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6M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 육·해군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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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항공대

단좌 전투기

Ki-27 97식 전투기, Ki-43 하야부사, Ki-44 쇼키, Ki-61 히엔, Ki-84 하야테, ◈나카지마 Ki-87
카와사키 Ki-88, ◈다치카와 Ki-94, ◈만슈 Ki-98, Ki-100 5식 전투기, †ⓩ타치카와 Ki-162
◈ⓩKi-200 슈스이, ◈ⓩKi-201 카류, †ⓩ카야바 Ku-4

복좌 전투기

Ki-45 토류, Ki-51 99식 습격기, Ki-102 5식 습격기

폭격기
습격기

BR-20 시코그나, Ki-21 97식 중폭격기, Ki-30 97식 경폭격기, Ki-32 98식 경폭격기,
Ki-49 돈류, Ki-67 히류

특공기

Ki-115 츠루기

해군
항공대

함재기

A 함상
전투기

A5M 96식 함상전투기, A6M 0식 함상전투기, A7M 렛푸, †A8M 리후쿠

B 함상
공격기

B5M 97식 2호 함상공격기, B5N 97식 함상공격기, B6N 텐잔, B7A 류세이

C 정찰기

C3N 97식 함상정찰기, C5M 98식 육상정찰기 C6N 사이운

D 함상
폭격기

D3A 99식 함상폭격기, D4Y 스이세이, †와쿠세이

E 수상정찰기

E7K 94식 수상정찰기, E13A 영식수상정찰기, E15K 시운, E16A 즈이운

F 수상관측기

F1M 영식수상관측기, 아이치 F1A

G 육상공격기

G3M 96식 육상공격기, G4M 1식 육상공격기, G5N 신잔, G8N 렌잔, †G10N 후가쿠

H 비행정

H6K 97식 비행정, H8K 2식 비행정, H11K 소우쿠

J 국지전투기

J1N 겟코, J2M 라이덴, ◈J4M 센덴, ◈J6K 진푸, ◈J7W 신덴, ◈ⓩJ9Y 킷카, ▼N1K-J 시덴

K 훈련기

K9W 코우요, K11W 시라기쿠, ▼A6M2-K 영식훈련용전투기, ▼M6A1-K 난잔

L 수송기

L2D, ▼H6K 97식 비행정, ▼H8K 세이쿠, ▼H11K-L 소우쿠, ▼G5N2-L 신잔 카이

M 특수공격기
MX 특수활공기

MXY-7 오카, M6A 세이란

N 수상전투기

N1K 쿄후, ▼A6M2-N 2식 수상전투기

P 폭격기

P1Y 긴가, †ⓩP3Y 텐가

Q 초계기

Q1W 토카이, †Q3W 난카이

R 육상정찰기

R2Y1 케이운, ◈ⓩR2Y2 케이운 카이, ▼J1N1-R 2식 육상정찰기

S 야간전투기

S1A 덴코, ▼J1N-S

연합군 노획 항공기

LaGG-3, I-16, F2A 버팔로, B-17, P-51 머스탱, P-40 워호크

◈ 프로토타입 / † 페이퍼 플랜 / ⓩ 제트 혹은 로켓 엔진 장착기 / ▼ 타 목적 기체를 유용함
국지전투기: 일본군이 운용했던 본토 방어 및 폭격기 요격 전용 전투기. 요격기 문서 참조.
※ 나무위키에 문서가 없거나 이 틀에 기재되지 않은 일본군의 항공병기 전체 목록은 일본의 항공병기 설계안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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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초반의 A6M2 21형. 소녀시대 앨범 자켓에 등장해 논란을 빚었던 그 사진.

중반에 등장한 A6M3 32형.

1946년 아쓰기 해군 비행장에서 폐기처분되기를 기다리는 A6M5 52형.

Japanese Imperial Navy Carrier-Borne Fighter Mitsubishi A6M[1]2 "Zeke" Type 0 fighter

三菱 零式艦上戰鬪機

"사카이씨, 다시 조국을 위해 영전을 타라면 타실건가요?"

"영전을요? 사양하겠습니다."

- 인터뷰어와 사카이 사부로[2]의 대화 중[3]

1. 제원
1.1. A6M2 21형 (A6M2b)
1.2. A6M5 52형 丙 (A6M5c)
2. 개요
3. 설계
4. 실전
4.1. 아쿠탄 제로
5. 몰락
6. 단점
6.2. 만악의 '기술적' 근원 : 저출력 엔진
6.3. 과도한 경량화의 폐단 1 : 방어력 제로! "제로식 라이터"의 전설
6.4. 과도한 경량화의 폐단 2 : 기체강도의 부실
6.5. 무장의 효율성
6.6. 존재가치가 '제로'인 무전기
6.7. 수납성 제로
6.8. 문제점이 속출하는 개량과정
6.9. 낮은 생산성
7. 장점
7.1. 정신나간 저속기동성
7.2. 길디 긴 항속거리
7.3. 우수한 지속 상승률
8. 바리에이션
8.1. A6M1
8.2. A6M2 11
8.3. A6M2 21
8.4. A6M2-N 'Rufe'
8.5. A6M3 32 'Hamp'
8.6. A6M3 22
8.7. A6M4 41
8.8. A6M5 52
8.9. A6M5c 53c
8.10. A6M7 62
8.11. A6M8 64
9.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9.1. 게임
9.2. 애니메이션 & 라이트노벨
9.3. 영화
10. 기타
11. 다듬는 과정에서 임시 갈무리

1. 제원

1.1. A6M2 21형 (A6M2b)

  • 전폭 : 12m
  • 전장 : 9.05m
  • 전고 : 3.53m
  • 주익면적 : 22.44m²
  • 자체중량 : 1,754kg
  • 전비중량 : 2,421kg
  • 익면하중 : 107.89kg/m²
  • 엔진 : 나카지마 사카에 12형 복렬 14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940마력
  • 최대속도 : 533.4km/h (고도 4,550m)
  • 최대 제한속도 : 629.7km/h[4]
  • 항속거리 : 3,350km(증조 장착시), 2,222km(표준상태)
  • 무장
    • 기수 상면에 7.7mm 97식 기총 2정 (탄약 700발)
    • 주익 양측에 20mm 99식 1호 기관포 2정[5] (탄약 60발)
    • 30/60kg 폭탄 2발 장착 가능

1.2. A6M5 52형 丙 (A6M5c)

  • 전폭 : 11.0m
  • 전장 : 9.05m
  • 전고 : 3.57m
  • 자체중량 : 1970kg
  • 전비중량 : 2955kg
  • 주익면적 : 21.338m²
  • 익면하중 : 138kg/m²
  • 엔진 : 나카지마 사카에 21/31乙/31甲형 복렬 14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1130마력
  • 최대속도 : 564.9km/h(고도 6,000m)
  • 최대 제한속도 : 667km/h[6]
  • 항속거리 : 최대출력 30분+2,560km(증조 장착시)/1,920km(표준상태)
  • 무장
    • 기수 상면에 13mm 3식 기총 1정 (탄약 230발)
    • 주익 양측에 20mm 99식 2호 기관포 4형 1정씩 (탄약 125발)
    • 주익 양측에 13mm 3식 기총 1정씩 (탄약 240발)
    • 250kg 폭탄 1발/로켓탄 장착 가능

2. 개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해군의 주력 함상전투기. 96식 함상전투기의 차기 전투기로서 미츠비시社가 설계한 기체로, 날렵한 기동성과 긴 항속거리가 특징이다. 중일전쟁당시 국부군의 공군기와의 교전 경험 및 전훈을 바탕으로 처음으로 함재기에서 공군기와 대등한 성능을 요구했다.

일본에서는 아시아의 신비, 일본 항공기술의 결정체라고 불렀지만 일본군 무기들이 그렇듯이 현실은 시궁창. 애당초 민간 기술이 뒤떨어졌기에 일본의 기술력은 동맹국인 독일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이탈리아에게도 뒤쳐지는 편이었다. 다만 일본은 엊그제까지 사무라이들이 칼 들고 기껏해야 조총 들고 싸우던 나라임을 고려하면 아시아의 신비가 맞긴 하다.

한 가지 예로 제로센의 프로펠러는 미국제 프로펠러를 스미토모 사에서 라이센스 생산했다가 전쟁이 시작되자 그걸 복제해서 썼는데, 전후에 일본 정부가 그 제조사인 해밀턴 사에 라이센스비를 지급하겠다니까 "그럼 1달러로 합시다."라는 회답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쓸모없게 된 것이라서 1달러로 했다는 것보다는 적국의 무기 개발에 협력했다고 비난받을까봐 명목상으로 받았다고 보면 된다. 어쨌든 나중에 제로센을 노획한 미군은 이걸보고 "뭐야. 프로펠러가 해밀턴 사의 카피판이잖아??"하고 당황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크게 나누어 초기생산형인 11형과 이후 본격적으로 양산된 21, 32, 52형의 네 가지 변형이 있고 이 중 태평양 전쟁에 주력기로 투입된 기종이 21형.

중국 전선에 11형이 투입되어 첫 실전을 거쳤고 개전 당시에는 중일전쟁에서의 실전 데이터와 함께 함재기에 맞게 개수한 21형이 주력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엔진을 강화시킨 32형은 과도기적 기체였으며 이후 개량된 52형은 무장과 방호력을 강화시켰으나 설계의 한계로 결국 동네북이 되고 말았다.

정식 명칭은 영식[7]함상전투기(零式艦上戦闘機/れいしきかんじょうせんとうき). 제로센(zero-sen)이라는 것은 이것을 줄여서 부르던 영전(零戰/れいせん/ぜろせん)의 일본어 발음으로 보통은 이 이름이 대외적으로 이 기체의 가장 유명한 명칭이다. 일본에서는 레이센, 제로센 등으로 불렀지만 현재는 제로센이라는 명칭이 굳어졌다.(현재의 일본은 '零'자를 '제로'로 읽는 경우가 많다)

연합국 코드명은 "지크(Zeke)". 이 기체를 상대했던 영미권 파일럿들은 '0식'에서 착안하여 제로센, 제로(파이터)라고 불렀다.

원래는 항공모함 운용을 전제로 개발되었으나 일본이 여러 섬을 점령하면서 섬에 건설한 육상기지에서도 많이 운용되었다. 유명한 제로센 에이스 사카이 사부로가 대표적인 육상기지 요원이었다. 또한 바퀴 대신에 플로트 장비를 한 수상기 버전(2식 수상전투기)도 존재한다.

후기의 몰락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아시아인들을 바보 취급했던 유럽인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준 측면도 있다. 대전 초기에는 거의 UFO 수준 취급을 받아 미 해군 항공대 조종사들이 아예 공포에 질렸을 정도였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수많은 베테랑 제로센 파일럿을 고기밥으로 만든 기동전법인 타치 위브를 고안한 와일드캣 에이스인 타치 대령이란 인물이 있었다. 미드웨이 당시 소령, 이후 2차대전의 전공을 인정받아 해군 대장까지 진급했는데 이 사람이 위에 언급했던 보고서에서 "제로센은 외계인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만든 전투기였다."고 보고했을 정도.

그리고 제로센은 강력했던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다는 점과 남방사령부의 유능한 에이스 파일럿들이 탔다는 이유로 인하여 전후 일본 사회의 자존심 회복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3. 설계

일본 해군은 기존에 개발된 A5M의 후계기가 될 차기 함상전투기를 1937년 5월 나카지마社와 미쓰비시社에 각각 수주했으며, A5M의 중국 전선에서의 전훈을 바탕으로, 10월에 상세한 요구조건을 보냈다.

속도는 600 km/h 이상, 상승은 3,000m까지 3.5분내로 도달할 것,

착탈식 연료탱크를 장착한 상태에서 전투속도로 2시간, 순항속도로 6~8시간동안 비행이 가능할것

무장은 20미리 기관포 2정과 7.7mm 기관총 2정. 또한 두개의 30kg 또는 60kg 폭탄을 장착할수 있어야 함.

장거리 비행을 위한 무선방향탐지기와 함께 무전기가 설치될 공간이 있어야 함.

기동성은 A5M에 뒤쳐져선 안되며, 공모운용을 위해 익면적은 12m를 넘겨선 안 됨.

거기다 이 모든 요구조건들을 1000마력에 약간 못 미치는 엔진으로 달성해내야만 했다. 이는 당시 일본의 기술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스펙을 요구한것이고 후술할 무리수를 두게 되는 원인이 된다.

당시 기술로는 도달하기 불가능해보였던 이 요구조건에 나카지마社의 설계진들은 고심 끝에 입찰을 포기했으나, 미쓰비시社의 수석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는 이 말도 안되는 요구조건을 기체를 최대한 경량화시킨다면 충족시킬수 있을 거라 생각해 각종 경량화 방법을 도입해서 설계해냈다.

기체의 대부분을 당시 일본내에서 일급 기밀로 취급되던 초초두랄루민(ESD)으로 제작했고 [8] 그당시 넣는게 일반적이던 파일럿에 대한 방탄판이나 엔진같은 기체의 바이탈파트에 대한 장갑을 생략했으며 연료탱크에도 방루탱크를 장착하지 않았는데,[9] 이것들이 이후 제로를 2차대전에서 제로식 라이터, 2차대전 최고의 선회력 [10] 2차대전 최장 항속거리의 단좌전투기라는 세 가지 타이틀을 거머쥐게 해 주었다.

날개 내부의 부재들로 지지되는 단엽 날개구조, 접이식 랜딩기어, 밀폐형 콕핏을 채택한 제로센은 당시 시대에 맞는 현대적인 기체였다.[11] 또한 플랩을 통해 저속에서도 양력을 받을수 있기에 안정적이었으며 기체 자체의 가벼운 무게와 플랩이 시너지를 이뤄 110 km/h에 달하는 굉장히 낮은 실속 속도와 익면하중이 만들어낸 굉장한 저속 기동성을 통해 대전 초기 연합국 전투기들의 선회반경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충격에 빠트렸다.

저 요구사항중 '기동성은 A5M에 뒤쳐져선 안된다'는 부분을 주목해야하는데, 이는 선회전 위주의 기동성을 중시한 전형적인 1차대전식 전투기라는 말이기 때문. 사이가 안좋은 육군도 1차대전식 전술로 사람들을 갈아넣더니만… 원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기술상의 문제로 나무로 만든 뼈대위에 천을 씌운 형태로 제작되었기에[12] 기체 강도도 모자란데다 엔진 출력도 모자라서 충분한 속도와 상승력을 확보할 수 없었기에 저속 선회력이 중시됐었다. 그렇지만 1차 세계대전 후 기술이 발달하면서 고출력의 엔진과, 비행기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경합금이 등장하며 속도와 상승력의 중요성이 높아졌는데 이걸 놓친(혹은 무시한) 설계의 결과가 제로센이었다.[13]

4. 실전

막 출고된 제로센 초기형들은 1940년 7월부터 차츰 중국전선에 투입되었는데, 1940년 9월 13일 신도 사부로 중위 휘하 13기의 제로센이 중국 공군 소속의 27기의 소련제 I-15I-16들을 손실없이 전기 격추해내며 본격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1년 후 제로를 재배치할때까지 제로센은 99기에서 266기 사이의 중국군 전투기를 격추시켰다고 한다.[14]

이후 중일전쟁의 데이터를 통해 함재기로 개량된 제로센은 진주만 공격과 함께 태평양전쟁이 개전하면서 본격적으로 연합군과 겨루게 된다.

개전 초기 이렇다 할 숙련된 조종사가 없던 미군을 상대로 중일전쟁을 거치며 베테랑이 된 일본군 파일럿들은 태평양개전이 발발하고 나서, 동남아시아 전선 등에서 여전히 구형화된 F2A 버팔로[15] 고공성능에 문제가 많았던 P-40 워호크, P-39 에어라코브라 등의 전투기가 주력인데다 미숙한 파일럿들이 조종하는 초기 연합군 전투기을 학살, 연합군을 제로센 쇼크에 빠뜨렸다. 나아가 부랴부랴 F2A 버팔로를 교체해 투입된 F4F 와일드캣조차 초반엔 제로센을 상대로 상당한 고전을 해서[16] 연합군의 충격은 쉽게 가실 수 없었다.

당시 일본해군의 주력 전투기인 제로와 미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F4F 와일드캣을 비교한 미군측 보고서를 인용해보자면 제로는 1000ft 이상의 모든 고도에서 F4F-4에 비해 속도와 상승률, 가속도, 실용작전고도와 항속거리에서 모두 우위에 있었고 해수면 고도에서 일반 과급 상태의 F4F-4와 비교할때 두 기체의 수평속도는 동일했으며 두 기체의 일반 강하성능은 비슷했다. 즉 대전 초기 제로센은 동시기에 배치된 F4F에 대해 비행성능 대부분의 항목에서 확실하게 앞서 있었다.

그러나 전투 외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이 우세는 일방적이 아니게 된다. 마이너한 단점으로는, 이를테면 제로센의 경우 강하를 위해 기수를 숙이면 엔진에 컷아웃 현상이 발생하는 탓에 일반 강하에선 약간 늦게 가속이 붙는 약점이 있었다.[17]

좀 더 큰 단점으로 대표적인 것은 "붐 앤 줌" 기동의 핵심이 되는 급강하 속도에서의 열세. 제로센은 기체강도의 부족으로 F4F등에 비해 적잖이 느린 급강하 속도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제로센의 급강하 제한 속도는 21형의 경우 629km/h인데 비해[18], F4F 와일드 캣의 급강하 속도는 772km/h.#. 32형 제로센의 급강하 속도 역시 650km/h 정도가 한계였고 기체강도가 보강된 후기형에서도 740km/h 정도까지 따라잡는데 그쳤다.[19] [20] 하지만 이미 그땐 태평양 상공에는 F6F 헬캣이나 F4U 콜세어가 설치고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또한 에일러론 등의 문제 때문에, 저속에서의 뛰어난 기동성에 비해 대체로 300km/h 이상의 고속에서는 롤 성능이 제약되었고[21], 특히 롤성능은 대체로 250km/h 정도를 경계로 급격히 떨어졌다.[22]

아무튼 당시 처음 제로센과 맞닥뜨린 미군이 받은 충격은 장난이 아니여서 엔진 출력 1000마력의 제로센을 보고서 '기어코 JAP 놈들이 2000마력의 전투기를 만들어버렸다.'라고 오해를 했을 정도. 물론, 그 기동력의 실체는 엔진 출력이 아닌 지나친 경량화였고, 결과적으로 미군은 이 오해 덕분에 전투기 엔진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일본과의 기술력 차이를 넘사벽으로 벌려버리게 되지만…

심지어 1941년 아프리카 전선에서 차출해 태평양전선에 배치한 스핏파이어마저 압도적 교환비[23]로 손쉽게 격추시키며 대전 초기 연합군 파일럿들의 악몽이 됐었다. 다만 후술할 내용을 감안하면 일본측이 기종을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가령 일본군은 페어리 풀머같은 복좌전투기를 격추시킨 것도 스핏파이어를 격추시켰다고 보고하기도 했을 정도.

그러나 제로센과 스핏파이어의 대결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영문위키에는 스핏파이어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최초로 배치된 것은 1942년 인도에 배치된 사진정찰기형 PR IV 2대라고 등재되어 있다. # 즉 1941년에는, 공식적으로 스핏파이어와 제로센의 교전은 없었을 수 있다는 것.

태평양 전쟁 초기 동남아시아의 영국군의 주력 항공기는 F2A 버팔로같은 더 구형 전투기들. 당시 영국은 영국 본토항공전과 북아프리카 전투에 사력을 다 하던 상태라 '그 흔한' 호커 허리케인 조차도 1942년에나 태평양 전역에 배치된다.[24][25]

스핏파이어와 제로센이 공식적으로 맞붙은 전투는 1942년 일본군의 오스트레일리아 다윈공습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에 파견된 스핏파이어 Mk.5c와의 교전. 1942년 일본군이 다윈 공습을 시작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서북부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에 지원을 요청, 당시 영국군에 파견되어있던 자국 항공요원들의 귀환과 전투기 지원을 요청한다. 그리고 1943년 2월 스핏파이어 Mk.5c 100대가 배치되어 다윈 상공 방어전에 나선다.

전투기간 전체의 손실율 자체로는 분명 제로센이 앞섰다. 오스트레일리아 군은 9차례의 전투에서 38기를 손실하며 일본기 5기를 격추하는 졸전을 치렀다. 그러나 이 전과를 가지고 제로센이 스핏파이어 상대로 우위였다고 하는건 무리다.

첫번째로, 당시 제로센과 교전한 스핏파이어는 북아프리카에서 굴리다가 슬슬 교체를 준비중이었던 Spitfire Mk.VC Trop이었다. 이 버전은 사막용으로 개수하면서 사막의 모래먼지로부터 엔진을 보호하기 위해 "보크스 필터"를 장착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보크스 필터는 저항증가 등으로 비행성능과 연비를 크게 감소시키는 단점이 있었다. 속도만 따져도 장착하지 않은 기체에 비해 시속 32km까지 더 느려진다고. 하지만 이 필터를 착탈하려면 엔진 하부 카울링을 비롯, 기수 하부를 거의 완전히 교체하다시피 해야했다. 결국 오스트레일리아군은 다급한 상황에서 보크스 필터가 장착된 기체들을 그대로 전투에 투입한다. [26]

보크스 필터가 장착된 스핏파이어 Mk. Vc Trop

보크스 필터가 장착된 사막형 기수와 일반형 기수의 구조

두번째로, 이 시기 스핏파이어를 운용한 조종사 등 병력은 북아프리카에서 P-40등을 이용 대지 공격 임무를 주로 맡던 지휘관과 조종사들로 스핏파이어 운용은 물론 공대공 전투 경험도 거의 없던 병력이었다.

세번째로, 안 그래도 스핏파이어 운용 경험이 없는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에 의해 운용되는 와중에 업친데 덮친 격으로 이 전투는 스핏파이어를 최초로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운용하는 전투로서 여러 문제를 빚었다. 특히 유럽이나 서아프리카에 그랬듯 많은 조종사들이 발진 직후 저공에서 고공으로 급상승을 시도했는데 훨씬 고온다습한 태평양 전장에서 기체를 습하고 더운 저공에서 저온의 고공으로 급상승시키면 엔진 냉각계통을 비롯한 기체의 여러부분이 얼어붙어 전투불능 상태에 빠지곤 했다. 특히 기관포가 얼어서 발사가 안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급하게 전투기는 공급되었지만 교환 부품이 모자라 수리조차 제대로 받기 어려워 엔진트러블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일련의 항공전에서 공중전에서 직접 격추된 스핏파이어는 최대 7기로 전투기간 동안 손실된 스핏파이어의 70%는 엔진고장에 의한 손실이었다.출처 나아가 국지방공 전투기 성격이 강한 스핏파이어에 보크스필터의 악영향 덕분에 연비가 더 떨어져 연료부족으로 추락하거나 불시착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즉 이 전투기간 중 스핏파이어 손실 대부분은 사실상 비전투 손실인 셈이었다.#]초짜들이 베테랑 상태로 1:1.4의 성과면 나름 선전한 것 같다.

"영국군 조종사들은 독일과 이탈리아 전투기를 효과적으로 상대하는 방법을 완벽히 훈련받아 왔지만 그것은 곡예비행을 벌이는 일본군들을 상대론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 클레어 리 센놀트 중장. 플라잉 타이거즈. [27]

하지만 제로센의 날렵한 기동성은 충분히 위협적인 것이 사실이었고 당시 태평양 전선에 투입될 수 있던 연합군 전투기 중 어떤 기종도, 설령 정비상태나 승무원의 숙련도가 양호한 상태였다 하더라도 전통적인 방식대로 제로센과 선회전을 하며 교전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구형화된 저성능의 기체나 정비불량의 기체가 아니라 고성능의 P-38이나 심지어 F4U 콜세어 초기형으로 출격한 미 육군항공대와 해병대 조종사들조차 잘못된 전술 선택으로 선회전을 시도한 경우 거의 예외없이 졸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연합군 조종사들은 제로센에 대처하기 위해 전략을 수립한다.

충분한 고도를 확보한 상태에서 급강하해 속도를 얻고 잠깐의 사격기회동안 사격후 다시 급상승 혹은 그대로 이탈하는, "붐 앤 줌" 전술이 도입된 것이다.[28] "붐 앤 줌" 전술의 채택에는 전쟁 초기 동남아시아에서 제로센과의 전투를 치른 플라잉 타이거즈의 경험을 바탕한 클레어 센놀트 소장의 보고서가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미 해군 항모 요크타운의 와일드캣 비행대대장인 존 태치 소령이 고안한 "타치 위브"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타치 위브는 2기 1편대로 두 대가 나란히 날면서, 한쪽이 제로에게 꼬리를 잡힐 경우 서로를 향해 교차 선회비행하며 동료기를 추격하는 제로센을 사각에서 공격하는 전술이다. 또한 규모를 늘려 2기 단위의 두 편대로 실행할 수도 있다. 이 전술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처음 선보이며 제로센 10기를 격추하며 와일드캣은 4기 밖에 잃지 않는 전과를 거두는 데 기여한다. 이후 미 해군 조종사들의 주요 대 제로센 전술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29]

이러한 대응전술이 자리잡기 시작하며, 제로의 악명도 점차 꺾이기 시작했다. [30]

이러한 전술변화의 결과가 특히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이 결과가 '취약한 방어력, 저효율의 무장, 쓸모없는 수준의 통신장비, 저속에선 우수하지만 고속에선 저하되는 기동성'이라는 제로센의 약점과 '견고한 기체구조와 충실한 방어력, 효율적인 화력구성, 조직적 전투를 가능케 하는 신뢰성있는 통신장비, 우세한 고속 기동성'이라는 F4F 와일드캣의 상대적 강점을 가장 극명하게 반영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쟁 초반까지는 적기를 1:1의 선회전투에 끌어들이기만 해도 제로센은 무적에 가까웠고 적어도 저속의 선회전에서는 F6F 헬캣이나 F4U 콜세어가 등장한 후에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제로센의 선회성능이 본질적으로 저속영역에서만 뛰어난 것임에도, 선회전이 필살병기가 되는 이유는, 애초 지속 선회라는 기동 자체가 지속적으로 고도와 속도를 잃게 만드는 기동이기 때문이다. 즉 선회를 계속하면 항공기는 느려지며, 동시에 하강하게 된다. 꼬리를 잡혀 격추당하지 않는다 해도 어느 시점에선 다시 고도를 올려야 하는데, 상승은 급속하게 속도를 잃게 만드는 기동이기도 하다. 이미 속도를 많이 상실한 상태라는 걸 생각하면 까딱하면 스톨에 빠지기 좋은 상황이다. 가벼운 기체에 큰 날개를 지녀 뛰어난 저속선회력과 더불어 지속 상승력이 우수한 제로센이 선회전의 강자가 되는 이유이다. 실제로 태평양 전쟁 초기, 경험이 미숙한 연합군 조종사들은 단지 저속에서의 기동성의 열세 뿐 아니라, 그 선회전 중에 상승하는 제로센을 뒤쫒다 스톨에 빠져 자멸하는 일도 적잖았고, 이러한 상황을 유도하는 '에너지 트랩'은 특히 제로센을 모는 숙련된 일본군 조종사들의 주요 전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만일 적기가 이런 선회 교전상황에 말려드는 걸 회피하고, 급강하로 가속하여 빠져나가버리면 제로센은 쫒아갈 방법이 없다. 같이 급강하해서 따라가려다간 공중분해될 수도 있으니까... 이는 실제로 제로센을 몰던 일본군 조종사들에게도 꽤 심리적 스트레스를 주었고, 과감한 전투기동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때문에 아예 미군의 제로센 대응 교본에 조차 대놓고 '기체강도와 가속에 대한 심리적 영향으로 제약받는 고속기동으로 끌어들여라.'라고 써놓고 있다.#[31]

하지만 새로운 전술로 전과가 향상되기는 했어도, 제로센이 미해군이 사용하던 와일드캣에 비해 비행성능에서 우위에 있었던 점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때문에 미드웨이에서 제로센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음에도 연합군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모는 와일드 캣, 특히 F4F-4에 심각한 불만을 표출했으며 "엿같은 점"들을 보고했다.

