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KBO 리그 구단

{{{#!folding PC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0px;margin-top:-5px;margin-bottom:-5px"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넥센 히어로즈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KT 위즈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folding 모바일 [ 펼치기 · 접기 ]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넥센
히어로즈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KT
위즈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

[1]

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창단

1986년 3월 8일

법인 설립

1985년 3월 11일

팀명 변경

1993년 11월 1일

법인명

㈜한화이글스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구단명

빙그레 이글스 (1986~1993)
한화 이글스 (1994~)

연고지

대전광역시[2][3] (1986~)

구단주

김승연

사장

김신연[4]

단장

박종훈

감독

한용덕

홈 구장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5]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6]

2군 구장

서산 야구장

마스코트

마스코트
위니, 비니, 수리[7]

킷 스폰서

없음[8]

워드 마크

관련 홈페이지

| | | |

공식 어플리케이션

|

응원단장

홍창화

최종 우승 (1회)

우승 엠블럼

1999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2회)

1989년, 1992년

프랜차이즈 팀 기록

최고 승률

.653
1992년 126경기 81승 43패 2무

최저 승률

.290
1986년 108경기 31승 76패 1무

최다 승

81승
1992년 126경기 81승 43패 2무

최다 패

85패
2013년 128경기 42승 85패 1무

최다 관중

660,472명
2016년[9][10]

최소 관중

128,387명
2004년[11][12]

불꽃 한화, 투혼 이글스

1. 개요
1.1. 역대 BI
2. 팀의 특색
3. 신인 드래프트
4. 팀의 역사
4.1. 연표
4.1.1. 리그의 2인자 (1987~1992, 2005~2007)
4.1.1.1. 1차 전성기 (1988~1992)
4.1.1.2. 약간의 부진기 1 (1993~1998)
4.1.1.3. 드디어 염원하던 한국시리즈 우승 (1999)
4.1.1.4. 약간의 부진기 2 (2000~2004)
4.1.1.5. 2차 전성기 (2005~2007)
4.1.2.1. 김응용 감독 시대 (2013~2014)
4.1.2.2. 김성근 감독 시대 (2015~2017.5.22)
4.1.2.3.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 (2017.5.23~2017.10.3)
4.1.2.4. 한용덕 감독 시대 (2018~)
4.2. 관련 기록들
4.2.1. 역대 감독
4.2.1.1. 명감독들의 무덤?
4.2.2. 역대 성적
4.2.3.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4.2.4. 연도별 시즌 요약
4.2.5. 역대 유니폼 변천사
4.2.6. 역대 트레이드
5. 이글스 레전드
5.1. No.35 영원한 홈런왕, 장종훈
5.2. No.23 가장 완벽한 투수, 정민철
5.3. No.21 송골매, 송진우
6. 이글스의 스타들
7. 은퇴식
8. 기타
9. 지역 연고 학교
10. 선수단
11. 응원단
12. 응원가
13. 인기와 팬덤
13.1. 유명인 팬
14. 커뮤니티
15. 사건 사고
16. 연관 단어
17. 둘러보기

1. 개요

1986년 빙그레 이글스란 이름으로 KBO의 제7구단으로 창립했다. 이글스라는 팀명은 일반 공모를 통해 지어졌으며 1993년 11월 빙그레 이글스에서 한화 이글스로 바꾼 이래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정확하게는 빙그레한화그룹의 계열사던 시절에 운영주체를 빙그레에서 한화그룹으로 옮긴 것. 팀의 상징색은 주황(빙그레 시절)-빨강(팀명 변경인 1994년부터 2007년 시범경기까지)-주황(한화그룹 CI 변경 후). 참고로 창단 이후 세 번째 시즌에 1차 전성기를 맞은 신생구단의 전설이다. 이 기록은 26년 후 또 다른 신생구단이 1군 진입 2년차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깨진다고 그 쪽 팬들은 주장하지만, 한화의 경우 2군 리그에서의 준비기간이 없이 바로 1군 경기를 치루었다. 창단 2년차에 탈꼴찌에 성공했다. 뒤이어 창단된 쌍방울 레이더스는 페넌트레이스 1위나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고, 주축선수단은 SK 와이번스 창단의 밑거름이 되었다. 넥센 히어로즈삼청태현의 마지막인 현대 유니콘스 선수단을 바탕으로 창단된 구단. 빙그레 이글스 참조.

한화의 자랑으로는 응원가, ++, 응원단장, (...) ++ 세 가지를 꼽는데 이견이 없다. '한화 에이스와 4번은 하늘이 점지한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항상 에이스와 4번은 리그탑이다.[13] 팀의 상징은 독수리(Eagles)인데 2000년대 중반부터 치킨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며 이를 줄인 약칭 '칰'이나 이를 변형한(보약의 의미가 내재된) '' 으로 불리기도 한다. 암흑기에는 아예 보양식으로 '두산'의 '곰탕'드립처럼 '삼계탕'으로 인식되었다. 처음에는 다른 팀 팬들이 폄칭으로 부르기 시작했으나 이후 한화 프런트의 몇몇 뻘짓과 5886899678의 진행으로 인해 한화팬들이 스스로를 비웃는 경우로 쓰는 경우가 늘었다(...). 그런데 바꾸려고 해도 칰이 입에 붙어서 바꾸기 힘들다 김성근 감독이 사령탑에 오른 2015 시즌 초반경에는 "꼴칰"의 안티테제에서 (Top)+독수리라는 뜻의 "탑돇"(...)이라는 별명이 등장하기도 했다. 다만 이쪽은 뭐든 못 까서 안달이 난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조롱의 의미 또한 담겨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도 야갤러들이 사용하는 뉘앙스 또한 '똥칰'[14] 등과 같은 비칭들을 사용할 때와 거의 유사한 편이다.

대전을 대표하는 브랜드 3위에 뽑힌 한화 이글스 기사.
참고로 이 조사는 한화 이글스의 암흑기였던 2014년에 조사된 내용이다.과연 보살

연고지는 대전광역시이며 연고지의 홈구장인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가 작은 편이었으나 2012년 시즌 후 김응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외야 펜스를 뒤로 밀었다. 부연고지는 청주시이며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을 제2 홈구장으로 활용 중이다. 2015년 시즌부터 강원도 춘천시의암야구장제3 홈구장으로 쓸 예정이었으나 프로야구를 치르기 위한 여건이 충분치 않아 결국 무산되었다. 제2 홈구장인 청주구장은 작아서 투수들의 무덤[15]으로 악명이 높다. 일명 한국의 쿠어스 필드. 한화 이글스 2군 구장은 서산 야구장이다.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1999년에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우승한 것이 유일하다. 대신 준우승만 5번을 하였다. 대전은 의 고향

2015년 기준으로 팀 컬러는 일명 "마리한화"[16]로 대표되는, 안 보려고 하는데도 막상 안 보기에도 뭐하고, 지고 있어도 왠지 이길 것 같고 필승조 혹사와 클러치 에러 때문에이기고 있어도 왠지 질 것 같은 마약야구, 이겨도 뭔가 불안하게 이기는 똥줄 타는 야구가 팀 컬러가 되었다(...).

1.1. 역대 BI

역대 한화 이글스 BI

1986~1993

1994~2006

2007~

1993년을 끝으로 빙그레 이글스에서 한화 이글스로 변경 되면서 기존의 엠블럼을 다듬은 로고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2006년, 한화그룹의 CI 변경과 함께 한화 이글스도 BI 변경 작업에 들어갔고 2007년 KBO 시범경기 직후 변경된 엠블럼을 발표했다.

여담으로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사용했던 로고는 Zhejiang Haoyu Industry & Trade Co.,Ltd라는 중국 측량기계 생산 회사에서 사용 중이다. 홈페이지를 보면 2004년에 설립된 회사인데 등록상표마크(®)가 붙어있다.(...)

2. 팀의 특색

/팀 컬러 참조.

3. 신인 드래프트

대전팜은 북일고, 대전고, 공주고, 청주고, 세광고 정도밖에 없어서 숫적으로 크게 열세였으며 질적으로도 북일고를 제외하면 나머지 팜들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에 고졸우선지명과 연고지역 1차 지명 제도를 폐지하는데 앞장선 구단이며 결국 이 두 제도는 단계별로 각각 1999년 지명과 2009년 드래프트를 마지막으로 폐지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고졸우선지명과 1차지명이 폐지된 그 해에 한화의 팜 내부지역에서 그 해의 최대어가 배출되게 된다. 고졸우선지명의 경우에는 조규수, 마일영이 배출되었고 한화의 스카우트진들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화는 조규수를 택했다. 재미있는 건 이 조규수를 2010년에 두산에 트레이드 했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일영을 트레이드로 영입해서 결국 두 선수 모두 한화에 몸을 담아보거나 담고 있는 상황이 됐다. 1차지명의 경우에는 2010년에 연고 고교인 천안북일고에서 신정락이 배출되었는데(고교 졸업은 2006년) 2010년 신인지명부터 1차지명이 폐지되었기에 전체 1번으로 LG 트윈스가 신정락을 지명했고 한화는 1라운드 4번으로 북일고 투수 김용주를 지명하였다.

그 중에서도 북일고가 한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라 팜 내에 좋은 선수가 없다는 1차적인 이유에 정치적인 이유까지 겹쳐 북일고 선수가 지명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상군, 김태균, 안영명, 유원상 정도를 제외하면 꾸준히 픽한 북일고에서 배출해낸 주전급 선수가 그다지 없고 유원상도 먹튀 소리를 듣고 있는 판이라 북일고를 픽하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거기에 전면 드래프트 실시 첫 해에도 1, 2라운드 지명을 북일고 출신으로 해서 욕을 바가지로 먹기도 했었으며 1지명에 대해서 납득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이 때문에 빙그레 시절부터 북일파와 비북일파(대전고, 공주고, 세광고, 청주고(청주기공고) 등) 간의 갈등으로 팀이 되어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애초에 근거가 빈약하다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물론 1994년에 강병철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북일고 출신의 비중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이 외에 특징으로 한화의 스카우터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하드웨어에 집착하면서 떡대들을 우선적으로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떡대를 보고 픽한 양훈이 대표적. 그 외에도 항상 코너 포지션의 거포유망주는 쌓아놓고 보는 편이기에 팀 내 거포는 거의 끊기는 법이 없다.[17] 최악좆망이라는 2010년 시즌에도 최진행이 타자진에서 버티고 있었을 정도. 그 반대로 테이블 세터가 될 만한 타자는 픽 자체를 잘 안하기에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때문에 2013년 시즌 이후 정근우, 이용규를 FA로 영입할 때까지 한화는 늘 테이블 세터 부족에 시달렸다. 또한 하드웨어 덕후답게 은근히 포수 자원도 많이 쌓아놓는다. 정범모, 한승택, 이준수, 이희근, 박노민, 엄태용 등등... 하지만 코치가 조경택이잖아? 다행이도 한화 포수를 망치던 명포수곰의 곁으로갔다.

특이사항으로는 김인식 감독의 재임기간 동안 야수자원에 대한 픽, 특히 외야자원에 대한 픽을 대폭 줄이고 투수에 많은 카드를 사용했다. 2006년 드래프트에는 1차 포함 상위 6명 중 4지명 정범모를 제외하면 4명이 투수였으며 2007년은 1차 포함 상위 7명 중 4명을, 2008년에도 6명 중 4명, 2009년 지명 7명 중 5명이 투수 지명으로 매년 상위픽에 대부분을 투수에 사용했으며 야수자원도 정범모, 최연오, 이희근 등 포수로 상위픽을 찍으면서 포수자원에 편중된 픽을 했다. 1차 지명인 박상규김회성, 그리고 2차 지명자인 오선진김강 전부 포함해 단 4명만이 김인식 감독 기간에 상위에서 제대로 픽한 야수자원이었다.[18] 이 이외의 자원은 신고선수나 영입선수로 때웠다.

