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나우지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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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우지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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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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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 2005}}}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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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올해의 팀}}}

2004 · 2005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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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월드컵}}}


2006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파비오 칸나바로

2위
지네딘 지단

3위
호나우지뉴

2004 Ballond'or

수상
안드리 솁첸코

2위
데쿠

3위
호나우지뉴

2006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호나우지뉴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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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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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르셀로나 앰버서더

Futbol Club Barcelona Ambassa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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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colcolor=#000000> 호나우지뉴
Ronaldinho

이름

호나우두 지아시스 모레이라[1]
Ronaldo de Assis Moreira

출생

1980년 3월 21일 (40세) /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 주 포르투알레그리

국적

브라질 | 스페인[2]

신체 조건

181cm[3] | 체중 83kg

포지션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4]

소속

선수

그레미우 FBPA (1999~2001)
파리 생제르맹 FC (2001~2003)
FC 바르셀로나 (2003~2008)
AC 밀란 (2008~2011)
CR 플라멩구 (2011~2012)
클루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2012~2014)
케레타로 FC (2014~2015)
플루미넨시 FC (2015)

스태프

FC 바르셀로나 앰버서더 (2016~)

국가대표

99경기 42골(브라질 / 1999~2013)

통산 득점

313골

1. 소개
2. 클럽 경력
2.1. 유소년 시절 ~ 데뷔 초창기
2.3.1. 몰락
2.5. 고향에서
2.6. 다시 바르셀로나로
2.7. 은퇴
2.8. 비치사커 선수 데뷔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5.1. 메시와의 인연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6.3. 출전 기록
7. 호나우지뉴에 대한 말,말,말

1. 소개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비록 2~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여 준 선수이다. 즉, 단기 임팩트 면에서는 역대 최고 중 한 명이다. 특이한 외모와 압도적인 실력으로 인해 외계인이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로 인상적인 캐릭터와 스타성을 지닌 선수였다. 축구를 논할 때 호나우지뉴의 전체 커리어를 뽑지는 않지만 그의 전성기는 반드시 언급된다.

2005년 발롱도르, 2004~2005년 FIFA 올해의 선수, 2006년 UE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였다. 그의 최대 전성기였으며 원래부터 화려했던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가장 폭발적인 시기였다.

이름 Ronaldinho는 한국어로 풀이하자면 작은 호나우두. 본명은 호나우두 지아시스 모레이라(Ronaldo de Assis Moreira)로 호나우두다. 다만 국대 선배 중에 호나우두가 있기 때문에 작은 호나우두라는 의미의 호나우지뉴로 불리게 된 것. 여담으로 과거 국내에서는 "호나우딩요"라고 많이 불렀지만, "-dinho"는 딩요보단 지뉴(ˈdʒĩɲu)가 더 원어에 가깝기 때문에 각종 언론 매체에서 호나우지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이쪽이 정착되었다.

다만 애칭(?) 비슷한 개념으로 "딩요"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브라질 내에서는 호나우지뉴 가우슈(Ronaldinho Gaúcho)로 불린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은 호나우지뉴가 국가대표에 처음 불렸을 때(1999년) 대표팀의 중심 선수는 우리가 잘 아는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우 지 리마였는데, 호나우두 역시 1976년생이므로 나이가 20대 초반밖에 안되는 어린 선수였기 때문에 '작은 호나우두'라는 뜻으로 호나우지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호나우두와 구분 짓기 위해 뒤에 가우슈를 붙인 것이다. 유럽 진출 이후로는 마케팅 차원에서 가우슈라는 부분을 뺐으나, 브라질 복귀 이후 자국민에게 친근한 별명인 가우슈를 다시 살렸다. 페이스북 및 트위터의 표기 역시 Ronaldinho Gaúcho를 사용 중이다.

2. 클럽 경력

2.1. 유소년 시절 ~ 데뷔 초창기

브라질포르투알레그리에서 태어났다. 8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한다. 여타 브라질의 축구선수들처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공을 찼겠구나 싶지만, 형 호베르투가 프로 팀인 그레미우와 계약한 덕에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다만 형은 부상때문에 일찍 선수 생활을 접고 지금은 호나우지뉴의 에이전트로 활동 중.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13세 때 지역 팀과의 경기에서 혼자 23골을 넣은 것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었다. 이후 형이 있던 그레미우와 계약해서 어린 나이임에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1997년 U-17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계에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2.2. 파리 생제르맹 FC

파리 생제르맹 FC 시절 활약상

이후 프랑스리그앙의 명문 클럽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는데, 개인기가 뛰어난 브라질 선수들 사이에서도 한결 화려한 묘기 수준의 개인기를 매 경기마다 보여 주면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5]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도 참가하여 호나우두, 히바우두 투톱의 밑을 보좌하면서 당시 브라질 공격진은 3명의 앞 글자가 모두 R인 것에 착안해 3R로 불리게 된다. 특히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호나우지뉴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수비진을 농락하며 동점골 어시스트, 역전 프리킥 골, 게다가 퇴장(...)까지 당하는 원맨쇼를 펼치며 브라질의 우승에 큰 공헌을 한다. 그러나 이 퇴장으로 가린샤 클럽의 5번째 회원으로 등극함과 동시에 4강에는 출전하지 못하게 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였다.

월드컵 이후 인지도와 몸값이 확 높아졌지만, 정작 소속 팀 PSG에서는 루이스 페르난데스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어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6]

2003년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영입 의사를 밝혀 이적에 상당한 진척이 있었지만 맨유 보드진의 실책으로 무산되고 만다.[7] 결국 02-03 시즌 최악의 부진으로 회장과 감독이 교체된 FC 바르셀로나가 그를 영입하게 된다.

왜 호나우지뉴가 스페인을 선택했냐면, 당시까지만 해도 주니뉴 파울리스타미들즈브러 FC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 외에 많은 브라질 선수들이 잉글랜드에서 환경과 문화적인 차이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찌감치 떠난 것에 비해 바르사는 이미 호마리우,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의 브라질 스타들이 터를 잡아 놓았기 때문에 더 안전한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2.3. FC 바르셀로나

사실 바르샤가 호나우지뉴를 영입한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당시 호나우지뉴의 이적료는 막대한 빚을 지고 있던 바르샤가 여유 자금을 모두 써야 하는 2,500만 유로였다. 성과에 따른 옵션에 포함된 금액이나 호나우지뉴에게 조항에 충족된 성과를 올리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기에 바르사는 흔쾌히 300만 유로를 추가로 냈다. 호나우지뉴는 맨유가 제시한 거액을 마다했고, 바르사는 팀의 명운을 걸고 빚을 냈다. 그러나 둘의 도박은 성공을 거두었다. 호나우지뉴는 그 돈보다 많은 것을 바르샤에 헌신하며 자신도 역대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렇게 호나우지뉴는 바르샤가 추구한 아름다우면서 승리하는 축구가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FC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시즌인 03-04 시즌 초반에는 이전 해의 부진으로 인해 팀 자체가 틀이 안 잡혀서 본인의 활약도 그저 그랬지만, 후반기에 4-3-3 포메이션을 가동하면서 3톱의 왼쪽에 배치, 프리 롤로 기용되면서 후반기 엄청난 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고[8] 본격적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때 그는 22골 14도움을 기록했다.

2004-05 시즌 본인의 활약도 정점에 오르고, 여름 이적시장 때 영입한 사무엘 에투, 데쿠같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힘입어 팀은 99년 이후 6년만에 프리메라 리가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되었다.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당시 주제 무리뉴 감독의 지휘 하에 최강을 자랑하던 첼시와 16강에서 맞닥뜨렸는데, 2차전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수비진과 페트르 체흐 골키퍼가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던 대단한 골을 넣기도 했다.

페트르 체흐의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보자.