USS 요크타운의 함장의 F4F-4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전투기 조종사들은 F4F-4의 기동성과 한결같은 화력에 대해 대해 매우 실망하고 있습니다. 제로센은 손쉽게 F4F-3의 선회각과 상승속도를 압도했고, 새로 개량된 F4F-4를 몰아본 대다수의 전투기 파일럿들이 F4F-4가 F4F-3보다 훨씬 굼뜨고 느리다는 의견을 표시했습니다. 또한 F4F-4에 기관총 6정을 장착한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기관총 수가 늘어난만큼 기관총 하나하나의 장탄수가 감소되면서 호위기를 상대하다 일본군 급강하폭격기가 내습할 때 쯤이면 아군 전투기의 대부분이 탄약이 고갈되어 버렸습니다. 참고로 이는 경험 많은 파일럿들이 전투 후 보고한 것이며, 초보 파일럿들의 탄약낭비가 아닙니다.[32]

미드웨이 해전 이후 1달 가량이 지난 1942년 7월 10일, 알류산 열도의 아쿠탄 섬에서 제로센이 온전한 상태로 노획되면서 그동안 미지에 싸여 있었던 제로의 기동성의 실체가 비로소 베일을 벗게 되었고 이후 미군측은 각 기체별로 제로에 대한 상대지침을 파일럿들에게 하달했다.

물론 이 부분을 과장해서는 안 될 것은 이를테면 타치 위브 같은 성공적인 대응 전술이 등장한 것은 이미 미드웨이 해전시기. 즉 제로센을 노획하기 이전이었기 때문. 실제로 이 시기에도 미 해군은 악전고투이기는 했지만 격추비율로는 살짝 우세한 전투를 했었다. 그러나 어쨌든 상대 전투기를 실제로 시험해 본 결과 대응전술이 확고하게 자리잡히게 된 것은 분명하다.[33][34]

아무튼, 미군이 초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제로센에 대해 실상을 인식하고 대응법을 개발하며 전세는 역전되어 결국 교전비를 따져보면 제로센:와일드캣의 교전비는 1.5:1로 오히려 와일드캣 1대당 제로센 1.5대가 격추됐다. 물론 이 교환비는 전쟁 전 기간의 통계이기는 하지만, 1943년 중반이면 미 해군의 일선 항모 항공대 대부분의 주력 전투기는 와일드캣이 아니라 F6F 헬캣으로 교체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교전비의 상당부분이 주로 1942년-43년 초, 즉 산호해 해전에서 과달카날 전투까지의 전투결과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제로센의 전성기로 인식되는 기간이자 또한 와일드캣이 미 해군 해병대의 주력 전투기로 가장 크게 활동했던, 산호해 해전에서 과달카날 전투까지 1942년 5월에서 11월 까지의 기간 동안의 전적을 살펴보면 산호해 해전과 미드웨이 해전까지 와일드캣과 제로센 사이의 공중전에서 손실은 제로센 14 : 와일드캣 10, 과달카날 전투에선 일본 라바울 항공대와 미 해병 1항공대 (캑터스 비행단) 사이의 공중전에서는 각각 제로센 72기와 와일드캣 70기를 손실했고 함재기간 공중전에서는 제로센 43기 손실에 대해 와일드캣 31기 손실로 1942년 5월에서 11월 사이의 제로센과 와일드캣의 공중전에서 제로센 129기가 손실된 것에 비해 와일드캣은 총 111기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35]

즉 제로센이 가장 눈부시게 활약했다는 대전 초기조차도 따지고 보면 실제 전투에서는 전쟁 초기 제로센이 잠시 악명을 떨쳤지만 그 우세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역전되었던 것. 결국 제로센 vs 와일드캣 교전의 결과는 전쟁 전 기간의 전투손실비 1.5:1, 1942년의 주요 회전에선 1.16:1 로 결국 교전비는 와일드캣이 좀 더 우세했다.

심지어 대전 초기 와일드캣의 조종사들은 실전경험은 커녕 일부는 전투기 자체를 처음 조종하는 초보 수준의 조종사인데 반해, 제로센 조종사들은 1937년 중일 전쟁부터 전투기를 몰고 실전을 치뤄온 프로중의 프로였는데도 이런 비율이 나왔다! 사카이 사부로의 자서전에는 제로센과 3대1로 맞짱떠서 1대를 격추시키는 제임스 서덜랜드 소령과의 공중전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누적된 데미지 때문에 결국 서덜랜드가 패배하지만 사카이 사부로의 제로센과 선회전으로 대등하게 싸우는 모습은 알려진 것처럼 선회전에서 압도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어차피 선회전도 넓은 의미로 볼 때 에너지 전투이다. 적 기체가 깊은 각도로 선회를 한다고 쳐도 롤 기동을 이용해 거리를 벌리면서 쫓아가면 선회 반경이 넓은 전투기도 호각으로 싸울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제로센이 고속에선 선회능력이 크게 감소된다는 특성을 이해하고 고속기동으로 끌어들이는 전술 등등이 개발된 것도 작용할 것이다. [36]

그동안 많이 퍼져있던 제로센의 일방적 우세라는 세간의 속설에 비하면 거의 정반대에 가까운 이러한 실제 전과를 따져본다면, 실상 (함상)전투기로서 제로센과 와일드캣 두 기종은 어느 한 쪽이 특별히 우세했다보다는 서로 장단점이 극과 극에 가까울 만큼 매우 달랐던 기체였을 뿐이라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두 전투기 사이의 대결을 쉽게 정리한다면 이런 식이다. 즉, 제로센의 입장에선 상대를 '조준선'에 올려놓을 기회를 잡는 것은 제로센 쪽이 좀 더 쉬웠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와일드캣이 기총 몇 방에 떨어져 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함정이었고, 반대로 와일드캣의 입장에서 제로센이란 일단 조준선에 올리기만 하면 그대로 불덩이를 만들 수 있었지만 조준선에 올려놓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상대였다는 식인 것이다.

제로센이 손실비로는 결국 손해를 본 기대 이하의 전과를 기록하게 만든 마지막 변수는, 아마도 미군이 타치 위브를 비롯한 유기적 팀플레이를 구사할 수 있었던데 반해 제로센은 존재가치 제로의 잉여스런 무전기 덕분에 상대의 전술적 발전에 상응하는 제대로 된 조직적 전투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에서 연유한 전술적 열세의 결과였을 것이다. 베테랑들의 각개전투가 초짜들의 팀웍에 막힌 것.

서로 장단점이 매우 다른 기체였던 제로센과 와일드캣의 대결에서, 비행성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로센이 열세에 처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는, 제로센의 근본적인 한계, 즉 애초 제한된 기술적 조건에서 오직 극단적인 경량화에 의해 비행성능을 향상시킨다는 설계사상 자체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제로센에 대한 와일드캣 조종사들의 대응 매뉴얼은 다섯 가지 상대적 장점에서 나온 것이다. 1. 더 견고한 기체구조와 방어력, 2. 우세한 급강하 성능, 3. 고속영역에서의 롤, 선회 등의 우세, 4. 효율적인 화력구성, 5. 조직적 전투능력을 크게 향상시키는 신뢰성있는 무전기. 즉 제로센의 우세한 상승력에 의해 기선을 제압당하고 불리한 전투상황에 처해도, 와일드캣은 불리한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주된 이점은 급강하 속도와 부수적으론 롤 성능이었지만 당연히 제로센의 주된 대 전투기용 무장인 7.7mm급 기총에 몇발 피탄당한다고 곧장 추락하거나 조종사가 사상당하는 걸 막을 수 있는 방어력 역시 여기에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무선통신상의 강점은 애초 동료가 불리한 상황에 처하는 걸 미리 알려줄 수도 있고, 불리한 상황에 처한 기체가 빠져나갈 때 무선으로 주위의 동료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이번엔 추격하던 제로센이 때마침 적절한 위치에 있던 와일드캣에게 사각에서 공격당할 수 있다. 이런 상성의 조합을 의식적인 전술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타치 위브이다. 이 전술은 애초 와일드캣의 우세한 맷집과 화력, 통신능력에 기반한다. 물론 수틀릴 때 빠져나갈 수 있는 급강하 능력도 포함해서.

이에 비해 제로센이 택할 수 있는 수단은 의외로 제약된다. 분명 뛰어난 상승력은 제로센에게 전투의 주도권을 지닐 기회를 더 준다. 그러나 이를테면 동세대의 Bf109나 스핏트파이어와 비교한다면, 이 기체들은 우세한 고도를 바탕으로 적기에 일격을 가한 후, 적기가 회피하거나, 급강하 가속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해도 마찬가지 높은 급강하 성능을 발휘하며 추격할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속도를 이용해 이탈,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고도를 회복하고 다시 일격을 가할 기회를 노릴 수 있다. 하지만 제로센은 주도권을 쥐고 일격을 가해도, 그 일격에 상대가 격추되지 않고 빠져나가면, 전투의 주도권을 지속하는 방법은 상대를 저속선회전에 끌어들이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2차 대전기의 전투기들 중 제로센처럼 선회전에 목숨을 거는 기체가 거의 드물었던 이유는, 선회전이 가장 에너지 손실이 큰 전법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기의 전투기와 비교하면 1차 세계대전기의 목재복엽기들은 기체가 낼 수 있는 속도와 기체의 중량에 의해 지닐 수 있는 총량적인 에너지는 얼마 없는 대신 양력과 저속 비행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물론 당연히 더 높은 고도를 차지하는 것의 중요성은 1차 세계대전에서도 강조된 사항이지만 한번 잃은 고도를 회복하는 것에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고도의 우위를 통한 주도권 확보 - 선제 공격 - 선회전이라는 루틴을 피하기 어렵다. 사실 이미 1차 세계대전 시기 에이스들에 의해 초기적인 형태의 '붐 앤 줌' 전술교리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까지도 한동안 선회기동력을 중시한 전투기 설계가 이어진 이유이다.

물론 2차 세계대전기의 전투기들 역시 레시프로기인 이상 현대의 제트전투기들과 같은 수직기동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2차 대전시기의 전금속제 단엽의 고속기들은 적어도 고도-속도-고도라는 방식으로 운동 에너지를 보존해가며 전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일격이탈, 붐 앤 줌 등 2차 세계대전부터 일반화된 에너지파이팅 전술은 모두 여기에 기초한다. 이는 한 번 주도권을 장악하면 공격이든 퇴피이든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번의 공격이후에도 주도권을 지속할 수 있다. 또한 여전히 추력만으로 빠르게 고도회복을 할 수 없는 레시프로기로서는 고도를 회복하기 위한 지속상승이나 속도를 회복하기 위한 직선비행 같은 전술적으로 약점이 많은 기동형태에 덜 의존할 수 있다. 반면 에너지 손실이 큰 선회전에 들어가면 다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전술적으로 불리한 지속상승이나 직선비행 등에 더 많이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느린 기동이 될 수밖에 없는 지속상승을 하고 있는데 교전거리 내에, 특히 같거나 더 높은 고도에 적기가 있었다면? 날렵한 기체와 그걸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뛰어난 조종사라면 어찌어찌 공격을 회피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전투의 주도권이 상대에 넘어가 버리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진짜로 뛰어난 조종사라면 애초 이런 상황 자체를 당하지 않도록 전투를 이끌겠지만. 하지만 미숙한 조종사일수록 선회과정에서 잃은 고도와 속도를 회복하기 위해 무턱대고 상승[37]이나 직선비행을 하다 격추당하거나, 반대로 에너지 손실을 제때 회복하지 못해 실속하거나 심지어 저공에선 지면에 격돌해 추락해 버리는 경우조차 발생한다.

분명 제로센의 우세한 선회능력과 확실한 지속상승력과 낮은 실속속도 거기에 미군 조종사들의 미숙함이 겹쳐, 전쟁 초반 일본군 조종사들은 선회격투전에서 우위를 점했을 뿐 아니라 제로센의 우세한 지속상승력으로 적기를 스톨에 빠지게 유도하는 '에너지트랩' 전술 등을 통해서도 이득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선회전에 말려들어준다는 걸 전제로 성립하는 전술이다.

그러나 상대가 최초의 일격을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급강하 혹은 급강하-롤기동 등을 이용 선회전으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를 회피하고 벗어나 버린다면? 급강하 속도가 낮고 따라서 급강하 가속으로 얻는 에너지를 활용한 줌 상승에서도 상대적으로 효율이 낮은 제로센으로선, 전투의 주도권을 지속하기엔 애로사항이 꽃피며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 된다.

결국 제로센의 장단점을 확인한 후 미군의 전술교리는 당연히 붐 앤 줌의 일격이탈을 중심으로 변화했고, 선회전 등에 말려들 것 같으면 곧장 교전을 회피하고 이탈하라는 것이 공식 매뉴얼이 되었다. 물론 그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교전을 회피해 버리면 적기는 누가 격추시키나? 그러나 이런 의문 자체가 사실은 "제로센의 입장이다." 그리고 답은 "동료가"이다. 즉 미군은 1:1의 전투에선 유리할 땐 공격하고 불리할 땐 회피하며 나아가 유기적 협동과 조직적 전술을 통해 다수 대 다수의 교전에서 발생하는 기회들을 적극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제로센과 일본군 조종사들은 1:1의 전투[38], 그것도 저속선회전까지 적을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왜 2차 대전 초기 미군 파일럿들은 제로와의 선회전에 쉽게 말려들어 제로센의 밥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실전을 치르기 전, 훈련받은 기본 전술은 1차 대전시기 공중전의 경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특히 그 초반은 전간기에 눈부시게 발전한 항공기 성능이 본격적으로 공중전 교리에 반영되던 시점이다. 때문에 루프트바페와 일본군이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을 통해 2차 대전 직전 2차 대전 초기급 전투기를 이용한 공중전을 경험했다는 사실은 유럽과 태평양에서의 서전의 항공우세에 그들이 운용한 기체의 성능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미 1930년대 초중반부터 전운이 감돌며 무기와 전술을 경쟁적으로 연구하고 있던 유럽과 달리 대서양 너머 미국에선 상황을 추상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39] 이는 태평양은 물론 유럽전역에서도 미군이 초기에 졸전을 면치 못했고, 그 핵심이 전술적 미숙함에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옅볼 수 있다. 일례로 2차대전 시기 미 육군의 유럽전역 첫 데뷔전이던 "카세린 계곡 전투"를 떠올려 보라. 2차 세계대전을 맞이한 시점에서 미군의 전술적 준비상태는 그 정도였다... 항공전이라고 달랐을까?[40] 사실 미군이 전간기 동안 그나마 연구해 놓은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전략폭격의 효용이다. 그래서 미군은 4발의 장거리 중폭격기를 개발하고, 노던 조준경을 비롯 고고도 정밀폭격을 위한 기술을 축적했다. 그러나 실전에서 얻은 첫 결과란 독일을 상대로 폭격기만을 동원한 무리한 주간폭격으로 무수한 승무원들을 희생시키는 것 아니었던가.[41] 심지어 태평양 전쟁의 이정표라고 말해지는 미드웨이 해전에서조차 엉성한 전술과 낡은 기체 그리고 엉터리 어뢰의 3중 막장으로 거의 전멸하다시피한 TBD 데버스테이터 부대를 떠올려 보라. 셀프 데버스테이트... 그런 미군이 서전에서 1차 대전식 공중전에 집착하다 쓸데 없는 피해를 당했다는 것은 많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성능적, 전술적 상성의 맞물림 속에서 펼쳐진 태평양 전쟁 초반 제로센과 와일드캣의 전투에서의 결과는 결국 대부분의 경우 그냥 해당 전투상황에서 더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기는 상당히 평범한 수준의 결과를 기록했다.# 서로의 장단점이 맞물리며[42] 결국 전체적인 '전투능력치'는 엇비슷 했으니 쪽수 많은 쪽이 이기는 건 당연.

결국 연합군이 적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는 전술의 발전을 이룸과 동시에 제로센의 영광은 저물기 시작한다.

일본이 아직 전략적 주도권을 쥐고있고, 태평양 전역에 더 많은 항모와 함재기를 투입할 수 있었으며, 숙련된 조종사들 또한 다수 확보 되어있던 비교적 양호한 상태의 전쟁의 초반동안 조차도 제로센은 서전의 깜짝 승리를 빼고는 아직 미군의 주력이 와일드캣이 시기에 이미 호각열세로 밀리기 시작한다.

산호해, 미드웨이 그리고 특히 과달카날의 혈전을 거치며 일본 해군 항공대는 짧은 시간에 회복될 수 없는 손실을 입고, 일본해군의 제공권, 제해권 장악은 실패한다. 다수의 항공기를 상실한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태평양 전쟁 이전부터 조금씩 축적된 숙련된 항공요원 다수를 잃는다. 미군이 입은 피해는 항공기 손실도 일본보다 적었고 특히 항공요원의 상실은 두드러지게 적었다. 게다가 미국의 막강한 공업력과 훨씬 풍부한 인적자원은 전쟁 초반의 피해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회복할 수 있었다.

서전의 충격에서 회복된 미국이 전시생산체제 전환을 완료하며, 새 항공모함과 거기에 탑재할 신형 전투기를 태평양 전선으로 쏟아내기 시작한다.

홀로 살아남아 '엔터프라이즈 VS 일본'의 사투를 벌이던 엔터프라이즈와 '캑터스 항공대'의 와일드캣들의 자리에, 이제 풀빵 찍듯 취역하는 에식스급 항공모함과 그 격납고를 채운 F6F 헬캣들이, 해병대의 지상기지엔 F4U 콜세어들이 속속 배치되기 시작한다.

4.1. 아쿠탄 제로

위풍당당하게 제로센을 밟고 서있는 켄타우로스[43] 개드립 친 사람 나와

알래스카 아쿠탄섬에서 노획된 제로센, 일명 '아쿠탄 제로'의 사진이다. 미 해군 사진기사 아서 바우만이 촬영. 항공모함 류조 소속 코가 타다요시 1등비조(비행병조/상사)의 탑승기로, 추락 직후 동료기들이 파괴 명령을 받았지만 코가가 살아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파괴하지 않았다. 1942년 7월 10일에 PBY 카탈리나 조종사 윌리엄 티스 대위와 기장 앨버트 낵이 조종사의 시신과 함께 발견. 다음날 7월 11일부터 조종사의 시신을 장례해준 이후 회수작업을 시작해 7월 15일에 중장비를 동원해 회수한 이후 수리되어 9월 20일에는 완벽히 복구돼 비행이 가능해졌다.

미국은 아쿠탄 제로를 이리저리 날려보고 한 결과 제로센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했고, 일선의 파일럿들에게 기체별 대응지침을 보냈다. 일부 일본 우익들은 "저것만 아녔어도 우리가 이겼을 거라능!"하기도 하지만 그럴 리가. 이미 미드웨이 해전을 통해 전세는 미국 쪽으로 기울었었고, 설사 잘 쳐준다 한들 몇 달 늦어졌을 뿐. 이미 미군 쪽에선 제로랑은 상관없이 신예기가 설계 중이었다.[44]

이 제로기는 1945년 2월 이륙을 위해 택싱을 하다 SB2C 헬다이버와 충돌해 박살나고 만다.

5. 몰락

개전 초기만 해도 날아다닌 표적에 불과했던 연합군의 항공기들은 시간이 흐르수록 더 단단하고 더 좋은 성능으로 변했고, 에이스 파일럿들이 성장하면서, 또한 공중전 기술의 발전으로 애초에 미군 전투기들은 우월한 파워를 살린 '붐앤줌'(Boom&Zoom) 공격방식을 도입해서 싸우기 시작했다. 붐앤줌이란 강력한 엔진 출력과 무게, 덩치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살린 공중전 방식을 말하며, 쉽게 말해 급강하 공격의 반복이다. 당연하게도 이 전술에서는 선회전 따위를 할 이유도 없고, 선회전이 잘 걸리지도 않기 때문에 급강하 속도에도 제한이 걸려 있어서 선회전에 상대방을 말려들게 하는 전술 위주로 할 수 밖에 없는 제로센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당연하게도 격추비율이 넘사벽급으로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제로센은 서서히 쓸모없는 비행기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1943년 솔로몬 제도의 문다 비행장 주변에 추락한 A6M3. 망했어요

타국 전투기가 두꺼운 장갑과 강한 엔진을 사용하는데 반해 제로센은 태생의 한계로 출력이 강한 엔진을 얹을 수도 없었으니[45] 장갑은 고사하고 속도도 안 나오는 데다가 구조강도가 지나치게 빈약하다는 문제 때문에 고속도로 급강하할 수가 없었다. 덤으로 무리한 급강하 시도시에는 기체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 문제 때문에 테스트 파일럿도 희생되었을 정도다.

때문에 다른 동시대 전투기들의 공중전 전술이 '붐앤줌' 형태의 수직 기동 위주로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선회전에만 목을 매야만 했다. 이 말은 타국 전투기는 전황이 불리하면 물러나고 유리하면 공격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지만 일본 전투기는 철저하게 타국 전투기가 싸움을 걸어와야지만 싸울 수 있었다는 말이다. 애초에 속도가 느리고 급강하 기동이 불가능하니 불리한 여건에서도 도망칠 수조차 없다. 그래도 숙련된 조종사들이 모는 제로센은 여전히 위협적인 상대였다고는 하나… 미드웨이 해전의 참패와 과달카날에서의 소모전으로 태반의 베테랑들이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으니 망했어요. 미군 에이스들 개개인의 전과가 독일이나 일본 에이스보다 떨어졌던 것은 이들의 기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순환 근무 체제 때문이다. 정해진 출격횟수를 채우면 후방으로 빠져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복귀하거나, 비행 교관 등으로 근무하거나 전쟁기금 모금을 위한 홍보대사로 활동하거나 했지만, 추축국 에이스들은 나날이 불리해지는 전황으로 그런게 사치가 되어버렸다. 당장 사카이 사부로가 한쪽 눈을 실명하고 교관 일을 하고 있었는데도 출격한 전적이 있었고 이와모토 테츠조도 원래 산호해 이후 본토에서 교관으로 일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전황이 격해지면서 라바울로 불려갔다가 종전 때까지 비행기에서 내릴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 해군이 가진 건 끝까지 제로센뿐이었다.

F6F 헬캣F4U 콜세어가 전선에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1943년 후반이 되면, 제로센은 본격적으로 날아다니는 표적으로 전락하고 만다. 와일드캣 후계기로 일선 항모의 주력 함재기가 된 F6F 헬캣과의 교환비는 무려 13:1.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 같은 참사까지 겪는 지경에 처한다. 결국 초기에 우위를 가졌던 미군들에게 칠면조 취급을 당하면서 평균 격추비는 11:1(대전기간 전체를 기준으로 볼 경우에는 10:1) 가까이 떨어지는 굴욕 끝에 전쟁을 종결하게 되었다.

한번의 전투로 투입 항공전력의 70%를 상실하며 일본 해군항공대의 주력이 붕괴되버린, 저 유명한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은 학살자에서 밥으로 전락한 제로센의 비참한 종말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일본 해군은 멍청하게도 제로센의 반 이상에 250kg 폭탄을 달고 전폭기 용도로 쓰는 병크를 저질렀다. 제로센이 맷집이 좋다면 모를까, 맷집이 허약한 제로센에게 함선을 공격하라는 짓은 삽질 그 자체였다. 그 덕에 둔중해지고 느려진 제로센은 헬캣의 좋은 먹이가 되었다. 이 날 헬캣을 주력으로 삼은 미 해군 제 58기동함대와 제로를 주력으로 삼은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공중전 결과는 단순 격추비만 30 : 239. 그리고 제로센은 레이테 만 해전에서 최초의 카미카제 격침을 기록한다... 그 덕에 제로센은 자살공격기의 대명사로 남게 된다.[46]

물론 이꼴을 당한 것은, 상대는 일찌감치 후계기를 준비 중[47]이었는데, 여전히 제로센만 띄운 결과이기는 하다. 하지만, '후계기가 제 때 개발 안되서 이미지를 구겼다'는 식의 평가 또한 피상적이다. 애초 제로센의 후계기가 제때 개발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엔진기술이었다. 사실 이미 전쟁 초기에도 제로센은 1000마력이 채 되지 않는 엔진을 사용한 반면, 그 굼뜨다는 와일드캣도 1200마력대의 엔진을 사용했다. 제로센 후기형은 1170마력대의 엔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 시점엔 이미 2000마력대의 엔진을 단 괴물스런 적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덤으로 그 시점에 호위함대에서 운용되던 와일드캣들도 1350마력대의 엔진으로 업그레이드 된 상태.

더 나아가 제로센이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스핏파이어와 Bf109는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되며 전쟁 말기까지 최일선기의 성능을 유지했다. 특히 최대한 컴팩트하고 가벼운 기체를 지향한 것은 Bf109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기체 전체의 사이즈로는 Bf109 쪽이 더 작다. 하지만 '경량화한 기체와 최대한 강력한 엔진'의 조합을 추구한 Bf109와, 저출력엔진에 맞춰 극단적인 다이어트만으로 비행성능을 짜낸 제로센의 업그레이드 가능성은 시작부터 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Bf109는 덩치는 몰라도 무게는 제로의 1.5배정도로 스핏파이어와 동급이다. 즉 후계기의 개발이 지연되는 것도, 제로센의 업그레이드가 상대에 비하면 옆그레이드 레벨에 멈춘 것도, 엔진개발의 곤란을 중심으로 한 동일한 문제였다.[48]

즉 전반적인 기술수준 자체의 한계로, 제한된 시기에 제한된 방식의 우위만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되어 미드웨이에서 좌초하고 과달카날에서 몰락하기 시작하는 일본군의 운명과 딱 빼닮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T-34의 경우처럼, 개개의 기술수준은 떨어지지만 전체 컨셉의 우위로 쓸모있는 병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이미 2차 대전부터 기술력의 총체라 할 수 있던 항공병기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었다. 나아가 제로센은, 컨셉으로 조차 딱히 앞서 있지 못했다. 제로센은 전통적인 선회전을 중시하는 공중전 사상과, 반면 전금속제의 고속 단엽기가 전투기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1930년대 항공기술의 발전을 절충한 '미묘한' 전투기에 더 가까웠으니까.

