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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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LG 트윈스

LG TWINS

창단

1982년 1월 26일

법인 설립

1985년 7월 1일[3]

팀명 변경

1990년 3월 15일

법인명

㈜LG스포츠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구단명

MBC 청룡 (1982~1989)
LG 트윈스 (1990~)

연고지

서울특별시 (1982~)

구단주

구본준[4]

사장

신문범

단장

양상문

감독

류중일

영구결번

41.김용수, 9.이병규

홈 구장

동대문야구장 (1982)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1982~ | 25,553석)

2군 구장

LG 챔피언스 파크 (874석)

마스코트

럭키, 스타[5][6][7][8]

킷 스폰서

워드 마크

홈페이지

| | [9] | | | |

공식 애플리케이션

|

최종 우승 (2회)

우승 엠블럼

1990년

1994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4회)

단일 리그

1990년, 1994년

전, 후기 리그

1983년 후기

양대 리그

2000년 매직

프랜차이즈 팀 기록

최고 승률

.643
1994년 126경기 81승 45패

최저 승률

.365
2008년 126경기 46승 80패

최다 승

81승
1994년 126경기 81승 45패

최다 패

80패
2008년 126경기 46승 80패

최다 관중

1,289,297명
2013년[10][11]

최소 관중

245,209명
1985년[12][13]

LG 트윈스 영구결번

김용수

이병규

1. 개요
2. 구단 소개
3. 팀 컬러
4. 구단이 그룹명을 바꾸다
5. 인기도
6. 마스코트
7. 구단 색상 일람
8. 영구결번
8.1. '노송' No.41 김용수
8.2. '적토마' No.9 이병규
9. 상징적 인물
9.1. 1994년 신인 3인방
10. 팀의 역사
10.1. 역대 감독
10.2. 역대 구단주
10.3. 역대 성적
10.4.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10.5. 2009년 이전
10.6. 2009년 이후
10.7. 2020년 이후
11. LG 트윈스 선수 관련
12. 트윈스 관련 커뮤니티
12.1. I love Twins
12.2. LG 트윈스 갤러리
13. 역대 유니폼 변천사
14. 사건사고
15. 지역 연고 학교
16. 관련 문서
17. 네임드 팬
18. 응원
19. 서울 SK 나이츠와의 평행이론
20. 홈런 전광판
21. 기타
22. LG 트윈스 관련 도서
23. 둘러보기

1. 개요

서울의 첫사랑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서울특별시 연고 팀.[14][15]

KBO 리그 역사상 1호 승리구단.[16]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서울특별시.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3개 구단 중 하나이며,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사용한 프로 스포츠 구단이다.[17] 모기업은 LG그룹으로, 산하 스포츠 법인인 LG스포츠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홈 구장은 서울특별시 잠실 야구장.

2. 구단 소개

서울의 자존심! LG 트윈스![18]

2002년의 경기 시작 영상이다. 매년마다 영상은 바뀌지만 이 BGM 만큼은 창단 시절부터 현재까지 사용 중이다.[19]

2018년의 경기 시작 영상 및 라인업 소개 영상이다.

아래 영상은 바쁜 사람은 1분 19초부터.

1982~1985

1986~1989

럭키금성그룹이 1982년 창단한 문화방송MBC 청룡을 1990년 1월 18일 150억 원에 인수하여 그 해 3월 15일에 재창단, LG 트윈스 시대가 시작되었다. 로고나 유니폼은 팀이름도 그렇고 미네소타 트윈스와 매우 흡사하다. 팀명인 LG는 모기업 이름인 Lucky + GeumseongGoldstar의 약자. 트윈스라는 애칭은 당시 럭키금성그룹의 상징과도 같던 여의도 트윈타워[20] 사옥에서 유래했으며, 미국에도 같은 애칭의 야구팀이 있으므로 야구팀 이름으로 못 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21]

팀의 상징색은 MBC 청룡 시절에는 파란색을, LG 트윈스 시절부터는 검정색이 중심이며 빨간색과 매우 진한 핑크색[22]을 부수적으로 사용한다. 다만 TV 중계나 스카우팅 리포트같은 서적 등에서는 LG 트윈스를 소개할 때 검정색보다는 진한 핑크색을 주로 사용한다.[23]

1990년 창단 원년에 순위 변동이 심했지만[24] 여름에 들어서면서 2013년 시즌 진격의 LG를 방불케하는 성적을 보여주면서 순위 상승을 하는가 싶더니 마지막에 가서 해태와 근소한 차이로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25]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해 시즌의 돌풍을 일으키며 화려한 데뷔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듬해 성적이 내려앉고 이후 이광환 체제로 들어서면서 세대교체와 자율야구를 도입하는 과정에 약간의 진통을 겪다가 1993년부터 포스트시즌에 계속 진출을 하면서[26] 90년대 포스트시즌의 단골 손님으로 입지를 굳혔다. 물론 가을야구에 실패한 시즌도 있었지만 이듬해엔 보란듯이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정도로 저력이 있던 팀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성적은 6668587667(2003~2012년)으로 좋지 않은 편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가지고 있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을 경신하며 신기록을 달성하고 말았다. LG가 21세기 들어서 가을야구를 한 시즌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2002년,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2013년, 최하위에서 4위로 대반전에 성공한 2014년, 처음부터 리빌딩을 선언하고 잠시의 추락 후 2014년의 재현을 이루어낸 2016년 네 번 뿐이다. 그래도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포스트시즌에 3차례 진출을 하면서 -- 2000년대의 부진을 털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를 한층 높이는 중이다.

3. 팀 컬러

LG 트윈스/팀 컬러 항목 참조.

4. 구단이 그룹명을 바꾸다

사실 LG그룹KBO 리그에 더 일찍 참가할 수도 있었다. MBC가 추진하던 프로야구 창설 TF에서 럭키금성그룹에 "부산·경남지역 연고 프로야구단을 만들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했다.[27] 이때 당시 외유 중이던 구자경 회장 대신 이헌조[28] 럭키금성그룹 기획조정실장이 "지금 오너가 부재중이니 돌아오신 후에 협의 후 확답하겠다"며 답변을 미뤘고, 당시 KBO는 프로야구 창단 목표일까지 시간이 촉박했던지라 서울 연고를 고집하던 롯데그룹을 부산으로 보내버리며 프로야구 원년 연고지 배치를 마무리 지었다.[29] 그리고 그 두 팀의 인연은 기묘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후 구자경 회장이 귀국하여 이헌조 실장으로부터 그런 일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자 무릎을 치며 "이 문디야, 그냥 하겠다고 받아 들였어야 안카나!" 라며 이 실장을 나무랐다고 한다[30]. KBO 리그는 구단주 회의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카르텔 구조이기 때문에, 한 번 때를 놓치면 마음대로 참여할 수도 없다. 그래서 꿩 대신 닭격으로 만든것이 럭키금성 황소 그 돈 많던 현대그룹이 프로야구단을 만들려고 하자 8개 구단주들의 반대로 새로운 리그를 창설할 뻔한 일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1990년 새로운 통합CI LG를 채택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서 LG 트윈스를 창단했으나, 이후에도 공식적인 그룹이름은 럭키금성이었고 기존 계열사이름도 그대로였다. 수십 년 동안 써온 '금성(GoldstarGeumseong)', '럭키(Lucky)'로고 버리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LG 트윈스가 그룹에 준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야구단 인수 당시 그룹 이름은 LG가 아닌 럭키금성이었다. 당시 럭키금성그룹은 (주)럭키(현 LG화학), (주)금성사(현 LG전자) 양대 주력사를 주축으로 계열사 이름도 럭키xx, 금성## 식으로 일관성이 없었다. [31] 그러나 MBC 청룡을 인수하면서 럭키금성은 너무 길고, 줄여서 럭금은 어감이 별로라는 이유로[32] 팀명을 럭키의 L과 GoldstarGeumseong의 G를 합쳐서 LG로 정하게 되었다.[33] 반도패션, 호남정유도 LG로 바뀌면서 명칭을 LG패션(현재는 그룹에서 분리), LG정유(현 GS칼텍스)로 통일했다. 또한 럭키금성 시절엔 편의점 이름을 LG25 (현 GS25) 라고 한 적도 있었다.

이후 1994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야구단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야구를 좋아하는 구본무 회장이 크게 기뻐하면서 그 다음해 그룹명을 정식으로 LG로 확정했고 뚝섬 돔 경기장을 지을 계획도 세우기까지 했다. 구단이 그룹 전체의 이름을 갈아버린 셈이다. 또한 1984년 창단된 프로 축구단 럭키금성 황소도 LG 치타스(현 FC 서울)로 이름을 바꾸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참고로 LG 트윈스 창단작업 때 만든 로고는 이후 편의점 체인인 계열사 LG25에서도 사용하게 되어 GS그룹으로 분리되어 GS25로 바뀌기 전까지는 매년 수익의 일정 %를 LG트윈스에 로열티로 지급했다.

그러나 LG그룹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미 1984년에 그룹 계열사인 LG애드가 발족한 것을 보면 장기적인 프로젝트였을지도 모른다. 2007년에 발간한 LG 60년사에서는 야구단이 그룹 이름 변경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다. 비밀번호 진행중에 발간되었으니.... 다만 최초는 LG애드나 LG카드에게 내어줬을지언정, LG라는 그룹명이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선 것은 90년대 초반 LG트윈스의 공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 그룹이 야구단을 자신들의 가장 큰 홍보 수단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2017년 구단 CI와 워드마크가 바뀐 것으로도 볼수 있는데 송구홍 단장이 밝힌 바로는 2017년 LG 그룹 70주년을 기념해 변경한 것이라고 한다. 송구홍 단장이 "그럴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라며 얼버무리긴 했지만 자신이 단장으로 부임하기 이전부터 준비되어온 작업이었다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그룹 윗선에서 직접 개입했을 확률이 높다.

5. 인기도

서울의 자존심 무적LG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하며, 기나긴 암흑기 끝에 빠질 사람은 다 빠졌던 시기에도 관중 수 3위 정도는 너끈히 찍었다.[34] 특히 연 관중 200여만명대에 불과했던 2000년대 초중반, 모든 팀 중 유일하게 평관 1만명대, 연 70만 관중을 유치하며 프로야구 최악의 암흑기를 그나마 건사할 수 있게 만든 리그의 소년가장 같은 팀이었다. 그리고 2013년 비밀번호를 깨버리자 6년 만에 관중 동원 1위를 탈환, 128만 명[35]을 동원하며 95년에 세워졌던 최다관중 기록을 갈아치웠고, 2014년에도 118만 명을 동원하며 1위를 유지했다. 더불어 2015년 기준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와 같이 통산 관중이 2천만 명을 넘은 구단이기도 하다.

특히, 리즈 시절의 LG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전국구 최고 인기 구단 중 하나였다[36]. 이후,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시작되는 구단 내 삽질과 자율이 방종이 돼버린 선수들의 무기력한 모습들이 성적부진으로 귀결되어 팬이 많이 떨어져나갔지만, 여전히 팬 숫자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인기많은 구단 중 하나이다. 이는 마산에서 치러진 2014년 준플레이오프를 봐도 알 수 있는데, 홈팀이었던 NC를 누르고 3루 쪽까지 전부 LG를 응원하는 노란 수건으로 뒤덮어 버렸다. 물론, NC가 신생구단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팬덤이 얼마나 거대한 지를 보여줬던 사건. 특히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미남 선수들로 인해 여성팬들을 다수 보유했던 원조 오빠부대 구단이기도 하다[37].