전설의 궁둥이 씰룩씰룩 골

비록 팀은 첼시에게 패배하며 16강 탈락에 그쳤으나, 호나우지뉴는 한 해 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2005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이 시즌 바르셀로나에서의 기록은 9골 16도움이었다.

2005-06 시즌 엘 클라시코, 호나우지뉴 vs 레알 마드리드

2005-06시즌에 호나우지뉴와 아이들은 빛을 발했다. 2005년 11월 19일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엘 클라시코에서는 2골을 기록하는 등 독보적인 활약으로 팀을 3-0 완승으로 이끌면서 상대 팀 레알 마드리드의 관중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고, 2006년 4월 1일에 열린 안방에서의 엘 클라시코까지 5경기 연속 골, 6경기 모두에서 공격 포인트를 올리면서 또다시 프리메라 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엘 클라시코의 영웅이 세계 축구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수순을 밟은 순간이었다.

한편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공교롭게 또 다시 무리뉴의 첼시 FC와 만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바르셀로나가 복수에 성공하면서 8강 진출.[9] 8강에서 SL 벤피카, 4강에서 AC 밀란[10], 결승에서 아스날 FC를 차례로 꺾고 바르셀로나가 1992년 이후 첫 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루는 데 주축이 되었다.

2000년대 최강의 팀 중 하나인 AC 밀란 원정에서 젠나로 가투소안드레아 피를로를 제쳐 버리는 호나우지뉴.

이 세 시즌 동안 호나우지뉴의 플레이는 실로 경이로웠다. 묘기 수준의 개인기를 매 경기 보여주면서도 자기 중심적 플레이가 아닌 팀에 보탬이 되는 플레이를 하여[11] 세계인의 뇌리에 강렬하게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레알 마드리드와의 클래식 더비에서, 하프 라인부터 치고 나가 레알 수비수들을 농락한 골을 두 번이나 넣은 것.[12] 오죽하면 레알 홈 관중들조차 허탈한 표정으로 기립박수를 쳐줄 정도였다. 이 기립박수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굉장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에게 보내는 "야, 야, 레알 마드리드. 너네 병신같이 그렇게밖에 못하고 개털리고 있냐?"라고 조소가 담긴 박수와 다른 하나는 상대 선수의 플레이에 경탄을 담아 보내는 박수.

당시 인간 같지 않은 실력과 독특한 외모[13] 덕분에 붙은 별명이 바로 외계인.[14] 절정의 기량에 달한 호나우지뉴에 대한 브라질 국민들의 사랑과 기대감은 대단해서 고향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을 정도였다.

특히 이런 기대가 정점에 달한 시기가 2006 독일 월드컵이었는데 당시 에이스 호나우지뉴에, 살이 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파괴적인 스트라이커 호나우두, 브라질에서 보기 힘들었던 스피드와 슈팅 파워를 모두 갖춘 타겟형 공격수 아드리아누에 당시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카카까지 브라질 공격진의 네임밸류는 정말 엄청났다. 소위 '판타스틱4', '천상의 4중주'라고 불렸을 정도니. 이에 많은 사람들 특히 브라질 국민들은 자국의 우승을 거의 반쯤 확신하고 있었는데, 문젠 여기서 에이스였던 호나우지뉴가 바뀐 포지션에 적응하지 못하고 예상외로 부진. 결국 8강에서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늙은 수탉 앙리까지 두 대머리, 사실 당시 프랑스 대표팀 전원이 대머리였음프랑스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탈락하고 만다.[15] 이에 분노한 군중들이 호나우지뉴의 고향에 세워진 동상을 불태우기도 했다.이쪽도 은근 냄비

여담이지만 전성기 때 외계인 모드였던 딩요도 사람인지라 꼭 막히는 수비수가 한 두명씩 있었다. 대표적으로 레알 마드리드 CF의 주전/로테이션 센터백이였던 이반 엘게라, AC 밀란야프 스탐, 첼시FC의 칼리드 불라루즈[16][17]가 있었다. 이 중 스탐은 05-06 챔스 4강전에서 딩요를 말 그대로 꽁꽁 묶어버리며 경기장에서 지워버리는 맹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밀란은 결승 진출에 실패한다.[18]

2.3.1. 몰락

나는 에덴 아자르에게 자주 이렇게 얘기하곤 해. 호나우지뉴는 세계최고의 선수였어. 아마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할 수 있을 거야. 다만, 그 선수는 매일매일 연습을 하는 선수가 아니었고 결국 그 대가는 혹독하게 치르게 되지. 네가 호나우지뉴 또는 메시라고 할지라도 연습을 게을리한다면, 2년 후에는 넌 잊혀지고 다른 신인이 너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야. 니가 고생을 안해서 그래. 고생을 해야 진짜로 얻었다고 할 수 있지.

 

- 사무엘 에투[19]

그러나 '호나우지뉴의 아이들'의 전성시대는 2년만에 끝났다. 라리가-수페르코파-챔스 3관왕으로 정점을 찍던 2005-06 시즌 막판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의 호나우지뉴의 플레이는 예전에 비해 상당히 정적으로 변모하고 화려한 드리블보다는 킬패스만 노리는 모습을 보여주어[20][21][22] FC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일말의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워낙 외계인인지라 일시적인 컨디션 저하겠거니… 했지만 아니었다. 2006-07 시즌에 이르러 FC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골잡이 사무엘 에투의 장기부상으로 인하여 팀은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호나우지뉴는 팀에서 요구하는 다이나믹함을 점점 잃어가며[23][24] 챔피언스 리그에서 16강 탈락. 프리메라 리가에서도 막판에 레알 마드리드에게 역전 당하면서 준우승에 머물고 만다.[25]

07/08 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막장의 길로 들어선다. 호나우지뉴는 팀 전체 훈련에 1년 동안 단 한번도 나오지 않으면서 나이트 클럽 죽돌이가 되어간다. 늘어나는 뱃살에 움직임은 둔해지고, 게다가 자율적인 분위기를 추구하던 감독인 프랑크 레이카르트는 이러한 호나우지뉴에 대해 통제를 가하지 못하였고 팀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어갔다. 팀 또한 사무엘 에투의 부상재발과 다른 선수들의 부진으로 이제 갓 20살인 리오넬 메시가 팀을 떠받들다시피 하는 안습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26] 호나우지뉴의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한 브라질 동료 에드미우송이 그의 방탕한 사생활을 폭로한 검은 양 사건도 이때 터졌다. 결정적으로 2007년 12월 23일에 당초 훈련 불성실로 인해 제외되었던 그가 안데르송 데쿠와 함께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복귀한 엘 클라시코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0-1로 진 게 독이 되어 라 리가에서는 3위로 밀려나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그래도 4강까지 오르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배. 사실상 후반기에는 그는 팀의 전력에서 완전 제외된 상황이었고 저 성과도 거의 메시 혼자 이뤄낸거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특히 2008년 5월에 레이카르트가 경질되었던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 1-4 참패를 당한 바르사는 내리 2년을 레알 마드리드에게 타이틀을 내주었다. 바르사를 지지하는 스포츠 신문 <문도 데포르티보>는 헤드라인으로 "창피하다!"라고 내걸었고, <스포르트> 역시 "당신들은 바르사 유니폼을 입을 자격이 없다!"라는 문구를 어떠한 사진 없이 검은 배경에 배치한 1면에 내보내며 극도의 실망을 표했다. 그리고 시즌 이후 실력과 인기 모두를 잃어버린 그를 FC 바르셀로나가 더이상 안고 갈 이유도 의사도 없었던지라 결국 이적시장에 나오게 된다.