이렇게 굉장히 투수에 치우친 지명을 몇 년간 이어간 결과 당연히 신인 야수에서 새롭게 나오는 자원이 증발해버렸으며 결국 야수 부족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2010년 시즌 중에 2군에서 몇 명의 야수가 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지자 경기에 나갈 야수가 부족한 처참한 상태를 맞이하게 됐다.

또 큰 문제가 생겼는데 이렇게 장기간 투수를 집중적으로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키워낸 투수가 없다는 것. 그나마 허유강황재규같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투수는 재활의 신이라고 불리는 어떤 킬감독에 의해 재활해야 할 신세가 되었고, 그나마 이런 투수들도 몇 되지 않았다. 그나마 김혁민이나 유원상처럼 1군에서 털리면서 애증의 대상이 된 투수도 있지만 최진호윤기호, 구본범처럼 아주 2군에서 버로우를 해버린 케이스가 더 많았다. 게다가 야수진 쪽에서도 포수자원을 집중적으로 모았는데 애초에 포수는 단기간에 성장하지 않는 포지션인 데다가 그나마 타격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가 없으니...

결국 2010년 2지명 김재우와 4지명 이상훈을 지명하면서 그동안 픽이 없었던 중견 자원을 픽했으며 야수자원이 대폭 모자르게 되자 근 10년간 다른 팀에 비해 적게 픽하던 경향을 버리고 10명을 꽉 채워서 지명한 뒤에 모두 계약했다. 또한 야수자원의 픽도 상당히 많았는데 2011년에는 포수 나성용, 유격수 강경학, 1루수 김용호, 외야수 임신호오준혁에 투수로 픽했지만 이후 외야수로 키울 예정인 문재현까지 총 6명의 야수를 뽑으면서 그동안 부족했던 신인 드래프트를 다시 채우고 있다.

2011년 타자 기대주 김회성, 오선진, 김강 들은 터지지 않고 삽질하자 2012년 최대어 신일고 내야수 하주석을 1지명으로 지명했다.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 야수 1순위 지명. 팬들은 불안한 내야를 어떻게든 안정시켜주길 기대하고 있다.[19] 또한 최우석, 임기영 등 고교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한 선수들과 북일고 포수 엄태용을 영입함으로써 나름대로 쏠쏠한 드랩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편으로 신생팀 창단에 의해 피해를 보기도 했다. 북일고 출신의 에이스 윤형배를 지명할 수 있는 기회가 NC 다이노스의 우선 지명으로 인해 날아갔고 1차지명 제도가 부활한 첫 해인 2013년 6월 발표된 10번째 구단 KT 위즈의 우선 지명 선수 두 명 중에서도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북일고 류희운이 예상을 깨고 포함되며 한화 이글스는 멘붕. 충청팜에서 1차로 지명할 만한 선수가 류희운 뿐이었기에 더 큰 손실이다. 대졸 선수를 지명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

게다가 2014년에도 KT 위즈가 우선지명으로 청주고 투수 주권을 지명하여 또 다시 연고지 최대어를 뺏겼다.[20][21] 그나마 천안북일 김범수가 있어 2013년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2년 연속 연고지 탑유망주를 뺏겼으니 한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판. 2009년부터 팀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는데 연이은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한화가 온전히 1라운드 1픽을 행사한 적은 유창식 단 한 번 뿐이다.[22]

2016년에는 이례적으로 여태까지 갖고 있던 지역팜 안배, 포수 자원 수급, 즉전감 픽의 원칙을 좀 벗어난 점이 보인다. 그리고 항상 투수에게 강조하던 제구보다는 구위형 투수들을 뽑았고,[23] 외야수 자원을 확충했다. 특히 대졸에다가 유일하게 즉전감으로 비벼볼 만한 원혁재가 기대할 만하다.[24][25]

4. 팀의 역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베이징 올림픽 야구 등으로 야구가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 이후 야구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대부분 한화를 일명 꼴칰, 만년 하위팀, 사회인 야구팀 등으로 부르며 약체로 평가하고 있다. 심하게는 '아직 우승해본 적도 없다', '4강도 못 가봤다' 라며 한화를 창단 초부터 답이 없던 만년 하위권팀이라 비난하기까지 한다. 신규 야구팬 유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2008년부터 한화 성적이 급전직하했으니 이런 인식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26]

하지만 한화가 적어도 만년 하위팀은 아니었다. 여느 팀들처럼 한화도 몇 차례의 짧은 전성기가 있었다. 성적이 워낙 들쭉날쭉했던 탓에 전통의 강팀이라 부르기엔 어려운 편이지만 그래도 빙그레 시절만 하더라도 분명히 리그의 강팀이었으며 한화로 바뀐 이후로는 강팀이라는 인식은 사라졌지만[27] 그래도 2008년 이전까지는 꼴찌는 안하고[28] 가을야구도 종종 하는 중위권 팀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실제로 역대 가을야구 횟수를 따져보면 한화는 창단 이래 지금까지 12번 가을야구에 참가했다. 이는 2016년까지의 LG 트윈스의 포스트시즌 진출 횟수와 같으며, 한화가 마지막으로 포스트시즌에 올라갔던 2007년까지 존속했던 현대 유니콘스가 삼청태 시절을 포함해 10번 가을야구에 참가했고, 5886899678이 시작되기 이전인 2007년 기준으로는 22시즌 동안 12번 가을야구에 참가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최소한 중간 정도는 가는 팀이 맞다는 결론이 나온다.

4.1. 연표

4.1.1. 리그의 2인자 (1987~1992, 2005~2007)

2008년부터의 안습한 팀 성적 때문에 거의 잊혀지고 있는 사실이지만[29] 총 5회 준우승(1988, 1989, 1991, 1992, 2006년)으로 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에 이어 세 번째로 준우승을 많이 한 팀이다. 콩라인 . 하지만 10회 준우승의 삼성과 6회 준우승의 두산은 각각 한국시리즈 우승도 8번, 5번씩이나 해 봤지만[30] 빙그레-한화 이글스는 뭐...[31] [32] 이러다 최다 준우승 자리도 두산에게 역전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승률도 가장 낮은 팀이다(1회 우승/6회 진출, 16.7%).

2017년 기준으로 한화 다음으로 한국시리즈 승률이 좋지 않은 팀은 LG 트윈스다(총 2회 우승/4회 준우승, 승률 33.3%). 참고로 삼성의 한국시리즈 승률은 7회 우승/17회 진출, 즉 41.1%이다. 2000년대 들어와서 7회 우승을 했기에 승률이 이만큼 오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1985년 우승은 한국시리즈를 안 치른 통합 우승이어서 승률 계산에서 제외했다. 한화보다 준우승 횟수가 1회 많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승률은 5회 우승/11회 진출인 45.4%이며, 한국시리즈 준우승 1회의 넥센 히어로즈NC 다이노스가 있지만 이 경우는 한국시리즈 진출 경력이 한 번이므로 계산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가장 승률이 좋은 팀은 KIA 타이거즈로 11회 우승/11회 진출로 100%의 승률을 자랑한다.

해태(현 KIA)에 3번(1988년, 1989년, 1991년), 롯데삼성에게는 한 번씩 한국시리즈에서 패해서 준우승을 했다(vs롯데=1992년, vs삼성=2006년).

더구나 1989년, 1992년 시즌은 정규시즌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는데도 하위 팀(각각 2위 해태, 3위 롯데)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런 경우는 단일리그로 치른 25번의 시즌 중 단 네 번 일어났는데(1989 빙그레, 1992 빙그레, 2001 삼성, 2015 삼성), 그 중 두 번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해태 타이거즈에게 당한 일은 수십 년이 지나 누군가에게 복수하게 되는데...

4.1.1.1. 1차 전성기 (1988~1992)

1차 전성기는 빙그레 시절로 80년대 후반부터 화려한 투타 선수진으로 강팀으로 평가받았다.

당시에 해태 다음갈 정도의 에이스들[33]을 보유하고 있던 강팀이었으며, 88년부터 92년까지 5년간은 22422의 준수한 순위를 기록한 바 있다. 게다가 1989년과 1992년에는 앞서 언급했듯 정규 시즌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직행했다.

그러나 이 시기엔 해태와 롯데에 밀려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지 못했고 93년 한화 이글스로 바뀐 이후 페넌트레이스에선 20년간 가을 야구를 겨우 7번 하고 정규 리그 우승은 고사하고 2위도 못해봤다. 그나마 2001년에는 8위 롯데에 불과 2게임차 앞선 4위였는데 롯데가 호세의 징계, 김명성 감독 급사라는 악재를 만난 덕을 봤다. 만약 그당시에 롯데가 악재가 없었다면 그해 순위는 달라졌을것이다.

4.1.1.2. 약간의 부진기 1 (1993~1998)

그러나 1993년부터 타선 주축이었던 이강돈, 이정훈, 장종훈 등의 선수들이 슬럼프와 부상으로 무너져버리기 시작하며 타선이 난국을 겪었다.

그 시기 한화는 정민철, 구대성 등의 초일류급 투수들과 강석천, 이민호 등의 타자들로 겨우내 순위를 유지하는 형국이었다.[34] 1995년에는 장종훈이 반짝 부활하나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고 노쇠화하면서 장종훈의 시대도 그렇게 저물어갔다.

하지만 1996년 전설의 신인 드래프트로 신인 4인방(홍원기, 송지만, 이영우, 임수민) 외 기타 알짜 신인들을 발굴해내며 타선도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신인지명은 실로 안습 그 자체. 잘 된 게 1996년 신인 드래프트밖에 없다... 또한 1998년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뽑은 둘(부시, 치멜리스)은 부진하면서 제값을 못했다. 특히 부시... 숀 헤어처럼 입 털땐 언제고...

한편 1996년에는 구대성을 굴려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광탈했다. 그리고 계속 투수진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1999년 외인 타자 둘의 대박으로 기적적으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재건에 성공하면서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팀의 이미지가 변하게 되는데, 1998년까지가 리그 탑급 투수진에 의존하는 경기를 했다면 1999년부터는 강력한 타선을 앞세운 뻥야구로 변화하게 된다.

4.1.1.3. 드디어 염원하던 한국시리즈 우승 (1999)

1999년에는 감독을 강병철에서 이희수로 교체하고, 기존의 촌스럽던 유니폼을 새로 바꾸고,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부터 뭔가 대박(로마이어, 데이비스)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지만[35] 드디어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한을 푸는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만 해도 '세기말의 패자' 라는 칭호를 얻었다.

