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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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
Regnum Francorum


843년경 베르됭 조약으로 나뉜 프랑크 왕국 강역

481년 ~ 843년(888년[1])

위치

중서부유럽

수도

투르네 (431년 ~ 508년)
파리 (508년 ~ 768년)
아헨 (768년 ~ 843년)

정치체제

군주제

국가원수

왕 → 황제[2]

언어

고대 프랑크어,[3] 라틴어

종교

아리우스파가톨릭

주요사건

481년 건국
800년 카롤루스 황제 등극
843년 베르됭 조약 → 서·중·동으로 분할

통화

디나르

성립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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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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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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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메로빙거(메로비우스) 왕조
2.2. 카롤링거(카롤루스) 왕조
2.3. 분열
3. 비잔티움 제국과의 관계
4. 관련 문서
5. 역사 틀 둘러보기

1. 개요

중세 초기의 승자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세운 나라. 현재의 프랑스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중북부, 이스트리아 반도를 위시한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일부, 스페인 북부 지방[4]을 영토로 가지고 있었으며, 영국아일랜드를 제외하고 로마 제국 이후로 서유럽을 거의 통일했던 나라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기원이 되는 국가이며,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로마의 이름을 차지한 나라이다.

후대 여러 유럽 왕위에 영향을 끼친 살리카법이라는 법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2. 역사

2.1. 메로빙거(메로비우스) 왕조

메로빙거라는 이름은 창시자라고 알려진 프랑크족 족장 메로베크에서 유래한다. 메로베크(Merovech, 411-458)는 서로마 제국의 군인으로 용병 출신이었다. 메로베크는 서로마 제국군 사령관을 지내기도 했으며 그의 아들인 킬데리크 1세는 서로마 제국에서 용병대장을 지내기도 했다. 사실상 메로빙거 왕조를 건국한 건국자는 킬데리크 1세의 아들 클로비스 1세로 486년 서로마 제국의 잔존세력인 수와송 왕국을 멸망시켜서 북프랑스를 통일하고 국왕 시아그리우스를 참살한다. 그는 파리로 수도를 옮겼으며 이전까지 믿던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버리고 가톨릭을 받아들여 486년 교황 펠릭스 3세에게 세례왕관을 받았다.

메로빙거 왕조는 클로비스 1세의 계획적인 분할 혹은 전통에 의한 분할 정책에 의해서 여러 차례 분할과 통합을 겪었다. 여기서 분할 상속의 전통은 일반적으로는 살리카 법전에 의거하는 게르만 족의 전통이라고 하지만, 이는 하나의 학설일 뿐이다. 다른 학설에서는 후기 로마 제국의 전통이나 클로비스 1세의 우려 등등이 있다. 실제로, 살리카 법전과 맞지 않는 것들이 메로빙 시대에 종종 등장한다.

메로빙거 왕조 시대는 지방 분권화가 가속화 되는 시대였다. 개별적인 지방 간의 차이는 점층적으로 커져 갔고, 그들은 자신들이 아닌 이방인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주교나 여러 관료들의 임명권을 실질적으로 지방의 유력자들이 행하고는 했다. 물론 이는 왕권이 심각하게 약해졌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왕들은 이들에게 이러한 타협을 통해서 국가 체제를 유지 시켰음을 시사한다.

여러 프랑크 왕들은 지속적으로 로마의 전통을 흡수한 정부 체제를 국가 전체에 퍼트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정치적 움직임은 지방분권적인 귀족들에게는 좋지 못했던 것이었고,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왕과 여러 차례 대립하게 된다. 물론 이런 대립과 갈등을 능력 있는 성인 왕들이 중재하거나 해결할 수 있었지만 다고베르트 1세가 이른 나이에 사망하고 그의 어린 아들들이 왕위를 물려받으면서부터 왕국의 문제가 터지고 만다. 왕국은 중앙적인 정부를 설립하려는 왕권에 대항하고, 어린 나이에 왕위를 잡은 왕들을 유린하고 농락하며 그들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내분을 끝없이 벌이게 된다.결국 지속적인 어린 왕들의 즉위와 귀족들의 궁재 작위를 두고 가문, 지방 간의 기나긴 내분으로 왕권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왕국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메로빙거 왕조 시기만 해도 프랑크 왕국의 왕권에는 그리스도교 요소만이 아니라 게르만족의 전통적인 요소가 많았다. 메로빙거 왕조의 왕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황소를 타고 외출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는 게르만 전통에 따라 신성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귀족 가문들의 내분 속에서 승리한 카롤링 가문은 사실상 메로빙거 프랑크의 군주가 된다. 결국 751년, 교황을 등에 엎은 피핀 3세가 킬데리크 3세를 삭발 시키고 수도원에 유폐 시킴으로써 메로빙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카롤링 왕조가 시작된다.