바르셀로나 전 부회장이 밝힌 내막에 따르면 호나우지뉴를 내보낸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가 메시에게 악영향을 줄까봐여서 였다고 한다. 예전만 해도 바르사는 메시를 그냥 재능쩌는 유망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나 챔스전 등에서 그가 보통 재능의 소유자가 아님을 알아본 이후부터 식단, 행동습관, 심지어 잠자는 시간까지 몽땅다 계획을 세워주고 따르게 할 정도로 투자를 그에게 몰빵하여 말그대로 축구기계 육성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그러나 팀에서 그렇게 공들여 기르던 메시는, 태업을 일삼으며 클럽과 마찰을 빚던 호나우지뉴를 매우 따르고 있었고 지뉴와 그당시 지적받던 선수들도 막내였던 메시를 무척 아껴서 어딜가든 데리고다니며 거의 가족처럼 대해줬다.

또 호나우지뉴가 몰락한 데에는 개인사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바르사 입단 초기에 그는 여동생인 데이지, 어머니 미겔리나와 함께 바르셀로나에 살며 축구에 집중했었다. 문제는 여동생인 데이지가 지역 라이벌인 RCD 에스파뇰 선수 에두아르두 코스타와 교제하면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 이후 데이지는 코스타가 PSG로 이적하자 그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이에 외로움을 호소하던 어머니까지 고국인 브라질로 돌아갔다. 이미 호나우지뉴 본인은 바르셀로나 생활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지만 홀로 남은 집에서 호나우지뉴는 끝없는 외로움을 느꼈고, 성공의 향취와 더불어 자기 관리에 소홀해져 음주가무에 빠진 채 데쿠와 더불어 바르셀로나에서의 밤문화를 즐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르사는 호나우지뉴의 방탕한 사생활이 그 자신의 플레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역시 좋지 않게 봤지만 클럽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메시가 그에게 물들까봐 더 걱정했다고 한다.[27] 특히 어릴 때부터 아르헨티나인 특유의 육류식단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던 메시가 밤문화까지 배우고 자제력을 잃기 시작하면 어쩌나하는 염려가 컸다고...팀 내부에선 호나우지뉴를 내보내지 않으면 선수단 분위기는 물론 결국엔 메시까지도 지금의 자제력을 잃고 망가질 것이란 목소리가 커져갔고 메시가 기대대로 07/08시즌 혼자서 팀을 떠맡는 역할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낼 정도로 성장하자 결국 바르사는 그들의 미래를 하락세의 에이스 지뉴가 아닌 어린 메시에게 걸기로 결정하여 그를 올바른 에이스로 길러내기 위해 호나우지뉴와 기타 선수들을 내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리오넬 메시의 데뷔골을 어시스트하는 호나우지뉴, 바르셀로나의 에이스가 교체되는 상징적인 순간이다.[28]

참고로, 이 때 어시스트를 해준 호나우지뉴의 등에 업혀서 손을 흔드는 리오넬 메시는 일명 어부바 세리머니로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 당시 호나우지뉴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고, 당시 어린 막내였던 리오넬 메시를 아껴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사실 저 데뷔골도 경기가 끝나갈 즈음에 리오넬 메시가 사무엘 에투와 교체되어 들어오자 호나우지뉴가 "어이쿠, 내 동생한테 데뷔골 챙겨줘야지?" 하는 식으로 팍팍 밀어준 덕이 컸다. 저 데뷔골이 들어가기 2분 전에도 호나우지뉴의 로빙 어시스트 - 리오넬 메시의 로빙 슛 골의 똑같은 상황이 있었는데 그 골은 오프사이드로 오심판정을 받았었다.

2.4. AC 밀란

가치가 추락한 호나우지뉴였기에 이적이 될까 싶었지만 다 쓴 선수 비싸게 매입하는 AC 밀란에서 그의 영입을 추진하여 성사. 베를루스코니는 그를 여전히 캄피오네라면서 영입했다지만, 08/09 시즌의 호나우지뉴는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나마 나이트는 좀 안가게 됐으니 다행(…). 아예 안 간건 아니다. 다만 바르셀로나에서 만큼 맨날 가지는 않았을 뿐.

2009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 CFAC 밀란의 에이스였던 카카를 영입해갔고 호나우지뉴는 카카의 공백을 메꿔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게 된다. 예전의 다이나믹함은 사라졌지만 살이 약간 빠지고, 볼키핑과 특유의 패스가 살아나주면서 밀란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으며, 전성기에 보여주던 특유의 화려한 드리블 돌파도 간혹 보여주기도 했다. 그 와중에 유벤투스전에서 2골을 넣더니 일주일 뒤인 시에나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이후로도 그때 그 시절 보단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있지만, 국가대표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안습한 상황. 브라질 국가대표 前 감독 둥가는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는 열려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호나우지뉴는 나의 계획에 없다"라고 발언했다.

산 시로에서 치러진 2009/2010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는 선발로 나와서 맨유의 수비수 하파엘, 조니 에반스, 리오 퍼디난드를 혼자서 쳐발라버리고 1골 1어시를 올리는 그야말로 외계인의 복귀라 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팀 전체적으로 경기력이 밀리며 맨유에게 3골을 내주며 패배했다. 스피드를 제외한 경기력이 엄청나게 돌아온 모습을 보이며 팬들에게 2차전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기도 했지만 올드 트래포드에선 밀란 전체가 관광을 당하며 4-0으로 참패하고 말했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AC 밀란의 1, 2차전은, 특히나 그 중에서도 2차전은 안드레아 피를로박지성에게 문자 그대로 '지워졌던' 그 경기가 맞다.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국대에도 끝내 뽑히지 않았는데 카카와 포지션이 겹쳐서도 있지만 후보조차로도 못뽑히는 이유는 둥가 감독이 더 이상 브라질 특유의 화려한 개인기위주 중심에서 벗어나려는 의도[29]에 있다. 덕분에 다른나라 축구팬들에겐 욕만 먹는다. 재미없다고. 유벤투스와 함께 부진한 지에구도 그 이유가 더 커서 뽑히지 못하였다.

2010년 챔피언스리그에서 탈락하고 브라질 대통령이 브라질 국대에는 호나우지뉴가 필요하지 않다라고 발언하는 바람에 의욕을 상실할 것을 우려한 일부 팬들이 있었으나, 이후 벌어진 키에보 베로나전에서 지쳐쓰러질 때까지 뛰는 모습을 보여주어 팬들을 훈훈하게 했다.

그리고 10-11시즌 개막전, 그야말로 날아다니면서 팀의 4-0 대승을 이끌었다. 체중도 전성기적과 1kg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고 세리에 A 어시왕을 찍었던 09-10시즌보다 드리블이 민첩해지고 활동량도 늘어났다. 허나, 다시 폼이 떨어지며(...) 벤치만 달구다가, 안토니오 카사노의 영입이 확정되면서 친정팀인 브라질 리그 그레미우로 돌아가는 것에 합의했다가 막판 플라맹구의 기적의 협상개입으로 인해 플라맹구로 이적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한다. 결코 짧지 않았던 이 30살의 축구 선수 인생이 대단원의 막을 내릴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으나...페이크였다!

2.5. 고향에서

이렇게 브라질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사실상 월드 클래스 선수로서의 커리어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허나 아직 젊은 나이기도 하고, 금세 더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리그에서 꿀떡꿀떡 공격 포인트를 기록 중이고 네이마르의 산투스를 상대로 3골 1어시라는 미친 활약을 펼쳤다. 역시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는다. 게다가 이 경기는 산토스가 플라멩구를 3:0으로 일방적으로 관광때리다 지뉴가 역전시킨 경기라서 더 의미가 크다. 그러나 종합 스코어는 산투스 FCCR 플라멩구에 5:4로 승리...

고향 브라질로 돌아와 플라멩구에서 서서히 몸을 데우며 활약했지만 임금 체불이 이어지자 법정 공방 끝에 계약을 해지했다.

