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아놀드

헨리 할리 “햅” 아놀드

Henry Harley “Hap” Arnold

1886년 6월 25일 ~ 1950년 1월 15일

공군[1]은 과학입니다. 지금까지 파일럿이 공군을 건설해 왔다면 앞으로는 과학자들이 공군을 건설할 것입니다. (2차대전 종전 직전에 공군 기술위원회에서 행한 연설)

미국 공군의 아버지

미국의 육군, 공군 군인이다.

1. 생애

대부분의 나라의 초창기 공군장교들이 그렇듯이 원래 육군 보병장교 출신이었으나[2] 미국 육군에서 항공대가 반독립상태가 되자 이로 전속되어 공군발달에 크게 기여한다. 라이트 형제가 항공기를 발명한 이후 최초로 파일럿이 된 군인[3]중 하나였다.

그는 거의 백지상태였던 공군의 작전 교리들을 창조해 나갔으며[4], 특히 기술력을 중시하여 적국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의 항공기를 보유하려고 했다. 2차대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압도적 공중우세(Air Supremacy)의 시조는 바로 아놀드 원수다. 휘하 조종사들에게 최고의 항공기만 제공할 수 있다면 그 항공기를 공군이 자체적으로 만들었든 민간에서 만들었든 상관 없다는 마음가짐을 지녔던 그는 칼텍, MITNACA 등지에서 활동하던 민간 과학자들과 1930년대부터 기술 협력을 모색했고[5], 그의 지휘 하에서 록히드나 맥도넬, 보잉과 같은 항공기 제작회사들이 굴지의 군수회사로 성장한다. 그가 JATO(Jet Assisted Take-Off, 제트 보조 이륙장치) 연구를 위해 불러모은 인물은 제트추진연구소(JPL)의 핵심 책임자로 활약하게 된다.

1927년에는 칼 스패츠[6]와 함께 팬 아메리칸 항공(팬암)을 창업하였다. 독일 소유의 항공사(SCADTA)가 미국<->남미간 우편 배달 계약을 확보하여 합법적으로 파나마 운하와 미국 본토를 정탐하려는 의도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정부도 SCADTA의 의도를 우려하여 팬암에게 계약을 쉽게 성사해주었고, 해외 노선 확보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면서 이후 팬암은 세계적인 규모의 항공사로 성장한다. 다만 아놀드와 스패츠는 장교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기 위해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육군항공사령관으로서 윌리엄 리히 합동참모의장[7], 조지 C. 마셜 육군참모총장, 어니스트 킹 해군참모총장과 함께 2차대전기 합동참모회의를 이끌었으며, 그가 육성한 육군항공대는 유럽 서부전선을 “독일군 대 미육군항공대”라고 일컬을 정도로 대활약한다. 뿐만 아니라 태평양 전쟁 후반기에 나타난 육군항공대의 전략폭격은 레알 도쿄핫을 찍으며 일본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야전지휘관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으나[8], 이러한 공적으로 아놀드는 종신계급인 육군원수로 임명되었다.

2차대전 직후, 일본에서 논스톱으로 날아온 B-29를 환영하기 위해 모인 공군(육군항공대) 수뇌부. 왼쪽부터 커티스 르메이 (당시) 소장, 이미렛 오도넬 준장, 헨리 아놀드 대장, 바니 가일즈 중장. 르메이, 오도넬, 가일즈는 모두 대장까지 올랐다.

이후 공군이 독립되자 최초이자 최후로 공군원수로 영전[9]했으며, 공군의 아버지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다만 건강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육군항공대를 조율하느라 세계 각지의 공군 기지를 계속 순시하며 과로한 것이 비교적 단명한 원인이 되었다.[10]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총 4차례나 심근경색을 일으켰고, 1946년에는 부정맥이 일어나 일찍 퇴역해야 했다. 1948년에는 자서전을 출판하였고 커티스 르메이와 함께 비영리 싱크탱크랜드(RAND Corporation)의 설립을 주도했다. 1950년에 향년 63세로 사망했을 때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2. 평가

미국에서는 제2차대전 승리의 주역으로 육군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해군의 체스터 니미츠에 못지 않게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국 밀덕계에서는 석기시대를 좋아하는 원시인 커티스 르메이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르메이는 사실 아놀드가 만들어 놓은 무대 위에서 아놀드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뿐이다.[11]

리더쉽도 매우 뛰어나면서도 온화한 인품으로 명성이 자자했기에 부하들에게 “두목 chief”라고 불렸는데 실제로 공군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미국 땅에 공군을 만들기 위해 실질적인 성공을 이룬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뒤에 독자적인 공군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던 빌리 미첼은 정치적 반대와 기존 군부 조직과의 갈등에 좌절을 겪고 결국 군을 떠났지만, 아놀드는 그가 1926년에 물러난 후 겨우 모은 육군항공대 인재들이 흩어지지 않게 노력했으며 계속해서 공군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는데 노력하였고, 결과적으로 현대 미 공군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의 명성은 이러한 노력에서 온 것이다.


