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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還生 / Reincarnation

1. 사전적 의미
1.1. 환생에 대한 과학적 입장
1.1.1. 부정
1.1.2. 긍정
1.1.2.1. 뇌과학의 난제와 불교의 의식 개념
1.1.2.2. 환생과 미세의식
1.1.2.3. 환생, 임사 체험에 관한 사례 연구
1.1.3. 양자론적인 환생
1.2. 문제점
1.2.1. 반론
1.3. 환생의 기능과 장단점
2. 서브컬쳐에서의 환생
3. 영화
4. 게임에서 쓰이는 시스템
4.1. MMORPG를 비롯한 온라인 게임에서
4.1.1. 환생이 존재하는 온라인 게임
4.2. 싱글 플레이용 게임에서
4.2.1. 환생이 존재하는 오프라인 게임
4.3. 모바일 게임에서
4.3.1. 환생이 존재하는 모바일 게임
6. 서브컬쳐계의 의미
7. 윤종신의 노래

1. 사전적 의미

앤디 위어의 작품을 원작으로한 쿠르츠게작트의 영상.

육체는 소멸하지만 영혼은 불멸하며, 죽은 후 영혼이 다시 새로운 인간(혹은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게 된다는 종교적 사상. 태어나기 이전의 영혼이 살았던 삶은 전생이라고 부른다. 이 사상은 힌두교, 불교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불교 등 인도 계통의 종교에서의 환생은 윤회라고도 한다. 반면 그리스도교에서는 환생, 윤회를 부정한다. [1]

환생을 주장하는 종교에서도 사망에서 환생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서로 다르다. 힌두교에서는 영혼이 옮겨간다고 하고, 상좌부 불교에서는 '재생연결식'이라는 마음의 업이 작용하여 다음 생의 몸을 만난다고 한다. 영혼 자체도 단일개체의 영혼이 환생하는 경우와, 죽은 뒤 정화과정(?)을 거친 영혼을 여러 개로 쪼갠 뒤 이렇게 쪼개진 타인의 영혼과 합쳐서 환생한다는 것도 있다. 또한 전생의 기억이 남아있으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는 만큼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환생 시 전생의 기억은 이어지지 않고 그 전생의 업적이나 업보만이 이어진다는 설정(?)을 채용한다.[2]

흔히 철학적으로 불교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동양에만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람 생각하는 게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 고대 서구권에서도 환생과 전생의 개념이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오르페우스 신앙에서는 육식을 절대 금하고, 신도들에게 채식만을 강요했는데, 사람이 죽으면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들도 인간이 다시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타고라스는 인간이 죽으면 그 영혼은 으로 들어가 잠시 머물러 있다가 왜 하필?? 혹시 이 분이라면 모른다. 다시 다른 인간이나 동물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는 육식을 금했을 뿐 아니라 콩을 절대로 먹지 않았다고 한다. 설마 콩 먹기 싫어서 그런 말을? 그럼 단백질은 어떻게 보충해?

여러모로 종교나 미신에서 떡밥으로 자주 활용하는 소재이다 보니 환생에 대해 여러가지 도시전설이 횡횡한다. 데자뷰는 전생의 기억의 일부라거나, 모든 인간은 5세 이전까지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 흔히 최면술에서 나오곤 하는 전생 최면도 그 예이다. 물론 환생 자체가 과학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인 만큼 그렇듯이 믿거나 말거나 급의 이야기.

픽션에서도 자주 쓰이는 소재. 배틀만화에서는 초월적인 존재가 인간으로 환생하고 전생의 힘과 기억을 각성하여 배틀에 나서고, 연애물에서는 전생에 비극적으로 맺어지지 못한 연인이 현세에서 맺어지는 식의 전개가 된다.

지옥선생 누베》에서는 환생을 현실적으로(?) 다룬 에피소드가 있었다. 레귤러 캐릭터인 히로시의 엄마가 환생해서 히로시보다 한참 어린 유치원생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 하지만 유치원생 여자아이니까 현실적으로 엄마 노릇을 해줄 수 없고, 장래의 인생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누베가 기억을 지우는 결말이다.

한국의 판타지 소설에서도 자주 쓰이는 소재다. 메리 수 계열의 패러디 소설 등에서도 흔히 우려먹는 거고. 환생을 매개로 하여 차원이동을 하여 현실/무협의 세계에서 판타지로 가는 식의 전개가 많다. 물론 깽판물이면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어릴 때부터 속성으로 수행을 하여 먼치킨이 된다. 그밖에도 완전한 환생이 아니라 빙의물로 변형되기도 한다.

창작물에서는 이 환생을 타임머신으로 확장시켰는데, 과거로 간다는 점이다. 당연하지만, 현실적인 시간 개념상 미래로 가야하는건 정상인데 환생은 오히려 이걸 역행해서 과거로 보내버린다.[3]

1.1. 환생에 대한 과학적 입장

1.1.1. 부정

대다수의 뇌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명제에 동의한다.

  1. 의식은 뇌로부터 나온다.
  2. 뇌의 기능이 영구 정지하면 의식은 사라진다.

따라서 (일반적인 개념의) 환생은 없다고 가정하고 있다. 일단 환생이 가능하려면 뇌를 대신할 수 있는 제2의 기억저장매체가 존재해야 한다.(그것을 영혼이라 부르든 상관없이) 하지만 사고나 치매 환자 등의 뇌손상 환자들을 보면 기억이 소실됨은 물론, 심지어 뇌손상 정도에 따라서 자아마저도 잃고 이상행동을 반복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휴먼 다큐에서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주부의 에피소드를 다뤘는데, 사고 이전에는 매일 빼곡하게 수첩에 그날의 일들을 적어놓는 꼼꼼한 성격의 주부였으나, 교통사고 후에는 뇌를 다쳐서 기억이 소실되어 자신이 적어놓은 수첩을 보면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눈물을 흘렸는데, 이런 사례들은 기억이 어디 다른 데에 존재하는 게 아니고 뇌에 존재한다는 강력한 증거다. 마치 외장하드가 고장나자 파일을 읽을 수 없다면 외장하드에 파일이 저장돼있다란 강력한 증거인 것처럼 말이다.[4][5][6]