2012년 6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로 이적했다. 그리고 계속 좋은 모습을 보였고, 이런 클럽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국가대표에 다시 한 번 발탁되었다. 또 시즌 도중 월드 사커 선정 2000~2009 최고의 선수 트로피까지 받는 영예도 누렸고, 특히 이 시기 호나우지뉴는 어머니의 병 때문에 은퇴할 생각까지 했으나 팬들의 지극정성과 쾌유가 겹치며 은퇴를 그만두게 되었다.

2013년 2월 7일, 잉글랜드와의 A매치 평가전에서 PK를 실축하면서 역적이 되어버렸다...물론 컨디션이 안 좋았던 점은 있다. 스콜라리 감독도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면 다시 감을 잡을 것이라는 평가를 했다. 나는 믿을 거야 호나우지뉴 믿을 거야 그 이후 남미의 챔피언스 리그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했다. 본인 또한 대회 MVP로 선정. 대회 우승 직후 호나우지뉴는 "모두가 나에게 이미 끝난 선수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난 아직 더 뛸 수 있다는 걸 이번 우승으로 증명했다."라며 그간의 설움을 단박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30]

2014년 1월 1일엔 '2013 남미 올해의 축구선수상'을 수상해 클라스가 다시 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클라스는 영원하다

그리고 2014년 1월 8일 터키의 베식타쉬와 계약하며 유럽으로 복귀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뜨며 유럽 대항전에서 다시 그의 플레이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팬들의 기대가 증폭 중이었지만 갑자기 미네이루 잔류 기사가 뜨며 물거품이 되었다. 미네이루 회장의 잔류 확정 SNS와 더불어 브라질에 남는 것이 확정. 유럽에서 보고싶던 이들에겐 아쉽게 되었으나 본인은 브라질 월드컵을 위해 안정적인 브라질 리그에 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2014년 자국 월드컵에 뽑히지 못했다. 미네이랑의 비극이 일어나자 브라질 관중들은 브라질 국가대표팀에게 야유를 보내는 한편, 호나우지뉴의 공백을 실감한 듯 그의 이름을 연호하였다.

돌이켜보면 이름값에 비해서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크게 돋보이지는 않다. 유일하게 활약했던 2002 한일 월드컵은 호나우두의 8골에 묻힌 감이 없잖아 있고 2006 독일 월드컵은 프랑스에게 털리며 주가 폭락과 더불어 폼 추락. 2010 남아공 월드컵과 자국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은 뽑히지도 못했고...그렇다고 그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지만, 짧은 전성기와 더불어 시대를 초월해서 역대급의 반열에 들 수도 있었던 그의 평가를 깎아먹는 요인인 것도 맞다. 반대로 그의 선배 호나우두는 클럽팀에서의 짧아도 너무 짧은 활약이 국대에서 보여준 역대급 선수로서의 모습을 퇴색시키는 면이 있다.

뜬금없이 팀을 무단 이탈하여 자유계약 신분으로 풀렸다. 과거 바르셀로나 동료였던 데쿠의 친선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팀에 말도 없이 떠났는데 그 이후로 연락이 안됐다고. 그래서 미네이루는 깔끔하게 자유계약으로 풀어줬고 호나우지뉴는 다른 리그로의 진출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31]

2014년 9월 6일 리가 MX 소속의 케레타로 FC로 이적하였다.

2015년 7월 11일 플루미넨시 FC로 이적하며 브라질로 복귀하였다.

2015년 9월 29일자로 플루미넨시와 계약을 해지했다.

2.6. 다시 바르셀로나로

2016-17 시즌 여름 이적시장이 끝난 직후 FC 바르셀로나가 미국 진출을 노리며 9월 6일 런칭하는 뉴욕 애비뉴 지사의 공식 앰버서더로 임명되었다.

8년 만에 자신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클럽으로의 복귀이며 구단 측에선 과거의 전 세계구급의 인기와 호나우지뉴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바탕으로 구단을 대표할 공식 앰버서더 적임자라고 발표하였다. 불과 며칠 전 레알 마드리드 CF의 앰버서더로 호나우두가 임명된 것을 견제한 것으로도 보인다. 관련기사

2017년 4월에 열린 레전드 엘 클라시코 친선경기에 출전했다. 그리고 전성기 종종 보여주었던 노룩 로밍 패스로 한 번, 왼발 로밍 패스로 한 번, 역습 상황에서 쓰루 패스로 한 번[32], 총 3도움을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를 3:2로 관광보냈다.

2017년 6월 30일 캄 노우에서 열린 자선경기[33]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레전드 매치에서 다시 한 번 히바우두,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에드가 다비즈 등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선수들과 함께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되었다. 결과는 비록 1:3으로 패배했지만 경기를 뛰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즐겁게 뛰었으며 팬들에게 시간이 지나도 여전한 외계인 퍼포먼스를 선사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레전드 선수로 출전한 박지성의 파울로 패널티 박스 근처에서 넘어지기도 했는데 웃으며 악수하는 장면 역시 축구 올드팬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2.7. 은퇴

2017년 12월 7일 은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후년인 2018년 1월 16일 정식 은퇴를 선언했다. 메시 이전의 바르셀로나의 절대적 에이스이자 후배 네이마르보다 더 화려한 묘기를 보여준 레전드 선수는 비록 자기관리 실패로 인한 구설수를 남겼지만 그래도 2000년대를 풍미했던 선수로서 이제 역사가 되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 공연에 참여하였다.

2.8. 비치사커 선수 데뷔

2019년 1월, 브라질 비치사커 국가 대표로 데뷔하게 되었다.기사

3. 국가대표 경력

1999년 코파 아메리카가 그의 첫 메이저 대회였다. 하지만 후보 신세였고 브라질은 히바우두-호나우두 투톱으로 승승장구하며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그러나 호나우지뉴의 진면목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2002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브라질은 조직력 문제로 말이 많았다. 지역 예선도 힘겹게 올라온 상태였고 호나우두는 부상으로 신음을 앓다가 복귀한지 얼마 안된 상태였다. 하지만 본선에서 그들은 각성한다. 당시 공격의 삼각편대 3R은 막강한 모습을 보여줬고 조별 예선에서는 C조에 걸려 터키, 중국, 코스타리카를 모두 꺾고 3전 전승으로 16강에 올라간다. 16강에서는 벨기에히바우두호나우두의 각각 1골로 2-0 승리한다.

호나우지뉴의 프리킥 골

8강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호나우지뉴는 동점골 어시스트와 프리킥 골까지 만들어내지만 퇴장당한다. 어쨌든 그의 활약에 ​​2-1승리를 거둔다. 4강호나우두의 결승골로 터키를 1-0으로 승리하며 결승에 오른다. 결승 상대는 독일이었다. 당시 독일은 올리버 칸이 버티고 있었지만 호나우두가 이를 뚫어내며 2골을 기록했고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드는데 성공한다. 호나우지뉴는 히바우두-호나우두 투톱을 잘 보좌하며 활약했고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된다

다음 2006년 독일 월드컵은 더 기대되었다. 팀도 카카-아드리아누-호나우두-호나우지뉴로 이어지는 '판타스틱 4'를 구성했고 조별 예선 역시 3전 전승, 16강에서 가나까지 3-0으로 꺾으나 8강에서 티에리 앙리에게 결승골을 허용하여, 프랑스에게 1-0으로 아쉽게 패배한다. 호나우지뉴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이타적 플레이에 집중하며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고 브라질 국대 코치진들과의 불화까지 심화되며 결국 부진에 늪에 빠졌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뽑혀 출전했으나, 동메달에 그쳤다.

