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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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쇼와 시대

헤이세이 시대

(미정)

1. 개요
2. 용례
3. 연호
3.1. 생전 퇴위와 차기 연호
4. 시대적 특징
4.1. 오타쿠 문화 및 아이돌 성우 양성 시대
4.2. 라이트 노벨의 전성기
4.3. 가상 캐릭터들의 노래와 음악
4.4. 심야 및 오타쿠 애니메이션의 전성기와 강세
4.5. 한국 청소년 및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연호(?)
5. 주요 인물들
6. 기타

1. 개요

: 1989년 1월 8일 ~ 2019년 4월 30일 (예정)

2018년 현재 (헤이세이 30년), 일본덴노 아키히토(明仁)가 사용 중인 연호를 사용하는 일본의 시대 구분. 이전 시대는 쇼와 시대였으며, 이후 시대의 연호 명칭은 2019년 2월 24일 이후로 일본 궁내청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이 연호를 한자로 쓰면 平成(평성)이고, 제안한 사람은 도쿄대학 명예교수 야마모토 타츠로(山本 達郎) 교수이다. 한 글자(일본어 2바이트)로 압축하면 .[1]

환산법은 서기연도에서 1988을 빼면 된다.

2. 용례

서기 1989년이 헤이세이 원년(元年)이다. 즉, 1989년 = 헤이세이 1년, 1990년 = 헤이세이 2년 식으로 진행 중.

서기 2010년은 일본 연호로 헤이세이 22년. 그래서 일본에서는 2010년(헤 22년) 222일에 다양한 벤트가 전국 각지에서 펼쳐졌다.?

연호가 바뀐 시점이 새해 벽두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던 탓에, 이전 연호였던 쇼와와 현재 연호인 헤이세이를 세대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1988년까지의 출생자를 쇼와 세대, 1989년부터의 출생자를 헤이세이 세대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히로히토가 사망한 것은 1989년 1월 7일로, 1989년 1월 1일부터 7일까지의 일주일간은 쇼와 64년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연도만으로 세대를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처사이다. 그러나 일본 현지의 민간 홈페이지나 매체 대부분이 1989년을 쇼와 64년이 아닌 헤이세이 원년으로 계산하는 곳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3. 연호

헤이세이 시대로 넘어갈 때의 방송자료(후지TV, 1989년 1월 7일~8일)[2]

헤이세이 시대로 넘어갈 때 어떤 이가 캠코더로 찍은 당시의 특별프로그램들(1989년 1월 7일~8일)[3][4]

1989년 1월 7일 새로운 연호 헤이세이를 발표하는 오부치 게이조 당시 관방장관.
쇼와 시대에서 헤이세이 시대가 됨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연호 '平成'은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의 "内(안이 다스려짐에 바깥의 일이 이루어진다)"와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의 "地(땅이 다스려짐에 하늘의 일이 이루어진다)"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연호를 정할 당시 <서경>의 해당 부분이 청나라 고증학자들의 연구로 위서라는 사실이 고증되었고, 헤이지(平治, 1159~1160) 연간이 전란으로 혼란스러웠기에 이후 平으로 시작하는 연호를 피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平에는 干(방패)이 있고 成에는 戈(창)이 있으니 곧 '방패와 창'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해서 다른 걸로 고르자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 연호 결정 시 최종안에 올라왔던 후보인 헤이세이(平成), 슈분(修文), 세이카(正化)[5] 중 슈분(Shubun)과 세이카(Seika)는 직전 연호인 쇼와(Showa)와 알파벳 이니셜이 겹치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헤이세이(Heisei)로 결정되었다.[6] 그 밖에 올라왔던 또 다른 후보는 분시(文思), 덴쇼(天章), 고쇼(光昭)가 있었다.

헤이세이(平成)라는 연호안은 이미 에도시대 말기 게이오(慶應)로 개원했던 1865년 당시 연호의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었다. 그 전거 역시 <사기>와 <서경>이었다.

