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 FIFA 월드컵 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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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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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2회

3회

4회

5회


1930
우루과이


1934
이탈리아


1938
프랑스


1950
브라질


1954
스위스

6회

7회

8회

9회

10회


1958
스웨덴


1962
칠레


1966
잉글랜드


1970
멕시코


1974
서독

11회

12회

13회

14회

15회


1978
아르헨티나


1982
스페인


1986
멕시코


1990
이탈리아


1994
미국

16회

17회

18회

19회

20회


1998
프랑스


2002
한국/일본


2006
독일


2010
남아공


2014
브라질

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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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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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캐나다/멕시코/미국


미정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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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FIFA 월드컵 서독

Fußball-Weltmeisterschaft 1974
1974 FIFA World Cup West Germany™

대회기간

1974년 6월 13일 ~ 1974년 7월 7일

개최국

서독

마스코트

팁 앤 탭(Tip and Tap)

주제가

Futbol

공인구

텔스타 덜라스트(Telstar Durlast)

참가팀

16개팀

대회 결과

우승

서독
(2번째 우승)

준우승

네덜란드

3위

폴란드

4위

브라질

수상

골든볼

요한 크루이프 (네덜란드)

골든슈

그제고시 라토 (폴란드)

이전·이후 대회

1970년
멕시코

1974년
서독

1978년
아르헨티나

1. 개요
3. 경기장
4. 1라운드
4.1. 1조
4.2. 2조
4.3. 3조
4.4. 4조
5. 2라운드
5.1. A조
5.2. B조
6. 결승/3-4위전
7. 우승
8. 결과
9. 기타

1. 개요

1974년 서독에서 개최된 10번째 FIFA 월드컵. 1974년 6월 13일부터 7월 7일까지 진행되었다.

대회 방식에 변화가 생겼는데 16강 조별 풀리그를 거치는 것까지는 전 대회와 동일했으나 2라운드가 토너먼트 대신 4팀 2개조로 나뉘어 풀리그를 벌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또 각 조 1위가 결승전, 2위가 3-4위전을 치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는 경기 수를 늘려 흥행 확대를 노린 FIFA의 조치였다.

전 대회에서 브라질이 3회 우승을 차지하며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하게 되면서, FIFA에서 새로운 트로피를 만들었다. 이전 줄리메컵과 달리 어느 한 나라가 영구 소유하지 않고 그때그때 우승팀에게 양도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지금까지도 잘 써먹고 있다. 이 대회부터 공식 명칭이 '월드컵'으로 바뀌었는데, 지금까지 명칭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공식적인 대회 이름이 완전히 굳어진다.

동독이 지역예선 통과를 하여 월드컵에 선보이게 되어, 동서독이 모두 참가한 유일한 월드컵이 되었다. 이후 동독은 통일될 때까지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서베를린에서도 몇 경기가 배정되었는데, 여기서 경기를 치르는 팀은 동독을 잠시 지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동독 역시 서베를린에서 한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중도 일시 귀국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불세출의 스타 요한 크루이프가 진두지휘한 네덜란드가 토털사커 광풍을 일으킨 대회이다. 하지만 우승은 개최국 서독의 차지.

2. 지역예선

3. 경기장

월드컵이 열린 구장이 있는 도시와 구장 이름은 다음과 같다.(가나다순) 총 9개의 도시와 9개의 구장에서 열렸다.

4. 1라운드

조편성은 다음과 같다.

