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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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천년기

1. 개요
2. 사건
2.1. 아시아
2.1.1. 한국
2.1.2. 동양
2.2. 미국
2.3. 유럽
2.4. 중동
3.2. 패션
4. 1920년대생
5. 이 시기의 상징
6.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7. 192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개요

서기 1920년부터 1929년 까지를 가리키는 말

2. 사건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사람들은 평화를 갈구했다. 본격적으로 미국 vs 소련의 냉전 구도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나, 진정한 의미의 냉전은 194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다.

한국을 비롯하여 식민지 상태에 있던 나라들은 민족자결주의에 의해 독립을 요구했지만 그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오스만 제국을 분할하기 위한 것이었고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해당되지 않았다.윌슨의 훼이크 결국 거의 대부분의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은 2차대전 후에나 이루어졌다.[1]

2.1. 아시아

2.1.1. 한국

3.1 운동의 여파로 일본에서 문화 통치를 실시했으나, 이는 우리 민족을 분열시켜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계략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 동안 조선만의 근대 문화가 꽃을 피웠고 수많은 독립 계몽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00~1910년대의 의병들이 독립운동가로 거듭나고 해외에서도 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1.2. 동양

중화민국국부군군벌간의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중국 공산당이 1921년 창당되었고 이 시기에 처음으로 국공 합작이 있었다.

일본 제국은 이 시기를 다이쇼 데모크라시라 하며 낭만적인 시기로 기억한다. 사실 이때도 1차대전 승전국이라는 타이틀에 묻어가면서 호황기를 맞이했다가 역시 대공황으로 무너져 버렸고, 이는 군부 세력이 더욱 폭주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2.2. 미국

미국에서 이 시대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불리며 워런 G. 하딩캘빈 쿨리지의 친기업적인 정책에 힘입어 미국식 자유방임 자본주의와 소비문화가 절정에 다다른 시기였다. 한 마디로 미국의 첫 번째 전성기였던것. 이 당시 미국에서는 자동차, 석유, 전기, 화학, 영화, 음악등의 산업이 분야를 넘나들며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주가는 연일 급등했으며 GDP는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다. 이러한 호황 덕분에 1가구당 1대씩 자동차가 보급될 정도로 미국인들은 그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로 풍요로운 생활수준을 누렸고 그에따른 소비주의를 바탕으로 문화도 발달하여 전국에 수백개의 민영 라디오 방송국이 생겨났다.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은 세계 영화 산업의 메카로 떠오르기 시작했으며 재즈를 위시로 한 대중음악계가 크게 형성됐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번영의 뒤편으로는 심각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2], 생산의 자동화로 인한 실업 문제, 유효수요가 따라가지 못하는 과잉생산[3] 등 문제점이 쌓여가고 있었고 결국 20년대가 끝나기 전에 대참사가 터지고 만다. 정치적으로는 이전의 진보주의가 시들해지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졌다. 금주법이 시행되고 반이민을 내세운 KKK가 절정기를 맞이했다. 좌익에 대한 공포는 사코와 반제티 사건으로 표출되었다.

2.3. 유럽

러시아적백내전 끝에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수립되었지만 블라디미르 레닌 사후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독재국가의 길을 걷게 된다.

바이마르 공화국1차대전의 패전과 프랑스영국과도한 전쟁 배상 요구로 인해 피폐해졌고 지옥같은 인플레까지 겪어야만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인플레를 해결하고 다시 부흥하나 싶었는데 대공황으로 경제가 도로 파탄났고 이는 결과적으로 히틀러의 집권으로 이어지게 된다.

2.4. 중동

오스만 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터키가 수립되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3. 문화

3.1. 음악

위 본문에 언급된 광란의 20년대를 맞이해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엄청난 성과를 올렸으며 사실상 대중음악계의 첫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시기였다.

