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1. 개요
2. 역사
2.1. 고대
2.1.1. 고대 그리스의 해적
2.1.2. 로마 제국의 해적
2.1.3. 중국 삼국시대의 해적
2.2. 바이킹, 바르바리 해적
2.3. 중세 이후
2.4. 스페인 대해(신대륙)의 해적
2.5. 버카니어
2.6. 해적의 황금기
2.7. 인도양의 해적
2.8. 미국의 해적
2.9. 동아시아의 해적
2.10. 현대의 해적
2.11. 한국 역사 속 해적
3. 해적의 구분
4. 민주적(?)인 모습들
5.1. 현행법상의 해적
6. 실존한 유명 해적
7. 문화 컨텐츠로서의 해적
8. 기타
9. 관련 문서

1. 개요

"흔히들 해적의 생활 하면 낭만을 떠올립니다. 끝없는 항해,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 다시 생각해 보세요! 해적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애를 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범죄자였고, 따라서 어떤 항구에도 정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훔칠 뿐이었죠! 그들은 늘 무기를 달고 살았습니다. 혹시, 한 손이 없어져도 이걸로 대체했을 정도니까요!" - 히스토리 채널, 밀리터리 Q&A[1]

해적선을 타고 바다에서 지나가는 를 공격해 화물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 쉽게 말해 강도. 에는 산적, 초원에는 초적, 말타고 다니면 마적, 바다에는 해적이다. 하늘에는 공적(?)[2] 날아라 슈퍼보드에서는 초적이 들적이라 나온다. "산에 살면 산적, 바다에 살면 해적, 들에 살면 들적." 도시에 살면 도적

문명이 시작된 이래 해상 무역이 국가 간 경제활동의 주류를 차지하면서 해적들은 이를 방해하는 가장 큰 골칫거리로 떠올랐으며, 특히 세계 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17세기 이후부터는 도적들 중에서도 가장 악명과 인지도가 높은 집단이 되었다.

또한 해적들이 정부와 연줄이 닿는 경우 정부로부터 관직까지 받아내기도 했다. 실존인물로는 프랜시스 드레이크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오늘날 해군참모총장과 급이 같은 관직을 얻어냈다. 원피스칠무해가 해적인데 중앙정부로부터 관직을 받은 사례가 된다. 여기에 언급한 것이 아니더라도 여러가지 모종의 사유로 하나의 국가에서 해적에게 관직을 주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2. 역사

2.1. 고대

해적이 언제부터 나타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인류가 해상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나타난 종자들이 아닐까...하고 추측할 뿐이다. 고대 이집트 나일강 하구에서 징세관이 탄 배를 습격한 이들이 기록에 남은 가장 오래된 해적. 이들의 역사는 고대의 해양민족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는데 이 해양민족들은 이집트를 습격하고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를 박살냈으며 여하튼 고대세계의 문명들의 흥망을 좌지우지 했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바다 민족으로.

2.1.1. 고대 그리스의 해적

주요 문명이 인접한 지중해와 에게 해에서는 일찍부터 해적들이 창궐했다. 그리스 반도만 봐도 알겠지만 여기는 온통 섬이어서 은신하기 쉬웠으며, 온갖 문명이 번성했던 지역답게 상선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먹잇감도 많았다. 투키티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해적질하는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고 해적이 아닌 사람들도 해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등(...) 여러모로 해적질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페니키아 인, 아시리아 인 등 주요 문명들은 당연히 소탕하려고 애썼지만 큰 성과는 없었고, 해적들이 하도 많아서 약 2500년전에는 해적질 토벌과 해전이 구분되질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공격받으면 선전포고 없이 보복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해적들은 이 관습을 악용해서 자기네 노략질을 이런 보복행위로 우겼다. 지중해의 해적들은 알렉산더 대왕때도 창궐해서 그가 기원전 330년에 해적들을 소탕하면서 한 놈을 붙잡아서 "왜 바다를 위태롭게 하느냐"고 묻자 그놈은 이렇게 받아쳤다고 한다.

폐하께서 온 세계를 어지럽게 하시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다만 저는 작은 배 한 척으로 그러기에 해적이라 불리고, 폐하께서는 큰 함대를 이끌고 그러기 때문에 황제라고 불리지요.

2.1.2. 로마 제국의 해적

로마 시대에도 해적들은 열심히 노략질했다. 이들은 노예와 훔친 화물을 로마인들에게 팔기도 했으나, 점차 로마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지중해의 해적들은 골칫거리가 되었다. 이에 로마 공화정은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에게 전 지중해를 소탕하게 시켰고, 그가 사망한 뒤 아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 싸우기 위해 해적이 되었다. 그는 시칠리아 섬을 거점으로 이탈리아 해안을 약탈하고 성공적으로 봉쇄했으며, 패할 때까지 자신을 '바다의 통치자'라고 불렀으나 결국 진압되고 처형당한다. 지중해는 이렇게 로마의 대대적인 소탕으로 좀 잠잠해졌지만 페르시아 만은 아직도 안전하지 않아서 페르시아는 해적들과 끝없이 싸워야 했다. 일례로 샤푸르 왕은 '어깨의 제왕'이라 불렸는데, 자기가 붙잡은 해적의 어깨를 뚫어서 새끼줄로 꿰어버려서라고 한다.