  1. [1] 당시에는 육군 항공대 또는 육군 항공군이라 번역되는 Army Air Force를 줄여서 Air Force라고 불렀다. 이렇게 준말로서의 Air Force는 우리말 번역어로는 '공군' 외에는 답이 없다.
  2. [2] 처음에는 기병장교가 되고 싶었지만 사관학교에서 워낙 악동으로 악명이 높았고 성적도 중하위권이었기에 보병으로 배속되었다.
  3. [3] 미군 전체에서 2번째로 파일럿 과정을 수료했고, 그 뒤로 워싱턴 DC 위를 최초로 비행하는 등 여러가지 최초 기록을 세웠다. 이 때는 아직 항공기 기술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 시점이라서 여러번 추락하고 죽을 위기를 넘겼다. 약장 아래에 있는 뱃지는 1912년에 수여받은 군인 비행사(Military Aviator) 뱃지로, 뱃지가 제정된 후 최초로 수여받았다.
  4. [4] 아놀드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당시에는 미육군항공대조차 존재하지 않아서 통신대(Signal Corps)에 공군 병력이 연락조(즉, 편지 배달) 겸 기술 시험 용도로 끼어있던 상황이었다. 이 때 아놀드는 최초로 지상군과 무전 교신을 하고 정찰 정보를 전송하는 등 지상에 있는 병력과 협력하는 방식에 대한 경험을 쌓는다. 1928년에 작성한 공군-기병간 제병협동 전술에 관한 글("The Cavalry-Air Corps Team," Jan. 1928, Cavalry Journal) 등으로 아놀드가 수립한 제병협동 이론은 이후 2차 세계대전에서 지상군과 공조하여 독일군을 갈아버린 미 육군항공대의 활약으로 빛을 발하게 된다.
  5. [5] 조지 C. 마셜이 아놀드로부터 과학자들과 갖는 오찬에 초대를 받고는 민간인과 무슨 쌩뚱맞은 일을 벌이냐며 의문을 표하자, 아놀드는 공군 엔지니어가 해결하지 못하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의 두뇌를 &quot;활용(using)&quot;하는 것이라고 답하고는 그를 끌고 갔다. (Henry H. Arnold, Global Mission, 1949)
  6. [6] 전간기에는 아놀드 휘하의 장교였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공군 장성으로 활약했으며, 후일 제1대 공군참모총장으로 영전한다.
  7. [7] 원래 미군은 합동참모의장이란 개념이 없었고 비슷한 이름의 직함이 있었다. Chief of Staff to the Commander in Chief 라고. 번역하면 최고사령관 참모장 정도 되겠다.
  8. [8] 사실 이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야전 사령관은 더글러스 맥아더, 체스터 니미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커티스 르메이 등이 있다. 당연히 이들은 다들 자기 상관보다 유명하다.
  9. [9] 공군의 독립 이전에 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공군참모총장직은 거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재임 때부터 육군항공대는 육군에서 거의 반독립된 실질적인 공군으로 작용하고 있었으며, 육군항공사령관 보직 또한 사실상 공군참모총장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공군원수로서 자격은 충분하다. 2개의 병과에서 원수 계급에 올라간 유일한 미군 장성이라서 사람들은 농담으로 육군+공군=10성 장군 텐스타(...)로 부르기도 한다.
  10. [10] 이런 식으로 전쟁이 끝나자 얼마 안되어 사망한 장군 및 제독들이 꽤 된다. 전쟁통에 과로하면서 몸에 무리가 많이 갔던 듯하다.
  11. [11] 르메이가 그렇게 잘 써먹었던 B-17이 바로 아놀드의 주도 아래 개발된 기종이었다. 유럽에서 활약한 르메이를 중국과 일본 방면으로 보낸 뒤 몰락 작전이 벌어지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일본을 무력화시키라고 지시한 것도 아놀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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