1993년 이후 한화는 투수진에 의존하는 경기를 했으며, 당시 한화에는 정민철, 구대성, 송진우라는 탑급 투수진이 있었다. 그러다가 1999년 외국인 선수를 잘 뽑은 덕에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탑급 투수진과 다이너마이트 타선 2기가 맞물린 게 바로 1999년 시즌, 우승이었다.[36]

사실 이 우승은 운도 어느 정도 작용했는데, 당시 드림-매직 리그로 나뉜 제도 덕을 봤다. 리그 성적으로 보면 한화는 4팀 중 최약체였고[37] 드림리그의 두산과 롯데는 더 만만한 한화와 맞붙기 위해 막판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댄 로마이어제이 데이비스라는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 듀오와 전성기만은 못해도 제 몫은 다한 장종훈으로 이루어진 클린업과, 톱타자 이영우와 하위타선의 백재호 등으로 이루어진 타선, 그리고 송진우, 정민철, 이상목이라는 확실한 선발진과 철벽 마무리 구대성으로 이루어진 투수진까지 단기전이라면 충분히 사고 칠 수 있는 조합이었고,[38] 이를 바탕으로 플레이오프에서 전체 승률 1위 팀이었던 두산을 4전 전승으로 스윕하고 삼성과의 준결승에서 방전된 롯데를 4:1로 비교적 손쉽게 제압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가 존재하는 기존 방식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당시 드림-매직 리그 1, 2위 간 교차로 이루어진 플레이오프는 기존 제도의 5전 3선승제와 달리 한국시리즈와 같은 7전 4선승제로 한화는 이 플레이오프를 4승으로 스윕해 전력누수를 최소화한 반면 상대 팀 롯데는 그렇지 못했다. 애초에 그렇게 따지면 OB 베어스가 84년도에 우승했을지도 모르는 법.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 하지만 4위 팀의 우승이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준플레이오프 제도가 실시된 1989년 이래로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팀은 단 2팀(3회) 뿐이란 사실이 증명한다. 그 사례는 정규 시즌 3위로 우승을 차지한 1992년 롯데와 2001년, 2015년 두산인데, 준플레이오프부터 어드밴티지가 없이 경기를 치뤄야 하는 4위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옛날로 거슬러 가면 예외는 있는데 1984년에 종합 승률 4위였음에도 삼성의 져주기 시전으로 후기 리그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를 차지한 롯데 자이언츠가 있다.

4.1.1.4. 약간의 부진기 2 (2000~2004)

그러나 2000년부터 투수진이 망하면서 다시 주춤하게 되었고, 이후 몇 년 간 한화의 야구는 강타선에 뭔가 모자란 투수진이라는, 90년대와는 180도 다른 이미지가 된다. 일단 2000년에는 정민철의 일본 진출과 이상목의 부상으로 투수진이 망하면서 5위를 했고, 2001년에는 신인왕 김태균의 등장과 한용덕의 부활, 이상목의 복귀 등의 호재와 함께 유례없던 난전에 힘입어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피타고리안 승률은 8개구단 중 8위였으며, 꼴찌와의 격차도 겨우 2경기였다. 참고로 이해 한화 이글스가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 팀 중 최하의 승률이다. 또한 외인을 엄청나게 교체해대는 바람에 2002년부터 외인 교체 제한 규정이 생기는 단초를 제공했다.

이광환 감독의 사임 이후 유승안 감독이 취임하면서 팀을 추스르던[39] 2003년에는 시즌 최후반에 연승가도를 달리며 SK와 막판까지 4위 경쟁을 했지만, 두산 베어스한테 고춧가루를 얻어맞고 4위 경쟁자 SK 와이번스에도 패하면서 5위로 아쉽게 시즌을 마치게 된다. 시즌 종료 직후 이 해 부진했던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송지만을 내주고 권준헌을 영입하는데, 이는 구단 역사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를 논할 때 한번씩 회자되는 트레이드이다. [40]

2004년에는 유승안 시프트를 처음으로 실현했으며 빙그레-한화 역사상 최악의 관중 흥행을 보였다.

4.1.1.5. 2차 전성기 (2005~2007)

그러다가 2005년, 김인식 감독을 영입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준우승 한 번을 비롯해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41] 2006년 한국시리즈엔 삼성과 함께 명승부를 펼치기도 하며 강팀으로 인정받았다.

이 시기는 한화팬들이 그야말로 날아다녔던 시기였다. 야갤에서 팀이 분리되기 이전, 롯데의 키보드 워리어들과 맞설 수 있는 건 칰키워 뿐이라는 말까지 있었고, 골수 대전팬들은 그야말로 자존감이 충만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4.1.2. 기나긴 암흑기 (2008~)

프랜차이즈 스타를 오랫동안 기용하는 팀 특성과 김인식 감독의 지나친 노장 선수 신뢰+그로 인한 혹사 등이 겹치면서 한화의 기둥뿌리는 썩어가고 있었다. 기존 선수들의 뒤를 이을 신인 선수 육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이후 송지만, 장종훈, 정민철, 문동환, 김민재, 송진우, 구대성 등등 팀을 지탱하던 주축 선수들이 차례차례 은퇴하거나 타 팀으로 이적하고[42] 그나마 젊은 피로 꼽히던 이범호[43], 김태균의 일본 프로야구 진출,[44] 김인식+한대화로 이어지는 선수 혹사와 리틀 야구단식 투수 운용, 그리고 철밥통 코치진의 결과물로 보이는 현기증 나는 수비, 병맛 쩌는 중계플레이로 막장으로 변해갔다.

흔히 지금의 암흑기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직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지만,[45] 그 하락세는 2000년대부터 이미 시작된 상황이었다. 8888577, 6668587667비밀번호를 작성하지는 않았기에 공론화가 되지 않았을 뿐 2000년에는 투수진의 약화로 전년도 우승팀이 전체 7위에 그쳤고 2001년에는 4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지만 끽해야 승률 4할이었다. 그렇게 2000년부터 2005년 김인식 감독 이전까지 승률 5할도 못 해봤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나 노장 선수의 비중이 너무 높았고 2군 구장도 없었던 상황에서 리빌딩, 신인 선수 육성은 어불성설이었다.[46][47] 2008년 당시 한화는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한 휴식기 전까지 56승 46패(여담으로 이 해에는 연장 무승부가 없었다) 승률 .549로 3위[48]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베이징 올림픽 이후 무려 3주 동안 류현진 등판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전패[49]하는 등 급격히 무너지며 5위로 추락한다. 그 이듬해인 2009년에는 초반에 살짝 반짝했으나 무너진 선발진과 얇은 선수층, 주축 선수들의 부상 등의 요인들로 인해 연패를 밥 먹듯이 하며[50]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하게 된다.

다만 이 암흑기는 역설적으로 그간 전통 비인기팀이던 한화를 KBO의 흥행기관차 중 하나로 올려놓는 역할을 했는데, 맨날 꼴찌만 하면서 나는 행복합니다라거나 팬들의 보살 이미지가 정립되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 영상이 매우 재밌어서라고도 한다

4.1.2.1. 김응용 감독 시대 (2013~2014)

2012년 시즌 후 대대적인 팀 강화를 위해 김응용을 감독으로, 김성한, 이종범, 이대진 등 과거 해태 타이거즈 출신 코치들을 대거 영입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KBO 리그 개막 13연패 신기록을 세우면서 시작한 김응용의 2년은 김인식 감독의 뒤를 이어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투수진 혹사와 더욱 심각한 팀 운영으로김성근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더 험난한 리빌딩의 여정만을 남겨둔 채 잃어버린 2년으로 남게 되었다.

2014년 10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에게 패하여 시즌 9위를 확정하면서, 한화는 3년 연속 꼴찌를 기록함와 동시에 KBO 역사상 최초의 7위 꼴찌, 마지막 8위 꼴찌, 최초의 9위 꼴찌에 이어 마지막 9위 꼴찌를 마크하는 대위업을 이루고야 말았다. 2011년을 빼면 2009년부터 꼴찌인 건 함정 결국 비밀번호가 한 자리 더 늘어났다 2014년 10월 13일, 시즌 마지막 홈 경기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21점차로 지면서 시즌 평균자책점 6.35를 기록하여 삼미의 시즌 평균자책점 6.23 기록까지도 경신하고 말았다.[51]

4.1.2.2. 김성근 감독 시대 (2015~2017.5.22)

김응용 감독은 2년 임기를 끝으로 물러나고, 5886899라는 비밀번호를 더 늘리기 싫었던 구단은 이글스 마당에 올라온 글과 한 팬의 한화 본사 앞 1인 시위, 그리고 다음 아고라 청원에 서명한 팬들의 의지를 담아[52] 제10대 감독으로 야신 김성근 감독을 영입한다. 김성근 스타일은 일시적인 도핑에 가깝다는 일부 의견도 있지만, 적어도 비밀번호는 한 번 끊어줄 필요성이 있고 당장 팀의 체질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감독은 김성근 감독뿐이라는 점에 구단과 팬들이 모두 동의한 것.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김성근마저 한화를 살리지 못하면 한화는 아예 구제불능인 팀이니 해체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니 할 말 다 하긴 했다.[53][54]

이어 김광수 수석코치, 박상열 투수코치, 아베 오사무 타격코치로 이루어진 일명 '김성근 사단'[55]을 영입하고 조경택 칰무원 배터리코치와 구단 레전드인 강석천, 송진우 코치, 김응용 前 감독을 따라 한화로 왔던 이종범, 김종모, 이선희 코치 등 9명의 코치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선수들이 신임하는 코치를 쫓아낸 롯데와는 여러모로 반대되는 행보 그리고 새로 영입한 코치들, 특히 일본인 코치들의 면면이 아주 화려하다. 특히 통산 165승에 빛나는 1980년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니시모토 다카시 투수 코치, 히로시마 카프의 1990년대 붉은 악마 타선의 일원이었던 쇼다 고조 타격코치[56] 등 일본프로야구에서도 레전드급 선수 출신의 코치들이 왔다.

김성근 감독은 취임식 때 선수단 전원에게 이발 및 면도 발언을 시작으로 강훈련을 예고했다. "한 가지 재밌는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김태균은 내일부터 3루에서 반 죽을 것이다" 등의 발언은 덤. 이제부터는 살 빠진 김태균을 볼지도 모른다. 별명 문서에 김슬림, 김날씬, 김반죽 추가 그리고 1시간도 안 돼서 퍼진 한화 선수들 때문에 좌절했다 이후 야구 관련 커뮤니티들에서는 훈련 받느라 고생하는 한화 이글스 선수들 사진을 보며 즐거워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본격 칰키워 새디스트 각성 과거 편하게 훈련 받던 것과 대조하는 짤방이나 다시 김성근 감독에게 붙잡힌 정근우별명왕을 소재로 하는 짤방도 흥하는 중.

2014년 11월 10일자로 정승진 대표이사[57][58]가 물러나고 김승연 회장의 비서실장인 김충범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확실하게 밀어주기 위한 전략이라고 봐도 될 정도.

FA 시장에서도 내부 FA인 김경언을 잡아두고 외부 FA인 권혁, 송은범, 배영수를 영입하여 얇은 투수진 뎁스를 크게 보강하였다. 그리고 12월 5일 각각 롯데 자이언츠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셰인 유먼미치 탈보트를 영입하면서 새로운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는 모험보다는 어느 정도 검증된 선수를 영입하는 행보를 보였다.

시범경기에서 10전 2승 8패로 꼴찌를 하며 아직도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쌍방울 감독 시절에도 시범경기는 완전 망치고 정규시즌은 3위로 마무리 했던 경험이 있으니 기대감을 가져보자. 설마 김성근 감독에게 입칰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건가?

뚜껑을 열어 봤더니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였을 뿐. 우리가 시범경기를 꼴찌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지난 5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4월의 승률은 5할대를 확정하였다. 입칰효과입성큰효과의 대결은 일단 입성큰효과의 승리. 5월에는 7위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확실히 작년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8월 들어 김성근 감독의 무한혹사와 융통성없는 특타로 인해 선수들의 체력이 방전되고 연패횟수가 늘어남으로써 결국 6위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9월 11일 SK와의 경기로 여태까지 곪아왔던 혹사의 여파와 이해할 수 없는 투수운용으로 8위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끝까지 버텼으나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58868996으로 비밀번호는 연장되었다. 일단 그나마 다행인건 그 아래 팀이 4팀이나 있다. 그래봤자 한팀 빼고는 3경기 차도 안나잖아...