로마시대 당시의 해적들의 주 약탈품은 사람(노예), 포도주, 올리브유, 밀이었다. 로마가 노예 경제로 굴러갔던지라 사람을 붙잡아 와서 노예로 파는 짓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2.1.3. 중국 삼국시대의 해적

후한이 거의 멸망할 위기에 처해있을 때 각 지방 군벌들이 나라를 세우고 임금 노릇을 했을 때, 특히 중국 남부 일대는 해적들이 굉장히 활발히 활동했는데 백성들의 재산을 마구 빼앗아 치안이 개판인 상태가 되었다. 물론 한나라 왕실의 노력과 더불어 강동, 지금의 중국 양쯔강 하류 남부에 할거했던 강력한 군벌인 손강, 손견, 손정, 손책, 손권손씨 가문의 맹활약으로 해적들을 소탕하였다. [3] 삼국지 덕후들이라면 흔히 들어봤을 주태, 장흠, 여몽, 감녕, 동습 등도 해적 출신이었다가 오나라 신하가 되어 벼슬을 한 사람들이다.

2.2. 바이킹, 바르바리 해적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초기(약 5~6세기)에는 색슨족 해적들이,8~9세기부터는 바이킹들이 유럽을 헤집고 다녔다. 잘 알려진 대로 이들의 배는 평평하고 가벼워서 강을 거슬러올라가 내륙까지 노략질하고 다녔다.동유럽은 각종 강을 거슬러 올라갔으며,서유럽도 예외는 아니라서 파리(!)가 공격당하기도 했다.이 바이킹들이 제일 노린 표적은 수도원이었지만 그 외에도 해변 마을도 당연히 약탈했다.

바이킹이 유럽을 털고 다닐 시절, 바르바리 해적 해적들은 지중해를 휘젓고 다녔다.11세기 말부터 시작된 십자군 전쟁 시기에 창궐했으며, 갤리선을 타고 유럽의 무역선들을 공격해 선원들의 소지품을 몽땅 털고 노예로 팔았다.[4]노예로 팔린 크리스트 교도들을 신부들이 건너가 몸값을 흥정해서 돈 주고 사오는 경우도 많았으며, 심지어 유럽인들 일부가 이 바바리 해적과 한 패거리가 되어 약탈품 일부를 이슬람 영주에게 바치고 보복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기까지 했다.가끔 이슬람으로 개종까지 했는데, 유명 인물로 영국인인 '프란시스 버니'경이 있다.

이 바르바리 해적들은 다른 유럽 해적과 달리 길어야 6~7주만 바다로 나갔다고 한다. 노예와 병사들을 하도 많이 싣고 다녀서 식량이 금방 바닥났기 때문이다. 유명 인물 가운데에는 바르바로사 형제. 즉 바바 우르지하이르 앗 딘이 있는데, 형인 우르지는 일개 해적단 두목을 넘어 북서부 아프리카 해안지대 전역으로 세력을 확대, '알제의 술탄' 까지 자칭할 정도로 광대한 세력을 자랑했다. 그러다가 스페인 세력을 경계하여 오스만 제국의 신하가 되었다가 후에 스페인의 토벌대와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전사. 그리고 형의 뒤를 이은 하이르 앗 딘은 지중해를 오스만의 앞마당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혁혁한 전과를 세워, 해적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오스만의 정규 해군 총사령관(Kapudan Pasha)에까지 올랐다. 오늘날까지도 '터키 해군의 아버지'로서 숭앙받을 정도.

2.3. 중세 이후

13세기에 이르자 레반트에서 쫓겨난 구호기사단은 중앙집권체제여서 수도가 털린 후 정신을 못 차리는 동로마의 영토인 로도스 섬을 점령하여 로도스 기사단으로 개명하고는 이슬람 해적들이 하던 짓을 똑같이 하였다. 이슬람 해적을 섬멸하고 거기 잡힌 기독교도 노예 노꾼들은 해방해주는 식. 당연히 12세기 이후 동지중해를 석권한 베네치아와 연관이 깊을 수 밖에 없었으나 베네치아는 어디까지나 장사꾼 근성(원래 이집트로 가게 되어있던 4차 십자군을 콘스탄티노플로 돌려버린 것도 이집트와의 통상조약에 불침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이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대의를 중시하는 구호기사단과는 마찰이 잦았다.

1561 년 3월 15일에는 '성 스테파노 기사단 (Order of Saint Stephen) 이 창설되었는데, 이들은 구호 기사단보다 한발 더 나아가 이슬람 상선 약탈뿐만 아니라 레반트 지역에 상륙해 지상 약탈까지 벌였다. 토스카나 공국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고.

15세기에 이르러 지중해 무역이 번창하면서 북아프리카 해안에 거점을 둔 바르바리 해적들 역시 더욱 번창했다. 이들은 지브롤터 해협부터 팔레스타인 근해, 심지어 유럽의 북쪽 변방인 아이슬란드까지 휩쓸고 다니며 선박들과 해안 마을들을 습격해 인신매매와 약탈을 일삼았다. 해군의 전통이 없는 오스만 제국은 이들을 적절히 지원하며 국력을 늘려나갔고, 기독교 국가들과 전쟁이 벌어지면 정규 해군으로 써먹기도 했다.[5]