또한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안면인식장애를 앓는 남자의 사연도 나왔는데, 시각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고 볼 수 있음에도 안면인식을 하지 못해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희귀증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보고 인식하는' 것조차 뇌에서 담당하며, 그것을 저장하는 것도 뇌에서 담당한다는 강력한 증거다. 따라서 과학적으로 제2의 기억 저장매체 존재를 입증하려면, 뇌손상 여부에 상관없이 기억 및 자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흔히 뇌과학은 아직 밝혀내지 못한 것이 많다고 하는데,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독버섯이 어떤 원리로 사람을 죽이는지를 몰라도, 독버섯을 먹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근거로 독버섯에 위험물질이 담겨 있다는 것쯤은 입증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뇌가 손상되면 기억이 소실된다는 증거는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고, 따라서 뇌에 기억이 담겨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실제 뇌과학에선 뇌에서 담당하는 분야들을 밝혀내었는데, 기억이 저장되는 부위도 밝혀졌으며, 따라서 수술로 그 부위에 손상을 가하면 인위적으로 특정 유형의 기억만 제거해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2015년, 영국 <텔레그래프>는 브라질에서 한 남자가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기타로 연주하면서 성공적으로 뇌수술을 받은 사연을 소개했다.# 이는 수술 방법의 하나로,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감각, 운동, 언어를 관장하는 부위를 수술할 때는 해당 부위가 손상받지 않는지 쉼없이 확인해야 한다”며 “환자가 수술을 받는 동안 깨어 있어야 이의 확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는데, 이것은 뇌의 부위별로 관장하는 영역이 밝혀졌으니 가능한 수술이고, 의식을 관장하는 부위는 당연히 이런 수술이 불가능하며 수술이 잘못되면 자아까지 소실될 위험이 있다.

과거엔 치매환자를 '노망이 났다'고 표현했는데, 노망은 국어사전에 '늙어서 망령이 듦'이라고 나와있다. 평상시 알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니 그 사람이 아니고 다른 망령이 들었다고(빙의)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뇌세포가 파괴되어 초래된 현상임이 밝혀졌으며, 종교인이건 무속인이건 어느 누구든 예외 없이 뇌세포가 파괴되어 가는 만큼 기억과 자의식은 소멸되어 간다는 건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고, 따라서 치매의 진행속도를 늦추는 치료 등은 조금이라도 더 기억과 자의식을 유지하고자 함이다. 사실 과거엔 인간의 평균수명이 짧아서 노망나기 전에 죽는 경우가 흔했기에 별 문제 되지 않았으나 최근에 평균수명이 급격히 증가하며 치매환자 역시 늘어났기에 여러 치매 예방법 등이 언론에 보도되곤 하는데, 즉, 다음 생은 커녕, 현생에서라도 기억과 자의식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생에서 기억과 자의식을 잃어버려 고통을 받는 환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실상 환생은 현대과학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보고, 진지하게 다룰지라도 사실상 그걸 종교적 믿음의 영역으로 보고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즉 영혼이나 신에 대해 과학이 거리를 두며 이는 당연하게도 종교는 믿음의 문제이고 과학은 물리의 문제로서 서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안된다는 문화적 규범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된다.[7]

종종 어린아이들이 전생의 일을 기억한다고 주장하며 일반적으로는 알기 힘들만한[8] 정보를 말하는 사례들을 가지고 환생이 진실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괴짜 취급을 받으며 주류 학계에서는 논의에 끼지도 못한다. 이런 사례들은 대부분 사실인지 검증이 잘 되지 않은 소문인 경우가 많으며 매스컴도 타고 진실처럼 보이는 사례도 성장환경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 아닌지 불확실하다.

1.1.2. 긍정

1.1.2.1. 뇌과학의 난제와 불교의 의식 개념

현대 뇌과학에서는 뇌파나 뇌 자기공명영상 등을 관찰하여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뇌의 활동으로 의식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뇌의 활동이 어떻게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의식으로 변환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정된 바 없으며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불교학자 김성철은 의식에 대한 뇌과학적 접근의 한계와 불교의 의식론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진화생물학과 뇌과학 이론에 의하면 마음은 창발(emergent)한 것이다. 진화과정에서 우리의 육체,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뇌에서 창발한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구성적 세계관에 의하면 마음은 원래 존재하던 것이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과 뇌의 관계를 구명하고자 할 때 난관에 빠지는 이유는, 뇌에서 마음이 발생했다거나 객관 세계에서 주관성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선입견 위에서 연구하고 이론을 모색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선입견은 과거의 천동설과 같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솔직한 생각이다. 그러나 생명체의 진화과정에서 주관이 객관에 선행한다. 각 개체의 입장에서 볼 때는 촉각이나 미각, 후각과 같은 ‘근접 감각’만으로 이루어진 유일무이의 주관만 존재하다가 진화과정에서 시각과 청각이 열리면서 점차적으로 객관세계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지렁이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종차(種差)를 넘어서 일관하는 마음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 그 실마리를 주관에서 찾아야 한다. 

불교적으로 볼 때 주관의 근원인 마음 혹은 의식은 ‘원래 없던 것이 몸 또는 뇌에서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이 새로운 몸에 깃들어 뇌를 통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물론 불교의 의식은 영혼과 같은 변치 않는 실체가 있어서 새로운 몸에 깃든 것이 아니다. ‘찰나적으로 생멸하는 식(識)의 흐름’으로서의 마음이 새롭게 형성된 수정란에 반영된 것이다. 마치 등불이 새 심지에 옮겨 붙듯이 말이다. 불교와 뇌과학으로 조명한 자아와 무아

의식은 연속성을 갖고 있으며 물질과 상호작용한다. 달라이 라마는 1995년 뉴욕 칼라차크라 법회에서《구사론》, 《니야야빈두》와 같은 불교 논서에 의거하여 의식과 물질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마음은 과거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성을 갖는다. 지금의 생에서 전생의 마음이나 의식을 찾아갈 수 있다면, 물질계가 그러한 것처럼 마음이 갖는 연속성의 시초를 무한한 차원에까지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처음은 없다. 마음의 연속성을 계속 유지하게 해주는 환생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모든 것은 어떤 원인의 결과로 있는 것이며, 마음이나 의식도 그 직전 상황의 결과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마음과 물질은 상호 작용하지만 그 중의 어떤 하나가 서로 다른 어떤 하나의 실체가 되지는 못한다.”

즉 직전의식이 원인이 되어 다음 의식이라는 결과가 생겨나는 과정을 반복하며 의식은 끊임없이 연속되는 성질을 지닌다. 의식은 의식 자체의 연속적인 성질에 의해 발생하며 물질 만으로는 의식이 발생할 수 없다. 물질은 의식이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이전 생의 의식이 다음 생으로 연결되는 환생 과정을 거쳐야 한다.

1.1.2.2. 환생과 미세의식

부정 측 주장은 다음의 명제 만을 참으로 보았을 때 성립가능하다.

1. 의식은 뇌로부터 나온다.

2. 뇌의 기능이 영구 정지하면 의식은 사라진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위의 명제가 일부만이 사실이며 다음과 같은 명제를 바탕으로 환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1. 의식은 뇌 뿐만 아니라 뇌 이외의 더욱 미세한 물질적 기반을 포함하여 구성된다.