4.1. 1조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동독

3

2

1

0

4

1

+3

5

2

서독

3

2

0

1

4

1

+3

4

3

칠레

3

0

2

1

1

2

-1

2

4

호주

3

0

1

2

0

5

-5

1

- 톱시드는 서독. 사상 첫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서독의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했다. 2년 전 뮌헨올림픽에서 테러가 발생하는 바람에 안전 문제에 엄청난 신경을 써야만 했고, 선수들과 주민들 또한 이번에도 사고가 터지지 않을까 상당히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물론 분위기만 차분했을 뿐 월드컵 우승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는 높았다. 1970년대 들어서며 분데스리가의 위상이 상승하고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등의 특급 선수들이 상당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기에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는 단연 서독이었고 조에서도 무조건 1위를 차지할 거라고들 생각했다. 변수가 있다면 동독의 존재였는데, 사상 첫 월드컵에 출전한게 분단된 서독이었고 설상가상 같은 조에 편성되어 마지막 경기를 치르도록 되어 있었다. 당연히 축구팬을 떠나 많은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경기였다. 일단 첫 상대는 서독 vs 칠레, 동독 vs 호주. 남미의 강호 칠레를 상대로 1:0의 신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고 동독 또한 후반에 2골을 몰아넣으며 호주를 상대로 사상 첫 승리를 거머쥐었다. 두 번째 경기인 서독 vs 호주전은 서독의 3:0 승. 이로써 서독은 8강을 일찍 확정지었고, 전력에 큰 차이가 없었던 동독과 칠레는 난타전을 벌인 끝에 1:1로 무재배를 했다. 마지막 3차전에서는 칠레와 호주의 경기가 먼저 치뤄졌다. 승점 자판기를 상대로 무득점 무재배로 경기를 끝내는 바람에 2무 1패를 기록, 사실상 칠레의 8강 진출은 실패하고 만다. 가장 기대되었던 함부르크에서의 서독 더비에서는 의외로 동독이 후반 32분 슈파바서가 결승골을 터뜨리며 서독을 주저앉히며 1위로 직행, 결승전과 더불어 최고의 이변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대회 직후 헬무트 쇤 감독은 우승을 했음에도 동독전 패배에 대해 사죄하고 해명하는 해프닝까지 겪었을정도. 다만 서독이 2차 리그에서 쉬운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 동독과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2차 리그에서 맞붙은 상대를 보면 알 수 있다.

4.2. 2조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유고슬라비아

3

1

2

0

10

1

+9

4

2

브라질

3

1

2

0

3

0

+3

4

3

스코틀랜드

3

1

2

0

3

1

+2

4

4

자이르

3

0

0

3

0

14

-14

0

- 톱시드는 브라질. 전 대회에서 압도적인 화력으로 줄리메컵을 쥐면서 월드컵의 판도까지 바꾸어 놓았는데, 일단 줄리메컵의 영구 소유권을 가져간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월드컵 개막전까지 개최국에서 전 대회 우승팀으로 바뀌게 했다. 그래서 이 대회부터는 개최국 서독이 아닌 전 대회 우승팀 브라질이 개막전을 치르게 되었는데(2002 한일 월드컵까지 이어진다), 확실히 4년 전보다는 전력이 많이 하락한 팀이었다. 일단 펠레가 은퇴했고, 토스탕도 망막박리에 걸려 26세 최절정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 상태였다. 그래도 자이르지뉴-히벨리노가 아직 건재했고 감독 또한 4년 전 우승컵을 들어올린 전설의 자갈로였다. 펠레토스탕의 공백을 얼마나 잘 채워줄건가가 이번 대회의 핵심이었는데... 이럴 수가!! 개막전부터 무재배를 시전했다. 유고슬라비아와의 개막전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0:0으로 끝내버린 것. 유고가 아무리 유럽의 강호라지만 우승을 노릴 만한 전력은 아니었고, 브라질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팀이었다. 결과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4년 전의 화려한 플레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화려한 개인기와 끈끈한 팀웍으로 상대 수비를 농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전과는 달리, 오히려 브라질이 수비에 치중하면서 전과 같은 개인기도 팀워크도 보여주지 않았다. 영원한 우승 후보의 자존심은 벌써 금이 가기 시작하고, 이 와중에 옆동네에서 스코틀랜드가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게 2:0으로 승리하며 월드컵 사상 첫 승을 쏘아올리며 조1위를 차지한다. 두 번째 경기, 유고슬라비아 vs 자이르 전에서는 무려 9:0이란 압도적인 스코어가 나왔다. 여기에도 비화가 있는데 당시 자이르의 '독재자'가 감독이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기를 앞두고 잘라버리는 병크를 저지른 것이다. 졸지에 감독 없이 경기를 치르게 된 자이르는 예상대로 유고슬라비아에 탈탈 털렸고, 경기 시작 18분만에 세 골이 먹히자 골키퍼까지 교체하는 병크를 저지른다. 수비가 안 돼서 골이 먹힌 건데 주전을 빼버리니 오히려 6골이 더 먹혀 9:0이라는 굴욕의 점수차가 나오게 된 것. 개막전에서 브라질과 비기고 아무리 승점자판기라지만 자이르를 9:0으로 떡바른 유고슬라비아는 8강 능선에 거의 다가섰고, 브라질은 스코틀랜드를 상대로도 0:0으로 무재배하며 또다시 굴욕을 당한다. 마지막 경기에서야 자일지뉴, 히벨리뉴, 바우두미루의 득점으로 자이르를 3:0으로 눌렀지만, 세계 최강이라던 브라질이 듣도 보도 못한 팀에 겨우 3:0으로 이기고 나머지 경기에서 무득점을 했다. 3득점 무실점, 한 경기당 겨우 한 골로 8강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세계 최강 브라질에는 어울리지 않은 결과였고 덩달아 전세계 언론에게 신나게 두들겨맞는다. 유고슬라비아 vs 스코틀랜드 전은 1:1 무재배. 자이르를 9:0으로 바른 유고슬라비아가 1위로, 겨우 2:0으로 이긴 스코틀랜드는 1승 2무를 기록하고도 골득실에 밀려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 대회에서 유일하게 패하지 않은 나라가 된건 덤. 이 대회를 시작으로 5회 연속 월드컵에 올라온 스코틀랜드지만, 갈 때마다 골득실에 밀려 단 한 번도 2라운드 진출을 해 보지 못하는 징그러운 징크스 또한 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30년 후 유로 2004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4.3. 3조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네덜란드

