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

  제주도의 법정동에 대한 내용은 화북동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개요
2. 화북 vs 화남
3. 화북 vs 화중 vs 화남
4. 현대 중국의 6대 지방 중 하나

1. 개요

화베이(Huáběi). 황허의 하류 ~ 중류를 중심으로 한 평야 지대. 과거에 보통 중원이라 하면 이 지역을 가리켰으며 4천 년 중국 역사 내내 정치적 중심지였다. 다만 그 영역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서 애매한데, 원래는 화이허 이북에 한족이 사는 지역을 칭하였으나 현재는 황허 이북으로 그 기준이 바뀌었다.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처럼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명이다.

2. 화북 vs 화남

기존에 한족이 살던 중원[1]은 화북과 화남으로 구분하면 회수(淮水, 중국 발음은 화이허와 비슷하다)가 그 경계였고 전통적으로 화북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였다. 삼국지에서 촉, 오가 합쳐도 위나라 군대에 못미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남북조시대대운하의 건설, 남송시대를 거치며 양쯔강 유역의 경제력이 급상승하였고, 금나라와 몽골 간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화북을 앞질렀다. 그러나 여전히 두 지역 간에 군사적 대결이 발생할 경우 한 번을 제외하고는 늘 화북의 승리로 끝났다.[2][3]

이는 현대의 농지경작지 밀도에서도 드러나는데 세간의 인식과 달리 화북 쪽이 강남보다 농지밀도에서 압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중국의 인구 밀도, 상하이-남경 일대를 제외하면 화북지역의 인구밀도가 강남보다 압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필적할 만한 중국의 다른 지역은 사천성-중경시를 아우르는 넓은 사천분지 지역이나 푸젠성 극히 일부 지역, 홍콩에 인접한 광둥성 일부 지역밖에 없다.

3. 화북 vs 화중 vs 화남

황허와 양쯔강 사이에 회수(淮水)를 중심으로 한 평야를 화중 지방이라 칭하기도 하는데, 일명 중국의 노른자 땅이다. 허난성, 안후이성, 장쑤성, 산둥성이 포함되는데 다만 남북조나 금 vs 남송 처럼 전장이 되기도 하는 지역이었다. 이런 경우 화북은 하북과 동일시되어 황허 이북을 의미하게 된다.

화북

≒≒ 황하 ≒≒

화중

≒≒ 장강 ≒≒

화남

4. 현대 중국의 6대 지방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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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화이허를 기준으로 이북을 화북으로 칭하였으나 화둥, 중난 지방이라는 개념이 추가되면서 황허 이북을 화북이라 칭하게 되었다.

베이징시, 톈진시, 허베이성, 산시성, 내몽골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다.


  1. [1] 현재 중국에서 만주, 티베트, 위구르, 내몽골이 빠진 영토
  2. [2] 그러나 1161년 2차 금-남송 전쟁과 13세기 초에 일어난 금나라의 침공때 남송이 제대로 이긴적도 있었다.
  3. [3] 화남의 반청 성향 한족들이 화북의 만주족 및 친청 성향 한족들과 싸워 이긴 신해혁명이 있지 않냐는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이는 친청 성향 한족들의 리더격이었던 위안스카이가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었던 화남의 혁명군에게 투항해버린 사례일뿐더러 청나라 멸망 이후 위안스카이가 청 황실에 이어 공화정마저 폐지하고 본인이 황제가 되면서 그 영향으로 중국 전체가 엄청난 혼란에 빠졌기 때문에, 제대로 된 화남의 승리라고 보기 어렵다. 위안스카이가 황위에서 물러나 중국의 군주정이 완전히 페지된 후에도 중화민국은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처럼 제대로 중국 전체를 장악하는 일이 끝내 일어나지 않은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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