2. 뇌의 기능이 영구 정지되면 의식의 거친 부분은 대부분 소멸되지만 미세물질에 기반하여 의식의 미세한 부분은 계속 존재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티베트 불교툭담(tukdam)이라고 하는 사후의 특수한 명상을 들 수 있다. 툭담에 든 고승들은 뇌의 기능정지, 심정지 등을 포함한 의학적 사망(clinical death)이 선고된 이후에도 며칠 혹은 수 주에 걸쳐 시신이 부패되거나 사후 강직이 일어나지 않고 생전처럼 시신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따뜻한 체온을 유지한다. 툭담은 비교적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며 티베트 불교권 지역인 몽골의 경우에만 지난 50여 년간 수십 차례의 사례 보고가 있었다. 생전에 높은 수행의 경지에 이른 고승들은 바르도(bardo, 중음)라는 죽음과 환생 사이의 과도기에 미세의식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깊은 명상 상태에 접어들 수 있다. 티베트 불교, 특히 그 중에서도 밀교 경전에서는 툭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의 활동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툭담 중 겪는 갖가지 의식과 신체의 변화는 뇌의 활동만을 의식으로 보는 기존의 과학적 견해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상은 뇌라는 기관에 의지하지 않고도 의식(의 일부)이 유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툭담 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2019년에 불교학자들과 러시아 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툭담에 대한 심층연구에 착수한 바 있다.

티베트 스님과 러시아 과학자, 죽음 명상 연구

불교에서는 생명체가 색(色, 물질), 수(受, 느낌), 상(想, 개념), 행(行, 의지), 식(識, 의식)이라는 오온(五蘊, 다섯 가지 무더기)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이 중 색온은 물질이고 수, 상, 행, 식은 의식 혹은 정신에 해당한다. 생명체가 죽음에 이르게 되면 색온, 수온, 상온, 행온 및 식온의 거친 부분은 소멸된다. 이는 뇌의 일부가 손상되거나 뇌사에 이르는 경우 기억이나 자의식이 훼손당하는 기존의 과학적 연구 사실과 일치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식온의 미세한 부분, 즉 미세의식은 현대과학의 에너지 혹은 파동에 가까운 미세물질에 의지하여 계속 유지되며, 이러한 미세의식이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발생한 수정란과 합쳐져 환생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밀교의 미세 의식에 대한 설명은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과 뇌과학 교수인 조나단 스쿨러(Jonathan Schooler)의 의식 공명 이론(resonance theory of consciousness)을 연상케 한다. 조나단 스쿨러와 그의 연구팀은 '공명 진동'으로 인간의 의식뿐만 아니라 동물의 의식, 그리고 무생물의 의식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진동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물체들도 사실은 다양한 진동수를 보이며 공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물건이 다른 물건과 함께 있을 때 서로 같은 주파수로 진동하는. '자발적인 자기 조직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의식 공명 이론에서는 구성요소 간에 공유하는 공명 진동의 속도가 빠를 수록 더 크고 복잡한 의식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조나단 스쿨러가 참고한 연구 가운데는 독일의 신경생리학자인 파스칼 프라이스의 뇌파 연구가 있다. 파스칼은 다양한 인간의 의식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전기 패턴이 뇌에서 동기화되는 방식을 연구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감마파와 베타파, 세타파 등의 뇌파 진동으로 구분된다. 프라이스는 두개골에 전극을 꽂고 뇌의 전기 진동 속도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 감마파는 명상이나 집중을 할 때 활성화 되고 베타파는 휴식을 취하거나 상상을 할 때 활성화 되며, 세타파는 인지 능력과 관련이 있었다. 프라이스는 이런 결과를 '일관성을 통한 의사소통'이라고 명명하고 원활한 의식이 존재하려면 뉴런과 뉴런 사이에 일관된 전기 진동 속도가 유지돼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조나단 스쿨러의 의식 공명 이론은 '모든 물질에는 의식이 있다. 그리고 의식은 진화의 과정에서 창발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우주의 근본적 특성으로 존재한다'는 철학 사상인 범심론(汎心論, panpsychism)과 유사하다. 범심론에 따르면 전자 또는 원자에도 아주 미세한 의식이 있고, 이런 미미한 의식이 진화를 거친 고등 생물에 이르면 화학 작용하는 과정에서 복잡해진다고 한다. #

1.1.2.3. 환생, 임사 체험에 관한 사례 연구

미세의식을 상좌부 불교에서는 재생연결식, 대승 불교의 유식학파에서는 아뢰야식, 밀교에서는 정광명 등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미세의식의 특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미세의식에는 수없는 전생동안 행한 여러 업들의 종자(種子), 즉 일종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어 적절한 조건을 만나면 업의 과보를 맺게 된다. 미세의식에 기록된 과거생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숙명통(宿命通)이라고 하는데,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능력이다. 즉, 뇌가 손상되거나 뇌사 혹은 사망 시에 기억을 상실한다는 사실은 표층의식의 영역에만 적용되며 잠재된 미세의식의 영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도 수행을 통해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이란 3가지 능력을 얻고 과거, 현재, 미래 삼세에 걸친 인과(因果)와 연기법(緣起法)의 이치를 알게 되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한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사례는 버지니아 대학교 정신의학 및 신경행동과학과 교수인 이안 스티븐슨(Ian Stevenson)과 그의 제자 짐 터커(Jim B. Tucker) 교수 등에 의해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들은 전세계적으로 연구자들이 직접 탐문하여 수집한 2,500여 명의 사례를 바탕으로 과학적 회의론의 관점에서 환생의 존재여부를 연구하였다. 그들이 확인한 전생의 기억을 가진 856개 사례 중에 아이가 주장한 전생의 인물을 찾아 확인한 결과 67%가 아이가 말한 내용과 일치한 부분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안 스티븐슨 교수는 환생이 존재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학자의 양심을 걸고 환생의 존재를 믿는다."라고 답하였다. 그러나 전세계 인구 수에 비해 표본의 수가 너무 적어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사망하였으며, 그의 제자 짐 터커 교수에 의해 지속적으로 연구 중에 있다. [9] ##