4.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의 호나우두는 알아도 못 막았지만, 호나우지뉴는 정말 몰라서 못 막았다. 이 말만으로도 호나우지뉴의 무시무시함을 알 수 있다.[34]

흔히 호나우지뉴를 개인기는 화려하나 가볍고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는 전형적인 기술중심의 남미형 선수라 착각하기 쉬운데, 유튜브에 즐비한 스페셜 영상들만 봐도 이 것이 잘못된 생각이란 걸 알 수 있다. 역습 과정에서 간결한 최소한의 터치로 수비수들을 벗겨내는 스피드, 수비수 서너 명이 달라붙어 밀쳐도 공을 지키면서 버텨내는 피지컬을 가진 선수였다. 공격수로는 크지 않은 180cm의 신장으로도 자신보다 훨씬 큰 180대 후반의 수비수 두세 명과 격렬하게 부대끼면서도 밀리지 않았다.[35] 오죽하면 쓰러진 선수가 발을 붙잡아야만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을 정도다. 또한 힐패스와 노룩패스, 페이크 패스 등은 자신에게 달라붙는 수비수들의 태클을 피하면서도 필드 전체 상황을 읽고 있다는 엄청난 집중력과 축구 지능의 증거이다.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수비수를 피해 동료에게 볼을 배달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즉, 이 시기의 호나우지뉴는 개인기와 드리블, 스피드, 피지컬, 패싱, 세트피스, 슈팅 등 공격에 필요한 모든 옵션을 보유하고 제공하며, 감독의 전술폭은 물론 동료들의 움직임까지 활성화시키던 먼치킨이었다.

호나우지뉴는 기본적으로 볼을 다루는 능력과 돌파하는 드리블, 시야, 패스와 연계능력, 마무리능력까지 완벽하게 갖춘 드리블러형 공격수이며, 크랙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로 볼 수 있다.[36] 압박 전술이 발달한 현대 축구에서는 측면이 압박을 덜 받는다는 점을 이용해 측면에서 플레이 메이킹을 하는 선수들이 생겼는데, 리오넬 메시프랑크 리베리 등과 더불어 호나우지뉴가 대표적이다.[37]

전성기 호나우지뉴를 상징하는 것은 단연 화려한 개인기다. 호나우지뉴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인 플립 플랩을 비롯, 헛다리 짚기 · 라 크로케타 · 마르세유 턴 · 스쿱 턴 등 다양한 개인기를 최상급으로 구사했으며, 공을 공중으로 튕기면서 수비수들을 농락하는 플레이도 즐겨했다. 단순히 기술만 뛰어난 게 아니라 신체능력도 탁월했는데, 몸의 탄력과 유연성이 엄청난 덕분에 동작이 큰 개인기를 구사하고도 다음 동작으로 빠르고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고, 웬만한 수비수들을 압도하는 피지컬과 스피드도 가지고 있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주로 수비벽을 허무는 돌파에 초점을 두고 빠른 드리블과 개인기를 사용해 적팀 수비수를 깨부순 뒤, 동료에게 마무리를 양보하는 식의 플레이를 많이 하였다. 골욕심이 그리 많은 선수는 아니었고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윙어로 뛰다보니 마무리보다는 공격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넓은 시야와 축구지능까지 굉장히 뛰어난 편이라, 볼을 어떻게 움직이고 누구에게 패스해야 공격이 쉬워지는지 잘 알고 있는 선수이다. 누구도 구사하지 못하는 탈지구급의 드리블에 킬패스까지 겸비했으니, 적팀 수비수들은 호나우지뉴를 막다가 패스 한 방에 골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호나우지뉴가 지닌 가장 무서운 장점이자 타고난 역대급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공을 감지하는 몸의 감각이다. 발 뿐만이 아니라 등, 뒤꿈치, 어깨 등 다른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도 잘 쓰지 않는 신체부위를 가지고도 기가 막힌 패스를 해냈다. 게다가 그는 원터치로 전달하는 웬만한 패스에 시선을 잘 두지 않았다. 물론 공이 오는 각도와 튕겨나갈 방향을 잘 예측한 플레이긴 했지만, 이런 예측이 어렵고 신통방통한 움직임은 그가 외계인으로 불리는데 큰 일조를 했다. 또한 전성기 시절엔 공을 위로 띄워 트래핑을 하든 드리블을 하든 속도가 줄지 않는 엄청난 능력을 선보였다. 거기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탁월해 템포를 잡아먹지 않으면서 패싱력까지 갖춰 빠른 역습중에 킬패스까지 뿌릴 수 있는 선수였다.

위의 그 감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상이다. 잠깐 안대 한쪽에 구멍이 뚫려 있잖아?[38]

킥 능력도 굉장히 뛰어났다. 외계인같은 드리블이나 패스에 묻혀서 그렇지, 기회가 날 때마다 골대를 가르는 매서운 중거리 슈팅과 키퍼가 손도 쓸 수 없는 절묘한 각도로 차는 섬세한 슈팅능력을 지녔으며 이런 식으로 골도 많이 넣었다. 실제로 프리킥 골 수가 커리어 통틀어 66골[39] 크리스티아누 호날두(54골)와 리오넬 메시(52골)[40]를 압도하고 65골인 데이비드 베컴과 비슷한 수준이다. 코너킥도 전담했으며, 화려하고 창의적인 플레이로 유명한 선수답게 아크로바틱한 골도 종종 넣었다.

지뉴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볼에 대한 집념인데 잇몸을 드러내고 루즈볼을 차지하려는 열띤 모습이 거기서 비롯된다. 전성기 시절에는 왕성한 활동량까지 붙어 말 그대로 축구공을 몸에 붙이고 다니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야말로 결점 자체가 없었던 화려한 선수였다.

하지만 2006-07 시즌부터 자기관리에 실패하며[41] 신체능력과 바디 밸런스가 붕괴하면서,[42] 예전같은 역동적인 드리블 돌파는 자주 할 수 없게 되었고 활동량도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발기술과 피지컬로 제자리에서나 걸어다니면서 볼을 지켜낼 정도는 됐고 특유의 패싱 감각과 킥력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AC 밀란에서는 돌파보다는 패스와 크로스로 플레이하는 미드필더에 가깝게 스타일이 변화했다. 그래도 활동량과 역동성의 하락은 호나우지뉴의 팬들에게나 AC 밀란의 팬들에게나 아쉬운 부분이었기 때문에 시즈모드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5. 여담

  • 2002년 한일 월드컵 선정 가장 못생긴 축구선수 1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2위는 이천수, 3위는 올리버 칸이었다. 2009년에는 4위를 하며 3위 자리를 이천수한테 내주고 만다.
  • 침대 위에서의 개인기 또한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2002 월드컵 당시 호나우지뉴와 잠자리를 했다는 영국 랩 댄서인 리사 콜린스는 인터뷰에서 "그는 마치 드릴 같았다.(like a pneumatic drill)"고 말하는 바람에 호나우드릴(...)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또 그의 전 애인이었던 알렉산드라 파레상은 침대 위에서의 호나우지뉴를 이렇게 표현했다.
>'호나우지뉴는 축구 뿐만 아니라 침대위에서도 예술가다. 8번째 그가 힘을 주었을때는 마치 드릴로 몸을 파고 드는것 같았으며 그 순간 나는 기절했다. 처음에는 베컴을 원했지만 호나우지뉴와 사랑을 나누고 나서는 그런 맘이 사라졌다.이로 인해 2006년 폭스스포츠에서 선정한 역대 플레이보이 축구인 7위에 오르기도(...).
  • 항상 명품 옷과 신발을 곧잘 걸쳤는데, 운동과 춤으로 다져진 몸이라 의외로 잘 어울렸다. "그 얼굴에 왜 그리 명품에 집착하나요?"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이렇게 생겼는데, 옷이라도 잘 입어야죠."라 대답하기도 했다. 우문현답
  • 호나우지뉴가 NASA의 협력업체를 방문한 사진이 올라오자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한 외계인" 등의 드립이 흥했다.
  • 이 분과 많이 닮았다. 머리를 풀면 이 아가씨랑도 닮았다. 앞니 때문에 개그맨 박준형이 한때 호나우지뉴를 따라하기도 했다. 사실 박준형 뿐 아니라 한창 유명할 땐 많은 연예인들이 웃길려고 호나우지뉴 흉내를 종종 냈다. 이 분도 좀 닮았다.
  • 2013년 치아미백과 잇몸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 2018년 11월 기준으로 현재 통장잔고가 6유로(7600원)에 빚만 25억원 정도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친형과 함께 구아이바 강에서 낚시배 부두를 지으려다 이게 하필이면 보호구역 내에서 짓는 바람에 불법건축 혐의로 벌금형 + 모기지 대출로 인한 높은 이자로 인해 채무를 지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브라질 법원으로부터 계좌 압류에 여권까지 압수당했다. 이유는 많은 채무를 진 상태에서도 보란듯이 광고 촬영을 명목으로 일본이나 중국을 방문하고, 아프리카나 유럽에 가서 자신의 이름을 딴 나이키社 신발을 홍보하는 등, 명백한 수입을 얻을만한 증거들이 있다고 판단했기에 압수했다고 한다. 링크1 링크2 참고로 호나우지뉴가 홍보하는 신발은 지난 9월에 나이키에서 발매한 티엠포 레전드 7 10R이다.
  • 2020년 3월. 브라질 매체 '테라'는 5일(한국시각) "호나우지뉴가 형과 함께 위조 여권으로 파라과이에 입국했다가 호텔에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여권이 압류된 상태에서 자서전 발간 행사등에 참여하려고 가짜 여권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호나우지뉴 측은 어느 사업가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후 아순시온에 위치한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교도소에서 열린 풋살대회에서 5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11-2 대승을 이끌었다고 한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241&aid=0003010395

