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큉

1. 개요
2. 활동
3. 성향
4. 참조

1. 개요

Hans Küng

20세기판 마르틴 루터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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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인디펜던트

1928년 3월 19일 스위스 출생의 가톨릭 사제. 대표적인 반교리적 진보파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스위스 중부지역이자 가톨릭 강세 지역인 루체른 주 출신이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가톨릭 신앙을 가졌다고 한다.

2. 활동

교황청 소속 그레고리오 대학을 졸업했고 사제서품을 받은 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스 큉의 박사 논문 주제는 의화론으로 개신교 신정통주의 칼바르트의 신학과 가톨릭의 의화론이 충돌하지 않고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1]였고 칼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의 뿌리를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에 두었기 때문에[2] 필연적으로 교회 일치를 지향했다.

훗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된 요제프 라칭거의 절친으로 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신학적 연구를 제공했으나, 나중에 라칭거 신부가 정통 교리 수호와 연구에 집중함에 따라 관계가 소원해졌고, 교황무류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교수권을 박탈당하기도 하였다. 이는 요한 바오로 2세 시기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라칭거 추기경이 건의한 바였다.

이 사건 후 가톨릭계 대학에서 신학을 강의할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는 큉 교수와 논의 끝에 에큐메니컬 신학부를 신설하였다. 가톨릭 교계에서도 교수 자격만 박탈하고 사제직은 박탈(파문)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3]

한스 큉 스스로는 20세기판 종교 재판을 당했다며 매우 아쉬워한다. 그는 바티칸의 교수직 박탈 조치가 시대 착오적인 교황무류성 교의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조치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세계 신학자 수백 명 이상이 교황무류성 교의를 비판했지만 교회의 압력으로 입을 다물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 한두 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3. 성향

가톨릭 사제로서도 신학적으로 反정통 교리적 진보파이다. 가톨릭 내 신학적 反정통 교리적 진보파[4]나 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5]에서 관심을 보이는 신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행보는 학문적인 면에서 주제가 다양한 편이고, 저서는 가톨릭만을 다루지 않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 문학, 윤리 등 다양한 영역까지 다루었다.《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 시리즈는 이름이 알려져 있다. 당연히 가톨릭 내 정통 교리를 준수하는 사람들은 그의 저서가 反교리적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었다고 평가한다. 교황무류성뿐만 아니라 여성 사제 서품[6], 사제 독신제 폐지에도 찬성하는 입장이며 피임, 낙태, 이혼 등 가정과 생명 문제나 동성애 문제에도 反가톨릭 교리적 입장이다. 그리고 교계에서 존경받는 요한 바오로 2세를 매우 정통 교리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비판했고, 여러 차례 순방으로 많은 교구를 파산시켰고 낙태나 이혼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이 때문에 가톨릭 정통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에게 부정적이며, 특히 그의 교회론이나 여성 사제 찬성론을 매우 비판한다.

그러나 한스 큉은 교황제도 자체는 존중하며 적어도 '형식상' 가톨릭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교회론, 교회일치운동, 일부 사회교리에서는 반정통 교리적인 입장을 피력했지만, 교황수위권의 근간 및 7성사, 주교제를 완전 부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 한스 큉의 사제 서품은 여전히 유효하며[7] 강의 자격이 중지된 이후에도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만나 대화를 나누었으며, 2016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교황무류성 토론을 제한하지 않겠다." 하는 개인적인 답변을 받았다 한다.출처: 가톨릭 평화신문 (2016. 05. 08)

또한 한스 큉은 정치적으로는 우파 자유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서유럽 주류의 이민(다문화) 정책과 복지정책을 부정적으로 보며, 자유주의자답게 사회주의도 부정적으로 본다. 따라서 한스 큉을 개신교의 후기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적 反정통 교리 진보파(정치적 진보파가 아닌) 신학자로 볼지언정 해방신학 계열로 보기는 어렵다.

4. 참조

타블렛 뉴스 [한스 큉, 투병으로 인한 조력 자살 고려 중]


  1. [1] 바르트 역시 큉의 연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71941&path=201309
  2. [2] 바르트는 자신이 직접 배운 스승들 당시 자유주의 신학과 완전히 학연 단절을 선언했다. 그 대신 루터와 칼뱅 같은 종교개혁 1세대 신학자들이 연구로 돌아섰고, 루터의 로마서 강의는 바르트의 명작으로 꼽히는 (1920년 발표한) 로마서 연구로 이어졌다.
  3. [3] 아무래도 한스 큉을 파문했다가 자칫 그와 같은 반교리파의 반발이 교회의 분열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현실적인 측면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4. [4] 여기서 말하는 신학적 진보파는 이혼, 동성애와 같은 사회교리 문제에 反정통 교리적 스탠스를 보이고, 反정통 교리파들의 에큐메니즘 관점에서 폐쇄주의적이라 여겨지는 가톨릭 교회론에 회의적 시각을 보이는 그런 스탠스를 말한다. 경제적 정의에 관심을 보이는 정치적 진보파와는 다르다. 물론 양성평등,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을 보이다가 신학적 反정통 교리적 진보파로 전향하는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도(단, 이혼, 동성애 등은 제외) 신학적으로는 정통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5. [5] 특히 성공회루터교회
  6. [6] 여성 성직자를 인정하는 성공회에서도 여성 사제 서품에 반발하여, 고교회파 내 보수파 다수가 성공회를 탈퇴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독자적인 교단을 창설하는 대분열이 일어났을 정도로 파괴력이 큰 사안이다. 성공회에서도 논란이 된 사항에 긍정적이라는 것은 가톨릭 내에서 상당히 反정통 교리적인 입장이라 할 수 있다.
  7. [7] 사실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한 번 유효하게 서품을 받은 사람은 결코 그 서품이 취소되지 않는다. 만약 취소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오직 하느님뿐. 교회가 파문하고 면직한다 할지라도 서품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만약 서품 자체를 취소할 수 있다면, 해당 인물이 파문이 풀린 뒤 다시 서품을 받도록 해야 하겠지만 가톨릭 교회는 그러지 않는다. 가톨릭의 정통적인 교리 해석을 굳게 믿는 사람일수록, 서품은 취소될 수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제 서품 관련 교리는 초기 교회 때 치열한 논쟁을 거쳐서 교도권에 의해 정식 교리로 못박아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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