팬들의 충성도 또한 리그 탑급이다. 특히, 2014 시즌 무렵부터 응원단이 가지 않는 장거리 원정 경기[38]반드시 북과 응원도구를 들고 나타나는 LG 통합 원정 응원단이 선수단과 거의 동행하다시피 따라다니고 있다. 엘롯기로 묶이는 롯데KIA도 모든 원정 경기에 따라다니는 단체 팬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LG 팬의 충성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수도권 팀인 SK, 넥센, kt는 당연히 없고 그나마 두산 팬들이 많이 다니지만, LG가 성적이 좋을 때는 비교가 안 된다.-[39]

또한 허구연이 중계 중 시즌권을 언급하면서 LG 트윈스의 시즌권 구매율을 따라갈 팀은 없다고 언급하였다.[40][41]야빠 만화가인 최훈이 가장 까는좋아하는 팀. 예전부터 팀이 삽을 푸면 팬들이 명문장과 명작들을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소설까지 꼽지 않더라도 야구의 추억의 저자 김은식, 인천 야구에 대한 책을 펴낸 고 이종남 기자, 그리고 이런 네임드까진 아니라도 삼미계열이나 쌍방울 팬들의 한탄이 담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글은 정말 구구절절한데, 이게 21세기 들어서는 엘롯기에서 보인다는 이야기. 하지만 본래 하대리로 떴고, 야구 만화조차 국내가 아닌 MLB카툰으로 먼저 성공한 터라서 망한 팀의 팬이 각성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사례이긴 하다.

선수들 응원가의 퀄리티가 평균적으로 굉장히 좋은 편이란 것도 인기몰이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동요를 많이 차용하는 타 팀과 달리 대중가요를 적극적으로 개사하는 편이다. LG 경기에 간 상대팀 팬들이 LG 응원가에 중독되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죽하면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LG에서 응원단장만 데려오면 된다고 하던 때도 있었다.[42] 2007년부터 LG의 응원가 노래엔 패티 김 선생의 노래가 많이 쓰인다. '서울의 찬가', '서울의 모정', '그대 없이는 못살아'[43]가 그 예.

응원 도구로는 현재 빨간 응원방망이(2,000원)와 노란색 응원수건(4,000원)이 사용된다. KBO 리그에서 처음으로 입으로 불어서 막대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응원도구(일명 '막대풍선')를 사용한 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노란색 응원방망이가 사용되기도 했으나 1997년 가을부터 응원방망이 색깔이 현재의 빨간색으로 바뀌었다.[44] 가끔 노란색 응원수건과 비슷한 크기의 노란색 응원종이를 경기 도중 나눠줄 때가 있다. 그리고 LG팬들의 영혼의 친구 유광잠바가 있다.

잠실야구장 LG 홈경기에 가보면 파랑+노란색의 잠바나 모자를 쓰고 있는 팬들이 많은데 이것은 LG의 전신인 MBC 청룡의 유니폼이다. LG 구단에서는 자체적으로 청룡과 관련된 행사를 많이 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당수의 팬들이 주문제작 등을 통해 청룡 관련 상품들을 소유하고 있다.

2013년2014년에도 여전한 관중 동원력을 보여준 LG이지만 너무나 길고 긴 암흑기의 탓으로 대부분 신생 서울팬을 두산에게 빼앗긴 상태다.[45][46] 더 이상 90년대의 영광만 바라볼 수만은 없는 상황. 야구 팬들의 신규유입을 위해서는 구단의 노력과 자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많은 LG팬들이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LG팬들의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유입이 줄고 있는 반면, 반대로 두산은 팬 평균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이며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47]

2016년, 밑바닥을 찍었던 7월 이후 신바람을 몰아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면서 통산 2700만 관중을 돌파하였다.허나 8월 이후 집관도 참을 수 없는 경기력이...무득점 트윈스 ㅠㅠ

2018년은 성적이 반등하면서 관중 동원에서 다시 1위를 달리고 있다. LG가 성적이 좋으면 경기장에 오지 않던 LG팬들도 다시 직관하러 오기 때문. LG 팬덤이 굉장히 크고 넓다는 것이 드러난다.

2018년 성적반등과는 별개로 신규 유입 팬이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디즈니 등 야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퀄리티 높은 콜라보레이션들이 계속되고 있고 2000년에 신규스타들 발굴에 실패했을 때와는 달리 끈질긴 노력 끝에 새로운 세대의 선수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기 때문. 새로운 선수들이 나타나면서 여성팬들이 적었던 LG에 여성팬들이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런 팬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두산에게 15연패(지난 시즌 합해 17연패)라는 씻을 수 없는 흑역사를 새로 쓰며 팬들의 직관열기도 크게 수그러들었다. 실제 2018년 9월 30일 두산경기는 거의 꽉찬 두산쪽에 비해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비를 보여주었다

2018년 극심한 롤코를 타다가 8위로 추락해버린 팀 성적에도 불구하고 전체관중 978,531명에 평균관중 15,783 을 기록했다. 올해 KBO전체 관중이 800만이 덜 되는것을 감안하면 그저 넘사벽. 그리고 엿같은 성적에 우는 팬들의 고통도 넘사벽

6. 마스코트

LG 트윈스의 마스코트

럭키 (왼쪽 타자)

스타 (오른쪽 투수)

LG 트윈스의 마스코트는 럭키와 스타로 2017년에 처음 공개 되었다. 두 캐릭터의 이름은 LG그룹의 과거 명칭이었던 럭키 금성(Gold Star)에서 이름을 따온 듯. 다만 LG 트윈스의 새로운 CI와 로고에 대한 불만의 불똥이 마스코트에 까지 튀면서 영 좋지 못한 반응을 얻었다.

럭키는 이대형, 스타는 김선우 닮았다 뒷머리가 긴 걸 보니 90년대의 전설이었던 그분도 생각난다.

  • 구단이 LG에 인수된후 처음으로 등장한 마스코트는 쌍둥이 로보트였다. # 이후 2006년 CI교체 이후 그냥 사람 캐릭터로 바뀐 상황. 2017년부터 다시 쌍둥이 로보트로 돌아왔다.

[48]

  • 이후 팀웍이와 근성이름을 뒤집으면?라는 이름의 캐릭터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공개후에도 반응은 영좋지 못했고, 몇몇 팬들 사이에선 오리갑을 마스코트로 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럼 구단명을 덕스로 바꿔야 해 그럼 오리인 브레이비를 마스코트로 쓴 한큐 브레이브스는? 암흑기 당시에는 팀 상황이 워낙 시궁창이어서 야구팬들 사이에선 마스코트 이름만 근성과 팀웍이고 현실은 시궁창이라며 비웃기도 했다.
  • 2017년 4월 4일, 홈 개막전 때 마스코트들의 실제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홀쭉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왠 뚱땡이가 되었냐는 의견이 많다.

왼쪽부터 1990-2005 / 2006-2016 / 2017- 로 구분된다. 마스코트가 쌍둥이 로봇에서 쌍둥이 사람으로 그리고 다시 쌍둥이 로봇으로 돌아왔다.

7. 구단 색상 일람

LG 트윈스의 색상 일람

상징색

Pantone

RGB

CMYK

Red

Pantone 207c

R196 G4 B82

C0 M100 Y40 K20

Gray

Pantone 430c

R109 G110 B113

C0 M0 Y0 K70

Silver

Pantone 428c

R167 G169 B172

C0 M0 Y0 K40

Black

Pantone 426c

R0 G0 B0

C0 M0 Y0 K100

8. 영구결번

||

2017년 7월 18일 kt wiz 전부터 걸려있는 레전드의 등번호[49]

8.1. '노송' No.41 김용수

LG 트윈스 영구결번

No.41 김용수

  • 1985 - 2000
  • 1999년 4월 19일 영구결번
  • 통산 613경기 126승 89패 227세이브 평균자책점 2.98 1146 탈삼진

LG 트윈스가 배출한 유일한 한국시리즈 MVP인 늘 푸른 소나무 김용수 선수가 트윈스 최초의 영구결번이다.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며 1999년 4월 19일에 국내프로야구 최초 100승 200세이브를 달성한 김용수 선수의 41번은 팀의 첫 영구결번이 되었고 2017년 이병규의 영구결번 지정 이전까지 트윈스의 유일한 영구결번이었다.

MBC 청룡에서도 뛴 노송인지라 청룡과 트윈스의 역사를 이어주는 선수이기도 하다. 실제로 청룡 유니폼을 잠실야구장에 입고 오는 팬들의 등에는 41번이 높은 확률로 마킹되어 있다.

선수 시절의 김용수는 그야말로 레전드 대접을 받을만 하지만 코치 시절의 삽질과, 결정적이었던 조시카 사건으로 LG팬들이 현재 노송을 보는 시선은 굉장히 복잡하다. 한 마디로 하자면 선수시절의 노송은 깔 수 없지만 코치로서는 이제 만나지 말자. 그러나 조윤준이 2017년 드디어 오랜 부진을 떨쳐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 평가도 바뀔 가능성이 생겼다.

이병규가 영구결번되기 전까지 잠실 야구장 LG 홈경기 시 1루 내야석과 우측 외야석 사이 계단에 김용수의 등번호 41번과 영구결번일인 1999.4.19가 박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었다.[50]

8.2. '적토마' No.9 이병규

LG 트윈스 영구결번

No.9 이병규

  • 1997 - 2016
  • 2017년 7월 9일 영구결번
  • 통산 1741경기 2043안타 161홈런 타율 0.311

2017년 7월 9일 한화전에서 이병규의 은퇴식과 함께 영구결번 지정이 확정되었다. 1997년 데뷔해 최단 기간 2000안타, 최고령 타격왕 등등의 기록들을 남기고 프로 커리어 20년의 대부분을 LG에 바친 타자 이병규도 두 번째 영구결번의 주인공이다. 다만 먼저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김용수와는 달리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없고[51] 한국시리즈에 3번(1997년, 1998년, 2002년) 출전한 경험은 있다. 90년대 LG의 황금기 중반부터 다시 팀이 회복할 때까지 함께했으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가 달았던 9번은 LG트윈스의 두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9. 상징적 인물

LG 트윈스

No.47 이상훈

  • 1993 - 2003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지는 못했지만 트윈스를 상징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야생마" 이상훈을 첫 손에 꼽는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팀의 에이스였고 1995년 선발 20승의 신화를 썼으며 팀이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 등판을 자청할 정도로 트윈스를 사랑했던 투수다.

불펜에서 마운드까지 역동적으로 뛰어오는 특유의 등판 장면과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완벽한 활약을 한 그를 기억하다가 현재의 LG 투수진을 볼 때 LG팬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고 한다. 야생마는 금지어 시절 구단과의 마찰로 석연찮은 이별을 한 후 옆집을 거쳐 2015년 겨울에 LG 코치로 다시 돌아왔다.[52] 등번호는 선수 시절과 같은 47번[53] 다시 LG로 이상훈이 돌아온 만큼 영구결번을 원하는 LG팬들도 많으나 실현가능할지는 아직 모른다. 물론 LG 구단과 이상훈 사이의 구원(舊怨)이 풀린 만큼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릴 가능성도 있다.

LG 트윈스

No.62 서용빈

No.6 유지현

No.7 김재현

이 밖에 1994년 LG의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김재현, 유지현, 서용빈 3인방도 프랜차이즈 스타들[54]이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허슬 플레이어" 송구홍 이나 "검객" 노찬엽또한 추억의 선수들이다. 이후 2016년을 마지막으로 "적토마" 이병규가 은퇴함에 따라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 중에는 박용택이 LG의 거의 유일한 대표 프랜차이즈 선수로서 활약하고 있다. 혹사의 영향으로 오랜 재활을 통해 다시 돌아와준 이동현도 팀에 대표적 투수 프랜차이즈 선수이다. 2007년부터 입단하여 봉중근 또한 팀의 에이스→마무리로 서서히 팬들에게 프랜차이즈 선수로 언급되고 있으며 차세대 프랜차이즈로는 오지환이 자주 언급된다.

LG 트윈스

No.2 김동수

포수 중에는 김동수가 레전드 대접을 받고 있다. FA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는 등[55] 당시에는 김통수 같은 비난을 받았지만, 2014년 말 15년 만에 친정팀 LG로 돌아온 뒤 현재는 2군에서 차근차근 차기 감독 수업을 받고 있었지만 2군에서 평가가 상당히 나빠 1군 감독 데뷔는 무산되었다.