2.2. 카롤링거(카롤루스) 왕조

카롤링거 가문의 영화는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피핀 1세에서 시작되었다. 피핀 1세의 외손자 피핀 2세는 687년 텔토리 전투에서 프랑크 왕국의 실권을 잡았으며 피핀 2세의 서자였던 카롤루스 마르텔이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우마이야 왕조를 격퇴하면서 이슬람군의 침략을 막아내면서 군사적 권위를 얻었다. 이는 이슬람의 침입으로부터 서유럽을 방어했다는 의의가 있다. 카롤루스 마르텔은 내란으로 잠시 공석이 되었던 왕위를 대신하여 메로빙거 왕조를 통치하기도 했지만 감히 왕위까지는 넘보지 않았다.조조? 하지만 그의 아들 피핀 3세는 메로빙거 왕조의 힐데리히 3세를 폐위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교황 자카리아는 피핀 3세에게 힐데리히 3세의 폐위를 종용했기 때문에 그의 왕위를 인정했다. 피핀 3세는 754년 롬바르디아 왕국을 격파하고 교황 스테파노 2세에게 라벤나 일대의 토지를 기증하여('피핀의 기증'이라 함) 교황령의 시초를 만들었다.

그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 즉 샤를마뉴이며 800년 교황 레오 3세에게 로마 제국 황제의 칭호를 받아 신성 로마 제국의 시초가 되었다.

카롤루스 대제 사후 그의 유일한 아들 경건왕[5] 루트비히 1세(루이 1세)가 뒤를 이었고, 840년 루트비히 1세가 죽자 프랑크 왕국은 3명의 아들 로타르, 루트비히, 샤를[6]에게 분할 상속되면서 카롤링거 왕조는 (서 - 중 - 동프랑크) 세 개의 왕국으로 쪼개지고 만다.

2.3. 분열

840년 경건왕 루트비히 1세가 죽자, 장남 로타르 1세는 프랑크 왕국의 단독 통치자가 되려고 했으나, 다른 두 형제들의 저지를 받았다. 세 형제는 이미 각각의 왕국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로타르는 이탈리아, 루트비히는 바이에른, 그리고 샤를은 아키텐을 소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세 형제는 843년 프랑스 북부의 베르됭에서 만나 베르됭 조약을 맺었는데 결국 왕국은 3개로 분할되었다.

로타르 1세는 제국의 중앙 부분인 로타링기아, 알자스, 부르고뉴, 프로방스, 이탈리아 왕국[7]을 가지고 루트비히는 제국의 동쪽 부분인 라인강 동쪽에서 이탈리아 북동쪽에 이르는 지역을 가지고 샤를은 제국의 서쪽 지역인 라인강 서쪽에서 이탈리아 북서쪽에 이르는 지역을 가진다.

855년, 프륌 조약에 의한 분열. 중프랑크 왕국이 위태로워 보인다

870년의 메이르센 조약에 의한 분할.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국경과 대강 일치한다. 중세 유럽의 시작으로 설정되기도 하는 조약이다.

동프랑크 왕국의 카를 3세 하에 제국이 다시 통합되었으나 1년 만에 다시 분열된다.

