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2020년 전체에 대한 내용은 LG 트윈스/2020년 문서를, 2020년 현재에 대한 내용은 LG 트윈스/2020년/5월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KBO 리그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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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LG TWINS

창단

1982년 1월 26일 (38주년)

법인 설립

1985년 8월 5일[1][2] (35주년)

팀명 변경

1990년 3월 15일[3]

모기업

법인명

㈜LG스포츠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구단 사무실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25 (잠실동)[4][5]

구단명

MBC 청룡 (1982~1989)
LG 트윈스 (1990~)

연고지(지역)

서울특별시 (1982~)[6]

구단주

구광모[7]

사장

이규홍[8]

단장

차명석

감독

류중일

주장

김현수

영구결번

9 이병규[9]

41 김용수

홈구장

동대문야구장 (1982)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1982~) 25,553석

2군 구장

LG 챔피언스 파크 874석

마스코트

럭키, 스타[10][11][12]

킷 스폰서

워드 마크

홈페이지

| | [13] |
| |

공식 애플리케이션

|

최종 우승 ★★ (2회)

우승 엠블럼

1990년

1994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2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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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리그

1990년, 1994년

전, 후기 리그

1983년 후기

양대 리그

2000년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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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시즌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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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1983년, 1990년, 1994년, 1997년, 1998년, 2002년

플레이오프

1993년, 1995년, 1997년, 1998년, 2000년, 2002년,
2013년, 2014년, 2016년

준플레이오프

1993년, 1998년, 2002년, 2014년, 2016년, 2019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2016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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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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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승률

.643
1994년 126경기 81승 45패

최저 승률

.365
2008년 126경기 46승 80패

최다 승

81승
1994년 126경기 81승 45패

최다 패

80패
2008년 126경기 46승 80패

최다 관중

1,289,297명
2013년[15][16]

최소 관중

245,209명
1985년[17][18]

최고 FA 계약

4년 115억원
2018년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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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구단 소개
3. 팀 컬러
4. 구단이 모기업 이름을 바꾸다
5. 인기도
6. 마스코트
6.1. 이전 마스코트
7. 구단 색상 일람
8. 영구결번
8.1. '노송' No.41 김용수
8.2. '적토마' No.9 이병규
9. 임시 결번
9.1. '야생마' No.47 이상훈
10. 상징적 인물
10.1. 1994년 신인 3인방
10.2. MVP & 신인왕
11. 팀의 역사
11.1. 역대 감독
11.2. 역대 구단주
11.3. 역대 성적
11.4. 포스트시즌 전적
11.5. 역대 개인 성적
11.5.1. 통산
11.5.2. 단일시즌
11.7. 2000년대 이전
11.8. 2010년대
11.9. 2020년대
11.10. 2030년대
12. LG 트윈스 선수 관련
13. 트윈스 관련 커뮤니티
13.1. I love Twins
13.2. LG 트윈스 갤러리
14. 역대 유니폼 변천사
15. 사건사고
16. 지역 연고 학교
17. 관련 문서
18. 네임드 팬
19. 응원
20. 서울 SK 나이츠와의 평행이론
21. 기타
22. LG 트윈스 관련 도서
23. 둘러보기

1. 개요

무적 LG, 끝까지 트윈스!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으로, 연고지는 서울특별시이다. 두산 베어스, 키움 히어로즈와 더불어 서울을 연고지로 삼는 3개의 야구단 중 한 팀이다. 창단 당시에는 팀명이 MBC 청룡이였지만, 1990년에 럭키금성에 인수되어 팀명이 LG 트윈스로 바뀌었다.

모기업은 LG그룹으로, 산하 스포츠 법인인 LG스포츠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홈 구장은 서울특별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2. 구단 소개

2002시즌 경기 시작 영상.

2019시즌 경기 시작 영상.[19]

매년마다 영상은 바뀌지만 이 BGM 만큼은 창단 시절부터 현재까지 사용 중이다. 어떤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웅장하다고 한다.[20]

1982~1985

1986~1989

최초의 서울연고 프로스포츠 팀으로써, 럭키금성그룹이 1982년 창단한 문화방송MBC 청룡을 1990년 1월 18일 150억 원에 인수하여 그 해 3월 15일에 재창단, LG 트윈스 시대가 시작되었다. 로고나 유니폼은 팀이름도 그렇고 미네소타 트윈스와 매우 흡사하다. 팀명인 LG는 모기업 이름인 Lucky + GeumseongGoldstar의 약자. 트윈스라는 애칭은 당시 럭키금성그룹의 상징과도 같던 여의도 트윈타워[21] 사옥에서 유래했으며, 미국에도 같은 애칭의 야구팀이 있으므로 야구팀 이름으로 못 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22]

팀의 상징색은 MBC 청룡 시절에는 파란색을, LG 트윈스 시절부터는 검정색이 중심이며 빨간색과 매우 진한 핑크색[23]을 부수적으로 사용한다. 다만 TV 중계나 스카우팅 리포트같은 서적 등에서는 LG 트윈스를 소개할 때 검정색보다는 진한 핑크색을 주로 사용한다.[24]

1990년 창단 원년에 순위 변동이 심했지만[25] 여름에 들어서면서 2013년 시즌 진격의 LG를 방불케하는 성적을 보여주면서 순위 상승을 하는가 싶더니 마지막에 가서 해태와 근소한 차이로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26]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해 시즌의 돌풍을 일으키며 화려한 데뷔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듬해 성적이 내려앉고 이후 이광환 체제로 들어서면서 세대교체와 자율야구를 도입하는 과정에 약간의 진통을 겪다가 1993년부터 포스트시즌에 계속 진출을 하면서[27] 90년대 포스트시즌의 단골 손님으로 입지를 굳혔다. 물론 가을야구에 실패한 시즌도 있었지만 이듬해엔 보란듯이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정도로 저력이 있던 팀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성적은 6668587667(2003~2012년)으로 좋지 않은 편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가지고 있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을 경신하며 신기록을 달성하고 말았다. LG가 21세기 들어서 가을야구를 한 시즌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2002년,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2013년, 최하위에서 4위로 대반전에 성공한 2014년, 처음부터 리빌딩을 선언하고 잠시의 추락 후 2014년의 재현을 이루어낸 2016년, 시즌 4위를 달성했지만 준PO 불패 징크스가 깨져버린 2019년 다섯 번 뿐이다. 그래도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포스트시즌에 4차례 진출을 하면서 2000년대의 부진을 털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를 한층 높이는 중이다. 하지만 양상문이 감독 + 단장으로 재임하던 14~18년동안 정성훈 손주인 이병규, 이진영 등등 베테랑들을 다른 팀으로 축출한데다가 베테랑들의 자리를 꿰찬 루키들의 경험 부족으로 인해 상승세가 더뎌지면서 팀 순위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2020년 4월에 구단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캐치프레이즈와 기념 엠블렘을 발표했다. 엠블렘은 서울의 상징 동물인 해치를 모티브로 하여 트윈스의 T와 숫자 30이 들어간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절대 새 마스코트 디자인이 아니다. 캐치프레이즈는 LG 트윈스/2020년 문서 참조.

3. 팀 컬러

LG 트윈스/팀 컬러 항목 참조.

4. 구단이 모기업 이름을 바꾸다

사실 LG그룹KBO 리그에 더 일찍 참가할 수도 있었다. MBC가 추진하던 프로야구 창설 TF에서 럭키금성그룹에 "부산·경남지역 연고 프로야구단을 만들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했다. 구자경 당시 럭키금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LG그룹 오너 일가는 모두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이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3세대 경영인 형제들도 모두 부산광역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LG그룹의 뿌리이기도 한 락희화학공업사 공장이 부산 온천동에 있기도 했다.

이 때 당시 외유 중이던 구자경 회장 대신 이헌조[28] 럭키금성그룹 기획조정실장이 "지금 오너가 부재중이니 돌아오신 후에 협의 후 확답하겠다"며 답변을 미뤘고[29], 당시 KBO는 프로야구 창단 목표일까지 시간이 촉박했던지라 서울 연고를 고집하던 롯데그룹을 부산으로 보내버리며 프로야구 원년 연고지 배치를 마무리지었다. 이후 구자경 회장이 귀국하여 이헌조 실장으로부터 그런 일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자 무릎을 치며 "이 문디야, 그냥 하겠다고 받아 들였어야 안카나!" 라며 이 실장을 나무랐다고 한다. 능성 구씨 집안 가풍상 아랫사람을 나무랄 때도 조용히 타이르는 식이었고 구자경 회장 또한 성품이 온화했다는 이야기를 감안한다면 이 당시 프로야구단 창단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구 회장이 상당히 격분했음을 알 수 있다[30]. KBO 리그는 구단주 회의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카르텔 구조이기 때문에, 한 번 때를 놓치면 마음대로 참여할 수도 없다[31]. 그래서 꿩 대신 닭격으로 만든것이 럭키금성 황소였다는 후문.

당시 럭키금성그룹은 (주)럭키(현 LG화학), (주)금성사(현 LG전자) 양대 주력사를 주축으로 계열사 이름도 럭키xx, 금성## 식으로 일관성이 없었다. 럭키금성이라고 그룹명을 사용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로, 그 이전에는 그냥 럭키그룹이었다. 그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기업이 '락희화학공업사-(주)럭키-LG화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상대적으로 나중에 창업한 금성사가 주력으로 같이 부각되면서 이같이 부르게 된 것. 그러나 MBC 청룡을 인수하면서 럭키금성은 너무 길고, 줄여서 럭금은 어감이 별로라는 이유로[32] 팀명을 럭키의 L과 금성의 G를 합쳐서 LG로 정하게 되었다.[33] 반도패션, 호남정유도 LG로 바뀌면서 명칭을 LG패션(현재는 그룹에서 분리), LG정유(현 GS칼텍스)로 통일했다. 또한 럭키금성 시절엔 편의점 이름을 LG25 (현 GS25) 라고 한 적도 있었다. 아직까지도 GS25를 LG 25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이후 LG 유니폼이 바뀐해인 1994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야구단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야구를 좋아하는 구본무 회장이 크게 기뻐하면서 그 다음해 그룹명을 정식으로 LG로 확정했고 뚝섬 돔 경기장을 지을 계획도 세우기까지 했다. 구단이 그룹 전체의 이름을 갈아버린 셈이다. 또한 1984년 창단된 프로 축구단 럭키금성 황소도 LG 치타스(현 FC 서울)로 이름을 바꾸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참고로 LG 트윈스 창단작업 때 만든 로고는 이후 편의점 체인인 계열사 LG25에서도 사용하게 되어 GS그룹으로 분리되어 GS25로 바뀌기 전까지는 매년 수익의 일정 %를 LG트윈스에 로열티로 지급했다.

그러나 LG그룹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미 1984년에 그룹 계열사인 LG애드가 발족한 것을 보면 장기적인 프로젝트였을지도 모른다. 2007년에 발간한 LG 60년사에서는 야구단이 그룹 이름 변경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다. 비밀번호 진행중에 발간되었으니.... 다만 최초는 LG애드나 LG카드에게 내어줬을지언정, LG라는 그룹명이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선 것은 90년대 초반 LG트윈스의 공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 그룹이 야구단을 자신들의 가장 큰 홍보 수단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2017년 구단 CI와 워드마크가 바뀐 것으로도 볼수 있는데 송구홍 단장이 밝힌 바로는 2017년 LG 그룹 70주년을 기념해 변경한 것이라고 한다. 송구홍 단장이 "그럴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라며 얼버무리긴 했지만 자신이 단장으로 부임하기 이전부터 준비되어온 작업이었다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그룹 윗선에서 직접 개입했을 확률이 높다.

5. 인기도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하며, 기나긴 암흑기 끝에 빠질 사람은 다 빠졌던 시기에도 관중 수 3위 정도는 너끈히 찍었다.[34] 특히 한일 월드컵에 밀려 프로야구의 인기가 많이 떨어져서 연 관중이 불과 200여만명대에 불과했던 2000년대 초중반 암흑기때, 총 8개 팀 중 유일하게 평균 관중 1만명대, 연 70만 관중을 유치하며 전체 관중 30퍼센트 비율을 자랑하며 수위의 인기팀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2013년 그 길고 길던 비밀번호를 깨버리자 6년 만에 관중 동원 1위를 재탈환, 128만 명[35]을 동원하며 95년에 세워졌던 최다관중 기록을 갈아치웠고, 2014년에도 118만 명을 동원하며 1위를 유지했다. 2014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 손민한(NC)vs 이병규(LG)를 보면 떼창이 어마어마하다. 더불어 2019년 4월 21일 잠실 키움전에서 KBO리그를 넘어서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3000만 관중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면서 여전히 넘사벽인 인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90년대 리즈 시절의 LG는 전국구 최고 인기 구단 중 하나였다. 이후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시작되는 구단 내 삽질과 자율이 방종이 돼버린 선수들의 무기력한 모습들이 성적부진으로 귀결되어 팬이 많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KBO 전체 관중중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인기 많은 구단 중 하나이다. 이는 마산에서 치러진 2014년 준플레이오프를 봐도 알 수 있는데, 홈팀이었던 NC를 누르고 3루 쪽까지 전부 LG를 응원하는 상징인 노란 수건으로 뒤덮어 버렸다. 심지어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LG트윈스의 홈인 잠실에서는 220블록,221블록의 원정 NC팬들을 제외한 3루 그리고 3루쪽 외야까지 전부 LG트윈스 팬들로 점령해버렸다. 물론, NC가 신생구단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팬덤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보여줬던 사건으로 유명하다. 특히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미남 선수들로 인해 여성팬들을 다수 보유했던 원조 오빠부대 구단이기도 하다[36].