일본군이 제공, 제해권을 상실하고 태평양의 섬이 하나 하나 미군에게 넘어가며, 이제 일본 본토에 B-29 폭격기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제로센은 B-29를 잡기 위해 출격했으나 B-29의 고도가 너무 높아서 빌빌거리기만 해야했다. 이는 과급기가 없는 자연흡기 엔진의 기본적인 특성 때문이다. 미리 특별한 조치라도 취하지 않았다면 고고도에서는 공기밀도가 크게 감소하여 엔진에 공급되는 공기량이 급감한다. 공기량이 부족해짐에 따라서 성능이 급감하게 된다. 따라서 이 부족한 공기를 채워주는 과급기(슈퍼차저 또는 터보차저)가 필요한다. 과급기는 공기를 압축하여 엔진에 공급하므로써 이 부족해지는 공기밀도를 보상해 준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에서도 고고도 폭격기 요격은 과급기를 장착한 Bf 109가 맡았다. 마찬가지로 미군의 P-47 썬더볼트는 고공에서 엔진 출력을 보장하는 슈퍼 터보차저(스포츠카에 달려 있는 터보엔진) 덕분에 뛰어난 고고도 성능을 발휘했지만, 개량도 제대로 못하는 일본에 그런 걸 기대하는 게 무리였다. 설사 올라갔다 하더라도 제성능을 발휘하기는커녕 B-29의 기관총에 맞고 떨어지기만 했다… 가장 웃긴 건 B-29의 최대속도가 제로센보다 빨랐다는 것. 요격은 고사하고 한 번 뒤쳐지면 따라가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패스할 기회는 단 한 번!!! 그것도 느리게 느리게… 이래도 B-29가 고도를 올려버리면...[49]

그러나, 초기에는 제로센보다 성능이 안 좋은 편으로 보았던 육군의 Ki-43 하야부사의 경우, 비행기 내구도를 높이고 2차 대전에 걸맞는 전투기로 개조하면서 제로센에 비해 카탈로그 성능이 구려 묻혔지만 정작 미군들은 제로센보다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2차대전 전사 연구가들은 중국 전선이나 동남아 전선에서 제로센과 조우, 제로센과 교전으로 보고되었거나 문헌상의 기록으로 남은 것 중 대다수가 Ki-43 하야부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단 하야부사나 제로센이나 모양이나 성능 모두 비슷하고, 제로센이 압도적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추정된다. 일단 일본 측 기록에 의하면 해당 전선에서 주로 활동하던 기종은 제로센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유럽전선에서 큰 활약을 벌였던 P-47 썬더볼트와는 정반대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기종이었다.

6. 단점

아래에 서술되는 문제들은 대부분이 군부의 무리한 스펙 요구에 따른 반동이라고 보면 된다. 뭔가 우수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분에서 약점이 생기는 것이 병기로써 당연한 이치다.

물론 제로센이 단점만 한가득한 전투기는 아니었다. 상승력은 라이벌 취급받는 와일드캣에 대해선 1.5배에 달했고, 천적 헬캣에게도 상승력 만큼은 별로 안밀렸다. 그리고 저속에서의 선회전 능력은 종전까지도 태평양 탑클래스에 드는 전투기였다.[50] 하지만 그 장점들을 묻어버릴 만큼 제로센의 단점들은 심각했다.

6.1. 문제의 시작

이런 일이 일어날 것같은 조짐을 느꼈지. 하지만 군부가 우리 말을 듣지 않았어.

일본 해군의 무기 개발 과정을 보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가시적인 스펙을 상부에서 우선 결정한 뒤에, 이를 기업들이 개발해가면서 맞추어내는 식이었다. 이거야 별 문제가 없는데, 진짜 심각한 건 이 과정에서 기본적인 자국의 기술수준이나 목표의 실용성이나 현실성 등에 대한 고찰이나 검증 등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던 데다가, 현장의 기술자들의 의견은 완벽하게 무시한 채로 스펙의 달성을 강요했다는 점에 있었다. 게다가 전투병력이 아닌 지원/보급/개발 쪽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것이 당시 일본군의 풍조였다. 그런데 그게 안되면 어떻게 하냐고? 근성만으로 어떻게든 된다!를 부르짖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요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더 거슬러 보면, 일본은 1937년의 12식 함상전투기 개발계획부터 당대 유럽의 최전선의 신예기들에 준하는 속도와 상승력, 거기다가 그 몇 배 이상의 항속거리까지 요구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요구조건을 맞추기에는 일본의 공업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었다. 예를 들어서, 요구되는 속도와 그것을 달성해내기 위한 엔진의 수준을 비교해보면, 1936년 프로토타입이 최초로 비행한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는 초기기종이 990마력의 롤스로이스 멀린 2에, 1937년 500km/h의 벽을 넘어 중반대를 달성한 Bf109는 초기형이 DB600a의 980마력에서 시작하여 대전 초~중반까지 활약한 E형에 탑재된 DB601은 1100마력에서 1175마력까지 달성했으며, 일반적으로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와일드캣 역시 1200마력이었던 반면에 일본의 경우는 제로센 개발 당시 결함으로 인하여 사용할 수 없었던 940마력의 사카에를 제외하고, 780마력의 즈이세이와 900마력대로 후기형이 공칭출력 1250마력에 도달하는 킨세이 정도였으나, 킨세이의 경우 폭격기 용의 대형 엔진으로 항속능력과 격투성능의 문제로 인하여 배제되고 소형인 즈이세이가 선정되었고, 사카에의 문제가 해결되어 11식부터 채택된 이후에야 900마력대에 돌입하는 수준으로, 속력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엔진의 출력이 부족했다.

부족한 출력에도 불구하고 대형의 엔진을 채택할 수도, 그렇다고 요구되는 카탈로그 스펙의 일부를 타협할 수도 없었던 상황으로 인하여 결국 군용기로는 적합하지 못한 수준의 극한의 경량화가 이루어졌고, 이는 기체의 구조강도의 부족으로 이어져 이후의 기체의 개선을 막고, 전투시 급강하 기동을 제한했다. 문제는 급강하 기동은 속도를 얻기 위한 매우 기본적인 기동이자 탈출법이다. 어차피 고도를 잃어버리는데 왜 하느냐 하면 사실, 이게 도약하기 위해 잠시 웅크리는 기동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 전투기들은 추력 대비 중량비가 현재 전투기들에 비해 처참하리만치 떨어졌으므로 엔진 파워로 상승하는 것은 안전할 때나 하는 일이었다. 반면에 속도를 높이게 되면 기체 설계에 의해 양력 또한 증가하기에 도리어 저속에서 엔진만 죽어라 돌리는 것 보다 월등한 상승력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안그래도 약한 장갑으로 인한 생존성이 더욱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6.2. 만악의 '기술적' 근원 : 저출력 엔진

위아래로 나열된 제로센의 단점들은 파일럿들의 지속적인 지적, 요구 등으로 느리게나마 반영이 되어갔다. 골조의 강도를 높이고 자동방루연료탱크를 탑재하고 무전기의 성능을 끌어올리고 무장도 강화시키는 등 제로센의 전쟁 전과 전쟁 말기 생산형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은 도저히 어떻게 답이 안나왔다.

제로센이 장비한 14기통 나카지마 사카에 발동기는 초기형이 940마력이고 1944년에 나온 후기형조차도 1200마력을 못 넘겼다. 1940년 영국과 독일의 전투기들이 1200마력은 가뿐히 발휘하면서 싸웠고, 제로센과 같은 시기에 실전배치된 Fw190이 장비한 BMW801 공랭식 발동기가 14기통임에도 불구하고 1700마력을 내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사카에 발동기의 너무 낮은 출력이 제로센의 발목을 잡아버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카에 발동기의 배기량이 28리터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해도 많이 낮은 수치.(스핏파이어에 쓰인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은 27리터, P-39와 P-40등에 탑재된 앨리슨 V-1710 엔진도 환산하면 비슷한 28리터다.)

나아가 애초 제로센의 많은 단점들의 출발이 바로 저성능의 엔진에서 비행성능을 쥐어짜기 위한 무리한 경량화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의미에선 제로센에겐 거의 만악의 근원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다만 저출력엔진이 후계기의 등장까지 막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육군에서 운용한 Ki-84는 2000마력급의 호마레 엔진을 장착하고 1943년에는 실전배치가 시작된 상태였으며 1943년에 도입된 N1K-J 시덴도 1850마력의 호마레 엔진을 장착하고 있었다. 제로센의 후계기인 렛푸는 2,200마력의 출력을 가지는 Ha-43엔진을 장착하고 있었지만 수뇌부의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개발이 지연되었는데가가 그 결과물도 신통치 못한 물건이 나와버렸다.

6.3. 과도한 경량화의 폐단 1 : 방어력 제로! "제로식 라이터"의 전설

제로센의 성능을 요구한 일본 해군 수뇌부는 함대 상공에서의 체공시간에 대한 요구를 지나치게 강조한 탓에 전투기로서의 성능 밸런스가 개판이 되었다.

대표적인 결과가 바로 개막장 방어력체력 5짜리 인터셉터 이었다. 물론, 방어력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기체강성이 개판이 되면서 무장플랫폼으로서의 안정성도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도 심각했고… 당장 무게를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조종석 뒷쪽에 설치되는 방탄판조차 없었다. 애초 한 덩치하는 미군 전투기들 뿐 아니라, 그 작디작은 Bf109도 방탄유리와 다른 전투기와 비교해도 두꺼운 13mm 짜리 조종석 방탄판을 우겨넣고 날아다닌 마당에.

기체의 생존성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말해보자면 처음엔 어느 파일럿이든 초보이기 마련이다. 당장 에리히 하르트만, 사카이 사부로 등의 나무위키에도 등록된 명 파일럿들도 처음에는 초보였고,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는 여덞기의 적기를 잡는 동안 여섯번 기체를 잃었다. 그런데 생존성이 나쁘다는 것은 그 파일럿들에게 에이스가 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굉장한 손실이 된다.[51]

전투에서 조종석 뒤 방탄판 덕분에 목숨을 건진 조종사가 한둘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에이스 아돌프 갈란트가 영국항공전 당시 정비병이 조종석 뒷쪽에 마개조해준 방탄판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이 있다. 비행기를 잘 아는 사람들조차도 얼핏 이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데 비행기 정면에서는 서로 고속인 관계로 총알을 맞을 가능성이 적고, 헤드온 패스는 공중전시 어지간하면 피하는 기동일 뿐만 아니라, 맞아도 프로펠러기는 엔진이 앞에 있기에 엔진에 피탄될 가능성이 높지 조종사가 맞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꼬리를 붙잡혀 뒤에서 맞으면 무방비 상태인데다, 총알이 동체를 뚫고 의자를 통과해 조종사 몸에 박힌다!!! 그리고 이걸 막기위한 방탄판이란게 사실 엄청 두꺼운 것도 아니고 두께 1cm 정도 될까말까한 철판이다. 이 철판도 총알이 명중하면 뚫리는 건 매한가지지만 적어도 뚫고 들어오는 총알의 에너지(운동 에너지)를 약화시키므로 조종사에게 피해가 가거나 주요한 부품이 파손될 확률이 줄어든다.[52] 참고로, 꼬리를 잡힌 채로 맞아도 상대속도로 따지면 총알의 제 속도를 그대로 맞는 것이므로 파괴력은 육상에서 쏘았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보아도 된다. 다만, 공중에서는 기본적인 거리가 멀고 심한 맞바람(비행기가 날아가는 속도)상황에서 발사하는 것이므로 약간 위력이 반감될 수 있다. 게다가 이쪽이 속도가 더 빠르다면 위력은 더 줄어들게 된다. 한편 1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가 비행석옆에 뭔가 가만히 떠있길래 손으로 잡았는데 알고보니 뒤에서 쏜 총알이었다는 도시전설이 있을 정도다. 적 전투기의 속도+(날라오는 동안 속도가 줄어든) 총알의 속도가 해당 전투기의 속도와 비슷해서 상대속도가 0이 되어버려 공중에서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얘기. 총알잡기 항목 참조.

설상가상으로 후기 제로센을 제외하고선 캐노피 재질도 방탄유리가 아니었다. 참고로 라이벌이던 와일드캣의 조종석 전면 방탄유리 두께는 70mm.

물론 얇다고 해도 전투기 장갑판인지라 권총에 뚫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미 해군기는 기본이 12.7mm 6정 샤워에 수틀리면 20mm까지 쏘아댔으니… 그저 안습. 그리고 권총탄은 막을수 있다는 건 자랑거리도 못된다. 권총탄은 보통 유효 사정거리를 50m 내외로 잡는데, 공중전에서 이 거리는 영거리 혹은 충돌 직전에 속하는 거리이다. 이러한 사거리와 위력 문제때문에 1차대전 전투기들도 최소 7mm 기관총탄환을 사용했다.[53]

그리고 언제나 등장하는 연료탱크 이야기. 와일드캣, 헬캣 등 미군 전투기들 대부분은 자동방루 탱크를 사용했다. 미 해군의 자동방루 탱크는 전쟁기간 동안 12.7mm급 기총탄의 피해 정도는 버텨낼 수 있었다. 물론 미군 만이 아니라, 이미 영국본토항공전 당시 영국과 독일의 전투기들도 자동방루 탱크를 사용했다.[54] 사실 자동방루식 연료탱크라는 게 기술적으로 딱히 복잡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일본도 1920년대 초반부터 자동방루 탱크를 개발해 3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의 제트 엔진에 쓰이는 제트유가 등유를 주로 하는 혼합유라 상대적으로 불붙기 어려운 것과는 반대로 레시프로 엔진은 전적으로 가솔린을 사용하기 때문에 방어면에서 취약하다. 그만큼 일찍이 자동방루 연료 탱크나 자동소화장치같은 장비가 개발되어 기체들에 장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목숨은 내다버리는 것인 일본군부는 그것을 무시했고 그탓에 다른 기체들에 비해 훨씬 자주 불이 붙었다. 게다가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숙련공이 마구 징집되어 그나마 높은 편이던 기계적 신뢰성도 추락을 거듭했고 석유 부족으로 불순물이 잔뜩 섞인 저질 가솔린이 사용되고, 심지어는 송진을 이용한 합성유까지 섞어 만들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언급되는 전쟁 말기 솔방울 수집이 이것. 이 합성유가 의외로 쓸만했다지만 당연하게도 저질 연료가 들어간 엔진이 자동 폭발하는 경우까지 생기는 지경이라 초기에 세운 명성을 자기가 깎아 먹었다.

게다가 제로센은 항속거리를 늘리려 주익에도 연료탱크를 집어넣었다. 주익에 연료 탱크를 탑재할 경우 치명적인 피탄면적이 더욱 넓어지기 때문에 당시 군용항공기는 방탄설비 설치의 용이성 등을 이유로 가능한 엔진과 조종실 부근에 연료 탱크를 위치시켰다. 물론, 더 큰 이유는 날개 강도 문제였다. 특히 동체와 날개가 연결되는 부분. 날개가 무거워지면 이 부분이 가장 부서질 위험이 커진다. 쉽게 말해서 날개에 달린 모든 것들이 이 연결부분에 매달려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 당시 기술로는 얇은 날개에 연료 탱크와 안전장비를 넣고 기관총까지 설치해 발사하며 급격한 기동을 했다가는 날개가 부러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 이 때문에 유럽의 Bf109나 스핏파이어는 항속거리의 한계로 많은 제약을 받았다.[55] 그러나, 제로센은 주익까지 연료=가솔린을 채우면서도 연료탱크의 자동방루 처리 등은 없었다. 몰라서가 아니라, 더 많은 연료를 넣으면서도 기체중량을 줄이기 위해서 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제로센은 다른 전투기보다 더 가벼운 체급임에도 잘못 맞으면 훅 갈 수 있는 'Vital Part'는 허벌나게 넓은 기체였다는 것.

또 연료탱크에 관해 회자되는 것이 제로센은 날개에 연료탱크가 있어 피격시에 불타오르기 쉽다는 것인데, 원래 예광탄이나 소이탄 계열은 공중전에서 애용되던 탄종이다. 미군 뿐 아니라 당연히 제로센도 마찬가지로 예광탄과 소이탄을 포함한 탄종구성을 하고 전투에 참여했다. 즉 뭐가 날아올지 잘 알면서도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 즉 피탄 취약부위가 아니라면 맞는다고 곧장 타오르지는 않겠지만, 서너발 간격으로 섞여 날아올 소이탄, 예광탄 같은 걸 조금만 잘못 얻어맞으면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는 것.[56]

물론 완전히 이런 설계를 어리석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 태평양 전선에서는 긴 항속거리가 굉장히 중요했다. 육지에서라면 연료가 떨어지면 지상에 불시착해 도망치거나 구조신호라도 보내겠지만 태평양에서 그러면 절반은 고기밥 행이라고 봐야한다. 그래서 미군은 조종사가 실종되면 눈에 불을 켜고 수색을 했다. 때문에 주익에까지 연료탱크를 탑재해 항속거리를 확보하려 한 것 자체는 어찌보면 현명하다고도 할수 있지만, 제로센의 경우 날개를 비롯해 전반적인 기골의 강도가 영 좋지 않았고 방루탱크 등의 설비가 제 때 적용되지 못한 게 결점으로 작용한 셈이다.

사실 영전의 방어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고는 해도,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그 당시 항공기들에 주로 탑재되었던 20mm급 기관포에 대해서 유의미한 방호를 제공할 수 있는 방탄판을 연료탱크 주변에 설치한 기체는 거의 없었다. 그 시대의 자동방루 탱크들도 기껏해야 기관총탄의 피격 정도나 막아낼 뿐이지, 기관포탄의 직격에는 버텨내는 게 불가능한 물건들이었다.[57] 이유는 간단한데, 7mm급 탄종을 방어할 목적으로 조종석 뒤편에 설치되곤 했던 방탄판의 무게가 평균 20kg 정도였다. 즉, 연료탱크 주변에 이런 방탄판을 두르다가는 수백 킬로그램 가량의 중량증가가 생기기 때문에 웬만해선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좀더 변론을 해 보자면, 날개에 연료탱크를 집어넣은 기체가 영전뿐만은 아니다. 그 P-51 머스탱조차도 항속거리 증대를 위해 주익에 연료탱크를 집어넣었고, 오히려 면적만 따지면 영전의 연료탱크보다 더 넓다. 제로와는 다르게 머스탱의 기골은 튼튼한 편이었다고 하지만, 뭐가 어찌되었던 독일기들이 쏴제끼던 미넨게쇼스 같은 것에 맞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 보면 자동방루 탱크고 뭐고 아무런 소용도 없었을 것이다.사실 날개 연료탱크보다는 연료 잔량에 따른 기동 불균형 문제가 더 컸다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과 달리 제로센이 단 한발만 맞아도 불이 화르륵 붙는 기체는 아니었다. 제로센이 불이 잘 붙는 것은 피탄시 위험 부위가 넓으면서도 방어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것이 이유였다. 피탄 취약부위 이외에 명중할 경우 대부분 전투기들처럼 구멍이 나고, 너무 많이 구멍이 나면 양력을 잃고 추락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반면 하야부사의 경우에는 영전과 달리 주날개에까지 여러 발을 피탄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환한 사례가 있다.[58]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일이, 그러나 일본군부나 개발사가 정말로 '몰라서', 또는 '기술력이 부족해서' 한 일이 아니다. NHK의 제로센 관련 다큐에도 나왔듯 방탄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초반부터 설계자들로 부터도 꾸준히 제기 되었지만, 일본해군의 입장은 '없다'였다. '날렵하게 피해서 안 맞으면 된다'는 식의. 그러나 특히 과달카날 전투를 치르고 조종사와 승무원의 손실을 크게 당한 후, 일선 조종사들 등은 방탄문제에 대한 요구를 다수 제기했고 1943년 6월 이 문제를 놓고 일본 해군과 전투기 개발자들 사이의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 배석했던 겐다 미노루가 꺼낸 말은 '야마토혼으로 돌파'였다. '가볍고 좋은 전투기를 받았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라고... 당시 아직 '중좌'밖에 안 된 겐다 미노루가 이런 식이었으니, 더 높으신 분들의 사고는 뻔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방탄에 대한 요구는 '야마토 혼으로 돌파'당했다...

그런데, 과연 내탄능력이 제로라도 '날렵하게 피하면 된다'는 말은 당시의 공중전에서 현실적인 주장이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의 공중전은, BVR이든 WVR이든 기본적으로 'Km'거리에서 미사일 날리고 튀는 현대의 공중전과 달리, 수백 미터 이내, 가까우면 수 십미터 거리에서 기관총을 퍼부으며 벌이는 난타전이었다. 이를테면 P-47의 일반적인 기총 조준선 정렬 거리는 330m 정도였고 다른 미군기들도 200-300m 정도에 맞춰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국공군 역시 보통 230m 정도로 맞춰놓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110m에 맞춰놓기도 했다. 독일공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참고 즉 보병의 소총전 거리이다. 상황에 따라선 그 이상의 근거리에서도 교전이 벌어진다.[59] 그런 거리에서 이를테면 제로센의 7.7mm 기총 2문이라면 분당 2000발, 즉 초당 30발 이상의 탄환을 퍼붓고, 미군 전투기가 장비한 AN/M2 기총 4~6문 정도라면 분당 3000-5000발, 초당 50~80발의 총탄을 쏟아낸다.[60] 이 와중에 몇 발이든 피탄을 완전히 피하기는 쉽지 않다. 거기에 수 십 기 이상의 전투기들이 뒤엉켜 날아다니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많은 눈먼 탄환까지 날아다니고 있겠는가.[61] 즉 제트기와 특히 미사일 이후의 공중전처럼, '먼저 보고, 먼저 쏘고, 나는 안 맞고'하는 '우아한' 전투를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된 방탄 및 내탄 설비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전투기라기보다는 거의 기관총이 설치된 스포츠 항공기테크니컬? 같은 물건을 타고 뛰어들었는데도 그중에 살아서 기지에 돌아가는 조종사가 있다는 게 사실은 더 신기한 것이다. 이는 거꾸로 당시의 공중전에서, 다른 무엇보다 조종사의 능력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입증한다.

그리고 이는 앞서 '실전' 부분에 인용된 것 처럼, 결과적인 교전비로는 분명 승자인 미 해군의 와일드캣 파일럿들이 왜 그렇게 자신들이 몰던 전투기에 대해 불만을 토했는지 이해하게 해 주는 부분이다. 즉 그들이 겪은 전투는 정말 얄밉게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적기를 상대로, 여기저기 두들겨 맞는 걸 맷집으로 버티며 펼친 악전고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다 겨우 몇 발 얻어 맞았을 뿐인데 파이어볼이 된 전투기와 함께 산화한 것은 일본군 파일럿들이었고, 결국 살아서 돌아간 것은 미군 조종사들이었다. 심지어 타고 나간 비행기는 거덜이나서 중간에 추락하거나, 간신히 착륙한 후라도 결국 폐기처분 되었을지언정 말이다. 태평양 전쟁의 주요 공중전 대부분에서 일본군은 항공기 손실비율 이상으로, 항공요원의 사상 비율에서 대부분 미군을 '앞섰다'.[62] 그 결과 일본군 몰락의 기점으로 평가되는 과달카날 전투가 아직 한창이던 산타크루즈 해전의 시점에서, 일본 해군항공대는 개전 초 진주만 공격에 참여했었던 765명의 베테랑 항공 승무원들 중, 그 절반이 넘는 409명이 이미 전사해버리는 회복불능의 인적손실을 입는다.

이 여파는 이후 일본 해군이 남은 여력을 다 긁어모아 감행했던 필리핀 해 해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방어력 제로의 전투기를 굴리며 베테랑 조종사 다수를 상실한 일본 해군항공대는 헬캣 등의 등장으로 이미 기체성능조차 절대열세로 밀리는 상황에서, 남은 조종사마저도 적기의 기습에 혼비백산 놀라 우왕좌왕하다 격추당하는 오합지졸 무리 뿐인 상태로 전락해있었다. 이 전투를 끝으로 일본해군 항공대는 사실상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필리핀 해 해전을 일컫는 미군측 별명이 괜히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 아니다.

일본군도 완전 바보는 아니라 미군과 싸우면서 방루탱크와 방탄장비의 부재를 깨닫게 되었지만, 대전 중기에 들어서며 기본 설계의 한계도 있고 미국이 신형기를 개발하면서 일본 역시 제로의 개량형들을 내놓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영전은 방루탱크 장비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가게 된 탓도 있다. 결국 1943년의 52형부터는 자동소화장치가 탑재되는 등 어느정도 대응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되었고, 1944년 후반 52형 '을' 부터는 45mm 두께의 조종석 방탄유리가 설치되기 시작했으며 '52형 병' 부터는 자동방루 탱크와 조종석 방탄판 등도 설치되기 시작한다. 조종석 방탄유리도 55mm로 더 늘리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 시기가 다소 늦은 게 문제였을 뿐.

6.4. 과도한 경량화의 폐단 2 : 기체강도의 부실

하지만, 군부가 요구한 스펙 - 특히 상승속도, 선회력, 항속거리 - 을 충족하기 위한 무리수로 행해진 과도한 경량화가 야기한 문제는 이처럼 '제로'레벨의 색즉시공 공즉시색한 방어력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심한 가장 큰 악영향은 바로 기체의 구조 강도를 훼손한 것이었다.

단 여기 사용된 기법들 중 하나인 골조에 구멍을 뚫는 설계 기술은 기본적인 경량화 기법에 속하며 모든 기체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제로센 킬러 헬캣조차도 설계가 진행되는 중 제로센의 특성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응한 중량절감 조치가 적용되었다. 제로센이 문제가 된 건 이 기법을 남용했기 때문이다. 골다공증 때문에 기체 강도는 더더욱 막장으로 치달았다.