한편 시즌 중 유달리 웨이버 공시되어 팀에서 방출당하는 선수가 많이 나왔다. 65명 등록선수 명단을 아예 다 채우고 2015 시즌을 시작했기 때문인데, 많은 선수들의 기량과 플레이를 체크하기 위해 65명을 다 채운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2016년 들어서 한화의 암흑기 시절보다 더 최악의 경기를 펼치고, 김성근도 여러 논란에 휘말리며 한화 이글스는 4월 현재 명실상부한 최악의 팀으로 진행중이다. 이 정도면. 정말 한화 이글스는 명장의 흑역사를 만드는 구단으로 사실상 확정이다.

남에게 퍼주는 혜자트레이드를 한다 특히 기아에겐 선물을 주고 쓰레기를 받아가는데 2015년 노수광, 오준혁, 김광수를 줬는데 김광수는 기아의 불펜 필승조가 되었고 노수광, 오준혁은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차세대 리드오프로 기대를 받고있다. 게다가 유창식까지 주어서 기아는 보유구단이 되었다. 결국 한화시절 승부조작으로 핵이 터졌다 반면 한화로 간 임준섭은 부상으로 경기에 전혀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박성호는 육성선수로 전환되있다. 이종환만 가끔씩 대타로 간간히 비치는 중.

빙그레 첫해 이후 최소 경기 30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화, 빙그레 첫 해 이후 '최소경기 30패' 굴욕

2016년 6월 7일까지 12경기에서 11승 1패를 거두는등 반격을 시작하고 있다. 한때는 9위와 10게임 이상의 차이가 벌어져 영영 답이 없을 것만 같이 보였으나 기세를 몰아 상반기를 7위로 마무리 했다.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5위까지 게임차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기대할 수 있는 부분. 다만 같은 이유로 최하위권까지의 간격도 좁은 만큼 하반기의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결국 7월에 기아에게 1번 1승2패를 당한 것 외엔 모두 위닝 시리즈를 기록하였다. 저 기록은 7월 초까지 7전 전패를 당했던 두산에게 얻어낸 2승 1패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삼미 슈퍼스타즈처럼 전패를 당할 수도 있었으니 정말로 불행 중 다행.

8월 중반까지 기아와 함께 5할 승률을 유지하며 희망고문을 이어나갔으나 안영명의 어깨 수술로 인한 시즌 아웃[59], 배영수[60]안승민의 복귀 불발, 서캠프의 공인구 부적응으로 인한 부진,[61][62] 한화의 미래 김민우의 어깨 관절와순 손상, 권혁의 팔꿈치 통증으로 인한 이적 후 첫 1군 이탈 등 악재가 터지며 월 승률 5할이 붕괴되고 총 승률 5할에 10경기 이상이 남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기아는 5할을 찍다가 올라가고 LG는 우주의 기운(...)을 받아 9연승을 찍는 와중에 롯데가 아직 승부처가 아닌지 8월 후반에 완전히 무너지며 8월 내내 8위와 7위를 오고가고 있다

가을마다 김성근이 맡던 팀이 훈련으로 인한 체력 방전으로 부진했던 걸 생각해보면 30경기가 조금 남은 상황에서 20번 이상 이기길 기대하긴 어려울테니 올해도 포기하는 게 편할 듯. 특히 김민우의 부상은 전병두류현진이 겪은 어깨 부상인데다가 어깨 부상 후 재활 성공률은 10% 정도라 김성근을 모셔오자고 시위를 하던 팬덤 내부에서 조차 아름다운 이별 아니면 칰복절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단 어깨 부상 후 복귀하는 게 10% 남짓이지 그 후 지속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는 선수는 그 중에서 20%를 채 넘지 못한다. 게다가 김민우는 부상 여부를 감독이 계속 숨긴 채 불펜 투구로 쇼케이스를 여러 차례 했고 당장 한 곳에서 재활해도 충분치 않을 시간에 1군 경기가 있는 경기장과 2군 서산을 오가며 재활과 재활 중단을 반복하고 있어서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8월 후반기엔 본인이 수술 없는 재활을 선택하여 30m 롱토스를 하며 몸을 푸는 중이고 본인이 토미 존 수술과 무뤂 수술 등 여러 고비를 넘긴 덕에 긍정적으로 재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위에 쓴대로 어깨 부상은 복귀율이 처참하게 낮고 보통 어깨 부상은 어떻게 복귀한다 해도 2~3년은 제 기량이 안 나오는 게 보통이라...

20일 태평양 돌핀스식 도박성 선발자원 불펜 투입의 부작용이 제대로 폭발하며 LG에 패하여 5할 승률 불가가 확정되었다. 2003년부터 10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한 LG 트윈스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오랜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한 팀이라는 굴욕적인 기록까지 세우게 되버렸다. 거기에다 선수들 대부분이 사실상 선수 생활에 심각한 타격이 감에 따라, 위약금을 내서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호응을 얻고 있으며 심지어 구단을 해체하고 선수들 다른 데로 보내줘야 한다는 말까지 진지하게 거론되는 수준이다. 당장 네이버와 구글을 비롯한 공신력 있는 검색 엔진에서까지 '한화 이글스 해체'(...)가 자동완성으로 뜨고 있다.

심지어 2017년 까지 한화가 김성근을 감독직에 유임시킨다고 하니 이쯤되면 정말 선수들이 남아나지 않겠다. 다행히 외인 원투펀치가 영입되었고, 그나마 나아진 수비, 트레이드로 영입된 군필포수로 16년같은 막장스러운 상황은 없었으나, 햄스트링 부상이 유행(?)하며 선수들이 하나 둘 이탈하더니 삼성과의 벤치클리어링 후 패배로 스윕까지 헌납하며 '야구도 못하면서 연봉은 거품에 팬들은 어그로끌고 선수들은 사고치고 감독은 더럽게 플레이하는 구단' 수준까지 이미지가 나빠져버렸다.[63] 결국 21일 밤 김성근과 프런트의 해묵은 갈등이 2군 선수들의 특타훈련을 두고 제대로 폭발했고 23일 사실상의 경질로 김성근의 야구 커리어는 사실상 마감되었다.[64]

4.1.2.3.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 (2017.5.23~2017.10.3)

한화 이글스의 2017년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한화 이글스/2017년 문서로.

한화 구단은 2017년 남은 시즌을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한화, 남은 기간 이상군 대행 체제 이상군 감독 대행은 구단의 챌린지 2017 비전과 관련, 감독 대행직을 수행하면서 팀을 빠른 시간 내 정상화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끝까지 진행한다고 한다. 성적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정상적인 운영은 맞다.[65][66]

9월 13일 삼성전 패배로 14경기를 앞두고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되고 말았다.

4.1.2.4. 한용덕 감독 시대 (2018~)

한화 이글스의 2018 시즌 준비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한화 이글스/2018년 문서로.

한화 새 사령탑, 한용덕 감독 선임 완료

2018년부터 시즌을 이끌어갈 수장으로 결정되었다. 감독대행직 이후 한화 1군 스태프로는 5년 만에 복귀한다.

4.2. 관련 기록들

4.2.1. 역대 감독

역대

이름

재임기간

성적

비고

초대

배성서

1986~1987

216전 78승 133패 5무

2대

김영덕

1988~1993

726전 415승 294패 17무

한국시리즈 총 4회 진출[67]

3대

강병철

1994~1998

568전 254승 298패 16무

4대

이희수

1999~2000

265전 122승 136패 7무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5대

이광환

2001~2002

266전 120승 137패 9무

6대

유승안

2003~2004

266전 116승 139패 11무

최초의 이글스 선수 출신 감독

7대

김인식

2005~2009

637전 308승 321패 8무

8대

한대화

2010~2012

371전 147승 218패 6무

최초의 충청도 태생 감독[68][69]

감독대행

한용덕

2012

28전 14승 13패 1무

9대

김응용

2013~2014

256전 91승 162패 3무

10대

김성근

2015~2017.5.22

331전 152승 176패 3무

감독대행

이상군

2017.5.23~2017.10.3

101전 43승 56패 2무

11대

한용덕

2018~

39전 22승 0무 17패 승률 0.564 (2018.5.15기준)

역대 감독 목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KBO 리그에서 굵직한 기록을 세웠던 노장 축에 속하는 감독들(김영덕, 강병철, 이광환,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이 이글스를 거쳤던 적이 있다. 이 중 김영덕, 김인식, 김응용 감독의 마지막 1군 감독을 보낸 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승이 패보다 많은 감독이 밖에 없다그마저도 한 명은 감독대행(...)

이른바 KBO에서 자신만의 일가를 이뤘다고 하는 대감독 3명(이광환, 김응룡, 김성근)이 거쳐갔으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것은 이광환 감독밖에 없고 김응룡, 김성근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모두 실패하였다. 오히려 킬끼리, 킬성근이 되어 풀 한포기 남기지 않은 감독둘이 되었다. 그래도 김응용은 2군자원이라도 남겼는데 김성근은...

특히 이런 감독 특성은 한화 이글스 팬덤이 혹사에 다른 팬덤 이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는데, 김영덕 감독의 중무리 야구, 최동원염종석 등 롯데 시절 혹사로 유명한 강병철 감독[70]을 빙그레 시절 이미 경험했다. 게다가 쓰는 선수만 쓰는 김인식 감독,[71] 해태 타이거즈 시절 습관을 전혀 버리지 못한 김응룡 감독 등 혹사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감독을 계속해서 경험했다. 여기에 2015년 김성근 감독의 희대의 혹사를 만났으니, 팬덤이 폭발한 것은 사실 당연한 것. 다만 2차례의 전성기 모두 혹사를 근거로 했다는 것이 더 문제

4.2.1.1. 명감독들의 무덤?

감독에게만큼은 이글스다!

커리어 제거 전용

노리타들의 선동과 날조로 인해 생겨진 오명

KBO를 이끌었던 노감독들의 마지막 커리어가 한화로 집중되고 그 말로가 상당히 비참하다는 점에서 한화라는 팀 자체가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한화 역대 감독의 우승 횟수를 합하면 무려 21회이다. [72]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대가 흐르면서 바뀐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감독들의 특성과 한화라는 팀의 특징, 팀이 처한 현실과 그에 맞는 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한국시리즈 우승 등 노감독들의 흘러간 과거와 명성만을 보고 감독으로 선임하는 구단의 잘못된 선택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결과라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현재도 명감독들의 묘지, 명장들의 눈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우선 김인식 감독은 마지막해 커리어만 나빴지 전체적으로는 최전성기 시절의 김영덕 다음으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감독이다. 05~07년 간의 3년 연속 PS 진출과 한 번의 준우승은 김인식 감독이 단기전에 강하고 송진우, 정민철, 문동환, 구대성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가운데 혜성과 같이 등장한 류현진이라는 투수가 있어서 가능했다. 거기다 특유의 거포 중심 스타일 야구는 당시 작았던 대전야구장의 특성을 가장 잘 살렸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리빌딩에 약하고, 믿음의 야구의 이면에는 인색한 신인 기용과 주축 선수 혹사라는 어두운 면이 있었으며 구단 자체적으로도 몇 년간 드래프트에서 4~6명만을 지명하는 등 신인 수급이 부족했고 2군에 대한 투자도 미약했다. 결국 주축 노장들의 은퇴시기와 맞물리며 투수공동화 현상이 왔고, 그것이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김응용 감독의 경우 화려한 선수진을 바탕으로 하는 선 굵은 야구를 추구한다.[73] 하지만 2013년의 한화는 80~90년대의 해태, 2000년대 초의 삼성과는 달리 그런 선수들과 거리가 있는 리빌딩이 필요한 선수층이었다. 또 주축 에이스 투수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포스팅은 큰 타격이 되었고, 직전 시즌 5선발로 뛰었던 박찬호의 은퇴, 한화 특유의 투수용병의 부진, 오랫동안 감독직을 수행하지 않았던 김응용 감독의 감각문제까지 더해지며 결국 2년 연속 최하위라는 불명예로 감독직을 마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에 이르러서야 서산의 2군 체계가 완성되는 등 지원 자체는 후임보다 너무도 열악했다..