응원 도구로는 현재 빨간 응원방망이(2,000원)와 노란색 응원수건(4,000원)이 사용된다. KBO 리그에서 처음으로 입으로 불어서 막대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응원도구(일명 '막대풍선')를 사용한 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노란색 응원방망이가 사용되기도 했으나 1997년 가을부터 응원방망이 색깔이 현재의 빨간색으로 바뀌었다.[37] 가끔 노란색 응원수건과 비슷한 크기의 노란색 응원종이를 경기 도중 나눠줄 때가 있다. 그리고 LG팬들의 영혼의 친구 유광잠바가 있다.

잠실야구장 LG 홈경기에 가보면 파랑+노란색의 잠바나 모자를 쓰고 있는 팬들이 많은데 이것은 LG의 전신인 MBC 청룡의 유니폼이다. LG 구단에서는 자체적으로 청룡과 관련된 행사를 많이 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당수의 팬들이 주문제작 등을 통해 청룡 관련 상품들을 소유하고 있다.

2013년2014년에도 여전한 관중 동원력을 보여준 LG이지만 너무나 길고 긴 암흑기의 탓으로 대부분 신생 서울팬을 두산에게 빼앗긴 상태다.[38][39] 더 이상 90년대의 영광만 바라볼 수만은 없는 상황. 야구 팬들의 신규유입을 위해서는 구단의 노력과 자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많은 LG팬들이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LG팬들의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유입이 줄고 있는 반면, 반대로 두산은 팬 평균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이며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40]

신규팬 유입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서울팀들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KBO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를 배출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 90년대까지는 자체 팜에서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를 다수 배출하며 인기팀 반열에 올랐지만 두산이 전직 두산 선수를 포함하여 다수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하고 키움이 이정후, 김하성을 배출할 때 LG 내부에서는 박용택 이후로는 성장한 슈퍼스타가 사실상 없다.[41][42]

또한 잘생긴 외모로 여성팬들을 불러모았던 심수창, 이대형, 우규민도 전부 팀을 떠난 상태.[43]

2016년, 밑바닥을 찍었던 7월 이후 신바람을 몰아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면서 통산 2700만 관중을 돌파하였다. 허나 8월 이후 집관도 참을 수 없는 경기력이...무득점 트윈스 ㅠㅠ

2018년 극심한 롤코를 타다가 8위로 추락해버린 팀 성적에도 불구하고 전체관중 1,108,677명에 평균관중 15,398명을 기록했다. 다만 리그 관중1위는 두산에게 내주었다. 올해 KBO전체 관중이 리그 끝나기 1~3일 전에 800만을 겨우 넘겼다는것을 감안하면 감탄할만한 수치이다. 그리고 엿같은 성적에 우는 팬들의 고통도 넘사벽

2019년 4월 21일 잠실 키움 히어로즈 3차전에서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로 통산 3000만 관중을 돌파하였다.

2019년 9월 30일 11,810명의 관중이 입장해 1,000,400명으로 통산 14번째이자 10년 연속 100만 관중 돌파를 달성했다. 2019시즌 유일한 100만관중 돌파 구단임과 동시에 두산 베어스의 10년 연속 100만관중(2009~2018)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또한 국내 모든 프로스포츠를 통틀어서 최다인 14번째 100만 관중도 달성하게 되었다.

LG는 이 10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못 간 시즌만 6시즌에, 역대급 바로 다음가는 DTD를 보여준 시즌도 있었고[44] 시작부터 끝까지 9위인 시즌도 있었으며, 잠실 라이벌에게만 1승 15패를 당하는 시즌까지 있었는데도 꼬박꼬박 100만을 넘겼다는 이야기다. 10년 동안 100만을 채운 두산은 포스트시즌을 가지 못한 적이 2014 시즌 뿐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처참한 성적을 내주는데도 꼬박꼬박 직관을 와주는 LG팬들도 대단하다. 심지어는 두산, 키움은 둘째 치더라도 또다른 영원한 맞수인 한지붕 두가족 창원 LG 세이커스도 나름대로 관중 동원이 많은 편이다.

2020년 부터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MLB가 연기되고 대신 KBO가 ESPN의 전파를 타면서 은근히 인기를 불려나가는 중이다.

원래부터 KBO에 관심이 있었던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KBO팀에 대해 무지할 수 밖에 없는 미국 시청자들 입장에선 무언가 자신의 시선을 확 잡아 끌거나 자신과의 연관성이 있는 팀을 선택하여 응원을 하려 하는데, 가전시장에서 입지가 탄탄한 LG다 보니 집안에 LG제 가전제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내가 LG제품 많이 쓰니까 LG나 응원해 볼까"라며 선택하는 경우가 꽤 많았고 마침 성적도 꽤 잘 나오자 이들이 고정팬이 되어가고 있는 것. 여기에 같은팀명을 가진 미네소타 트윈스의 팬들이 LG팬이 된다거나 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덕분에 시즌 시작하자 마자 한지붕 라이벌인 두산의 팬들과 서로 잠실의 주인은 우리라며 싸우거나, 판매상품군이 비슷한(가전과 스마트폰) 삼성 팬들과 라이벌리 세우기도 하는 등 미국팬들 나름의 즐기는 법을 찾아가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모습에 한국 팬들이 정보도 없었을텐데 저런 걸 어떻게 이렇게 빨리 파악했나 혀를 내두르기도 하는 중이다.

6. 마스코트

LG 트윈스의 마스코트

럭키 (왼쪽 타자)

스타 (오른쪽 투수)

서울, LG사이언스파크!

국내 최대규모의 과학연구단지로

LG그룹의 우수한 전문 R&D연구원들 모여있다.

이 곳에서 4차 산업혁명을 리드하는 LG만의 세계 최고 첨단기술력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갖춘 쌍둥이 휴먼 야구로봇 형제 ‘럭키’와 ‘스타’가 탄생하게 되었다.

‘럭키’와 ‘스타’는 탄생과 함께 로봇 최초로 프로야구팀 LG트윈스에

특별선수로 입단, 놀라운 능력과 사람에 가까운 감성으로 야구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신바람 나게 선사하는 중이다.

- 공식 홈페이지 설명

  • LG 트윈스의 현 마스코트는 럭키와 스타로 2017년에 처음 공개되었다. 두 캐릭터의 이름은 LG그룹의 과거 명칭이었던 럭키 금성(Gold Star)에서 이름을 따온 듯. 다만 LG 트윈스의 새로운 CI와 로고에 대한 불만의 불똥이 마스코트에까지 튀면서 영 좋지 못한 반응을 얻었다. 두 마스코트의 등번호는 90, 94. LG가 우승한 연도에서 유래했다.

2018년부터 야구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모습이다. 왼쪽이 스타, 오른쪽이 럭키.

여담으로, 탄생 스토리가 있으나 평은 좋지 않다. 하이라이트(?)는 끝내기 홈런으로 둔갑한 플라이 아웃.[45][46]

  • 왼쪽부터 1990-2005 / 2006-2016 / 2017[47]로 구분된다. 마스코트가 쌍둥이 로봇에서 쌍둥이 사람으로 그리고 다시 쌍둥이 로봇으로 돌아왔다.

6.1. 이전 마스코트

[48]

구단이 LG에 인수된 후 처음으로 등장한 마스코트는 쌍둥이 로보트였다무서워ㅎㄷㄷ.

이후 팀웍이근성이라는 이름의 캐릭터로 변경되었다. [49]

2017년 4월 4일, 홈 개막전 때 마스코트 럭키와 스타의 실제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홀쭉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웬 뚱땡이가 되었냐는 의견이 많았다.

7. 구단 색상 일람

LG 트윈스의 색상 일람

상징색

Pantone

RGB

CMYK

Red

Pantone 207c

R196 G4 B82

C0 M100 Y40 K20

Gray

Pantone 430c

R109 G110 B113

C0 M0 Y0 K70

Silver

Pantone 428c

R167 G169 B172

C0 M0 Y0 K40

Black

Pantone 426c

R0 G0 B0

C0 M0 Y0 K100

8. 영구결번

2017년 7월 18일 kt wiz 전부터 걸려있었던 레전드의 등번호[50]

최근에는 이를 제거한 후 3루 외야측 깃발 게양대에 깃발로 걸어놓았다.

8.1. '노송' No.41 김용수

LG 트윈스 영구결번

No.41 김용수

  • 1985 - 2000
  • 1999년 4월 19일 영구결번
  • 통산 613경기 126승 89패 227세이브 평균자책점 2.98 1146 탈삼진

2019년 현재까지 LG 트윈스가 배출한 유일한 한국시리즈 MVP인 늘 푸른 소나무 노송 김용수 선수가 트윈스 최초의 영구결번이다.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며 1999년 4월 19일에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100승 200세이브를 달성한 김용수 선수의 41번은 팀의 첫 영구결번이 되었고 2017년 이병규의 영구결번 지정 이전까지 트윈스의 유일한 영구결번이었다.

MBC 청룡부터 LG 트윈스로 팀명이 바뀐 이후로도 활약했던 노송인지라 청룡과 트윈스의 역사를 이어주는 선수이기도 하다. 실제로 청룡 유니폼을 잠실야구장에 입고 오는 팬들의 등에는 41번이 높은 확률로 마킹되어 있다.

선수 시절의 김용수는 그야말로 레전드 대접을 받을만 하지만 코치 시절의 삽질과, 결정적이었던 조시카 사건으로 LG팬들이 현재 노송을 보는 시선은 굉장히 복잡하다. 한 마디로 하자면 선수시절의 노송은 깔 수 없지만 코치로서는 이제 만나지 말자. 하지만 김용수는 조윤준 추천 루머를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다.

1999년 영구결번식 당시 현수막 [51]

이병규가 영구결번되기 전까지 잠실 야구장 LG 홈경기 시 1루 내야석과 우측 외야석 사이 계단에 김용수의 등번호 41번과 영구결번일인 1999.4.19가 박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었다.[52]

8.2. '적토마' No.9 이병규

LG 트윈스 영구결번

No.9 이병규

  • 1997 - 2016
  • 2017년 7월 9일 영구결번
  • 통산 1741경기 2043안타 161홈런 타율 0.311

2017년 7월 9일 한화전에서 이병규의 은퇴식과 함께 영구결번 지정이 확정되었다. 1997년 데뷔해 2019년 정우영 이전까지 LG의 마지막 신인왕을 수상했고, 최단 기간 2000안타, 최고령 타격왕, 최고령 싸이클링 히트등등의 걸출한 기록들을 남기고 프로 커리어 20년중 일본 진출을 제외한 모든 커리어를 LG에 바친 타자 이병규도 두 번째 영구결번의 주인공이다. 다만 먼저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김용수와는 달리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없고[53] 한국시리즈에 3번(1997년, 1998년, 2002년) 출전한 경험은 있다. 90년대 LG의 황금기 중반부터 다시 팀이 회복할 때까지 함께했으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가 달았던 9번은 LG트윈스의 두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9. 임시 결번

9.1. '야생마' No.47 이상훈

LG 트윈스

No.47 이상훈

  • 1993 - 2003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지는 못했지만 트윈스를 상징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야생마" 이상훈을 첫 손에 꼽는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팀의 에이스였고 1995년 선발 20승의 신화를 썼으며 팀이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 등판을 자청할 정도로 트윈스를 사랑했던 투수다.

불펜에서 마운드까지 역동적으로 뛰어오는 특유의 등판 장면과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완벽한 활약을 한 그를 기억하다가 현재의 LG 투수진을 볼 때 LG팬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고 한다. 야생마는 금지어 시절 구단과의 마찰로 석연찮은 이별을 한 후 옆집을 거쳐 2015년 겨울에 LG 코치로 다시 돌아왔다.[54] 등번호는 선수 시절과 같은 47번[55] 다시 LG로 이상훈이 돌아온 만큼 영구결번을 원하는 LG팬들도 많으나 실현가능할지는 아직 모른다. 물론 LG 구단과 이상훈 사이의 구원(舊怨)이 풀린 만큼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릴 가능성도 있다.

이상훈이 2018년 LG를 떠나며 차명석 단장이 이상훈이 돌아올 때까지 47번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LG의 47번은 비공식적이나마 영구결번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10. 상징적 인물

LG 트윈스

No.62 서용빈

No.6 유지현

No.7 김재현

1994년 LG의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김재현, 유지현, 서용빈 3인방은 90년도 리즈시절 LG의 팀컬러였던 신바람 야구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들[56]이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허슬 플레이어" 송구홍 이나 "검객" 노찬엽 또한 추억의 선수들이다. 이후 2016년을 마지막으로 "적토마" 이병규가 은퇴함에 따라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 중에는 박용택이 LG의 거의 유일한 대표 프랜차이즈 선수로서 활약하고 있다. 혹사의 영향으로 오랜 재활을 통해 다시 돌아와준 이동현도 팀에 대표적 투수 프랜차이즈 선수이다. 2007년부터 입단한 봉중근 또한 무너진 선발진중 유일하게 팀의 에이스로 활동하다가 선발, 마무리 보직을 오가며 팀을 위해 헌신하였고 그가 LG를 사랑하는 만큼 팬들에게도 프랜차이즈 스타 대우를 받고 있다.

