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퍼즈 기타

오자와 켄지 (왼쪽), 오야마다 케이고 (오른쪽)

Flipper's Guitar Discography

three cheers for our side ~ 海へ行くつもりじゃなかった

CAMERA TALK

DOCTOR HEAD'S WORLD TOWER -ヘッド博士の世界塔-

1. 개요
2. 멤버
3. 밴드의 역사
4. 음악적 성격과 평가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
5.2. 싱글
5.3. 편집 앨범
6. 트리비아

1. 개요

플리퍼즈 기타 (Flipper's Guitar, フリッパーズ・ギター) (1987~1991)

1987년 도쿄에서 결성되어 도쿄를 주무대로 활동했던 2인조 밴드다.

1980년대 말 ~ 1990년대 초 시부야계 와 더불어 일본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약 3년간의 짧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음악계에서 언급되고 있으며 뮤지션들에게도 정신적 지주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일본에선 파후리 (パーフリ), 후리파즈 (フリッパーズ) 라는 애칭으로도 불리운다.

2. 멤버

이름

포지션

오야마다 케이고 (小山田 圭吾, おやまだけいご)

보컬리스트, 기타리스트

오자와 켄지 (小沢 健二, おざわ けんじ)

보컬리스트, 기타리스트

요시다 수사쿠 (吉田秀作)

베이시스트

아라가와 야스노부 (荒川康伸)

드러머

이노우에 유키코 (井上由紀子)

키보디스트

결성 초 5인조 시절의 모습, 제일 아래 있는 2명인 오야마다 케이고 (오른쪽) 와 오자와 켄지 (왼쪽) 를 제외한 위의 나머지 3명은 첫 앨범이 나온지 석달만에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탈퇴하였다

오자와 켄지 (좌측) 와 오야마다 케이고 (우측) 로 구성된 2인조 시절의 모습. 멤버들이 데뷔 초기에 탈퇴하였기 때문에 플리퍼즈 기타는 실질적으로 활동 기간 내내 2인 밴드로 활동하였다

3. 밴드의 역사

오야마다 케이고와 이노우에 유키코 두 명이 결성했던 밴드인 'PEE WEE 60's'가 모체이며 오야마다와 이노우에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탈퇴한 것을 계기로 롤리팝 소닉 (Lollipop Sonic) 으로 개명 후 라이브 하우스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몇 차례의 공연을 거친 후 요시다 수사쿠, 아라가와 야스노부가 가입하였고 마지막으로 오자와 켄지가 가입 후 5인조로 편성 된다. 계속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해나가던 중 1989년 초 음반 업계의 사람에게 메이져 데뷔 제의를 받게 되었고 그 해 봄에 첫번째 앨범을 녹음 한 후 8월 25일 일본 음반사 폴리스타 (POLYSTAR) 를 통해 첫 앨범 three cheers for our side ~ 海へ行くつもりじゃなかった 를 발표하게 된다.

하지만 첫 앨범 발표 후 얼마 안 가 멤버 3명이 탈퇴해버렸고 오야마다 케이고는 앨범 발매 직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앨범 발표 후 몇달간은 제대로 활동을 못 하였다. 오야마다 케이고가 회복한 후 12월부터 뮤직 비디오 촬영과 여러 차례의 라이브 공연 활동을 하였고 1990년 1월 25일 싱글 Friend's Again 을 발표 후 파리와 런던으로 2집 제작 겸 여행을 하러 떠난다.

녹음은 비틀즈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조지 마틴이 설립한 런던의 AIR 스튜디오 (Associated Independent Recording) 에서 진행되었다

1990년 6월 두번째 앨범 CAMERA TALK를 발매 하였고 그 해 12월까지 라이브 공연과 TV 출연을 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2집은 1990년 12월 31일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제 32회 일본 디스크 대상 (第32回日本レコード大賞) 에서 최우수 앨범 뉴 아티스트 상 (最優秀アルバム・ニュー・アーティスト賞) 을 받게 된다.

1991년 1월 초 약간의 휴식 뒤 1월말부터 5월 7일까지 3집 앨범 녹음과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였고 6월엔 도쿄, 오사카, 나고야, 삿포로, 후쿠오카 에서 투어를 가졌고 다음 공연의 리허설을 하였다.

7월 10일 세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DOCTOR HEAD'S WORLD TOWER -ヘッド博士の世界塔- 를 발매하였고 7월동안 도쿄, 오사카, 나고야 에서 각각 2회씩 공연 한 뒤 9월 19일 방송 출연을 끝으로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춘다

이후 음반사에서 멤버들에게 활동을 재개해줄것을 설득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10월 29일 음반사인 폴리스타에서 언론에 공식적으로 플리퍼즈 기타의 해체를 발표하였다. 이미 일본 8개 도시에서의 대규모 투어를 발표해놓고 티켓 판매까지 들어간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해체하였기 때문에 요미우리 신문 등 언론에선 프로 의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맹비난을 하였다.

해체 후 오자와 켄지와 오야마다 케이고 둘 다 솔로 아티스트로서 계속 음악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4. 음악적 성격과 평가

플리퍼즈 기타의 가장 큰 음악적 특징은 일본 음악보단 그 당시 서구권의 최신 트렌드 음악의 영향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1집에선 네오 아코 (ネオアコ) [1]스웨디시 팝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였으며 2집에선 뉴 웨이브 와 프렌치 팝 스타일을 추구하였고 3집에선 1, 2집의 스타일을 거의 버리고 매드체스터슈게이징 에 영향을 받은 음악을 하였다.