3

2

1

0

6

1

+5

5

2

스웨덴

3

1

2

0

3

0

+3

4

3

불가리아

3

0

2

1

2

5

-3

2

4

우루과이

3

0

1

2

1

6

-5

1

- 톱시드는 우루과이. 하지만 뚜껑을 열자 가장 강력한 팀은 네덜란드였다. 우루과이는 전 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지만 세대 교체 실패로 전력이 크게 주저앉으며 슬럼프에 빠졌고, 네덜란드는 아약스에서 시작된 토탈 풋볼이라는 혁신적인 전술이 대표팀에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지역예선과 평가전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다크호스 떠오르고 있었다. 74년 월드컵 이전만 하더라도 네덜란드는 유럽의 축구 변방에 불과한 나라로 취급 받았지만, 본선 진출로 화제를 모으더니 정작 월드컵 막이 오르자마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형의 축구를 선보이며 네덜란드의 독주 시대를 연다. 요한 크루이프를 주축으로 탄탄한 미드필더를 구축하며 공격과 수비의 구분 없이 왕성한 플레이를 보인 네덜란드에 상대팀들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첫 경기부터 톱시드팀 우루과이를 2:0으로 간단히 누르며 순조로운 출발을 한다. 서로 1승 상대로 여겼던 스웨덴과 불가리아는 무재배를 기록함으로써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두 번째 경기 우루과이 vs 불가리아전에선 우루과이가 쉽게 이길 것이란 예상을 깨고 불가리아가 선제골, 우루과이가 종료 직전 동점골로 따라잡으며 1:1 실망스런 무재배를 펼친다. 그땐 몰랐겠지만 실제 당시 대회 최강 전력이던 토탈 풋볼의 네덜란드에게 밀린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조 최하위 전력의 불가리아전마저 무재배를 기록한 우루과이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에 많은 비난을 받았고, 스웨덴 또한 네덜란드와 0:0으로 비기며 예상 외로 선전한다. 마지막 경기에선 네덜란드가 불가리아를 4:1로 누르며 손쉽게 1위로 직행, 스웨덴은 우루과이를 3:0으로 대파하며 2위로 8강에 오른다. 아무리 하락세라지만 8강엔 어렵지 않게 오를 것이라 봤던 우루과이는 1무 2패의 처참한 성적을 안고 쓸쓸히 귀국했으며 이후 두 대회 연속 본선에도 오르지 못하는 등 완전히 중위권 실력으로 내려앉게 된다. 스토이치코프 이전까지 최고의 선수였던 보네프를 주축으로 한 불가리아는 이번에도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상대적 꿀조였던 지난번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당시 기준으로 역대 월드컵 최고 성적(2무 1패)을 기록,[3]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귀국길에 올랐다. 조예선 3경기에서 크루이프가 터뜨린 골은 단 한 골도 없었지만,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조율하며 페이스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녹여냈던지라 골 없이도 엄청난 찬사를 받아내며 2라운드에서의 대활약을 다시 예고하고 있었다.