닥치고 경량화에 올인한 탓에 동체도 비강도가 일반 듀랄루민보다 좀 더 높다는 이유로 초초 두랄루민(Extra Super Duralumin)을 사용, 다른 비행기에 비해 좀 더 얇은 외판을 사용했다. 하지만 안그래도 얇은데다 초초 듀랄루민은 비강도는 높지만 내식성이 형편없고 높은 비강도의 반대급부로 취성이 강해서 잘 부러지는 탓에 종합적인 내구성이 튼튼한 건 아니라서 기체강도는 더 허약해졌다.

심지어 이런 기체강도의 부실로 인해 실전에서 황당한 불벼락을 뒤집어쓰는 일까지 발생한다. 실제로 P-40 워호크의 주익을 이용한 육탄공격을 받고 꼬리날개가 잘려서 격추된 사례도 있다. 칼싸움 물론 당연히(?) 그 워호크는 무사히 귀환했다.

그러나 낮은 기체 강도가 발생시킨 문제 중 가장 심각했던 것은, 제로센의 약점으로서 특히 고속 급강하 성능이 동세대 기종 중 가장 떨어지게 만든 것. 너무 가벼운 기체 중량과 허약한 기체강도가 결합되어 제로센은 태생부터 에너지 파이팅과는 무관한 전투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이미 제로센의 개발 당시부터 예견되었는데, 시제기인 12시(試) 함상 전투기의 테스트 비행 중 급강하 실험에서 기체의 매스밸런스가 파손되며 공중분해되어 테스트 파일럿이 순직한다. 그 후 결점을 보강하였다는 양산형인 21식에서도 날개에 주름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밸런스탭으로 인하여 플러터에 취약해진 것으로 추정, 테스트를 위해 비행상황을 재현한 시모카와 대위는 기체가 공중분해 되어 순직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주익의 강도 부실이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제로센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칠 수가 없어 밸런스탭을 제거하고, 주익의 외판의 두께를 두껍게 하고 급강하 속도를 629km/h로 제한하는 조치로 종결짓는다.[63]비행기를 고치랬더니 대신 속도계에 빨간줄 하나 그어 놓은 것.

이미 이 문서 속에서도 당시의 항공전에서 '급강하 가속'의 중요성은 계속 언급되어왔다. 사실 강하가속과 줌 상승은 추중비가 1.0을 넘는 전투기가 수두룩한 지금도 공중전에서 에너지관리와 기동의 주된 요소이다. 2차 대전시기 프로펠러 항공기 사이의 공중전에선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역시 반복이지만 '지속상승률이 좋다'와 일상적으로 '(급)강하가속 - 줌 상승'이 사용되는 전투상황의 수직기동의 우수함은 조금 다른 문제다. 전투시의 급가속이나 급상승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선 (급)강하가속은 필수에 가까웠다.

무리한 경량화로 인한 취약한 기체강도는 '기동성'을 위해 나머지 대부분을 희생했다는 제로센에게, 그 기동성마저 사실은 '수평면 기동에서의 우수함'이라는 반쪽짜리 기동성으로 만들어 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물론 이 또한 '모든 문제의 원인의 원인'은, '근성으로 어떻게든 이 숫자를 채워와'라고 성능요구를 내민 일본 군부의 평면스런 인식의 결과일테지만. [64] 그런데 제로센 21형의 강하제한 속도인 630km/h 정도의 속도는, 사실은 제로센이 한참 활약하는 1942년 정도면 그 시기 미국, 영국, 독일 등의 고성능 전투기들의 수평속도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아무래도 기체의 중량이나 사이즈 차이 등등 있으므로,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좀 과장해서 말하면 P-38이 (혹은 스핏파이어나 Bf109이) 수평비행하다 조종간 당겨서 올라가는 거나, 제로센의 혼신의 '붐 앤 줌'이나 그게 그거라는 것...

그나마 다행이라면 기체의 구조강도 문제의 경우 파일럿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개량이 이뤄지긴 했다. 덕분에 제로센의 최종생산형은 740km까지 한계속도가 올라갔고 수많은 파일럿들이 급강하 할 때마다 '나 이러다 터지지는 않겠지...'하고 겁에 떨었으나 대부분의 경우 강화된 기골은 급강하를 견뎌냈다고 한다. 문제는 그 댓가로 상승력과 저속 선회 능력이 희생되어 미군기들 입장에선 더 손쉬운 사냥감이 되어 버린것. [65] (나아가 이 정도 개선된 제로센 후기형이 활동하던 시점이면, 역시 이번에도 미국이나 영국, 독일의 고성능기들은 수평비행으로도 제로센의 급강하 제한속도 만큼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6.5. 무장의 효율성

화력은 주익의 20mm 기관포 2정과 기수의 7.7mm 기관총 2정으로 동시대 스핏파이어나 Bf109와 비교해도 결코 나쁜 조합은 아니다. Bf109와 스핏파이어 모두 20mm 기관포 1~2문과 기관총 2정을 조합해서 사용하기도 했고[66] 저 둘은 2차 대전시에 가장 뛰어난 전투기중 하나로 평가되는 기종들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기관포를 쏠수록 약한 주익이 기관포의 반동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해 주익이 떨려 탄도가 계속 변한다는 것이다. 이 기관포는 스위스 엘리콘 사가 만든 FF기관포의 라이센스 제품으로 동일한 제품을 독일 공군도 사용하고 있었으나,[67] 독일 공군은 탄도가 주익의 낮은 강도 때문에 계속 변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사카이 사부로의 자서전에 따르면 해당 기관포는 포구초속마저 형편없이 느렸다고 한다.[68]

사카이는 심지어 99식 기관포의 쳐지는 탄도를 '마치 소변줄기 같다'고 악평하기도. 실제로 동시기의 유럽의 스핏파이어나 Bf109전투기의 기관포보다 포구초속이 느리며, 한때 이 엘리콘 기관포를 사용했던 독일 공군은 저위력에 초구속도가 낮다고 불평하여 마우저 MG 151 20mm 기관포로 교체할 정도였다. 게다가 같은 엘리콘 20mm 기관포 중에서도 초기형 제로센에 사용된 99식 1호 기총의 사용탄은 20×72mm탄으로 독일의 20×80mm탄에 비해 장약이 적은 편이였다.

그렇지만 20mm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반론도 있는데, 사카이와 달리 아카마츠 사다아키 같은 다른 에이스들은 "이거 없이 구라망 어떻게 잡아요?"하고 선호하는 파일럿들도 있었고 정작 20mm를 악평한 사카이도 20mm로 꽤 전과를 올렸다. 물론 7.7mm 정도로 헬캣이나 콜세어는 물론이고, 와일드캣도 버거웠던 걸 생각하면, 좋던 싫던 쓸 수밖에 없던 게 사실일 것이다.

99식 기관포와 그 '플랫폼'인 제로센의 최악의 조합의 결과로 빚어진 무장효율 저하의 또다른 문제점 하나는, '가진 화력을 전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군은 대전 후반, 심지어 한국전쟁 때의 F-80이나 F-86같은 제트전투기까지도 12.7mm 6정 or 20mm 4정[69]을 표준 무장으로 고수했다. 이유는 당연히 같은 구경, 같은 탄도특성을 지닌 화기로 통일하는 쪽이 조준과 사격에 확실히 편하며, 언제나 가진 화기 전부를 사용할 수 있어 교전시 데드웨이트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 [70]

물론 이미 2차 대전 초반부터 .303구경이나 7.92mm 기총은 물론이고, 13mm급 기관총도 좀 부족하다는 게, 영국공군이나 독일공군의 판단이었고,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20mm급 이상의 무장을 혼용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력으로 사용한 MG 151이나 HS.404 기관포는 탄속이 비교적 높아, 필요하다면 억지로라도 기총과 함께 사용할 수 있었다. [71] 물론 미군의 무장방식이 크게 문제된 일이 없었던 것은, 2차 대전 당시 미군은 영국 공군이나 독일 공군과 달리 폭격기 요격에는 별로 신경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미군이 열심히 요격해야 했던 '쌍발 이상 체급의 폭격기'라고 해봐야 G4M인데...[72] 사실 미군도 주 임무를 폭격기 요격으로 상정했던 P-38이나 P-39에는 HS.404 20mm기관포는 물론이고(P-38) 무려 37mm, M4 기관포를 달기도 했다(P-39). 연합군의 중폭격기를 상대하던 독일군은 대전투기 전투에는 당연히 마이너스가 될 걸 알면서도, MK 108 기관포 같은 것도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 [73] 하지만 최소한 이쪽은 그냥 기관총과 함께 전투기를 상대로 써도 무방한 기관포거나 (HS.404), 아니면 최소한 위력만큼은 확실해서 어쩌다라도 일단 맞기만 하면 한방으로 보내 버릴 물건이었다.(M4, MK108) [74]

하지만 '위력은 HS.404 이하인데, 탄속은 M4나 MK 108'인 99식 기관포 같은 게 붙어있게 되면, 모든 것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기총만 쓰거나, 기관포만 쓰거나 하지 않고서는 약간만 거리가 떨어져도 조준 자체를 할 수가 없어진다. 이를테면 99식 기관포로 표적을 맞추려면 '적기의 기체 한 대 위 정도를 겨냥해야 맞는다'고 말해지는데, 그렇다면 기총을 함께 발사해봐야 전부 적기 머리 위로 흘러갈테니.

즉 말하자면, 이런식이라는 것. (제로센의 7.7mm기총과 20mm기관포의 탄도를 비교한 그림. 정확한 실제 비율인지는 불명.)[75]

즉 제로센의 무장은 사실은 '20mm 기관포 2문과 7.7mm 기관총 2정'이 아니라, 실제 전투시에는 '20mm 기관포 2문과 7.7mm 기총 2정 중 택 1' 이었던 셈. 그동안 남은 화기와 탄약은 그저 잉여중량 일 뿐. 독일공군이야 매일 수백대 씩 날아오는 B-17과 B-24를 상대해야 했으니 대전투기 전투에는 비효율적인 MK 108 같은 거라도 달고 나가야 했겠지만, 제로센은 지상기지의 방공전투기가 아니라 태평양 상공의 제공권을 책임져야 할 해군의 함상전투기였다.[76]

나쁜 탄도와 느린 발사속도에 그렇다고 어쩌다 맞아도 한방으로 보낼 만큼 위력적이지도 않은데다, 그나마 대부분의 제로센 초,중기 형은 1문당 60발 씩의 20mm탄 밖에 탑재하지 못했다. 이 또한 대 전투기 전투에선 결국 7.7mm만 대 전투기 전투의 주요 화력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는 상황을 초래하는 데 적잖이 기여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기 중 7.7mm 몇 발 맞고 뚝뚝 떨어져 줄 기종은 거의 없었다.

이런 화력구성의 문제 때문에 제로센 파일럿들은 공중전에서 일단 7.7mm 기총으로 시작했다. 기총으로 얼마라도 피해를 입히며 또한 거리를 가늠해보고 명중탄이 날만큼 좁혀졌다고 여겨지면 20mm 기관포를 발사하는 식. 하지만 7.7mm 기총은 와일드캣 등 맷집 좋은 미군 전투기에 큰 효과를 못 낼 뿐 아니라, 미군 조종사가 제로센이 공격해 오는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던 경우에도 7.7mm탄이 방탄판을 두들기는 후드득거리는 소리를 '경보'삼아 급강하+우측롤로 빠져나가 버리며 제로센의 '일격'이 좌절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그야말로 '도어노커'...)[77]

아무튼 일순간의 집중된 화력으로 적기를 격추할 확률이 낮아진다면, 애써 달성한 기체 퍼포먼스의 우위를 전투의 승리로 이어내는 '변환효율' 또한 낮아질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풋워크는 현란하지만, 유리 몸에 펀치력은 결국 잽이 전부인 물 주먹의 복서 같은 처지가 된 것. 승리할 방법은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상대가 헛방만 내지르다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것 밖에는 없는. 이후 기체들에 비해 방어력 자체도 한 수 아래였고, 무엇보다 느긋하게 20mm를 맞추거나 아니면 7.7mm라도 떨어질 때까지 계속 퍼붜 줄 수 있을 만큼 압도적으로 저성능의 F2A 버팔로나,[78] 제로센이 떠 있는 곳까지 제대로 올라오지도 못하고 빌빌거려 맷집이고 화력이고 아무 쓸모 없는 잉여가 된 P-40이나 P-39 정도까지가 제로센이 마음 놓고 실제 교환비로 털 수 있던 기체였던 것. 하지만 선회력이나 상승력 등 비행성능은 좀 딸려도, 어쨌든 '같은 고도에서 엇비슷한 속도로 날아다니며 같이 쏘아대는 것' 까지는 되는 와일드캣만 되어도 제로센은 현란한 비행술을 뽐내며 신은 냈는지 모르지만, 결국 떨군 적기보다 떨어진 기체가 많은, 실제 교전 결과에선 밀리는 사태가 벌어진다. 여기에는 우세한 기회에 화력을 집중해 적기를 빠르게 해치우는데 곤란한 저효율의 화력구성도 만만찮은 기여를 한 것이 분명하다.[79]

아무튼 단점이 많았던 99식 1호 기관포는 1943년부터 엘리콘 FFL 기관포의 라이센스 제품인 99식 2호 기총으로 대체된다. 99식 2호 기총은 20x101mm탄을 사용해 탄속이 기존의 600m/s에서 750m/s의 쓸만한 수준으로 증가했고 급탄 방식도 탄창에서 벨트 급탄식으로 바뀌었다. 대신 발사속도는 520발/분에서 480발/분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99식 2호 기관포가 처음으로 탑재된 A6M3-22형이 최초 배치된 것은 1942년 12월. 태평양 전쟁의 분수령이 된 과달카날 전투의 주요 항공전은 이미 거의 끝난 시점. 게다가 그 2개월 후 부터는 미 해군엔 헬캣이 본격 투입되기 시작한다. 제로센이 와일드캣 등 그나마 그럭저럭 상대해 볼만한 적기와 싸우던 시기 내내 제로센의 주익에 달려있던 건, '1호 기관포'였다. 물론 썩어도 20mm는 20mm라서 아예 쓸모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동시기의 20mm 기관포들과 비교하면 성능이 떨어지는 물건이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 와중에 제로센 52형 '을' 부터, 화력이 부족한 7.7mm 97식 기관총을 13.2mm 3식 기관총으로 교체하는 개량이 이뤄진다. 그런데 기존 7.7mm 2정 모두를 교체한 것이 아니라 오른쪽 카울링의 한 정만 바꿨다. 화력은 조금 강화되었겠지만, 이제 제로센 파일럿 들은 무려 각기 구경이 다른 3 종류의 화기의 탄도를 신경써야 하게 되었다. 바보들이 만든 천재들을 위한 무기. 52형 '병'에 가서야 남은 7.7mm 1정을 마저 교체하며 이 복잡한 사태는 마무리된다.[80]

그리고 이 시기 쯤이면, 제로센의 적 전투기에 대한 성능 우위는 저속선회 말고는 없었고 무장의 개선 정도로 전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6.6. 존재가치가 '제로'인 무전기

제로센이 가진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

제로센의 무전기는 초창기에는 그럭저럭 쓸만했으나 미국의 금수조치로 관련부품을 구할 수 없어지자 성능이 급추락해서 전쟁중에는 제대로 된 음성통신이 불가능했다. 그로 인해 미군의 타치위브나 독일의 슈밤 대형 등의 유기적인 협동전술은 불가능하게 됐다. 애초에 전선에 그냥 천을 돌돌 감고 페인트칠을 하는 걸 군용 절연대책이라고 시행했던 군대가 일본군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무전기가 이렇듯 형편없다보니 사카이 사부로의 라바울 항공대를 비롯한 일선 부대에서는 조금이라도 속도를 올리기 위해 아예 무전기를 떼어내고 안테나를 잘라내어 무게를 줄이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러니까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냥 이거 떼어내서 무게라도 줄여야지라는 식.

밀리터리에 대해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면 '무전기를 던져서 공격할 것도 아닌데 그게 그 정도로 중요할까?'라는 생각할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손가락 다섯 개와 손 하나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시야확보가 훨씬 쉽고 적의 위치가 한정된 지상전에서도 티거판터 이전까지 독일군이 전차 개별의 성능에서는 밀렸음에도 이를 각 전차마다 탑재된 무전기를 이용한 협동전술로 극복해내 승승장구했고, 소련군도 중반에 미국 무전기들을 랜드리스해서 이론상에 있던걸 흉내만 냈던 소련식 보전합동전술을 완성한걸 감안하면 무전기의 효용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괜히 현대전에 큰 변화를 준 요소중 하나로 무전기의 등장을 꼽는 게 아니다. 특히나 공중전은 적기가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황이 급박하게 변화하므로 무전기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독일의 루프트바페도 전쟁 후기에 들어서며 제공권 확보에 실패하게 되고, 폭격으로 시제기+기술자 등등 주요 자원들을 잃게 되면서 점차 기체의 성능이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 파괴를 뺀 둘의 격추비는 제로센마냥 1:7까지 벌어지지 않았다. 무전기가 그 정도까지 중요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하다못해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해도 채팅으로라도 대화를 하면서 하는 것은 아무런 대화없이 할 때에 비해 그 효율이 몇배나 올라가는데 1초의 차이로 생사가 갈릴 수 있는 전쟁터라면 통신기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81].

알기 쉽게 무전기의 중요성을 말하면 편대전이나 대규모로 붙는 난투전이 됐을 경우, 방어측이 되든 공격측이 되든 아군끼리 연계가 되는가, 안 되는가다. 이것 때문에 미군에게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라고 일컬어지는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아무리 조종사의 경험 미숙이 이유라고는 해도 오합지졸이 되면서 '칠면조 사냥당하듯' 거의 몰살당해 버렸던 것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당장 눈앞의 아군 꼬리에 적이 있다 넌 좌로 난 우로 이정도 대화 만으로도 안되는것과는 무지막지한 차이가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제로센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미군의 F4F 와일드캣이 제로센과 맞붙었던 미드웨이 해전 같은 전장에서의 기록만 봐도 무전기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미드웨이 해전은 F4F 와일드캣의 대 제로센 전술인 타치 위브가 처음 선보인 해전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무전의 문제가 해결된 343 해군항공대에서 운용한 시덴의 킬레이쇼는 1:1.5로, 미군기에게서 격추비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이와모토 테츠조도 이 문제가 해결된 후기형 제로센을 탑승하게 된 이후 붐앤줌을 걸어오는 적기와 마주치자 편대원의 절반을 미리 저공으로 강하시켜 역으로 포위해 격추하는 기록을 남기는 등 그 맥없이 당하던 제로센이 맞는가 놀라운 전과도 남겼다. 실질적으로 여러 문제점들도 이 무전기만 원활하게 보급되었더라면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6.7. 수납성 제로

앞서 언급했듯 아직 와일드캣 같은 전투기가 미군의 주력기이던 시절의 제로센과 미 해군기의 전투결과는 '교전 상황에서 더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기는' 비교적 평이한 성적표였다.

그런데 대체로 과달카날 전투 시기까지도 태평양 전역 전체에 배치된 항모와 함재기의 총 수는 일본군이 더 많았다. 하지만 실제 개개의 전투에선 당장 머리 위에 얼마나 많은 기체를 띄울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 함재기가 교전상황에서 수적 우세를 가지려면, 중요한 건 "수납성". 즉 각각의 항모에 더 많이 실을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와일드캣 초기형인 F4F-3는 주익을 접을 수 없었지만 F4F-4에선 앞서 언급되었듯 비행성능의 다소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익을 컴팩트하게 접어 항모 한 척당 배치 숫자를 늘렸다. 이론상 2배, 현실적으로는 50%까지 증가했다.[82]

반면 제로센은 함재 전투기인데도 날개를 접을 수 없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접을 수 있기는 한데 날개 끝부분만 아주 살짝…

즉, 제로센의 라이벌인 F4F 와일드캣은 이렇게 날개를 다 접을 수 있는데, 반면에 제로센은…

이게 날개를 다 접은 것이다…[83]

그렇다고 당시 일본군 함재기들이 모두 날개를 접을 수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이를테면 전쟁 초기부터 활동하던 97식 함상공격기만 해도 잘만 날개를 접을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주익에 반동이 강한 기관포과 대용량의 연료 탱크를 탑재, 날개를 접는 기구 등을 설치할 여유가 없었고, 날개 접히는 부분이 추가되면 더 큰 강도가 필요하여 비행기가 더 무거워지기 때문에 생략한 것.[84]

하지만 제로센의 극초기형인 11형은 날개의 길이 때문에 항모 탑재가 불가능해져 21형은 함내 엘리베이터에 걸리는 부분만을 최소한도만 접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나마 32형, 52형 등의 후기형에서는 주익의 폭이 1m 줄어들었기 때문에 날개접기 구조가 완벽히 생략되었다.

그리고 NHK의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32형의 경우 이 개량 덕분에 비행성능이 더 떨어졌다고 한다. 이 접히는 부분을 위한 공정이 복잡하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기 때문에 생산 속도를 늘리기 위해 해군의 결정으로 접히는 부분을 없애고 날개를 짧게하는 설계를 했는데,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둥글게 한 날개 끝을 없애면서 새 날개끝은 각진 상태로 남겨둔 채 생산되었다. 엔진이 커져서 연료탱크 크기가 줄고 더 큰 엔진이라 연료도 더 잡아먹으니 당연히 항속거리가 감소한데다 날개까지 말썽. 이 때문에 과달카날 전에서 이 신형 제로센은 라바울에서 항속거리 문제로 작전에서 제외되었다. 결함기라는 보고가 있었음에도 과달카날 포기 후 공군본부장의 사직 외에는 해군대신이 과도하게 책임을 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문제해결은 안하고 대충 넘어갔다.[85]

미군 항모들이 이미 미드웨이 해전 때 부터 전투기만 따져 전쟁발발 시점의 1.5배씩 꾹꾹 눌러담고 다닌 것에 비해 일본 항공모함들은 계속 비슷한 숫자의 함재기만을 싣고 다녔다. 대전 후반으로 가면 (이미 F6F 헬캣 같은 미국의 신형기들이 설치고 다니던 상황이지만) 전투기 숫자를 늘리긴 하지만 그건 미군 처럼 함재기 숫자 전체가 늘어나면서가 아니라 폭격기나 뇌격기 등을 그만큼 빼고 실은 것. (그렇다고 제로센이 미군의 대전 후반기 전투기들처럼 엔간한 소형 폭격기를 뺨칠 폭장량을 지닌 것도 아니었고...)

당시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보면 격납고 바닥에 비행기 모양으로 그려진 도형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날개가 접히지 않는 제로센 때문에 함재기를 그나마 더 많이 탑재하기 위해 그려놓은 주기선이다.

6.8. 문제점이 속출하는 개량과정

명기(名機)로 칭송받는 기종들은 단순히 등장 당시에만 뛰어난 성능을 지닌 것만이 아니라 상황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에 맞춰 성능과 장비에 개량을 더하여 최일선에서 사용될 수 있는 성능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동성[86]을 장기로 삼아 설계된 제로센의 경우, 엔진을 개량하거나 무장을 강화한 개량형이 나올 때마다 필수불가결하게 따라올수밖에 없는 익면하중의 증가는 당연히 기동성을 깎아냄과 동시에 기체 골조에 무리를 주었고, 상기했듯이 제로센의 설계상 아무리 개량을 한다 한들 그 한계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차후 이뤄질 개량에서도 발목을 잡을것이 분명했기에, 일본군 측에선 함재기가 필요하니 계속 생산은 하되 이를 대체할 차기 전투기로 렛푸나 시덴을 개발하고 나서 생산라인을 교체하려 했으나, 끝까지 기동성을 고집한 일본해군 상층부의 병크로 인해 개발이 늦어져 버렸다.

결국 2차대전이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성능이 우세한 라이덴과 시덴이 뒤늦게 개발되어 소수나마 양산이 되긴 했지만, 이미 고착화된 제로센의 생산라인[87]을 곧바로 신규 기체를 대량양산할수 있도록 바꾸는건 불가능했고, 결국 "당장 전투기 한대가 급급한 시기에 급격한 생산설비 교체는 전황에 악영향을 줄테고, 엔진 방면에서 제로센에 사용되던 사카에 엔진의 생산량을 줄여 호마레, 킨세이 등의 다른 강력한 엔진을 증산하고, 제로센엔 그걸 탑재시켜 기존 기체들을 대체해 나가자" 라고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상기했듯이 약한 기골로 인해 고출력의 킨세이 엔진을 달아보니 상승력 이외의 성능들이 이렇다 할 이점을 내지 못했고[88] 당장 국지전투기로 사용하자니 이미 개발된 라이덴보다 선회반경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성능이 떨어지는 기체가 되버린 것. 결국 뒤늦게나마 개량을 하려 했으나 이미 개발된 라이덴과 시덴에 비해 뒤쳐진 성능을 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어떻게 해볼수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6.9. 낮은 생산성

아쿠탄섬에서 노획된 제로센을 검사하던 미군 관계자들은 제로센에 대해 '마치 시계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평했다.

그러나 이 말은 그저 좋은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미 위에서도 언급되었듯 제로센은 기체 외판을 모두 '플러시 리벳'으로 결합했다. 그러나 플러시 리벳은 일반 리벳에 비해 작업시간이 길어지는 탓에, 타국 전투기들은 공기역학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에만 플러시 리벳을 사용했다.

이를 비롯 생산과정에서 요구된 지나치게 높은 정교함들은 전시상태에서 빠르게 다량의 전투기를 생산해야 하는 것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알다시피 2차 대전 동안 주요 참전국 대부분은 수 만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생산했고 또 그만큼을 소모했다. 나아가 숙련된 기술자까지 마구잡이로 총알받이로 징집해 버린 일본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해도 2차 대전시기 당시까지 산업에 별로 투입되지 않던 여성들을 비롯한 비숙련 노동자들이 생산에 대거 투입되는 것 또한 모든 주요 참전국에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한편으로는 많은 남성 노동력이 병력으로 빠져나가는, 반면 병기 생산라인은 급속도로 증대하므로. 여기서 '체계화된 라인만 갖춰진다면' 비숙련공들에 의해서도 제대로 생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후기에 가서는 기체의 경량화를 위해 뼈대 중 하중이 크게 걸리지 않는 부분에 구멍을 뚫는 방안을 생각해 냈는데, 이 작업은 숙련된 기술자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했고 이런 생산 방식으로는 생산 물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89]

그 결과 전시체제가 한창이던 1944년 당시 제로센 한대를 제작하는데 10,000인시(人時, Man-hour)가 투입되어야 했다. (그 이후에는 자원공급이 끊기고 나아가 산업시설을 폭격당하며 생산성은 더 떨어진다.) 그에 비해 같은 시기 P-47 썬더볼트 한 대를 생산하는데는 9,100 인시. 쌍발기인 P-38조차도 9,600 인시면 생산할 수 있었다. 쌍발에 심지어 중형폭격기인 B-25도 10,700인시면 생산할 수 있었다. 나아가 설계단계 부터 생산성을 더욱 배려했던 P-51 머스탱의 경우 미국의 전시생산체제가 한층 효율화된 1944년말-1945년 초의 시점엔 무려 2700인시면 한 대씩이 생산될 수 있었다... (성능도 몇배나 뛰어난데 생산성도 몇배나 되는 진정한 사기유닛.)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제로센의 주적이 된 미 해군 전투기들도 이에 못지 않았을 것이다. (제로센의 천적이던 헬캣은 피크시기엔 월 500대가 생산되었다...)[90]

물론 제로센의 낮은 생산성은 당시 일본의 산업능력이 지닌 한계이기도 했지만 제로센 자체의 제작상의 까탈스러움 역시 한몫 한 것은 틀림없다. 무엇보다 제로센은 다른 일본기들에 비해서도 생산효율이 낮았으니까.