915년 카롤링거 왕가의 지배지

10세기 중엽 서프랑크 왕국의 왕령지 (노란색이 카롤링거 왕조의 명령이 미치는 부분.. 랭스를 포함한 샹파뉴 지방에 국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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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랑크 왕국

  • 중프랑크 왕국: 장남 로타르 1세의 나라. 중심지인 로타링기아를[8] 비롯한 중부 영토, 이탈리아 영토, 로마 제국 황제 칭호를 받았다. 따라서 왕에 불과한 동프랑크 왕국, 서프랑크 왕국을 명목상으로 지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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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프랑크 왕국: 삼남 루트비히 2세의 나라. 훗날의 독일의 기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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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국

  • 서프랑크 왕국: 후처 소생의 막내 샤를 2세의 나라. 훗날의 프랑스의 기초가 된다.
  • 아키텐: 차남 피핀 1세의 영토. 하지만 피핀 1세는 839년 사망했기 때문에 형제들의 상속 전쟁에 끼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루트비히 1세는 아키텐을 샤를 2세에게 넘겨주려 했지만, 아키텐의 귀족들은 집단으로 반발했다. 이에 아키텐의 귀족들은 피핀 1세의 아들 피핀 2세을 지지하여 루트비히 1세는 결국 피핀 2세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855년에 샤를 2세는 피핀 2세를 사로잡고 축출했으며, 피핀 2세의 동생 샤를은 강제로 수도사로 만들어 아키텐을 강제로 뺏어버렸다.

855년 로타르 1세가 죽자 중프랑크 왕국은 프룀 조약을 통하여 그의 세 아들 장남 루트비히 2세, 차남 로타르 2세, 막내 샤를 2세에게 또 다시 분할되었다. 루트비히 2세는 이탈리아, 로마 제국 황제 칭호, 로타르 2세는 로타링기아, 샤를 2세는 프로방스, 부르고뉴를 나누어 가졌다. 863년애 샤를이 후사 없이 죽자, 그의 두 형은 샤를의 영지를 나누어 가졌는데, 부르고뉴 북부 지역은 로타르 2세가 가졌고 부르고뉴 남부와 프로방스는 루트비히 2세가 가졌다. 869년애 로타르 2세가 죽었다. 그는 서자였던 위그 외에는 후계자가 없었다. 위그는 계승자를 선언했지만, 결국 그들의 숙부들인 동프랑크 왕국의 루트비히 2세와 서프랑크 왕국의 샤를 2세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두 숙부들은 870년에 메르센 조약을 맺어 로타링기아를 동서로 나누어 가졌다. 875년에는 이탈리아의 루트비히 2세가 후사 없이 죽었는데, 이탈리아, 부르고뉴 남부, 프로방스, 그리고 로마 제국 칭호는 모두 서프랑크 왕국의 샤를 2세가 가졌다. 그러나 877년에 샤를 2세가 사망하자, 이탈리아, 부르고뉴 남부, 프로방스, 그리고 로마 제국 칭호는 그의 조카이자 동프랑크 왕국의 카를만[9]에게 넘어갔다. 그 후 이탈리아는 혼란을 겪다가 962년 신성 로마 제국오토 1세가 가지게 되었다. 어쨌든 이렇게 중프랑크 왕국은 여러 번 찢어지고 나뉘어지는 과정을 거쳐 결국 몰락하였다.

이후 동프랑크 왕국은 루트비히 2세의 증손자 유아왕 루트비히 4세가 911년 후계자없이 사망하여 망했다. 서프랑크 왕국은 샤를 2세의 5대손 무위왕 루이 5세가 987년 후계자없이 사망하여 망했다. 서프랑크 왕국에서는 일드프랑스(Île-de-France, 파리)의 백작 위그 카페[10], 동프랑크 왕국에서는 프랑켄 공 콘라트 1세[11]가 왕위에 선출되어 독일과 프랑스는 완전히 분리되었고 이것은 오늘날 까지 계속되고 있다. 참고로 위그 카페는 계속 대를 이어 카페 왕조를 이루었고 방계 왕조인 발루아 왕조, 부르봉 왕조를 이루며 절륜한 가계를 자랑했지만 콘라트 1세는 딸 쿠니군데 외에는 아들 헤르만이 요절하여 후계가 단절되고 만다. 또한 헝가리지역에서 마자르족이 계속 동프랑크 왕국과 바이에른을 침공했으며, 결국 콘라트 1세는 죽기 전에 왕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영주였던 작센의 하인리히 1세에게 왕위 계승권을 주게 되었다. 하인리히 1세의 아들이 오토 대제이며, 이후 동프랑크의 역사는 신성 로마 제국으로 승계되었다.