LG 트윈스

No.2 김동수

포수 중에는 김동수가 레전드 대접을 받고 있다. FA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는 등[57] 당시에는 김통수 같은 비난을 받았지만, 2014년 말 15년 만에 친정팀 LG로 돌아온 뒤 현재는 2군에서 차근차근 차기 감독 수업을 받고 있었지만 2군에서 평가가 상당히 나빠 1군 감독 데뷔는 무산되었다.

MBC/LG의 포수계보는 유승안 - 심재원 -김동수 - 조인성 - 유강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LG 트윈스

No.29 로베르토 페타지니

No.38 데이비드 허프

LG 트윈스

No.99 크리스 옥스프링

No.50 헨리 소사

LG 트윈스

No.35 타일러 윌슨

No.3 케이시 켈리

외국인 선수 중엔 2008년, 2009년 시즌 맹활약을 펼친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있다. 얼마나 활약이 대단했으면 LG팬들이 페타신, 페느님이란 별명을 붙였을 정도. 그가 남긴 충격이 대단했기에, LG팬들은 활약이 대단한 선수들에게 ~타지니라는 접미사를 붙이고 있다.[58] 그리고 2007년 시즌 중반 입단해 2008년 시즌 팀의 성적 부진, 특히 불펜진의 난조로 많은 승수를 챙기지 못해 옥크라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도 10승을 챙기면서 대인배급 성격과 상냥한 팬서비스를 보여줬던 크리스 옥스프링옥춘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부상으로 이닝을 많이 소화하지 못했지만 2016년부터 2017년까지 2시즌 동안 리그의 1선발 에이스였던 데이비드 허프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고, 최장수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도 이닝 이터 역할을 해주며 활약했었다.

2019 시즌엔 타일러 윌슨케이시 켈리의 외국인 원투펀치가 동반 14승을 달성하고 각각 2.92, 2.55(4위)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선발진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 찾아온 10년간의 암흑기 탓에 다른 방면으로 상징적 인물이 된 이들도 존재한다. 특히 2006년 활약한 방화신기(등유규민, 휘발류택현, 경유헌호, 김민기름, 정유재복) 멤버들은 전설이 되었으며, 이 외에도 먹튀계의 영원한 아이돌 홍보살홍현우국내 프로야구계의 첫 먹튀 이정길이 있다. 부산 영도구청장에 취임한 어윤태[59]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2000년대 후반에는 우규민KIA한기주화염 방사를 하고 다녔다. 파이야!~ 하지만 그랬던 우규민도 경찰청 제대 이후에는 선발투수로 전향하여 오랜 기간 흔들렸던 LG 선발진의 한축을 담당하며 토종 에이스로 발돋움하며 국가대표에까지 뽑혔다.그리고 마무리 시절에도 초반까진 잘했다.

LG 트윈스

No.33 박용택

No.51 봉중근

LG 트윈스 우승감독

1990년 V1 백인천

1994년 V2 이광환

????년 V3 ???

이 외에도 팀에서 오래 헌신한 이종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최동수, 허문회 등이 있다.

MBC 청룡의 4할 타자이자 첫 번째 우승 감독이었던 백인천은 LG, 삼성팬들에게는 전설적인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롯데에서의 악명높은 활약(...)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조금 묻힌 감이 있다. 하지만 본인이 2017년 개막전 시구에도 나서려고 하는 등 LG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다.[60]

80년대를 상징적인 선수들로는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개구리 번트' 김재박, '미스터 청룡' 김상훈, '개막전 만루홈런' 이종도, '청룡의 안방마님' 심재원, '첫번째 에이스' 하기룡, '쌕쌕이' 이해창, '청룡 최초의 선발투수' 이길환, '곰사냥꾼' 김기범 등이 있다.

10.1. 1994년 신인 3인방

위에서 언급되었지만 먼 옛날로 건너가면 LG에도 영광스러운 과거들이 있었다. 특히 1994년 이광환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가장 파격적인 활약을 보인 신인 선수 셋 김재현, 유지현, 서용빈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LG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꽃보다 남자가 생기기 이전, LG에겐 꽃미남 3인방이 있었다..

세 명의 1994년 기록은 다음과 같다.

  • 김재현: 시즌 125경기 출장, 타율 0.289 134안타 홈런 21 타점 80 도루 21(20-20 클럽)
  • 유지현: 시즌 126경기 출장, 타율 0.305 147안타 홈런 15 타점 51 도루 51 (신인왕 수상)
  • 서용빈: 시즌 126경기 출장, 타율 0.318 157안타 홈런 4 타점 72(사이클링 히트 기록)

그러나 LG의 암흑기 금지어 시대에 김재현은 FA 후 SK로 이적하고, 서용빈은 병역비리에 연루된 후 은퇴, 유지현도 은퇴했다. 김재현은 2005년 이후 SK에서 재기에 성공했고 마지막 선수 생활을 우승으로 장식하며 은퇴했으며, 서용빈과 유지현은 각각 LG 트윈스의 타격과 주루코치가 되었다.

다만 항상 셋이 나란히 언급되는 것과 달리, 특히 김재현유지현은 사이가 굉장히 나쁘다. 선수협 결성 당시 김재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에 반해 유지현은 구단의 편에서 선수협을 결사반대했고, 김재현을 제외한 LG 선수들이 전부 선수협에서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 당시 김기태, 이 모 씨 등과 함께 오적으로 불렸다.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이 둘은 이 때 완전히 갈라섰다. 그러나 유지현도 나중에 LG 프런트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

덧붙이자면, 1994년 LG의 신인 중엔 위의 세 선수 말고도 주목할 만한 선수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투수 인현배. 그는 위의 세 선수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하여 94년 전반기에만 10승을 쓸어 담으며 LG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부상 등의 악재가 겹쳐 남은 기간 동안 1승도 못 올리고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어쨌든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이 10승을 올렸으니 수치상으로는 성공했다 볼 수 있지만, 그 후로 거의 활약을 못하고 은퇴함으로써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허나 1994년 LG의 최전성기를 지켜본 올드팬들 중엔 신인 3인방에 인현배가 더해진 신인 4인방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30대의 늦은 시기에 기량이 만개한 최동수 역시 94년 신인으로서 LG에 입단했다. 당시엔 별 활약도 없었고 주목도 받지 못했지만... 201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노장으로서 묵묵히 팀을 이끌었다.

이래저래 94년 LG의 신인 농사는 프로야구 사상 최대의 대박 농사였다고 볼 수 있겠다. 하긴 그것으로도 모자라 옆집 1차지명 투수 류택현을 빼와서 한참 동안 잘 굴리고 있으니... 노인학대

그 결과...

저 당시에는 LG가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4년 후 2008년, 순위는 정 반대로 바뀌는데...

이 사진들의 웃긴 점은 정말 정확히 대칭이 되었다는 점이다. 8구단이 짜고 순위를 저렇게 대칭으로 만들기도 힘들 텐데 물론 쌍방울태평양은...[61] 그냥 넘어가자. 참고로 한화는 5886899678 중 5를 찍어 비밀번호 첫 해를 찍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김재현은 구단과의 극심한 갈등으로 팀을 떠나 SK에서 활약하고 은퇴했고, 유지현은 주루코치, 서용빈은 타격코치를 맡고 있다. 그러나 박병호 폭행사건과 지속적인 탈쥐효과로 인해 서용빈은 예전만큼의 레전드 대우는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기에 LG 타자들이 죄다 똑딱이가 되어버리면서 그의 현역 시절 활약도 모조리 깎여나가고 있는 중. '김재현과 유지현에게 묻혀 별 것도 아닌 타자가 신인 3인방 취급을 받았다.' 'LG의 신인 3인방은 유지현, 김재현, 인현배였다'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90년대의 신인 3인방의 활약은 정말 대단한 것이 맞았다. 셋 중에 가장 선수로서 기량이 떨어지던 서용빈도 중요한 때에 꼬박꼬박 안타 치면서 선수시절은 좋은 활약을 했을 정도. 그러나 서용빈이 10년 동안 타격암흑기의 주범이 되며 쫒겨나고 김재현은 FA 이적으로 LG와 완전히 인연이 끊어져버렸으며 유지현은 팀에 오랫동안 코치로 있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중이라 유지현이 감독으로 LG를 우승시키는(...)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이 3명은 영구결번을 받기는 어려울 듯 하다.

10.2. MVP & 신인왕

1990년 한국시리즈 MVP

1994년 한국시리즈 MVP

LG No. 41 김용수

1986년 신인왕

1988년 신인왕

1990년 신인왕

청룡 No. 29 김건우

청룡 No. 36 이용철 [62]

LG No. 2 김동수

1994년 신인왕

1997년 신인왕

2019년 신인왕

LG No. 6 유지현

LG No. 9 이병규

LG No. 59 정우영

  • 정규시즌 MVP가 아직 없다. 가장 MVP에 근접한 사례는 4할타자 백인천(1982), 좌완 최초 20승 이상훈(1995), 해당 시즌 다승왕 신윤호(2001).
  • 2019년 정우영이 신인왕을 수상하면서 1997년 이병규 이후 무려 22년 만에 신인왕을 배출하였다.

11. 팀의 역사

안타까운 말부터 하지만, LG는 MBC때부터 야구를 특출나게 잘하지는 못한, 중상위~중위권의 이미지였다. 청룡팬들의 증언이 담긴 80년대 영상에서부터 이미 MBC/LG팬들은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강팀으로 뛰어오르지는 못하는 팀이었다. 원년에 백인천이 4할타자의 대기록을 세웠고 팀의 간판인 김재박을 비롯해서 선수 면면은 90년대 LG 황금기에 버금갈 정도로 좋았지만[63] 리더가 정해져 있지 않은 '방송국 야구단'의 한계가 명확히 있었던 것. MBC 청룡 시기의 최고 성적은 1983년의 준우승이다. 그래도 이 시기는 아직 OB가 '대전에서 올라온 팀'이라는 이미지가 박혀있어서 1984~1989의 삽질에도 서울팬덤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듯 하다. 그리고 당시 스타선수도 많고 아직 프로 출범 초창기였던지라 청룡올드팬들은 해당 시기를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64]

이후 LG 트윈스는 1990년, 1994년에 우승을 했다. 특히 이광환 감독의 신바람 야구를 내세운 1994년 우승은 현재까지도 LG 트윈스의 상징이자, 한국프로야구 발전에도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뉴욕 양키스가 될만한 팀'[65]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1990년대 중반의 LG 트윈스는 잘 나갔다. 현재도 LG 팬덤의 코어는 이 시기에 형성된 팬들과 그들의 아들, 딸들이다.

1990년, 1994년의 우승은 최초의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청룡의 1세대 선수들이 은퇴하기 전에 비교적 빠르게 찾아온 (7년) 황금기였고 아직 OB가 대전에서 올라온 팀이라는 차가운 시선을 벗지 못하고 있을 때 LG는 90년대 황금기를 맞으며 서울의 야구팬들을 모조리 흡수해버리게된다. 2008년 이후 두 팀의 성적이 차이가 나게 되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두산은 팬덤 '규모'에서 아직 LG를 쫒아가지 못하고 있을 정도. 1990~1994는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1997년과 1998년 2연준(2연속 준우승)에 그치고, 2002년에는 객관적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의 '원조 벌떼 마운드' 운용으로 투수들의 팔과 어깨를 무진장 갈아대며 준우승을 했으나, 시즌 후에 김성근감독을 경질하고,[66][67] 1994년 우승 감독인 이광환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았으나 이때부터 LG에 암흑기가 도래했다. 1년 만에 짤리고 수석코치 금지어가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창단 첫 최하위의 수모를 겪게 된다.[68] 2007년 시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김재박이 화려하게 친정팀으로 돌아왔으나, 결과적으로 주전들의 철밥통 포지션 운영과 조공성 트레이드 등으로 비밀번호가 늘어났을 뿐이었다. 이 시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LG 트윈스/1990~2008년 참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암흑기를 보내면서 얻은 별명이 칠쥐(7위+LG)이다.

2007년 시즌에는 시즌 막판 삽질쇼로 인해 화끈하게 100억 지르고 5위라는 성적을 거두었으며[69], 2008년에는 결국 2번째 최하위의 성적표를 받았다.[70] 참고로 2008년의 2번째 꼴찌는 팀 역대 최저승률 기록이기도 하다. 몇 년째 100억 단위로 돈을 쏟아 부으며 굴하지 않고 매 홈경기를 관전하는 구단주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천사임이 틀림없다는 게 야구관계자나 팬들 사이에서 정설로 통.