7. 장점

제로센이 저렇게나 단점이 무수한 전투기지만 그렇다고 장점이 제로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개전 초기에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을리 없었을 것이고 애초에 한 나라의 군대에서 정식으로 생산되고 사용될 무기로 채택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래의 장점들은 전쟁 초기 제로센이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게 된 이유들이다. 다만 저 장점들은 전쟁 후기로 갈수록 퇴색되게 되고 끝끝내 새 장점들은 추가되지 않았다.

7.1. 정신나간 저속기동성

제로센을 대표하는 장점이자 제로센의 존재의의. 제로센이 마지막까지 연합군 전투기들에게서 우세를 가졌던 최강이자 비장의 장점.

상술했다시피 제로센은 애초부터 기체 설계 자체가 저속선회전에 특화된 기체였다. 자연히 저속선회전의 스페셜리스트였고 대전 초기 선회전을 교육받은 파일럿들은 도저히 제로센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또한 이런 기체의 성능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베테랑 파일럿들의 조종기술이 맞물려 대전 초기에서 연합군기가 제로센에게 선회전을 거는건 말 그대로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특히 대전 초기의 연합군에겐 타치 위브와 같이 우수한 전술이 확립되기 전이었단걸 생각해보면 굉장한 무기로 작용했다. 제로센에게 선회전을 이기려면 저속선회력이 더욱 월등한 복엽기를 끌고와야 하는데 이탈리아와 소드피시같은 특수목적기를 제외하면 복엽기가 전투기로서는 일선기에서 이미 퇴출된 당시 공중전 상황상 제로센이 선회전의 최강자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제로센의 저속 선회전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만으로 공중전 능력 자체가 과대평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저속에서의 격투전 능력만이 공중전 능력의 전부가 아님을 상기해야 한다. 애초에 저속 격투전이 킹왕짱이면 속도 빠른 단엽기 안만들고 계속 복엽기나 찍었겠지...[91]

실제로도 대전 초반기 제로센의 전과 대부분은 중국전선에서 이미 퇴물화된 복엽기나 속도와 상승 능력이 복엽기 수준에 머물러 있던 원시적인 수준의 단엽기들을 대상으로 우월한 상승 능력과 속도를 활용한 일격이탈 전술로 대부분의 전과를 올렸고, 가장 잘 알려진 제로센 에이스 사카이 사부로조차도 "일격이탈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놈은 전투기 파일럿도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저속 선회전 능력 보다는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를 활용한 공격전술을 중요하게 여겼다.

선회전의 위력이 시대가 흐르면서 빛을 상당히 잃었다고도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이미 대전 초반의 일본군 내부에서 조차 빠른 속도와 높은 고도를 활용한 에너지 파이팅이 대세 였던 것이다. 태평양 전쟁 초반 미군기들이 제로센에게 털려 나갔었다는 사실만으로 제로센의 격투전 능력을 치켜세우고 당시 미군기들의 성능을 깎아 내리는 경우가 많이 보이는데, 이런 사람들이 무겁고 느려터진 주제에 맺집만 좋은 고물 취급하는 와일드캣과 제로센의 교전 격추비는 비슷한 수준이고 많은 연구에서 오히려 와일드캣이 제로센을 앞선다. 앞서도 언급되었듯 전쟁 전 기간 1:1.5, 산호해, 미드웨이, 과달카날의 1942년 주요 교전에선 1:1.16.

에이스들은 단순히 선회전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선회력을 이용해 기기묘묘한 회피기동을 펼치거나 상대가 선회전을 하게 판을 만들어서 적을 격추해내는 등 다양하게 활용했다...곤 하지만 와일드캣 이후 등장한 헬캣과 커세어 같은 속도와 상승력은 물론 고속 기동성에서 까지 제로센을 압도하는 고성능기들을 상대론 제로센이 할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물론 그것마저 불가능한 초짜들은 경험 쌓을 기회 그딴거 없고 불타는 제로와 함께 요단강 익스프레스

거기다 문제는 전투기들의 출력이 강화되고 평균속도가 점점 올라가면서 '저속' 취급되는 속도 영역도 점점 높아졌다는 것이다. 콜세어 같은 기종들은 175노트 정도의 속도만 되어도 제로센과 맞먹는 기동이 가능하며 200노트 이상에선 제로센을 능가하는 기동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콜세어는 전투속도 200노트정도는 가볍게 넘긴다. 정확히는 엔진의 출력 차이가 너무 커서 서구 열강의 기체들은 차고 넘치는 잉여추력으로 선회하면서 발생하는 항력을 감쇄시키고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비행하고 있는데 제로센 쪽은 같은 속도로 비행하려면 엔진의 추력이 부족해서 항력을 상쇄할 수가 없으므로 낮은 선회율으로 비행할 수 밖에 없는 것.

나아가 또 하나의 함정은, 보통 제로센이 고속영역에서 기동성이 나빠지는 원인을, 고속이 되면 에일러론 작동이 무거워지는 것을 드는데, 문제는 바로 그 에일러론이 또한 제로센의 뛰어난 저속기동성을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기도 했다는 것. 때문에 A6M3 시리즈에서 고속에서의 선회력과 특히 롤기동성을 개선하기 위해 에일러론을 개량한 결과 고속에서 롤 성능은 좋아졌으나 저속선회력은 곧장 감소했고, 이후 버전에선 없던 일이 되었다. 이번에도 등가교환

그나마도 미군의 신형기들에 대항하기위해 엔진 출력의 강화를 시도한 전쟁 후반기의 개량형들은 그 댓가로 전쟁 초기의 기종들에 비해 저속선회력이 확연히 떨어져 그마저도 불가능 하게 되었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카미카제 뿐이였다.[92]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대전말이 아닐 수 없다. 참고 자료.

7.2. 길디 긴 항속거리

날개접기와 파일럿의 생존성, 날개의 내구도 등 전투기가 가져야할 필수적인 장치들을 포기하고 피탄면적이 넓은 날개에까지 연료 탱크를 탑재하는 자살행위를 해서까지 항속거리를 늘리려한 보람이 무색하지 않게 제로센의 항속거리는 단발단좌 전투기 치고는 굉장히 길었다. 어느정도냐면 미국의 쌍발 폭격기 B-25 미첼의 항속거리보다 증조탱크 없는 A6M2가 조금 더 길고 증조 연료탱크를 장착할 경우 미국의 4발엔진 중폭격기 B-17의 항속거리보다도 조금 길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로센은 단발단좌의 프롭기다.

이 장점이 진주만 공습을 포함한 여러 작전의 바탕이 되었고, 실제 전쟁 초기에는 이를 통해 이득을 보기도 하였으며, 길을 잃은 파일럿이 육지나 아군 항공모함까지 귀환할 확률을 높여주는 부가효과도 있었다.

이는 항공모함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고 전투기가 작전을 하려면 전투기의 작전지역으로부터 먼 거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진주만 공습 당시 미군은 일본기가 남서쪽에서 날아와서 그쪽을 집중수색했으나 실제로 일본군의 항공모함이 있었던 곳은 북서쪽 방향이었다.

제로센은 7시간 가량 체공이 가능했으며 이러한 장거리/장시간 비행능력은 실제로 대전 초반에 유효하게 작용했다. 대전 후반까지 일본기들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이점이 바로 긴 항속거리였다. 개량으로 인해 항속거리가 줄어들었는데도 필리핀 해 해전 당시 다른 기종들과 공격대를 구성해도 미군기에 비해 100km 이상 우위에 있었다. 때문에 연합군은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제로센을 만나기도 했다. 2,600 km에 달하는 장대한 항속거리 덕분에 제로센은 연합군 지휘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먼 거리에서 이륙해 타격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연합군 지휘관들은 골머리를 썩혔다고.

그러나 영국군과 미군은 레이더가 있었고, 전쟁 초반부터 성능을 열심히 개량한 덕분에 일본의 이런 노력은 시간이 갈수록 헛수고가 되어갔다.. [93]

그러나 고출력 엔진의 발달은 늦어지고, 업그레이드를 지속해가며 기체의 하중은 늘고, 늘어난 기체 중량을 엔진이 버티질 못하고, 적들의 항속거리는 길어지는 등 점차 퇴색되기 시작했고 전쟁 말이 되면 제로센의 임무는 본토방위가 되면서 긴 항속거리의 이점은 거의 사라진다.

또한 긴 항속거리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점도 적잖았다.

물론 그 첫 번째는, 과도할 정도의 경량화 설계와 함께 어우러져 제로센을 쉽게 타오르는 비행기로 만든 문제일 것이다. 즉 이미 위에서 언급되었듯, 자동방루 연료탱크와 같은 기본적인 방호대책도 없이 주익에 연료를 가득 채운 탓에, 다른 항공기라면 손상을 입고 성능이 저하되는 수준의 피탄을 당하는 것으로도 제로센은 불덩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제로센의 긴 항속거리는 언제나 장점만이 되지는 않았다. 물론 항속거리가 긴 것 자체가 일반적으로 모든 항공기에서 언제나 양날의 검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요구사항이 더 우선시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항속거리가 긴 것은 일반적으로는 언제나 장점이다. P-51에 '항속거리가 쓸데없이 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양날의 검'인 것은, 어디까지나 '제로센의 긴 항속거리'에 한해서이다. 왜냐하면 제로센의 길디 긴 항속거리는, 그러나 어디까지나 장대한 비행거리에 비해 상당히 느린 순항속도(200km/h대)에 의해 달성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제로센이 멀리 날 수 있던 이유는 출력 대비 연료효율이 딱히 좋거나 한 이유가 아니었다. 도리어 저성능의 엔진으로 멀리 날아가기 위해 순항속도를 굉장히 낮게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유럽에서 전투기의 순항속도는 적어도 300km/h에서 400km/h정도였고, 대전 후반에 가면 500km/h가 넘는 기종도 많다. 이 속도는 제로센의 최고속도와 비슷하다.

덕분에 긴 비행시간(최대 7시간)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인명 경시 풍조 중 하나였다. 오랜 시간을 날아가서 지친 채 교전에 임해야 하는 조종사들의 입장이 되어보면 안습상황이 되어버린다.

특히나 유명한 것이 과달카날 전투. 장거리 비행에 의한 조종사들의 피로율이 대단히 높아서 에이스 파일럿인 사카이 사부로조차도 피로 때문에 기종을 헷갈려서 와일드캣으로 착각하고 돈틀리스에게 후방으로 덤벼들었다가 후방기총에 공격당해 죽다 살아날뻔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94] 다만 이쪽은 기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기체가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조종사의 피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작전을 입안하고 실행한 일본군 지휘부의 문제가 더 크다. 물론 이 항속거리 자체, 군부의 요구사항으로 설계에 반영된 것이므로 어느 정도는 이렇게 쓰려고 극단적인 설계를 한 것이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도 사카이는 전투기의 항속거리가 중요하단 발언을 했다. 연료가 없으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제대로 전투를 할 수 없다면서 말이다. 물론 사카이가 그냥 고집때문에 저런 말을 한 것은 아니고, 사카이가 42년에 라바울 기지에서 근무할 당시 과달카날과 라바울을 왕복할 경우 과달카날 상공에서는 20분도 전투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연료가 부족해지면 진짜로 못 돌아가는 마당이니 조급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해당 인터뷰.

그리고, 구일본군약소열전의 제로센 편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 아무튼 이러한 긴 항속거리 + 느린 순항속도 = 기나긴 비행시간이라는 상황은 '인간'인 조종사에게 극심한 비행피로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데, 바로 '자연의 부름'[95]... 우스운 소리 같지만 '왜 쓸데없이 지저분한 이야기를 하느냐'는 식으로만 말 할 문제는 아니다. 안그래도 좁은 캐노피 안에서 소음, 진동 등 각종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것이 조종사의 상황이다. 거기에 생리현상까지 덤터기를 쓰면 사기와 전투능률에 좋을 턱이 있을까? 일례로 B-17이나 아브로 랭커스터 등의 장거리 중폭격기들은 보통 화학식 화장실을 갖추고 있었다. (시트가 달린 양동이 수준이기는 했지만.) 게다가 일본군 항공기도 일례로 H8K 비행정의 경우 상당히 제대로된 화장실을 갖췄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장거리 비행을 하는 폭격기나 초계기가 화장실 설비를 갖추는 건 사치가 아니다. 그런데 유럽전선에서 B-17의 경우, 폭장량을 2,000kg으로 제한한 '장거리 임무'의 거리는 보통 800마일, 즉 1280km 정도. 300km/h 남짓한 순항속도를 생각하면, 왕복 8시간 반 정도로, 과달카날 전투 당시 제로센의 비행시간과 큰 차이가 없다. 참고로, 영국군의 블렌하임 같은 경폭격기나, 미국군의 P-38, P-51, F4U, P-39 등 단좌 전투기의 경우에도 소변은 처리할 수 있는 파이프가 있었다고 한다. 이름하여 Relief Tube. 일본군에서도 96식 함전의 경우 동체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소변주머니 형태의 간이 장비는 갖췄다고 한다.(그리고 조종석 밖으로 투척!) 그나마 소변의 경우는 설비가 없다해도, 비행 중 캐노피를 열 수 있는 기종은 빈 봉지나 병에 담아 바깥에 내던지면 되었지만 전투 중에 공포로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경우들도 있어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소변은 그렇게 어찌어찌 한다고 쳐도, 확실히 단좌 전투기 사이즈가 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면... 매우 곤란한 것이 분명하다. 매우.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8-9 시간씩 비행해야 하는 장거리 폭격기나 초계기들은 화장실을 갖춘다...) 더 황당한 것은 작전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식음료를 비행기에 넣고 먹으면서 다니게 했는데 이러면 당연히 탑승 전에 대소변을 처리해도 장시간 비행 중 뭔가 나올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고고도에선 기압차로 인해 소변이 더 쉽게 마려워진다.

7.3. 우수한 지속 상승률

전쟁 발발시점에 배치되어 있던 제로센 21형의 분당 상승률은 해수면에서 2710~2750ft/min 으로 피크를 찍고 15000ft까지 2380~2480ft/min을 유지하며 이후 20000ft에선 1760~1810ft/min 수준으로[96] 당시로선 유럽 전선의 Bf 109 E 초기형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수준급의 상승력이었다. 반면 이후 태평양의 주도권을 두고 주로 전투를 벌이게 되는 상대인 와일드캣은 피크시에도 1820~1850ft/min 정도[97]에 불과했으며 P-39나 P-40계열기는 앨리슨엔진의 고질적인 문제 덕분에 저공만 벗어나면 힘을 못쓰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대전 초기 높은 지속 상승률을 통해 제로센은 적기를 상대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미군기들은 높이있는 제로센을 상대하기 위해 무리하게 에너지를 소모하며 상승하거나 전투를 회피하고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일이 잦았다.

게다가 태평양 전역 초기엔 아직 기체들의 중량이 가볍고 속도도 그다지 빠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추중비가 뛰어난 제로센은 에너지 면에서도 대부분의 적기를 상대로 우위에 있었다. 일본 해군의 에이스 중 한명인 토시유키 수에다 병조장은 제로센의 우수한 추중비를 이용해서 고각상승 → 따라서 올라가다 먼저 실속에 빠진 와일드캣에 사격 → 격추라는 방식으로 9기를 격추시켰는데 당시 미군기로서는 이런 에너지 트랩에 대응할 뾰족한 수단이 없어 제로기에 대한 환상만 늘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제로센의 높은 지속상승률을 '추중비가 높아서'라고 해석하는 것은 다소 부정확 할 수 있다. 이는 비단 제로센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 실제로 양력에 도움 없이 엔진의 추진력을 자체를 통한 '추력상승'이 가능한 현대의 제트기와는 달리, 제트엔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무척 낮은 출력의 엔진으로 날아다니던 프롭시대 전투기에 '추중비'라는 개념 자체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98]

이는 2차 대전시기 주요 전투기들의 (추중비 Thrust-to-Weight ratio가 아니라) 마력기준의 '출력 대 중량비'(Power/Mass)와 상승률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제트전투기들이 대체로 추력-중량비의 차이와 상승률의 차이가 거의 일치하는 데 비해, 2차 대전시기의 레시프로 전투기들은 출력 대 중량비의 차이와 상승률의 차이는 다소 독립적이다. 일례로 제로센의 출력-중랑비는 파운드당 0.18마력인데 비해, 헬캣, 콜세어 그리고 P-38의 파운드당 0.16마력 정도로 비슷한 편이다. 그러나 최대상승률은, 제로센 (21형)이 15.7m/s인데 비해, 헬캣은 17.8m/s, 콜세어는 19.7m/s, P-38은 24.1m/s이다. [99]

또한 제로센이 '에너지'면의 우위를 지닌다는 것도 약간 부적절한 해석일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속도로는 엇비슷하고 중량은 더 가벼운 제로센이 보유할 수 있는 '운동에너지 총량'에서 우위를 지닐 수는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f=mv2. 대전 초반의 미 주력 함상기인 와일드캣과 비교해도, 수평비행 속도는 거의 비슷하고, 급강하속도/한계속도에선 와일드캣이 100km 이상 빠르며 (629km/h vs 772km/h[100]), 중량 또한 1/3 가까이 더 무겁다. 즉 '총 운동에너지량' 자체는 와일드캣이 더 많이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로센의 공중기동에서의 우위를 '에너지면에서 우위를 지닌다'고 해석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한 해석이다. 사실 경량화는 어쩔 수 없었다쳐도 그 과정에서 기체강도의 부실로 인해 급강하 속도가 크게 제약되는 점 때문에 제로센은 '에너지' 면에서는 반대로 불리한 기체라고 봐야한다.

제로센이 지속상승력으로 상대를 스톨상태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은, 거꾸로 제로센의 실속 속도가 그만큼 낮다는 뜻이다. 즉 이는 추중비나 보유 에너지량의 우위에 앞서, 역시 경량화된 기체와 상대적으로 훨씬 넓은 익면을 통한 '저 익면하중 설계'의 결과가 더 중요한 측면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달리 말해 설령 제로센이 지속상승력에서는 확고한 우위를 가지고 있는 기체들에 대해서도, 한계속도(초과금지속도)가 낮은 제로센의 경우, '붐 앤 줌' 전술에서 급강하 자체 만이 아니라, 줌 상승과 같은, 급강하 가속을 이용한 타력상승에서도 제로센이 상대 기체에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 이것이 아직 헬캣 등이 배치되기 이전의 태평양 전장에서도 미군이 저속 선회전을 회피하는 전술교리를 채택한 이후 제로센의 우세가 급속히 무너지는 이유이다. 즉 제로센은 급강하로 퇴피하는 적기를 계속 추적하는 것도 그리고 그 적기가 줌 상승하는 것도 따라가기 곤란하다는 것.

그러나 42년 말 미해병 항공대에 F4U-1 콜세어가 43년 초에는 미해군 항공대의 F6F-3 헬켓이 각각 나타나면서 이러한 우위들은 의미를 잃게 된다. 콜세어와 헬켓은 2000마력급의 엔진과 5톤이 넘는 전비중량, 제로센을 압도하는 속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속 상승력면에서도 제로센과 거의 비슷해졌으며[101] 무엇보다 속도와 무게를 이용한 급격한 줌상승 능력을 이용해 오히려 제로센을 단기간의 수직기동으로 압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제로센은 기체의 경량화로 추중비를 높여 속도와 상승력을 얻었지만 덕분에 동등한 속도에서 기체가 품을 수 있는 에너지도 적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속도가 느리고 추중비가 심하게 떨어지는 와일드캣같은 기종을 상대로는 에너지트랩을 걸며 농락할 수 있었지만 5톤이 넘는 기체를 막강한 출력의 엔진으로 가속시키는 헬켓과 콜세어를 상대로 에너지트랩은 자살행위에 불과했다. 실제로 상기한 토시유키 수에다 병조장은 10번째 기체로 와일드캣이 아닌 헬켓을 만나 와일드캣에 하듯이 에너지트랩을 걸었다가 사망하고 만다. 추중비의 우위는 지속상승 속도 이하의 영역, 즉 공중에 메달린 저속 상태에선 상승력에서 우위를 가지지만 그 이상의 속도에선 얼마나 에너지를 품고 있는지가 상승력을 판가름하게 되는데 제로센은 태생적인 한계로 에너지 잠재력이 떨어져서 저런 신형 미군기들에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거기다 수평속도의 우위 덕분에 지속적인 상승이라도 최적 상승속도로 고도를 높이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거리를 벌리면서 상승하는 고속 상승에서는 콜세어나 헬켓이 우위에 있었다.[102]

거기다 대전말이 되도록 지지부진한 제로센의 상승력과는 달리 44년 말에는 115/145 옥탄유를 넣고 4770ft/min의 상승력을 기록하며 20000ft까지 4.9분만에 상승하는 F4U-4같은 괴물기체[103]들이 나타나면서 제로센의 상승력 우위는 먼 옛날의 환상같은 것이 되고 만다. 심지어 쌍발기인 F7F-1 조차 4360ft/min[104] 이었는데 동시기의 제로센 52형은 3340ft/min 정도였다.[105]

8. 바리에이션

개전부터 종전까지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로 사용되었기에 바리에이션이 다양하다. 육상기지 특화형, 수상기, 카미카제 특화형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가지고 있다.

뒤에 붙는 두 자리 숫자는 첫번째가 기체 버전, 두번째 숫자가 엔진의 버전이다. 52형이라고 하면 기체 ver 5+엔진 ver 2라는 의미. 이걸 알고 있으면 22형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8.1. A6M1

제로센의 프로토타입.

8.2. A6M2 11

중일전쟁에 투입되어 최초로 실전을 치룬 제로센이 이 타입이다.

엔진을 스이세이에서 사카에로 교체, 780 마력에서 940 마력으로 출력을 끌어올렸다.

8.3. A6M2 21

항공모함에 알맞게 개량이 가해진 기종. 태평양전쟁전부터 생산을 시작하여 개전 초 420대가 배치되어 있었으며,이후 총 3500기 가까이 생산되어 가장 많이 생산된 기종으로 태평양 전쟁 초기 주력으로 사용된 기종이다. 새하얀 동체에 붉은 줄이 한줄 그어져있는데 대장기는 이 줄이 푸른색인 것이 일반기와의 구분점.

그리고 날개 끝만 접히는 제로센 특유의 날개 변형 기구가 바로 이 기종에서부터 나타난다.

8.4. A6M2-N 'Rufe'

제로센의 수상전투기 버전. 2식 수상전투기라고 부르며 연합군 코드네임은 Rufe(루페).

라이벌 와일드캣의 수상기버전 '와일드캣피쉬'의 원본이 된 기체이며, 의외로 일본군은 이 기체에 재미를 봤는지 한두기 만들고 끝난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생산해 전쟁터 곳곳에서 수상기모함 등과 함께 활약했다.

단순히 제로센에 플로트만 단 것이 아니라, 부식에 취약한 마그네슘 부품을 제거하고 이런저런 곳들을 손본 기체며 생산한 회사까지도 바뀌었다. 기종명의 끝에 붙은 N이 이 기체를 생산한 나카지마. 또한 이 기체가 바로 N1K 쿄후의 조상뻘 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그 쿄후를 개량한 기체인 시덴의 할아버지격 되는 셈.

8.5. A6M3 32 'Hamp'

엔진이 2단 슈퍼차저가 장착된 1130마력의 사카에 21 엔진으로 교체 된 형식.

가장 큰 구분점은 주익 형상의 차이. 날개 끝단을 접어올리는 구조를 생략하고 날개 길이 자체를 줄여버렸다는 점이 A6M2 21형 및 A6M3 22형과 쉽게 구분된다. 날개의 형상이 변경되고 에일러론이 개량되어 최고속도와 (시속 250km 이상에서의) 롤 능력 등이 증가했으나 익면적이 줄어들어 익면하중이 높아진 덕에 장기이던 선회력은 소폭 감소했다.

더불어 이전 형식의 제로센에 비해 최대 행동 반경이 줄어 21/22형의 항속거리 기준으로 작전하다 연료 부족으로 불시착하는 난감한 상황이 종종 발생했는데, 원인은 바로 바로 위에 설명된 엔진의 교체와 날개 형상의 변경.

애초에 개량 당시 "날개를 꺾이게 만들지 말고 그냥 엘리베이터에 맞는 폭으로 짧게 만들면 되잖슴?" 할때 설계자인 호리코시 지로 본인이 "날개 형상이 변하면 공력 특성도 변하므로 함부로 손대면 안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할수 없다."고 했음에도 설계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개량작업을 강행했다고 한다(...).

결국 뒤늦게 일선에서 "신형 제로센 몰아보니 항속거리가 확 줄었음! 어찌된거임?!" 하고 난리가 난후에 문제 해결에 골몰했으나 결국 주익의 재설계 외에 다른 답은 없었고 이미 생산되어있는 32형은 상대적으로 필요 행동반경이 적은 육상기지 위주로 운용하는 수 밖엔 없었다. 덕분에 1942년 4월 부터 본격적으로 생산, 배치되기 시작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인해 특히 과달카날 전투를 비롯 솔로몬 제도 인근에서 벌어진 주요전투에 제대로 투입되지 못했다.

다만 속력이 기존 제로센에 비해 조금 더 빨랐기에, 라바울에서 통상적인 임무시 이 기체만 탑승한 파일럿들이 몇몇 있다고 한다.

연합군은 이 기체와 마주치고 '어, 쟤들이 새 전투기를 만들었군!'라고 생각해 얘 혼자만 Hamp(햄프)라는 코드네임이 따로 붙여져있다.[106] 나중에 제로센의 바리에이션인 것을 알고 수정하긴 했다 카더라.

8.6. A6M3 22

넘버와는 달리 A6M3 32형보다 뒤에 등장한 버전으로 1942년 12월부터 배치되기 시작했다. 32형에서 주익 형상 변경으로 발생한 선회력 감소와 특히 항속거리 단축 문제 해결을 위해 '개량'된 버전인데... 사실상 32형의 동체에 21형의 살짝 접히는 긴 날개를 다시 붙인 버전 = 엔진이 강화된 21식 정도라고 보면 된다.