서양 밴드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것을 스스로 과감하게 드러냈다. TV 출연 당시 프라이멀 스크림의 바비 길레스피 헤어스타일의 가발을 쓰고 스톤 로지즈의 이안 브라운의 무대매너를 따라하며 1집 수록곡인 Joyride를 매드체스터 풍으로 편곡하여 연주하기도 하였다. #

그들의 곡 제목인 Haircut 100 와 Colour Field는 그들에게 영향을 준 잉글랜드 밴드 Haircut One Hundred와 The Colourfield에 대한 오마주이며 Goodbye Our Pastels Badges는 스코틀랜드 밴드인 The Pastels에 대한 오마주다.

1집은 그 당시로선 드물게 전곡이 영어 가사였으며 서구적인 느낌을 추구하던 그들의 자세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중 하나다.

후에 일본 뮤지션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시부야계 음악의 형성에 한 축을 담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포크 록 밴드인 서니 데이 서비스의 리더 소카베 케이이치는 "플리퍼즈 기타는 본질적으로 멋졌던 거에요."라는 명언을 남겼고, 5인조 시절 멤버였던 음악 비평가 이노우에 유키코는 "빛나는 시간은 기억으로만 남겨둬야 한다."라면서 플리퍼즈 기타 시절을 다루길 거부했다.

2003년 일본 HMV가 선정한 재패니즈 팝 100대 아티스트 중 15위를 차지하였다. # 오야마다 케이고의 솔로 프로젝트인 코넬리우스가 43위, 오자와 켄지(솔로)가 79위에 선정되어 총 3개의 이름을 올렸다.

2007년 롤링 스톤 재팬 선정 100대 명반 에서 CAMERA TALK 가 35위에 이름을 올렸다.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

5.2. 싱글

  • Friends Again (1990년 1월 25일)
  • Young, Alive, in Love (恋とマシンガン) (1990년 5월 5일)
  • Camera! Camera! Camera! (1990년 9월 25일)
  • LOVE TRAIN (1990년 11월 21일)
  • GROOVE TUBE (1991년 3월 20일)
  • BLUE SHININ' QUICK STAR (星の彼方へ) (1991년 8월 25일)

5.3. 편집 앨범

  • colour me pop (1991년 12월 21일) (대표곡, 라이브, 커플링곡 등을 모아놓은 앨범)
  • on PLEASURE BENT (1992년 4월 1일) (라이브 앨범)
  • Singles (1992년 9월 26일) (싱글 모음집)

6. 트리비아

  • 엄청난 풍운아들이기도 하다. 그 예로 인터뷰를 하던 도중에 옷가게 영업이 끝날까봐 인터뷰를 대충 끝내버리고 시부야 옷 가게와 레코드 점으로 바삐 가버렸다는 황당한 전설이 있다. 일본 디스크 대상 시상식에선 사회자와의 전화 연결중에 일부러 말이 안되는 농담따먹기를 해서 어그로를 끌거나 수상 기념 무대에서 일부러 노래 부르는 타이밍에 마이크에 입을 안 대고 고개를 돌려서 립싱크인게 완전 티나도록 한적도 있다. # 그 외에도 기존 음악계에 대해 신랄하게 까거나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이는 등 은근히 전설이 무척 많다.
  • 여성 패션잡지에도 광고를 자주 냈으며 그들의 대표적인 패션 스타일인 첼시 부츠 (Chelsea Boots), 헤링턴 자켓 (Harrington Jacket), 줄무늬 티, 화이트 진 (White Jean), 버킷 햇 (Bucket Hat) 등이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 한국에선 90년대 말 ~ 2000년대 초 일본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7년 2월 6일 해피로봇 레코드를 통해 1집과 2집이 정식 발매되었다. (2006년 일본 재발매 버젼과 똑같은 버젼이다. 리마스터링 + 보너스 트랙) 현재는 구하기 힘든 상태다. 온라인 음원서비스는 플리퍼즈 기타의 싱글을 모아놓은 앨범인 Singles 만이 판매되고 있고 나머지 정규 앨범들은 막혀있다.
  • 재결성 떡밥이 나오는 밴드지만, 지금까지 재결성 소식은 없다. 이에 대한 루머가 많은 편인데, 대부분 오자와와 오야마다 사이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2]. 다만 오자와의 1994년 곡인 "오늘 밤은 부기백"을 오야마다가 리믹스한 적이 있는걸 생각하면 90년대까지는 사이가 그런대로 괜찮았는듯.


  1. [1] 더 스미스 와 아즈텍 카메라 등 영국 인디팝/쟁글팝 밴드들의 영향을 받은 장르. Neo Acoustic의 줄임말이며 1990년대의 일본 음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2. [2] 오야마다 케이고오자와 켄지가 처음 만난 계기가 바로 오야마다의 비행때문이었다. 학창시절의 그는 걸핏하면 학교폭력을 일삼고 몇몇 학생들에게 이지메를 가하는 일진이었는데, 그러다가 학교의 교사들에게 걸려서 거하게 참교육을 당하고는 당시 학교의 학생회장이던 오자와의 앞으로 불려간 뒤에, 전 학생들 앞에서 자기 잘못을 공개사죄하는 망신을 당해야 했다. 이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의 순간이었고(...), 그러니 오야마다의 개차반 인성을 잘 아는 오자와가 그와 한번 해체된 팀을 다시 꾸리는 것을 달가워 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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