참고로, 간혹 현임 덴노인 아키히토를 일컬어 헤이세이 덴노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본의 예법 상 이는 틀리는 것이다. 아키히토가 사망하면 일세일원의 원칙에 따라 추존 시호로 헤이세이 덴노가 되는 것이 확실하지만, 이렇게 부르는 것은 사후 명칭이 되므로 아직 살아 있는 덴노의 명칭이 될 수 없다. 즉 일반인으로 따지면, 살아있는 사람을 '고 XXX 님'이라고 부르거나, 명절날 어르신에게 세배하면서 '명복을 빕니다'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소리다.

따라서 심각한 결례가 되기에 일본인은 보통 금상(今上(きんじょう))이나 덴노 헤이카(천황 폐하) 등의 경칭으로 부르지만 외국인은 다른 유럽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호칭이나 이름을 불러 덴노나 헤이세이, 아키히토라고 칭하면 무방하다. 후술되는 생물학 논문에서도 저자 명의로서 'Akihito'로 표기된 예가 있다.

3.1. 생전 퇴위와 차기 연호

아키히토 덴노가 2016년 8월 8일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히며 몇년 내 연호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헤이세이 30년인 2018년에 퇴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중.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2018년 7월 1일에 신 연호를 미리 발표하고, 헤이세이 30년이 되는 2018년 12월 31일 헤이세이 시대를 마감하고, 나루히토 황태자가 아버지 아키히토에 이어 일본의 제126대 덴노에 즉위하는 2019년 1월 1일부터 신 연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궁내청은 연말에 행사가 많아 이때 퇴위식과 즉위식을 연이어 열고 연호를 바꾸면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판단해 아키히토 덴노의 퇴위날짜와 헤이세이 시대 종료일을 4월 30일로 조정하고, 나루히토 덴노의 즉위식과 새 연호 사용은 5월 1일 0시로 발표했다. # 다만 이 때부터는 모든 행정 시스템의 날짜 기준이 연호 대신 서력으로 바뀐다. #

4. 시대적 특징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가 끝나고 잃어버린 10년/일본이 시작되는 시기와 헤이세이의 시작이 우연히 맞물려서 쇼와(의 후반부)를 살 맛 나던 시대, 헤이세이를 기나긴 불황의 시작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일명 헤이세이 불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동서 냉전기를 겪었던 쇼와 시대와는 다르게 냉전이 풀려가는 시대에 맞물렸다. 1989년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유럽권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1990년에는 동서 독일이 통일되고 공산진영으로 있던 동유럽 국가들이 모두 자본진영으로 전향하고 공산국가들의 기구인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해체되는 등 냉전의 종식 및 20세기의 마지막기와 맞물려 시작된 시대이다. 그러나 1994년 김일성이 죽고 아들 김정일 집권을 거쳐 현재 3대를 이은 김정은이 집권시기가 이어져 북핵문제, 일본인 납치문제, 한반도의 긴장 등 일부 냉전기를 겪기도 하였다.

일본에서는 당시 자민당 정권의 장기적인 집권기를 거쳤다가 잠시 민주당(일본) 정권으로 교체되기도 하였으나 2012년에 다시 아베 신조 정권이 수립되면서 자민당 시대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일본 경제의 불황과 실업난 등으로 힘겨운 경제침체기를 보내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극우파들을 중심으로 일본 중심주의와 침략시대에 대한 부활 등으로 군사대국화가 꿈틀대기도 하였던 시대였다. 또한 기미가요의 법제화, 헤이트스피치 및 타국 인종에 대한 차별 문제도 심했던 시대였다.

정보상으로는 쇼와 시대의 아날로그를 이어받았다가 점차 디지털 시대로 변경되어지고 피처폰을 거쳐 스마트폰이 보급되었으며 Windows 95의 출시로 일본 국민들의 인터넷 문화가 발전화되어간 시대이다.