'갑형'부터는 주익의 20mm 기관포를 느린 탄속 등으로 불평이 많던 99식 1형에서 성능이 향상된 99식 2형으로 교체해 개선했다.

8.7. A6M4 41

A6M3의 개량형으로 개발되던 기종. 그러나 엔진에 문제가 생겨 취소되고 아래의 A6M5로 넘어가게 된다.

8.8. A6M5 52

43년 8월에 등장하여 총 2000여기 가까이 생산되어 대전기 제로기중에 가장 많이 생산되었다.

32형과 같이 날개 길이를 줄이고 주익 끝단의 접이식 구조를 생략했지만, 날개 끝단이 직선적인 형태로 잘려 있던 32형과 달리 22형과 같은 유선형으로 재설계한 날개가 달렸다. 주로 무장강화에 치중한 개량 작업이 가해져 필연적으로 중량이 증가했지만 집합식 배기관등의 소소한 개량작업을 통해 A6M3 22/32형과 같은 엔진을 사용하면서도 최대속도는 오히려 조금 올라갔다. 무장에 따라 몇개의 파생형으로 구분한다. 52b부터 무장이 개선되어 [107]기수의 기관총 장비가 7.7×2 에서 13.2×1로 바뀐다. 52c부터는 동체 후방에 방탄판를 장착하고 방풍유리가 방탄유리로 교체되는등 조치가 취해진다. 또 양 날개에 13.1mm 기관총이 추가되어 화력이 증강된다. F6F 헬캣F4U 콜세어에게 맞서기 위해 개량된 기종이다. 또 동체하부에 250kg짜리 폭탄을 장착할 수 있게 되었다.

주목할만한 강화점이 있다면 바로 기골 내구성 향상. 파일럿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인해 시덴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급강하 내구성을 확보해 이전보다 일격이탈 능력이 훨씬 좋아졌다.

하지만 무장과 내구성 등이 향상되었어도 이 정도로는 소위 제거자지옥고양이에게 우세를 점하기는 당연히 부족했고 장점이던 기동성마저 크게 저하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도 여전히 익면하중이 매우 가벼운 편이어서 헬켓에 비해서 순간선회력의 우위를 가질 수 있었지만, 문제는 엔진 추력이 두배 가까이 차이나는지라 선회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잃어버리는 에너지를 상쇄하지 못하는 탓에 이점을 상실했고, 여전히 무전기는 시궁창이라 대규모 난전에선 장갑이 튼튼하며 무전기가 제대로 된 헬캣이 훨씬 우세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본제 무기를 함부로 신뢰하면 곤란합니다[108]

8.9. A6M5c 53c

자동방루연료탱크 등의 안전장치들이 추가로 도입된 기종.

8.10. A6M7 62

전체적으로 여러 스펙은 A6M5과 큰 차이 없는 기종. 45년 5월에 등장한 최후기 생산형이다. 동체밑에 폭탄 랙이 추가되어 500kg짜리 폭탄을 장착할 수 있게 하여 전폭기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카미카제용으로 쓰기 위해서 이런식으로 개량했다는 소리도 있다.

8.11. A6M8 64

최후기 개발 모델. 45년 4월에 최초로 날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A6M5 54형의 파생형인 54c와 동일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특이하게도 사카에 엔진이 아닌 킨세이 model 62형 엔진을 달았다.

9.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구 일본해군 전투기의 주력이었기에, 2차대전 비행기가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높은 확률로 구 일본 해군 항공대나 플레이어의 주력기체로 등장한다. 2차대전과 별 상관이 없는 작품에서도 종종 얼굴을 내비친다.

9.1. 게임

  • 본격 일본군 미화 게임인 대제국에서도 등장한다. 몇 곳을 점령하다 보면 항공모함 개발 이벤트가 뜨는데, 여기에 탑재된 함제기가 제로센이다. 즉 이 게임에서 제로센은 우주 전투기인 것이다!!!! 우주용이라 그런지 아니면 게임 연출상의 문제때문인지 성능은 타국 전투기에 비해 뒤지지 않는 듯 하며, 네임드 등장인물인 시바가미 같은 경우는 복장도 제로센 파일럿 복장에, 이게 개발되었을 때 테스트 파일럿이 되는가 하면 나중에는 함대 지휘관 주제에 제로센을 타고 출격하기도 한다. 나중에 미카도가 아군에 참전하면 함대 지휘는 미카도에게 맡긴 채 마음놓고 출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 메달 오브 아너 : 퍼시픽 어설트에서도 적으로 등장한다. 이 게임의 고증이 돈틀리스가 어뢰에 폭탄 4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수준으로 해놓았다(…). 돈틀리스의 폭장량은 많아야 1000kg인데 어뢰는 그보다 더 무겁다. 때문에 톰슨 기관단총 단 한방에 엔진에서 불을 뿜으며 떨어진다.
  •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에서는 미군 측에서 제로센을 불렀던 별칭 중 하나인 지크(ZEKE)라는 이름을 붙인 메탈기어 지크라는 메탈기어가 등장하는데... 패턴만 제대로 파악하면 알라의 요술봉만으로도 보스전에서 충분히 쌈싸먹을 수 있다. 문제는 지크 제작팀의 일원인 휴이가 제로센을 우수한 해상전투기라고 소개하며 위 이름을 붙였다는 것(…). 스트라이커즈 1945와 동일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팬텀 페인에서 휴이의 성격이 제대로 드러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절묘한 소개였다.
  • 문명 5 : 일본 문명의 전투기 대체 유닛. 무려 전투기에 대한 상위상성 유닛이다.(...) 아마 대전 초기에는 미군의 공포였다는 것을 반영한 것 같다. 더불어 제작 및 유지에 석유가 들지 않는다. 송진으로 날아다니나?(...)
  • 스트라이커즈 1945에서는 플레이어 기체로 등장. 저속의 파워형 기체 . 물론 설정상으로는 2차대전 이후 인류의 존망이 걸린 싸움이라 연합국과 추축국이 같은 편이어도 문제가 없지만…(?)
  • 에이스 컴뱃 X2에서는 높은 기동성을 가졌으며 제로센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명전투기라고 소개되어있다(…). 물론 반어법이다.[109] 덤으로 최악중 최악의 방어력으로 방어력이 하락하는 플랩 등을 끼면 익스트림에서는 대공기관포에 원샷원킬당한다! 참고로 F4F 와일드캣은 그럭저럭 양호한 방어력이다.설명은 좋게 해주겠지만 성능은 쓰레기로 만들었군?
  • 워 썬더에서도 일본군 소속 전투기로 등장. 고증대로 선회력 좋고 내구력 약한(잘 탄다) 전투기로 등장한다.물론 플짤에서 보면 PBY 카탈리나 날개도 자르는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매 형식마다 티어는 올라가지만 딱히 크게 달라지는 점이 없기 때문에 몇몇 유저들은 "변하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BR값만 오른다."고 불평하기도 하는 기체다. 어째 고증대로 저티어 시절에서는 활약할 수 있지만 고티어가 될 수록 활약하기 힘들어진다는 점도 특징. 저티어 전투 때는 상대 뉴비들이 하도 선회전을 걸어대는 바람에 미친듯이 킬을 올릴 수 있다. 7밀리로 좀 패다가 기수 살짝들고 20밀리를 쏴주면 죄다 분해된다.
프리미엄 기체로 일본 트리에 A6M5 갑형이 있으며, 미국 트리에 위에서 설명한 아쿠탄 제로 A6M2가 있다.
  • 월드 오브 탱크로 유명한 워게이밍의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는 일본군 소속 전투기로, 4티어부터 등장한다. 고증대로 선회력이 동급 전투기중 최상위를 달리는데 반해 체력이 동티어 전투기들의 절반이다(...). 방어력이 낮지만 선회력을 살려서 안 맞고 싸워야 하는 점을 잘 살렸다고나 할까. 때문에 대공포와 후방기총 장착 전투기에게는 취약하다.
  • 같은 회사의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5티어 항모 즈이호가 A6M2를, 6티어 류조가 A6M2를, 7티어히류가 A6M2와 A6M5-C를, 8티어 쇼카쿠가 A6M5-C를 편대 함재기로 운용 가능하다. 또한 순양함과 전함?(6티어 순양함 아오바, 추가 바람)에서는 수상기형 전투기인 루페를 사용할 수 있다.
  • IL-2 비행슈팅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Pacific Fighters 애드온을 설치하거나 1946 버전을 플레이하면 등장하는데, 태평양 전쟁 캠페인에서 미 해군을 선택하면 적으로 마주칠 수 있다. 실력이 조금 된다면 의외로 와일드캣으로 쉽게 격추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도 미 해군에서 타치 위브 등의 대응전술이 개발되자 제로센과의 격추비율이 크게 감소했다.
반면 일본군으로 선택하여 제로센을 몰다가 전쟁 후반기에 들어서면 저 멀리 도망치는 핼캣을 보며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반면에 미군으로 하면 아군 AI들이 전부 잡아버려서 내가 할 일이 없어진다...
  •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에서 추축군 일본 트리의 주 기체트리중 하나로 등장한다. 맷집이 낮다는 점을 충실히 반영했는지 42 레벨 이전 기체는 방어력이 복엽기랑 동급으로 다른 국가의 전투기라면 끄떡없는 공격에도 피가 죽죽 다는 저주스런 종이비행기 맷집을 자랑한다(...). 심지어 에이스 난이도쯤 되면 아무리 중장갑을 장착해도 적 전투기의 로켓 한방에 격추당하기도 한다.진정 제로센 매니아라면 경량화 장갑(전투기의 HP를 다소 내리는 대신 기동과 속도가 올라가는 장갑)을 장착하고 출격해보자 다만 기체 특성상 속도, 기동이 높기 때문에 엔진과 장갑을 적절히 맞추고 스킬 등으로 회피기동을 시전한다면 그럭저럭 운용할 수 있다. 특히 요주의해야 할 것은 함선의 대공포. 기본적으로 HP가 낮은 제로센의 특성상 대공포에 잘못 걸리면 말그대로 훅 간다. 에이스 난이도쯤 되면 문자 그대로 한 대도 맞지 않을 자신으로 운용해야 미션을 깰 수 있다. 적의 공격이 강해지기 때문에 루키나 베테랑처럼 맞아주면서 플레이하면 금세 기체가 걸레짝이 된다.
  • 블레이징 엔젤스에서 진주만부터 라바울 공습까지 주구장창 나온다. 공격력이 무진장 강력해서 사람 뒷목 잡게 하는 요소 중 하나. 반대로 방어력이 나빠서 쉽게 격추시킬 수는 있다. 문제는 일본군 나오는 미션이 일본군 때려잡기보다는 아군 편대나 지상군 보호인지라...동작의 낭비가 심하면 앗 하는 사이에 제로기들이 보호 시설을 긁고 지나가고 게임오버. 목표에 접근하기 전에 격추시킨다는 생각으로 플레이해야 부담을 줄일 수 있다.
  •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도 등장. 일본의 초기 방공전투기로 나온다. 게임 특성상 그럭저럭 쓸만한 전투기다. 애초에 항공기의 주력은 뇌격기와 급강하라 잘 안뽑으니 문제지
  • 웹게임 함대 컬렉션에서도 항공모함 칸무스가 탑재할 수 있는 함상전투기로서 등장. 상대 함재기와 싸워 제공권을 차지하는데 필요하다. 레어도도 보통 레어에 항공모함을 개장하다 보면 쉽게 모이는 편이라 꽤나 널리 쓰인다. 다만, 개발을 하다보면 나오는 상위 함전이 모이게 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홋포쨩이 이걸 달라고 한다
  • 레드얼럿3에서 욱일 제국스킬중에 제로센들을 소환해서 기관총 난사시키다가 그대로 적진에 꼴아박는다.본격 일본 제국과 카미카제 디스

9.2. 애니메이션 & 라이트노벨

  • 미나가와 료지의 만화 드라이브(만화)에서는 에어쇼에 쓰기 위한 제로센이 등장한다. 물론 에어쇼에 쓸 것이기에 온갖 마개조를 해두었고, 더군다나 조종사가 탈것 마스터 주인공이라 제로센 한 대로 P-51 머스탱 세 대를 격추시켰다.
  • 우주전함 야마토에서 야마토의 함재기 이름이 코스모 제로, 영식 52형 공간 함상 전투기이다. 야마토 하나라면 어떻게 군국주의 떡밥을 피해 갈 수도 있겠지만 함재기까지 이래서야.
  • 제로의 사역마에서 히라가 사이토가 초기부터 사용하는 병기로 등장하였다. 그쪽 세상의 시대가 시대인데다, 국뽕이 들어간 보정을 좀 받으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등장하면 적군이 벌벌 떠는, 지랄맞게 강한 전투 병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구려도 근대 병기. 근세 수준의 기술력으로는 상대가 안되는 게 당연하다. 애초에 전간기나 1차대전 전투기를 가져와도 제로를 이기기는 힘들다. 다만 화포를 장착한 공중전함이나 화룡을 상대로는 스치기만 해도 격추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고전하는 면모를 보인다, 뭐 그래봤자 스피드와 간달브 보정으로 모두 다 때우지만.

거기다 간달브의 능력을 생각해본다면 사이토는 거의 일류급 파일럿. 역으로 생각하면 제로센이었기 때문에 중세에서 활약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일단 가볍고 느리게 비행이 가능하다. 해당 세계의 적들에게 맞춰서 느리게 날아도 실속할 염려가 적다는 것이다. 물론 용들 입장에서 시속 100km는 절대 느리지 않겠지만. 단 몸이 가벼운 풍룡을 탄 에이스 라이더인 왈드는 어느정도 제로센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하더라도 용의 브레스가 바람 속성이라 제로센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긴 무리였고 결국 간달브 보정을 못이기고 격추당하긴 하지만...이 세계관에선 세스나 라던지 심지어 안둘기를 타도 무쌍을 찍을 수 있다.또 연료를 많이 실을 수 있으며 선회전 소화를 하기 쉽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에서조차 무사히 착륙 못하고 걸레짝이 되어버렸으니 의외로 재현도는 높을지도?! 그런데 이는 제로센의 내구력 문제가 아니라 정비를 맡은 콜베르가 분해했다가 다시 재조립했는데, 문제는 조립 도중 부품이 남아버렸다. 즉 정비불량이 원인. 근데 이런 건 애니메이션 한정이고 원작에선 아직 건재. 단지 배경이 트리스테인을 벗어나면서 연료문제와 운송문제의 불편함때문에 트리스테인에 그대로 나두고 왔으며 갈리아 내전에선 대신 티거 전차가 활약한다.데르플링거도 말했듯이 불이라도 살짝 붙었다간 터져죽었겠지만 다행히 1킬 때는 바람 마법으로 피탄당한 것이라 불이 붙지 않았다. 해당 매체에서 용이라 표현했던 것은 한자로 辰(12간지의 다섯번째. 용을 상징한다.)이라 써져 있던 것도 원인. 또한 작중 설정상 이세계에서 그 시대의 가장 강한 병기들항공모함은?이 넘어온다는 설정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제로센이 높게 평가받던 1930년대 즈음에 건너온 기체인듯하다. 하지만 정식채용은 1940년인데? 근데 가볍고 선회력 좋은걸 탈꺼면 복엽기가 낫지않나..? 아니 bf 109랑 스핏파이어도 같은시기 전투기인데?
  • 칼 이야기의 등장인물 우네리 긴카쿠의 거합술의 명칭은 영섬(零閃)이라 쓰고 '제로센'이라 읽는다. 이 영섬 5연발 공격의 명칭은 '영섬 편대 5기(機)', 10연발은 10기. 명백히 노린 작명이다.
  • 코펠리온 3부에서 주인공 이바라가 번아웃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아리사'가 제로센을 '자유자재한 조종성, 겨우 시속 500km/h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경량 동체, 추가 급유 없이 2000km 이상 날아가는 경이로운 항속거리'라고 찬양 수준으로 설명하는 모습이 나온다. 하도 찬양할게 없어서 시속 500km를 찬양해야하는 슬픈 현실 시속 750km에 3000km가까운 항속거리를 가진 머스탱은 UFO인듯.
  • 함대 컬렉션 애니메이션의 1화에서는 태평양 전쟁의 함선을 다룬 게임이라 그런지 1화부터 제로센이 등장한다.

9.3. 영화

  • 최후의 카운트다운(The Final Countdown)에서도 2기가 등장. CAP 임무를 수행하다가 민간인(물론 안에는 미국의 상원의원이 타고 있었지만) 보트를 공격하다가 F-14 톰캣에게 모두 격추당했다. 하나는 M61에 맞고서 연막연기를 뿌리며 바다로 추락하고, 다른 한기는 AIM-9에 맞고서 박살난다. 제로센 따위에게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무기다(...). 그냥 가깝게 스쳐가기만 해도 후류로 날려버릴듯... 놀랍게도 F-14의 꼬리를 한번 물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F-14가 너무 빨라서 제로센을 지나쳐버린 것이라서, 그 직후에 꼬리를 도로 잡혔다. 물론 F-14 에게 기관포도 쏘긴 하는데 모두 빗나간다. 제로센이 너무 느려서 뒤를 잡으려던 F-14가 실속에 빠지기도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가까스로 추력을 되찾아 추락은 면한다.
  • 제로센을 중심 소재로 한 영화『영원의 제로(永遠の0)』가 2013년 12월에 일본에서 개봉했다.홈페이지 내용 자체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연히 현 할아버지는 재혼한 사람이고 전 진짜 할아버지가 있다는걸 알게되고 조사하는 손녀와 사법고시 4수생 손자 이야기다. 조종사의 행적 이야기만 나와서 제로센에 관해선 자세하게 나오진 않지만 나중에 가면 기체의 발전이 없어 미국의 발전된 대공포화와 전투기에 대항하기 어렵다는게 나온다. 카미카제의 안습함도 같이 나온다.

  • 울트라맨 80 41화에도 소재로 등장한다.다만 제로센은 짱짱! 이란 국뽕맞은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제로센 RC모형을 좋아하는 소년 이야기지만 소재가 소재인지라 불편할 수 있는것은 사실. 사실 이야기 자체도 그닥 미묘한 편에 80도 등장하자마자 괴수가 걍 탈주해버리는지라 스킵해도 내용 이해하는데 지장은 없다.판단은 알아서.

근데 무지막지한 물량은요?

10. 기타

  • 소녀시대 미니앨범 2집 자켓에 제로센이 등장함으로 인해서 소시갤코갤러에게 정ㅋ벅ㅋ당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기체를 T-50으로 교체하는 소동을 겪었다. SM은 이 사건으로 대차게 까였다. 왜 하필이면 제로센이었을까... [113]
  • 샤먼킹 플라워즈의 등장인물인 '사쿠라이'가 이 제로기에 탑승하여 전투 중 미간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
  • 제로센은 단순히 일본 해군 항공기의 상징을 넘어서 일본군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2차대전 피해국가에선 보통 제로센만 꺼내도 일본에 대한 비판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또 인지도만큼 관련된 자료나 일화, 등장작품이 많고 그만큼 서술할 내용도 많다. 일본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일본군 전투기 하면 죄다 제로센을 생각하는 경우가 흔해서 그냥 일본군 전투기=제로센이란 인식이 있다. 나무위키에서도 나름대로 육군의 상징이라던 Ki-43 하야부사보다 항목이 엄청나게 길다.

  • 2016년 5월 3일에 중일전쟁부터 진주만 공습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투 등을 거친 마지막 제로 에이스인 하라다 카나메가 사망하였다. 생전 인터뷰. 노년에도 가끔 전쟁에 대한 악몽에 시달린다고 하며, 전쟁영웅이란 호전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추락하면서 적기 조종사는 날 다시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모두가 마지막 순간 '오카상(어머니)'을 외치더군요. 그런 전쟁을 또 하려 합니까." "일본은 전쟁에 패하고 평화를 얻었어요." 등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 2016년 1월 27일에 일본인으로써 유일하게 현존하는 제로센 오너인 이시즈카 마사히데가 처음으로 시험비행을 실시했다. '전쟁 이후 최초의 일본인에 의한 제로센 비행'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전국의 항공덕후 들이 비행장면을 보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이시즈카는 "제로센을 전쟁의 상징이 아닌 일본의 기술력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다."라고 밝혔으나 일본 국내에서조차 정작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은 "전쟁찬미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불쾌감을 표하고 있다.
  • 제로센 냄비(ゼロ戦鍋)라는 물건이 있다. 태평양 전쟁 패망 직후, 제로센을 만들던 미쓰비시社에서 제로센을 만드는데 쓸 예정이었던 두랄루민 금속으로 냄비를 만든 것. GHQ에서 배급으로 나누어준 밀가루를 써서 빵을 굽는데 많이 쓰였다고 한다. 오키나와에서는 오키나와 전투로 가재도구를 모조리 잃어버린 주민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던 전투기 잔해를 뜯어가서 냄비, 솥, 주전자 등으로 재활용하여 요긴하게 사용했다.

11. 다듬는 과정에서 임시 갈무리

저익면하중기의 특성상 순항속도가 낮아졌고(200km/h) 통상 순항속도가 낮아지면 항속거리당 연료소모율이 비례해서 줄어든다. 당연히 동 시기의 Bf109나 스핏파이어처럼 3~400km/h의 순항속도로 날면 최적 순항속도에서 벗어나므로 항속거리는 이 두 기종보다 더 짧아진다. 사실, 그러한 문제가 초기 제트기 시기에 나타났는데 당시 제트 엔진의 불량한 연비와 약 2배로 높아진 순항속도로 인해 제트기의 항속거리가 레시프로기에 비해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애당초 민간 기술이 뒤떨어졌기에 일본의 기술력은 모든 면에서 동맹국인 독일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이탈리아에게도 뒤쳐졌다. 호구 취급받는 2차대전 이탈리아군이지만, 전투기의 성능 자체는 꿀리지는 않았다.[114]

원래는 항공모함 운용을 전제로 개발되었으나, 일본이 여러 섬을 점령하면서 섬에 건설한 육상기지에서도 많이 운용되었다. 유명한 제로센 에이스 사카이 사부로가 대표적인 육상기지 요원이었다. 또한, 바퀴 대신에 플로트 장비를 한 수상기 버전(2식 수상전투기)도 존재한다.

후기의 몰락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아시아인들을 바보 취급했던 유럽인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준 측면도 있다. 대전 초기에는 거의 UFO 수준 취급을 받아 미 해군 항공대 조종사들이 아예 공포에 질렸을 정도였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수많은 베테랑 제로센 파일럿을 고기밥으로 만든 기동전법인 타치 위브를 고안한 와일드캣 에이스인 타치 대령이란 인물이 있었다. 미드웨이 당시 소령, 이후 2차대전의 전공을 인정받아 해군 대장까지 진급했는데 이 사람이 위에 언급했던 보고서에서 "제로센은 외계인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만든 전투기였다."고 보고했을 정도.

그리고 제로센은, 강력했던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다는 점과 남방사령부의 유능한 에이스 파일럿들이 탔다는 이유로 인하여 전후 일본 사회의 자존심 회복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여기서 끝났다면 지금까지 심심찮게 까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컨셉 자체가 선회전 위주의 기동성을 중시했던, 전형적인 1차대전식 전투기였다는 것이다. 사이가 안좋은 육군도 1차대전식 전술로 사람들을 갈아넣더니만… 원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기술상의 문제로 나무로 만든 뼈대위에 천을 씌운 형태로 제작되었기에[115] 기체 강도도 모자르고 엔진 출력도 모자라서 충분한 속도와 상승력을 확보할 수 없었기에 저속 선회력이 중시됐었다. 그렇지만 1차 세계대전후 기술이 발달하면서 고출력의 엔진과 비행기에 사용할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경합금이 등장하면 속도와 상승력의 중요성이 높아졌는데 이걸 놓친(혹은 무시한) 설계의 결과가 제로센이었다.

당시 일본 제국 특유의 엄청난 인명 경시 사상과 결합되다보니 군용으로 써먹기엔 너무나 허약한 방어력을 가진 기종이 되어버렸다. 사실, 대부분의 항공 전문가들은 제로센을 가리켜서 '공격말고는 신경도 안쓰는 전투기'로 평한다. 이는 제로센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조종사라는 귀중한 자원을 이런 위험에 노출시킨 것은 실로 어리석은 처사였다고 평한다.

거기다가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더 있는데, 고속으로 비행하면 조종 계통의 결함으로 기체의 선회가 급격히 힘들어져서 고속으로 비행하면서 전투하는데 심각한 골칫거리가 되었고, 이 부분은 미군의 연구에서도 전투시에 당시 서방권 전투기의 전투 속도인 480km/h를 상시 유지할 것을 권고하는 데서도 나와 있다. 심지어 개전 초기인 P-40 워호크F4F 와일드캣 같은 전투기들도 제로센보다 급강하 성능은 좋았으므로 솜씨있는 조종사라면 충분히 호각으로 겨룰 수 있을 정도였다.

참고로 플라잉 타이거즈는 제로센과 교전했다는 보고를 올린 적이 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말이다. 당시 플라잉 타이거즈가 배치된 지역에는 일본 육군 항공대만 있었기 때문에 해군 소속인 제로센과 교전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일본 육군 항공대의 전투기들도 제로센처럼 저속선회 성능이 미군 전투기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대응 전술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일본 육군 항공대의 구형 전투기는 고정식 랜딩 기어이고 신형 하야부사는 인입식으로 플라잉 타이거즈가 이 신형기를 마주하면 사전정보가 없어서 제로센이라고 보고했을 것이다. 참고로, 하야부사의 외형과 비행 성능은 제로센과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화력이 기수부의 7.92mm 기총 두 정으로 빈약했으며, 초기 모델은 광학식 조준기도 없이 망원경으로 조준했다.

제로센이 이토록 방어력을 희생한 것은 당시 일본의 공업능력 탓에 부족한 엔진성능에 비해서 무리할 정도의 카탈로그 스펙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제로센은 즈이세이 엔진을 사용한 초기 프로토타입이 780마력, 사카에 엔진으로 교체한 양산형 21식은 940마력, 대전 중후반의 52형조차도 1,200마력을 달성하지 못할 정도로 출력이 낮았다. 하지만 제로센에 요구된 스펙은 동시대의 1,200마력대 엔진을 장착한 타국의 기종에 준하거나 일부는 초월하는 스펙이 요구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골조에 구멍을 뚫고, 가볍지만 강도가 충분치 않은 재질을 사용하고, 기체의 장갑을 얇게 만들고, 조종석의 방탄 장갑과 같이 기초적인 안전장치마저 제거하는 등 무리할 정도로 방어력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기체의 무리한 경량화와 선회전에 치중한 설계는 단순히 기체의 내구력만 저하시킨 것이 아니라 이후의 개량까지 거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아 버렸다.