MBC/LG의 포수계보는 유승안 - 심재원 -김동수 - 조인성 - 유강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동수 이후로는 평가가 안 좋은 편.

LG 트윈스

No.29 로베르토 페타지니

No.38 데이비드 허프

LG 트윈스

No.99 크리스 옥스프링

No.50 헨리 소사

외국인 선수 중엔 2008년, 2009년 시즌 맹활약을 펼친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있다. 얼마나 활약이 대단했으면 LG팬들이 페타신, 페느님이란 별명을 붙였을 정도. 그가 남긴 충격이 대단했기에, LG팬들은 활약이 대단한 선수들에게 ~타지니라는 접미사를 붙이고 있다.[56] 그리고 2007년 시즌 중반 입단해 2008년 시즌 팀의 성적 부진, 특히 불펜진의 난조로 많은 승수를 챙기지 못해 옥크라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도 10승을 챙기면서 대인배급 성격과 상냥한 팬서비스를 보여줬던 크리스 옥스프링옥춘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부상으로 이닝을 많이 소화하지 못했지만 2시즌 동안 1선발로 리그의 에이스였던 데이비드 허프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고, 최장수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도 이닝 이터 역할을 해주며 지금도 활약 중이다.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서 팀이 죽을 쑤다보니 다른 방면으로 상징적 인물이 된 이들이 많다. 특히 2006년 활약한 방화신기(등유규민, 휘발류택현, 경유헌호, 김민기름, 정유재복) 멤버들은 전설이 되었으며, 이 외에도 먹튀계의 영원한 아이돌 홍보살홍현우국내 프로야구계의 첫 먹튀 이정길이 있다. 부산 영도구청장에 취임한 어윤태[57]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2000년대 후반에는 우규민KIA한기주화염 방사를 하고 다녔다. 파이야!~ 하지만 그랬던 우규민도 경찰청 제대 이후에는 선발투수로 전향하여 오랜 기간 흔들렸던 LG 선발진의 한축을 담당하며 토종 에이스로 발돋움하며 국가대표에까지 뽑혔다.

LG 트윈스

No.33 박용택

No.51 봉중근

LG 트윈스 우승감독

1990년 V1 백인천

1994년 V2 이광환

????년 V3 ???

이 외에도 팀에서 오래 헌신한 이종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최동수, 허문회 등이 있다.

MBC 청룡의 4할 타자이자 첫 번째 우승 감독이었던 백인천은 LG팬들에게는 전설적인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롯데에서의 악명높은 활약(...)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조금 묻힌 감이 있다. 하지만 본인이 2017년 개막전 시구에도 나서려고 하는 등 LG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다. [58]

80년대 상징적인 선수들로는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개구리 번트' 김재박, '미스터 청룡' 김상훈, '개막전 만루홈런' 이종도, '청룡의 안방마님' 심재원, '첫번째 에이스' 하기룡, '쌕쌕이' 이해창 등이 있다.

9.1. 1994년 신인 3인방

위에서 언급되었지만 먼 옛날로 건너가면 LG에도 영광스러운 과거들이 있었다. 특히 1994년 이광환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가장 파격적인 활약을 보인 신인 선수 셋 김재현, 유지현, 서용빈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LG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꽃보다 남자가 생기기 이전, LG에겐 꽃미남 3인방이 있었다..

세 명의 1994년 기록은 다음과 같다.

  • 김재현: 시즌 125경기 출장, 타율 0.289 134안타 홈런 21 타점 80 도루 21(20-20 클럽)
  • 유지현: 시즌 126경기 출장, 타율 0.305 147안타 홈런 15 타점 51 도루 51 (신인왕 수상)
  • 서용빈: 시즌 126경기 출장, 타율 0.318 157안타 홈런 4 타점 72(사이클링 히트 기록)

그러나 LG의 암흑기 이순철 시대에 김재현은 FA 후 SK로 이적하고, 서용빈은 병역비리에 연루된 후 은퇴, 유지현도 은퇴했다. 김재현은 2011년 SK에서 재기에 성공했고 마지막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했으며, 서용빈과 유지현은 각각 LG 트윈스의 타격과 주루코치가 되었다.

다만 항상 셋이 나란히 언급되는 것과 달리, 특히 김재현과 유지현은 사이가 굉장히 나쁘다. 선수협 결성 당시 김재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에 반해 유지현은 구단의 편에서 선수협을 결사반대했고, 김재현을 제외한 LG 선수들이 전부 선수협에서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 당시 김기태, 이 모 씨 등과 함께 오적으로 불렸다.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이 둘은 이 때 완전히 갈라섰다. 그러나 유지현도 나중에 LG 프런트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

덧붙이자면, 1994년 LG의 신인 중엔 위의 세 선수 말고도 주목할 만한 선수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투수 인현배. 그는 위의 세 선수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하여 94년 전반기에만 10승을 쓸어 담으며 LG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부상 등의 악재가 겹쳐 남은 기간 동안 1승도 못 올리고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어쨌든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이 10승을 올렸으니 수치상으로는 성공했다 볼 수 있지만, 그 후로 거의 활약을 못하고 은퇴함으로써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허나 1994년 LG의 최전성기를 지켜본 올드팬들 중엔 신인 3인방에 인현배가 더해진 신인 4인방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30대의 늦은 시기에 기량이 만개한 최동수 역시 94년 신인으로서 LG에 입단했다. 당시엔 별 활약도 없었고 주목도 받지 못했지만... 201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노장으로서 묵묵히 팀을 이끌었다.

이래저래 94년 LG의 신인 농사는 프로야구 사상 최대의 대박 농사였다고 볼 수 있겠다. 하긴 그것으로도 모자라 옆집 1차지명 투수 류택현을 빼와서 한참 동안 잘 굴리고 있으니... 노인학대

그 결과...

저 당시에는 LG가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4년 후 2008년, 순위는 정 반대로 바뀌는데...

이 사진들의 웃긴 점은 정말 정확히 대칭이 되었다는 점이다. 8구단이 짜고 순위를 저렇게 대칭으로 만들기도 힘들 텐데 물론 쌍방울태평양은...[59] 그냥 넘어가자.

오랜 시간이 흘러 김재현은 구단과의 극심한 갈등으로 팀을 떠나 SK에서 활약하고 은퇴했고, 유지현은 주루코치, 서용빈은 타격코치를 맡고 있다. 그러나 박병호 폭행사건과 지속적인 탈쥐효과로 인해 서용빈은 예전만큼의 레전드 대우는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기에 LG 타자들이 죄다 똑딱이가 되어버리면서 그의 현역 시절 활약도 모조리 깎여나가고 있는 중. '김재현과 유지현에게 묻혀 별 것도 아닌 타자가 신인 3인방 취급을 받았다.' 'LG의 신인 3인방은 유지현, 김재현, 인현배였다'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10. 팀의 역사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서울특별시 연고 팀.[60][61]

KBO 리그 원년 시즌 첫 날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서막을 열었던 팀.

KBO 리그 역사상 1호 승리구단.[62]

MBC 청룡 시기의 최고 성적은 1983년의 준우승이다. 이후 LG 트윈스는 1990년, 1994년에 우승을 했다. 특히 이광환 감독의 신바람 야구를 내세운 1994년 우승은 현재까지도 LG 트윈스의 상징이자, 한국프로야구 발전에도 중요한 분수령이다. '뉴욕 양키스가 될만한 팀' [63]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1990년대 중반의 LG 트윈스는 잘 나갔다.

그러나 1997년과 1998년 2연준(2연속 준우승)에 그치고, 2002년에는 객관적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의 '원조 벌떼 마운드' 운용으로 투혼의 준우승을 일구어 냈으나, 시즌 후 준우승 감독을 경질하는 우를 범하고[64][65] 1994년 우승 감독인 이광환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았으나 이때부터 LG에 암흑기가 도래했다. 1년 만에 짤리고 수석코치 이순철이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창단 첫 최하위의 수모를 겪게 된다.[66] 2007년 시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김재박이 화려하게 친정팀으로 돌아왔으나 결과적으로 주전들의 철밥통 포지션 운영과 조공성 트레이드 등으로 비밀번호가 늘어났을 뿐이었다. 이 시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LG 트윈스/1990~2008년 참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암흑기를 보내면서 얻은 별명이 칠쥐(7위+LG)이다.

2007년 시즌에는 시즌 막판 삽질쇼로 인해 화끈하게 100억 지르고 5위라는 성적을 거두었으며[67], 2008년에는 결국 2번째 최하위의 성적표를 받았다.[68] 참고로 2008년의 2번째 꼴찌는 팀 역대 최저승률 기록이기도 하다. 몇 년째 100억 단위로 돈을 쏟아 부으며 굴하지 않고 매 홈경기를 관전하는 구단주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천사임이 틀림없다는 게 야구관계자나 팬들 사이에서 정설로 통.

실제로 엘롯기 중 기아 수뇌부는 아예 야구에 관심이 없어FIFA월드컵 스폰서의 위엄 운영은 현장과 프런트가 알아서 하고, 롯데 수뇌부는 구단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데 반해 LG 수뇌부는 꼬박꼬박 직관에 스프링캠프 때도 찾아가며 2군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다. 그러나 그게 꼭 좋은 건 아니다. [69] 야구를 잘 모르는 구단주의 지나친 관심은 자칫 필요 이상의 간섭과 구단주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사장, 단장의 삽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실제로 LG의 팀 성격이 엉망이 된 것을 그 때문으로 보는 입장도 상당하다. 이상훈+이광환 체제에 대한 미련으로 김성근 축출도 그렇지만, 리빌딩에 들어가야 할 팀에 포지션까지 중복되는 즉전급 선수를 몇 년 동안 사들여서 팀 목표가 리빌딩도 아니고, 우승 도전도 아닌 애매하게 흘러가는 이유가 된 것이 그 이유.카드수집? 이런 케이스가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도 있으니 바로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5년 준우승 이후 지속적인 영입을 통해 대권을 노렸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계속 좋은 유망주들도 놓치자 성적이 수직으로 추락한 것이 닮았다. 에스트로스는 하다하다 관조를 피해서 2013년 지구를 옮기라도 했지[70]

그러나 2011년 방영된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LG 특집에서 그 충격적인 실상이 알려졌다. 구단주가 임명한 사장이라는 인간이 "야구에 대해 문외한"이며 그저 술만 좋아해서 스프링캠프 때 박종훈 감독과 기자들 앞에서 추태를 부렸다 하니... 그나마 이 보도 덕에 그룹에서 직접 감사팀을 파견하여 대대적인 재정비 작업에 들어가면서 현재는 평타는 치는 프런트로 바뀌었다. 비록 능력 부족으로 인해 지탄받는 점은 있으나, 2011년부터 시작된 백순길 단장 체제가 4년 이상 지속되는 것만 해도...[71]

이 시기에는 10년 동안 도무지 발전이 없는 팀 성적과 구단의 철밥통 코치와 스카우터들, 이러한 답답한 LG 트윈스의 구단 경영에 실망을 넘어 염증을 느낀 팬들 사이에서는 정말로 진지하게 GS그룹에 팀을 매각하는 것이 어떨까하는 논의가 계속되었다. FC 서울과 GS 칼텍스 여자배구단 등 GS 그룹이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단은 LG 그룹보다 괜찮은 성적과 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 물론 실제로 LG 그룹이 야구단을 GS 그룹에 매각할 확률을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2013년[72]과 2014년[73] 연속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10년의 비밀번호를 끊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특히 2014년에는 김기태 감독의 사임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양상문 감독이 부임한 뒤 5할 -16 꼴찌에서 기적같이 4위에 안착하는 데 성공하면서 LG팬들을 기쁘게 했다.

2015년 구단 역사상 첫 9위로 최악의 한해를 보냈으나 2016년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함께 2년 전처럼 5할 -14에서 후반기 대반전을 만들어내며 4위에 안착, 2년 만에 가을야구에 복귀하였다. 허나 2017년 후반기 불펜들의 연쇄적인 붕괴와 타선의 침체로 평균자책점 1위를 찍고 가을야구에 실패했는데 해태 타이거즈 이후 2번째 기록이다. 그리고 철밥통 서용빈이 드디어 짤렸다. 하지만 강상수가 남아 있다.