2.4. 스페인 대해(신대륙)의 해적

지리상의 발견과 스페인아즈텍, 잉카 정복 이후 해적들의 눈길은 소위 스페인 대해라 불리는 곳으로 쏠리게 되었다. 스페인 대해란 스페인이 정복한 카리브해의 섬들과 멕시코만까지를 일컫는 말로, 각종 귀금속을 싣고 본토로 향하는 스페인의 선박들은 해적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물론 스페인도 모르지는 않아서 이들이 자주 쓴 갈레온 범선은 선원만 200명에 포가 최대 60문까지 장착되어 있었지만 느려서 재빠른 해적선들을 대처할 수가 없었고, 100척에 이르는 대규모 선단을 이뤄서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특히 영국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이러한 스페인의 선박들을 습격해서 쏠쏠한 수입을 얻었는데 그 뒤에는 엘리자베스 1세의 묵인이 있었고 결국 이는 무적함대의 영국침공을 부르는 한 요소로 작용하기까지 했다. 드레이크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냥 보물선만 턴 것이 아니라 신대륙의 스페인 식민지들도 직접 쳐들어가기도 했다. 산토도밍고를 덮치기도 했으며, 콜롬비아 지방도 공격했다.

참고로 가장 먼저 스페인 보물을 약탈한 사람들은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의 배들인데,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특명으로 북대서향 해안을 탐험하고 1524년에 뉴욕까지 도달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차노가 그 주인공.

2.5. 버카니어

영국의 제임스 1세가 1601년 자국의 적국선박 나포 허가장을 거둬들이면서 카리브 해의 해적은 사략선이 아니라 부카니어들이 차지했다. 이들은 돼지와 소를 사냥[6]해서 고기, 지방, 가죽을 지나가던 배에 팔고 살았는데, 맨 처음 거점은 히스파니올라 섬이었으며, 스페인인들이 공격해서 동물들을 없애버리자 주변 섬으로 흩어지면서 형제단으로 뭉쳐서 에스파냐 배들을 공격했고, 여기에 죄수, 무법자, 도망노예가 합세해서 수를 불렸다. 아무 법도 따르지 않고 잔인한 규율로 악명 높았는데, 일례로 프랑스 출신의 프란시스 로요네는 포로를 잡으면 고문하다가 토막내서 죽였고, 로크 브라질리아노는 스페인인 농부를 산채로 불로 구워 죽였다고 한다. 특히 로요네의 경우는 산 채로 포로의 심장을 꺼내서 다른 포로의 입에 처넣었다고 한다.

이 부카니어 출신 중 유명한 해적으로는 자메이카의 총독까지 오른 헨리 모건이 있다.

2.6. 해적의 황금기

Golden Age of Piracy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유명해진 1690년부터 1740년대까지를 의미한다.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유명한 해적들이 많이 나타났고 대중들에게 해적에 대한 로망을 심어준 시기이기도 했다. 대중들의 시선에서 해적은 배 위에서 만큼은 어떠한 국가나 귀족에게서도 자유롭고, 위험한 항해와 함상전투를 벌이며 부자들도 털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인생역전을 꿈꿔보는 사람들로 보였던 것이다. 물론 아메리카 대륙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려던 사람들에겐 해적들에게 습격당해서 목숨을 잃고 화물을 빼앗기는 고생으로 점철된 시대였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 시기 민간 항구나 민간인들이라고 무조건 해적들을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이들이 에스파냐의 공격을 막아주는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검은수염의 경우 노스캐롤라이나에선 환영받았는데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에선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다. 1718년에 항구를 봉쇄해서 시의원 한 명과 네 살짜리 자식을 인질로 잡았는데 약품 한 상자와 바꿨다고 한다. 해적들은 음식과 일용품이 부족했기 때문.

이 시대의 유명한 해적으로 검은 수염이라 불린 에드워드 티치, 막대한 보물을 가졌을 거라고 관심의 대상이 된 캡틴 키드 등이 있다. 이 시기의 해적이 크게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사략선 활동에 따른 해적 소탕의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했던 점과, 식민지 관련 문제로 각국이 해적 토벌에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멕시코에서 에스파냐로 유출되는 황금이나 보화를 약탈할 명소가 바로 카리브해였고 섬이 많았던 만큼 은신하기도 편리한 이점이 있었다.

2.7. 인도양의 해적

신대륙의 먹잇감들이 줄어들자 해적들은 인도양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인도의 보물선단과 동인도 회사의 상선들을 탐내서인데, 마다가스카르는 해적들의 소굴로 악명 높았다. 왜냐하면 이 시기 마다가스카르는 아직 식민지가 아니었고, 수에즈 운하가 없던 당시의 유럽의 인도항로와 홍해로 가는 이슬람교도의 순례항로를 덮치는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유명한 윌리엄 키드도 원래는 이 인도양의 해적 그 중에서도 헨리 애버리를 붙잡으라는 임무를 받았었다. 동인도 회사의 상선을 붙잡아서 약탈할 때 향신료는 크고 팔기 어려워서 그냥 내버렸는데, 하도 많이 버려서 1720년의 마다가스카르 해변은 후추와 정향이 무릎 높이까지 깔려 있었다[7]고 표현할 만큼 폐기된 향신료로 가득 찼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일종의 공기업인 동인도 회사를 공격하고 주요 고객이던 인도 무역까지 무너뜨리자 영국에서는 이제 국가적으로 해적소탕에 나서게 되었다.