실제로 엘롯기 중 기아 수뇌부는 아예 야구에 관심이 없어FIFA월드컵 스폰서의 위엄 운영은 현장과 프런트가 알아서 하고, 롯데 수뇌부는 구단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데 반해[71] LG 수뇌부는 꼬박꼬박 직관에 스프링캠프 때도 찾아가며 2군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다. 그러나 그게 꼭 좋은 건 아니다. [72] 야구를 잘 모르는 구단주의 지나친 관심은 자칫 필요 이상의 간섭과 구단주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사장, 단장의 삽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실제로 LG의 팀 성격이 엉망이 된 것을 그 때문으로 보는 입장도 상당하다. 이상훈+이광환 체제에 대한 미련으로 김성근 축출도 그렇지만, 리빌딩에 들어가야 할 팀에 포지션까지 중복되는 즉전급 선수를 몇 년 동안 사들여서 팀 목표가 리빌딩도 아니고, 우승 도전도 아닌 애매하게 흘러가는 이유가 된 것이 그 이유.카드수집? 이런 케이스가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도 있으니 바로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5년 준우승 이후 지속적인 영입을 통해 대권을 노렸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계속 좋은 유망주들도 놓치자 성적이 수직으로 추락한 것이 닮았다. 에스트로스는 하다하다 관조를 피해서 2013년 지구를 옮기라도 했지[73]

그러나 2011년 방영된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LG 특집에서 그 충격적인 실상이 알려졌다. 구단주가 임명한 사장이라는 인간이 "야구에 대해 문외한"이며 그저 술만 좋아해서 스프링캠프 때 박종훈 감독과 기자들 앞에서 추태를 부렸다 하니... 그나마 이 보도 덕에 그룹에서 직접 감사팀을 파견하여 대대적인 재정비 작업에 들어가면서 현재는 평타는 치는 프런트로 바뀌었다. 비록 능력 부족으로 인해 지탄받는 점은 있으나, 2011년부터 시작된 백순길 단장 체제가 4년 이상 지속되는 것만 해도...[74]

이 시기에는 10년 동안 도무지 발전이 없는 팀 성적과 구단의 철밥통 코치와 스카우터들, 이러한 답답한 LG 트윈스의 구단 경영에 실망을 넘어 염증을 느낀 팬들 사이에서는 정말로 진지하게 GS그룹에 팀을 매각하는 것이 어떨까하는 논의가 계속되었다. FC 서울과 GS 칼텍스 여자배구단 등 GS 그룹이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단은 LG 그룹보다 괜찮은 성적과 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 물론 실제로 LG 그룹이 야구단을 GS 그룹에 매각할 확률을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2016년부터 GS의 스포츠단 운영도 막장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실제로 넘어갔어도 잘 했을지는 의문이다.[75]

그러나 2013년[76]과 2014년[77] 연속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10년의 비밀번호를 끊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특히 2014년에는 김기태 감독의 사임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양상문 감독이 부임한 뒤 5할 -16 꼴찌에서 기적같이 4위에 안착하는 데 성공하면서 LG팬들을 기쁘게 했다.

2015년 구단 역사상 첫 9위로 최악의 한해를 보냈으나 2016년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함께 2년 전처럼 5할 -14에서 후반기 대반전을 만들어내며 4위에 안착, 2년 만에 가을야구에 복귀하였다. 허나 2017년 후반기 불펜들의 연쇄적인 붕괴와 타선의 침체로 평균자책점 1위를 찍고 가을야구에 실패했는데 95년의 해태 타이거즈 이후 처음 나온 기록이다.[78] 그리고 철밥통 서용빈이 드디어 짤렸다. 하지만 강상수가 남아있다 그리고 2018년 시즌 양상문 감독이 단장으로 승진하고 류중일 감독이 취임했다. 그러나 내내 롤러코스터를 타던 팀 순위는 결국 2011년 이후 역대급 DTD로 8위로 마감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욕먹던 강상수도 짤렸고 양상문도 단장 자리에서 사임하고 2019 롯데감독을 맡게됐으며, 빈 단장자리는 차명석이 맡게 되었다.

2019년 현재도 팀 뎁스가 두껍지 못하여 매 시즌 판도가 변하는 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차명석 단장이 이전 취임자들과 달리 고참선수들을 신경쓰는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인기는 확실히 안정권에 들었다.

메이저리그 팀으로 비유하자면 뉴욕 양키스가 될 가능성이 아주 사아아알짝 있었지만 결국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되어버린 구단, 일본프로야구 팀으로 보면 2010년대 들어 세대교체 실패+막장 프런트로 망가진 주니치 드래곤즈 라고 볼 수 있겠다. 거기에 타격 부분은 타자쪽으로 MVP급이 거의 없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선수 육성 부분에서는 나가는 선수마다 다 터지는 마이애미 말린스. 한마디로 답이 없다.

11.1. 역대 감독

MBC/LG의 한국시리즈 감독은 2017년까지 5명으로 김동엽(1983), 백인천(1990), 이광환(1994), 천보성(1997, 1998). 김성근(2002)

순서

이름

재임 기간

전적

승률

초대

백인천[79]

1982년 ~ 1983년

96경기 54승 42패

0.563

감독대행

유백만

1983년

25경기 11승 1무 13패

0.458

감독대행

한동화

1983년

4경기 3승 1패

0.750

2대

김동엽

1983년

55경기 34승 1무 20패

0.630

3대

어우홍

1984년 ~ 1985년

151경기 72승 1무 78패

0.480

4대

김동엽

1985년 ~ 1987년

217경기 104승 12무 101패

0.507

감독대행

유백만

1987년

54경기 26승 4무 24패

0.520

5대

유백만

1988년

108경기 40승 4무 64패

0.385

6대

배성서

1989년

120경기 49승 4무 67패

0.422

순서

이름

재임 기간

전적

승률

7대 [80]

백인천

1990년 ~ 1991년

246경기 124승 1무 121패

0.506

8대

이광환

1992년 ~ 1996년[81]

586경기 309승 15무 262패

0.541

감독대행

천보성

1996년

44경기 15승 29패

0.341

9대

천보성

1997년 ~ 1999년

384경기 197승 4무 183패

0.518

10대

이광은

2000년 ~ 2001년[82]

168경기 76승 4무 88패

0.463

감독대행

김성근

2001년

98경기 49승 7무 42패

0.538

11대

김성근

2002년

133경기 66승 6무 61패

0.520

12대

이광환

2003년

133경기 60승 2무 71패

0.458

13대

이순철

2004년 ~ 2006년[83]

305경기 129승 6무 170패

0.431

감독대행

양승호

2006년

80경기 31승 3무 46패

0.403

14대

김재박

2007년 ~ 2009년

385경기 158승 10무 217패

0.421

15대

박종훈

2010년 ~ 2011년

266경기 116승 7무 143패

0.448

16대

김기태

2012년 ~ 2014년[84]

279경기 135승 5무 139패

0.493

감독대행[85]

조계현

2014년

16경기 6승 10패

0.375

17대

양상문

2014년 ~ 2017년

534경기 259승 9무 266패

0.493

18대

류중일

2018년 ~

11.2. 역대 구단주

MBC 청룡 시절에는 문화방송 사장이 구단주 역할을 맡았고 LG그룹이 구단을 인수한 후부터는 LG그룹 오너가 구단주를 맡고 있다.

구단명

순서

이름

재임 기간

비고

MBC 청룡

초대

이진희

1982년

2대

이웅희

1982년 ~ 1986년

3대

황선필

1986년 ~ 1988년

4대

김영수

1988년 ~ 1989년

5대

최창봉

1989년

구단명

순서

이름

재임 기간

비고

LG 트윈스

6대

구본무

1990년 ~ 2008년

LG그룹 제3대 회장[86]

7대

구본준

2008년 ~ 2018년

LG그룹 부회장

8대

구광모

2019년 ~ 현재

LG그룹 제4대 회장

11.3. 역대 성적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경기수

승률

MBC 청룡

1982

3위/6팀[87]

3위

80

46

34

0

0.575

1983

1위/6팀[88]

준우승

100

55

43

2

0.561

1984

4위/6팀[89]

4위

100

51

48

1

0.515

1985

5위/6팀[90]

5위

110

44

65

1

0.404

1986

3위/7팀[91]

3위

108

59

41

8

0.590

1987

5위/7팀[92]

5위

108

50

51

7

0.495

1988

6위/7팀[93]

6위

108

40

64

4

0.385

1989

6위/7팀

6위

120

49

67

4

0.423

LG 트윈스

1990

1위/7팀

우승

120

71

49

0

0.592

1991

6위/8팀

6위

126

53

72

1

0.425

1992

7위/8팀

7위

126

53

70

3

0.433

1993

4위/8팀

3위

126

66

57

3

0.536

1994

1위/8팀

우승

126

81

45

0

0.643

1995

2위/8팀

3위

126

74

48

4

0.603

1996

7위/8팀

7위

126

50

71

5

0.417

1997

2위/8팀

준우승

126

73

51

2

0.587

1998

3위/8팀

준우승

126

63

62

1

0.504

1999

매3위/4팀[94]

3위

132

61

70

1

0.466

2000

1위/4팀[95]

4위

133

67

63

3

0.515

2001

6위/8팀

6위

133

58

67

8

0.464

2002

4위/8팀

준우승

133

66

61

6

0.520

2003

6위/8팀

6위

133

60

71

2

0.458

2004

6위/8팀

6위

133

59

70

4

0.457

2005

6위/8팀

6위

126

54

71

1

0.432

2006

8위/8팀

8위

126

47

75

4

0.385

2007

5위/8팀

5위

126

58

62

6

0.483

2008

8위/8팀

8위

126

46

80

0

0.365

2009

7위/8팀

7위

133

54

75

4

0.406

2010

6위/8팀

6위[96]

133

57

71

5

0.429

2011

6위/8팀

6위

133

59

72

2

0.450

2012

7위/8팀

7위

133

57

72

4

0.442

2013

2위/9팀

3위

128

74

54

0

0.578

2014

4위/9팀

4위

128

62

64

2

0.492

2015

9위/10팀

9위

144

64

78

2

0.451

2016

4위/10팀

4위

144

71

71

2

0.500

2017

6위/10팀

6위

144

69

72

3

0.489

2018

8위/10팀

8위

144

68

75

1

0.476

2019

4위/10팀

4위

144

79

64

1

0.552

2020

위/10팀

KBO 통산 37시즌

V2

4771

2268

2396

107

0.486

그 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조.

11.4. 포스트시즌 전적

KIA 타이거즈

1983 KS : 1무 4패

1997 KS: 1승 4패

2002 PO: 3승 2패

2016 WC: 1승 1패

WC 1승, PO 1승, KS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5승 1무 11패

삼성 라이온즈

1990 KS : 4승

1993 PO: 2승 3패

1997 PO: 3승 2패

1998 PO: 3승 1패

2002 KS: 2승 4패

PO 2승 1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14승 10패

두산 베어스

1993 준PO: 2승 1패

1998 준PO: 2승

2000 PO: 2승 4패

2013 PO: 1승 3패

준PO 2승, PO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7승 8패

현대 유니콘스

1994 KS : 4승

1998 KS: 2승 4패

2002 준PO: 2승

준PO 1승,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8승 4패

롯데 자이언츠

1995 PO: 2승 4패

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2승 4패

NC 다이노스

2014 준PO: 3승 1패

2016 PO: 1승 3패

2019 WC: 1승

WC 1승, 준PO 1승, 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5승 4패

키움 히어로즈

2014 PO: 1승 3패

2016 준PO: 3승 1패

2019 준PO: 1승 3패

준PO 1승 1패, 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5승 7패

11.5. 역대 개인 성적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MBC-LG 소속이었을 때의 성적.

11.5.1. 통산

LG 트윈스 투수

부분

이름

기록

MBC-LG 소속 시즌

등판경기

류택현

736경기

1999~2010, 2012~2014

선발등판

정삼흠

221경기

1985~1996

완투

정삼흠

50완투

1985~1996

완봉

정삼흠

11완봉

1985~1996

평균자책점

김용수

2.98

1985~2000

승리

김용수

126승

1985~2000

패전

정삼흠

121패

1985~1996

세이브

김용수

227세이브

1985~2000

홀드

류택현

122홀드

1999~2010, 2012~2014

이닝

정삼흠

1894.2이닝

1985~1996

탈삼진

김용수

1146개

1985~2000

피안타

정삼흠

1783개

1985~1996

피홈런

정삼흠

148개

1985~1996

볼넷

정삼흠

663개

1985~1996

사구

정삼흠

127개

1985~1996

LG 트윈스 타자

부분

이름

기록

MBC-LG 소속 시즌

출장경기

박용택

2139경기

2002~현재

타율

이병규

0.311

1997~2006, 2010~2016

출루율

김재현

0.395

1994~2004

장타율

김재현

0.467

1994~2004

타석

박용택

8902타석

2002~현재

타수

박용택

7922타수

2002~현재

안타

박용택

2439안타

2002~현재

2루타

박용택

426개

2002~현재

3루타

박용택

44개

2002~현재

홈런

박용택

211개

2002~현재

타점

박용택

1157타점

2002~현재

득점

박용택

1237득점

2002~현재

도루

이대형

379도루

2003~2013

볼넷

박용택

778개

2002~현재

사구

김재현

99개

1994~2004

삼진

박용택

1358개

2002~현재

병살타

박용택

170개

2002~현재

투수는 정삼흠, 타자는 박용택이 압도적이다...