10.1. 역대 감독

MBC/LG의 한국시리즈 감독은 2017년까지 5명으로 김동엽(1983), 백인천(1990), 이광환(1994), 천보성(1997, 1998). 김성근(2002)

순서

이름

재임 기간

전적

승률

초대

백인천

1982년 ~ 1983년

감독대행

유백만

1983년

감독대행

한동화

1983년

2대

김동엽

1983년

3대

어우홍

1984년 ~ 1985년

4대

김동엽

1985년 ~ 1987년

감독대행

유백만

1987년

5대

유백만

1988년

6대

배성서

1989년

순서

이름

재임 기간

전적

승률

7대

백인천

1990년 ~ 1991년

8대

이광환

1992년 ~ 1996년[74]

감독대행

천보성

1996년

9대

천보성

1997년 ~ 1999년

10대

이광은

2000년 ~ 2001년[75]

감독대행

김성근

2001년

11대

김성근

2002년

12대

이광환

2003년

13대

이순철

2004년 ~ 2006년[76]

감독대행

양승호

2006년

14대

김재박

2007년 ~ 2009년

15대

박종훈

2010년 ~ 2011년

16대

김기태

2012년 ~ 2014년[77]

135승 138패 5무

0.495

감독대행[78]

조계현

2014년

6승 10패

0.375

17대

양상문

2014년 ~ 2017년

187승 190패 5무

0.496

18대

류중일

2018년 ~

10.2. 역대 구단주

MBC 청룡 시절에는 문화방송 사장이 구단주 역할을 맡았고 LG그룹이 구단을 인수한 후부터는 LG그룹 오너가 구단주를 맡고 있다.

구단명

순서

이름

재임 기간

비고

MBC 청룡

초대

이진희

1982년

2대

이웅희

1982년 ~ 1986년

3대

황선필

1986년 ~ 1988년

4대

김영수

1988년 ~ 1989년

5대

최창봉

1989년

구단명

순서

이름

재임 기간

비고

LG 트윈스

6대

구본무

1990년 ~ 2008년

7대

구본준

2008년 ~ 현재

10.3. 역대 성적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경기수

승률

MBC 청룡

1982

3위/6팀[79]

3위

80

46

34

0

0.575

1983

1위/6팀[80]

준우승

100

55

43

2

0.561

1984

4위/6팀[81]

4위

100

51

48

1

0.515

1985

5위/6팀[82]

5위

110

44

65

1

0.404

1986

3위/7팀[83]

3위

108

59

41

8

0.590

1987

5위/7팀[84]

5위

108

50

51

7

0.495

1988

6위/7팀[85]

6위

108

40

64

4

0.385

1989

6위/7팀

6위

120

49

67

4

0.423

LG 트윈스

1990

1위/7팀

우승

120

71

49

0

0.592

1991

6위/8팀

6위

126

53

72

1

0.425

1992

7위/8팀

7위

126

53

70

3

0.433

1993

4위/8팀

4위

126

66

57

3

0.536

1994

1위/8팀

우승

126

81

45

0

0.643

1995

2위/8팀

3위

126

74

48

4

0.603

1996

7위/8팀

7위

126

50

71

5

0.417

1997

2위/8팀

준우승

126

73

51

2

0.587

1998

3위/8팀

준우승

126

63

62

1

0.504

1999

매3위/4팀[86]

3위

132

61

70

1

0.466

2000

1위/4팀[87]

4위

133

67

63

3

0.515

2001

6위/8팀

6위

133

58

67

8

0.464

2002

4위/8팀

준우승

133

66

61

6

0.520

2003

6위/8팀

6위

133

60

71

2

0.458

2004

6위/8팀

6위

133

59

70

4

0.457

2005

6위/8팀

6위

126

54

71

1

0.432

2006

8위/8팀

8위

126

47

75

4

0.385

2007

5위/8팀

5위

126

58

62

6

0.483

2008

8위/8팀

8위

126

46

80

0

0.365

2009

7위/8팀

7위

133

54

75

4

0.406

2010

6위/8팀

6위

133

57

71

5

0.429

2011

6위/8팀

6위

133

59

72

2

0.450

2012

7위/8팀

7위

133

57

72

4

0.442

2013

2위/9팀

3위

128

74

54

0

0.578

2014

4위/9팀

4위

128

62

64

2

0.492

2015

9위/10팀

9위

144

64

78

2

0.451

2016

4위/10팀[88]

4위

144

71

71

2

0.500

2017

6위/10팀

6위

144

69

72

3

0.489

2018

*위/10팀

*위

2019

*위/10팀

*위

2020

*위/10팀

*위

KBO 통산 36시즌

V2

4483

2121

2257

105

0.484

그 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조.

10.4.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KIA 타이거즈

83KS : 1무 4패

97KS : 1승 4패

02PO : 3승 2패

16WC : 1승 1패

WC 1승, PO 1승, KS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5승 1무 11패

삼성 라이온즈

90KS : 4승

93PO : 2승 3패

97PO : 3승 2패

98PO : 3승 1패

02KS : 2승 4패

PO 2승 1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14승 10패

두산 베어스

93준PO : 2승 1패

98준PO : 2승

00PO : 2승 4패

13PO : 1승 3패

준PO 2승, PO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7승 8패

현대 유니콘스

94KS : 4승

98KS : 2승 4패

02준PO : 2승

준PO 1승,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8승 4패

롯데 자이언츠

95PO : 2승 4패

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2승 4패

NC 다이노스

14준PO : 3승 1패

16PO : 1승 3패

준PO 1승, 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4패

넥센 히어로즈

14PO : 1승 3패

16준PO : 3승 1패

준PO 1승, 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4패

10.5. 2009년 이전

10.6. 2009년 이후

10.7. 2020년 이후

11. LG 트윈스 선수 관련

12. 트윈스 관련 커뮤니티

12.1. I love Twins

12.2. LG 트윈스 갤러리

13. 역대 유니폼 변천사

  • 2016년부터는 무려 스타워즈어벤져스와의 콜라보레이션 굿즈 상품이 출시되었다. 스타워즈는 시범경기 때 매장에 나왔고, 어벤져스는 5월에 출시. 트윈스샵이 아니라 헬로트윈스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야 상품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5월부터는 국산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와의 콜라보레이션도 진행되었다.
  • KIA 담당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10개 구단 중 유니폼이나 굿즈를 만들어 놓으면 만들어놓는 족족 가장 잘 팔리는 구단이라고 한다.

14. 사건사고

15. 지역 연고 학교

서울연고 야구팀인 넥센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는 지역연고학교를 합동 관리한다.

16. 관련 문서

17. 네임드 팬

주의사항 - LG 트윈스의 팬인 유명인을 서술 하는것은 좋으나 일부 초청 시구자들을 무조건 팬 목록으로 넣는 행위는 자제 해주시기 바랍니다.

18. 응원

2018 시즌 LG 트윈스 응원단

이연경, 장세희, 윤소은, 강민영
최동훈 응원단장, 정다혜, 남궁혜미, 차영현, 황건하 장내 아나운서

LG 트윈스 역대 응원단장

순서

이름

기간

초대

정석진

1993년 ~ 1998년

2대

홍경선

1999년 ~ 2005년

3대

남성훈

2006년 ~ 2008년

4대

강병욱

2009년 ~ 2010년

5대

오명섭

2011년 ~ 2014년

6대

최동훈

2015년 ~ 현재

2018 시즌 기준으로 LG 트윈스의 치어리더는 정다혜, 남궁혜미, 이연경, 차영현, 장세희, 강민영, 윤소은 총 7명이 있다. 김민지는 개인 사정으로 2016 시즌을 끝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정다혜는 2018 시즌부터 치어리더 팀장을 맡게 되었고, 지난 2017 시즌까지 SK 와이번스에서 활동했던 차영현 치어리더가 합류했다[166]. 응원단장은 최동훈이며, 장내 아나운서는 2016 시즌까지 일번 타아자아허지욱이 맡았다가 2017 시즌부터 황건하가 맡게 되었다.

KBO 구단 최초로 막대풍선 응원을 도입하고, 선수별 응원가를 도입하기도 했다. 또한 대학 응원가나 여러 명곡들을 활용해 수작으로 평가받는 응원가들을 탄생 시켰지만 하필 초대형 암흑기에 빠져있던 LG와 달리 로이스터 감독 시대를 맞은 롯데 자이언츠가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조지훈 단장의 들이 주목 받아버렸다. 당시 LG는 암흑기에 직면해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강병욱 응원단장과 오명섭 응원단장이 지금 현재도 불리우고 있는 박용택, 정성훈, 이진영[167], 오지환 등등의 응원가를 내놓으며 전성기를 맞은 롯데의 응원가에도 밀리지 않는 퀄리티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이 당시엔 야구팬들 사이에서 응원가 원탑 자리를 놓고 몇 년째 롯데와 다투기도 했었다. 이때 만들어진 응원가들이 대부분 좋은 퀄리티를 보여주며 포지션이나 비슷한 캐릭터의 후배 선수들이 대대로 내려 받는 전통이 있는데, 예를 들어 유지현의 응원가는 차세대 대형 유격수로 입단한 박경수가, 조인성의 응원가는 같은 성씨의 후배 포수가 물려받았고, 손인호의 응원가는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손주인이 물려받았다. 외국인 선수도 마찬가지로 페타지니의 응원가는 스나이더히메네스에게 대물림되었다. 또한 야잘잘 이형종은 단어의 창시자인 이진영의 응원가를 물려받았다. 자세한 것은 여기 참조

다만, 타 팀으로 이적한 선수의 요청에도 절대 응원가를 내주지 않는다. 2012년 FA로 SK에 이적한 조인성이 LG시절 응원가를 쓰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구단은 단호히 거절, 결국 조인성은 SK에서 이상한 응원가만 듣다가 한화로 이적해 병맛 좀 돋아도 중독성 있는 응원가를 받았다. 2015년에는 KIA를 거쳐 kt로 이적한 이대형이 LG시절 응원가를 사용하고 싶다고 밝혔고, 이번에는 승낙했다는 말이 기사화까지 됐지만 결국 안 쓰게 되었다. 그 노래는 이미 이 분이 가져가셨다카더라

이후 2013년 드디어 길고길었던 암흑기를 탈출하는데 성공하며 많은 LG팬들이 응원가들을 야구장에서 함께 부를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암흑기에 탈출한 이후 점점 응원가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새로운 응원단장이 된 최동훈이 만든 임훈의 응원가가 가장 퀄리티가 처참하다.[168] LG가 계속해서 엉망진창인 성적을 올리는 와중에도 LG팬들이 끊임없이 야구장을 찾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다른 구단들보다 뛰어난 응원가에 있었는데, 성적이 좋아진 2014년 이후에는 이 장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또한 옆동네 롯데팬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며 비판 받고 있고, 병맛 응원가들을 추구하던 또다른 옆동네의 응원가가 고퀄리티 응원가로 주목 받기 시작했고 같은 서울팀의 응원가도 주목받기 시작하며 롯데와 응원가 원탑 자리를 놓고 싸우던 시절도 결국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문제를 알고는 있었는지 2016년, 팬들로부터 응원가를 모집하는 등 변화의 노력은 보였으나... 시범경기에서 공개한 응원가들의 퀄리티는 여전히 처참했던 데다가, 서울 메들리나 서울의 찬가 등을 틀지 않고 새로운 단체 응원가만 주구장창 트는 바람에 [169], 경기 종료 후 밤 11시가 넘도록 최동훈은 LG 트윈스 갤러리와 I love Twins에서 미친 듯이 까였다. [170] 다행히도 최동훈 응원단장이 서울응원가를 틀어달라는 피드백을 수용하고 새로운 응원가들 중에 몇 개가 재평가 받아 불만의견은 많이 잦아든 상태.