2.8. 미국의 해적

미국의 독립 후에도 해적질은 계속되었다. 미국 해군은 함대가 34척밖에 없었지만 그의 13배에 달하는 미국 사략선들이 영국의 무역로를 무너뜨려 그 위력을 과시했고, 1812년 미영전쟁이 터지자 또 사략선들을 쓰기도 했다. 이 사략선들은 쌀, 소금같은 화물도 빼앗았지만 상아와 황금도 약탈했다. 이 시기 볼티모어는 사략선들을 건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이 끝난 뒤 사회가 안정화되자 해적들이 급격히 사라졌다.

미국의 해적 중 유명인물로 존 폴 존스, 장 라피트, 조너던 해러든이 있다.

2.9. 동아시아의 해적

지금껏 주로 유럽 쪽의 해적을 설명했지만, 동아시아라고 해서 해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왜구신라구도 있고, 동남아시아 바다와 해협은 예나 지금이나 골치였다. 여기 해적들은 중국 스케일답게 수십 수백척씩 선단을 이끌고 호령했으며, 특히 명말 청초의 혼란기에는 명나라의 쇠퇴 + 일본의 전국시대 + 서양의 대항해시대가 폭발적으로 맞물리면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다. 해적왕 정지룡같은 인물은 타이완을 정복한 아들 정성공의 기반을 마련해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청이 대만을 정복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쇄국 정책을 펼친 이후에는 기세가 주춤해졌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서양과의 교역이 커지며 다시 중국의 해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청나라 해군도 반정부 성향의 중국 해적들과의 교전에서 연패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이 중국 해적들은 광둥의 해변 마을을 습격해서 여러 마을을 파괴하고 수천 명의 주민들을 살육하고 노예로 잡아가기도 했다. 청나라도 못 억누른 이들 중국 해적들은 청나라의 요청을 받은 서양 열강들이 나서서 1860년대에 소탕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현대의 해적에서 후술하지만, 남중국해와 동남아 말라카 해협은 지금도 해적소굴이다.

2.10. 현대의 해적

항공기의 출현 및 레이더나 무선 통신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해적이 실존하기 힘들 것 같으나, 현대에도 해적은 존재한다. 사실 이전과 비하자면 기술의 발달로 '항공 수송'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비중만 조금 줄어들었다 뿐이지, 여전히 해운이 항운보다 압도적으로 싸게 먹히기 때문에 해상 수송은 아직까지도 절대적인 중요성을 자랑한다. 현대 사회가 이룩한 부와 물질의 총량증가를 생각하면 현대 사회에서 해상 수송은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적의 화력과 기동성도 기술 발전에 따라 개선되어, 현대의 해적들은 고속 보트에 AK소총이나 RPG, GPS 등 항법장비와 현대식 무선통신기 등으로 무장하고 기습공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해적질을 하고있다. 이러면 대형 상선이라도 쉽사리 점거당하기 때문에 여전히 해볼 만한 도박. 특히 해적들이 있을 줄 알면서도 들어가야만 하는 아라비아 만이나 말라카 해협등의 지역은 지금도 해적들이 들끓고 있다. 특히 말라카 해협은 중동의 석유와 동아시아 국가의 무역상품이 반드시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요충지로 언제나 상선들이 바글바글한 곳이다. 따라서 이들을 노리는 해적들도 바글바글.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역시 해적질로 가장 유명한 곳은 소말리아. 완전 헬게이트가 열린 상황이다. 일단 이들의 거점인 소말리아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서 처벌을 받지 않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면 싫든 좋든 배들이 이 지역을 지나가야만 하는 까닭에 해적이 들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선들도 무장한 보안요원을 싣고 간다든지 하였으나 무장 상선은 입항을 허가하지 않는 항구들이 많아서 간단한 총기로 무장하지도 못하는 비무장 상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궁여지책으로 물대포 등의 비살상 방어장치를 배에 설치하기도 하지만 해적들을 막기에는 역부족. 결국 해적들의 위협이 점점 커지면서 일반 상선은 이들에 대적하기가 힘들어졌고, 마침내 계속되는 해적질에 열받은 각국이 자기들 해군을 끌고 토벌작전을 벌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만 최근에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들끓는 소말리아 해역을 피해 수에즈 운하를 통하지 않고 다른 방면을 통해서 지나가는 배들도 늘어났다고 한다. 예를 들면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처럼 희망봉을 돌아서 간다던가...

소말리아/해적 문서로.

오늘날에는 해운이 번창한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 일대에서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곤 하며, 악명 높은 소말리아 근해 역시 해적들이 날뛰는 지역이다. 말라카 해협의 해적은 싱가포르 해군이 엔듀런스급 상륙함 갑판에 MLRS들을 방열해 놓고 해적 기지를 그냥 쓸어버린 적도 있을 만큼 골칫거리다.

그 수는 적지만 하와이 등 태평양의 유명 관광지에서는 폴리네시아계의 태평양 해적도 꾸준히 활동하여 골칫거리다. 이들의 목표는 경비의 사각지대에 들어선 관광객의 요트다. 미 해군이나 해경이 코앞에 있는 연안 해적인데다가 주로 부유한 관광객이 요트를 타니만큼 굳이 몸값을 요구하기보다는 현장에서 바로 장신구 등 관광객이 소지한 귀중품이라거나 고급 주류, 장식품 등 요트에 실린 고가의 화물을 쓸어담고 곧바로 튀고 간혹 아예 요트 자체를 탈취하는 간 큰 짓을 벌이기도 한다. 항해 기술이 없는 관광객이 현지에서 항해사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 위장한 해적을 고용한다면 그대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직행. 필요하면 일부러 저항하는 척 하다가 부상을 입는 자해까지 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철저히 하기때문에 적발이 굉장히 어렵다고. 고래 관찰 등을 이유로 먼 바다까지 나온 유람선도 항로가 뻔하기때문에 보안이 취약한 작은 유람선을 나포하여 관광객의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태평양의 망망대해에서 원양 어선은 해적 대비가 없다시피하여 위치만 정확하면 아주 쉬운 목표가 되는데, 선원의 금품이나 몸값보다는 주로 장비나 아예 선박 자체를 노리는 경우가 많다.