11.5.2. 단일시즌

LG 트윈스 투수

부분

이름

기록

시즌

등판경기

류택현

85경기

2004

선발등판

헨리 소사

33경기

2016

완투

오영일

14완투

1984

완봉

하기룡

4완봉

1982

이길환

1983

평균자책점

김용수

1.67

1986

승리

이상훈

20승

1995

패전

정삼흠

16패

1988

세이브

봉중근

38세이브

2013

홀드

이동현

25홀드

2013

이닝

오영일

239.2이닝

1984

탈삼진

레다메스 리즈

188개

2013

피안타

헨리 소사

258개

2016

피홈런

차우찬

27개

2018

볼넷

루카스 하렐

108개

2015

사구

임찬규

24개

2017

LG 트윈스 타자

부분

이름

기록

시즌

타율

백인천

0.412

1982

출루율

백인천

0.497

1982

장타율

백인천

0.740

1982

타석

오지환

617타석

2018

타수

이병규

550타수

1999

안타

이병규

192안타

1999

2루타

이병규

43개

1999

3루타

박흥식

9개

1987

홈런

이병규

30개

1999

타점

채은성

119타점

2018

득점

이병규

117득점

1999

도루

이대형

66도루

2010

볼넷

로베르토 페타지니

97개

2009

사구

송구홍

21개

1996

삼진

오지환

146개

2018

병살타

박용택

21개

2018

유강남

2018, 2019

11.6. MBC 청룡

11.7. 2000년대 이전

11.8. 2010년대

11.9. 2020년대

11.10. 2030년대

12. LG 트윈스 선수 관련

13. 트윈스 관련 커뮤니티

13.1. I love Twins

13.2. LG 트윈스 갤러리

14. 역대 유니폼 변천사

  • 2016년부터는 무려 스타워즈어벤져스와의 콜라보레이션 굿즈 상품이 출시되었다. 스타워즈는 시범경기 때 매장에 나왔고, 어벤져스는 5월에 출시. 트윈스샵이 아니라 헬로트윈스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야 상품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5월부터는 국산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와의 콜라보레이션도 진행되었다.

15. 사건사고

16. 지역 연고 학교

서울연고 야구팀인 키움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는 지역연고학교를 합동 관리한다.

17. 관련 문서

18. 네임드 팬

  • mbc 청룡의 이름으로 1989년까지 야구를 했으므로 장년층팬들은 대부분 청룡시절부터 팬들이다.

주의사항 - LG 트윈스의 팬인 유명인을 서술 하는것은 좋으나 일부 초청 시구자들을[100] 무조건 팬 목록으로 넣는 행위는 자제 해주시기 바랍니다.

  • 故 박기홍(1911~1999)[189]
  • 故 박제찬(1964~2014)[190]

19. 응원

2020 시즌 LG 트윈스 응원단

응원단장

김정석

장내 아나운서

황건하

치어리더

김도희, 남궁혜미, 원민주, 유세리, 윤소은, 장세희, 정다혜, 차영현, 하지원

2020 시즌 기준으로 LG 트윈스의 치어리더는 정다혜, 남궁혜미, 장세희, 차영현, 윤소은, 김도희, 유세리, 하지원, 원민주 등 총 9명이 있다. 응원단장은 김정석이며, 장내 아나운서는 2016 시즌까지 일번 타아자아허지욱이 맡았다가 2017 시즌부터 황건하가 맡게 되었다.

KBO 구단 최초로 막대풍선 응원을 도입하고, 선수별 응원가를 도입하기도 했다. 또한 대학 응원가나 여러 명곡들을 활용해 수작으로 평가받는 응원가들을 탄생 시켰지만 하필 초대형 암흑기에 빠져있던 LG와 달리 로이스터 감독 시대를 맞은 롯데 자이언츠가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조지훈 단장의 들이 주목 받아버렸다. 당시 LG는 암흑기에 직면해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강병욱 응원단장과 오명섭 응원단장이 오랫동안 불린, 또 지금 현재도 불리우고 있는 박용택, 정성훈, 이진영[191], 이택근[192], 오지환, 유강남 등의 응원가를 내놓으며 전성기를 맞은 롯데의 응원가에도 밀리지 않는 퀄리티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이 당시엔 야구팬들 사이에서 응원가 원탑 자리를 놓고 몇 년째 롯데와 다투기도 했었다. 이때 만들어진 응원가들이 대부분 좋은 퀄리티를 보여주며 포지션이나 비슷한 캐릭터의 후배 선수들이 대대로 내려 받는 전통이 있는데, 예를 들어 유지현의 응원가는 차세대 대형 유격수로 입단한 박경수가, 조인성의 응원가는 같은 성씨의 후배 포수가 물려받았고, 손인호의 응원가는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손주인이 물려받았다. 외국인 선수도 마찬가지로 페타지니의 응원가는 스나이더히메네스에게 대물림되었다.[193] 또한 야잘잘 이형종은 단어의 창시자인 이진영의 응원가를 물려받았다. 자세한 것은 여기 참조

다만, 타 팀으로 이적한 선수의 요청에도 절대 응원가를 내주지 않는다. 2012년 FA로 SK에 이적한 조인성이 LG시절 응원가를 쓰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구단은 단호히 거절, 결국 조인성은 SK에서 이상한 응원가만 듣다가 한화로 이적해 병맛 좀 돋아도 중독성 있는 응원가를 받았다. 2015년에는 KIA를 거쳐 kt로 이적한 이대형이 LG시절 응원가를 사용하고 싶다고 밝혔고, 이번에는 승낙했다는 말이 기사화까지 됐지만 결국 안 쓰게 되었다. 사실 그 노래는 이미 이 분이 가져가셨다카더라

이후 2013년 드디어 길고길었던 암흑기를 탈출하는데 성공하며 많은 LG팬들이 응원가들을 야구장에서 함께 부를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암흑기에 탈출한 이후 점점 응원가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새로운 응원단장이 된 최동훈이 만든 임훈의 응원가가 가장 퀄리티가 처참하다.[194] LG가 계속해서 엉망진창인 성적을 올리는 와중에도 LG팬들이 끊임없이 야구장을 찾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다른 구단들보다 뛰어난 응원가에 있었는데, 성적이 좋아진 2014년 이후에는 이 장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또한 옆동네 롯데팬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며 비판 받고 있고, 병맛 응원가들을 추구하던 또다른 옆동네의 응원가가 고퀄리티 응원가로 주목 받기 시작했고 같은 서울팀의 응원가도 주목받기 시작하며 롯데와 응원가 원탑 자리를 놓고 싸우던 시절도 결국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문제를 알고는 있었는지 2016년, 팬들로부터 응원가를 모집하는 등 변화의 노력은 보였으나... 시범경기에서 공개한 응원가들의 퀄리티는 여전히 처참했던 데다가, 서울 메들리나 서울의 찬가 등을 틀지 않고 새로운 단체 응원가만 주구장창 트는 바람에 [195], 경기 종료 후 밤 11시가 넘도록 최동훈은 LG 트윈스 갤러리와 I love Twins에서 미친 듯이 까였다. [196] 다행히도 최동훈 응원단장이 서울응원가를 틀어달라는 피드백을 수용하고 새로운 응원가들 중에 몇 개가 재평가 받아 불만의견은 많이 잦아든 상태.

하지만 최동훈 단장은 양반이었으니... 김정석 단장으로 온 이후엔 응원가 퀄리티가 더욱 심하게 떨어졌으며 응원에 대한 리듬, 그리고 응원가를 트는 타이밍 또한 전혀 못맞추고 있어서 더더욱 까이며 그 최동훈이 그립다 할 정도로 평이 더 안 좋아졌는데, 최동훈 단장은 피드백이라도 잘 수용했지만 김정석 단장은 피드백은 싹 무시하고 본인의 응원법만 따른다. 심지어 김정석 본인의 팬들[197]하고 인스타 DM으로 친목질도 하는데 응원 관련 피드백은 아예 읽지도 않는다. 본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는 듯하다. 하지만 LG 트윈스는 그 이전부터 프런트가 응원단에게 간섭을 매우 심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응원단장이나 응원 스태프들한테 응원가 제작 권한이 전혀 없다는 얘기 또한 많이 있는 편이라 누가 응원단장이 되든 좋은 퀄리티의 응원가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한다. 실제로 저작인격권 문제가 터진 뒤, 특히 2019시즌엔 자작곡이나 단순한 리듬응원이 많아졌는데 이것도 그 이유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응원가 수준을 떠나 김정석 본인의 응원스타일부터 문제라는 평이 대다수이며 특히 경기 흐름에 상관없이 응원가만 주구장창 틀어제끼는 이른바 정석쇼는 거의 분자단위로 까이는 수준이다.[198] 이처럼 LG 트윈스의 응원이 점점 퇴보하고 있어서 옛날 응원이 그립다는 올드팬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2019년 LG의 호성적에도 홈관중이 오히려 줄어든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자세한것은 LG 트윈스/응원가 참고바람.

20. 서울 SK 나이츠와의 평행이론

똑같이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고 있는[199] 프로농구단 서울 SK 나이츠와는 평행이론이라고해도 좋을만큼 여러 모습이 매우 똑같다. 우선 두 팀 모두 리그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인기 흥행 구단이다. 여기서 더 소름 돋는 것은 성적이나 팀의 면면을 볼 때 똑같은 점이 심하게 많다는 점이다. 그 평행이론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 2002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대구광역시 연고팀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삼성 라이온즈, 대구 동양 오리온스)
  • 그 이후 2013년까지 10년동안 플옵진출 실패 (SK는 10년동안 1회 진출)
  • FA로 스타선수를 영입해도 죄다 먹튀가 되는 흑역사[200]
  • 팀 플레이가 없고 철저하게 개인주의가 만연한 모래알 팀이라는 소리를 들음
  • 등번호 7번을 달았던 선수가 언급하기 어려운 선수가 됨(방성윤, 김재현)[201]
  • 2012년부터 형님 리더십을 표방하는 감독이 암흑기를 탈출시킴 (문경은, 김기태)
  • 암흑기를 탈출시킨 흑인 선수가 2013년 인성논란으로 곤욕을 치름 (애런 헤인즈, 레다메스 리즈)
  •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짧은 황금기
  • 2018년 후반기 동반 멸망[202]
  • 2019년 부활[203]
  • 공휴일 더비마다 같은 연고팀에게 참패[204]

대략 2015년 초반까지는 두 팀이 그야말로 닮은 꼴인 팀이었다. 이후 2016년 LG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평행이론은 끊어졌고 2018년 SK 나이츠가 우승하면서 두 팀의 암흑기 동반역사는 끝을 맺었다. 근데 2018년 하반기부터 또 시작되었다.

혹시라도 LG 트윈스가 2018년 우승한다면 뭐요? 평행이론이 또 다시 증명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는 건 이미 LG 트윈스 팬들이 더 잘 안다. 가을야구에도 진출하지 못하며 평행이론은 완전히 깨졌지만, SK도 18-19 시즌을 사실상 망치며 또 평행이론이 증명될 가능성이 생겼다(…).

LG와 SK의 시즌 말아먹는 패턴은 의외로 다른데 LG는 비시즌에 기대를 가지게 하다가 시즌부터 얄팍한 선수층으로 번번히 무너진다면 SK는 비시즌에 판을 깔기만 하면 무조건 망하는 패턴이다. 그나마 암흑기를 도중에 한 번 끊거나 무너지기 전에 우승을 추가하는 등 SK가 근소하게 앞서있기는 하다.

21. 기타

  • 응답하라 1994에서도 서울 쌍둥이의 모델이 되었고, 성동일이 구단 코치를 맡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1994년은 바로 LG 트윈스가 우승을 한 해이고, 드라마에서도 이걸 충실히 재현했다. 성동일은 기뻐하면서 인삼주를 담그면서 다음 해에도 우승하면 기념으로 따서 마신다고 했지만 작중 집들이 하러 모인 등장인물들이 몰래 따서 마셨다. 고증을 중요시 여긴 드라마의 특성상 웬만한 회사나 팀의 명칭은 실명 그대로 등장한 것에 반해 유독 LG 트윈스만 가명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상해 보이기는 한다. 그것도 중요 배역 인물이 코치로 뛰고 있다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제작진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기는 했다. 요약하자면 기나긴 비밀번호를 찍을 만큼 오랜 기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트윈스가 하필이면 포스트 시즌 기간에 방송할 드라마에 팀명이 나오는 걸 꺼렸다는 이야기다. 만약 진출에 실패했는데 드라마에서 94년 우승을 들먹이면 욕을 몇 배로 얻어먹을 거라 생각한 모양.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드라마가 방송된 2013년, LG 트윈스는 정규 시즌 2위를 달성하며 비밀번호의 악몽을 씻어냈다. 만약 팀명 사용을 허락했다면 드라마와의 시너지 효과를 훨씬 더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
  • 해체된 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207] 2015년에 1군에 합류한 kt wiz를 제외하면 KBO 리그 출범 이후 MBC-LG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홈런왕과 MVP 수상자를 낸 적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다. 홈런왕은 소총타선 이미지+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없는 게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208] MVP의 경우 MBC 시절인 1982년 시즌에 4할 타율을 달성한 백인천과 1995년 시즌에 20승을 달성한 이상훈이 높은 가능성을 보였지만, 각각 한국시리즈 우승 버프와 선발 22연승, 홈런왕+100타점의 박철순김상호에게 MVP를 빼앗기고 말았다. LG팬들은 이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 한다. 공교롭게도 그 해 MVP 선수를 배출한 팀이 모두 OB-두산이다. 2001년에는 다승왕 신윤호가 MVP에 근접했고 1차 투표에서 홈런왕 이승엽을 앞서기도 했지만 2차 투표에서 역전당하며 아쉽게 MVP에 실패했다.
  • 인디밴드 로맨틱펀치의 노래 TGIF(Thank Girl, It's Friday!)에 '이룰 수 없는 이루어질리 없는 트윈스의 우승에 건배를'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로맨틱펀치의 보컬 배인혁은 LG의 골수팬이라고 한다.