자세한것은 LG 트윈스/응원가 참고바람.

19. 서울 SK 나이츠와의 평행이론

똑같이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고 있는[171] 서울 SK 나이츠와는 평행이론이라고해도 좋을만큼 여러 모습이 매우 똑같다. 우선 두 팀 모두 리그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인기 흥행 구단이다. 여기서 더 소름 돋는 것은 성적이나 팀의 면면을 볼 때 똑같은 점이 심하게 많다는 점이다. 그 평행이론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 2002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대구광역시 연고팀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삼성 라이온즈, 대구 동양 오리온스)
  • 그 이후 2013년까지 10년동안 플옵진출 실패 (SK는 10년동안 1회 진출)
  • FA로 스타선수를 영입해도 죄다 먹튀가 되는 흑역사[172]
  • 팀 플레이가 없고 철저하게 개인주의가 만연한 모래알 팀이라는 소리를 들음
  • 등번호 7번을 달았던 선수가 언급하기 어려운 선수가 됨(방성윤, 김재현)[173]
  • 2012년부터 형님 리더십을 표방하는 감독이 암흑기를 탈출시킴 (문경은, 김기태)
  • 암흑기를 탈출시킨 흑인 선수가 2013년 인성논란으로 곤욕을 치름 (애런 헤인즈, 레다메스 리즈)
  •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짧은 황금기

대략 2015년 초반까지는 두 팀이 그야말로 닮은 꼴인 팀이었다. 이후 2016년 LG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평행이론은 끊어졌고 2018년 SK 나이츠가 우승하면서 두 팀의 암흑기 동반역사는 끝을 맺었다.

혹시라도 LG 트윈스가 2018년 우승한다면뭐요? 평행이론이 또 다시 증명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리 없다는 건 이미 LG 트윈스 팬들이 더 잘 안다

20. 홈런 전광판

잠실야구장에서 홈팀 LG 트윈스의 홈런 전광판 그래픽.

잠실야구장이 LG 트윈스가 홈팀으로 야구 경기를 할 경우 홈런을 쳤을 때에 전광판에서 홈런 그래픽이 나온다. LG 트윈스의 경우는 안타, 병살타, 아웃과 달리 홈런이 나올 경우 전광판 그래픽이 조금 특이하게 영어로 나온다. 그리고 홈런의 경우는 때로는 어떤 경기에서 나오지 않을 경우도 꽤 많다.

21. 기타

  • 23년째 우승을 못했다. 한국 시리즈에 오른 것도 2002년이 마지막. [174] 어느덧 최원호의 눈물을 대구시민야구장에 남겨두고 15년이 흘렀다. [175] 그 덕에 LG그룹 금고 속에 있는 8천만원 짜리 롤렉스는 2017년까지 주인을 찾아가지 못했다.[176][177] 그리고 우승한 후 구본무 당시 구단주가 '다음 우승에는 이 술로 축배를 들자'며 술을 밀봉시켜 놨는데, 그게 벌써 24년째나 되었다(...) 이건 현재진행형. 결국은 구본무 회장이 그 모습을 못 보고 세상을 뜨고야 말았다.
  • LG카드로 구매 시 입장권 할인제도가 있었다. 신한카드로 인수된 현재도 일부 상품에 한정 존재하니 해당문서 참고. 어째서인지 LG트윈스 공홈에는 언제인가부터 해당 내용이 삭제되었다... 최소 14년까지는 공홈에 존재했다.
  • 응답하라 1994에서도 서울 쌍둥이의 모델이 되었고, 성동일이 구단 코치를 맡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1994년은 바로 LG 트윈스가 우승을 한 해이고, 드라마에서도 이걸 충실히 재현했다. 성동일은 기뻐하면서 인삼주를 담그면서 다음 해에도 우승하면 기념으로 따서 마신다고 했지만 작중 집들이 하러 모인 등장인물들이 몰래 따서 마셨다.
  • 해체된 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178]2015년에 1군에 합류한 kt wiz를 제외하면 KBO 리그 출범 이후 MBC-LG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홈런왕과 MVP 수상자를 낸 적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다. 홈런왕은 소총타선 이미지+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없는 게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179] MVP의 경우 MBC 시절인 1982년 시즌에 4할 타율을 달성한 백인천과 1995년 시즌에 20승을 달성한 이상훈이 높은 가능성을 보였지만, 각각 한국시리즈 우승 버프와 선발 22연승, 홈런왕+100타점의 박철순김상호에게 MVP를 빼앗기고 말았다. LG팬들은 이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한다. 공교롭게도 그 해 MVP 선수를 배출한 팀이 모두 OB-두산이다. 라이벌 팀에서 MVP-홈런왕을 가져갔거니와, 김상호도 사실은 MBC에서 데뷔를 해서 더더욱
  • 일본 위키에서는 월드컵이 개최되는 해마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징크스가 있는 팀 이라고 적혀 있다.2002년 이후 일본 위키는 아예 갱신을 안 한 듯하다. 확실히 1990년, 1994년, 1998년, 2002년 시즌에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었고 그중 2시즌엔 아예 우승까지 하긴 했지만,[180] 그것도 이젠 옛날이야기고 근래 들어서는 월드컵이 개최되는 해에도 부진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06년에는 창단 첫 최하위,[181] 2010년에도 6위에 머물렀으며 2014년에도 한화와 탈꼴찌 싸움을 하는 신세를 지기도 했다. 양상문이 취임한 6월 이후부터 무려 5계단이나 순위가 상승하며 2년 연속 가을야구를 하게 되었고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여 이 징크스가 다시 살아날 듯 보였으나 1승 3패로 플옵이 끝나 무효.
  • 인디밴드 로맨틱펀치의 노래 TGIF(Thank Girl, It's Friday!)에 '이룰 수 없는 이루어질리 없는 트윈스의 우승에 건배를'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로맨틱펀치의 보컬 배인혁은 LG의 골수팬이라고 한다. 해탈한 건가... 골수팬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
  • 2015년 들어 같은 구장 쓰는 팀이 우승을 한 반면, LG 프런트는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답답하고 어리석고 무능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서 LG그룹은 사실 야구를 하는 게 아니라 옷장사[182]를 하는 거라고 욕하는 팬들이 늘고 있다. 근데 사실 이 말에 반박할 수가 없다.
  • LG 트윈스와 KBL의 농구팀 서울 SK 나이츠는 놀라운 평행이론을 이루고 있다. 90년대의 전성기, 2002년 대구광역시 연고 스포츠팀에게 져서 준우승[183], 그 후 바로 10년의 암흑기[184], 그리고 잠깐의 부활[185], 그리고 2015년 다시 추락한 모습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 서울에서 가장 불행한 스포츠팬이 LG야구+SK농구팬이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 서울 SK 나이츠가 2017-18시즌 18년만에 우승을 하면서 LG보다 먼저 암흑기를 탈출했다.
  • 암흑기 동안 생산된 LG트윈스의 어두운 별명들은 LG라는 이름을 썼던 모든 팀들이 함께 짊어지고 있다. 창원 LG 세이커스, GS칼텍스 서울 KIXX, FC 서울 모두 성적이 엉망이거나 경기 중에 굴욕적으로 지면 인터넷 게시판 등지에서 빠짐없이 언급되는 것이 LG 트윈스의 별명들이다.[186][187]
  • 두산 베어스와 같은 홈구장을 사용하는 관계로 한 시즌에 LG와 두산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경우 최종 순위에 따라 2년후 홈개막전의 희비가 엇갈리곤 한다(...). 만약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이 LG보다 잘 하게 될 경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2년후 개막전을 어웨이로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188][189][190] 그러니 전용구장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서울시에 그런 거 새로 지을 대지도 없고... ㅠㅜ

  • LG팬들은 온라인상에서 같은 연고지에 같은 홈구장을 쓰는 두산팬들에게 1년 내내 조롱과 어그로를 당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LG의 황금기가 막을 내린지가 어느덧 10년이 넘어버렸기 때문에 최근의 젊은 두산팬들은 LG가 한국시리즈에 도전했을 시절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성적이 잘 안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LG 트윈스 관련 커뮤니티는 두산팬들에게 거의 매일같이 쑥대밭이 되기 일쑤다. 방법은 오로지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내는 것과 우승뿐이지만 타자조차 한 명도 제대로 못 키우는 LG프런트의 무능력함에 LG팬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일해라, 프런트!
  • 두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잠실이 아닌 원정팀의 홈에서 이뤘다. 1990년에는 대구시민구장, 1994년에는 인천 숭의야구장에서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열렸으며 이곳에서 LG가 우승을 확정지었다. 아쉽게도 이 두 곳은 철거되었거나 철거 예정이다. 하지만 이곳은 공교롭게도 훗날 LG에게 준우승을 안겨준 장소이기도 했다는 게...[191]
  • 포스트 시즌 진출 횟수가 12번으로 적은 편이나 특이하게 준플레이오프 에서 탈락한적이 없다.
  • 2010년대에 진출한 포스트시즌인 2013시즌, 2014시즌, 2016시즌의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가 모두 3:1로 결정났다. 그것도 1차전을 이긴팀이(2013 플레이오프 두산, 2014 준플레이오프 LG, 2014 플레이오프 넥센, 2016 준플레이오프 LG, 2016 플레이오프 NC) 진출했다.
  • LG가 못하는 것 세 가지 중 하나로 꼽힌다. 다른 나머지는 핸드폰, 마케팅. 실제로도 LG팬들 중에서는 야구단을 다른 그룹에 매각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다. LG그룹 특유의 선비스러운 경직된 분위기, 고려대 파벌이 야구단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22. LG 트윈스 관련 도서

대부분 2013년 LG가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한 시즌에 나왔던 책들로, 김기태가 2014시즌 초반 RUN을 해버리면서 지금은 대부분이 불쏘시개화 되었다.

  • 볼수록 만만한 야구 - LG 트윈스 신바람 야구 / 저자(김윤정) /2010년 5월 /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 축구편(FC 서울[192]), 농구편(서울 SK 나이츠[193]), 골프편과 함께 출간되었다. 학교 도서관이나 중고책방에서 가끔 눈에 뜨인다.
  • LG 트윈스 때문에 산다. 저자(김은식) / 2013년 11월 / 표지부터 그 놈이 등장해 기분을 더럽게 한다. 속지에도 큰 그림으로 또 있기 때문에 적당히 그 부분만 접거나 찢은 다음에 보자. 그 것만 빼면 MBC 청룡과 LG의 잘나가던 시절의 역사를 알고 싶으면 참고해 볼만한 책.
  • 10년을 기다린 LG트윈스 스토리. / 저자(안승호, 김식) / 2013년 10월 / 런기태 사건 이후에는 완전히 불쏘시개화.
  • 김기태의 형님 리더쉽. / 저자(남도현, 정철현) / 2013년 8월 / 런기태 사건 이후에는 완전히 불쏘시개화.
  • 봉중근의 야구공 실밥 터지는 소리 / 저자(봉중근) / 2013년 1월 / 책 뒷표지에 런기태의 추천사가 붙어있다. 그 부분만 먹칠을 하거나 화이트칠을 한 다음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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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어떨때에는 트윈스글자가 하얀색으로 바뀌어져있는 엠블럼을 사용하기도 한다.
  2. [2] 여담으로, 이 로고를 뒤집어서 보면 스님(…)가 된다.
  3. [3] MBC 청룡 시절 MBC 측에서 별도로 법인을 설립한 날짜. 구단 매각 당시 럭키금성그룹의 럭키금성스포츠(현 LG스포츠)에서는 야구단 운영권만 넘겨받았고 MBC 청룡의 법인은 존속법인으로 1993년 6월까지 유지되었다가 MBC 아카데미로 사명을 바꾸고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4. [4] LG그룹 부회장. 2008년 첫째 형인 故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구단주 자리를 넘겨 받았다. 둘째 형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KBO 총재가 되면서 전문경영인인 신용삼 사장이 구단주 대행 역할을 했으나 여전히 공식 구단주는 구본준 부회장이다. 다만 LG그룹의 4대 회장에 구본준 부회장의 조카인 구광모 회장이 선임되면서 구단주 선임 문제가 추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장자가 경영권을 잡으면 방계 경영인은 LG를 떠나야 하는 LG가문의 가풍 때문이다. 따라서 구본준 부회장이 트윈스 구단주직을 내려놔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5. [5] 좌측에 있는 팀 엠블렘 위에 그려지기도 한다.