미국 흑인들의 전통민요라 할 수 있는 블루스 음계를 기반으로 연주한 초창기 재즈 뮤직이 댄스 클럽, 바에서 유명세를 받아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하였고 그 중심엔 뉴올리언즈 지역의 뮤지션들이 있었다. 이로서 이전 시대를 대표했던 래그타임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

이와같은 초창기 재즈 뮤지션들은 큰 인기에 힘입어 연주곡, 보컬등을 녹음한 음반을 만들어 음반시장을 키워갔고 수많은 재즈 명곡들이 쏟아진 시기였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뮤지션이 루이 암스트롱.

3.2. 패션

가브리엘 샤넬이 한참 활동하던 시기였고, 리틀 블랙 드레스도 이때 나왔다.

여성들의 직업진출로 과거의 전통적인 긴머리와 길고 불편한 드레스가 아닌 단발머리와 가슴이 부각되지 않는 무릎까지오는 드레스가 유행하게 된다. 플래퍼 스타일도 이때 만들어졌다.

4. 1920년대생

1920년대생들은 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이른바 문화통치 시행 이후부터 태어났던 세대들로 어린시절부터 동아, 조선일보도 접했던 이들이었다.

20대에 가서는 일제의 마지막 발악과 해방을 직접 경험하였고 일제 말기 국가 총동원법이 시행되면서 10대 후반 - 20대의 젊은이들이었던 10년대 중후반생 ~ 20년대생들을 대상으로 강제 징용을 하거나 정신대, 위안부로 끌고가면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에는 김구, 여운형, 장덕수, 송진우 등의 인사들이 암살된 소식도 듣게 된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를 경험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공식 국적을 성인이 되어서야 가지게 되었다. 동시에 분단으로 20대부터 북한으로 직접 오갈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10대까지는 일제 치하라 북한도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다.

30대가 되는 1950년에 6.25 전쟁을 경험하면서 많은 수의 20년대생들이 20대였던 30년대생들과 함께 전쟁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전사자들도 많았던 편. 여자의 경우 이 연대생들을 기준으로 미망인들이 늘어갔던 편이었다.

40대에는 4.19 혁명을 경험하였고 50대까지 박정희 시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6순 환갑이 지나서 전두환, 노태우 정부를 보게 되었고 서울올림픽을 보았으며 70대에 가서야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경험한다.

정치적으로는 역시 한국전쟁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보수적 영향을 받고, 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를 연속으로 경험한 탓에 보수성향이 짙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한국의 정치사적으로 아이러니한 점은 군사정권을 수립한 주요 지지세력도 1920년대생들이며 그런 군사정권에 정면으로 반발하여 민주화 운동을 이끈 첫 세대 역시 1920년대생이라는 점이다.