이후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팬들이 선임한 감독, 팀 다운 팀을 만들어주는 감독으로 기대를 모았고, 2015 시즌 전반기에는 그러한 희망을 봤다. 하지만 2010년대의 한화는 2000년대 후반의 SK와는 달리 여전히 팀 전력이 얇고 평균 연령층이 높았고, 여기에 김성근 특유의 팀을 쥐어짜는 방식의 운영이 더해져 2015 시즌 후반기에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또한 지나친 전권부여는 감독으로 하여금 자신의 철학만을 내세우게 하였고, 그 결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야구와 독재식 팀 운영을 통해 팬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이태양의 수술,[74] 미치 탈보트셰인 유먼, 배영수송은범의 동시부진으로 시즌 초반 구축했던 선발투수진에 균열이 생기고, 임준섭, 윤규진이 이탈하자 비상식적으로 불펜을 많이 쓰는 야구를 하게 되면서 최악의 혹사감독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2016 시즌에서도 현실이 되었고, 프런트, 2군과의 갈등을 겪은 끝에 2017년 5월 23일 전격 경질이 발표되면서 김성근 감독과 한화의 만남도 최악의 결말을 맞게 되었다.

즉, 명감독들이 이글스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닌 명감독들이 이글스를 무너 뜨리고 간것이다. 특히 김성근은...

4.2.2. 역대 성적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86

7위/7팀[75]

7위

빙그레 이글스

108

31

76

1

0.290

1987

6위/7팀[76]

6위

108

47

57

4

0.454

1988

2위/7팀[77]

준우승

108

62

45

1

0.579

1989

1위/7팀

준우승

120

71

46

3

0.604

1990

3위/7팀

3위

120

68

50

2

0.575

1991

2위/8팀

준우승

126

72

49

5

0.591

1992

1위/8팀

준우승

126

81

43

2

0.651

1993

5위/8팀

5위

126

61

61

4

0.500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94

3위/8팀

3위

한화 이글스

126

65

59

2

0.524

1995

6위/8팀

6위

126

55

71

0

0.437

1996

3위/8팀

4위

126

70

55

1

0.560

1997

7위/8팀

7위

126

51

73

2

0.413

1998

7위/8팀

7위

126

55

66

5

0.455

1999

매직 2[78]/4팀

우승

132

72

58

2

0.554

2000

매직 3위/4팀

3위[79]

133

50

78

5

0.391

2001

4위/8위

4위

133

61

68

4

0.473

2002

7위/8팀

7위

133

59

69

5

0.461

2003

5위/8팀

5위

133

63

65

5

0.492

2004

7위/8팀

7위

133

53

74

6

0.417

2005

4위/8팀

4위

126

64

61

1

0.512

2006

3위/8팀

준우승

126

67

57

2

0.540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경기수

승률

2007

3위/8팀[80]

3위

126

67

57

2

0.540

2008

5위/8팀

5위

126

64

62

0

0.508[81]

2009

8위/8팀

8위

133

46

84

3

0.346

2010

8위/8팀

8위

133

49

82

2

0.368

2011

6위/8팀

6위

133

59

72

2

0.450

2012

8위/8팀

8위

133

53

77

3

0.408

2013

9위/9팀

9위

128

42

85

1

0.331

2014

9위/9팀

9위

128

49

77

2

0.389

2015

6위/10팀

6위

144

68

76

0

0.476

2016

7위/10팀

7위[82]

144

66

75

3

0.468

2017

8위/10팀

8위

144

61

81

2

0.430

KBO 통산 31시즌

V1

3949

1841

2028

80

0.476

그 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조.

4.2.3.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삼성 라이온즈

88PO: 3승

90준PO: 2패

91PO: 3승 1패

06KS: 1승 1무 4패

07준PO: 2승 1패

준PO 1승 1패, PO 2승,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9승 1무 8패

KIA 타이거즈

88KS: 2승 4패

89KS: 1승 4패

91KS: 4패

94준PO: 2승

06준PO: 2승 1패

준PO 2승, KS 3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7승 13패

롯데 자이언츠

92KS: 1승 4패

99KS: 4승 1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5승 5패

현대 유니콘스

94PO: 3패

96준PO: 2패

06PO: 3승 1패

준PO 1패, PO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6패

두산 베어스

99PO: 4승

01준PO: 2패

05PO: 3패

07PO: 3패

준PO 1패, PO 1승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8패

SK 와이번스

05준PO: 3승 2패

준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2패

4.2.4. 연도별 시즌 요약

한화 이글스 역대 시즌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4.2.5. 역대 유니폼 변천사

4.2.6. 역대 트레이드

5. 이글스 레전드

한화 이글스 영구결번

송진우

정민철

장종훈

KBO 소속 구단 중 삼성 라이온즈[83]와 함께 가장 많은 수인 3개의 영구결번을 가지고 있다.[84] 프랜차이즈 스타는 확실히 챙겨주는 한화의 팀컬러가 드러나는 부분.

영구 결번 지정된 순서대로 쓰면 다음과 같다.[85][86][87]

영구결번 지정순서대로 대전한밭구장 3루측 상단 관중석에 기념되어 있다.[88]

5.1. No.35 영원한 홈런왕, 장종훈

No.35 한화 이글스

장종훈
(張鍾熏 / Jong-hoon Jang)

주요 기록

유일무이 유격수 홈런왕 (1990)

KBO리그 최초의 시즌 40홈런 타자 (1992)

  • 2005년 9월 16일 영구결번 지정

5.2. No.23 가장 완벽한 투수, 정민철

No.23 한화 이글스

정민철
(鄭珉哲 / Min-Chul Jung)

주요 기록

최연소 100승 달성 (1999)[89]

다승, 탈삼진, 이닝, 평균자책점, WHIP, 완투, 완봉승 1위 (1992-1999)

* 구대성(1993년~2010년) [15]

* 류현진(2006년~2011년,) [99]

  • 2009년 9월 11일 영구결번 지정

전성기 시절 55번을 사용했지만 2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여 논란이 있었다. 은퇴 당시 프런트에서 영구 결번으로 55번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지만, 그 경우 후배에게 물려준 번호를 뺏는 셈이 되기 때문에 정민철 스스로 포기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정민철 기타 문단확인.

5.3. No.21 송골매, 송진우

No.21 한화 이글스

송진우
(宋津宇 / Jin-woo Song)

주요 기록

유일무이 200승 투수 (2006)

유일무이 2,000탈삼진 투수 (2008)

유일무이 3,000이닝 투수 (2009)

  • 2009년 9월 23일 영구결번 지정

최고령 타이틀의 왕으로...

기록

당시 나이

날짜

장소 및 상대팀

최고령 경기출장

43세 2개월 10일[90] [91]

2009년 4월26일

잠실 두산전

최고령 홀드

43세 1개월 26일

2009년 4월11일

대전 롯데전

최고령 구원승

43세 1개월 23일

2009년 4월8일

대전 두산전

최고령 선발승

42세 6개월 28일

2008년 9월13일

문학 SK전

최고령 완투승/완봉승

39세 6개월 23일

2005년 9월8일

문학 SK전

최고령 노히트노런

34세 3개월 2일

2000년 5월18일

광주 해태전[92]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투수이다.

6. 이글스의 스타들

한화 이글스

[[이상군|이상군]]
(李相君)

  • 컴퓨터 제구

빙그레 이글스의 최후의 원년 멤버로 별명처럼 컴퓨터 제구를 했던 선수, 그러나 코치로써는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감독대행으로써는 미래를 위한 토대를 닦아두고 나간 인물. 사실상 이분이 없었다면 지금 한용덕감독체제의 이글스는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화 이글스

[[한희민|한희민]]
(韓禧敏 / Hei-min Han)

  • 원조 잠수함투수

한화 이글스

[[한용덕|한용덕]]
(韓容悳 / Young-duk Han)

  • 무관의 투수왕

한화 이글스

[[고원부|고원부]]
(高元富)

  • 유일무이 재일교포 출신 타격왕

2015년 김은식 기자가 트위터에 근황을 알렸다.

한화 이글스

[[이강돈|이강돈]]
(李康敦 / Gang-Don Lee)

  •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중심

한화 이글스

[[이정훈(1963)|이정훈]]
(李政勳/ Lee Jeong-Hun)

현재 이글스의 스카우트 팀장.

한화 이글스

[[구대성|구대성]]
(具臺晟 / Dae-Sung Koo)

  • 대성불패 (臺晟不敗)

한화 이글스

[[강석천|강석천]]
(姜錫千 / Seok-Chun Kang)

  • 소리없는 강자

묵묵히 제 할 일을 했었던 선수.

한화 이글스

[[송지만|송지만]]
(宋志晩)

  • 황금 독수리

한화 이글스 유일무이 1999년 - 2000년 두시즌 연속으로 20-20클럽에 가입한 선수. 은퇴직전에는 넥센이였지만 한화의 스타. 4년 연속 20홈런[93][94]에 300홈런을 돌파하였지만 시대시대인지라... 저평가가 심한선수,

한화 이글스

[[제이 데이비스|제이 데이비스]]
(Gerrod Jay Davis)[95]

  • 신남연
  • 검은 독수리

KBO리그 최장수 외국인 타자(7년/1999-2002, 2004-2006)[96]로 KBO리그 외국인 선수 최초 30-30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호타준족이였다.

한화 이글스

[[김태균(1982)|김태균]]
(金泰均 / Tae-Kyun Kim)

  • 한화 이글스 부동의 4번 타자
  • 출루머신

까임이 많지만 야알못 누가 뭐래도 2000년대 이후 이대호, 최형우와 함께 KBO를 대표하는 중심 타자이자 KBO 최고의 우타자이다. 비율스탯계의 끝판왕이자 별명왕. MLB, NPB, KBO 최다 연속 출루 기록[97]의 보유자.

한화 이글스

[[류현진|류현진]]
(柳賢振 / Hyun-Jin Ryu)

  • 코리안 몬스터 (Korean Monster)

원조 괴물 신인 투수이자 KBO리그, 역대 최초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 석권하고 트리플 크라운[98]을 달성한 투수[99]. 현재는 MLB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활약중이다.

설명 더 추가바람.

7. 은퇴식

은퇴식을 잘 열어주는 구단 중 하나이다.

영구결번 2명[100] 외에 구대성, 이영우까지 포함 2009~2010년 사이 무려 4명의 레전드가 은퇴식을 치렀다. 특히 송진우정민철의 은퇴식은 2주 간격을 두고 치러졌다. 가장 최근에 열린 은퇴식은 2013년 9월 14일 신경현의 은퇴식.