여기에 기체의 생존성을 추락시키는 문제가 있었다. 제로센은 3,000km에 달하는 긴 항속거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장거리 비행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위험한 선택을 해야했다. 바로 주날개 내부에 연료를 집어넣은 것이다. 이는 적 기총사격에 자주 노출되는 곳이 주날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위험한 결정이었다. 당장 유럽에서 대전 초반부터 활약한 Bf109나 스핏파이어가 항속거리가 짧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당시의 유럽에서는 1차대전 당시부터 주날개의 피격확률이 높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전투기 날개에 연료 탱크를 집어넣는걸 사람 잡는 일이라고 여겼다. (반면, 동구권 기종들은 이런 경우가 종종 보인다. 역시 이 동네도 인명은 버리는 것으로 취급하던 동네라...)

물론, 2차대전 중 양호한 생존성을 자랑하던 P-38이나 P-51 등도 주날개에 연료를 집어넣었으나, 이 경우엔 연료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자동방루 연료 탱크(Self Sealing Fuel Tank)를 탑재했다. 자동방루 연료 탱크란 연료 탱크를 감싸고 있는 고무가 파편이나 총탄에 피탄된 곳을 자동으로 메워줘서 연료의 누출을 막아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도 이런 실험을 했다. 그리고 실험을 진행한 사람은 "한 방에 불이 붙었네요. 저런 전투기에 누가 타고 싶겠어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의 에이스인 에리히 하르트만이 전후 제로센의 전투영상을 보고 너무 쉽게 불이 붙는 점이 인상깊었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후기 제로센의 경우에는 자동방루 연료탱크를 탑재하기는 했지만 제로센은 위에 말한 것과 같이 방어력이 지독하게 부실한데다가 적군인 미군은 예광탄과 소이탄을 섞어서 쏜 덕택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위력이 약하다는 평을 듣는 M2 중기관총을 장착한 기체들이 이랬는데, 20mm를 4정이나 장착한 코르세어 후기 모델에게는… 다만, 적국과 얼마 안되는 거리를 놓고 맞붙어 있어서 전장이 비행기가 뜨기만 하면 기총사격 세례를 받는 유럽 대륙이 아닌 넓은 태평양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이 실수는 항속거리 확보라는 이점에 가려져 일본군 수뇌부가 크게 인식하지 않았던 듯하다. 설계자들도 이렇게 제로센의 방어력/생존성을 깎아먹는 조치에 반대했으나 결국 일본 해군 수뇌부의 결정탓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이는 항공모함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고 전투기가 작전을 하려면 전투기의 작전지역으로부터 먼 거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진주만 공습이다. 당시 미군은 일본기가 남서쪽에서 날아와서 그쪽을 집중수색했으나 실제로 일본군의 항공모함이 있었던 곳은 북서쪽 방향이었다. 덕분에 제로센은 7시간 가량 체공이 가능했으며 이러한 장거리/장시간 비행능력은 실제로 대전 초반에 유효하게 작용했다. 대전 후반까지 일본기들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이점이 바로 긴 항속거리였다. 개량으로 인해 항속거리가 줄어들었는데도 필리핀 해 해전 당시 다른 기종들과 공격대를 구성해도 미군기에 비해 100km 이상 우위에 있었다. 때문에 연합군은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제로센을 만나기도 했다. 2,600 km에 달하는 장대한 항속거리 덕분에 제로센은 연합군 지휘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먼 거리에서 이륙해 타격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연합군 지휘관들은 골머리를 썩혔다고.

물론, 제로센은 저속 격투전 성능이 매우 우수했고, 속도도 시속 530km 정도로 대전 초기에는 와일드캣이나 버팔로와 비교한다면 약간 빨라서 그럭저럭 평균은 하는 전투기였으나, 그나마도 위에서 서술한 조종계통의 선회 문제로 고속도의 비행을 하기가 힘들었다. 2차 대전이 중후반으로 가면서 연합군이나 독일군, 아니 일본의 하야테마저 600km/h는 기본으로 넘기는 판국에 제로센은 엔진을 개량해도 여전히 500Km대의 속력밖에 내지 못했다. 전투기는 속도 30~40km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 판에 100km가 넘게 차이가 나면 이미 막장. 그리고 기체 구조가 너무 약했다. 사실 헬캣이나 콜세어가 등장했을 무렵 시제기가 날아다니고 있어어야 할 후계기 A7M 렛푸(烈風, 열풍)는 전쟁이 끝날 무렵에나 겨우 시제기 8대가 나오고 공장이 부서져 버렸으니... 그래도 연합군 신참 조종사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너 제로센하고 선회전으로 엉겨붙을 생각은 하지도 마라."라는 경고를 들어야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어디까지나 제로센 조종사가 베테랑일 때 한정이다.당연히 교관들은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실제 전투가 붙으면 적 조종사의 스킬을 가늠하는 방법은 직접 당하는 것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베테랑은 전쟁 말기가 되면 십중팔구 삼도천으로 가버린지 오래.