이 연대에 바로 3김 정치인이라 불렸던 김영삼(1927년생), 김대중(1924년생), 김종필(1926년생)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수 논객으로 불리우는 김동길(1928년생)도 이 연대에서 태어났으며, 6.25 전쟁때 활약한 백선엽(1920년생) 장군, 문선명(1920년생)도 이 연대에 태어났다. 재계에서는 신격호(1922년생)와 구자경(1925년생), 서성환(1924년생) 등이 있고, 연예계에서는 송해(1927년생), 구봉서(1926년생), 최무룡(1928년생) 신영균(1928년생) 등이 이 연대에 태어났다. 또 대부분의 원로 정치인과 법조인, 관료들도 1920년대생들도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박용만, 최훈, 김재광, 노승환, 정상구, 박준규, 최운지, 정웅, 이병희, 최무룡, 정재철, 김재순, 오용운, 이종근, 황명수, 박병선, 이희천, 김봉욱, 조순승, 유학성, 황낙주, 채문식, 강영훈, 박태준, 남덕우, 김상협, 진의종, 신직수, 홍우준, 박명근, 손승덕, 김효영, 김광수, 이봉성, 송원영, 김정례, 조연하, 박한상, 이찬혁, 김수한, 이중재, 장성만, 신도환, 명화섭, 이병직, 유치송, 천영성, 이상익, 이철승, 전종천, 임종기, 최치환, 조종호, 고병현, 최명헌, 고정훈, 왕상은, 구용현, 이흥수, 김승목, 김은하, 홍종욱, 신철균, 안갑준, 이종성, 지정도, 정래혁, 정휘동, 조병규, 조일제, 박동진, 김종철, 이인근, 고흥문, 박경원, 정희섭, 예춘호, 김임식, 양찬우, 류승원, 서상린, 김유탁, 오치성, 박영록, 김준섭, 함종빈, 장승태, 엄영달, 박찬, 장영순, 유기정, 채영철, 김현기, 설인석, 장경순, 장경순, 이호종, 길전식, 박숙현, 권오태, 조규창, 김상년, 박해충, 신현확, 문태준, 구태회, 최재구, 이후락, 김택수, 신동관, 현오봉, 정희채, 정일영, 신범식, 신상철, 신상조, 이석제, 신병현, 정원식, 이영덕, 황영시, 김영준, 김용순, 김재춘, 김형욱, 김계원, 김재규, 이희성, 윤일균, 김원기, 이한빈, 김준성, 윤천주, 홍종철, 이규호, 윤인식, 이영근, 함명수, 이동원, 장기선, 김형기, 정기승, 전상석, 전병연, 김기홍, 전병덕, 윤운영, 백인엽, 김창규, 정태균, 이한빈 등이 있다.

그리고 악명높은 위안부를 경험하였던 위안부 할머니들 대부분이 이 연대생들이다. 2020년대 현재는 이 할머니들도 거의 별세를 한 편이라 그나마 생존한 분들도 언제 고인이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1960년대 6.3 시위에도 참가하였는데 이 때는 할머니들 연세가 40대라 고령으로 접어든 2010년대에 비해서 활동이 왕성하였다.

1946년에 보성전문학교로 불렸던 고려대학교가 명칭을 변경하면서 1920년대생부터 고대생이라는 명칭이 불려졌다.

1920년대생들은 사실상 마지막 보통학교 출신들이라 볼 수 있으며, 이 연대에 태어난 할머니들 중 한글을 읽거나 쓸 줄 몰라 어르신 한글교실 등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배운 케이스도 있다. 1920년대생들 중 일부는 서당에 다닌 적이 있어 한자 실력이 좋은 경우도 있다. 이들 중 졸업 앨범이나 졸업장 등에 창씨개명된 일본식 이름이 적힌 경우도 있고, 학교 동창 중에 일본인이 있는 경우도 있다.

1920년대 초반 생들은 대부분 별세했지만 백선엽(1920년생) 등 2020년 기준으로 아직 살아있는 사람도 몇몇 있다.

미국의 1920년대생들은 첫 황금세대이자 전쟁세대라고 불려진다. 미국의 첫 황금기인 1920년대에 태어나서 청소년기때나 아동기때 대공황의 영향을 받았다. 1941년 진주만 공격이후로 주로 1920년대생들이 사병 군인으로 약 1000만 이상이 참전해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5년뒤엔 상당수의 1920년대생들이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10여년뒤 베트남전쟁 시기에는 1920년생들이 주로 장교로 전쟁에 참여했다. 경제적으로 불운한 청소년기/아동기를 보냈지만 그들이 30대가 될때부터 경제적으로 아주 호황한 시기들을 보냈다. 그들 상당수가 전쟁영웅들으로 나라을 전체주의/나치주의/파시즘으로부터 구해서 전세대를 통틀어서 아주 존경받는 세대이다.

5. 이 시기의 상징

6.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7. 192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1] 그것도 일본 치하에 있었던 곳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승전국의 식민지였던 곳은 인도(1947년 독립)를 제외하고 1950년대~1960년대까지 식민지 상태였다.
  2. [2] 대공황이 시작되기 전인 1920년대 중반부터 농촌은 가격하락과 가뭄으로 불경기를 겪고 있었다
  3. [3] 192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생산이나 주택건설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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