  • 두산 베어스와 같은 홈구장을 사용하는 관계로 한 시즌에 LG와 두산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경우 최종 순위에 따라 2년 후 홈개막전의 희비가 엇갈리곤 한다(...). 만약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이 LG보다 잘하게 될 경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2년 후 개막전을 어웨이로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209][210][211] 그러니 전용구장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서울시에 그런 거 새로 지을 대지도 없고... ㅠㅜ

  • 두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잠실이 아닌 원정팀의 홈에서 이뤘다. 1990년에는 대구시민구장, 1994년에는 인천 숭의야구장에서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열렸으며 이곳에서 LG가 우승을 확정 지었다. 아쉽게도 이 두 곳은 철거되었거나 철거 예정이다. 하지만 이곳은 공교롭게도 훗날 LG에게 준우승을 안겨준 장소이자 현재 기준 마지막 한국시리즈를 치른 장소였다는게...[212] 그리고 2018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을 1회 이상 기록한 8개 구단(해체된 현대 유니콘스 포함) 중에서 유일하게 잠실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한 구단으로 남아 있다.[213][214]
  • 포스트 시즌 진출 횟수가 12번으로 적은 편이나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적이 없던 기록을 가졌었다. 그러나 2019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키움을 상대로 1:3으로 져 깨지고 말았다.
  • 2010년대에 진출한 포스트시즌인 2013시즌 플레이오프, 2014시즌, 2016시즌의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그리고 2019년 준플레이오프까지 모두 3:1로 결정났다. 그것도 1차전을 이긴팀이(2013 플레이오프 두산, 2014 준플레이오프 LG, 2014 플레이오프 넥센, 2016 준플레이오프 LG, 2016 플레이오프 NC, 2019 준플레이오프 키움) 진출했다.
  • SK 와이번스 창단 이후 19년간 포스트시즌에 나란히 진출해 본 적이 없다가 SK 창단 20번째 시즌인 2019년이 되어서야 동반 진출하게 되었다. LG는 2000년과 2002년 각각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SK는 창단 초기 약체팀이었고, 2003년부터 10년 간 LG가 암흑기에 빠진 사이 SK는 한국시리즈 3회 우승과 4회 준우승, 그리고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경험했다. LG가 비밀번호를 끊어낸 2013년과 극적인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2014년과 2016년에는 공교롭게도 SK가 6위, 5위, 6위로 포스트시즌에 가지 못했으며, SK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2015년과 2017년, 2018년에는 LG가 9위, 6위, 8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처음으로 동반 진출했던 2019년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면서 SK와의 포스트시즌 맞대결은 성사되지 못했다.
  • 삼성 라이온즈가 외국인 투수를 심각하게 못 뽑는 팀이라면 이 팀은 외국인 타자를 정말로 매우 심각하게 못 뽑는 팀이다. 투수 쪽에서는 해리거를 시작으로 좋은 선수들이 꽤 많이 왔지만 외국인 타자 분야에서 수위급 선수는 로베르토 페타지니 루이스 히메네스 이 두 명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봐도 된다. 정말 이렇게까지 못 데려와도 되는 건가? 일부러 저러나 싶을 정도로 외국인 타자 분야에서 흑역사를 실시간으로 쓰고 있으며 오죽 쭉정이들만 데려왔으면 2016년부터는 비하 별명이 이어질 정도까지 되었다. RUN니 - '그 쿠바새끼' - 하얀 가르시아 메이저에서도 어느정도 검증이 된 선수들 조차 모두 실패했으니 정말 답이 없는 수준이다.
  • 이에 반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레전드 등번호가 된 번호는 김용수의 41번[218], 미스터 청룡 김상훈 - 해결사 한대화 - 적토마 이병규의 9번과 박용택이 오래 사용한 33번
  • 은근히 묻힌 번호로는 백인천 - 김동수의 2번[219], 정삼흠의 1번이 있다.[220]
  • TWINS를 뒤집어서 보면 SNIMㅗ, 즉 스님ㅗ처럼 보인다. 이는 2017년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로고 및 폰트 디자인 변경으로 인해 더 부각되었다.
  • LG에게는 9월 9일이 길일이며, 9월 19일이 흉일이다. 9월 9일은 2010년대 대부분의 경기를 이겼으며, 2016년과 2017년은 두산전 승리였다.[222] 또한 1993년 9월 9일은 김태원이 KBO 역대 8번째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날이며, 1994년 9월 9일은 2위였던 태평양 돌핀스를 꺾고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반면, 2019년 9월 19일은 4위 매직넘버 3을 한번에 소멸할 수 있는 날이었지만 NC에 역전패로 인해 4위 확정이 일주일 더 늦어졌고 타선과 불펜이 포스트시즌까지 고전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옆집 두산 베어스는 이 날 선두 SK와의 더블헤더를 쓸어담으며 대역전 우승의 시발점이 되었던 날이다. 또한, 2018년 9월 19일은 5강 안정권으로 접어드는 찰나에 7연패 중이었던 롯데를 만나 전날 이미 윌슨을 내고도 패한 상황에서 이 경기를 통해 5강의 희망을 사실상 날려버리고 8위까지 추락해버린 원인이 된 날이며, 2017년 9월 19일은 역대 워스트 경기 다섯 손가락안에 꼽을 수 있는 역사에 남을 막장경기로 5강 희망을 사실상 접어버린 날이다. 2013년 9월 19일은 추석 연휴 SK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로 이 경기에서 완패를 당하고 스윕에 실패하면서 선두를 달리며 좋았던 분위기가 다소 꺾였고 1위 자리를 삼성에게 반 게임 차로 위협받았으며 결국 다음날 선두를 내주고 우승에 실패한 계기가 된 날이었다. 따라서 2020 시즌은 9월 19일이 주말이지만 이 날 만큼은 비가 오기를 바래야 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두산전이다.
  • 1990년 LG 트윈스로 팀명이 바뀐 뒤 현재진행형으로 30년 연속 10승 투수 한 명씩은 배출했다.[223] 심지어 6668587667의 암흑기에도 10승 투수 하나씩은 배출했으며, 불펜 혹사가 극에 달했던 김성근 재임시기인 2002년에도 장문석이 구원으로만 10승을 기록했다. 1999년에는 손혁이 아슬아슬하게 10승 투수가 되었다.[224][225]
  • 코로나19로 한국야구에 관심이 많아진 미국 네티즌과 기자들 사이에서는 로스엔젤레스 다저스와 닮은 구단으로 분류된다. 기나긴 세월동안 우승 한 번 없는 점(다저스 1988~, LG 1994~), 플옵에서 아둥바둥거려도 결국 비참하게 광탈하는 점(특히 믿었던 투수가 개박살나면서)을 고려한 모양. 같은 구장 두산은 은근히 우승 많이 한다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같은 연고 키움은 선수 잘 키우지만 거지라고 탬파베이 레이스와 닮았다고 언급되었다[226].

22. LG 트윈스 관련 도서

대부분 2013년 LG가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한 시즌에 나왔던 책들로, 김기태가 2014시즌 초반 RUN을 해버리면서 지금은 대부분이 불쏘시개화 되었다.

  • 볼수록 만만한 야구 - LG 트윈스 신바람 야구 / 저자(김윤정) /2010년 5월 /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 축구편(FC 서울[227]), 농구편(서울 SK 나이츠[228]), 골프편과 함께 출간되었다. 학교 도서관이나 중고책방에서 가끔 눈에 뜨인다.
  • LG 트윈스 때문에 산다. 저자(김은식) / 2013년 11월 / 표지부터 그 놈이 등장해 기분을 더럽게 한다. 속지에도 큰 그림으로 또 있기 때문에 적당히 그 부분만 접거나 찢은 다음에 보자. 그 것만 빼면 MBC 청룡과 LG의 잘나가던 시절의 역사를 알고 싶으면 참고해 볼만한 책.
  • 10년을 기다린 LG트윈스 스토리. / 저자(안승호, 김식) / 2013년 10월 / 런기태 사건 이후에는 완전히 불쏘시개화.
  • 김기태의 형님 리더쉽. / 저자(남도현, 정철현) / 2013년 8월 / 런기태 사건 이후에는 완전히 불쏘시개화.
  • 봉중근의 야구공 실밥 터지는 소리 / 저자(봉중근) / 2013년 1월 / 책 뒷표지에 런기태의 추천사가 붙어있다. 그 부분만 먹칠을 하거나 화이트칠을 한 다음에 보자.

23. 둘러보기

LG스포츠

LG 트윈스
(야구)

창원 LG 세이커스
(농구)


  1. [1] MBC 청룡 시절 MBC 측에서 별도로 법인을 설립한 날짜. 구단 매각 당시 럭키금성그룹의 럭키금성스포츠(현 LG스포츠)에서는 야구단 운영권만 넘겨받았고 MBC 청룡의 법인은 매각대금이 완불된 1993년까지 존속했다가 MBC 아카데미에 흡수되었다.
  2. [2] 사실 이 법인설립 날짜는 어폐가 있는것이, MBC청룡의 사업권을 인수한 것이기 때문. 전술했듯이 MBC 청룡 법인은 매각 이후에도 절세목적상 따로 존속했으며, 현재의 (주)LG스포츠 법인은 83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 창설때 만들어졌다. 90년 럭키그룹에서 야구단 인수를 하며 축구단과 함께 운영을 맡기게 되었으며 축구단이 GS로 넘어갔지만 FC서울은 GS에서 별도 법인을 만들었고 야구단 운영을 위한 LG스포츠 법인은 유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야구단과 별개로 주식회사로서 설립일은 83년으로 기록되어있다.
  3. [3] 주체가 바뀌어서 그런 것인지 KBO에서는 공식적으로(가이드북, 연감) 이 날을 창단일로 표시한다. 이건 KIA 타이거즈도 마찬가지. 하지만 대체 창단이라고 보지는 않는지 전신 역사도 새겨놓는다.
  4. [4]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3루 측
  5. [5] 1루 측엔 두산 베어스의 구단 사무실이 위치해있다.
  6. [6] 국내 4대 프로 스포츠의 서울 연고팀 중 유일하게 리그 창설 시점부터 서울을 연고로 창단됐다는 역사를 갖고 있다. 아울러 서울을 연고지로 삼고 있는 프로스포츠 구단 중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서울에 터를 잡고 있고 현재까지도 서울에 연고를 두고 있다. 서울 연고 프로 스포츠팀의 터줏대감인 셈.
  7. [7] 제4대 LG그룹 회장. 2018년 구본무 회장의 사망 이후 그룹 경영권이 양자인 구광모 회장에게 넘어감에 따라 구광모 회장의 작은 아버지인 구본준 부회장이 물러나게 됐다.
  8. [8] 구본무 전 회장의 측근 인사로 LG그룹 내에서는 소문난 야구광이라고 한다. 이 회사에 야빠 아닌 사람이 어딨어? 2019년부터는 그룹 경영 업무로 바쁜 구광모 구단주를 대신해 구단주 대행을 겸직한다.
  9. [9] 영구결번이지만 본인이 타격코치로 부임하면서 다시 달게 되었다.
  10. [10] 팀웍이, 근성이 마스코트가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나 2017년에 LG그룹 70주년을 맞아 럭키와 스타로 바뀌었다. 럭키와 스타의 유래는 익히 알려져 있는 LG의 전신 '럭키'와 '금성(골드스타)'. LG의 창단시절 마스코트도 쌍둥이 로봇이었다.
  11. [11] 좌측에 있는 팀 엠블렘 위에 그려지기도 했다.