2.11. 한국 역사 속 해적

한국 역사에도 해적들이 등장한다. 고대 한국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해적들은 오늘날 만주 및 연해주 일대에 분포했던 읍루족들이었다. 이들은 활을 잘 다루는 수렵민족이었는데, 배를 타는 솜씨도 좋아서 뱃길을 통해 북옥저 일대를 약탈하고 다녔다. 그래서 옥저인들은 아예 약탈이 심한 여름에는 해안가를 떠나 산골짜기에 거주하다가, 겨울이 되어 해안가가 얼어붙어 읍루족들이 배를 몰기 어려워지면 다시 해안가로 내려와서 살곤 했다고 한다. 그 외에 신라의 경우에는 삼국사기와 광개토왕비문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수차례 왜인들의 약탈에 시달렸다.[8]

이후 통일신라 말 ~ 후삼국시대는 당나라의 해적들과 신라구들이 기승을 부렸다. 중국 당나라의 해적들은 하대에 접어들어 신라가 쇠퇴해가는 틈을 타서 신라인들을 잡아가 노예로 팔기도 하였다. 신라의 장보고는 이와 같은 해적들을 토벌하고 동북아 일대의 교역권을 장악하여 강력한 해상세력가로 성장하였다. 한편 신라구는 나말여초 후삼국시대의 혼란기를 틈타 한반도에서 기승을 부린 해적 집단으로, 일본 측 기록에서 따르면 일본큐슈쓰시마 섬 등을 약탈하였다. 한국 측 기록에도 드라마 태조 왕건 덕에 "수달"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능창 등 후삼국시대의 근해 해적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후삼국시대 이후에는 고려에 편입되었다.

고려 전기에는 나라가 어느정도 평정되면서 한반도 내에서의 해적 행위는 거의 근절된 듯 하지만, 여진족들이 배를 타고 해적질을 일삼았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까지는 왜구들이 한반도의 해안가를 위협했다. 왜구는 고려말까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침략을 벌였으며,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조선 초까지 이어졌다. 이에 고려와 조선은 해군력을 키우고 무기개발에 힘써 왜구의 침략을 막아냈다. 덕분에 조선의 해군력은 연안전력으로만 봤을 때는 당대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주력선인 맹선의 경우 원해로도 나아가는게 가능해, 버마, 타이에서 사신이 방문했을때 왜구로부터 보호를 요청해 일정거리까지 호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맹선은 함대함 포격전에 취약했고, 명종 기에 판옥선이 개발되면서 빠르게 포격전 중심의 판옥선으로 교체되었다.

뿐만 아니라 명-청 교체기 때 가도에 주둔한 모문룡군과 명나라 유민들이 사실상 해적 행위를 하여 조선의 골치를 만들게 했다.#

이렇게 보면 해적의 역사가 길고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해적의 구분

서구권 해적은 버캐니(프랑스 식으로 부카니에(boucanier). '부랑자'라는 뜻도 있다고 함), 파이러츠, 커세어(프랑스 식으로는 코르세르(corsaire)) 등으로 불리우며 각기 다른 점이 있다.

'파이러츠(Pirates)'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사략선들이 사략선 활동이 중지되자 해적화 된 것으로,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일부는 아프리카 서해안까지 활동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버캐니어(Buccaneer)'는 프랑스계 개척민들이 주축이 된 해적으로 북미 식민지에 근거지를 갖고 있었고, 원래는 강에서 활동하던 수적이었으나 활동 범위가 바다로 확대된 것. 이들은 주로 정글에서 돼지를 사냥하며 Boucan이라는 이름의 보존방식을 지켜왔는데 이 이름에서 버카니어가 나오게 되었다. 이들은 또한 총신이 긴 라이플로 저격을 잘 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고. 사략선이 해적화된 파이러츠와는 달리 기반이 되는 배가 없었기에 이들의 주 전략은 작은 배나 뗏목을 가지고 해안가 연안에 정박한 상선에 몰래 다가가서 저격으로 주요인물들을 암살한 뒤 총알로 돛줄을 끊어서 배를 무력화 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점점 더 좋은 배를 탈취해나간 뒤에 바다의 버카니어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

'커세어(Corsair)'는 지중해에서 활동한 알제리, 모로코, 리비아 등지의 이슬람계 해적으로 이슬람 왕조들의 지원을 받았으며, 전시에는 오스만 제국 등의 이슬람 왕조 해군의 주축이 되었다. 이슬람 해적만이 아니라 똑같이 이슬람 선박을 습격하는 성 요한 기사단(몰타 기사단)과 같은 기독교도 해적도 커세어라고 불렀다. 미 해군 전투기 F4U(2차대전), A-7(현대) 및 프로토스 제공함선 커세어의 유래.