  1. [1] A는 전투기, 6은 여섯번째 모델이라는 뜻, 그리고 M은 개발사 미쓰비시.
  2. [2] 문제는 이렇게 개념있게 말한 사카이 사부로도 난징대학살이나 위안부 문제 등에 있어서는 부정하거나 축소해서 말했다는 거(...). 자세한 건 사카이 사부로 항목 참조.
  3. [3] 다만 이 인터뷰는 제로센의 성능이 별로라서 다시는 타고 싶지않은 성능이라는 뉘양스인지 아니면 다시는 조국을 위한다는 이유로 전쟁터로 나가기 싫다는 건지 알기 힘들기 때문에 알아서 판단할것. "영전을요?" 라고 하는 것을 봐선 제로센의 성능때문인 듯하긴 하나 확실하진 않다..
  4. [4] 해당 속도를 넘어서면 구조적으로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며, 조종이 불가능해지거나 공중에서 분해(!)될 수 있다. 제로센은 내구성이 약해서 당시의 타국 전투기들에 비하여 이 속도가 매우 낮은 편이었다.
  5. [5] 일본해군은 20mm까지를 '기총'으로 표기했다.
  6. [6] 어차피 이 속도까지 끌어올릴 시기 정도 되면 미 해군&해병대는 이미 F4F 와일드캣을 호위항공모함 용으로 내려버리고 700km/h 초중반대의 F6F 헬캣과 700km/h 후반대, 수틀리면 비공식이긴 해도 800km/h 대도 찍는 F4U 콜세어를 주력으로 삼고 있을 시점이다.(이는 급강하속도가 아니라 일반강하속도다. 급강하시 콜세어는 900km/h대의 속도를 가진다.) 지옥고양이와 소위제거자에게 있어서는 거기서 거기일 뿐. 심지어 F6F 헬캣의 직전 함재기인 F4F 와일드캣의 경우 기체강도를 믿고 급강하 속도 제한이란 걸 걸어놓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내가 보증한다. 마음껏 떨어져라. by 그루먼 사. 그리고 이 속도 역시 '최고 속도가 아닌 최대 제한 속도'라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후기형의 일부는 740km/h까지 올라가기도 하지만... 그 시점의 미군 항공기와 대조하면 거기서 거기. 애초에 이 버전의 기체가 나올 시점에 미 해군이 호위항공모함용으로 굴리던 F4F 와일드캣의 호위항공모함용 함재기 버전인 FM-1/2조차 급강하 기준 770km/h대다.
  7. [7] A6M이 제식채용된 서기 1940년이 황기 2600년(한국으로 치면 단군왕검과 같은 개국시조, 일본의 '진무 덴노'로부터 계산하는 달력이다)이라서 0식
  8. [8] 다른 알루미늄 합금들보다 가볍고 튼튼했으나 탄성한계가 약했고 튼튼함의 반대급부로 취성이 너무 강했고, 부식방지 코팅처리를 하지 않으면 쉽게 부식되는 단점이 있었다. 위의 폐기처분되기를 기다리는 52형의 부식된 동체를 보자. 현재 알루미늄 규격으로 7075계열에 해당.
  9. [9] 다만 A6M5 중기형부터는 날개 상부에 이산화탄소 소화기와 자동방루탱크를 설치해서 어느정도 방어력을 확보하기는 한다.
  10. [10] 제로센의 선회력을 이길 수 있는 기종이 있기는 있다. 제로센 이전의 A5M과 육군의 97식 전투기가 그 주인공인데, 이놈들이 익면하중이 더 작아서 더 빨리 돌았다고.. 어짜피 다 일본군 꺼잖아..
  11. [11] 이전에 제일 현대적이었다는 말이 있엇는데, 이 조건들은 당시 신형기들의 기본적인 조건이었다. 독일의 Bf109나 영국의스핏파이어가 그 대표적인 예.
  12. [12] 현재에는 레저용 경비행기에나 사용되는 방식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전투기의 제작방식으로는 퇴출단계 였다. 다만 허리케인이나 Yak-1의 경우처럼 비용이나 재료수급, 제작 정비등의 문제로 인해 후방동체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기는 했다.
  13. [13] 그리고 이는 제로센의 후계기 A7M의 개발에도 악영향을 주게 된다. 해군측에서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익면하중을 줄이기 위해서 날개를 지나치게 크게만들었다가 각종 문제가 튀어나와 개발이 지연되었다.
  14. [14] 당시 기록이 들쭉날쭉해 정확한 교차검증이 힘들다. 최소 99기, 최대 266기.
  15. [15] 미 해군도 성능상의 한계를 절감하고 F4F 와일드캣으로 교체하려 했지만 태평양 전쟁이 발발 때 까지 여전히 상당수의 F2A 버팔로가 일선에 남아있었고, 동남아시아의 미군은 물론 독일과의 전투로 전투기 수요가 빠듯한 영국군도 다수 사용했으나 제로센에 일방적으로 털렸고 미군은 그 꼴을 보고 부랴부랴 항모 전투기 부터 F4F 와일드 캣으로 교체하기 시작. 그럼에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어 미드웨이 해전 당시 지상기지에서 출격한 해병대 조종사들은 버팔로를 몰고 출격, 피를 보아야 했다.
  16. [16] 흔한 이야기와 달리 태평양 전쟁 초기에도 미 해군의 F4F 와일드캣은 제로센에게 일방적으로 털린 일은 없었다. 일례로 두 기체가 전쟁 초반 맞부딪힌 대표적인 전투인 산호해 해전미드웨이 해전에서 제로센과 와일드캣의 교전으로 발생한 공중전 손실은 10대 14로, 도리어 제로센 쪽이 더 큰 손실을 겪었다. 교전상황을 종합하면 대부분 더 다수인 쪽이 승리했고 또한 호위기로 출격한 전투기 쪽이 공격기의 요격에 나선 요격측 전투기를 격추한 경우가 상대적으로 다수였기에 생각보다 평범한 전과이다. 그러나 어쨌든 제로센의 우수한 비행성능이 미군 조종사들과 지휘부에 상당히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아직 당시는 일본군이 태평양 전역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해상전력과 공중전력 모두 미군 보다 숫적으로도 우세하던 시절이라 F2A 버팔로를 교체해 배치된 F4F 와일드캣으로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제로센에 대해 미군이 느낀 압박감은 더 컸을 것이다.
  17. [17] ##
  18. [18] 이전에는 630km/h이라 적혀 있었으나 629km/h에서 1km/h만 올라가도 주익에 이상이 생긴다. 고로 629km/h다.
  19. [19] 52형 중 날개에 좀 더 두터운 외판을 사용한 갑(甲)형 이후, 전폭기 형인 A6M7 62.
  20. [20] 물론 이 역시 사실은 두 기체가 맞붙던 1941-1943 기준으로 쳐도 '2부 리그' 전투기들의 도토리 키재기에 해당했다. 일례로 유럽전장의 Bf109Fw190같은 독일전투기들의 급강하 속도는 마하 0.75(918km/h)까지 이르렀고 그에 못미쳐서 유럽전선에선 잉여 취급을 받던 P-38의 급강하 속도는 마하 0.68(833km/h). (하지만 유럽전장에선 잉여스럽게 여겨진 라이트닝이 태평양 전선에선 '미 육군항공대 소속 전투기들 중 가장 많은 숫자의 일본기를 격추한 기종'으로 악명을 떨쳤다...) P-47 정도가 되면 제한 속도가 마하 0.8, 즉 960km/h에 이른다. 실전에선 그 이상의 강하속도를 낸 적도 있다고 전해지지만. P-47만큼은 아니지만, 태평양 상공을 평정한 F6F 헬캣이나 F4U 콜세어도 900km/h대의 급강하 속도를 지녔다.
  21. [21] 전쟁 초기 1942년 미군의 분석에선 제로센의 선회성능 약화가 시속 300마일, 즉 480km/h 부터 발생한다고 판단되었으나 1944년 10월 미 해군이 노획된 A6M5-52를 테스트 해 본 결과 대략 시속 180마일 이상 부터 에일러론이 급격히 무거워지기 시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Division of Naval Intelligence, 1944, p. 1.) #
  22. [22] NACA Report No.868 미해군의 제로센에 대한 분석에서도 제로센에 대응한 전술개발에서 반드시 참고할 사항으로 '고속에서의 제로센의 느린 롤-레이트'를 언급한다. F4F 와일드캣으로 제로센을 상대할 때엔 '급강하에서의 우위'나 '고속에서의 롤 성능의 우위에서' 또는 '둘을 결합'하여 이득을 얻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
  23. [23] 일본의 202항공대와 영국군 제1전투항공단의 교차검증을 보면, 8번의 전투에서 영국은 26기의 항공기를 손실, 일본은 5기의 항공기를 손실했다.
  24. [24] 하지만 태평양 전선에서 허리케인들은 성능의 문제는 둘째 치고 파견된 기체 수도 얼마 안 되어 그냥 양으로도 밀려버릴 판이었고, 그나마도 조기경보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30기 이상을 지상에서 격파당했다.
  25. [25] 스핏파이어의 함상형인 "시파이어"조차 1942년에 초도비행에 처음 투입된 전투도 1942년의 횃불 작전이라 사실 제로센의 전성기엔 거의 만날 기회도 없었다.
  26. [26] 참고로 싱가포르 전투 당시, 급하게 북아프리카로부터 차출되어 파견된 호커 허리케인들도 이 보크스 필터를 붙인 채 (게다가 폭격기 요격을 위해 기총을 12정으로 증설, 여러모로 뚱뚱해진 상태로) 전투에 투입되어 역시 피를 보았다고 한다. 반면 자바전투에서 네덜란드군은 보크스 필터를 제거하고, 기총도 8정으로 다시 줄인 허리케인을 사용, Ki-43 하야부사를 상대로 선회전 맞짱을 뜰 수 있었다고. 그래봐야 12기 밖에 되지 않아 전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겠지만.#
  27. [27] 이는 영국 및 동맹국 파일럿들 들이 Bf109가 강하속도는 약간 더 좋지만 선회율은 스핏파이어가 좀 더 나아서, 독일공군을 상대로 곧잘 선회전으로 대응하던 버릇 탓이기도 했다.
  28. [28] 물론 유럽전역에서는 이미 기본전술로 사용되고 있었던 전술이었으나, 당시까지도 마땅히 2차 세계대전 수준의 '현대적인 공중전'에 대한 경험이 없던 미국으로선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29. [29] 이 전술이 잘 먹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방의 목표를 주시하는 동안, 시야가 고착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와 더불어 (이를 막으려면 다른 방향의 위험요소에 대해선 동료가 경고해 줘야 하는데 제로센의 통신 성능은...) 아무리 상대에 비해 잘난 기체를 타고 있어도, 상대의 꼬리를 물고 조준선에 넣으려면 '상대를 따라서' 날아야 한다는 것. 더 빠른 전투기도 더 느린 상대만큼 날아야 하고, 더 날렵한 전투기로도 더 둔한 상대만큼 밖에 날 수 없다... 부분적으로는 제로센보다 더 고성능기체를 몰고 제로센과 선회전을 벌이다 망신을 당한 미숙한 연합군 파일럿들의 오류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즉 제로센은 와일드캣보다 민첩하지만 와일드캣의 꼬리를 물고 있는 제로센은 와일드캣만큼만 날 수 있다. 물론 어디서든 강조되지만 이런 전술을 쓰려면 '맷집과 통신기'가 받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이 부분은 독일공군 등이 일찌감치부터 '닥치고 붐 앤 줌'을 외친 이유와도 연관된다. 즉 꼬리를 물고 쫒아다니는 쪽 보다는 순식간에 돌입해 말 그대로 적기를 순삭하고 역시 순식간에 이탈하는 쪽이 애써 달성한 성능의 우세를 풀로 발휘하는 데 좀 더 낫다는 것.) 이 상황에서 급강하 폭격대까지 끼어들면 어떻게 될 지는 미드웨이 해전 문서에서 '운명의 5분' 항목을 볼 것.
  30. [30] 과달카날 전투에서 활약한 미 해병대 + 미 육군 항공대의 혼성 부대 캑터스 비행단은 저공성능이 좋은 육군의 P-39 에어라코브라나 P-40 워호크가 미끼역할을 하고, 일본기가 미끼를 물면 고공에서 대기하던 해병대의 와일드캣이 '붐 앤 줌'으로 공격하는 낚시성 전술로 제로센을 괴롭히기도 했다. 무전기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제로센인지라 이런 식의 유기적인 협동전술은 불가능했다.
  31. [31] 물론 상승력은 꽤 열세고, 수평비행 속도로도 다소 뒤쳐지는 와일드캣 정도가 아니라, P-38 라이트닝처럼 아예 수평속도와 상승력조차 제로센보다 한참 빠른 상대라면, 언제 어떻게 전투를 벌일지에 대한 주도권은 거의 완전하게 상대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고, 심지어 전투를 회피하고 빠져나가는 것 조차 쉽지 않아진다. 뿐만 아니라 고속 기동 한번 했다가 기체가 산산조각날 수도 있기에 제로센 조종사들 입장에서 연합군 기체가 이런 기동을 하면 당할 수 밖에 없다.
  32. [32] 다만 이 반응은 F4F-4가 F4F-3에 비해 더 굼떠진 것에 대한 파일럿들의 불만에 맞춰져 있다는 것에 주의하자. 애초 와일드캣이 제로센보다 상승력이나 선회력을 앞선 적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그리고 F4F-4가 F4F-3에 비해 비행성능이 떨어지게 된 더 큰 이유는 기관총이 6정으로 늘어난 것 자체보다는 접히는 주익 탓이 더 컸다. 이후 프롭시대 그루먼 함재기의 특징이 되는 극도로 작게 접히는 날개는 접히지 않는 날개에 비해 무게도 더 무거웠고 저항도 컸으며 F4F-4의 경우 특히 증설된 기총이 외익에 장착되어 발사반동에 더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비행성능의 악화는 항모 한 척당 전술적 이점에 의해 충분히 상쇄되고 남았다. 그러나 사실 어느 조종사가 기본적인 비행성능이 적기보다 떨어지는 비행기를 모는 상황에서 기분이 좋겠는가? 게다가 그게 뭔가 탐탁치 않은 업그레이드의 결과로 안그래도 별로이던 비행성능이 더 나빠진 것이라면? 어느면에서 미 해군 조종사들의 F4F-4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일선 조종사의 관점과 지휘부의 관점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대전 후반 F6F 헬캣이나 F4U 코세어 등이 일선에 배치되자 주로 호위항모 탑재용으로 생산된 FM-1/2 버전에선 다시 기관총 4정으로 돌아갔다. 애초 이 기관총 증설이 독일군을 상대하던 영국해군의 요구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사실 방어력이 떨어지는 일본기를 상대하는 미 해군 파일럿들 입장에선 비행성능에도 마이너스요 무엇보다 지속사격시간이 급감한 부작용을 생각하면 괜한 옆그레이드로 여겨지는 것도 일리가 있다. 덧붙여 엔진출력이 1200마력에서 1350마력으로 증가하고, 반면 중량은 F4F-3 때보다도 가벼워진 와일드캣 FM-2는 비행성능도 꽤 향상되어 일부 미군 조종사들은 '제로센 후기형 보다도 우수하다.'라고 약간 과장섞인 평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FM-2와 제로센 52형 사이의 후기형 리턴매치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그땐 이미 헬캣과 콜세어들의 등쌀에 태평양의 일본군 항공전력이 남아나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33. [33] 덧붙여 후대의 연구자나 밀리매니아들이 '아쿠탄 제로'를 자주 언급하게 되는 것은 한때 무성했던 '제로 신화' 탓도 있지만, 타치 위브등의 대응 전술이 현장 파일럿들의 경험에 기반해 응급처방으로 등장한 것과는 달리 '아쿠탄 제로'에 대한 미군의 분석과 대응은 실제 기체의 테스트를 통해 문서로 기록된 보다 확실한 '근거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34. [34] 덧붙여 이런 전술변화에 의한 전세역전을 두고 '그건 어디까지나 전술이 좋아서 이긴거지, 항공기 자체의 우열과는 무관하다.'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히 오류이다. 모든 병기에는 언제나 그 병기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전술 운용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전차를 보병없이 단독으로 시가지에 밀어넣으면 안 되는' 것 처럼 말이다. 혹은 기관총으로 방어선을 구성할 때, 각 기관총들이 그냥 정면으로 펼쳐진 대형의 적을 상대로 사격하는 것 보다 서로 사선방향으로 교차해 적 대열을 '세로'로 사격하도록 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던가. (덕분에 1차 세계대전은 기관총과 철조망이 조합된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교착된 참호전이 되었다.) 전술선택에 의한 차이가 좀 더 작아질지는 모르지만, 이는 동종의 병기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실전을 치러 본 군대'가 강력한 이유 중 하나다. 자신과 적군의 장비가 지닌 장단점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적이 싸우자는 방식대로 말려들어 패배한 미숙한 군대의 미숙한 전술운용의 결과로 '우리 무기 그 자체가 킹왕짱 쎄서 이긴거다.'라고 말하는 건 사실 전시의 프로파간다에서나 사용될 이야기다. 이를테면 독소전쟁 초기에도 분명 900여대 정도로 '소수'이긴 했지만 이미 T-34가 일선에 배치되어있었다. 비율로도 소수고, 무엇보다 허를 찔려 완전한 전선 붕괴상태에 처한 소련군의 상황에서 소수의 T-34야 있으나 없으나 거의 아무 차이도 만들지 못했다. 그렇지만 전선의 독일군은 소련군의 위협적인 신형전차에 대한 보고서를 쏟아냈고 전선시찰 중 노획된 T-34를 조사해 본 구데리안은 '심각한 위협'이라 평가하며 신형 중전차 티거 배치를 종용했고 더 나아가 판터는 T-34에서 입증된 경사장갑을 대폭 적용한 설계로 변경되었다. 반면 제로센의 경우는? 연합군이 노획된 제로센을 통해 그동안 현장의 전투경험에 기반한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알음알음 입안되던 대응전술을 보다 완성된 형태로 체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로센의 (기술적) 영향을 받은 신형기' 같은 건 없었다. 일본 우익성향 밀덕들의 대체역사 판타지 속에서가 아니라면. 연합군이 제로센을 실물로 보고 깨달은 바는 제로센이 '밸런스 파괴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자신들이 상성에 대한 이해 없이 늅늅한 대응을 해왔다는 것에 더 가깝다.
  35. [35] Edward Young, "F4F Wildcat vs A6M Zero-sen: Pacific Theater 1942
  36. [36] 그리고 제로센의 경우, 고속에서 선회능력만 급감하는게 아니라 급강하 문제도 있는데, 만든 재료부터 취성이 너무 강하다 보니 기체강도가 종이비행기 수준이라 고속에서 급강하 기동을 할 경우 기체가 산산조각난다.
  37. [37] 지속 상승뿐만아니라 급강하로 속도를 얻은 이후의 줌상승(Boom and Zoom Climb)까지 모두 포함하는 종합적인 의미다.
  38. [38] 다수 대 다수가 아닌 1:1인 이유는 무전기 문제가 원인이다. 제로센의 경우 대규모로 맞붙어도 무전기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기에 동료기와의 연계가 안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흔히 제로센의 맞수로 불리는 F4F 와일드캣의 경우 제로센을 상대하기 위해 통상 두 대 편대로 비행을 하는 걸 원칙으로 하는 타치 위브 전술을 쓰는데 와일드캣이 이게 되는 이유는 무전기가 제대로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39. [39] 애초에 제2차 세계대전 초기만 해도 미국이 갖고 있던 정책은 먼로 독트린에 의거, 상대가 나를 때리지 않으면 방관한다는 이른바 고립주의 정책이었다.
  40. [40] 심지어 영국이 이미 일찌감치 1930년대 후반부터 레이더의 가치를 인식하고 레이더망과 효율적인 방공관제 체계에 투자하여 영국본토항공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과 반대로, 멀쩡한 레이더는 갖다 놓고도 결국은 레이더 활용 경험의 미숙으로 앉아서 두들겨맞은 것이 바로 진주만 공습이 아니었던가. 그래도 진주만 공습의 경우 미군을 옹호할 거리가 있는 것이, 일본 해군 연합함대가 대미선전포고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 공습을 한 것이니, 얘기가 다르다.
  41. [41] 물론 그들이 타고 나간 폭격기가 튼튼하고 잘 무장된 B-17이어서 그나마라도 살아 돌아온 것이기는 하다. 만일 그게 G4M같은 기체였다면... B-24가 불이 잘 붙는다는 이야기도 어디까지나 20mm 미넨게쇼스탄이나 나중엔 30mm 기관포를 쏘아대던 독일공군을 상대로 한 이야기다.
  42. [42] 심지어 경험치로는 비교할 바 없이 높던 일본군 파일럿의 개별적 능력치조차, 미군의 조직적 전술 운용의 우위로 상쇄되었다.
  43. [43] 사진을 보면 기체가 뒤집혀서 추락한 것이다.
  44. [44] 제로센 킬러로 일컬어지는 F6F 헬캣의 설계시기는 진주만 공습보다 훨씬 이전인 1938년부터였다. 원형기의 초도비행도 1941년 6월 30일. 일본이 진주만 공습이라는 기습적 공격을 한 것은 1941년 12월 7일. 고로 아쿠탄 제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뿐 아니라 대전기 최강의 함재기에 이름을 올린 F4U 콜세어도 설계시기는 F6F 헬캣과 같다. 이유는 해군이 헬캣의 개발사인 그루먼과 콜세어의 개발사인 보우트에 각각 다른 주문을 넣었던 것.
  45. [45] 2,000마력급의 고출력 엔진 자체는 1941년무렵에는 어느정도 개발이 되어 있었고 이 엔진을 사용하는 항공기도 1943년 3월에는 배치되기 시작하기는 했다. 그러나 기체강도를 보강하지 않고는 해당 엔진을 사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46. [46] 그런데 솔직히 제로센이 카미카제 격침을 한 건 우연이었다. 카미카제 항목에서 읽다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제로센은 그 허약한 내구성 때문에 카미카제로도 쓰지 못했다. 애당초 제로센 21형이나 D4Y 스이세이 같은 구형 기종을 주력으로 보유한 부대들은 카미카제에서도 어쩔 수 없이 빼줬다.
  47. [47] 헬캣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8. [48] 사실 후계기의 개발은 엔진 자체의 문제보다는 수뇌부의 잘못된 이해와 공업능력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에 가깝다. 일본도 1943년 무렵에는 2000마력급의 출력을 가지는 엔진을 장착한 Ki-84같은 기종이 배치되기 시작한 단계였으나 제로센의 후계기 A7M은 수뇌부가 익면하중을 높여서 격투전 성능을 올려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요구로 인하여 개발이 지연되었고 그 성능조차 딱히 우수하다고 볼 수 없는 물건이 되 어버렸기 때문.
  49. [49] B-29의 재원표를 보면 나오지만 B-29의 작전 가능 고도는 제로센의 작전 가능 고도 대비 두 배는 더 높다.
  50. [50] 허나 고속선회능력은 F6F와 F4U가 더 우수했다. 그리고 항공전술이 발전되면서 저속선회의 중요성은 낮아졌다. 게다가 연합군항공기들은 지속적인 개량과 최고속도 700km/h대 중후반, 수틀리면 800km/h대도 심심찮게 찍어대는 신예기들의 배치로 인해 저속으로 판정하는 속도범위도 크게 올라간다.
  51. [51] 그뿐 아니라 전투기 조종사가 되면 닥치고 소위로 진급이 되던 미국과 달리 일본은 그냥 조종사 지원시의 계급을 그대로 유지했을 뿐 아니라 진급에 대해서도 엄청 짜게 굴었다. 병 계급의 에이스가 나올 판이었으니 이런 일본군의 막장 행태에 대해서는 더 써야 손가락만 아파질 지경.(...)
  52. [52] 그래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기준으로는, 7.62~7.92mm급의 소총 및 경기관총의 일반탄이나, 상황에 따라 철갑탄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M1 개런드 소총이나 M1919 기관총에 쓰이던 .30구경 철갑탄의 경우 50m에서 9~10mm 정도의 관통력을 지닌다. 물론 거리나 탄착각도의 문제나, 후방에서 날아드는 탄환은 대체로 후방 동체를 뚫고 들어온 것이므로 얼마라도 위력이 감소한 탄이니, 이 정도까지는 막아질 수 있다. 나아가 공중전에서 선호된 것은 철갑탄 같은 종류 보다는, 항공기의 내부장비나 구조를 더 많이 손상시킬 수 있는 소이탄류나, 기관포라면 고폭탄 계열. 따라서, 더 대구경의 탄환이 날아다니는 상황이라 해도, 8~10mm 수준의 방탄판 한 장이 있고 없고가 조종사의 생사를 가르기에는 충분하다. 나아가 실전에서는 5~7mm 정도의 장갑만으로도 상당한 방호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대체로 장갑을 좀 더 넓게 쓰는 경우이며, 그 경우에도 조종석 방탄판은 10mm 내외를 사용한다.
  53. [53]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권총탄에 뚫리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은 부정확한 이야기이다. 제로센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전투기 '외판'은 권총탄으로 뚫린다. 물론 권총탄으로는 위력이 약해 내부구조까지 큰 손상은 못 줄 테니, 그걸로 격추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일례로 제로센 32형의 외판은 두꺼워도 0.048인치, 즉 1.2mm 정도며 대부분은 그 이하 0.8mm, 심지어 0.5mm 미만인 곳도 있다.# 물론 미군 전투기들은, 제로센보다는 두꺼운 외판을 사용했지만, 그래봐야 역시 1mm 남짓. 즉 그 맷집 좋다는 P-47이든, 심지어 날으는 전차 IL-2도 어디까지나 기본 외판은 얇은 알루미늅 합금제 판이다. (아니 사실 IL-2는 초반 한 때는 경금속 재료 부족으로 후부 동체 일부를 목재로 만든 적도 었었다...) 즉, 애초 권총탄이라고 기본 외판으로 튕겨낼 만한 항공기란 별로 없다. (여객기 보안요원들이 관통력을 극도로 억제한 특수탄을 사용하는 게 다른 이유이겠는가.) 하지만 현대의 전투기에 비해선 작은 2차 대전시기의 전투기라도, 기본적으로 길이와 폭이 10m 이상인 구조물이므로, 치명적이 아닌 부분에 한 두 발 피탄한다고 곧장 추락하지는 않는다. 전투기의 '장갑판'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기체의 기본 외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조종석이나 엔진, 연료탱크 등 'Vital Part'에 들어가는 장갑재를 뜻한다. 그러나 제로센의 경우, 극 후반의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형식은 이런 최소한의 방탄설비도 없었다. 제로센은 권총탄으로 뚫린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전투기도 마찬가지다. 차이점이 있다면, 제로센은 '어디든지' 뚫리겠지만, 다른 전투기들은 조종사의 목숨과 관련된 중요한 영역엔 권총탄이 아니라, 적어도 소총탄이나 경기관총탄은 막아주는 수준의 방탄설비가 되어 있다는 것. 물론 그래도 권총탄에 격추될 일 따위는 없다.
  54. [54] 덧붙여, 태평양 전쟁 기간 활동한 미군기 중 방탄설비와 자동방루식 연료탱크를 제대로 장비하지 않은 채 날아다니던 대표적인 기종이 바로 '제로센 신화'의 밑거름 중 하나였던 F2A 버팔로였다.
  55. [55] 그래도 스핏파이어나 Bf109의 경우는 제로센에 비하면 왕족이다. 위에도 여러 번 언급됐지만 제로센은 급강하기동 한번에 기체가 공중분해 당할 수도 있었다!
  56. [56] 그런데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진행자가 제로센의 날개부분을 재현한 다음 기관총의 API탄도 아니고, 사냥용 엽총의 일반 납탄자 Buckshot으로 쏘았는데... 관통된 다음 바로 불이 붙었다고. 어쩌면 소이탄까지도 필요 없는지도...
  57. [57] 자동방루식 연료탱크는 연료탱크의 안이나 바깥을 고무로 감싸 피탄시 연료의 누출을 고무가 막는거지, 고무가 탄을 방어하는 게 아니다.
  58. [58] 이전에는 제로센의 사례라고 적혀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제로센과 하야부사의 형상은 서로 비슷해 흔히 혼동하는데, 위에서 내려다본 동체의 모양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게다가 해당블로그의 글에는 주로 날개에 많이 피탄당했다고 기술했는데, 방루장치없는 연료탱크가 장착된 날개야말로 제로센의 취약부위이며 피탄취약부에 맞지 않는다는 앞의 말과 완벽히 모순된다. 그러나 하야부사와 제로센은 모양이 비슷하다보니 착각하기도 쉽다. 하야부사를 잡고도 제로센을 잡았다고 보고하기도 하고 제로센을 잡았으면서 하야부사를 잡았다고 하기도 한다. 이 역시 정보공유조차 하지 않고 비슷한 기종을 만들던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이 낳은 삽질.
  59. [59] 시속 수백 Km로 날아다니는 적기에 무유도의 탄환을 적중시키려면 최대한 달라 붙는 것이 사실 당연하니까. '상대 조종사의 표정이 똑똑히 보였다'는 식의 증언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20m까지 붙어서 사격했다는 에리히 하르트만을 비롯, 에이스면 에이스일수록 그렇게 바로 등 뒤까지 붙어 확실한 명중탄을 날리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회고는 결국 그 전투들에서 적을 격추하고 살아남은 파일럿들의 이야기다.) 다만 폭격기, 특히 방어기총으로 사방을 도배한 중폭격기를 상대로 쓸데없이 들러 붙으면, 사망이다.
  60. [60] 이 시기 조종사들이 소비한 탄약 중 착탄율이 2-5%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렇다면 적기의 사선에 1~2초만 올라도 명중탄을 맞게 된다.
  61. [61] 게다가 대부분의 전투에선 폭격기와 요격전투기, 호위전투기가 뒤엉킨 가운데 사방에서 대공포화가 작렬하는 상황도 자주 벌어진다. 당연히 호위 혹은 요격 전투기가 적은 물론 아군의 대공포화에 피해를 입는 일도 다반사다.
  62. [62] 이를테면 아직 전쟁 초반인 산호해 해전에서, 미군은 69대의 항공기를 손실하며 35명의 조종사를 잃었지만, 일본군은 92대의 항공기를 손실하며 90명의 조종사를 잃는다. 물론 그 다수는 제로센 조종사들 보다는 폭격기나 뇌격기 승무원이었을 것이지만, 부실한 내구력과 방어력의 문제는 일본군 항공기 전반의 문제였기 때문에 제로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외견상 소형항모 1척을 잃으며, 미군 정규항모 1척을 격침하고, 1척을 대파해서 외견상 일본군의 승리로 보였던 산타크루즈 해전에서도, 미 해군이 81기의 항공기를 잃은데 비해 일본군은 그보다 많은 99기의 항공기를 잃었을 뿐 아니라, 미군이 26명의 조종사를 잃은데 비해 일본군은 그 여섯배에 가까운 148명의 조종사 및 항공 승무원을 잃는다. 전투에 동원된 일본군 뇌격기 승무원의 49%, 급강하 폭격기 승무원 39% 그리고 전투기 조종사의 20%가 사망했다. 방어력이 취약한 항공기와 육탄돌격 수준의 무리수를 강요하는 전술이 겹치며 불러 온 결과였다. 이러한 항공기와 특히 승무원의 손실로 일본 해군의 항모기동부대는 사실상 무력화되었고 이후 지속된 과달카날 전투의 후반부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는 결국 일본군 패배의 한 요인이 된다.
  63. [63] 629km/h다. 숫자를 잘 보자. 저기서 1km/h만 올라간 630km/h로 들어가도 주익에 금이 간다는 뜻이다. 자칫하면 날다가 산산조각. 문자 그대로 공중분해 당한다.
  64. [64] 나아가 위의 '실전' 항목에서도 언급되었듯, 미군의 대 제로센 교범에는 '기체강도와 가속에 대한 심리적 영향으로 제약받는 고속기동으로 끌어들여라'고 대놓고 써 있다. 제로센의 취약한 기체강도는 조종사들에게 과감한 전투기동을 방해하는 심리적 압박으로까지 작용한 것. 사실 과장해서 말하면 '기수 한 번 잘못 숙였을 뿐'인데 공중분해 될지도 모를 비행기를 몰고 있는데 한계 속도 이하라고 맘편히 기동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65. [65] 더 나쁜 건 이미 위의 '실전' 항목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그렇게 향상된 한계속도도 전쟁 후반의 헬캣이나 콜세어는 커녕 초반의 와일드캣 보다도 느린 강하 한계속도에 그친 어정쩡할 뿐인 개선이었다는 것이다.
  66. [66] 물론 7.7mm기총만 주렁주렁 달고 다니거나 깔끔하게 20mm 기관포만 달거나 30mm 기관포를 장착한 버전도 있지만
  67. [67] 참고로 영국 공군이 운용한 HS.404도 오리콘 기관포를 바탕으로 설계된 물건이다.
  68. [68] 실제 99식 1호 기관포의 실물 사진을 보면 포신이 상당히 짧은데, 당연히 포구초속이 낮을 수밖에.
  69. [69] F4U 콜세어F8F 베어캣
  70. [70] 미군은 이후 MiG-15와 교전을 치르며,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제트기간의 교전에서 한발 한발의 위력이 떨어지는 중기관총으로는 버겁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주력 대공무장을 20mm급으로 느지감치 교체한다.
  71. [71] 일단 HS.404의 탄속(880m/s)은 영국군의 .303 구경 기총이나 미군의 M2 기총과도 엇비슷하다. (물론 그래도 구경이 다른 화기라서 실제 탄도가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결국은 후기엔 모두 20mm 구성으로 바꾸지만. MG 151의 탄속은 750m/s 전후로 그에 비해 약간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대신 전쟁이 진행되며 독일 전투기들에 7.92mm 기총을 대체해 장착되기 시작한 MG 131, 13mm 기총과 엇비슷하다. 그리고 일반탄에 비해 탄자가 다소 가벼운 미넨게쇼스탄을 사용하면, 탄속이 좀 더 빨라진다. 물론 이는 Bf109 초기형 등이 아직 MG FF/M 기관포를 사용하던 때도 마찬가지. 기본적으로 일본의 99식과 같은 MG FF/M 기관포라도 미넨게쇼스탄 사용시에는 포구초속 700m/s로 얼마간 탄속이 개선될 수 있었다.
  72. [72] 사실 미군이 20mm급 화기에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도 2차 대전시기에도 HS.404 20mm기관포를 라이센스 생산해 P-38등에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미국제 HS.404는 영국제에 비해 잦은 잼 현상을 일으키는 등 신뢰성이 낮아 별로 선호되지 않았다. 결국 미군은 대충 그런대로의 펀치력에 탄도와 연사속도도 괜찮고, 무엇보다 신뢰성 높은 브라우닝 M2 12.7mm 기관총을 4~6정 이상 설치하는 것으로 떼웠다. 그리고 이런 무장방식은 2차 대전 동안은 그럭저럭 먹혔다. 그리고 사실 영국에서도 2차 대전 초기에는 HS.404 기관포의 신뢰성 문제로, 한동안은 20mm 대신 .303구경(7.7mm) 기관총 8~12정을 장착해 일단 퍼붓는 탄환 수를 늘리는 것으로 떼워 보기도 했다.
  73. [73] MK108은 탄속은 540m/s로 여유가 넘쳐도 그나마 발사속도는 650발/분으로 괜찮았다.
  74. [74] P-39의 M4 기관포 역시, 탄속은 600m/s로 느긋하고, 발사속도도 분당 150발 정도밖에 안 됐지만, 이 확실한 한방의 위력 덕분에 소련공군은 미국에서 공여받은 P-39를 중,저고도 전투가 주가 되던 독소전쟁 당시의 공중전에서 나름 잘 써먹었다.
  75. [75] 참고로 일본군의 폭격기, 공격기로 쓰이던 G4M도 기관포 탄도가 포물선이었다.
  76. [76] 물론 불가피했다고 해도 폭격기 요격에 집중한 독일공군 역시, P-51이 베를린 상공까지 날아와 깽판을 치는 상황에선 대 폭격기 전용 무장의 '데드웨이트' 만큼의 댓가를 치러야 했겠지만.
  77. [77] 게다가 다른 문제로는 초반의 주력이던 제로센 21형의 경우 기수형상 때문에 조종사가 전방시야를 충분히 확보하려면 기수를 약간 숙여야 했다. 그러나 사격을 위해서는 탄도를 확보하기 위해 반대로 기수를 약간 올려야 한다. 문제는 기수를 숙인 상태에서 적기를 포착한 파일럿이 이제 적기에게 사격을 가하려 기수를 들면 잠시 적기를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는 것. 그런데 공중전에서는 당연히 적기의 이동을 계산해서 적기의 예상위치를 향해 '편차사격'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레이더로 조준기가 자동으로 편차를 계산해주는 시절도 아니므로 당연히 사격을 하면서 예광탄의 궤적을 보고 편차를 수정해서 명중탄을 얻게 된다. 그런데 조종사가 잠깐이나마 표적을 시야에서 놓치며 초탄사격을 하게 되는 탓에 첫 발사에서 명중탄까지의 시간간격이 길어진다. 당연히 상대 조종사는 미처 예측 못한 기습을 받은 경우에도 자기 옆으로 지나가는 예광탄을 보고 공격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대응할 기회가 늘어난다. 또한 이는 제로센 조종사에게 표적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만들어 사각에서 튀어나오는 적기의 공격에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시야의 문제로 '약간 하방에서 가해지는 헤드온 공격'에 제대로 대응 못하게 만든다는 것... 그런데 '사각에서 튀어나온 적기에게 정면 혹은 약간 하방에서 헤드온 공격을 당하는' 이 상황이 바로 전형적인 '타치위브'에 걸렸을 때의 상황이다... 물론 지미 태치가 이 전술을 만들 때는 와일드캣을 타고 실험해 보았으니 제로센의 시야문제 까지는 몰랐겠지만. 참고로 일반적으로 공중전에서 헤드온은 선호되지 않던 공격코스이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조종사들은 우세한 맷집과 화력을 바탕으로 종종 헤드온 공격을 통해 이익을 얻었다. 비효율적인 화력구성에 시야 문제가 있는 제로센이나 화력 자체가 시덥잖은 하야부사에 둘 다 맷집은 극도로 허약했으니 헤드온이라고 무서울 게 없다는 것.
  78. [78] F2A는 이후 미군 전투기들에 비해 맷집도 별로였다.
  79. [79] 그리고 '일격'에 빠르게 적기를 격추하지 못해서, 빠르게 '이탈'하지 못하고 오래 적기의 꼬리를 물고 있어야 한다면, 도리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사각에서 튀어나온 적기에게 공격을 당한다'던가...
  80. [80] 그런데, 해군의 제로센이 이렇게 효율 낮은 화력으로 고민하는 동안, 일본 육군은 다름아니라 미국의 "브라우닝 M2 기관총"의 카피버전인 12.7mm Ho-103 기관총을 이미 Ki-43 하야부사에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각 일본 육군은 또 육군대로 하야부사에 7.7mm 기총 '1정'과 12.7mm 기총 역시 '1정'으로 소소하게 무장시켜, (심지어 초기버전엔 7.7mm 기총만 달랑 두 정 탑재한 적도 있다) 늘 화력부족에 시달리게 만드는 삽질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야부사의 화력부족은 내내 지적되었지만 개량은 12.7mm 기총 2정 탑재선에서 끝. 그래도 실제로 맘편히 쓸만한 무장은 7.7mm 기총 2정이나 마찬가지가 된 제로센보다는 조금 나았을지도... 그런데 일본군이 사용한 '브라우닝 M2'의 카피판 중기관총은 Ho-103만이 아니었다. 육군에 12.7mm Ho-103이 있었다면, 해군엔 '13.2mm, 3식 기관총'이 있었다. 그렇다, 제로센 52형 '을' 부터 탑재된 바로 그 기관총이다. 즉 같은 '브라우닝 M2'을 육군과 해군이 각기 따로 베낀 것... 이 역시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이 낳은 삽질..
  81. [81] 단적인 예로 오늘날 대다수 국가의 공군에서 공중조기경보기를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심지어 일본의 항공자위대는 E-767뿐 아니라 미 해군에서 항모탑재용으로 운영하는 E-2C까지 굴린다.
  82. [82] 개전 당시 미군 항모의 전투기 비행대대는 18대의 와일드캣이 배치되었지만, 이후 미드웨이 해전 시기에는 27기의 와일드캣으로 구성되었다.
  83. [83] 사실 이것도 수납공간 확보를 위해 접은 것은 아니다. 일부 중소형항모에서 엘리베이터 출입구를 통과하기 위한 것.
  84. [84] 이렇게 된 건 기체를 만든 재료부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초초두랄루민 자체가 강도도 좋고 얇게 만들 수 있는 건 좋지만, 그 높은 강도의 반대급부로 취성이 강하다. 즉, 잘 깨진다.
  85. [85] 누구는 날개를 접을 수 있게 하느라, 비행성능은 떨어졌어도, 그래도 항모에 한 척당 이전보다 50% 넘게 많이 싣고다닐 수는 있어졌지만 (다소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원래 목적은 달성) 이쪽은 싣는 숫자는 그대로인 채 성능만 떨어졌다.
  86. [86] 문제는 이 기동성이 저속 기동성이란 거다. 제로센의 경우는 기체 강도도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미군의 F4F 와일드캣만 못해서 고속 기동을 하면 기체가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 난다.
  87. [87] 정확히는 엔진 생산설비
  88. [88] 킨세이 장비시 항속력이 40% 줄고, 엔진룸과 후부동체사이에 가해지는 하중이 증가해버렸다. 그걸 견딜 정도로 기체를 강화할 경우 익면하중이 20가까이 늘어나며 항속력은 2할 감소, 속력은 12노트 증가함.
  89. [89] 출처 : http://nyxity.com/wiki/wiki.pl/%EA%B1%B4%EB%8B%B4%EA%B3%BC%EC%9D%BC%EB%B3%B8%EC%9D%B8
  90. [90] 그리고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이 기종들 대부분이 바로 그 1년 전에는 대부분 1.5배 이상의 생산인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즉 전시생산체제를 갖추며 급속도로 생산효율이 증가했다는 것. 그런데 그럴려면 앞서 언급한 증설된 생산라인은 전쟁 이전보다 숙련도가 낮은 노동력에 의해 가동한다는 조건에서도 잘 생산될 수 있어야 한다.
  91. [91] 이 취소선 개그가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는데, 해군에 항공기를 납품하던 그루먼사가 F4F 와일드캣을 생산하기 직전에 해군에 함재기 모델을 제시한 게 복엽기였다. 이것 때문에 단엽기 모델인 F2A 버팔로를 제시해서 체택된 브류스터 사에 밀려나게 되자 저엽기가 아닌 중엽기의 단엽기를 제시하는데, 이게 F4F 와일드캣.
  92. [92] 그러나 카미카제도 기체강도가 어느 정도 버텨 줘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카미카제 문서를 보면 나오지만 카미카제의 원리 자체는 그냥 급강하 폭격이나 다름 없다. 즉 급강하를 위해 기체를 75도 85도까지 숙인다 해도 일정 속도를 넘어가면 아예 충돌하지도 못하고 공중분해되는 초기형 제로센 같은 허약한(...) 기종을 갖고 있던 부대는 카미카제에서도 어쩔 수 없이 빼줬다.(...) 이곳을 보자.
  93. [93] 참고로 레이더의 지향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야기 우다 안테나는 일본인이 1926년에 개발하여 영국과 미국이 독일 공군과 일본 해군을 털어먹는데 신나게 써먹었지만 일본 군부는… 여기참조 그리고는 야기 교수를 매국노라고 욕했다… 이 안테나의 실제 개발자인 우다 신타로는 말할 것도 없고.
  94. [94] 하지만 다른 전투기들 처럼 캐노피가 방탄유리였다면? 돈틀리스의 후방기총은 7.62mm 2정이다.
  95. [95] 영어의 "Nature calls me,"를 의미하는 말로 화장실을 가야할 때 쓰는 말이다. 상류층에서만 쓰는 표현이라기보다는 격식을 차려야 하는 곳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곳들에 주로 상류층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그렇게 된 듯.(이런 관용적인 표현은 솔직히 말하면 어느 나라에나 있다. 예르 들어 일본어에서 1인칭 표현을 대개 와타시를 쓰라고 권고하는데, 격식을 갖춰야 하는 곳에서는 와타쿠시를 쓰라고 한다. 와타시나 와타쿠시나 한자로는 私로 같다. 원래는 와타쿠시의 발음이 축약된 게 와타시.)
  96. [96] USAAF INFOMATIONAL INTELLIGENCE SUMMARY NO. 85 및 MC-442-WF-3-24-42-50M AFAMC-5 INTER-OFFICE MEMORANDUM 에서 가져옴
  97. [97] ### 에서 가져옴
  98. [98] 게다가 분사추력 자체를 직접 측정할 수 있는 제트엔진과 달리, 프로펠러기라면, 엔진의 출력이 같아도 프로펠러의 효율 등에 의해 실제 작용하는 '추진력'은 달라질 수 있다.
  99. [99] P-38의 상승률은 스핏파이어 후기형과 더불어 2차 세계대전 전투기 중 탑클래스. 그러나 태평양 전선에선 깡패였던 데 비해, 유럽전선에선 Bf109와 Fw190에게 수모를 당했다. 상승률에선 더 떨어지고, 수평속도는 엇비슷한 독일기들에게 패배한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급강하 속도의 부족. 재밌게도 P-38은 이 문제를 타개하고자 선회성능의 우위를 활용, 선회전을 걸었다고. 덩치는 크지만 생각보다 고속에서의 선회력은 좋다고. 하지만 거의 일방적으로 당한 것에 가까운 전과를 보면 일격이탈의 본가 독일공군은 거기에 잘 걸려들어주지 않은 듯 하다.
  100. [100] 특히 F4F 와일드캣은 기체 강도를 믿고 급강하 속도 제한이라는 것을 걸어놓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101. [101] USAAF INFOMATIONAL INTELLIGENCE SUMMARY NO. 85 에서 가져옴
  102. [102] USAAF INFOMATIONAL INTELLIGENCE SUMMARY NO. 85 에서 가져옴
  103. [103] # 에서 가져옴
  104. [104] # 에서 가져옴.
  105. [105] # 에서 가져옴.
  106. [106] 원래는 'Hap'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미 육군항공대 사령관 헨리 아놀드의 별명도 'Hap'이었다. 이를 불쾌하게 생각한 육군항공대 수뇌부의 반발로 'Hamp'라고 바뀌었다고...
  107. [107] 52a의 경우엔 벨트급탄식으로 교체하여 총 기관포 장탄수가 250발로 증가했다.
  108. [108] 위에서도 무전기의 중요성은 여러 번 언급됐지만 또 다시 무전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편대전이 되거나 대규모 난투전이 됐을 때 아군끼리의 연계가 되는가, 안 되는가다. 간단히 전투상황의 파악을 위해서도 동료기측에서 무전으로 전투 정보를 알려주느냐, 그렇지 않고 조종사가 정보를 직접 알아내야 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전장의 상황 정보는 시시각각 변화하므로 동료기나 본대로부터 변하는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에 무전기는 매우 중요하다.
  109. [109] 2016년 현재에도 TV 뉴스에서도 '당대 최강'이라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등 일본인의 제로센에 대한 환상은 엄청나다.
  110. [110] 시도우 98식이란 이름이다. 그런데 언급되기는 분명히 제로센이라고 언급되면서 확인사살. 작중에 조립된 기체는 제로센 후기형으로 보이는 시도우 99식이라는 이름이다.
  111. [111] 위 항목에도 제로센이 뜨자마자 분해됐다는 언급이 있다.
  112. [112] 참고로 일본에서 제로센의 개량에 실패했던 가장 큰 원인은 자원난이다. 아이자와 미사키 루트의 후반기인 요새 탐험에서는 그것까지 제대로 고증해준다.
  113. [113] 일부러 그랬을 수는 없고... 그냥 아무 사진이나 갖다 쓰다가 일어난 해프닝인 듯.
  114. [114] 정경유착 때문에 주력 전투기가 CR.42같은 막장 테크를 탄게 문제였다만..
  115. [115] 현재에는 레저용 경비행기에나 사용되는 방식으로 2차 세계대전 시점에는 전투기의 제작방식으로는 퇴출단계 였다. 다만 허리케인이나 Yak-1처럼 비용이나 재료수급, 제작 정비등의 문제로 인해 후방동체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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