환생의 주체로서 뇌나 육체 외부에 영혼 혹은 의식이 존재할 수 있는 간접적 증거로 유체 이탈이나 임사 체험 연구를 들 수 있다. 뉴욕주립대학 응급의학자 샘 파니아(Sam Parnia) 박사는 2008년 7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4년 동안 미국, 영국, 호주 등에 있는 15개 대형병원과 공동으로 대규모 실험을 벌였다. 임사체험이 환각이 아닌 실제적 의식 작용임을 입증하기 위해서이다. 파니아 박사는 수술실로 실려온 심장마비 환자 2,060명을 추적조사 하였다. 심장마비가 오면 호흡과 맥박이 정지되고 외부의 시각과 청각 등을 감지하는 뇌 전기 신호도 사라지는 등 완벽한 죽음상태와 가까워진다. 조사 결과 2,060명 가운데 330명이 심장마비를 겪고도 살아났는데, 이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실시한 결과 9명이 사후 세계를 경험하거나 유체이탈을 한 임사체험을 했다고 증언하였다. 그 중 특히 57세 남성의 유체이탈 경험담은 당시 수술실 내부의 정황을 정확하고 세세하게 담고 있었다. 파니아는 유체 이탈 상태에서 확인 가능하도록 응급실에 숫자가 쓰인 카드가 놓인 선반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응급처치가 실행된 곳이 선반이 설치된 응급실이 아니어서(...) 카드에 쓰인 숫자를 맞춘 사례는 없었다. #

이 외에도 뇌나 육체 외부에 존재하는 의식에 관한 여러 주장과 사례가 있다. 그 중 특히 위의 연구들은 연구자들의 권위나 연구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상당히 신빙성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적 기술로는 뇌 외부의 영혼이나 의식에 대하여 연구하는데 한계가 있어 결정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돈 되는 임상 연구에 예산과 관심이 쏠리다보니 의식에 관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향후 아직 연구되지 못한 영역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올 또다른 발견이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1.1.3. 양자론적인 환생

뭐든지 일단 가능은 하지만, 확률이 너무 극히 희박하기 때문에 다루지 않는 부분이다.

어떤 사람과 우연히 똑같은 뇌를 가진 경우 환생과 다름없어지기 때문에 일단은 과학적으로도 일단 가능은 하지만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이 벽에 부딪히다가 그 벽을 통과하는 것보다도 더 낮은 확률이다. 과연 이걸 가능하다고 해야할지 의문.

1.2. 문제점

환생, 즉 윤회설의 문제는 차별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설은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동물에도 적용되어 동물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10]

이러한 면모는 힌두교같이 전생의 업이 다음 생에 환생하는 계층을 결정짓는 종교인 경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러한 윤회설의 부정적인 면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예시로는 카스트 제도를 들 수 있다.

전생에 지은 악행이나 선행으로 다음 생에 더 낮은 계층, 혹은 더 높은 계층으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풀어서 말하자면 현생의 고위계층은 전생에 선행을 한 착한 인물이었다는 말이 되며, 현생의 하위계층은 전생에 악행을 한 나쁜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악한 일을 한 죄로 하위계층으로 태어났으니, 이번 생에선 죽을 때까지 고통받으며 전생의 죄를 참회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성립한다. 게다가 더 악질적인 것은 윤회를 인정하는 종교에서도 자아나 기억의 윤회는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데, 이는 기억나지도 않고 뭔지도 모르는 전생의 죄 때문에 현생에서 고통받아야 한다는 막장스러운 상황을 인정한다는 게 될 수 있다. 전생과 전생의 죄가 기억난다면 "내가 벌을 받아 이렇게 태어났구나"라고 생각하고 참회라도 하면서 살겠지만, 기억도 안 나는데 그럴리가 있나.

물론 윤회설을 주장하는 불교힌두교 같은 경우 지금 살면서 내가 전생에 좋은 선업을 많이 쌓아 좋은 집안에 태어났다고 다른 생명이나 자기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을 괴롭히거나 하면 악업이 쌓여 그 과보로 다음 생에서 좋지 못하게 된다고 하지만, 사회적인 차별과 지금 현재의 현시창스러운 상황과 대우를 당사자 본인의 탓만으로 돌리는 데 이용되기 쉬움도 사실이다. 가뜩이나 전생에 죄가 기억도 안 나는데 나쁜 환경에서 태어나면 이번 생에도 또 죄를 짓게 되고 결국 다음 생에도 더 나쁘게 태어나기를 반복할 확률만 높아진다. 이쯤되면 그냥 계속 죄짓고 살고 계속 나쁘게 태어나게 만드는 시스템과 뭐가 다른가?

당장 힌두교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의 인도를 보자. 힌두교나 그 전신인 브라만교가 대중적이던 시절부터 21세기인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참혹한 인권 탄압의 좋은 도구가 되어왔으며, 카스트 제도에 반발해 나왔다는 불교조차 신분제를 완전히 철폐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신분제를 합리화시키는 데 관여한 경우도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에 불교가 들어올 때 처음에 반발하던 지배층들이 오래가지 않아 불교를 쉽게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불교의 업보에 따른 환생론이 기존의 신분제를 합리화하는데 토속신앙보다 도움이 되면 되었지 신분제를 허물지 않았기 때문이다.[11] 왕이나 귀족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쌓은 공덕이 많았기 때문으로, 평민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의 공덕이 적어서, 천민이나 노비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죄가 많아서라고 합리화하기 유리하다. 왕즉불 사상까지 가면 지배자는 불교를 후원하는 만큼 무제한적인 충성세력과 집권의 합리화가 가능하다. 실제로도 그런 이유로 과거 왕실에서 불교를 많이 후원했던 것 또한 사실.[12]

게다가 종교에서 말하는 업보라는 것도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선악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는 절대적인 악이라고 여겨지는 살인 같은 행위도 장소나 관점에 따라 선이 될수도 있다.[13] 이러한 주관적 기준을 객관적으로 판별하기란 불가능하며, 관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는 문제가 있다. 누군가가 선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선행이 아닐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될 수 있다. 종교에서 말하는 선악관 역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해당 종교의 선악관으로 보면 악이지만, 다른 선악관으로 보면 악이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우상숭배라며 불교나 이슬람 같은 다른 종교를 배척을 넘어 욕하고 까면 선인가? 악인가?

더욱이 더 딜레마가 있다면 만일 어떤 사람이 전생에 선행을 해서 상류층 자식으로 태어났다고 치자. 그리고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집안이 쫄딱 망해서 하층민이 되었다고 가정하자. 이건 전생의 업보인가 아닌가? 전생의 업보라고 하기엔 그렇다면 왜 상류층 자식으로 태어났는지 설명이 불가하고 업보가 아니라면 하층민으로 떨어진걸 이해할 수 없다. 윤회설을 따르면 현생에 내가 지은 죄는 현생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라는거. 왕조국가에서 왕이었다가 쫄딱 망한거나 보잘것 없는 인간이 왕이든 황제든 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게 모든 면에서 다 좋거나 나쁘기만 한 사람보다 어떤 면에서는 좋고 반대로 어떤 면에서는 나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집이 가난하지만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 사람이라면? 또는 중증 지체 장애인이지만 금수저이거나 머리가 천재인 사람은? 이런 사람들은 과연 전생의 죄 때문에 나쁜 면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반대로 선행 때문에 좋은 면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애매해진다. 그나마 이 경우는 전생의 선행과 죄에 둘 다 영향을 받아서 이렇게 태어난 거라고 생각할 수는 있기는 하다.[14] 실제 윤회사상에 이런 내용도 있는지는 추가바람.