    바로 이렇게.
  12. [12]
    여자 쌍둥이 마스코트인 사랑이, 행복이도 있었다. 팀웍이와 근성이와는 다르게 분홍색 모자를 쓰고 치마를 입었다.
  13. [13] 홈페이지를 제외하면 구단이 운영하는 SNS가 없는 유일한 구단이었다. 그러다 2016시즌을 앞두고 인스타그램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14. [14] 단일리그 기준
  15. [15]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16. [16] 경기 당 평균 20,145명
  17. [17]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18. [18] 경기 당 평균 4,458명
  19. [19] LG 트윈스 오프닝 영상이지만 4초 쯤에 나오는 잠실 야구장의 모습은 두산 베어스 홈 경기때의 모습이다. 전광판에 희미하게 두산 베어스 엠블럼과 선수단이 소개되고 야구장 바깥에는 한자로 혼연일체 최강두산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LG의 따뜻한 한 지붕팀 사랑 그리고 화면비를 보면 16:9 인데 실제 구장의 전광판에서는 스트레치라는 화면비를 억지로 늘리는 방식으로 표출이 된다. 반면 같은 집 살림인 두산 베어스는 LG 트윈스랑 대조적이게 전광판 화면비에 맟춘 시작 영상을 제작하여 화면비에 딱 맟춰서 표출된다.이런 디테일한 것까지 안맟추니 두산과 달리 우승을 못하는 거다. 우리나라가 화면비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둔감한지에 대한 하나의 예시.
  20. [20] 연예가 중계 예고음악 뒷부분에 이 음악과 거의 같은 멜로디가 나오지만 듣기 어렵다.
  21. [21] 당시에는 63빌딩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었다.
  22. [22] 참고로 LG는 건물, 마스코트에 쌍둥이를 좋아하는데, 구씨와 허씨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회사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허씨 일가는 GS그룹으로 분리되어 나갔기 때문에 LG와 LG 트윈스는 구씨 일가 소유지만 매우 드물게 진통없이 매우 좋게좋게 헤어진 케이스이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양 그룹간의 교류는 계속 이뤄지고 있으며, 양 구단이 각각 서로 스포츠단을 운영하는 스포츠에는 구단 창단을 하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LG는 야구와 남자농구, GS는 축구와 여자배구를 소유.
  23. [23] 2006년 유니폼 변경 때 도입했다. 마침 전지현이 나온 '라네즈 걸' 광고 캠페인 '핫핑크로 말해요'가 뜨던 시절이라 이 시절 한정으로 '핫핑크 유니폼'으로 불리기도 했다. 다만 연분홍색보다는 채도가 다소 낮은 분홍색을 쓴다.
  24. [24] 2015년부터 kt wiz가 검은색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진한 핑크를 사용할 듯하다.
  25. [25] 그 해 6월 즈음엔 꼴찌로 내려앉기도 했었다.
  26. [26] 만약 이 해에 해태가 우승을 했으면 해태 특유의 한국시리즈 불패 징크스를 생각할 때 한국시리즈마저도 해태의 우승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으며, 이 경우 한국시리즈 5년 연속 제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 이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나 막강했던 해태를 제치고 그전까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LG가 우승을 했다는 점은 당시 프로야구에 커다란 이슈가 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27. [27] 1994년 시즌의 화려했던 모습도 이 시기에 보여준 것이다.
  28. [28] 금성사 창업 멤버로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12월에 별세.
  29. [29] 2000년대 이후에야 휴대폰으로 전화 통화나 메신저 등으로 세계 어디서든지 연락이 가능하지만, 이때는 휴대폰 해외로밍은 커녕 삐삐보급조차도 제대로 안되던 시절이었고, 휴대폰 해외로밍도 2000년대 들어서야 가능했다. 사실 지금도 사장이 해외 나가면 아무리 이메일 카톡 있어도 업무연락 쉽지 않다
  30. [30] 그러나 한국 대기업의 상하조직 구조상 실장이 회장의 승낙없이 단독으로 실행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알겠지만 프로구단의 운영이란게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윗선의 승락없이 움직였다간 비용때문에 책임자가 문책으로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1. [31] 그 돈 많던 현대그룹이 프로야구단을 만들려고 하자 8개 구단주들의 반대로 새로운 리그를 창설할 뻔한 일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32. [32] 구자경 당시 회장이 '럭금'이라고 축약해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33. [33] 그룹에서는 1984년 그룹 계열 광고회사 LG애드에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소비자들에게 LG라는 브랜드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럭키금성그룹에 인수된 코리안익스프레스 카드가 LG카드로 이름을 바꾼 직후부터다.
  34. [34] 팀 순위는 6668587667을 찍어도 같은 시기 관중집계 순위는 1112133332이다. 다시 말해서 3위 밖으로 밀린 적이 없다는 소리. 잠실 원정특혜가 있다고 쳐도 저런 답도 없는 성적에 이런 관중 동원은 매우 대단한 것이다.
  35. [35] 참고로 2013시즌은 타 시즌보다 비교적 적은 128경기 체제 시즌이었다. 즉 팀당 64경기의 홈경기를 치르므로 못가도 1경기당 최소 2만 명은 왔었단 소리.
  36. [36] 유지현, 김재현, 그리고 LG타력의 막장화의 주범은 '꽃미남 3인방'으로 불리며 여성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던 선수들이다.
  37. [37] 응원방망이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색깔이 바뀐 건 이유가 있다. 해태 타이거즈와 붙었던 1997년 한국시리즈 때문이다. 타이거즈는 그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노란색 단무지응원방망이를 썼다. 이 경우 당연히 두 팀의 응원방망이 색깔이 겹치게 된다. 이에 LG가 그룹의 상징 색깔이기도 한 빨간색으로 응원방망이 색깔을 바꿨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38. [38] 이것도 이제 15, 16시즌 연속으로 관중동원이 밀리면서 팬이 무조건 많다고 확언하기도 어려워졌다 15시즌은 초반부터 망해서 그랬다면 16시즌은 중반에 곤두박질을 쳐버렸기 때문이라 봐야한다. 하지만 17시즌에는 LG가 두산을 앞서고 있다. 8월 18일 기준으로 두산 58경기 평균 14,920명 LG는 54경기 평균 15,811명이다.
  39. [39] 한편 관중 수 말고 시청률은 LG가 조금 앞서는데(16시즌 닐슨코리아 기준 LG는 0.925, 두산은 0.799. 그런데 TNmS 기준으로는 LG 0.787, 두산 0.761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지라 시청률 분석은 오차가 심하다.) 이를 두고 아직 LG가 팬이 더 많은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측도 있고 반대로 두산은 젊은 층이 주류라 저녁 시간대에 어른들한테 뺏겨서 시청률 주도권이 없으며, 야구를 시청하는데 있어서 인터넷 등의 다른 매체를 더 많이 이용한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다. 판단은 자유.
  40. [40] 이는 그만큼 성적이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두산의 경우, 팀 컬러가 상위권 우승후보라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나타내는 덕분에 젊은 팬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이에 반해 LG는 한국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진출한 것이 2002년이었고 한국시리즈 우승은 1994년이 두번째이자 마지막이었기에 팬심의 세대교체가 더딜 수 밖에 없다. 실례로 현재 LG 팬들 상당수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이나 아니면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팬이 되었던 세대들이다.
  41. [41] 2019 프리미어 12 기준으로 대표팀의 주축으로 김현수, 차우찬이 있으나 전부 외부 FA 출신이다. 고우석이 국가대표로 나왔지만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42. [42] 2009 WBC 한일전에서 에이스 역할한 봉중근 이후 국가대표에서 맹활약한 LG 프랜차이즈 스타가 전무한 실정이다. 반면 당장 같은 범LG가 농구구단인 창원 LG 세이커스김시래라는 걸출한 국가대표 프랜차이즈 스타가 있다.
  43. [43] 그중 심수창은 2019년 LG에 복귀했지만 1년 만에 은퇴했다.
  44. [44] 참고로 1위는 타어강.
  45. [45] 아웃이라는 댓글이 많으나, 뜬공을 포구할 때에는 양 발이 그라운드 안에 있어야 아웃이 성립되기 때문에 수비수가 장외로 나가 한강에 빠진 저 상황에서는 홈런이 맞다.
  46. [46] 경기 중에 전자기기를 사용해서 상대의 타구 속도를 측정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실제 경기 중 전자기기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47. [47]
    어떨 때에는 트윈스글자가 하얀색으로 바뀌어져있는 엠블럼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유광잠바.
  48. [48] 가운데 여자는 2014년 4월 1일 경기에 시구를 하러 온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박승희.
  49. [49] 그러나 공개후에도 반응은 영 좋지 못했고, 몇몇 팬들 사이에선 오리갑을 마스코트로 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암흑기 당시에는 팀 상황이 워낙 시궁창이어서 야구팬들 사이에선 마스코트 이름만 근성과 팀웍이고 현실은 시궁창이라며 비웃기도 했다.
  50. [50] 자세히 보면 붙어있는 게 아니다. 이웃팀이 홈일 때는 어쩔 수 없기 때문. 참고로 저 이웃팀영구결번자기 팀 홈경기일때 1루 외야 스탠드 위 깃발 게양대에 역대 우승 엠블럼들과 함께 걸려 있다.
  51. [51] 이후에도 이래저래 현수막 디자인이 바뀌어가면서 17년 동안 잠실야구장에 걸려있었다.
  52. [52] 여담으로 2004년까지만 해도 잠실구장 외야 관중석 한 편에 김용수의 등번호 41번이 새겨진 유니폼 모양의 영구결번 기념판이 있었으나, LG의 공식 금지어인 그 자가 김용수 코치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이유로 김 코치를 내친 뒤, 영구결번 기념판까지 철거해버리는 추태를 보여주면서 안그래도 당시 주축 프랜차이즈선수들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고 곤두박질 치는 팀 성적까지 겹쳐 LG 팬들에게 제대로 분노를 선사해 주었다 .
  53. [53] 일본시리즈 우승 경험은 있다. 2007년에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53년만의 우승을 한 그 멤버로!
  54. [54] LG에서 먼저 두산에 요청했고, 두산은 혼쾌히 수락했다.
  55. [55] 이 번호는 이상훈이 떠난 후 여러 선수들이 달았었지만 그 누구도 이상훈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번호다. LG 팬들 사이에서는 거의 영구결번급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현재도 트윈스샵 유니폼 마킹 순위에서도 최상위권에 랭크된 마킹이 No.47 이상훈이다. 조시카 따위가 달 번호가 아니다
  56. [56] 이 중 김재현은 팀을 떠났다. 김재현은 당시 김성근 SK 감독에게 은퇴 전 친정팀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LG팬들은 지금도 캐넌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 2016년, 김재현이 코치로 재직하고 있는 한화와의 개막전에, 김재현을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가장 큰 함성이 나온 곳도 LG의 응원석 1루였다. 다만 1994년 신바람 신인 3인방 중의 한 축인 유지현과 김재현의 관계가 현역 시절은 물론 아직까지도 썩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김재현의 LG 복귀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한 편이다.
  57. [57] 삼성의 템퍼링 의혹까지 있었다.
  58. [58] 예) 깝타지니, 잉타지니 등등. 둘 다 이젠 딴 팀 선수다
  59. [59] 얼마나 LG팬들이 증오하는 대상이면 리그베다 시절엔 작성금지 처리가 되어있었다(..)
  60. [60] 다만 시구전에 부상을 입어 개막전 시구는 이광환 전 감독이 대신했다.
  61. [61] 쌍방울SK, 태평양-현대우리-서울-넥센-키움은 공식적으로 다른 팀이다.
  62. [62] 신인왕이지만 LG에겐 거의 흑역사에 가까운데 LG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만 반복하면서 방송출연때마다 1988년 신인왕이라고 꼬박꼬박 소개문구에 넣는다.(...)
  63. [63]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은 이 시기의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청룡의 우승'이라고 봐도 된다.
  64. [64] 그럴만한 이유는 1986년과 1987년 후기리그에서는 비록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선두다툼을 시즌 막판까지 끌고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각각 OB 김형석의 최동원 상대 마지막 운명의 한 방과 김건우의 교통사고 부상이 겹쳐서 포스트시즌이 아쉽게 좌절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전기/후기 중 한 번은 2위 안에 들어야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했고 현재와 같이 3위나 4위로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없었다. 포스트시즌만 못 가서 그렇지 5할 승률 이상 시즌도 8시즌 중 4번으로 적어도 중간은 했던 팀이었다.
  65. [65] 언론에서 하도 한국의 양키스라고 보도하는 바람에 최근의 LG팬들은 이 별명을 싫어한다.
  66. [66] 당시 사장 어윤태의 "이건 김성근의 야구지 LG 야구가 아니오."라는 멘트는 당시 프런트와 김성근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2011년 어느 팀에서 또다시 재현된다
  67. [67]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노리타들을 제외한 팬들 사이에서 김성근의 평가는 최악이다. 이동현장문석, 신윤호 등을 굴리면서 선수들의 커리어를 상당 부분 말아먹었고, 이병규의 타격 폼을 개조시키려다 실패해 슬럼프의 원인을 제공했으며, 신인 드래프트를 말아먹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일. 덤으로 박용택에 과도한 외야수비 훈련을 시켜 어깨가 완전히 박살난 것도 이 시기다. 한화 이글스에서의 실로 화려한(...) 구설수들이 아니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크보의 다크나이트 한화 그러니까 김성근 해임이 '우'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자유다.