버캐니어와 파이러츠는 배 위에서 당대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평등사회를 이뤘고 인종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약탈 행위 후 공정한 분배를 하고 선장을 투표로 임명/교체하는 등 민주적인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커세어는 선장 자신이 이슬람의 토호였고, 부하들을 거의 노예 다루듯이 다뤘다고 하며, 수입의 일정 부분을 자신을 후원하는 이슬람 왕조에게 바치는 일종의 사략선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어 사전에서 커세어(코르세르)를 찾으면 사략선이라는 뜻도 있다.

한반도 인근의 해적은 대부분 왜구였다. 왜구의 악명이 워낙 높아서 중국인 해적 등이 스스로 왜구로 위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부 왜구가 아닌 해적 중에도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친 경우가 있는데, 일단 신라 말에 국가 혼란 속에서 등장한 신라구가 있었고, 또한 고려시대에는 여진족이 해적질을 많이 해 울릉도 등지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왜구 이외의 해적이라 하면 단연 베트남/중국 계열 해적. 베트남~중국 광동성 국경의 치안 공백지역에 거주하며 열심히 양국의 민간인과 상인들을 약탈했던 부류로 특히 베트남 남북조를 통일한 떠이선 당은 이 해적들을 이용하여 청나라을 견제하기도 했다. 그러다 청나라에서 해적들에게 해적 행위를 관두는 조건으로 신변과 재산 보장 및 관직을 수여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근데 얘들이 동료를 모으는 방식은 다름아닌 동성애였다고 한다(...).

4. 민주적(?)인 모습들

위험하고 거친 생활로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 보이나 의외로 민주적인 모습도 보였는데, 대표적인 예로 한번 선장이 된다고 해서 죽거나 은퇴할 때까지 직위를 유지할 수도 없었다. 선원들이라고 해서 재깍재깍 말 잘 들을 거란 보장은 없었기에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파워로 억누르던가, 그도 아니면 존경심을 받아야 선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선원들 인망을 잃으면? 투표한다. 바솔로뮤 샤프가 1680년에 해적선장이 된 것도 이런 투표제도에 의한 것이다. 항로를 못 결정하면 역시 투표로 결정했으며, 누구나 투표권과 식량, 술을 똑같이 나눠먹을 권리가 있었다. 카리브 해의 해적 선장들은 도망노예도 받아들여 당당한 선원으로 대접해 줬다고 한다. 어떤 해적선은 1/3이 흑인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 장물 분배는 선원 기준으로 선장이 2.5배, 외과의사는 1.25배, 목수는 3/4배를 받았고 아이는 절반을 받았다고 한다.

5. 현실은 시궁창

창작물에서와는 달리 실제 해적들의 생활은 당연히 낭만적이지도 않고 해적들의 성격도 절대로 창작물에서 나오는 대로 호쾌한 성격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잔인하고 극악무도하다. 원양어업 등의 직종에 발을 담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당장 먼 바다에서 좁은 배를 타고 언제 육지를 밟을지 기약을 알 수 없는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고역이다. 게다가 무풍지대에 빠지기라도 하면 상선을 얼마나 많이 털어서 금은보화를 챙겼건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굶어죽기도 일쑤이고, 사략선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9] 각국 정부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해적을 소탕하려고 하기에 위험도도 높았다.

더군다나 해적이 된 이들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잡히면 처형(주로 교수형. 일명 '밧줄 춤'이라 불렸다)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잡히지 않더라도 해적끼리의 싸움으로 죽는 경우가 많아 평균 수명은 30대를 넘기지 못했다. 게다가 이들은 극히 운 좋은 소수를 빼면 엄청난 보물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무역선의 화물, 심지어는 고기잡이 배를 털기까지 했었다. 거기에다가 캡틴 키드의 경우는 사략 허가도 가지고 있었고, 살기 위해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치 상황이 묘하게 꼬여서 후원자들한테 버려지고 결국 교수형당하기도 했다. 현시창의 대표적인 예.

아무튼 그나마 풍요롭고 명예로운 삶을 살다 간 해적의 예는 헨리 모건, 프랜시스 드레이크, 에드워드 켄웨이 정도가 있고, 그나마 이 드레이크도 열병으로 5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게다가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잉글랜드 정부가 인정한 사략꾼이자 동시에 해군 장성이기도 했다.[10] 그러니 인정을 받지못한 해적의 수명은 말할 필요가 없다. 깔끔하게 은퇴해서 죽은 유명한 해적의 예는 '존 보웬'이 유일하지만 이 사람도 풍토병으로 사망했다. 이슬람권 해적으로는 하이르 앗 딘이 최고의 성공 사례. 이쪽도 프랜시스 드레이크처럼 그냥 해적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의 해군 총사령관(카푸단 파샤) 겸 북아프리카 대총독이라는 위엄찬 관직을 가지고 있었으며, 죽을 때는 문상객으로 집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터키 해군의 아버지' 로서 국가적인 추앙을 받고 있기도 하고. 그러나 자기 자신은 천수를 누렸지만, 형과 동생들이 스페인이나 성 요한 기사단 등과 싸우다 전사하는 등의 아픔을 겪었으니 삶이 마냥 장밋빛이었다고만은 볼 수 없겠다. 그밖에도 동아시아에서 정일수가 깔끔하게 항복해서 오래오래 잘 살았다.