1999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글렌 호들이 인터뷰에서 자신은 윤회설을 믿는다면서 "장애인들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게 태어났다"는 주장을 했다. 그럼 후천성 장애인은 뭐냐?[15] 이 발언이 퍼져나가면서 각계각층의 비난 속에 호들은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다.[16] 가디언에서는 호들의 이 발언을 가지고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지성을 갖고 있는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드립쳤다(...).

그리고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모 유명 목사가 '하나님을 안 믿어서 내린 벌'이라며 고인드립한 일화도 유명한데, 윤회설 역시 피해자들을 전생의 업보라며 고인드립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아니나다를까 2015년에 발생한 네팔 대지진 때 그 재난 속에서 산모가 가까스로 구출되어 아이를 낳아 소중한 생명이라고 미담기사로 실렸는데, 많은 비공감을 받은 댓글이 '너네들 죄를 지으면 다음 생에 저렇게 태어난다'라는 어그로성 댓글(...). 악플러는 장난으로 썼을 수 있으나, 사실 윤회설에 따르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게 문제(...). 과거 사이비과학인 우생학이 철저하게 금기시된 것은 약자나 약한 민족을 차별하고 탄압할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 환생설 역시 같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환생 개념 및 윤회설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공정 심리에서 기인하였다고 본다. 식량과 같은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해야 생존에 유리하므로, 인간은 불공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공정하지 않은 상황을 납득하려면 반드시 그 이유, 명확한 인과관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계층을 분화시키고 소수자를 탄압하고 결과적으로 생산물을 불공정하게 분배하게 된 원인은 타고난 육체능력이나 지능, 부모의 지위와 같이 그저 태어날 때 랜덤으로 선택되는 것들이었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불공정의 원인이 고작 운이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 상황이 공정하다고 납득하기 위해(또는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사실 내가 이런 부모 밑에서 이렇게 태어난 건 뽑기처럼 돌린 게 아니라 내가 과거에 한 선행과 악행의 결과다.'라는 논리를 만들어 단순한 확률에 인과관계를 끼워맞췄던 것이다. 그 결과 불공정을 불공정이라 인식하지 못하게 돼 차별 타파를 위한 노력의지가 약화되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1.2.1. 반론

상술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환생과 업설을 혼동하고 있는 주장이다. 단순히 사후에 다시 태어난다는 '환생'과 업에 의한 과보를 받는다는 '업설'은 구분하여 서술할 필요가 있다. 환생에는 업에 의해 내생이 결정되는 불교나 힌두교 등의 윤회환생설 외에도 업과 상관 없이 무작위적으로 내생이 결정되는 환생 또한 포함된다.

업에 의한 윤회환생설만으로 논의를 한정짓는다 하여도 상술한 주장은 상당부분 불교에 대한 무지에 기반하고 있기에 문제가 많다. 카스트 제도를 유지하는 힌두교의 환생과 평등을 주장하는 불교의 환생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불교의 윤회와 업설에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기에 불교적 관점에서 오류를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불교의 업설은 숙명론이 아니다.

불교의 업설은 과거에 지은 업 외에도 현재에 지은 업 또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비록 자신이 지었던 업이 있더라도 현재 본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본 것이다. 즉 불교의 업설은 과거 업의 영향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자유의지를 인정하므로 절대적인 숙명론이 아니다. 만일 행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불변하는 숙명이 있다면 이것은 불교의 인과나 연기설에 위배된다. 때문에 석가모니는 출생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계급을 인정하지 않고 행위에 따라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견해를 기반으로 하여 불교에서는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고 승가 구성원의 평등을 보장하였다.

이름이나 가계는

세상에서 다만 정하여 쓰는 것일 뿐,

관습에서 생겨서 여기저기 쓰인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릇된 견해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다.

알지 못하고 그들은 단언한다.

‘출생에 의해 브라흐민이 된다.’고.

출생에 의해 브라흐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출생에 의해 브라흐민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에 의해 브라흐민이 되기도 하고

행위에 의해 브라흐민이 안 되기도 한다.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술자가 되고

행위에 의해 상인이 되고

행위에 의해 하인이 되고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무사가 되고

행위에 의해 제관이 되고

행위에 의해 제왕이 된다.

참으로 지혜로운 이는

이처럼 행위를 있는 그대로 본다.

그들은 연기를 보는 자이며

행위와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 맛지마니까야 : 98 와셋타경, Vasettha sutta

2. 불교의 업설은 지배층의 권력강화, 신분차별, 동물학대와 본질적으로 무관하다.

불교의 업설이 때로 왕즉불 사상과 같이 지배층의 권력강화에 쓰이기도 하였으나 이는 지배층의 자의적인 왜곡이지 불교 교리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서술하였듯 불교의 업설은 숙명론이 아니며 현재 행위에 따라 업보가 변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석가모니는 계급 차별을 부정하고 평등을 천명한 바 있다. 더 나아가 대승 불교의 불성, 여래장 사상에서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장하였으며 이로 인해 여래장 사상에 기반을 둔 선종이 평민이나 지방 호족에게 각광받기도 하였다. 따라서 불교는 본질적으로 평등의 종교이며, 신분차별과 무관한 불교의 업설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교리를 왜곡한 지배층을 비판해야 한다. 지배층에 의한 자의적인 왜곡은 비단 불교 뿐 아니라 유교, 기독교나 공산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거의 모든 종교나 사상, 이념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업설이 신분차별이나 동물을 학대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업설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에 해당한다. 자신이 지은 업은 자신이 그 과보를 받는 자작자수(自作自受)가 원칙이기에 자신의 과보는 타인과 무관하다. 따라서 업보와 관련없는 타인이 업보를 빌미삼아 신분을 차별하거나 동물과 같은 약자를 학대할 수 없으며, 만일 차별하거나 학대한다면 그러한 악행의 과보는 고스란히 악행을 행한 당사자가 지게 된다.

오히려 불교에서는 수없는 윤회환생을 거치며 모든 중생이 나의 부모가 아니었던 적이 없으므로 부모였던 중생에게 자애와 연민을 가지라고 가르친다. 또한 수없는 윤회환생 중에 나 역시 고통받는 다른 중생처럼 괴로움을 겪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고통받는 중생에게 자애와 연민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오랜 세월을 거쳐서 일찍이 한 번도 어머니가 아니었던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다."

- 어머니의 경 (Mātusutta, S15:14)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수행승들이여,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을 보면 그대들은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라고 관찰해야 한다."

- 불행의 경 (Duggatasutta)

3. 불교의 선악 기준은 자의적이지 않고 보편적이며 공리주의적이다.