    바로 이렇게.
  6. [6]
    여자 쌍둥이 마스코트인 사랑이, 행복이도 있다. 팀웍이와 근성이와는 다르게 분홍색 모자를 쓰고 치마를 입었다.
  7. [7] 팀웍이, 근성이 마스코트가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나 2017년 이름이 스타와 럭키로 바뀌었다. 스타와 럭키의 유래는 익히 알려져 있는 LG의 전신 '럭키'와 '금성(골드스타)'. LG의 창단시절 마스코트도 쌍둥이 로봇이었다.
  8. [8] LG 70주년으로 이렇게 했다고 한다.
  9. [9] 홈페이지를 제외하면 구단이 운영하는 SNS가 없는 유일한 구단이었다. 그러다 2016시즌을 앞두고 인스타그램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10. [10]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11. [11] 경기 당 평균 20,145명
  12. [12]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13. [13] 경기 당 평균 4,458명
  14. [14]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리그 창설 당시부터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창단한 팀이다. 축구와 농구, 배구는 리그 창설시에는 서울 연고팀이 없었고 이후 창단하거나 타 지역에서 이전시켰다. 동시에 2014년까지는 창단 이후로 쭉 서울만을 연고로 해 온 유일한 프로팀이었다. 2014년에 서울 이랜드 FC가 창단되긴 했지만 여긴 역사가 아직 짧으니 실질적으론 MBC가 유일하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15. [15] KBO 리그 두 번째 서울 연고팀은 알려졌다시피 OB 베어스다. 리그 창설 이전부터 서울 연고지 이전을 확답받은 OB 베어스는 원년 시즌을 대전광역시를 포함한 충청남·북도에서 시작한 뒤 1985년에 서울로 올라왔다. 리그 창설 5년차인 1987년부터 지역 연고제를 정착한 K리그는 1988년까지 서울 연고팀이 없었다가 1989년에 창단한 신생팀 일화 천마 축구단이 최초의 서울 연고 축구단으로 탄생했다. 1997년 창설된 KBL은 2000~2001시즌까지 서울을 중립 연고지역으로 뒀다가 삼성 썬더스SK 나이츠가 각각 수원과 청주에서 연고지 이전을 해 서울 연고팀이 됐다. V-리그 역시 2005년 리그 창설 당시에는 서울 연고팀이 없었지만 2009~2010시즌부터 리그에 참여한 우리캐피탈 드림식스가 최초의 남자 서울 연고팀으로 기록돼 있고 여자부에서는 2009~2010시즌 직전 인천에서 서울로 연고를 옮긴 GS칼텍스 배구단이 최초의 여자 서울 연고팀이다.
  16. [16]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1982년 3월 27일 동대문 삼성전 승리. 이종도의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에 힘입어 11-7 승리를 거뒀다.
  17. [17] 정확한 기록상 최초의 서울 연고 프로 스포츠 구단은 MBC 청룡이지만 LG 트윈스가 청룡 구단의 역사와 기록을 그대로 승계하기 때문에 최초의 서울 팀 타이틀을 주장한다유효하긴한데 애매하다.
  18. [18] 1990년에 제작된 경기 시작 음악 중 가사 부분. 이 노래의 유일한 가사다.
  19. [19] 해당 BGM은 연예가 중계에서도 사용 중이다.
  20. [20] 당시에는 63빌딩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었다.
  21. [21] 참고로 LG는 건물, 마스코트에 쌍둥이를 좋아하는데, 구씨와 허씨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회사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허씨 일가는 GS그룹으로 분리되어 나갔기 때문에 LG와 LG 트윈스는 구씨 일가 소유다. 그렇지만 좋게좋게 헤어진 케이스이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양 그룹간의 교류는 이뤄지고 있으며, 양 구단이 각각 서로 스포츠단을 운영하는 스포츠에는 구단 창단을 하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LG는 야구와 남자농구, GS는 축구와 여자배구를 소유.
  22. [22] 2006년 유니폼 변경 때 도입했다. 마침 전지현이 나온 '라네즈 걸' 광고 캠페인 '핫핑크로 말해요'가 뜨던 시절이라 이 시절 한정으로 '핫핑크 유니폼'으로 불리기도 했다. 다만 연분홍색보다는 채도가 다소 낮은 분홍색을 쓴다.
  23. [23] 2015년부터 kt wiz가 검은색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진한 핑크를 사용할 듯하다.
  24. [24] 그 해 6월 즈음엔 꼴찌로 내려앉기도 했었다.
  25. [25] 만약 이 해에 해태가 우승을 했으면 해태 특유의 한국시리즈 불패 징크스를 생각할 때 한국시리즈마저도 해태의 우승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으며, 이 경우 한국시리즈 5년 연속 제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 이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나 막강했던 해태를 제치고 그전까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LG가 우승을 했다는 점은 당시 프로야구에 커다란 이슈가 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26. [26] 1994년 시즌의 화려했던 모습도 이 시기에 보여준 것이다.
  27. [27] 구자경 당시 럭키금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LG그룹 오너 일가는 모두 경남 진주시 출신이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3세대 경영인 형제들도 모두 부산광역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LG그룹의 뿌리이기도 한 락희화학공업사 공장이 부산 온천동에 있기도 했다.
  28. [28] 금성사 창업 시절 원년멤버로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12월에 별세.
  29. [29] 지금이야 휴대폰으로 전화 통화나 메신저 등으로 세계 어디서든지 연락이 가능하지만, 80년대 초반에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휴대폰 해외로밍도 2000년대 들어서야 가능했다. 사실 지금도 사장이 해외 나가면 아무리 이메일 카톡 있어도 업무연락 쉽지 않다
  30. [30] 그러나 한국 대기업의 상하조직 구조상 실장이 회장의 승낙없이 단독으로 실행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알겠지만 프로구단의 운영이란게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윗선의 승락없이 움직였다간 비용때문에 책임자가 문책으로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1. [31] 럭키금성이라고 그룹명을 사용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로, 그 이전에는 그냥 럭키그룹이었다. 그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기업이 '락희화학공업사-(주)럭키-LG화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상대적으로 나중에 창업한 금성사가 주력으로 같이 부각되면서 이같이 부르게 된 것.
  32. [32] 구자경 당시 회장이 '럭금'이라고 축약해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33. [33] 그룹에서는 1984년 그룹 계열 광고회사 LG애드에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소비자들에게 LG라는 브랜드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럭키금성그룹에 인수된 코리안익스프레스 카드가 LG카드로 이름을 바꾼 직후부터다.
  34. [34] 팀은 6668587667을 찍어도 같은 시기 관중집계는 1112133332이다. 다시 말해서 3위 밖으로 밀린 적이 없다는 소리. 잠실 원정특혜가 있다고 쳐도 저런 답도 없는 성적에 이런 관중 동원은 매우 대단한 것이다.
  35. [35] 참고로 2013시즌은 타 시즌보다 비교적 적은 128경기 체제 시즌이었다. 즉, 못가도 1경기당 최소 1만 명은 왔었단 소리. 게다가 절반이 원정임을 감안하면...
  36. [36] 이른바 엘롯기로 불리는 LG, 롯데, KIA는 최고 인기 트로이카를 구성하면서 한국 프로야구에 한획을 그은 팀들이고 아울러 전국구급팬 동원능력이 있는 팀들이다. 여기에 대전을 연고로 출범한 한화 이글스와 전통의 인기팀 삼성 라이온즈가 높은 팬들의 충성도를 자랑하면서 인기구단 명단에 가세한다.
  37. [37] 유지현, 김재현, 그리고 LG타력의 막장화의 주범은 '꽃미남 3인방'으로 불리며 여성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던 선수들이다.
  38. [38] , , , , 경기.
  39. [39]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은 신생팬들이 아닌 LG출범 초창기부터 부모님들의 손에 이끌려 어린시절부터 팬들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 팬들의 경우도 언급한 미남선수 3인방으로 인해 팬이 되었던 여성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순수하게 팀을 좋아하는 팬으로 진화한 경우이고 일부는 팬이던 아버지나 오빠들의 영향으로 팬이된 경우도 있어서 어느 팀보다도 충성심이 높다.
  40. [40] 실제로 예매오픈 동시에 옆집 두산 베어스는 자리가 많이보여 클릭이 가능하지만 LG는 테이블석, 블루석, 응원석(205-208,305-309)은 이미 사전에 다 연간권으로 판매되어 자리가 아예 안떠있다.
  41. [41] 단 두산의 같은 경우 시즌권은 구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구역이 원하는 자리가 아니라서 안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특히 응원석은 아예 안 판다.
  42. [42] 김용일 응원단장을 겪어본 삼성팬들이 특히 그러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김상헌이 응원단장이 되면서 삼성 팬들 사이에선 이 말이 쏙 들어간 듯하다.
  43. [43] 이 노래는 KIA 응원가에서도 들을 수 있다. 야구에서는 KIA가 '그대 없이는 못살아'를 조금 먼저 썼지만, 사실 같은 LG 스포츠단 산하의 프로농구단인 창원 LG 세이커스가 이 노래를 쓴 것을 KIA가 베낀 것이다.
  44. [44] 응원방망이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색깔이 바뀐 건 이유가 있다. 해태 타이거즈와 붙었던 1997년 한국시리즈 때문이다. 타이거즈는 그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노란색 단무지응원방망이를 썼다. 이 경우 당연히 두 팀의 응원방망이 색깔이 겹치게 된다. 이에 LG가 그룹의 상징 색깔이기도 한 빨간색으로 응원방망이 색깔을 바꿨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45. [45] 이것도 이제 15, 16시즌 연속으로 관중동원이 밀리면서 팬이 무조건 많다고 확언하기도 어려워졌다. 15시즌은 초반부터 망해서 그랬다면 16시즌은 중반에 곤두박질을 쳐버렸기 때문이라 봐야한다. 하지만 17시즌에는 LG가 두산을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8월 18일 기준으로 두산 58경기 평균 14,920명 LG는 54경기 평균 15,811명이다.
  46. [46] 한편 관중 수 말고 시청률은 LG가 좀 앞서는데(16시즌 닐슨코리아 기준 LG는 0.925, 두산은 0.799. 그런데 TNmS 기준으로는 LG 0.787, 두산 0.761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지라 시청률 분석은 오차가 심하다.) 이를 두고 아직 LG가 팬이 더 많은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측도 있고 반대로 두산은 젊은 층이 주류라 저녁 시간대에 어른들한테 뺏겨서 시청률 주도권이 없으며, 야구를 시청하는데 있어서 인터넷 등의 다른 매체를 더 많이 이용한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다. 판단은 자유.
  47. [47] 이는 그만큼 성적이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두산의 경우, 팀 컬러가 상위권 우승후보라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나타내는 덕분에 젊은 팬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이에 반해 LG는 한국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진출한 것이 2002년이었고 한국시리즈 우승은 1994년이 두번째이자 마지막이었기에 팬심의 세대교체가 더딜 수 밖에 없다. 실례로 현재 LG 팬들 상당수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이나 아니면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팬이 되었던 세대들이다.