5.1. 메시와의 인연

본인의 등번호 10번과 에이스 자리를 계승한 리오넬 메시와의 인연으로 유명하다. 클럽 내부에서는 메시파와 호나우지뉴파로 여론이 갈리어 정치적인 다툼이 발생했지만 정작 두 선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이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축구 경력이나 위상에서 넘사벽으로 차이가 나는데다 무엇보다 브라질 vs 아르헨티나라는 넘사벽 라이벌리에도 불구하고, 호나우지뉴는 성격도 내성적이고 나이도 가장 어렸던 메시의 1군 적응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사실 호나우지뉴 입장에서 보면 당시의 메시가 아무리 어렸다고는 해도 언젠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만큼 위협적인 선수였는데도 경쟁심이나 질투는 커녕 오히려 메시가 빨리 데뷔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가장 열렬히 지원하고 지도해줬으며, 팀에서 방출된 이후로도 자신의 자리를 계승한 메시의 성공을 누구보다 축하해 주었다.

메시가 1군 훈련에 처음 합류했을 때 첫만남을 가졌는데, 당시 실빙요나 챠비 등 1군 선수들이 메시의 재능에 깜짝 놀랐었고 특히 호나우지뉴는 메시는 자기보다도 더 뛰어난 선수가 될거라며 극찬을 퍼부었다고 한다. 중요한건 이당시 메시의 나이가 16살, 말그대로 상꼬맹이 시절이었다는 것. 덕분에 이 이야기를 들은 주변 선수들이 팔불출이 심하다며 웃었다고 한다. 훈련을 마치고 호나우지뉴 본인이 평소 잘 알던 기자에게도 방금 나를 뛰어넘을 만한 선수를 만나고 왔다고 이 이야기를 했는데 이 기자도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은 진지했던 모양인지 자신의 절친인 코비 브라이언트를 만나는 자리에도 리오넬 메시를 대동하고 나가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녀석을 소개해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해서 브라이언트도 속으로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44]

호나우지뉴는 이때부터 메시를 눈여겨보고 거의 가족처럼 대해주었다고 하는데, 조국인 브라질과 불구대천의 라이벌인 아르헨티나 출신에, 성격도 전혀 달랐던 어린 유망주 메시와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호나우지뉴의 우정은 상당히 주목 받았었다. 단순히 립서비스 뿐이 아니었던 것이, 이당시 메시가 B팀으로 차출되며 더이상 1군 훈련에 합류하지 않게되자 1군 선수들과 호나우지뉴가 당시 감독 레이카르트를 찾아가서 B팀에 있을 재목이 아니라며 메시의 1군 승격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한다.

물론 메시는 어릴때부터 바르셀로나 내부에서도 유명한 미래의 스타였지만 외국인인데다 허약한 피지컬이란 제약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어린 나이의 실전경험도 없는 선수를 성인팀에 넣는다는 것은 지금으로 봐도 대단한 도박이었다. 메시의 월반 속도는 그 실력을 감안하고 봐도 비정상적으로 빠른 구석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메시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봤던 클럽 내부 인물들과 호나우지뉴 등 1군 멤버들의 강력한 푸쉬도 한몫했다. 이후 호나우지뉴는 메시의 데뷔골까지 어시스트하며 그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호나우지뉴는 이 장면을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고 메시라는 선수의 시작을 알린 장면이라며 평생동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바르셀로나를 떠난 뒤에는 자신의 축구 인생에 있어 유일한 후회는 메시가 커가는 모습을 좀더 오래도록 지켜보지 못했단 것 하나 뿐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가 메시에게 얼마나 각별했는지 알수 있는 일화. 메시 역시 호나우지뉴를 친형처럼 따랐기 때문인지 그의 이적을 반대했었다. 호나우지뉴가 떠나고 본인이 원탑 에이스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꽃피웠음에도 당시 바르셀로나 회장이 이젠 메시가 새로운 리더라며 그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 내 친형과 같던 사람을 떠나보냈다며 원망했다고 한다.

2015년 당시 카탈루냐 방송사에서 등번호 10번의 전임자이던 호나우지뉴에게 싸인한 져지를 선물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여기서 메시가 인터뷰 영상에서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팀이 (호나우지뉴를) 그런 식으로 대접하면 안되는 거였고, 그의 명성에 걸맞는 대우가 아니었다고 오히려 바르셀로나의 처사를 비판했다. 이에 반해 호나우지뉴는 자신이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던 거고 팀과 자신 사이에 갈등이 없었으며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은퇴 발표 직후에 메시 역시 다음의 글을 본인의 SNS에 올리면서, 선대 바르셀로나 에이스이자 조력자였던 그의 은퇴를 기념하였다.

"항상 말했듯이, 나는 형의 곁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 내가 드레싱 룸에 처음 입성했을 때, 나에게 해준 모든 것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다가왔는지에 대해서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할 거야. 형과 함께 많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던 건 행운이었지. 또, 형은 경기장에서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천재(fenómeno)이기도 했지만, 인간적으로도 정말 좋은 친구였어. 아마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닐까? 형이 은퇴를 하더라도, 축구는 절대 형의 미소를 잊지 못할 거야.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길, 로니."