4.4. 4조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폴란드

3

3

0

0

12

3

+9

6

2

아르헨티나

3

1

1

1

7

5

+2

3

3

이탈리아

3

1

1

1

5

4

+1

3

4

아이티

3

0

0

3

2

14

-12

0

- 톱시드는 이탈리아. 카테나치오 전술로 전 대회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부활을 알렸고, 예선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으로 무실점 본선행에 올랐던지라 강력한 우승후보로 발군의 성적을 내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남미의 전통 강호 아르헨티나와 36년만에 본선에 오른 폴란드는 여기에 맞설 상대로 보여지지는 않았고, 아이티는 말할 것도 없는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위의 세 조와 마찬가지로 예상과는 다른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vs 아이티 전에서 이탈리아가 3:1로 승리하기는 했지만 완전한 듣보잡이었던 아이티에게 먼저 한 골을 내주고 역전승한 것이다. 전설의 카테나치오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겼음에도 각종 언론에서는 이탈리아를 향한 비난의 화살을 날려댔다. 폴란드 vs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골잡이 라토의 대활약으로 폴란드가 3:2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무언가 폭발할 조짐이 보였고, 두 번째 경기에서 이에 대한 판가름이 난다. 아르헨티나 vs 이탈리아 전에서 양측이 1:1로 소모전을 펼치는 동안 폴란드가 아이티를 7:0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천하의 이탈리아가 3:1로 역전승하며 졸전했는데 폴란드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골차이를 벌림으로써 2연승으로 8강 진출을 확정해버렸고, 남은 한 자리를 놓고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의 싸움이 시작됐다. 아르헨티나는 예상대로 약체 아이티를 상대로 4:1로 승리했지만, 이미 2승으로 8강을 확정지은 폴란드가 이탈리아를 2:1로 잡아버림으로써 골득실에 밀려 이탈리아가 예선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2차대전 이후 월드컵에서 50, 54, 62, 66에서는 졸전 끝에 예선탈락했고 58년도는 아예 본선진출마저 하지 못했던 악몽의 시간이 그대로 되살아난 셈이었다. 더불어 폴란드는 골잡이 라토를 앞세운 72 뮌헨올림픽 우승이 이변이 아니었음을 여기서 다시 한 번 증명하게 되었고, 브라질의 독주를 막자던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에 골득실 차로 겨우 앞서 8강에 오르긴 했지만 역시 예전의 영광을 찾기에는 많이 역부족이었다.

5. 2라운드

조 1위는 결승전 진출, 조 2위는 3.4위전 진출

5.1. A조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네덜란드

3

3

0

0

8

0

+8

6

2

브라질

3

2

0

1

3

3

0

4

3

동독

3

0

1

2

1

4

-3

1

4

아르헨티나

3

0

1

2

2

7

-5

1

- 토탈 풋볼을 앞세운 네덜란드의 기세는 매서웠다. 첫 경기에서 크루이프의 두 골을 앞세워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4:0으로 관광보냈고, 두 번째 동독전마저 2:0으로 가볍게 눌러 일찌감치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똑같이 2승을 기록한 브라질과의 마지막 경기마저 2:0으로 승리, 3전 3승 무실점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브라질 또한 동독을 1:0, 아르헨티나를 2:1로 누르며 예선에서의 졸전을 씻는 듯 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네덜란드에 0:2로 농락당하며 4강 진출에 만족해야했다.[4] Again1930을 외치며 선전을 바라던 아르헨티나는 첫 경기부터 네덜란드에 0:4로 처참히 깨지면서 다음 경기 브라질전마저 1:2로 패배, 8강에서 그대로 주저앉아야만 했다. 보다시피 당시 네덜란드는 남미 TOP3를 상대로 3전 전승에 단 한 골도 내주지 않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남미팀에 유독 강했던 이유는, 감독 미첼스가 아약스 시절부터 토탈풋볼로 크게 주목받고 있었는데, 유럽 선수들은 이미 이 전술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어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가능했지만 남미 선수들은 전혀 보지 못한 생소한 전술과 플레이였기 때문에 대책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국제무대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한 대회에서 3전 전승을 했던 팀은 1974년 네덜란드가 유일하다.[5]