한국에게 있어서는 덴노 본인이 백제인계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여서 다소 친밀감이 있는듯 하지만 총리를 중심으로 한 대다수 정치인들의 잇딴 대한 망언과 위안부 망언, 헤이트스피치 및 제노포비아, 재특회(극우파)의 시위,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 소녀상 문제 등으로 한국과 여러차례 분쟁과 갈등을 벌여왔던 격랑의 시기였다. 또한 개인적인 지지율을 노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12년 8월 독도 방문 및 갑작스럽게 천황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던 시기였다.이 사건은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4.1. 오타쿠 문화 및 아이돌 성우 양성 시대

이 시대는 애니메이션 특히 오타쿠 문화 및 아이돌 성우 양성 시대로도 불리기도 하였다. 1997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오타쿠' 애니메이션 시대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으며 1998년 카우보이 비밥 같은 세기말 명작을 남겼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페이트 시리즈, 코드 기어스, 스즈미야 하루히, 클라나드, 이누야샤, 나루토, 원피스, 블리치, 강철의 연금술사 등 대작들이 배출되었던 시대이기도 하였고 2010년대 들어서는 모에급 및 미소녀 애니메이션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와 맞물렸던 때였다.

동시에 1990년대 선구자인 하야시바라 메구미를 필두로 2000년대 및 2010년대 아이돌 성우가 배출되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하나자와 카나, 하야미 사오리, 사쿠라 아야네, 히다카 리나, 타카하시 리에, 미나세 이노리, 오구라 유이, 이시하라 카오리, 아마미야 소라, 토야마 나오, 유우키 아오이, 토마츠 하루카 등 아이돌 성우들이 배출되거나 미즈키 나나, 타무라 유카리, 호리에 유이, 쿠기미야 리에, 노토 마미코, 이토 시즈카, 이토 카나에, 히카사 요코, 이노우에 마리나, 토요사키 아키, 카야노 아이, 사이토 치와, 키타무라 에리 등 오타쿠들을 열광시키거나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급 성우들이 배출되기도 한 시대이다.

남자 성우로는 코야스 타케히토, 미키 신이치로, 오키아유 료타로, 스와베 쥰이치, 스기타 토모카즈, 카지 유우키, 무라세 아유무, 오카모토 노부히코, 후쿠야마 쥰, 시모노 히로, 마츠오카 요시츠구, 마지마 준지, 카미야 히로시, 이시카와 카이토, 나카무라 유이치 등 발성이 뛰어난 성우들도 배출되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4.2. 라이트 노벨의 전성기

이 시대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던 양강 체제 속에서 라이트 노벨이 활성화되었던 시기라 사실상 전성기에 속한다. 일본에서는 일반 소설에 비해서 내용이 가볍고 만화풍의 일러스트를 삽입가미하여 만담스러운 내용을 소설로 담아낸 라이트 노벨 문화가 유행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상당한 라노벨 작가들도 배출되었고 동시에 라노벨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만화, 애니, 게임에 이어서 라노벨 문화까지 더해져서 오타쿠들과 청소년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라노벨에서 삽입되어 나온 캐릭터들 또한 만화나 애니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면서 애니메이션화가 되었을 때는 진보적인 모습으로도 나오게 되어서 더욱 열광하게 만들었다.

라노벨의 등장은 엄숙하고 딱딱하거나 어른스러운 면이 짙은 일반소설의 상식을 깨버림과 동시에 소설도 가볍고 만화풍의 일러스트와 함께 보며 보고 느낀다는 점 때문에 청소년 및 오타쿠들이나 가벼운 내용의 소설을 원하는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에 가서야 일본식 라노벨이 전래되었으며 일본에서 수입된 라노벨들이 한국어판으로 번역 발간되었다.