3. 비잔티움 제국과의 관계

당연히 사이가 영 좋지 않았다. 일단 원래 동로마 영토이던 중부 이탈리아를 피핀이 멋대로 교황에게 바치는 바람에 사이가 틀어졌으며 이후 카롤루스가 동로마의 봉신국이던 베네치아와 직할령인 남부 이탈리아까지 노리면서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결정적으로 교황이 카롤루스에게 서로마 황제 자리를 수여하였고 카롤루스가 이에 그치지 않고 당시 동로마 여제 이리니와의 혼인을 통해 동로마 황제 자리까지 노리면서[12]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비잔티움 또는 동로마 제국의 입장은 476년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제위를 동로마 제국에게 바쳤기 때문에 자신들이 동서로마 황제 자리를 동시에 보유한 로마 제국이며, 따라서 프랑크 왕국이 서로마 제국이라는 칭호를 받는 것은 자신들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크족이 원래 서로마 제국의 밑에 있던 야만족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동로마 제국 입장에선 신하한테 자신들의 직위를 뺏긴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글자를 몰라서 열십자를 긋는 걸로 서명을 대신하는 무식쟁이 게르만인이 로마 주교와 결탁하여 멋대로 로마 황제를 자칭했다고 생각하여[13] 자존심이 상한 동로마인들은 자기들 여제가 아예 황제 자리를 넘겨주려 한 사실이 발각되자 결국 폭발하여 이리니를 폐위시키고 새 황제로 니키포로스 1세를 추대한 다음 프랑크 왕국과 전쟁을 벌였다. 양측은 베네치아와 아드리아 해를 중심으로 전쟁을 펼쳤다. 하지만 카롤루스는 막강한 경제력과 해군력을 가진 동로마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더이상 세력을 확장할 수 없었고 도리어 유능한 아들만 하나 잃었으며 동로마는 북쪽 국경에 나타난 신흥 세력 불가리아과의 전쟁에서 니키포로스 1세가 전사하는 참극을 겪으면서 멀리 떨어진 프랑크 왕국보다 직접적으로 제국을 위협하는 불가리아를 더 큰 위협으로 보았기에 양측은 곧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되었다. 따라서 양측은 전쟁 전 세력권을 그대로 유지하며 동로마 측에서 로마 제국 황제가 아닌 황제 칭호만 인정해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후 둘은 프랑크 왕국이 분할되어 멸망할 때까지 친교를 유지한다.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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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카를 3세의 죽음으로 인한 카롤링거 제국의 최종 분열
  2. [2] 800년 카롤루스의 대관식 이후
  3. [3] 이 언어의 직계 후손뻘 되는 언어는 다름 아닌 네덜란드어이다.
  4. [4] 바르셀로나를 위시한 북부 카탈루냐 지방.
  5. [5] 또는 자비왕
  6. [6] 로타르와 루트비히는 친형제였으나, 샤를은 이복형제였다.
  7. [7] 이탈리아 반도 북쪽 절반
  8. [8] 이곳이 바로 훗날의 알자스-로렌이 되는 '로렌'('로트링겐') 지방이다.
  9. [9] 동프랑크 왕국 루트비히 2세의 장남
  10. [10] 할머니가 카롤링거 왕조 루트비히 1세의 딸 아델라이드였기 때문에 왕족의 후손이었다.
  11. [11] 어머니가 동프랑크 왕국 아르눌프의 딸 글리스무트였기 때문에 그 역시 왕족의 후손이었다. 동프랑크 왕국 마지막 왕 루트비히 4세는 그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아르눌프의 아들이기 때문에 항렬 상으로는 루트비히 4세는 외삼촌이었고, 콘라트 1세는 외조카에 해당되었다.
  12. [12] 이리니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귀족들에 맞서 새로운 지지세력을 확보하려던 것이었겠으나... 살리카법에서 알 수 있듯이 게르만족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작위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롤루스의 눈으로 보면 동로마는 그냥 황제 자리가 빈 거나 다름없었다.
  13. [13] 사실 카롤루스 마뉴스는 분야가 좀 달랐을 뿐 결코 무식한 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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