8. 기타

  • 류현진의 포스팅 건으로 인해 국내 포스팅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 팀이기도 하다. 미-일간 포스팅 시스템 개정 때문에 국내 선수도 앞으로 2000만 이상의 포스팅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바뀐 제도는 미국-일본 간에만 적용되며 한국 선수의 미국 진출 포스팅은 예전 제도에서 변경되지 않았으므로 더 높은 포스팅 비용으로 진출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2014 시즌 기준으로 류현진 이상 몸값을 받고 진출할 수 있는 한국야구 선수가 있는 팀들은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한화만이 유일하게 한국 야구팀 중 2천만 달러가 넘는 포스팅 비용을 받은 팀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4 시즌 후 포스팅을 시도한 김광현양현종이 처참한 몸값이 나오면서 확인사살. 그나마 선방한 강정호도 500만, 그 이후 박병호가 1천만 달러대를 받았다. 애초에 현진이는 국내 리그 수준을 넘어선 사기캐였으니...
  • 만화가 최훈이 은근히 개그 소재로 많이 쓴다. 프로야구 카툰에서 개그 소재로 쓰이는 건 물론이고 야구와 무관한 삼국전투기에서는 동작대에 주작 대신 한화 마스코트가 올라가 있질 않나, 새를 이용해 서신을 주고 받는 장면에서 등장해 닭 취급을 하지 않나, 위세 부리는 장면에서 하늘을 날다 떨어지지 않나...[101] 그래도 캐릭터가 워낙 귀여워 호평을 받는 중. 참고로 지금의 귀여운 이미지가 구축된 것은 2011년 이후로 프로야구 만화 특성상 리그 전체를 다루기에 그다지 비중도 없었고 작화도 그렇게 안정되지 않았던 데에다가 부리도 길어서 으로 보이면 보였지 그렇게 귀여운 인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최훈은 일단 개그 소재로 한화를 많이 다루긴 해도 기본적으로 한화까는 아니다. 오히려 한화 이글스 홈페이지에서 3년째 웹툰을 그렸었다. 어느 정도 애정이 있는 듯.
하지만 최훈 개인이 네이버나 야친에서는 타 팀들, 특히 LG, SK, 해태/KIA에 대해서는 감성팔이 추억의 에피소드도 많이 그리지만 한화에 대해서는 구단 측에서 직접 돈을 받는 공홈 웹툰을 제외하면 그린 적이 거의 없다. 게다가 빙그레 리즈시절에 LG의 빙그레 상대전적이 정말 처참한 수준이었던 것이라든가 최근의 류현진(...) 등 LG 팬들은 한화를 싫어할 만한 여지가 꽤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싫어하지는 않더라도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네이버나 야친 등지에 가끔 등장할 때라든가 공홈 웹툰에서 한화팬들의 지난 2년간 가려웠던 곳을 몸 쪽 꽉 찬 100마일 돌직구 수준으로 대놓고 까면서 정말 시원하게 긁어줬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팀에 어느 정도 호감이 있으니까 남의 팀 망치고 있는 금지어 감독을 저렇게 신랄하게 까주는 게 아닌가 싶은 관계로[102] 좀 미묘하다. 어찌 되었든 최소한 어떤 팀처럼 대놓고 X뉴비라고 까인 적은 없으니 적어도 한화까는 아닌 게 확실히 맞다. 참고로 최훈 카툰의 캐릭터중 야구 팬들에게 공통적으로 높은 인기와 지지를 받고 있는 캐릭터가 한화 마스코트 캐릭터이기도 하다. 캐릭터 명칭은 '이글이'. 그리고 이글이는 공식 어플리케이션에 팝업으로 등장한다. 이쯤되면 반공인 마스코트일지도?
  • 모기업 계열사간의 암투 때문에 이 팀의 이름이 변경된 적이 있다. 그 이전에는 빙그레 이글스였으나 김승연김호연의 집안싸움으로 인해 야구 구단이 빙그레에서 한화로 넘어가면서 이 팀이 한화 이글스로 팀명이 변경되었다.
  • 한화 이글스 파크로 개장 이후 관객들의 플래시로 인해 요주의가 되는 코스다. 항상 잊을만 하면 주심이 관객들에게 플래시 켜지 말라고 한다.
  • 팬들의 충성도가 높기로 유명한 구단이다. 지는 경기여도 변함없이 열띤 응원을 보내주어 다른 구단들에게 부러움을 받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팬심과는 달리 구단은 성적이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실정이라 '보살팬'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2016년 10월 8일의 시즌 마지막 KIA와 치른 홈경기에서 9회말 동점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자 한 여성팬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과 함께 허구연 위원이 감명받은 멘트를 곁들인 장면은 그야말로 한화팬들의 충성도를 다시 한번 증명한 명장면이었다[105].

  • 오랫동안 마스코트를 위니, 비니만 쓰다가 2016년 시즌 이 둘의 자식이라는 콘셉트로 '수리'가 추가되었다. 원래 이름은 '아리'였는데 무슨 병아리냐고 항의한 사람들에 의해 슬쩍 태명으로 바꾸고 수리로 변경. 이로써 KBO 리그 내 가족 단위 마스코트가 된 것으로는 롯데 자이언츠의 누리 & 아라 & 피니, 삼성 라이온즈의 블레오 패밀리를 이어 세번째가 되었다. 위니와 비니에 비해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동그란 몸매에 귀여운 외형으로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 팬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귀엽다 못해서 하도 쫓아다니면서 때리는지 위니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이 올라오기도. #
마스코트 공개 당일과 탄생 100일 기념을 맞아 두 번의 시구에 참여했다. 그리고 배스킨라빈스 한국 프로야구 피규어 판매 행사에서 수리가 한화 이글스의 피규어로 등장.# 동그랗고 재질이 부활절 달걀과 비슷해서 왠지 깨면 계란 나올 거 같다 이후 롯데리아 홈서비스 이벤트로 10개 구단 피규어 증정 행사 때도 등장했고(배스킨라빈스 피규어와 비교했을 때 미간이 좀 더 넓게 채색되었다), 이벤트가 끝나고 공식 판매처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링크
  • 언제부터인가 탈모가 한화 이글스의 팀 컬러처럼 굳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2015년부터 한화 주축 선수들 중 일부가 탈모에 시달리다보니 생겨난 모양이다. 대머리독수리
  • 한화 이글스가 시즌 중 팀 순위 단독1위에 올랐던 마지막 기록은 일단 기록상으로는 2014년 3월 30일이긴 한데.. 전날인 29일부터 시작한 개막 2연전에서 한화와 롯데를 제외한 다른 팀들은 사이좋게 1승1패씩 나눠가졌고, 한화 vs 롯데전은 개막전 경기가 우천취소가 되고 그 다음날인 30일에 한화가 승리함으로써 1승 무패로 승률 1.000이 되어 1위가 된 것이다.[106] 그래서 사실상 한화 이글스가 자력으로 단독1위에 올랐던 마지막 기록은 무려 현대 유니콘스가 있던 시절(...)인 지난 2007년 6월 2일이다.

116화 16페이지

153화 10페이지

  • 부기영화의 글작가인 급소가격 혹은 그림작가인 여빛, 또는 둘 다 팬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가끔씩 소재로 써먹는다. 참고로 이 웹툰, 제목대로 야구웹툰이 아닌 영화 리뷰 웹툰이다(...) 2017년 최악의 영화 리뷰하다가 나온 이성열의 끝내기 홈런, 대학생의 귀농 힐링영화에서 최근 성적이 호성적인 것을 본 가을잠바 드립 등, 각 화를 보면 알겠지만 리뷰한 영화들도 야구랑은 전혀 상관없는 영화들에서 뛰쳐나온 아무말 대잔치다.

9. 지역 연고 학교

10. 선수단

11. 응원단

2018 시즌 한화 이글스 응원단

이하은, 김은빈, 서유림, 조연주
홍창화 응원단장, 안민정, 김연정, 조아련, 목나경, 오창수 장내 아나운서

한화 이글스 역대 응원단장

순서

이름

기간

초대

조지훈

2001년

2대

남성훈

2002년 ~ 2003년

3대

원명호

2004년

4대

조성재

2005년

5대

홍창화

2006년 ~ 2007년

6대

박홍구

2008년

7대

홍창화

2009년 ~ 현재

12. 응원가

13. 인기와 팬덤

2008년 이후 기나긴 암흑기를 겪고 있지만 오히려 한화 팬덤은 잘 나갈때 보다도 암흑기 때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늘 놀림의 대상이었지만 오히려 이런 놀림들과 나는 행복합니다부처님 탈을 쓰고 목탁을 든 팬 짤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인기를 끌었으며, 이런 개그 짤들로 한화 이글스를 알게 된,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비록 약팀이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과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하면서도 늘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착한 팬덤이라는 이미지가 감동적으로 보인 덕분에 높은 인기를 구사하게 되었다. 특히 이처럼 나는 행복합니다, 오늘도 졌다, 보살, 부처, 해탈, 한화는 못말려 등등의 한화를 대표하는 어구나 단어들은 해시태그로 쓰기 좋다는 점이 SNS를 주로 하는 여성들한테도 매력적으로 작용했는지 여성 팬들의 유입이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검색 결과는 한화 이글스가 롯데 자이언츠, 기아 타이거즈에 비해서 월등히 많다. 이는 카프조시라고 불리는 히로시마의 여성 팬들과 암흑기에 유입된 점, 연고지와 관련이 없지만 팬이 된 점, 응원 방식에 재미를 느껴서 팬이 된 점 등등이 상당히 유사하다. 어르신 팬층이 두터운 엘롯기에 비해서 어린 팬들이 많다는 것과 연고지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지역에 팬이 분포해 있다는 것도 큰 장점. 물론 기아 타이거즈도 전국구 인기구단이긴 하지만 타 시도로 이주한 호남 지방 사람들과 그 자녀들이 팬층의 주축인지라 한화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한화의 경우는 아예 자기 연고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응원하는 팬들이 많은 것과 대비되는 부분.

더구나 김성근이 감독으로 와서 노리타들의 유입이라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최약체지만 근성있는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으며 성적도 예년에 비해 상승하는게 호재로 작용해 2015년부터는 평균 시청률도 KBO에서 1위를 하는 등 점점 더 팬덤이 견고해지고 있다. 비록 2016년에 다시 성적이 하락하고, 2017년에는 김성근이 중간에 짤리긴 했지만 한화 팬덤의 암적 존재인 노리타들도 숙청하는 등의 성과도 있었고, 애초에 이때 유입된 팬들은 성적보고 이 팀을 응원한게 아니라서 그런지 여전히 충성스러운 팬층을 자랑한다.

한화 이글스 말고 한화 팬덤 자체도 인터넷에서 인기가 많은데 앞서 말한 부처님 탈을 쓴 팬, 목탁을 치던 팬 외에도 핫도그녀, 해탈한 표정의 어린이 팬 등등의 짤들이 유행했다.

원래부터 골수 한화팬들 중에는 유입 팬들의 이런 면[108]을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서 그런 감정은 좀 누그러진 편. 베이징 뉴비의 순한 맛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13.1. 유명인 팬

대체적으로 개그맨들이 많은 것이 특징(#)[109]. 한화 이글스 지역 연고 출신인 경우도 있고(★), 가족 중 누군가 한화 혹은 계열사에서 일해 유입된 경우도 있다(☆).