  48. [48] 가운데 여자는 2014년 4월 2일 경기에 시구를 하러 온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박승희.
  49. [49] 자세히 보면 붙어있는 게 아니다. 이웃팀이 홈일 때는 어쩔 수 없기 때문. 참고로 저 이웃팀영구결번자기 팀 홈경기일때 1루 외야 스탠드 위 깃발 게양대에 역대 우승 엠블럼들과 함께 걸려 있다.
  50. [50] 여담으로 2004년까지만 해도 잠실구장 외야 관중석 한 편에 김용수의 등번호 41번이 새겨진 유니폼 모양의 영구결번 기념판이 있었으나, LG의 공식 금지어인 그 분께서 김용수 코치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이유로 김 코치를 내친 뒤, 영구결번 기념판까지 철거해버렸다.
  51. [51] 재팬시리즈우승경험은 있다. 2007년에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우승을 차지했다.
  52. [52] LG에서 먼저 두산에 요청했고, 두산은 혼쾌히 수락했다.
  53. [53] 이 번호는 이상훈이 떠난 후 여러 선수들이 달았었지만 그 누구도 이상훈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번호다. LG 팬들 사이에서는 거의 영구결번급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현재도 트윈스샵 유니폼 마킹 순위에서도 최상위권에 랭크된 마킹이 No.47 이상훈이다. 조시카 따위가 달 번호가 아니다
  54. [54] 이 중 김재현은 팀을 떠났다. 김재현은 당시 김성근 SK 감독에게 은퇴 전 친정팀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LG팬들은 지금도 캐넌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 2016년, 김재현이 코치로 재직하고 있는 한화와의 개막전에, 김재현을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가장 큰 함성이 나온 곳도 LG의 응원석 1루였다. 다만 1994년 신바람 신인 3인방 중의 한 축인 유지현과 김재현의 관계가 현역 시절은 물론 아직까지도 썩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김재현의 LG 복귀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한 편이다.
  55. [55] 삼성의 템퍼링 의혹까지 있었다.
  56. [56] 예) 깝타지니, 잉타지니 등등. 둘 다 이젠 딴 팀 선수다
  57. [57] 얼마나 LG팬들이 증오하는 대상이면 리그베다 시절엔 작성금지 처리가 되어있었다(..)
  58. [58] 다만 시구전에 부상을 입어 개막전 시구는 이광환 전 감독이 대신했다.
  59. [59] 쌍방울-SK태평양 & 현대-넥센은 공식적으로 다른 팀이다.
  60. [60]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리그 창설 당시부터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창단한 팀이다. 축구와 농구, 배구는 리그 창설시에는 서울 연고팀이 없었고 이후 창단하거나 타 지역에서 이전시켰다. 동시에 2014년까지는 창단 이후로 쭉 서울만을 연고로 해 온 유일한 프로팀이었다. 2014년에 서울 이랜드 FC가 창단되긴 했지만 여긴 역사가 아직 짧으니 실질적으론 MBC가 유일하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61. [61] KBO 리그 두 번째 서울 연고팀은 알려졌다시피 OB 베어스다. 리그 창설 이전부터 서울 연고지 이전을 확답받은 OB 베어스는 원년 시즌을 대전광역시를 포함한 충청남·북도에서 시작한 뒤 1985년에 서울로 올라왔다. 리그 창설 5년차인 1987년부터 지역 연고제를 정착한 K리그는 1988년까지 서울 연고팀이 없었다가 1989년에 창단한 신생팀 일화 천마 축구단이 최초의 서울 연고 축구단으로 탄생했다. 1997년 창설된 KBL은 2000~2001시즌까지 서울을 중립 연고지역으로 뒀다가 삼성 썬더스SK 나이츠가 각각 수원과 청주에서 연고지 이전을 해 서울 연고팀이 됐다. V-리그 역시 2005년 리그 창설 당시에는 서울 연고팀이 없었지만 2009~2010시즌부터 리그에 참여한 우리캐피탈 드림식스가 최초의 남자 서울 연고팀으로 기록돼 있고 여자부에서는 2009~2010시즌 직전 인천에서 서울로 연고를 옮긴 GS칼텍스 배구단이 최초의 여자 서울 연고팀이다.
  62. [62]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1982년 3월 27일 동대문 삼성전 승리. 이종도의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에 힘입어 11-7 승리를 거뒀다.
  63. [63] 언론에서 하도 한국의 양키스라고 보도하는 바람에 최근의 LG팬들은 이 별명을 싫어한다.
  64. [64] 당시 사장 어윤태의 "이건 김성근의 야구지 LG 야구가 아니오."라는 멘트는 당시 프런트의 삽질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2011년 어느 팀에서 또다시 재현된다
  65. [65] 다만 몇몇 올드팬들 사이에서 김성근의 평가는 최악이다. 이동현장문석, 신윤호 등을 굴리면서 선수들의 커리어를 상당 부분 말아먹었고, 이병규의 타격 폼을 개조시키려다 실패해 슬럼프의 원인을 제공했으며, 신인 드래프트를 말아먹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일. 덤으로 박용택에 과도한 외야수비 훈련을 시켜 어깨가 완전히 박살난 것도 이 시기다. 한화 이글스에서의 실로 화려한(...) 구설수들이 아니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크보의 다크나이트 한화
  66. [66] 이 시기 이순철의 행태는 KTF 매직엔스(現 KT 롤스터) 시절의 김철 감독과 더불어 삽질의 대명사로 남는다.
  67. [67] 다만 이때의 평가는 의외로 좋았던 편. 전년도보다 더 약해진 전력임에도 성적이 좋아졌기에 팬들은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지만, 더 질러야 할 상황에서 프런트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는... 딴 거 다 필요 없이 큰 돈 주고 산 박명환이 2008년에 그렇게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68. [68] 하지만 LG그룹은 이걸 광고로 사용했다(…).
  69. [69] 대표적인 예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현 구단주 피터 앙헬로스. 홈런과 거포에 환장해 팀의 밸런스를 무너뜨렸다.
  70. [70] NL 중부리그에 2000년대 강호 홍관조가 있어서 와일드카드 빼고는 성적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이사 온 AL 서부가 낫다.
  71. [71] 백순길 단장은 단장을 맡기 이전에는 LG그룹 고객서비스 부문. CS(고객 만족) 경영팀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 경력 때문인지 팀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을 차단하는 데 능하다는 평을 받는다.
  72. [72] 3위
  73. [73] 4위
  74. [74] 96년 시즌중 중도사퇴
  75. [75] 01년 시즌중 중도사퇴
  76. [76] 06년 시즌중 중도 사퇴
  77. [77] 14년 시즌중 중도사퇴
  78. [78] 2014년 김기태 감독이 중도 사퇴했지만 구단에서는 사퇴를 수리하지 않은 상태로 조계현 수석코치에게 실질적인 감독대행 역할을 맡겼다.
  79. [79] 전기 3위, 후기 3위
  80. [80] 전기 3위, 후기 1위
  81. [81] 전기 3위, 후기 3위
  82. [82] 전기 5위, 후기 6위
  83. [83] 전기 4위, 후기 3위
  84. [84] 전기 5위, 후기 4위
  85. [85] 전기 7위, 후기 6위
  86. [86] 전체 6위
  87. [87] 전체 4위
  88. [88] 준플레이오프를 업셋하더라도 한국시리즈에 못가면 나머지 순위는 정규시즌대로 결정된다.
  89. [89] 종합운동장역 지하에도 매점이 있다
  90. [90] 2014년도에 제주고 출신임지섭(용마고에서 전학)의 1차지명이 가능했던 것은 전학 시기가 1차지명 부활 이전이어서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91. [91] MBC 청룡 당시 나갔던 한국시리즈
  92. [92] 2016년 현재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93. [93] LG팬이라면 심호흡을 하고 클릭하도록 하자
  94. [94] 어릴 때부터 LG 팬이다. 열혈 LG 팬인 고모부의 영향을 받았다. 페이스북에 팬임을 드러냈던 인증들이 발견되어 팬들 사이에서 칭찬받았다.
  95. [95] LG 트윈스의 광팬이지만 필패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직관오는 것을 싫어하는 팬이 많다. 마지막 경기로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를 가렸던 2013년 10월 5일 두산전에서는 계속 지고 있다가 공형진이 퇴장한 후에야 팀이 역전승을 거두었다고(…).
  96. [96] SK 와이번스 소속의 투수 맞다. 물론 지금은 엄연한 소속팀이 있는 만큼 잘 어필하지도 않고, 했다가는 큰일 나지만, 어렸을 때부터 LG 특히 이상훈의 팬이었으며 그래서 머리를 길렀나보다. 데뷔 초에는 대놓고 LG 응원가 불렀다가 까였다(…). 이러한 에피소드로 인해 쥐갤에서는 흔히들 쥐광현으로 부르고 있다.
  97. [97] 롯데 자이언츠의 그 김문호 맞다. 팀 배신
  98. [98] 서강대 철학과 출신의 문화평론가로 팟캐스트 매불쇼 등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다.
  99. [99] 2015년부터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했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두산 팬인 곽시양이다..... 9월 27일 잠실야구장에서 함께 LG와 두산의 경기를 직관했는데 그날 두산의 선발투수 유희관은 1.2이닝동안 LG 타자들에게 난타당하며 8실점 후 강판되었고, 경기는 LG 트윈스가 3-10으로 승리했다. 당시 두 명의 표정대비 사진이 퍼지기도 했다.
  100. [100] 드라마 시그널의 대본 작가로, 인터뷰에서 밝혔다.
  101. [101] 시사평론가 김용민. 김용민의 뉴스관장에서 직접 밝힘.
  102. [102] 아도니스 가르시아의 응원가로 자신의 히트곡인 아라비안 나이트(!)를 개사한 응원가를 직접 불러서 쾌척했을 정도다.
  103. [103] LG그룹 전속모델의 영향으로 가끔 잠실을 찾는다. 12년 이후로 최근 몇년간은 안보임
  104. [104] 자신의 아프리카 방송에서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밝혔다.
  105. [105] 봉중근과 큰 이병규의 열렬한 팬이다. 20세기 미소년에서 매니저와 같이 두산 전을 관람하는 것이 방송되었다. 경기 관람 전에 봉중근을 직접 봤는데 걸그룹 멤버를 보는 것보다 더 떨렸다고 한다. 헌데, 유광잠바 조공 논란에 휩싸이면서 팬들 사이에는 금지어 취급.
  106. [106] SBS 라디오 PD이자 씨네타운 나인틴의 PD.
  107. [107] 2013시즌 중 블로그에 '엘지망가'라는 엘지 관련 만화를 그린 적이 있었다...
  108. [108]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LG 팬인 걸 밝히지 못한다고 울분을 토하였다(…). 이후 LG의 명예선수로 위촉되었으며, 구단 관련 행사에 자주 참석하면서 대표 팬으로 알려져 있다.
  109. [109] SNS에 LG 팬 인증 포스트가 많다.
  110. [110] 2013년 페넌트레이스 최종전, 한화가 넥센을 이겼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순간 환호하던 LG 팬으로 중계영상에 잡혔다.
  111. [111] LG 팬이지만 예외로 삼성의 양준혁이 우상이라는 인터뷰를 한 적 있다.
  112. [112] 그래서 JYP 소속 연예인들은 대부분 LG 시구를 시킨다.
  113. [113] 응원가 무적의 LG와 서울의 모정을 불렀다.
  114. [114] LG 트윈스 어린이 팬 출신.
  115. [115]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지?
  116. [116] 방송에서 가끔씩 LG 트윈스 모자를 쓰고 다닌다. 참고로 같은 팀 멤버인 이민우두산 팬이다.
  117. [117] 후배 개그맨 김은우 결혼식때 끝나고 야구장가려고 LG트윈스 모자를 쓰고와서 밝혀졌다.
  118. [118] 2008년 공형진과 함께 LG 트윈스 명예선수로 위촉된 적이 있다. 그 뒤에도 LG 팬 인증을 여러 번 하였다.