5.2. B조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서독

3

3

0

0

7

2

+5

6

2

폴란드

3

2

0

1

3

2

+1

4

3

스웨덴

3

1

0

2

4

6

-2

2

4

유고슬라비아

3

0

0

3

2

6

-4

0

- 동독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서독은 2라운드에서 전력을 다잡으며 화려한 골 퍼레이드를 펼친다.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만큼 주목받지는 못 했지만, 서독 역시 프란츠 베켄바워를 앞세워 보다 유기적이고 끈끈한 플레이를 펼침으로써 네덜란드에 맞설 유일한 상대라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유고전에서 2:0, 스웨덴전 4:2를 기록하며 일찍이 4강 진출을 확정짓고 결승 티켓을 놓고 싸웠던 폴란드전에서도 전 대회 득점왕 게르트 뮐러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 조예선에서의 네덜란드처럼 서독 역시 2라운드에서 베켄바워의 골은 한 번도 터지지 않았지만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단연 No.1이었다. 라토와 데이나 콤비의 대활약으로 8강에 오른 폴란드는 이번에도 두 콤비를 앞세워 스웨덴전 1:0, 유고전 2:1로 승리하며 4강 진출을 일찍 확정했다. 네덜란드와 맞서 유일하게 승점을 챙긴 스웨덴은 마지막 경기에서 2:1으로 승리하며 실리를 챙겼고, 유고슬라비아는 자이르전 9:0의 대활약에도 정작 8강 2라운드에서는 3전 전패를 당하며 아쉽게 무대에서 내려왔다.

6. 결승/3-4위전

  • 3-4위전
브라질 0 : 1 폴란드

- 38년 대회에서 명승부를 펼친 이후 다시 맞붙은 두 팀간의 대결은 폴란드의 복수로 끝이 났다. 브라질은 일단 4강에는 올랐으므로 결과만 보면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7경기 6득점 4실점의 골득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 경기 당 한 골도 넣지 못한 유일한 대회였다. 심지어 처참하게 예선탈락한 1966년 잉글랜드에서도 이렇게 저조한 득점력을 보여주진 않았다. 펠레, 토스탕, 제르송 등의 주축 선수들이 연이어 은퇴하면서 전력에 큰 공백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철저한 수비축구로 승부수를 띄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결국 성적과는 별개로 지루하게 늘어지는 경기력을 대회 내내 보여주었고,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운 '무조건 공격'에 익숙한 브라질 축구팬들의 크나큰 분노를 사고 말았다. 단점을 파악하고 이를 잘 극복했다는 점에서 자갈루 감독은 충분히 명장이었지만, 자택이 습격받을 정도로 이후 상당 기간 동안 평가가 박하게 깎이며 신변에 위협받는 신세가 되어야만 했다. 결국 1994년 다시 감독을 맡으며 우승컵을 다시 거머쥐기는 했지만.

폴란드는 38년에 이어 두 번째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을 정도로 세계 무대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1972년 뮌헨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라토-레이나 투톱의 화끈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모처럼 세계 대회에서 확실히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후 네 대회 연속 출전하며 4강-8강-4강-16강이라는 성적을 냄으로써 유럽의 강호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 결승
네덜란드 1 : 2 서독

1974년 서독 월드컵, 결승전.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다. 축구 역사상 다시는 나오지 않을 라이벌 이 격돌했다.

- 결승전을 앞두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네덜란드의 우승을 예측했다. 워낙 토탈 풋볼의 임팩트가 컸고, 포지션을 정확히 지키지 않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상대선수들을 공격 진영부터 압박하는 플레이는 그 누구도 깰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서독에는 '리베로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었다. 현재 3-5-2 시스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전술로 프란츠 베켄바워를 리베로로 앞세워 역시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롤 역할을 맡아 선수들을 그라운드에서 지휘하는 방식으로 역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지금의 '전차 군단'이라는 별명을 갖게 해준 전술로서, 어쩌면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과도 비슷한 점이 많은 전술이었다. 기존의 화려한 개인기 vs 카테나치오로 흘러갔던 축구의 흐름을 완전히 깨부순 두 혁신간의 대결은 전세계의 관심을 낳았고, 유럽의 두 전설 요한 크루이프프란츠 베켄바워의 맞대결 승자가 누가 될지도 희대의 관심사였다.