  • 가애란
  • 강인
  • 강석우
  • 강재준
  • 견훤:[110][111]
  • 고인규
  • 공승연: 인스타그램에 아버지 유창준과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 방문을 인증했다.
  • 권상우
  • 김경록★: 2013년 13연패 기간 중 최초로 야구장에 부처님 가면을 쓰고 등장한 인물이다.
  • 김기리★#
  • 김기열
  • 김정난
  • 김미려
  • 김민경
  • 김선신★: 2013년 4월 오!베이스볼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각 종목별로 자신의 고향인 중부권에 속한 팀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타 팀 팬들에게 편파 등의 오해를 사기 싫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여담으로, 2013년 야구시즌 초반 한동안 치킨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 김선기
  • 김소영: 후폭풍을 감안했는지 팀명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 김수지 : 배구선수 김수지.
  • 김용태(1968)★: 정치인. 참조.
  • 김재욱★: 기존엔 코미디언 김재욱이 써있었으나 배우 김재욱이 한화팬이다.
  • 김준호★#: 대전 출신으로 본가도 아직 대전 서구 가수원동에 있다.
  • 김희선
  • 남현희
  • 남희석#: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의 골수 이글스 팬으로,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던 부인의 응원 팀을 강제로 바꿀 정도로 이글스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자신을 '한화 빠돌이', '한화이글스 홍보실 간부' 등으로 자칭할 정도로 엄청난 열혈팬을 자처하고 있으며, "한화 팬이라면 언제든지 술을 살 수 있다." 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2015년 들어 김성근 감독의 혹사와 경기 운영에 대한 우려를 트위터를 통해 자주 일침을 남긴 바 있다. 진정한 한화 팬이다
  • 루크 호그랜드 : 중계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외국인 이글스 팬. 수염 있는 외국인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듯. 대전의 고등학교에서 원어민 강사를 하던 중에 동료 한국교사와 한화의 경기를 보게 되었고 그걸 계기로 한국에 정착했다고.
  • 류성완: EBSi의 역사영역 강사
  • 박보영★: 아래 사진은 2016년 8월 30일 잠실 두산 전에서 입고 온 유니폼이며 백넘버는 김태균이 마킹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박보영 문서 참조. 또한 개인 V LIVE 방송과 두시탈출 컬투쇼 임시 DJ로 나와서 얘기한 바 있다.

  • 박상돈
  • 박상철★: 자신의 히트곡인 '무조건'을 본인이 직접 개사하여 한화 이글스 헌정 응원곡으로 만들어 주었다.
  • 박정민(배우)★: 2016년 10월 출간한 자신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에 '낮술 먹으며 야구를 보다가 한화가 역전 당하는 것을 보고 또 술을 먹었다'는 글이 있다(...)
  • 박초롱★: 걸그룹 에이핑크
  • 배칠수#: 한화 홍보 대사를 역임한 바 있다.
  • 백현: 보이그룹 EXO멤버, 2015년 시구를 한 바가 있다.
  • 밴쯔
  • 성지루
  • 송우진
  • 송중기★: 김회성과 중학교 동창. 본인이 군 복무 시절 한화 야구에서 큰 힘을 얻었다 한다.
  • 신동우★: 보니하니 보니. 대전 출신으로 한화 팬이라고 한다. 파트너 하니넥센 히어로즈 팬.
  • 신의현★: 대한민국 최초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 이광수: 조인성이 시구하는 날 같이 야구장에 와서 응원했는데도 외모 때문에 조인성에게 가렸다... 안습
  • 안희정

이런 사진도 있다(...), 제 2의 컴퓨터 제구인가..?

14. 커뮤니티

15. 사건 사고

16. 연관 단어

17. 둘러보기


연고 구단

한화 이글스

대전 시티즌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대전 KGC인삼공사

충청권 연고 기타 구단 보기

한화그룹 산하 스포츠단

한화 이글스
(야구)

한화생명e스포츠
(e스포츠)

한화큐셀 골프단

한화갤러리아 승마단

한화갤러리아 사격단[113]