상술한 '문제점'에서는 선악의 기준이 특정 종교에만 해당되는 특수하고 자의적인 기준이기 때문에 보편적일 수 없고, 따라서 선악에 따른 과보도 정해질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의 기준은 특정 개인이나 종교 교리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리주의적인 성격을 지닌다. 아비담마 불교에서는 "참으로 애호(愛護)할 만한 안온한 과보를 초래하며 유정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선업(혹은 복업福業)이라 하고, 이와 반대되는 업을 불선업(혹은 비복업)"이라고 한다. 즉, 행위의 대상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 여부로 선악의 기준이 결정되는 것이지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불교의 업설은 특정 종교에만 해당하는 교리가 아니라 종교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한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4. 업보(과보)는 내생이 아니라 현생에도 받을 수 있다.

상술한 "문제점"에서는 현생에 지은 업의 과보를 마치 내생에서만 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이는 불교 교리와는 전혀 맞지 않는 억측에 불과하다. 아비담마에 의거한 불교학자 권오민의 설명에 따르면 업의 과보가 나타나는 시기는 업의 성질과 그것을 낳게 하는 인연에 따라 각기 다르다. 한 나무에 맺힌 씨앗이라 할지라도 견실하고 열등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동일한 시간에 싹트지 않으며, 설사 그 같은 차이가 없다고 할지라도 또 다른 조건, 이를테면 습도나 온도에 따라 일찍 싹트기도 하고 늦게 싹트기도 하는 것이다. 혹은 아마는 심은 지 세 달 반이면 그 결실을 맺지만, 보리는 여섯 달이 지나야 결실을 맺는 것처럼 업도 그 성질에 따라 과보를 초래하는 시기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업에는 그 과보를 낳는 시기가 결정적인 정업(定業)과 그렇지 않은 부정업(不定業)이 있다. 이를테면 무거운 번뇌나 맑고 깨끗한 마음에 의해 일어난 업, 즉 극악과 극선의 마음에 의해 조작된 업이나 습관적으로 행해진 업, 불·법·승이나 번뇌를 끊은 성자 등에 대해 일으킨 업, 그리고 부모를 해코지하는 등의 업이 정업이다. 그리고 부정업은 강력한 세력의 업이 아니기 때문에 과보를 받는 시기뿐만 아니라 이숙과의 내용도 결정되지 않은 업으로서, 이는 전적으로 또 다른 조건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유동적인 업이다.

정업에는 다시 그 과보가 현생에 바로 나타나는 순현법수업(順現法受業, 또는 順現業)과, 다음 생에 나타나는 순차생수업(順次生受業, 또는 順生業)과, 다음 생 이후에 나타나는 순후차수업(順後次受業, 또는 順後業)의 세 가지가 있다.

5. 업은 수많은 종류가 있으며, 업들은 서로 상호작용한다.

상술한 주장에서는 마치 모든 업들을 뭉뚱그려 오직 하나의 업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업은 하나인데 왜 과보는 다면적인지('문제점'에서 든 예를 그대로 들자면 물질적으로는 가난한데 외모는 출중한 경우) 의문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업이란 '의도적 행위'를 지칭한다. 즉 신체, 언어, 정신으로 지은 모든 의도적 행위들을 업이라고 정의하며 따라서 지을 수 있는 업도 무수히 많다.

비구들이여, 의도가 업이라고 나는 말한다.

중생은 의도를 가지고 몸(kayena)과 말(vacaya)과 마음(manasa)으로 업을 짓는다.

- 업의 논의 (Kamma-Katha)

수많은 업들은 서로 내적인 직접적 원인(인, 因)과 외적인 간접적 조건(연, 緣)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여 다양한 과보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불교의 업설에 의하면 물질적으로는 가난하더라도 외모는 출중하다는 식의 다면적인 존재로 환생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1.3. 환생의 기능과 장단점

환생이 실제로 존재한다 한들 현생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즉, 환생이 존재하느냐 마느냐가 현생을 살아가는데 영향력 0%이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뜻.

내가 전생에 누구였는지, 어떤 업보 때문에 현생이 누구로 태어났는지는 전생에 자신이 행한 일을 알아야만 의미가 있다. 현생의 업보에 따라 죽어서 극락 혹은 지옥을 가는 것은 행동에 관한 보상심리가 적용된다. 하지만 전생은 내가 아무리 착한 일은 많이 했어도 그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인생 내내 고생만 하다가 다음 생애 금수저로 태어난다고 해도 결국 새롭게 태어난 당신에게 전생의 당신은 남일 뿐이다. 가끔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 테세우스의 배 얘기를 꺼내면서 영혼은 같고 신체만 달라졌을 뿐인데 완전히 다를 수가 있냐고 반문하기도 하는데 어찌됐든 전생이 현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전생과 현생은 별개의 삶일 뿐이다.[17]

다만 생각하기에 따라 완전한 소멸보다 다른 생을 경험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환생이 좋을 수도 있다. 결국 믿느냐 안 믿느냐는 자기 자유. 다만 그걸 남에게 납득시키려고 하지는 말자. 어느 정도는 사후세계에 대한 환상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2. 서브컬쳐에서의 환생

  자세한 내용은 환생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영화

환생(영화) 문서 참조.

4. 게임에서 쓰이는 시스템

RPG 계열의 게임에서 채택하고 있는 게임 시스템. 플레이어 캐릭터의 스테이터스를 초기화 혹은 감소시키고 레벨1로 되돌린다. 게임에 따라 환생, 리모탈, 전승, 리본 등등 각자 다양한 용어를 사용해서 구별하려고 하나 기본은 같은 시스템. 국내에서는 마비노기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몇몇 다른 게임들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마비노기의 환생에 관해서는 2번 항목을 참고.

4.1. MMORPG를 비롯한 온라인 게임에서

개발자에게 상당한 편의를 제공해 주는 시스템으로 가장 큰 장점은 게임소스를 그대로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환생 시스템이 없는 게임이라면, 플레이어가 게임의 컨텐츠를 거의 모두 소비해 버렸을 때, 빠르게 플레이어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컨텐츠 개발이 계속적인 시간 압박을 받게 된다.

그러나, 환생 시스템은 캐릭터의 레벨을 리셋시킴으로 기존 게임 컨텐츠(마을, 던전, 몹 등등)를 계속 재활용이 가능하므로 컨텐츠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며 개발자가 추가 컨텐츠를 개발할 시간여유를 비교적 많이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돈도 많이 가질 수 있게 해주고 플레이어로서도 캐릭터를 리셋시킨 보상으로 추가 스킬이나 듀얼 클래스, 외모의 변화 등등 자신의 캐릭터에 어느정도 보상이 돌아오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컨텐츠가 계속 재활용되므로 비교적 쉽게 게임에 질리지 않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거기다 신규로 개발되는 컨텐츠들 또한 계속적으로 재활용되므로 플레이어가 소비할 컨텐츠는 거의 무한에 가깝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환생 시스템이 가지게 되는 커다란 단점이 존재하므로 절대로 남용해선 안된다.