4.3. 가상 캐릭터들의 노래와 음악

이 시기에는 유난히 가상 캐릭터들 중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감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 중반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의 등장을 시작으로 그 전부터 있었던 메이코, 카이토 등이 더 주목받거나, 이어서 등장한 카가미네 린, 카가미네 렌, 메구리네 루카, 가쿠포 등,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감을 가진 가상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오타쿠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아이돌 마스터를 통해서 여자 캐릭터들이 성우의 육성 노래를 통해서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감을 가진 성향의 캐릭터들도 등장하였으며 이후 러브 라이브!μ's와 선샤인의 Aqours가 등장하였고 여성향으로 노래하는 왕자님이나 앙상블 스타즈 등 남자 캐릭터들이 아이돌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 매체도 생겼다.

여기에 WUG뱅드림도 가세하여 가상 캐릭터들의 노래시장에 가세하였다.

4.4. 심야 및 오타쿠 애니메이션의 전성기와 강세

이 시대에는 특히 심야 시간대에 방영하였던 애니메이션 즉 오타쿠들에게 만족을 주는 애니메이션들이 많이 제작되어서 방송되었던 시기였다. 쇼와 시대에도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는 하였지만 이 시대에 들어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영향으로 오타쿠 애니메이션들이 생겨나고 2000년대와 2010년대부터 늘어난 심야시간에 방영하는 애니메이션들을 중심으로 오타쿠들을 시청층으로 끌어들여서 일명 하렘이나 모에라 불리우는 일부 자극적인 애니메이션도 나왔으며 라이트 노벨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들도 다수 제작되어 본격적으로 방송하게 되었다.

4.5. 한국 청소년 및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연호(?)

쇼와 시대와는 다르게 특이하게도 현재의 한국 청소년 및 젊은이들에게는 꽤나 친숙한 연호이기도 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당시 일본문화 전면 대개방에 따라 일본 문화가 한국에 급속도로 유입되어졌고 그 영향으로 이후 태어난 한국 청소년 및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연호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 문화나 일본 애니 등에 관심이 많은 덕후급 사이에서 그러한 편으로 이들 사이에서는 헤이세이 연호를 어렵지 않게 기억하거나 부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일본에 관한 내용을 익힐 수 있기도 하다.

쇼와 시대 당시는 한국 기준으로 노태우의 6공 시대인지라 이 시대까지는 일본 문화가 전면 봉쇄된 시기였고 당시의 한국 청소년이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쇼와 시대를 아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때문에 일부 쇼와 시대적에 제작된 일부 아동급 애니메이션 등을 제외하고[7] 일본 문화 대부분은 한국에서의 반입 및 유입이 차단 및 금지되어있기에 쇼와 시대나 쇼와를 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는 다음 김영삼 정부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김영삼 정부 당시 역시 일본 문화 유입에 부정적이라 이 당시 청소년 및 젊은이들조차도 지일급이 아니면 헤이세이에 대해서도 몰랐을 정도였다.

5. 주요 인물들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인물들은 헤이세이 시대/출생 항목 참조.

6. 기타

안습하게도 헤이세이 연호가 사용 개시된 1989년이 지난지 얼마 안되어 일본 버블이 꺼져버렸고, 그래서 헤이세이란 단어가 들어간 일반명사 중 가장 먼저 유명해진 건 헤이세이 불경기 또는 헤이세이 불황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버블경제를 상징하는 단어 중에 헤이세이ABC라는 게 있긴 한데 이건 차덕후 아니면 잘 모르는 전문용어.

보통 라이더나 건담 같이 오래 시리즈를 이어온 작품들이 쇼와와 헤이세이를 기점으로 호불호가 엇갈리곤 하는데, 이를 버블경제에 의해 팬층이 보다 가볍게 즐기는 것을 선호하게 되어서라는 주장도 있다. 헤이세이 라이더, 헤이세이 건담 참고.

