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랄 1세 블로탄

Harald Blåtand

(910? 또는 911? ~ 985? 또는 986?)

고름 왕조의 제2대 왕. 고름 1세의 차남.

출생년도는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910년에서 911년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정 도중에 형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후계자가 되었으며, 어머니처럼 기독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부족 국가로 분열된 덴마크를 통일하고 브레맨 지역, 저트랜드 지역에서 수도사들이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을 허용했다. 남 스칸디나비아에 교량을 건설하고 아버지의 무덤을 크리스트교 방식으로 바꾸어 2개의 고분 사이에 교분을 지었다.

노르웨이에서는 누이 군힐드 콩스머의 남편인 에리크 1세가 954년에 전투로 사망하면서 군힐드가 다섯 명의 아들과 함께 자신에게 의탁하자 조카들의 영지를 찾아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600척의 함선을 동원해 노르웨이를 공격했다. 강력한 저항을 받아 저트랜드 지역을 공격받았지만 961년에 호콘 1세를 스토드 섬에서 전사시켰으며, 조카인 하랄 2세 그레이클록이 주민들에게 강압적 기독교를 강요하면서 노르웨이를 통일하려고 했다가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호콘 1세의 세력과 동맹을 맺었다가 하랄 2세 그레이클록이 암살당하자 조카의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노르웨이를 공격해 지배했다. 그러나 974년에 다네비르케에서 독일인들에게 패해 노르웨이를 상실했으며, 983년에 오보트리테족과 동맹을 맺고 독일인들을 덴마크에서 몰아내지만 985년 또는 986년에 반란을 일으킨 스벤 1세 트베스캐그에게 살해당했다.[1]

놀라운 사실은, 블루투스가 그의 이름에서 따와 나온 말이라는 점이다. 하랄 블로탄을 영어식으로 읽으면 헤럴드 블루투스가 되기 때문이다.


  1. [1] 어떤 눈보라 동네의 막장아들이 떠오르는 행보지만, 여기엔 어쩔 수 없는 뒷사정이 있었다. 하랄 왕이 기독교에 호감을 표했던 것은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왕권 강화와 장자 상속제 등의 자연스러운 도입 같은 정치적인 목적도 다분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전통과의 충돌에 심하게 거부감을 표하던 봉신들과의 마찰은 필연적이었고, 일단 왕실의 힘을 모으고자 무리하게 장남에게 밀어주는 정책을 밀어부쳤는데, 그 방식이 흠좀무스럽게도 차남인 스벤을 죽여서 자연스럽게 유일한 후계자인 장남만 남기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스벤은 살아남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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