결승전은 7월 7일 오후 4시에 시작했고, 휘슬이 울리자마자 네덜란드가 PK를 얻어내 1: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바람대로 네덜란드가 이기나 싶었지만 그 전까지 압도적인 화력을 보여준 네덜란드는 온데간데없었고 크루이프도 제대로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허우적거렸다. 사실 요한 크루이프가 활약을 하지 못한 이유에는 서독판 진공청소기 베르티 포크츠[6]역할도 컸다. 당시 공격 연계 플레이나 볼키핑, 패싱 능력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상대 키플레이어를 완벽하게 지우는 재주가 있었던 포그츠는 요한 크루이프토탈 풋볼의 엔진임을 간파한서독의 헬무트 쇤 감독에 의해 요한 크루이프 전담마크 할 것을 지시받았고, 이 부분이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해 네덜란드의 조직력을 다소 무디게 만드는데 기여했다. 요한 크루이프는 포크츠의 집중된 마크에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이며 페이스를 잃었고, 포크츠는 결승전에서 다 두번의 볼 터치만 기록했을 정도로 오직 요한 크루이프 지우기에 집중했다. 결국 크루이프와 포크츠가 사라진 10 vs 10 시합이 되자 프란츠 베켄바워의 전두지휘 아래 서독이 경기의 흐름을 쥐었고, 결국 전반 25분 다시 PK로 동점을 만들고 43분 게르트 뮐러의 역전골이 터지면서 전반전은 2:1로 종료되었다.

후반전 역시 마찬가지로 서독의 우세 속에 경기가 진행되었고 네덜란드는 동점골을 넣지 못한 채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서독의 두 번째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서독 선수들과 뮌헨 관중들은 미친 듯이 환호했고 안타까운 패배에 네덜란드 선수들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7]콩의 시작

비록 우승은 서독이 가져갔지만, 전술의 혁신성에 있어서는 네덜란드가 앞섰고 월드컵 무대에서 이들이 보여준 단 한 번의 충격은 순식간에 축구 역사를 뒤바꾸었다. 특히 토탈 풋볼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개인기의 남미 팀들을 제대로 뭉개버려 이후 남미 팀들은 하나같이 기존의 개인기에 팀웍과 유기성을 강화시킨 방향으로 완전히 흐름이 넘어갔다. 분명히 서독이 우승을 했지만 대회 최고의 화제 팀은 네덜란드였으며[8], 크루이프는 월드컵을 통해 전세계적인 대선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크루이프 vs 베켄바워 떡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대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거두고도 우승팀 이상의 위상을 지닌 팀은 1954 헝가리와 더불어 1974 네덜란드 둘 뿐이다. 안타깝게도 크루이프가 다음 대회에서 가족 납치 협박사건으로 월드컵에 불참해 크루이프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 무대이기도 했던 대회였다. 크루이프가 빠지고 아르헨티나의 각종 조작과 편파에도 준우승을 차지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당시 네덜란드의 임팩트가 얼마나 컸고 충격적인 전력이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음이다. 물론, 자국 월드컵에서 떳떳하게 두 번째 월드컵을 손에 쥔 서독 또한 결코 폄하할 수 없는 위대한 팀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상기한 헝가리와 네덜란드를 모두 준우승에 머무르게 한 팀이 바로 서독이다.[9]