2010년대 일본에서는 구세대와 신세대를 나누는 기준으로 '쇼와 시대에 태어난 사람'과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즉 1989년 이전 출생은 아재 취급하는 것. 2018년 현재도 '어리다'를 '헤이세이 출생'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Hey! Say! JUMP에서 실제로 몇몇 일본 가수들이 이 드립을 친 전례가 있다. 멤버는 모두 헤이세이 시대 출생.

쇼와 64년에 발행된 500엔 주화

1989년에 발행된 일본 주화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1월 1일부터 7일까지 쇼와덴노의 재위기간 동안 발행되어 유통된 쇼와 64년 발행주화와 1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발행되어 유통된 헤이세이 원년 발행주화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쇼와 64년 발행주화는 그다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발행, 유통량이 적었기 때문에 한정판과 다름없는 희귀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심지어 일본 내에서까지도) 한국의 1998년도 오백원 주화와는 다르게 실제 그렇게 귀한 편은 아니다. 일본 내에서도 한번도 사용되지 않은, 즉 미사용의 쇼와 64년 500엔은 우리나라 돈으로 해봐도 단돈 약 5천원 정도이다.[8] 흔한건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구할수 있는 정도로 생각하면 되며, 이따금 운이 좋으면(?) 자판기 거스름돈 등으로 쉽게 발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쇼와 64년의 주화가 많은 이유는 쇼와 64년으로 찍힌 주화가 실제로는 1989년 3월까지 주조되었으며 발행량 자체도 무려 1600만개를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쇼와 64년의 주화가 귀하다는 인식조차도 어디까지나 500엔 주화 한정.[9]

2018년 2월 13일 헤이세이 시대 출생자 중 처음으로 국민영예상 수상자가 나왔다. 주인공은 일본 바둑기사 이야마 유타 九단.(1989년 5월 24일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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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이외에 선대 덴노인 明治, 大正, 昭和를 압축해 2바이트 규격의 한 글자로 만든 것이 유니코드에 등록되어있다.(㍾, ㍽, ㍼) 비슷하게 가타카나로 단위를 쓴 것을 2바이트에 우겨넣은 환경의존문자(같은 것. 40mP의 명의가 이 글자를 쓴다.)나 株式会社를 2바이트에 욱여넣은 ㍿가 존재한다. 또한, 한국의 ㈜에 해당하는 ㈱도 존재한다. 로마자 IME입력에서 かぶ를 변환하면 출력되기도 한다.
  2. [2] 이 화면의 남성 앵커는 럭비 선수 출신의 우에다 아키오(上田昭夫)씨로 2015년에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3. [3] 45초 경에 일본제국 시절에 관한 KBS 보도가 나오는 일본 방송이 잠깐 나온다. 그리고 그 캠코더는 도쿄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날로그 위성 전송 혹은 VHS 테이프 특송, 또는 부산발 TV 전파 수신 등의 경로로 입수한 화면이라 원래 화질에 비해 중간에 열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4. [4] 이 동영상 촬영 품질도 당시의 홈 캠코더 치고는 상당한 수준이다.
  5. [5] 정부에 의한 미디어 탄압이 소재가 되는 소설 도서관전쟁에서 연호로 사용되었다.
  6. [6] 일본에서는 일세일원제가 확립된 이후의 연도표기에서 연호를 알파벳 이니셜로 표기하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쇼와 56년은 S56, 헤이세이 23년은 H23 식으로.
  7. [7] 이들조차도 방송법에 따라 한국식으로 대부분 수정하였다.
  8. [8] 언뜻 봐서는 높은 것 같지만 500엔의 액면가를 생각하자. 무려 5천원 내외이다.
  9. [9] 이전 글에는 쇼와 62년도(1987년)의 500엔 주화가 비싸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도 사실 500엔 중 제일 귀한건 맞지만 미사용이 2만원을 못 넘겨 낱개로는 별로 거래되지 않고 대부분 n개 묶음이나 심지어 50개들이 주화묶음, 간간히 500개짜리 동전마대(이건 좀 보기 드물지만)채로 거래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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