가장 큰 단점은 플레이어 캐릭터의 성장곡선이 캐릭터가 성장할수록 완만해지는게 이상적인데, 환생 시스템을 적용하게 되면 캐릭터가 성장할수록 캐릭터의 성장곡선도 급격하게 가파라진다. 환생을 거듭하면서 캐릭터는 점점 강해지고, 그 캐릭터가 맞서야 하는 몹은 환생하지 않은 캐릭터도 잡아야 하는 몹이다. 그러므로 캐릭터의 성장은 환생을 거듭할수록 가속이 붙어 빨라지게 된다. 즉 게임의 밸런스를 깨는 투명드래곤급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걸 시스템이 허용하게 된다.

그렇게 강해진 캐릭터에 맞추어 전반적인 게임 난이도를 올리면 뒤늦게 시작하는 후발 플레이어들이 적응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전승이 누적된 캐릭터의 성장은 갈수록 빨라지기 때문에, 후발 플레이어는 먼저 시작한 플레이어의 성장치를 따라잡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에 도달해 버려 신규 유저의 유입을 차단하는 커다란 장해가 되기도 한다. 공성전이라도 있는 게임이라면 그야말로 막장급.

장점이 매우 큰 시스템이지만 단점도 그만큼 큰 시스템이기 때문에 최근의 MMORPG개발 추세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다만 기존의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컨텐츠 소모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때 시간을 버는 방법으로 잠깐씩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것도 그다지 좋은 평은 듣기 힘들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전승이 대표적.

4.1.1. 환생이 존재하는 온라인 게임

4.2. 싱글 플레이용 게임에서

그러나 반대로 혼자서 하는 게임에 환생 요소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앞서 언급된 단점들은 대개 후발 플레이어들이 따라잡기 힘든 것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거 없이 플레이어 혼자서 계속 강해지며 깽판을 치는 타입의 게임이라면 거의 장점만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

때문에 이 환생 시스템을 사용하는 싱글 게임들은 도리어 환생을 거듭할 수록 터무니없이 강해지는 성장곡선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경향이 있다. 말 그대로 안드로메다급 인플레이션을 되려 권장하는 게임들. 이 중 유명한 것이 바로 마계전기 디스가이아.

4.2.1. 환생이 존재하는 오프라인 게임

4.3. 모바일 게임에서

Idle 게임이라는 장르가 인기를 끌면서, 환생 시스템이 여기에 채용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수치만 증가하면서 수백~수천단계의 컨텐츠를 제공하는게 대다수이다보니 장점은 살고, 단점은 감소해 적극 활용되는 것. 이는 싱글 게임에서 활용되는 이유와 동일하다. 이러다 보니 아예 대놓고 제목에 환생이란 단어까지 들어가는 게임들도 있을 정도.

4.3.1. 환생이 존재하는 모바일 게임[18]

5.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주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드루이드가 사용하는 부활 주문의 일종.

원래 성기사의 '구원'과 함께 전투중에 사용할 수 있는 부활 주문이었으나, 밸런스 등의 문제로 구원을 사제나 주술사의 일반 부활 기술과 같은 급으로 변경한 후에는 전투부활 기술이 되었다. 그래서 아무도 '환생'이라는 기술명은 기억하지 않고 누구나 '전투부활', 혹은 '전봘' 등으로 부른다.

본디 제작 취지는 성기사 '성스러운 중재'나 주술사 '윤회', 흑마법사 영혼석과 유사한 전멸 상황 혹은 위급시 파티 재정비를 위한 도구였다고 생각된다. 쓰임이 좀더 유연하다는 장점(딜러가 죽어서 딜이 모자랄 때 살린다든지)과 다른 둘에 비해 전멸대처용으로 모자라다는 단점(전멸이라고 판단될 때 사제 등에게 걸어 주는데, 사제가 가장 먼저 죽어서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 버리면 대책이 없다)을 함께 지니고 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30분이고, 드루이드에게는 원래 일반 부활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오리지널 당시 5인 파티에서 드루이드를 기피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그 때는 재사용 시간 줄이는 특성도 없었다. 레이드에서는 발바닥만 돌려주시면 그냥 춤추고 계셔도 됩니다 하는 말을 듣는 극초귀족이었지만. 사실 이 원인으로, 땔감회드가 각광받던 불타는 성전 시절에도 주술사나 성기사가 없는 5인 파티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했다.

리치 왕의 분노에서는 드루이드가 그토록 바라던 일반 부활인 '되살리기'가 생겼기 때문에, 소규모 파티 힐러로서 드루이드의 입지가 넓어졌다.

6. 서브컬쳐계의 의미

드라마배우 또는 애니의 한 캐릭터를 맡은 성우가 다음 작품을 맡을 때, 전작과 비슷한 성격의 배역/캐릭터를 맡는 걸 가리켜 '환생'이라고도 부른다. 드라마의 경우 주로 사극-사극인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송일국은 주몽-바람의 나라에서 할아버지-손자로 환생하는 위엄을...(주몽-대무신왕) 자세한 경우는 배우개그/성우개그 참조.

레이팅이 존재하는 게임에서 지지리도 나쁜 성적을 거둔 플레이어가 밑바닥에서 쌓은 노하우와 지식들을 들고 새로운 계정을 파,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내면서 키우는 행위를 환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7. 윤종신의 노래

환생(윤종신) 문서로.