7. 우승

1974 FIFA 월드컵 우승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000000 서독}}}]]

두 번째 우승
★★

8. 결과

순위

국가

경기

득실

승점

비고

1

서독

7

6

0

1

13

4

+9

12

우승

2

네덜란드

7

5

1

1

15

3

+12

11

준우승

3

폴란드

7

6

0

1

16

5

+11

11

3위

4

브라질

7

3

2

2

6

4

+2

8

4위

5

스웨덴

6

2

2

2

7

6

+1

6

8강

6

동독

6

2

2

2

5

5

0

6

8강

7

유고슬라비아

6

1

2

3

12

7

+5

4

8강

8

아르헨티나

6

1

2

3

9

12

-3

4

8강

9

스코틀랜드

3

1

2

0

3

1

+2

4

1라운드

10

이탈리아

3

1

1

1

5

4

+1

3

1라운드

11

칠레

3

0

2

1

1

2

-1

2

1라운드

12

불가리아

3

0

2

1

2

5

-3

2

1라운드

13

우루과이

3

0

1

2

1

6

-5

1

1라운드

14

호주

3

0

1

2

0

5

-5

1

1라운드

15

아이티

3

0

0

3

2

14

-12

0

1라운드

16

자이르

3

0

0

3

0

14

-14

0

1라운드

골든 볼 - 요한 크루이프 (네덜란드)

실버 볼 - 프란츠 베켄바워 (서독)

브론즈 볼 - 카지미에시 데이나 (폴란드)

득점왕 - 그제고슈 라토 (폴란드)

골든글러브(야신상) - 제프 마이어 (서독)

신인상 - 브와디스와브 즈무다 (폴란드)

페어플레이상 - 서독

9. 기타

  • 이 대회가 개최되기 2년 전에 뮌헨 올림픽 참사가 터지는 바람에 서독 정부는 월드컵 개최 1년 전부터 비상 체제로 돌입했는데,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중 때문에 결국 기관총과 셰퍼드를 몰고 온 특공대원들이 경기장 내에 상주하며 철저히 감시했다.

  • 이 대회부터는 이 사진의 트로피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으며 쥘 리메 컵을 쓰지 않는다. 쥘 리메 컵은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하자 통산 우승 3회를 달성한 기념으로 FIFA에서 브라질 축구협회에 영구소장하라고 증정했으며 그 뒤에 현재의 트로피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그 쥘 리메 컵은 도난당해 녹여져서 금괴가 되는 최후를 맞이했다.
  • 한국에서는 동양방송(TBC)에서 1974년 7월 6일부터 약 4개월에 걸쳐 결승전을 제외한 37경기를 녹화 중계했으며# 7월 8일 오후 7시 30분부터 9시 20분까지 서독과 네덜란드의 결승전을 녹화중계했다.# 당시 동양방송의 가시청권이 서울과 부산 일원 한정이어서 지방에서 불만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1. [1] 1973년에 개장하여 2001년까지 사용된 FC 샬케 04의 옛 홈구장이었던 축구장이다.
  2. [2] 1925년에 개장하여 1974년에 보수된 뒤 2002년까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가 사용하고 철거된 옛 축구장이다.
  3. [3] 불가리아의 올타임 월드컵 최고 성적은 94년 미국 월드컵 4강이다.
  4. [4] 네덜란드한테 0 : 2로 패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되자 브라질에서는 괴한들이 당시 감독이었던 마리우 자갈루 감독의 집을 습격해 난장판으로 만들었으며 당시 브라질에서 유행하던 독감의 이름을 무려 자갈로 독감이라고 명명했다! 즉, 경기에서 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독감 바이러스와 동급으로 취급해버린 것이다.
  5. [5] 그리고 44년 후 열린 대회에서 프랑스가 남미 3개국을 3전 전승으로 이긴 2번째 팀이 되었다. 다만 페루가 브라질 자리를 대신한 것만이 차이점이다.
  6. [6] 베르티 포크츠는 94년 미국 월드컵 독일 대표팀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디펜딩의 챔피언 독일을 이끌고 출전하였지만, 8강전에서 불가리아에 불의의 역습을 당해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했다. 당연히 대한민국이 독일과 2:3으로 분전하며 명승부를 이끌었던 그 당시 감독이기도 하다.
  7. [7] 요한 크루이프를 포함하여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2차 대전 서독 점령기의 경험으로 인해 서독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요한 크루이프는 결승전에서 (서독을 상징하는) 아디다스가 제작한 네덜란드 유니폼의 삼선 중 가운데 선을 지우고 출전했을 정도로 적대감을 드러냈다.
  8. [8] 두번째는 바로 개최국이자 우승국인 서독팀.
  9. [9] 다만 1954년 월드컵 우승 당시 결승전 하프타임때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했다는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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