  1. [1]
    이런 형태의 엠블럼도 사용한다.
  2. [2] 충청북도,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강원도 영서지방
  3. [3] 도시연고는 대전광역시이며 넓게는 충청남북도 전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북 지역인 청주에서 일부 홈 경기를 분산해서 치른다. 대전엔 1차지명 고교가 1곳이지만 충남북에 각각 2곳씩 두고 있다.(충남 - 공주고등학교, 천안북일고등학교 / 충북 - 청주고등학교, 세광고등학교) 강원도 영서 지역은 지역 고교 팀을 대상으로 1차지명을 할 권한만 갖고 있을 뿐 지역 연고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4. [4] 김승연 회장의 사촌 관계(김 회장의 큰아버지인 故 김종철 국민당 총재의 차남)로 그룹 계열사 한화폴리드리머의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2015년 3월 이글스의 대표로 선임되었다. 전임 사장이었던 김충범 비서실장은 지병인 심장병이 재발하면서 요양을 위해 사퇴했다.
  5. [5] 2015년 3월 18일까지 '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불렸지만 모회사인 한화생명명명권을 구매하여 2015년 3월 19일부터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로 개명.
  6. [6] 제2구장
  7. [7] 남성형 마스코트인 위니와 여성형 마스코트인 비니가 있고, 이 둘의 자식이란 설정의 수리가 추가되었다. 기타 항목 참조.
  8. [8] 2016년부터 기존 킷 스폰서였던 미즈노와의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킷 스폰서 없이 운영한다. 그리고 2017년 6월 10일 밀리터리 유니폼에 마제스틱 로고가 있었으나, 밀리터리 유니폼만 위탁 제작한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에도 메인 킷 스폰서는 없이 운영.
  9. [9]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10. [10] 경기 당 평균 9,173명
  11. [11]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12. [12] 경기 당 평균 1,916명
  13. [13] 빙그레 전성기에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렸다. 1991-1992년이 가장 강했으며 주요 타자로 1번 중견수 이정훈과 3번 1루수 장종훈이 있다. 이정훈은 2년 연속 타격왕(.348 .36)이었으며 장종훈은 3년 연속 홈런+타점 2관왕(35 41홈런 114 119타점)에 올랐다. 1992년에 팀 144개 홈런으로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4. [14] 요미우리와의 연습경기에서 답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자 일분 야구팬들이 한화를 팀같은 똥이라 한 것에 비롯해 생긴 별명.
  15. [15] 916 대첩 당시에는 정규 이닝만으로도 홈런이 무려 7개나 나왔다.
  16. [16] 사실 이 말은 김응룡 감독 시절 말기부터 서서히 나오던 드립이었다.
  17. [17] 한상훈도 대학교 시절 학교 4번 타자였다.
  18. [18] 하위에서 픽한 자원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상위지명에 이 선수들까지 전부 다 합쳐도 6~7명 수준이며 그나마 1군에서 뭔가를 보여준 선수는 없다.
  19. [19] 칰갤에선 한화의 마지막 잎새라며 하잎새라는 눈물 겨운 별명을 데뷔 전부터 획득. 물론 못하면 얄짤없이 까인다.
  20. [20] 참고로 주권은 조선족 출신으로 귀화 1세대라 자동으로 병역이 면제된다. 보통 한국인 남성들은 20세 이후에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므로 주권은 군 면제로 인해 2년이라는 시간을 벌게 된다.
  21. [21] 롯데 또한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심재민, 홍성무를 KT에 빼앗겼다. 이민호의 경우 당시 전면드래프트였으니 딱히 연고지 유망주를 뺏겼다고 보긴 힘들다.
  22. [22] 하주석의 경우 NC의 노성호, 이민호 우선 지명 후 행사한 픽이었다.
  23. [23] 1차 드랲으로 뽑힌 김병현은 지역팜에다가 제구형인지도 두루뭉술한게 좀 예외로 보인다
  24. [24] 솔직히 그렇게 대어는 아니지만 이용규를 빼면 공수를 두루 갖춘 외야수가 없는 한화로서는 쓸법하다
  25. [25]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 팀을 나와 군복무를 해결하며 재활한 김진영 같은 경우에는 현장에선 좀 지켜봐야 한다는 듯하다
  26. [26] 실제로 2008년 이후 9개 구단 중 포스트시즌에 한 번도 올라가지 못한 팀도 한화 단 한 팀 뿐이다. 2015년부터 KT가 합류하므로 어떻게 될 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27. [27] 이름이 한화로 바뀐 이후 정규리그 우승,준우승이 없다.
  28. [28] 창단 첫해 꼴찌(7위) 이외에 꼴찌를 한 적이 없다. 다만 2008년 이후로는...
  29. [29] 2008년 시즌에는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후반기에 불운이 겹친 건 사실이다. 문제는 2009년부터이다(...)
  30. [30] 삼성은 1985,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년, 두산은 1982, 1995, 2001, 2015, 2016년에 우승했다.
  31. [31]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우승 경험이 없다.
  32. [32] 두산이 준우승한 년도는 2000, 2005, 2007, 2008, 2013, 2017년이다. 원조 콩을 뛰어 넘는 신흥 콩
  33. [33] 투수 부문에선 이상군, 한희민, 송진우, 한용덕 등. 타자 부문에선 장종훈, 이강돈, 이정훈, 강정길
  34. [34] 그나마 저런 초일류급 투수들조차 없었더라면 이때가 1차 암흑기가 될 뻔했다. 당시 타선이 영 힘을 못 썼던지라...
  35. [35] 읽다 보면 알겠지만 시즌 초반만 해도 한화는 우승전력이라 평가받지 못했다.
  36. [36] 이듬해부터 한화의 투수진이 망하면서 팀의 야구 스타일은 투수진 중심에서 타선 중심으로 재편된다. 한화의 우승은 90년대의 투수진 중심 스타일과 2000년대의 타선 중심 스타일, 그 중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37. [37] 하지만 시즌 후반의 성적은 가장 좋았다. 포스트시즌은 실제 전력보다 기세가 중요하다는 말이 실증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8. [38] 쉽게 말하면 다수의 A급 선수들이 포진한, 두터운 선수층이 장점인 조합이라기 보다는 S급의 핵심 선수들 몇몇에 크게 의존하는 형태. 애당초 리그 운영도 송-정-이 세 투수에 구대성으로 확실히 3승 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3승 2패 전략이었다.
  39. [39] 문동환 재활, 이범호의 레벨업 등 김인식 초창기 잘 나가던 한화의 기초는 유승안 감독 때 마련되었다. 반면 송창식 혹사 등의 그림자도 있어서 과대평가란 시각도 있다.
  40. [40] 원래 연봉문제로 송지만과 팀 사이가 험악했다고도 하고, 송지만의 선수협 활동으로 인해 구단의 눈 밖에 났다는 설이 있다.
  41. [41] 그러나 이 423 충무로 시기는 결과적으로 독이 되었다. 이유는 후술.
  42. [42] 한화 자체가 2군팜 육성이나 선수단 관리의 질적 향상에 극히 인색한 구단이다. 2군 시설이 열악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당장 군입대 선수 훈련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한 게 2013년이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 기본적인 군입대 관련 선수 관리가 엉망진창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송광민.
  43. [43] 이후 1년만에 국내 복귀를 했지만 구단과의 마찰 등의 이유로 KIA로 가고 말았다.
  44. [44] 2012년 한화로 복귀했으나 혼자서 팀의 암흑기를 끝내기는 역부족이었다.
  45. [45] 사실 그 전부터 노장 선수들의 비중이 컸고 신인들의 성장이 더뎠기 때문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긴 했다.
  46. [46] 특히 타 팀이 신인선수 지명 권리를 모두 행사할 때 한화는 2년 연속으로 4~5명의 선수만 뽑을 정도였다. 당연히 선수가 없을 수밖에...
  47. [47] 2000년 이후 한화가 김태균, 이범호, 류현진, 최진행을 제외하고 제대로 키워낸 선수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자. 그나마 쓸 만했던 유망주들은 혹사로 맛이 갔고 뭔가 해주는 선수들은 죄다 군 미필에 군필 선수들 중 기량이 성장한 선수가 있냐면 그것도...
  48. [48] 당시 2위였던 두산 베어스와는 승차가 없이 승률이 약간 딸리는 정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문가들 역시 한화의 4강은 거의 무난하다고 보는 편이었다. 4위권과 승차가 넉넉한 데다가 당시 한화는 잔여경기가 가장 적은 팀이었으니...
  49. [49] 이것만 따지면 무려 3승 12패.
  50. [50] 두 자릿수 연패가 무려 두 번(12연패, 10연패)이나 있었다.
  51. [51] 사실 2014년은 역대급 투병타신 연도이다. 순위로 보면 투수조련사라는 김성근이 부임한 2015년에도 똑같은 9위를 기록중이다. 그 밑의 팀이 신생팀이었던 kt wiz였던만큼 사실상 꼴지.
  52. [52] 김성근 감독을 싫어하는 국내 구단의 분위기에 편승해 그냥 내부승진을 통해 새 감독을 정하려 했으나, 1인 시위 등의 소식을 접한 회장의 압박회장 : 뭘 잘했다고 내부 승진이야?으로 인해 김성근 감독을 영입했다는 소문도 있다. 농담이 아닌게 실제 기자들의 증언도 이와 일치했다. 특히나 김승연 회장 성격상 이런 말이 자기귀에 다이렉트로 들어간 상황이라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할까?
  53. [53] 여담으로 이 당시 김성근 감독이 대전에 내려가서 감독면접을 봤니 이상훈코치가 대전 집을 알아보고 있니 하는 소문이 돌았지만 다 사실무근이였다. 애초에 김성근 감독과 같은 레벨이라면 사장이 감독을 찾아가는게 보통인 크보 상황일 뿐더러, 사장은 애초에 대전에 있지도 않았다.
  54. [54] 이보다는 더 큰 문제가 있는데, 애초에 김성근 감독은 팬들이 원하는 감독이였고 감독 선임에 팬의 입김이 작용한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의 사례이다. 그런데 만약 이 감독체제에서 성과가 없다면 그 후에 한화이글스의 운영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당시 옐로우카드에서도 논의되었다. 물론 15년과 2016년 관중동원이나 구단 굿즈판매량을 보면 양측 모두 아주 행복한 상황이지만.
  55. [55] 다만 감독 본인은 사단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실제로 코치진에서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추는 코치고 상당수였고.
  56. [56] 다만 쇼다 코치는 2009 시즌에 SK 와이번스의 코치로 있었다.
  57. [57] 사실 정승진과 김성근은 나름 불편한 관계. 2012년에 한화는 차기 감독으로 김성근을 영입하려고 했었으나 한화 프런트가 김성근과의 약속을 깨고 결국 영입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는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실제 보도된 내용. 그 당시 프런트의 수장이 정승진이었으니... 애초에 이번에 한화팬들이 김성근 감독밖에 없다고 주장했을 때에도 저 2년 전 일 때문에 김성근이 한화로 오는 건 힘들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많았다.
  58. [58] 약속을 깼다는 부분이 한대화를 경질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을 안지켰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막장전력을 맡기 싫었던 김성근이 트집을 잡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무엇보다 이때 김성근이 부임했더라면 메이저리거 류현진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59. [59] 어깨 웃자람뼈를 깎는 수술을 받았다. 윤규진이 작년 후반기에 받은 수술과 유사하다. 결국 이 수술 후 150km 초반의 강속구는 더 이상 던질 수 없게 되었고, 17시즌 후반기에야 붙박이 선발이 된 뒤 공 끝의 변화가 심한 투심을 주 구종으로 하는 방식으로 어쩔 수 없이 피칭 스타일을 바꾸어야 했다.
  60. [60] 2군에서 130km 초반의 공을 겨우 던지다가 이제서야구속을 140km 중반까지 끌어올린 덕분에 8월 초 1군에 콜업되어 선발진의 부담을 줄여주나 싶었으나 감독이 '그냥 잠깐 보려고' 부른 것으로 밝혀졌다. 덤으로 같이 올라온 김범수도 다시 2군행. 특투?
  61. [61] 1군 엔트리에 이름을 걸고 2군에 잠시 내려가 계형철 코치의 지도를 받았으나 올라온 뒤로도 베팅볼만 뿌리며 거하게 캠프 파이어를 저지른 뒤 진짜로 서산에 캠프를 차려버렸다.
  62. [62] 2군 경기에서도 1.2이닝만에 머리로 향하는 사구로 퇴장을 당하며 미치 탈보트마에스트리에 이어 감독에게 '장점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실패한 투수로 단단히 찍힌 것으로 보인다.
  63. [63] 실제로 김성근이 부임한 뒤의 SK는 나머지 7개구단 팬들과 감독들에게 물어뜯기고 뜯기를 반복하다 경질 뒤 겨우 해소되었으나, 적어도 SK는 야구라도 잘했다. 한화는 성적도 못내면서 9개구단의 안티구단이 되어버렸고, 쉬이 가라앉지 않을 예정이라...물론 이는 김성근 이전에도 비밀번호를 찍는 와중에 설레발떨며 타팀을 공격하던 칰키워들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64. [64] 나이도 나이지만, 프론트와의 갈등, 혹사 논란 등 야신 이미지에 가려진 단점들이 다 드러난 동시에 어쨌든 포스트시즌엔 진출하지도 못했으므로 더 이상 프로야구 팀의 감독을 맡기는 힘들 것이다.
  65. [65] 다만 이건 투수 운용에 한정된 이야기. 진루타 순위가 리그 최상위에 희생플라이가 리그 최하위인 팀을 가지고 계속 희생번트를 하고, 2군 선수를 올리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좌우놀이 등 비판받을만한 요소는 충분하다.
  66. [66] 물론 투수운용만 봐도 그 사람보다야 훨씬 미래를 위한 운영임은 확실하다. 다만 이 행보를 과연 리빌딩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중. 그리고 시즌 막바지 인터뷰에서 리빌딩 보다는 성적에 신경을 썼으나,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어쩔 수 없이 신인들을 기용하며 나머지 경기들을 리빌딩 기조의 운영으로 선회했다고 밝혔다.
  67. [67] 88년, 89년, 91년, 92년
  68. [68] 대전광역시 출신이지만 이글스에서 뛴 경력은 없다. 다만 OB 베어스가 대전을 연고로 하고 있던 시절 베어스 선수였다.
  69. [69] 한대화 이전의 감독들의 출신지는 모두 충청지역과 무관하다. 배성서는 평안도 출신, 김영덕은 재일교포, 강병철이희수는 부산 출신, 이광환은 대구 출신, 유승안김인식은 서울 출신이다.
  70. [70] 한화 시기에도 이러한 특성은 바뀌지 않았다. 투수 운용에서 구대성을 과하게 혹사시켜 18승 3패 24세이브의 기록을 세우게 해 구원 투수이면서 다승왕과 구원왕을 독식하는 있어서는 안 될 기록을 세웠다.
  71. [71] 믿음의 야구, 재활 공장장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고 실제로 한화 이글스 시절 2차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도 사실이나, 이런 특성은 팀의 노령화와 특정 투수의 혹사로 이어졌다. 당시 혹사당한 선수로는 양훈, 황재규, 허유강 등이 대표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72. [72] 김응용 10회, 김성근 3회, 강병철/김인식/김영덕 2회, 이광환/이희수 1회. 그러나 이들은 한화에서 퇴임 이후 우승은 커녕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하지 못한다
  73. [73]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모습이라면 그렇다. 그러나 해태 타이거즈 시절 모기업의 한계로 리빌딩이 강제로 꾸준했던 이력이 있다.
  74. [74] 다행이 16년에서는 돌아와서 후반기 1선발을 맡아가며 활약했다. 물론 빠른 복귀라 17년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한다.
  75. [75] 전기 7위, 후기 6위
  76. [76] 전기 6위, 후기 공동 5위.
  77. [77] 전기 2위, 후기 3위
  78. [78] 전체 4위
  79. [79] 전체 7위
  80. [80] 현재까지 마지막 포스트시즌 진출한 해
  81. [81] 현재까지 마지막 5할 이상 성적
  82. [82] 1996시즌 이 후 21시즌만에 순위에서 삼성을 이겼다. (정규시즌 성적만 놓고 봤을 때)
  83. [83] 2017년 이승엽의 은퇴로 동률을 이룸
  84. [84] 현재로써는 사실상 1개이다.
  85. [85] 구대성의 15번도 영구결번 지정이 검토되었으나 본인이 고사하며 자신의 번호는 자기를 이어나갈 만한 후배가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고 많이들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 무근이다. 선수 본인도 내심 기대했으나 당시 병맛이 넘치다 못해 남아돌던 프런트에서 의지가 없었다고.
  86. [86] 은퇴식 당일날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인터뷰한 영상이 그 증거. 관련기사도 있다.
  87. [87] 근데 15번을 이어 배번 받은 선수가 ...
  88. [88] 기존의 영구결번은 우측 외야에 큼지막하게 있었으나 구장 리모델링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크기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89. [89] 27세 3개월 2일, 그 후 NPB로 진출
  90. [90] 투타 모두 포함한 최고령 기록
  91. [91] 은퇴경기는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92. [92] 그 후 한국인 선수 노히트노런이 없다.
  93. [93] 1999년 - 2002년
  94. [94] 만약은 없지만 2003년, 2006년, 2007년, 2008년 그리고 2010년에도 20홈런을 쳤으면 12년 연속 20홈런 타자가 되었었다.
  95. [95] 본명은 제러드 제이 데이비스이다.
  96. [96] 원래는 최장수 외국인 선수였는데 2018년 니퍼트KT위즈와 계약으로 이 기록은 깨졌다.
  97. [97] 86경기 연속 출루.
  98. [98]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부문 1위
  99. [99] 골든글러브도 수상
  100. [100] 장종훈의 경우는 2005년에 은퇴식이 거행되었으니 제외.
  101. [101]
  102. [102] 실제로 SK가 아닌 다른 팀의 팬인데도 SK 시절 갓동님을 디스하는 야구팬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 사람은 SK 와이번스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것이다.
  103. [103] 지리적으로도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이니만큼 수도권 지역에서도 팬층이 형성되는 요건은 충분하다. kt Wiz가 수원을 연고로 하고 있지만 얼마되지 않은 신생팀인데다 성적이 한화보다도 더 나쁘다보니 아무래도 한화를 더 많이 응원하는 경향이 있다.
  104. [104] 인천의 경우,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지인 중 충청권 출신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실제로 문학에서 KIA팬 다음으로 원정 응원석을 많이 채우는 사람들이 바로 한화팬이다.
  105. [105] 당시 이글스 파크의 분위기는 흡사 가을야구 진출권을 두고 대결중인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경기중계를 맡은 MBC 방송 카메라가 관중석에서 여성팬들이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르며 응원을 하던 모습을 캡쳐한 장면은 정말이지 전율이 흐르고도 남았다.
  106. [106] 우천취소 보충전인 다음날 31일 경기에서 한화가 롯데에게 지는 바람에 단독1위는 1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107. [107] 한화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 한화 이글스 2군 유스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심지어 유니폼 디자인마저 한화 이글스와 비슷하다 여긴 고교야구 우승권인데 한화는 왜!!!
  108. [108] 지나칠 정도로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고,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응원하는 등의 행동. 한화 이글스 갤러리같은 강성 팬덤에서는 야알못 얼빠년들이 한화에는 하나도 관심없으면서 인스타에 지들 보살 이미지 만들려고 한화팬인 척 해서 꼴보기 싫다는 식의 글들도 자주 올라왔었다. 물론 이런 글들은 바로 욕먹고 삭제되기 마련이었지만
  109. [109] 개그맨 중에서 충청도 출신 비율이 높다. 관련기사
  110. [110] 2012시즌에 팬이 됐다.영상
  111. [111] 사실 이 영상은 실제가 아니라 한 야구를 보는 팬이 12시즌 한화의 경기력을 보고 만들어본 영상이다.
  112. [112] 1년전까지만 해도 이걸로 치킨집 전화번호를 만들 수 있었다.
  113. [113] 2017년 7월 24일에 해단을 발표했다. 팀 자체는 선수들의 향후 이적을 위해 2017년 연말까지 유지할 예정.# 정작 댓글은 야구단 관련 이야기뿐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st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