  1. [1] 엉터리 자료의 영향으로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환생을 믿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전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런 주장에서는 흔히 니케아 공의회에서 환생을 암시하는 성경 구절을 삭제했다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적이 없었다. 애당초 니케아 공의회는 성경 본문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도 않았다. 서기55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가톨릭 주교들의 모임인 공의회에서 오리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실이 아닌 영혼의 선재설을 주장하거나 영혼의 부활을 주장하는자는 파문될 것이라고 명시하였다. 또한 현대에는 성경의 최초의 본문을 복구하는 본문비평학이 발전했는데, 여기서도 그런 '윤회를 암시하는 구절'들이 있었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이러한 주장의 허위성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 내용을 참조하면 좋다.
  2. [2] 그런데 정작 티베트 불교에서는 고승 한정이지만, 기억도 쬐끔이나마 계승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후임 달라이 라마를 고르는 방법이 전임 달라이 라마가 사용했던 물건과 아무 물건들이나 다 섞어놓은 뒤에, 달라이 라마 후보가 전임 달라이 라마의 물건을 고르면 후임 달라이 라마(전임 달라이 라마의 환생)로 인정하는 것. 그러나 달라이 라마조차도 어릴 때에는 전생을 기억했지만 어른이 된 뒤로는 기억할 수가 없다고 말하였다... 영혼은 뇌를 대신할 수 있는 제2의 기억저장매체 달라이 라마만이 아니라 이른바 환생한 고승들은 다 비슷하다고 한다.
  3. [3] 이론을 설명하자면, 영혼은 4차원 또는 그 너머의 차원에 존재하기에 현세의 시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과거로도 이동할 수 있다는 설정인듯 하다.
  4. [4] 물론 환생을 믿는 사람 중에는 이에 대해 자아와 기억은 별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 사례는 뇌를 다쳐 기억을 잃어버린 경우고, 뇌를 다쳐 정신줄 놓은 사례도 많다.
  5. [5] 외장하드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끊기면 외장하드의 데이터를 읽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케이블에 데이터가 저장되는 것은 아니듯, 영혼(예를 들어)에 기억이 저장되고 뇌는 그 기억을 받는 수신기일 뿐이라면 '뇌를 다치면 기억이 없어지므로 뇌가 기억을 저장한다'라는 설명을 반박할 수 있겠지만, 영혼의 존재마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이 역시도 하나의 상상일 뿐. 더군다나 뇌는 형이하학적인 물질적인 존재라서 물질하고만 접촉될 수 있는데 영혼이 물질적 존재였던가?
  6. [6] 올바른 증거가 아니라고 하려면, 다른 기억 저장장치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외장하드의 경우는 파일을 읽을 수 없다면 1.케이블 이상 2.외장 하드 이상의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이는 일단 외장하드의 존재가 입증돼 있으므로 가능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1.뇌 2.어딘가(영혼?)로 추측하려면 2번이 실존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2번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뇌에 저장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은 합리적인 추측이 아니라, 뇌 말고 다른 곳에 기억이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믿음이다. 게다가 뇌는 동물들도 가지고 있는데 동물들도 영혼에 기억이 저장되고 뇌는 수신기인가? 기억을 설명하는데 영혼이 꼭 필요한 개념인가?
  7. [7] 사실 문화적 규범이라기 보다는 서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매우 좋지 못한 일이 많다는 역사적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암묵의 룰이라 보면 된다.
  8. [8] 자신이 전생에 살해당했다며 암매장당한 위치를 찾아간다거나 자신이 전생에 미군 파일럿이었다며 2차 대전기 전투기에 대해 어지간한 밀덕 이상의 정보를 늘어놓는다거나
  9. [9] 국내에 출간된 환생 연구 관련 서적으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 어떤 아이들의 전생 기억에 관하여, 인간은 분명 환생한다 등이 있다.
  10. [10] 전생에서 악을 저질러서 동물로 태어난 것이니 고통을 주건 죽이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11. [11] 불교 도래 이전 토속신앙에 기초한 신정일치제 시절의 경우, 왕은 신의 자손인 신성한 존재로서 집권할 수 있지만 동시에 리스크도 컸다. 자신들보다 강력한 외부 세력의 침략에 패배하거나, 자국이 이겨낼 수 없는 수준의 천재지변이나 역병 등 재해가 닥쳐오거나 하면 신의 자손이라는 지배자의 신성한 권능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피지배층의 충성심이 흔들린다. 아니, 꼭 지배자의 신성한 권능에 대한 의문이 생길 필요도 없다. 단지 이렇게 재앙이 생기는 것을 보니 왕의 신성에 문제가 있으므로 현 왕을 제거하고 문제 없는 새 왕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한국사만 봐도 과거 부여에서는 재해가 들면 왕을 죽여버렸다(...).
  12. [12] 여기서 유교와의 차이점도 나오는데, 근현대에 접어들면서 유교 의식이 많이 왜곡되어서 그렇지 유교에서는 생각 이상으로 피지배층의 충성의 자세 못지않게 지배층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와 대의명분에 대한 강조 역시 만만치 않다. 조선시대 국왕들이 그렇게 집권해서도 성군 이미지에 집착하고 왕이 되어서도 죽어라 공부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고, 중국사를 봐도 천명 사상에 따라 갖은 재해와 외침에 나라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천명이 다한 것으로 판단되어 반란 세력에 좋은 명분이 되었다. 그러나 불교는 어찌 되었건 지금 생에 이렇게 태어난 건 전생의 행실 때문이고, 그에 따라 금생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다는 논리 구조이기에 지배자의 자세와 태도 문제에서도 유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더욱이 나랏돈으로 지어주고 승려들 먹이는 것도 큰 공덕을 쌓는다고 여겼으니, 불교계 전체를 지지세력으로 쥐고 흔들기도 편하다.
  13. [13] 가령 돈을 뺏기 위해 사람을 죽인것과 그런 사람에게서 피해자를 지키려다가 강도질 하려던 사람을 죽였다면 과연 같은 악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 혹은 부모의 시체를 버렸는데 그 사람이 장례를 치를 돈도 땅도 인력도 없다면 과연 욕만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옛날 함경도에서는 풍장이란 풍습이 있었는데, 부모의 시체를 들판에 버려두는 풍습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꽤나 막장 같지만, 함경도한반도에서 가장 척박한 땅이다. 또는 한 나라의 전쟁의 영웅은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그냥 학살자일 수 있다.
  14. [14] 예를 들어 위에 설명한 사람의 경우 전생에 선행을 했지만 이후 큰 죄를 지어 모두 영향을 받아 저렇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15. [15] 아마 이쪽도 전생의 죄 때문에 장애인이 되었다고 생각할지도
  16. [16] 당신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해보자.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억울한데, 저런 발언을 들으면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또한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님들에게도 큰 상처를 안기는 발언이다. 뭐 확실한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면야 사실을 말한 것일 뿐이라고 변호할 수도 있겠으나,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호들의 발언은 많은 장애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줬으니 죄를 지은 셈인데, 호들 역시 이 죄로 다음 생에 장애인으로 태어날까(...)? 정말 죄를 지은 전과자라도 누군가 그 전과를 누설하고 다닌다면 명예훼손죄(사실적시)로 걸리게 되는 판국에,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장애인들에게 전생에 죄를 지었다며 모욕하는 것은 장애인들에 대한 명예훼손(허위사실)이다.
  17. [17] 다만 종교가 곧 삶이자 생활이던 현대 이전의 시기에는 환생은 일종의 정당성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개념이었다. 쉽게 말해 비록 밑바닥 인생이라고 해도 환생하여 부귀한 삶을 살 수 있고, 부귀하게 태어난 자는 선행을 쌓은 대가라는 얘기다.
  18. [18] PC 등 다른 플랫폼을 동시에 서비스하는 경우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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