특히나 바다 한가운데서 식량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땐 가죽제품을 삶아먹거나 하며 처절하게 보냈으며, 심할 경우엔 인육을 먹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11] 18~19세기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해양법이란 없었고, "Law of the Sea"는 뱃사람들간의 관습법이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뱃사람들이 "우리끼리 일 처리할때는 이렇게 하자!"하는 규격화되지 않은 암묵적인 동의인 것이다. 또한 "인육을 먹어도 살인으로 처벌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사하거나 병사한, 즉 자연사한 시체의 인육을 먹어도 긴급피난상 살인으로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만약 같이 굶고 있지만 멀쩡히 살아있는 동료 여행자나 뱃사람을 살해하고 그 인육을 먹은 경우 여전히 살인죄로 기소가 되고 해당하는 벌을 받았으며, 해적들의 무법자적 성향을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들이 처벌받는 이유는 동료를 먹을 목적으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당장 해적들이 누군가가 아사하기를 기다리거나 자발적으로 날 먹으시오 하고 나서지는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 다시 말하지만 식인 자체가 처벌대상인 것은 아니다.

해적은 배당금이 모이면 배를 떠날 수 있게 되는데 계급에 따라 받는 배당금이 다르다. 규칙 또한 엄격하여 취침 시간은 정확히 지켜야 되며 밤늦게 술 마시고 싶으면 혼자 갑판에서 불도 키지 말고 마셔야 된다. 다른 것보다 여자는 배에 절대 있을 수 없으며, 배에서 발견 즉시 사형이었다. 여자가 해적이 된 예는 있지만 남장여자가 아니고서야 거의 불가능. 현대에 알려진 여성 해적들은 해적질 중간에 여자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해적의 규율(Pirate Code)에서 비롯된 전통들이다. 사실 17-18세기의 해적들은 그 당시 기준으로 어마어마한 복지와 보험, 보상으로 유명했다. 전투중 신체의 일부를 잃었을 경우 얼마를 보상해주는 가에 대한 규율까지도 세세히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신체를 잃은 선원은 은퇴를 하든지 자기가 원하는 만큼 얼마던지 해적선에 머물며 동등한 배당금을 받았다.

이렇게 혁신적인 규율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뱃사람들이 겪었던 열악한 대우와 처분에 있었다. 해군이나 사략선에서 싸우다가 부상을 당할 경우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버려졌으며 그렇게 길거리에서 구걸하다 죽어가는 동료들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던 것. 여기에 더해 한번 해적으로 찍힌 이상 다시는 문명을 밟지 못할 운명까지 더해져 결국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게 되고 이에 따라 자율적으로 지키게 된 해적의 규율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이들 고유만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나소의 배규모 무허가 항구와 마다가스카의 '리베테리아'라는 해적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5.1. 현행법상의 해적

해적은 인류의 공적이므로, 1982년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일명 유엔해양법협약)도 제7부(공해) 제1절 총칙에서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특기할 것은, 선박뿐만 아니라 항공기에 관해서도 해적이 문제된다는 것.

제100조 (해적행위 진압을 위한 협력의무) 모든 국가는 공해나 국가 관할권 밖의 어떠한 곳에서라도 해적행위를 진압하는데 최대한 협력한다.

제101조 (해적행위의 정의) 해적행위라 함은 다음 행위를 말한다.

(a) 민간선박 또는 민간항공기의 승무원이나 승객이 사적 목적으로 다음에 대하여 범하는 불법적 폭력행위, 억류 또는 약탈 행위
(i) 공해상의 다른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그 선박이나 항공기내의 사람이나 재산(ii) 국가 관할권에 속하지 아니하는 곳에 있는 선박·항공기·사람이나 재산
(b) 어느 선박 또는 항공기가 해적선 또는 해적항공기가 되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자발적으로 그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행위(c) (a) 와 (b)에 규정된 행위를 교사하거나 고의적으로 방조하는 모든 행위

제102조 (승무원이 반란을 일으킨 군함·정부선박·정부항공기에 의한 해적행위) 승무원이 반란을 일으켜 그 지배하에 있는 군함·정부선박·정부항공기가 제101조에 정의된 해적행위를 하는 경우, 그러한 행위는 민간선박 또는 민간항공기에 의한 행위로 본다.

제103조 (해적선·해적항공기의 정의) 선박 또는 항공기를 실효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자가 제101조에 언급된 어느 한 행위를 목적으로 그 선박이나 항공기를 사용하려는 경우, 그 선박 또는 항공기는 해적선이나 해적항공기로 본다. 선박이나 항공기가 이러한 행위를 위하여 사용된 경우로서 그 선박이나 항공기가 그러한 행위에 대해 책임있는 자의 지배하에 있는 한 또한 같다.

제104조 (해적선·해적항공기의 국적 보유 또는 상실) 선박 또는 항공기가 해적선 또는 해적항공기가 된 경우에도 그 국적을 보유할 수 있다. 국적의 보유나 상실은 그 국적을 부여한 국가의 법률에 의하여 결정된다.

