철저하게 비주류였다.
  19. [19] 노무현의 아내인 권양숙의 아버지는 종북 행위를 한 적 있는 좌익 인사였다. 셰리 블레어는 상술한 바와 같음.
  20. [20] 노무현이 이끌었던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신자유주의에 가까웠다.
  21. [21] 한미 FTA 체결,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시작한 건 참여정부였다. 또 토니 블레어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또한 자국의 군대를 이라크에 파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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