  119. [119] 별로 관심이 없었다가 드라마에서 자기가 뛰었다는 설정으로 정이가서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120. [120] 라디오에서 LG 트윈스의 팬임을 밝혔다. 두산 팬인 김장훈과 야구 이야기를 할 때면 으르렁거린다고.
  121. [121] 이종범의 조카로, 2017년 9월 경찰 야구단에서 전역하여 예전부터 팬이었던 LG에 합류했다.
  122. [122] 능력자들에서 팬인 것을 밝혔다.
  123. [123] LG에서만 시구를 4번 했다. 2014년 2015년 2017년 2018년
  124. [124] 케이블 TV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 윤종신 편에서 참가자 중에 LG트윈스 유광잠바를 입은 사람이 있었다. MC의 질문에 윤종신은 LG팬 인증. 그러나 90년대부턴 야구를 잘 안 본다고 한다. 그럼 청룡 팬 아닌가? 여담으로 유광잠바를 입고 나온 이 참가자는 최후의 1인으로 선택됐고 실력자였는데 정체는 바로 LG 트윈스의 민족의 아리아를 포함한 여러 선수 응원가를 부른 황석빈씨였다.
  125. [125] 헌데 나중에는 라디오 스타에서 고향 구단인 NC 다이노스를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126. [126] 나인뮤지스의 전 멤버. SNS에서 LG 트윈스 팬을 여러번 인증하였다.
  127. [127] 한 강의에서 LG 트윈스 팬이라고 밝혔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oosanbears_new&no=9993048&page=1
  128. [128] 하지만 그의 직장 아주대병원이 있는 수원시kt wiz가 창단하면서 kt로 갈아탔다. http://mlbpark.donga.com/mp/b.php?m=search&p=1&b=bullpen&id=201711230011298247&select=sct&query=%EC%9D%B4%EA%B5%AD%EC%A2%[email protected]Y-Ahhlq
  129. [129] 마찬가지로 LG의 명예선수.
  130. [130] 온 가족이 LG의 팬이라고 한다.
  131. [131]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사직구장 편에서 본인이 LG 트윈스의 팬이라고 밝힌 바 있다.
  132. [132]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의 축구선수 그 이승우 맞다. 인터뷰에서 박용택과 이병규의 팬이라고 밝혔다.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807603&ref=mobile
  133. [133] 황정음과 결혼한 전직 프로골프선수.
  134. [134] 더그아웃 매거진의 인터뷰에서 집이 잠실 근처라서 자연스럽게 LG 트윈스의 팬이 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135. [135] LG 트윈스의 오랜 팬으로 알려져 있다.
  136. [136] 어릴 때부터 LG 팬이었다. 다른 팀들을 돌고 돌아 마침내 좋아하던 팀에 들어왔다.
  137. [137] EBS와 스카이에듀에서 사회탐구를 가르치는 강사이다. 그녀의 꿈은 한 때 최초의 여자 야구 해설자였다고 한다. 그녀의 블로그에는 LG 트윈스와 관련된 글이 많다.
  138. [138] 직접 피팅모델도 하는 유명 쇼핑몰CEO.연간권자다.
  139. [139] 어렸을 때부터 LG팬이었으며 해당 문서를 확인하면 알겠지만 초등학생 시절에 조인성이랑 사진도 같이 찍었다.
  140. [140] 서울출신으로 중계중 MBC청룡 어린이회원이었다고 밝혀.
  141. [141] 락밴드 와이낫의 보컬이자 LG 트윈스 팬 팟캐스트 "야잘잘"의 호스트.
  142. [142] #
  143. [143] SNS에서 오랜 LG팬임을 증명했다.
  144. [144] 과 같이 LG팬이다.
  145. [145] 아이돌 그룹 iKON의 멤버.
  146. [146] 서울출신으로 중계중 MBC청룡 어린이회원이었다고 밝혀.
  147. [147] LG의 응원가를 작곡할 정도로 열성 팬이다.
  148. [148] 다른 팀에서 여러 번 시구 제의가 들어왔지만 LG가 아니라서 거절했다고 한다.
  149. [149] 촬영 중에도 DMB로 경기를 시청할 정도로 팬이다.
  150. [150] 아프리카TV BJ 당시 LG 트윈스 편파중계방송을 하였다.
  151. [151] 그런데 롯데 자이언츠 민병헌과 사촌 지간이라고 한다.
  152. [152] 자타공인 LG 광팬 중 하나여서 이로 인해 생긴 별명이 쥐훈. 다만 2013년 말 이후로는 SK에 보다 치중한 모습을 보여서 솩훈(…)이라 까이고 있다. 하지만 이만수 체제 붕괴 이후로는 그냥 구색 취급. 오히려 한화 쪽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칡훈
  153. [153] 이 분은 아예 LG 트윈스의 캐스터로 재직했었다. 어릴 때부터 엄청난 LG팬이였다고 한다.
  154. [154] 치고 달려라를 부른 락 밴드. 이 밴드 노래 중 MBC 청룡을 추억하는 동명의 노래가 있다.
  155. [155] 어린 시절 럭키금성 어린이 회원이었다고 한다.
  156. [156] 시사회 때 한 두산 팬이 "두산 경기에 시구하러 오세요!"라고 요청하자 "죄송합니다, 저는 서울 팀만 시구할겁니다."라고 단칼에 거절한 적이 있다. 당연히 쥐갤에서는 찬양받았다 아직은 LG에서도 시구를 한 적이 없고, 팀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면 꼭 가겠다고 한다.
  157. [157] 특집 방송때 커밍아웃
  158. [158] 전라도 여수 출생이다 보니 같은 전라도를 연고로 하는 해태/KIA 역시 응원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MBC 시절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LG 그룹과도 친분이 있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식객 등의 작품을 보면 LG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시구는 두산 경기에서 했다(...).
  159. [159] 2013년 LG 트윈스 명예선수로 위촉된 적 있다.
  160. [160] 유자식 상팔자에서 조갑경과 자녀들이 밝히길 LG가 졌거나 지고 있으면 가족들이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가족들에게 화풀이한다고 한다. 가정불화가 10년이나 갔을 듯 지고 있을 때는 말 걸지 마
  161. [161] 남편과 함께 가끔 잠실야구장을 찾는다.
  162. [162] 구단 창단 당시의 그룹 회장이었던 구자경 명예회장을 비롯해 창단 당시 구단주였던 구본무 회장과 그의 동생인 구본준 前 구단주 등이 열혈 야빠로 유명하다. 심지어 구자경 명예회장의 차남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KBO 전 총재이기도 하다.
  163. [163] 프로 원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잠실로 찾아와서 MBC 청룡과 LG 트윈스를 응원하셨다. 당시 LG 트윈스 선수였던 김재박은 박기홍 옹이 보이지 않으면 반드시 경기가 끝난 후 박기홍 옹의 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봤다.
  164. [164] 흔히 LG 팬들 사이에서 달마 아저씨, 달마아재라고 불리던 열성팬이다. 생전에 박용택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는데 이 분이 세상을 떠나자 박제찬 씨의 빈소에 박용택이 직접 조문하기도 했다. 감동택 의리택
  165. [165] OSEN의 LG 트윈스 전담기자로, 2014년 7월경 LG를 중심으로 우주의 기운이 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쥐동설라는 역대급 기사를 썼다. 타어강과 다르게 실제로 우주의 기운인지 결국 4강에 가서 성지 취급을 받는 중이다. 현재는 OSEN에서 기자직을 그만두고 휴식을 갖다가 스포츠서울로 이직하였다.
  166. [166] 그 대신 이다연 치어리더가 sk와이번스로 갔다.
  167. [167] 2009년 주니치로 이적한 이병규 응원가를 물려받았다가 2010년 이병규의 복귀로 지금의 응원가가 나왔다.
  168. [168] 동요같이 유치하다는 지적이 많다.
  169. [169] 서울 관련 응원가들은 LG의 자존심이라고 불릴 만한 곡들이기에 팬들의 불만이 더욱 컸다.
  170. [170] LG 트윈스 갤러리, 아이 러브 트윈스가 서로 간에 거의 의견이 안 맞는 커뮤니티인 것을 감안하면 두 커뮤니티에서 위아더월드로 까인 최동훈의 응원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알 수 있다.
  171. [171] 서로의 홈구장이 걸어서 3분거리다.
  172. [172] 서울 SK는 2017년까지 이어지던 FA 먹튀들에 질려버린 나머지 2018년 오로지 드래프트로 뽑은 젊은 선수들로 우승했다. 유일한 FA선수 정재홍은 정규시즌에 김선형의 백업역할을 하고 플옵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173. [173] 방성윤은 은퇴 이후의 일생이 흑역사에 가깝고 김재현은 2004년 FA 체결 과정에서 각서 파동을 벌이며 LG 구단과 크게 갈등했다.
  174. [174] 한일 월드컵이 열린 후 다시 3번의 월드컵이 또 열렸다
  175. [175] 대구시민 야구장은 2015년 부로 더 이상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는다
  176. [176] 이게 무슨 얘기인지는 #기사 참조
  177. [177] 해당 시계의 기념비적 성격, 그리고 감가상각이란 개념이 없다시피 한 롤렉스 데이토나 모델 자체와 1998년도부터 한 번도 차지 않은 채 금고 속에 고이 보관되어온 본 시계라면 지금쯤 8천만 원의 가치는 이미 뛰어넘어있을 것이다.
  178. [178] 쌍방울은 김기태(1969)가 홈런왕을 차지하기는 했다.
  179. [179] 물론 구장이 큰 것도 있지만 구단 자체가 홈런과 담쌓은 팀컬러인 것도 염두에 둬야한다. 같은 구장을 쓰는 두산은 두 번이나 잠실 홈런왕을 배출했고 선수 개인 기록으로도, 팀 통산 홈런으로도 LG에 비해 상당히 우위에 있다. 박용택이 LG 소속 선수로서 최다 홈런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는 273홈런의 김동주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며 심지어 두산의 용병이었던 우즈가 5년 동안 친 174홈런보다도 적다.
  180. [180] 1990~2002년의 기간 동안 LG는 한국시리즈에 5번 진출했는데, 월드컵이 안 열리는 해였던 건 1997년 딱 한 번뿐이다. MBC 청룡 시절까지 확대해도 월드컵이 열린 1982년과 1986년엔 각각 6팀 중 3위, 7팀 중 3위로 성적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1982년과 1986년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단일리그에 계단식 포스트시즌이 아니라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시절이었다. 82년과 86년에 종합 3위를 했더라도 두 해 모두 전기리그, 후기리그 우승도 못해보고 가을야구 진출을 못했으니 엄연히 말하면 이 두 해도 부진한 성적이다.
  181. [181] 당시 감독이 금지어인 그 분이었다...
  182. [182] 극단적으로는 유니폼팔이라고 한다.
  183. [183] SK나이츠는 당시 대구에 연고를 두고 있던 동양 오리온스에게 패배했다.
  184. [184] LG 2003~2012년, SK나이츠 2002~2012년, 10년 동안 SK나이츠는 07-08시즌 딱 1번 포스트시즌을 나갔었다.
  185. [185] LG트윈스 2013~2014년, SK나이츠 2012~2015년
  186. [186] 예외로 FC 서울은 연고이전 관련 다툼이 더 치열해서 이런 별명이 안 붙는다.
  187. [187] KB손해보험 배구단은 범LG가의 역사가 종료됨에 따라 LG와의 언급이 줄어들고 모기업이 같은 청주 KB 스타즈와 자주 엮이기 시작했다.
  188. [188] 2013년에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지만 두산에게 지는 바람에 순위에서 밀려 2015년 개막전을 KIA 홈구장에서 치뤄야 했다. 거기다... 루징시리즈... OTL
  189. [189] 따라서 2007년 이후 9년만에, 자력으로는 2003년 이후 13년만인 2016년 시즌에 잠실 홈개막전을 가질 수 있었다.
  190. [190] 2018년 KBO 리그 개막전은 기존 방식과 다르게 2년전 상위팀의 경우 각 팀의 홈구장에서 개막을 하지만, 상대팀의 경우는 흥행을 고려해 KBO 측에서 임의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2018년 개막전은 LG가 원수같은 NC의 홈구장에서 치르게 되었다. 어부지리로 홈에서 개막전을 치르는 6위팀 SK...
  191. [191] 이 외에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가 남의 집에서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2. [192] 서울 이랜드 FC는 창단 전이었으며 FC 서울의 모기업인 GS가 범 LG가이다.
  193. [193]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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