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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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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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민주당 대표

총재
김대중

총재 권한대행 / 제4대
한광옥

제5대
한화갑

제3대
김중권



대통령비서실장

국민의 정부 (1998 ~ 2003)

제21대
김중권

제22대
한광옥

제23대
이상주

박근혜 정부 (2013 ~ 2017)

문재인 정부 (2017 ~ 2022)

제4대
이원종

제5대
한광옥

제6대
임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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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광옥(韓光玉)

출생일

1942년 1월 29일(77세)

출생지

전라북도 전주시

본관

청주 한씨

가족관계

4남 2녀 중 장남
배우자 정영자, 슬하 1남 1녀

범봉(凡峯)

학력

중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영문학 / 제적[1])

종교

개신교

소속 정당

자유한국당

의원선수

4

의원대수

11, 13, 14, 15

현직

자유한국당 전임고문

약력

제11대 국회의원(서울 관악)
평화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제13~14대 국회의원(서울 관악갑)
민주당 최고위원, 사무총장, 부총재
제15대 국회의원(서울 구로을)
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통일미래연구원 이사장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박근혜정부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1. 개요
2. 생애
2.1. 정치 인생
2.2. 새누리당 입당과 박근혜 정부 마지막 비서실장
2.3. 왜 이렇게 변했나?
3. 선거이력

1. 개요

민주통합당원수

대한민국정치인. 호는 범봉(凡峯)이다.

보시다시피 동교동계의 일원으로 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가, 18대 대선을 계기로 새누리당에 합류해 급기야는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오른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최초로 두개의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현재 당적은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2. 생애

1942년 전라북도 전주부에서 태어났다. 전주북중학교와 서울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 6.3 항쟁에 참여하여 제적당하였다.

2.1. 정치 인생

신민당에 속하여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하였다. 1978년 신도환 최고위원의 보좌역으로 활동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임철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비록 민정당의 2중대로 불리던 구색정당 민주한국당 소속이었지만, 1982년 국회에서 '정치보복 중단, 김대중 석방, 광주사태 진상 규명'을 외치면서 야당 정치인으로 유명세를 탔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한민주당 김수한 후보와 민주정의당 임철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민주한국당을 탈당하고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5년 고려대학교 앞 시위 선동 사건으로 박찬종, 조순형 등과 기소되어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1986년 민주화추진협의회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노동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이상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장에 출마하려 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행정가 출신 고건을 낙점하자 격하게 반발하였다. 반면 똑같이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꿈꾸던 노무현은 덤덤하게 포기.

1999년 서울특별시 구로구 을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2001년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2000년 나라종합금융 퇴출과 관련해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2002년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008년 사면, 복권되었다.

2009년 김대중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동교동계 원로 정치인으로 생을 끝낼 뻔... 했으나...

2.2. 새누리당 입당과 박근혜 정부 마지막 비서실장

2012년 정통민주당을 창당하여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권에 X맨, 고춧가루 노릇을 한 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에 입당하여 김경재, 한화갑 등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였다.[2] 선거 후 그에 대한 공로로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16년 11월 3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위기에 빠진 박근혜정부대통령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최초로 두개의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낸 분이 국무총리로 갔으면 갔지 비서실장이 웬 말이냐"

2016년 11월 4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

그와 동시에 2016년 11월 2일 출범한 박정희 100주년 기념사업 고문이 되었으며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5%에 대해서 "한 부분의 통계를 갖고 정책이나 대책을 세운다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말까지 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결국 2016년 11월 5일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 보고 "어제 광화문 광장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준엄한 뜻을 매우 무겁게 느끼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새누리당과 야3당을 찾아 대통령이 국회로 올 수 있으며, 영수회담에서 총리에 관해 논의하자고 했다.#

이후 박근혜가 탄핵된 뒤 빈 집이 된 청와대를 관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문서들을 파기했다는 의혹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 임종석으로 교체되었다.

2.3. 왜 이렇게 변했나?