6. 기록

6.1. 대회 기록

  • 그레미우 (1998~2000)
    • 코파 술 미나스: 1999
    • 캄페오나투 가우초: 1999
  • 플라멩구 (2011~2012)
    • 리우 데 자네이루 주 주별리그: 2011

6.2. 개인 수상

6.3. 출전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1998

그레미우

브라질 세리에 A

14

1

0

2

0

0

15

3

2

1999

그레미우

브라질 세리에 A

17

6

0

3

0

0

4

2

0

2000

그레미우

브라질 세리에 A

21

14

0

6

6

0

-

-

-

2001/02

파리 셍제르망

프랑스 리그앙

28

9

8

6

2

0

14

2

2

2002/03

파리 셍제르망

프랑스 리그앙

27

8

6

7

3

0

4

1

2

2003/04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32

15

11

6

3

1

7

4

2

2004/05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35

9

10

0

0

0

7

4

4

2005/06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29

17

15

2

1

1

12

7

6

2006/07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32

21

8

4

0

1

11

3

3

2007/08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17

8

2

1

0

0

8

1

2

2008/09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9

8

6

1

0

1

6

2

1

2009/10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6

12

18

0

0

0

7

3

1

2010/11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1

0

3

0

0

0

5

1

1

2011

플라멩구

브라질 세리에 A

31

14

7

5

1

1

3

2

0

2012

플라멩구

브라질 세리에 A

2

1

0

0

0

0

8

2

6

2012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브라질 세리에 A

31

9

15

0

0

0

-

-

-

2013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브라질 세리에 A

14

8

2

2

0

2

14

6

7

2014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브라질 세리에 A

2

0

0

0

0

0

7

1

2

2014/15

케레타로 FC

멕시코 리가MX

25

8

4

4

0

0

-

-

-

2015

플루미넨시

브라질 세리에 A

7

0

0

2

0

0

0

0

0

2020

파라과이 감옥[48]

팀 이름 불명

1

5

6

0

0

0

0

0

0

7. 호나우지뉴에 대한 말,말,말

호나우지뉴의 플레이는 예측할 수 없다. 그가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알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를 상대하는 수비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호나우지뉴의 플레이를 예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윌리엄 갈라스

호나우지뉴가 뛰어난 선수라는 점은 트릭을 사용할 때와 단순하게 경기를 풀어나갈 때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0:0일때 호나우지뉴는 오직 패스에 집중한다. 그가 트릭을 사용하는 것은 경기를 이기고 있을 때 뿐이다.

펠레

바르셀로나와 이후에 밀란에서, 그는 빅 스타였다. 드리블과 패스를 통해 수 많은 골을 만들어냈으며, 또한 놀라운 프리킥을 성공시키곤 했다.

마르코 판바스턴

볼과 함께 있을 때 마스터다. 그를 보고 있으면 믿을 수가 없다.

히바우두

여태까지 같이 뛰어본 선수중 가장 뛰어난선수? 고르기 어렵지만 딱 한명만 뽑아야 한다면 호나우지뉴를 고르겠다.

카푸

호나우지뉴는 포워드와 플레이메이커 두 분야에서 모두 최고였다.

세르히오 라모스

그가 했던것들은 축구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것들이었다.그는 내가 같이 뛰어본 최고의 선수다.

데쿠

호나우지뉴가 전성기일 당시 그와 함께 경기를 치렀다. 그는 누구도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냈다.라커룸에 들어갔을 때 호나우지뉴가 걱정하거나 압박에 시달리는 표정을 본 적이 없다. 호나우지뉴는 축구는 즐거워야 하기에, 우리 모두가 경기를 즐겨야 한다고 항상 말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하비에르 사비올라

지네딘 지단보다 호나우지뉴가 더 좋다.지뉴는 나의 우상이었으며 13~15살쯤에는 항상 그의 하이라이트를 보고 경기에 들어갔다.언제나 나에게 최고의 선수다.

헤나투 산체스

수비수들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플레이 버튼이 필요할 것이다.