제105조 (해적선·해적항공기의 나포) 모든 국가는 공해 또는 국가 관할권 밖의 어떠한 곳에서라도, 해적선·해적항공기 또는 해적행위에 의하여 탈취되어 해적의 지배하에 있는 선박·항공기를 나포하고, 그 선박과 항공기내에 있는 사람을 체포하고, 재산을 압수할 수 있다. 나포를 행한 국가의 법원은 부과될 형벌을 결정하며, 선의의 제3자의 권리를 존중할 것을 조건으로 그 선박·항공기 또는 재산에 대하여 취할 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제106조 (충분한 근거없는 나포에 따르는 책임) 해적행위의 혐의가 있는 선박이나 항공기의 나포가 충분한 근거가 없이 행하여진 경우, 나포를 행한 국가는 그 선박이나 항공기의 국적국에 대하여 나포로 인하여 발생한 손실 또는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

제107조 (해적행위를 이유로 나포할 권한이 있는 선박과 항공기) 해적행위를 이유로 한 나포는 군함·군용항공기 또는 정부업무를 수행중인 것으로 명백히 표시되고 식별이 가능하며 그러한 권한이 부여된 그 밖의 선박이나 항공기만이 행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형법에서 해상강도죄를 규정하고 있고, '국제항해선박 등에 대한 해적행위 피해예방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률도 있다.

6. 실존한 유명 해적

7. 문화 컨텐츠로서의 해적

8. 기타

양식장에 침입하여 양식 어패류에 피해를 입히는 생물을 해적 생물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해적 생물로 불가사리가 있다.

MLB피츠버그 파이리츠NFL 탬파베이 버커니어스가 해적을 모티브로 한 스포츠팀이다.

미국의 항공기 제작사인 찬스 보우트(Chance-Vought)는 미 해군 함재기를 만들면서 해적과 관련된 이름을 별칭으로 붙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F4U 커세어.

9. 관련 문서


  1. [1] 대다수 해적들에게 통하는 말일지는 모르지만,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님에 주의. 가령 아래에 소개되는 바르바리 해적 같은 경우는 범죄자 취급은커녕 어엿한 직업으로 인정되었으며, 이름을 떨치면 아예 영웅으로까지 떠받들어졌다.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예가 바로 하이르 앗 딘으로, 오늘날 터키에서는 '터키 해군의 아버지' 로서 추앙받는다.
  2. [2]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에서는 직업의 하나로 나오고, 만화 엘르멘탈 제라드와 애니메이션 라스트 엑자일 은빛 날개의 팜의 주인공은 공적단 출신이다. 즉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창작물에서는 가끔씩 등장한다.
  3. [3] 참고로 황건적의 난 이후 육지에서는 황건적 잔당을 산적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흑산적 등이 대표적 산적이고장연, 장패 등이 대표적인 산적 출신 장수이다. 이 산적들은 한나라 조정의 강한 소탕 의지와 더불어 산적이 가장 많이 활동하던 연주서주에 할거하던군벌이자 후에 위나라를 건국하는 조씨 가문 사람들인 조조, 조인, 조홍, 조앙, 조비 등의 공격으로 거의 모두 소탕되었다.
  4. [4] 이슬람 교의상 같은 이슬람교도는 노예로 삼으면 안 되지만 이교도는 허용하기 때문이다.
  5. [5] 해적질을 해야 할 시간에 해전을 벌이라는 것은 일견 손해로 보이지만 별로 그렇지 않았던 것이, 일단 매일같이 전쟁이 벌어질 리도 없는데다가 해군 역할을 해 주는 조건으로 오스만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총독 직함을 받아 각자의 본거지를 무단 점거한 세력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통치하는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페인을 비롯해 지중해에 이해 관계가 걸린 국가가 토벌대를 보내도 오스만 정부가 즉시 지원군을 보내는 것은 물론 설령 본거지가 함락당해도 군대를 보내 탈환해주었다.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도 기독교 국가들은 잠정적인 정복 대상 내지 적국이었는데 해적들이 평소부터 약탈을 해 피해를 입히는 게 싫을 턱이 없었던데다, 그랬기에 해적질만 잘 하면(?) 해적단의 운영 방식이라든가 편제 등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해적들 입장에서도 손해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알제의 술탄' 을 칭했다가 스스로 술탄을 접고 오스만의 신하로 들어갔던 바바 우르지.
  6. [6] 에스파냐 인들이 신대륙에 오면서 데리고 왔던 가축들. 스페인인들이 이 가축들을 두고 떠나면서 제멋대로 야생화해서 번식했다.
  7. [7] 당연하지만 과장법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아니 누가 모른다고 높이에 대한 과장은 유럽 문화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희생된 사람들의 피가 내 목까지 차올랐다'거나 '이교도들의 피가 말고삐 높이까지 찼다'는 표현이 대표적.
  8. [8]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가 하필이면 동해안 근방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남해안을 통해 공격해오는 왜인들의 공격에 취약한 면이 있었다.
  9. [9] 그나마 이 사략꾼들도 기본적으로 적국의 상선만을 나포하도록 허가받기에 자기네 정부한테만 처벌을 안 받는 것이며, 사략면장이 취소되거나 적국 해군에 붙잡힌다거나 사략선으로서의 행위를 벗어나면 짤없이 해적으로 처벌받았다. 사략선 문서로.
  10. [10] 원피스의 붉은 깃발 X 드레이크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붉은 깃발도 과거 해군 소장이었다가 해적이 되었다.
  11. [11] 아프리카 해안을 떠돌며 금을 실은 상선을 약탈한 샬로트 드 베리의 경우, 먹을 게 떨어지자 우선 흑인 노예 둘을 선원들이 먹어버리고 그마저도 떨어지자 그녀의 남편까지 먹어치웠다고 한다. 다만 표류시 인육을 먹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건 국내 인터넷에 와전되어 알려진 사실인데, 또한 보름 이상 표류시 식인이 허용된다는 것은 출처없는 루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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