과거에 DJ 밑에서 일했으며, 3선개헌 반대, 6.3 항쟁등에 참여해서 반 유신, 반 독재 성향을 가졌던 인사가 불과 10년 사이에 보수인사로 변한 것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충격일 수 밖에 없다.[3][4]

다만, 새누리당으로 넘어간 것은 자신을 홀대한 민주당, 특히 현 더불어민주당의 친노 주류세력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수인사로 변모한 것은 참여정부에서 끈이 떨어진데다가 야인이 되고나선 그의 배우자가 이화여대 아너스 클럽[5]에 다니면서 여권인사와 인맥을 맺은 영향도 있다.

애초에 우리나라 정당 이합집산이 인물위주 구성에서 이념은 대북문제를 제외하면 친시장 성향으로 거기서 거기였기에 한광옥 전 대표가 새누리당에 간 것이다. 과거사를 보자면 과거 김대중-김종필 연립정부 즉 DJP 연합은 대선을 앞두고 40년간 김대중을 괴롭힌 레드 컴플렉스와 충청도 핫바지론 주장하며 다시 한번 정권을 잡아보려는 김종필의 야심이 맞아 떨어진것이지 이념적 성향과 전혀 거리가 멀었다.

더군다나 당시 한국정치는 이념이 아니라 정치보스에 줄서는 문화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내각제 개헌이 한나라당 반대로 좌절되고, 레드컴플렉스를 완화해준 자민련이 한나라당의 공격에 무너지며 지지기반을 잃어버려 DJP연합도 해체된것이지 DJP연합의 결성이 이념이 같아서가 아니다.결국 17대 총선 이후 자민련은 한나라당으로 흡수되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인사들이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에 있어서 과거사를 보고 충격을 먹는(?) 일이 많은데 정치인들의 정권에 따른 이익추구 성향이지 특출나게 변절 타령은 절대 아니다. 새누리당도 과거 이재오, 손학규, 김문수등의 운동권들이 상당수 입당했었고 민주당에도 군사정권 시절과 보수정권 인사 영입한 경우도 많다.[6]

민주당 비대위원장 대표를 지낸 김종인은 문재인이 영입했지만 전두환 쿠데타로 만든 신군부에 협력하며 국보위에 참가했고 여당에서 국회의원 공천을 세번받고 2번 당선된 사람이었고, 자유한국당의 비대위원장을 지냈던 인명진 목사는 보수 성향의 인사이긴 하나 독재정권에 부역하거나 긍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70~80년대 빈민운동 노동운동을 하다 박정희때 긴급조치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으며, 훗날 경실련 창립멤버였다.

다만, 동교동계로서 김대중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인사여서 괴리감이 심했던 것 뿐이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8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12선거구)[7]

민주한국당

47,668 (22.4%)

당선 (2위)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민주한국당

64,475 (23.2%)

낙선 (3위)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

평화민주당

51,199 (39.0%)

당선 (1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

민주당

56,061 (42.5%)

당선 (1위)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

새정치국민회의

43,197 (37.7%)

낙선 (2위)

1999

1999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15대 국회 서울 구로 을)[8]

새정치국민회의

27,826 (53.5%)

당선 (1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

정통민주당

5,207 (4.1%)

낙선 (3위)


  1. [1] 재학 중 6·3 항쟁에 참여하여 제적
  2. [2] 김경재와 같이 입당. 한화갑은 입당을 하지 않았다.
  3. [3]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인사는 자유총연맹의 총재가 된 김경재가 있다. 둘 다 2012년 전후해서 넘어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4. [4] 다만 이런 행보가 대한민국 근대사에 한광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 독재타도를 주도했던 학생운동권, 노동개혁을 주도했던 노동운동권에서도 정반대인 보수로 넘어간 선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노동운동권은 김문수, 이재오, 학생운동권은 원희룡, 하태경이 있다.
  5. [5] 이화여대는 정유라의 부정입학 대상이었으며, 아너스클럽은 우병우의 장모 김장자와 최순실이 활동했던 곳이다.
  6. [6] 민정계 인사 이종찬이 창당한 새한국당같은 예가 있으며, 김부겸이전에 TK에서 가장 당선에 가까웠던 민정계 민주당 인사인 김중권도 있다.
  7. [7] 관악구
  8. [8] 전임자 이신행 당선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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