프랑스 스포츠 전문지 레퀴프


  1. [1] 영어를 제외한 로망어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
  2. [2] 2007년 8월 국적 취득.
  3. [3] CelebHeights.com
  4. [4] 특정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는 프리롤 공격수로 많이 활동했다.
  5. [5] 왼쪽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왼발로 받아서 오른쪽으로 띄운 후, 그대로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오른발 시저스 킥으로 마무리해 골까지 넣은 것은 실로 경이로울 정도로 예술적이다.
  6. [6] 다만 이는 호나우지뉴의 잘못이 크다. 축구 외적으로 그는 여자를 데려오는 것에만 집중하거나 나이트에 출몰하는 날이 잦았다. 호나우지뉴가 빅클럽 이적 의사를 밝히는 등 문제를 일으키자 감독이 출전 횟수를 점차 줄여 나간 것. 호나우지뉴는 파리에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식단 조절과 전술 훈련을 지도받았고, 구단에게서는 그를 위해 여러 가지 케어를 해 주었다. 루이 페르난데스도 그를 특별히 신경 써 주면서 호나우지뉴는 특혜를 톡톡히 받았다.
  7. [7] 맨유 보드진이 원래 합의한 금액에서 더 깎으려다가 빡친 PSG가 맨유와의 협상을 거부했다고 한다. 또 마케팅을 생각해서 못생긴 외모 때문에 그렇게까지 적극적이지는 않았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호나우지뉴를 놓치고 대신 영입한 선수가 바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8. [8] 다만 상승세의 원인이 호나우지뉴 한 명의 활약 때문만이 아니라 시즌 중 임대해 온 에드가 다비즈 또한 크랙 못지 않은 활약을 해주었던 것도 크다.
  9. [9] 이때 역시 상기 언급한 전 시즌의 '궁둥이 씰룩씰룩 골'에 버금가는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원더골을 터뜨렸는데 당시 센터백으로서 완전무결이었고 세트피스시의 득점력까지 갖추고 있던 존 테리피지컬로 압도하고 넣은 골이 바로 그것이다. # 흔히 존 테리의 두 번째 흑역사로 불리기도 한다. 첫 번째는 당연히 '대단한 선택'
  10. [10] 논란거리인 일명 푸욜솁첸코 장풍 사건이 밀란전에서 발생하였다.
  11. [11] 화려한 개인기 위주의 플레이를 시도하는 일반적인 선수들은 화려함과 실속을 둘 다 챙기기는 정말 어렵지만, 호나우지뉴는 화려하고 예측하기 힘든 개인기를 뽐내면서 템포가 상당히 빨랐고 연계에도 착실히 신경을 썼기에 화려함과 실속 양면을 모두 챙겼다. '실속' 면에서 기복이 심하다는 평도 있는데, 호나우지뉴의 연계는 동료들이 예측하기 쉬운 안전한 연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기복이 심하다고 평가하는 것인데, 거꾸로 동료들의 수준이 호나우지뉴의 수준을 못 따라간다고 할 수도 있다.다시 말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FC 바르셀로나다. 에드가 다비즈, 차비 에르난데스...
  12. [12] 지금은 세계적인 수비수지만 당시엔 포텐 충만한 유망주였던 세르히오 라모스를 두 번이나 관광보내고 득점을 했다.
  13. [13] 호나우지뉴는 고가의 명품 브랜드 의류를 자주 입었는데 기자가 이에 대해 묻자, "내가 생긴게 이런데 옷이라도 잘 입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14. [14] 당시 야구계에도 외계인이 있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
  15. [15] 의외라 할 수 있겠지만 이 판타스틱 4는 잘 생각해보면 공수 밸런스 같은 거 하나도 안 잡힌 스쿼드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2006 월드컵 브라질의 팀 밸런스는 제 호베르투가 분투하는 가운데 에메르손과 지우베르투 시우바가 번갈아 거드는 형국. 네임밸류 높은 공격수 4명을 죄다 무리하게 집어넣다보니 기형적인 전술이 나온 것. 그리고 저 넷의 공통점은 공격적인 선수라 수비가담이 좋지않다. 그래서 8강전에 압박축구로 나온 프랑스의 수비에 제대로 막혔다.
  16. [16] 함부르크 SV에서 첼시로 이적하여 먹튀가 된 네덜란드의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거친 태클과 타이트한 맨마킹으로 분데스리가에서 활약, 카드도 꽤 수집했었다.
  17. [17] 이때 호나우지뉴를 먹었다가(불라루즈의 별명이 식인종인 것에 유례) 체해서 폼이 망가졌다 카드라.
  18. [18] 결정적으로 캄프 누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밀란에게 주도권이 밀리고 셰브첸코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푸욜의 장풍꽈당 사건으로 골이 무효화되고, 탈락하고 만다.
  19. [19] 15/16시즌의 아자르의 활약을 보면 소름끼치게 들어맞는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19/20 시즌도...
  20. [20]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호나우지뉴의 화려한 플레이에 대해 굉장히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아예 호나우지뉴를 따로 불러놓고 '예측 가능한 행위'를 하라는 주문을 했을 정도. 다만 어느정도 이해할만한게, 거의 완성된 팀인 클럽과 달리 국대에서는 대부분이 단판, 토너먼트인데다가 당시 브라질은 공격자원을 살려보겠다고 제 호베르투 등의 일부에게 극단적으로 수비와 중앙을 맡겼다. 그러다보니 호나우지뉴의 예측 불가 플레이가 상당히 부담감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고 국대 동료들도 매일같이 보는 클럽 동료가 아니라서 팀 플레이 면에서는 어쩔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21. [21] 주전 여부를 놓고 실랑이를 벌였기 때문에 뛰고싶었던 호나우지뉴는 스타일을 강제적으로 바꿔야만 했다.(이 때부터 우울증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대표팀 자체에서 호나우지뉴에 관한 불만이 많았다는 것...모 TV 프로에서 당시 경기 영상을 분석했는데, 호나우지뉴가 비어있든말든 일부러 주지 않는 모습들이 자주 잡혔다. 카카나 호나우두의 경우 쳐다봐놓고 안 줘버리는 행위도 자주 했을 정도. 호나우지뉴가 코치진과 실랑이를 벌였기 때문에 잘해주기 뭐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축구계에서 좋은 주장은 이런 일을 해결하곤 하는데 카카나 호나우두나 위대한 리더형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22. [22] 독일 월드컵 당시 브라질의 경기를 보면 일반적으로 호나우지뉴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상당히 정적이며 화려한 모습도 매우 적다.
  23. [23] 호나우지뉴 개인적인 부분에서는 이미 06 월드컵에서 축구에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떠오르는 메시에 대한 푸쉬 여부를 놓고 바르사 이사진들의 알력다툼이 일어난 시점도 이 때. 당연히 호나우지뉴는 반대파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도 반강제적인 상황이었다고 한다. 안습 그리고 앞서 06 월드컵 시절부터 겪기 시작한 조울증을 확진받았다고 한다. 프로 의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조울증을 확진받을 정도면 육체적 부상과 같은 수준으로 일종의 병이라고 봐야 된다.
  24. [24] 그러나 우습게도 06/07 시즌의 호나우지뉴는 리그에서 21골을 넣으며 역대 커리어 유일의 리그 20점대 득점 기록을 세운다.
  25. [25] 사실 승점은 똑같았고 골득실은 바르셀로나가 앞섰으나, 프리메라 리가는 골득실보다 승자승 우선이다. 그해 엘 클라시코 결과는 1무 1패로 열세였기 때문에 레알이 우승했다.
  26. [26] 또한 이 당시 언론에서는 호나우지뉴와 에투의 불화설이 떠돌았다.
  27. [27] 특히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함께한 감독이라 불리는 이 당시 코치 과르디올라가 메시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갖고있던 사람 중 하나였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하게 관리했는데 지뉴의 나태함을 특히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그와 어울리는 것에 대해 메시에게 여러차례 경고를 했다고 한다. 과르디올라는 선수들의 피치밖 사생활에 대해 엄격하기로 소문난 감독이라서 더 그랬다는 이야기가 많다.
  28. [28] 하지만 위 영상은 호나우지뉴가 최절정의 기량을 발휘하던 04/05시즌의 라리가 경기이다.
  29. [29] 그런데 둥가의 이러한 선택은 일견 만용으로도 보이나 06년 독일 월드컵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다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현역 주장 시절처럼 어느 정도 독선적이었고 과도하게 자기 생각을 밀어붙인 경향이 있다. 현역 국대 시절에는 동갑내기 베베투가 잘 뒷받침했지만, 감독으로서는 무리수였다. 그러나 남아공 월드컵 이후 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목표로 브라질은 둥가식과 기존 브라질식의 축구를 절충하는 과정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그리고 브라질은 멸망했다 근데 감독은 다시 둥가
  30. [30] 참고로 유럽 & 남미 챔스를 제패한 브라질 선수는 별로 없다. 카푸, 호케 주니오르, 호나우지뉴, 디다가 전부이다.
  31. [31] 이 부분이 말이 많은게 미네이루가 대인배처럼 풀어줘서 그렇지 결코 프로 선수가 보일 행동은 못된다. 아직 자세한 전말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사생활이 문란하긴 했어도 아드리아누처럼 무단 이탈하지는 않았는데...
  32. [32] 위 영상에서 각각 50초, 3분 20초, 5분 43초 경.
  33. [33] 본 경기의 모든 수익은 바르셀로나 지역 어린이 병원에 기부될 것이라고 한다.
  34. [34] 보통의 경우 십수년 이상 훈련을 거듭하며 그들만의 정형화된 패턴이 생기기 마련이다. 극단적인 사례긴 하지만예를 들어 아르연 로번의 경우 이 선수가 공을 잡으면 무슨 짓을 할 지 누구나 다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호나우지뉴의 경우는 축구선수가 구사가능한 거의 모든 종류의 개인기를 자유자재로 쓰면서 킬패스를 뿌려대니 아무리 분석하려 해도 정형화 된 패턴이 나올 리가 없다. '축구 안에서 이것을 잘 한다, 저것을 잘 한다' 할 것 없이 그냥 축구 그 자체를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35. [35] 호나우지뉴가 얼마나 단단한 피지컬의 소유자인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상기의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첼시전이다. 라리가보다 훨씬 거친 신체접촉을 하는 첼시의 수비진을 상대로 힘과 기술 양면에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6. [36] 한국에서는 크랙을 스피드와 드리블로 돌파해서 직접 슛을 노리는 선수로 좁혀서 생각하지만 외국에서는 못 막으면 크랙이라고 한다. 한국식으로는 크랙이 아니라 플레이 메이커에 가깝겠지만. 크랙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크랙의 원래 정확한 정의는 '대치상태를 깨고 경기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선수'이다. 전성기 호나우지뉴는 충분히 크랙이라 불릴만 하다.
  37. [37] 물론 2000년대 이후에도 중앙에 배치된 일반적인 공격형 미드필더가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경우는 있다. 이스코 알라르콘, 히카르두 카카, 웨슬리 스네이더르, 메수트 외질 등. 스네이더르는 탈압박과 드리블 능력이 떨어지고 지공 상황에 약해서 한계가 있다. 외질도 스네이더와 비슷한 이유로 아스날 FC에서는 강팀 상대로 존재감이 희미해진다.
  38. [38] 물론 우리가 왜 두개의 눈을 가졌는지 생각하면 눈 한 쪽 만으로 저만큼 해낸 것도 대단한 일이다.
  39. [39] 이 중 전성기였던 바르사에서의 5시즌 동안 프리킥 골 수가 (국가대표 경기를 제외하고도) 25골이나 된다.
  40. [40] 2019년 11월 기준.
  41. [41] 바르셀로나 말년에 팀 훈련에 단 한번도 참가하지 않고 클럽에서 술만 마시고 놀기에 바빴다.
  42. [42] 호리호리한 체형에서 배가 나온, 마치 조기축구회의 아저씨들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43. [43] 막상 도널드 트럼프도 정계에 진출한 이후부터는 대놓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적이 거의 없다. 미국의 정치계는 인종과 관련된 좋지 못한 역사가 있어서인지 이 부분에 대해 매우 민감하며, 자칫하면 그 사람의 정치 인생 아니, 정상적인 사회 생활까지 끝내버릴 수 있기에 유명인 중에서는 대놓고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44. [44] 메시가 정말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고 난 뒤, 둘은 나중에 터키 항공 광고를 같이 찍게 되는데...
  45. [45] 2군
  46. [46] 돈 발론 어워드
  47. [47] 108,200명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
  48. [48] 수감중인 파라과이의 감옥에서 열린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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