  68. [68] 이 시기 금지어의 행태는 KTF 매직엔스(現 kt 롤스터) 시절의 김철 감독과 더불어 삽질의 대명사로 남는다.
  69. [69] 다만 이때의 평가는 의외로 좋았던 편. 전년도보다 더 약해진 전력임에도 성적이 좋아졌기에 팬들은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지만, 더 질러야 할 상황에서 프런트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는... 딴 거 다 필요 없이 큰 돈 주고 산 박명환이 2008년에 그렇게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70. [70] 하지만 LG그룹은 이걸 광고로 사용했다(…).
  71. [71] 그러나 KBO 리그에서 자생으로 운영되는 구단은 전무하며 그 중에서도 롯데는 2019년 선수단 연봉 전체 1위를 기록했다.
  72. [72] 대표적인 예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현 구단주 피터 앙헬로스. 홈런과 거포에 환장해 팀의 밸런스를 무너뜨렸다.
  73. [73] NL 중부리그에 2000년대 강호 홍관조가 있어서 와일드카드 빼고는 성적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이사 온 AL 서부가 낫다.
  74. [74] 백순길 단장은 단장을 맡기 이전에는 LG그룹 고객서비스 부문. CS(고객 만족) 경영팀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 경력 때문인지 팀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을 차단하는 데 능하다는 평을 받는다.
  75. [75] GS스포츠의 운영은 성적보다 관중동원 같은 마케팅에만 치중해서 해당 팀 팬들에게 평가가 매우 안좋다.
  76. [76] 업셋 당해서 3위
  77. [77] 4위
  78. [78] 팀 평균자책점 1위를 하고도 가을야구를 못 했다는 점을 기준으로 두면 사실 최초는 84년의 OB다. 출범 원년부터 84년까지는 전/후기 1위 팀들로 한국시리즈만을 치르고 끝이었으며, 이 시즌의 OB는 전후기 통합승률 1위에 시즌 팀 평균자책점이 2.53으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1위 기록이지만 전/후기 모두 2위에 그쳐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
  79. [79] LG는 MBC가 매각이전에 새감독으로 선임한 백인천의 계약을 그대로 승계했다. 결국 백인천은 MBC의 초대 감독이자 마지막 감독, 그리고 LG의 창단 감독을 모두 역임하게 되었다.
  80. [80] LG 트윈스로 재창단으로 LG트윈스 초대감독
  81. [81] 96년 시즌중 중도사퇴
  82. [82] 01년 시즌중 중도사퇴
  83. [83] 06년 시즌중 중도 사퇴
  84. [84] 14년 시즌중 중도사퇴
  85. [85] 2014년 김기태 감독이 중도 사퇴했지만 구단에서는 사퇴를 수리하지 않은 상태로 조계현 수석코치에게 실질적인 감독대행 역할을 맡겼다.
  86. [86] 구단 창단 시에는 부회장이었고 아버지 구자경이 회장을 맡고 있었다.
  87. [87] 전기 3위, 후기 3위
  88. [88] 전기 3위, 후기 1위
  89. [89] 전기 3위, 후기 3위
  90. [90] 전기 5위, 후기 6위
  91. [91] 전기 4위, 후기 3위
  92. [92] 전기 5위, 후기 4위
  93. [93] 전기 7위, 후기 6위
  94. [94] 전체 6위
  95. [95] 전체 4위
  96. [96] 현재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길 경우 승률 .445로 KIA의 .444에 앞서 5위이나 무승부를 패배로 간주하던 당시 규정으로 인해 6위가 되었다. KIA는 2년 연속 당시 승률 규정의 혜택을 보았다.
  97. [97] 2014년도에 제주고 출신임지섭(용마고에서 전학)의 1차지명이 가능했던 것은 전학 시기가 1차지명 부활 이전이어서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98. [98] MBC 청룡 당시 나갔던 한국시리즈
  99. [99] 2018년 기준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100. [100] 특히 이 그룹.
  101. [101] #
  102. [102] 시구만 하면 이긴다는 소문이 있다. 시구하면서 응원하게 된 경우https://www.google.com/amp/m.chosun.com/news/article.amp.html%3fsname=news&contid=2018042801103
  103. [103] 어릴 때부터 LG 팬이다. 열혈 트윈스 팬인 고모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페이스북에 LG 팬임을 드러냈던 인증글들이 속속 발견되며 팬들 사이에서 많은 칭찬을 받았다. 지금 LG소속이라는건 비밀이다
  104. [104] LG 트윈스의 광팬이지만 필패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직관오는 것을 싫어하는 팬이 많다. 마지막 경기로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를 가렸던 2013년 10월 5일 두산전에서는 계속 지고 있다가 공형진이 퇴장한 후에야 팀이 역전승을 거두었다고(…). 그리고 그해 플레이오프 3, 4차전 모두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팬들이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였는데 결국 우려대로 두 경기 모두 패하며 역대급 시즌을 허무하게 마무리하고 말았다.
  105. [105] 우리가 아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그 투수다. 어렸을 때 LG 트윈스의 경기를 보며 응원했고 특히 야생마 이상훈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고한다.
  106. [106] 이적 당시 어렸을때부터 팬이라 꼭 한번 뛰고싶었던 팀이라고 밝혔다.더불어 2019시즌 LG 팀 분위기를 살린 안녕 세리모니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다미 아빠
  107. [107] 뜬금 없이 박용만을 비난할 정도로 극성 엘지팬이다(...) 아마도 이 거 때문인 듯
  108. [108] 서강대 철학과 출신의 문화평론가로 팟캐스트 매불쇼 등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다.
  109. [109] 2015년부터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했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두산 팬인 곽시양이다..... 9월 27일 잠실야구장에서 함께 LG와 두산의 경기를 직관했는데 그날 두산의 선발투수 유희관은 1.2이닝동안 LG 타자들에게 난타당하며 8실점 후 강판되었고, 경기는 LG 트윈스가 3-10으로 승리했다. 당시 두 명의 표정대비 사진이 퍼지기도 했다.
  110. [110] 드라마 시그널의 대본 작가로, 인터뷰에서 밝혔다.
  111. [111] 시사평론가 김용민. 김용민의 뉴스관장에서 직접 밝힘.
  112. [112] 아도니스 가르시아의 응원가로 자신의 히트곡인 아라비안 나이트(!)를 개사한 응원가를 직접 불러서 쾌척했을 정도다.
  113. [113] LG그룹 전속모델의 영향으로 가끔 잠실을 찾는다. 12년 이후로 최근 몇년간은 안보임
  114. [114] 자신의 아프리카 방송에서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밝혔다.
  115. [115] 아버지가 청룡 원년 골수팬이시다. 학창시절 박용택과 야구를 함께 하고 싶었다고.. 라이벌 팀에서 오랫동안 뛰었지만 현재는 LG의 캡틴.
  116. [116] 봉중근과 큰 이병규의 열렬한 팬이다. 20세기 미소년에서 매니저와 같이 두산 전을 관람하는 것이 방송되었다. 경기 관람 전에 봉중근을 직접 봤는데 걸그룹 멤버를 보는 것보다 더 떨렸다고 한다. 헌데, 유광잠바 조공 논란에 휩싸이면서 팬들 사이에는 금지어 취급.
  117. [117] 전 LG 트윈스의 외국인 선수로 첫 인연을 맺었고, 이후 퇴출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 최초엔 구직활동인가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선수 은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LG 트윈스의 트위터에 좋아요(...)와 함께 종종 잠실을 찾아오기도 하는 등 빼도박도 못하게 LG팬 확정.잠실 방문하는 날에는 3루 관중석 통로에서 개인 싸인회를 연다(...)
  118. [118] SBS 라디오 PD이자 씨네타운 나인틴의 PD.
  119. [119] 유광잠바를 입고 유튜브 방송을 하기도 했으며 2020시즌부터 종종 트위치에서 LG 중계방송을 한다.
  120. [120] 이형종이 삼진당하는 장면에서 아쉬워하는 모습이 나왔다.
  121. [121] 2013시즌 중 블로그에 '엘지망가'라는 엘지 관련 만화를 그린 적이 있었다...
  122. [122]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LG 팬인 걸 밝히지 못한다고 울분을 토하였다(…). 이후 LG의 명예선수로 위촉되었으며, 구단 관련 행사에 자주 참석하면서 대표 팬으로 알려져 있다.
  123. [123] SNS에 LG 팬 인증 포스트가 많다.
  124. [124] 2013년 페넌트레이스 최종전, 한화가 넥센을 이겼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순간 환호하던 LG 팬으로 중계영상에 잡혔다.
  125. [125] 아나운서 박신영이 아닌 전직 프로게이머 박신영이다.
  126. [126] LG 팬이지만 예외로 삼성의 양준혁이 우상이라는 인터뷰를 한 적 있다.
  127. [127] 응원가 무적의 LG와 서울의 모정을 불렀다.
  128. [128] 우리가 아는 그 투수 맞다. 실제로 LG 트윈스로 오기도 했고, FA협상 당시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LG에서 뛰어보는게 꿈이라고 했다. 이후 협상 결렬되면서 립서비스라는 취급을 받았지만 은퇴 이후 인터뷰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LG를 좋아했다는 얘기를 했던 것으로 보아 단순한 립서비스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는 LG팬은 거의 없다.
  129. [129] LG 트윈스 어린이 팬 출신.
  130. [130]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지?
  131. [131] 방송에서 가끔씩 LG 트윈스 모자를 쓰고 다닌다. 참고로 같은 팀 멤버인 이민우두산 팬이다.
  132. [132] 161014 LG 넥센 PO 중계화면에 잡힌 적이 있다. #
  133. [133] 은퇴 후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야생마 이상훈을 보며 야구의 꿈을 키웠고 자신이 좋아하던 LG에서 뛰게 되었을 때 너무 기뻤다고한다. 그리고 LG에서 시작과 끝을 함께하게 되어 너무 좋았다고 하기도 했다.
  134. [134] 후배 개그맨 김은우 결혼식때 끝나고 야구장가려고 LG트윈스 모자를 쓰고와서 밝혀졌다.
  135. [135] 2008년 공형진과 함께 LG 트윈스 명예선수로 위촉된 적이 있다. 그 뒤에도 LG 팬 인증을 여러 번 하였다.
  136. [136] 트위치 스트리머로 LG 트윈스의 팬일 뿐만 아니라 야구 지식도 많이 있는 것을 더쇼 방송을 통해 알 수 있다. 2020시즌부터 가끔씩 LG 경기를 트위치에서 중계한다.
  137. [137] LG에서 시구를 하다가 정이 가면서 응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138. [138] 별로 관심이 없었다가 드라마에서 자기가 뛰었다는 설정으로 정이가서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139. [139] 라디오에서 LG 트윈스의 팬임을 밝혔다. 두산 팬인 김장훈과 야구 이야기를 할 때면 으르렁거린다고.
  140. [140] 능력자들에서 팬인 것을 밝혔다.
  141. [141] LG에서만 시구를 4번 했다. 2014년 2015년 2017년 2018년
  142. [142] 또한 유튜브 딩고 채널 수고했어 오늘도 모닝콜 미션으로 한 팬과 스크린 야구장에 갔는데 고른팀이 LG였다.홈런치고 좋아한건 덤.
  143. [143] 케이블 TV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 윤종신 편에서 참가자 중에 LG트윈스 유광잠바를 입은 사람이 있었다. MC의 질문에 윤종신은 LG팬 인증. 그러나 90년대부턴 야구를 잘 안 본다고 한다. 그럼 청룡 팬 아닌가? 여담으로 유광잠바를 입고 나온 이 참가자는 최후의 1인으로 선택됐고 실력자였는데 정체는 바로 LG 트윈스의 민족의 아리아를 포함한 여러 선수 응원가를 부른 황석빈씨였다.
  144. [144] 또한 잠시 NC로 갈아탔다고 밝힌 후 한 시구에서 어릴때부터 응원했던 팀이라는 말을 반복하였다.
  145. [145] 나인뮤지스의 전 멤버. 나인뮤지스의 현아, 경리에게 LG TWINS 팬을 전염시켰다. SNS에서 LG 트윈스 팬을 여러번 인증하였다.
  146. [146] 한 강의에서 LG 트윈스 팬이라고 밝혔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oosanbears_new&no=9993048&page=1
  147. [147] 하지만 그의 직장 아주대병원이 있는 수원시kt wiz가 창단하면서 kt로 갈아탔다. #
  148. [148] 학생시절 이병규를 보며 LG팬이 되었고 2001년에 LG 트윈스에 지명이 된 이후 2019년까지 19년간 원 클럽 맨으로 선수생활을 마쳤고 아름다운 은퇴식을 치루었다. 뿐만 아니라 아들도 야구를 시킬 것이며 만약 아들이 LG가 아닌 다른 팀으로 지명될 경우엔 야구 그만두라고 말할 것이라했다.(...)
  149. [149] 마찬가지로 LG의 명예선수.
  150. [150] 온 가족이 LG의 팬이라고 한다.
  151. [151]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사직구장 편에서 본인이 LG 트윈스의 팬이라고 밝힌 바 있다.
  152. [152]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의 축구선수 그 이승우 맞다. 인터뷰에서 박용택과 이병규의 팬이라고 밝혔다.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807603&ref=mobile
  153. [153] MBC 청룡 어린이합창단 출신이라고 하며 이때 인연이 돼서 지금도 LG 트윈스 열혈 팬이라고 한다. 백인천이종도를 아저씨라고 부를 정도.
  154. [154] 황정음과 결혼한 전직 프로골프선수.
  155. [155] 더그아웃 매거진의 인터뷰에서 집이 잠실 근처라서 자연스럽게 LG 트윈스의 팬이 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156. [156] LG 트윈스의 오랜 팬으로 알려져 있다.
  157. [157] EBS와 스카이에듀에서 사회탐구를 가르치는 강사이다. 그녀의 꿈은 한 때 최초의 여자 야구 해설자였다고 한다. 그녀의 블로그에는 LG 트윈스와 관련된 글이 많다. 더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158. [158] 직접 피팅모델도 하는 유명 쇼핑몰CEO.연간권자다.
  159. [159] 팬싸에서 두산팬과의 대화에서 LG팬이라고 밝혔다.
  160. [160] 서울출신으로 중계중 MBC청룡 어린이회원이었다고 밝혀.
  161. [161] 아버지가 쥐갤을 하신다.
  162. [162] 락밴드 와이낫의 보컬이자 LG 트윈스 팬 팟캐스트 "야잘잘"의 호스트.
  163. [163] 슛포러브 경희대 구너라 알려진 그 분 맞다. LG 트윈스 공식 계정을 팔로우 중이고, 2017년 11월 26일, 2018년 1월 1일자 게시물 댓글에서 트윈스 팬임을 인증하였다.
  164. [164] SNS에서 오랜 LG팬임을 증명했다.
  165. [165] 과 같이 LG팬이다.
  166. [166] 아이돌 그룹 iKON의 멤버.
  167. [167] 게시물에 엘지 유니폼과 엘지 응원도구들을 깔아놓고 사진을 찍어 인증하였다.이동현은퇴식날 인스타 스토리를 올렸다.
  168. [168] 서울 출신으로 중계 중 MBC 청룡 어린이 회원이었다고 밝혔다.
  169. [169] 다만 결혼은 두산그룹과 했다.(...)
  170. [170] LG의 응원가를 작곡할 정도로 열성 팬이다.
  171. [171] 다른 팀에서 여러 번 시구 제의가 들어왔지만 LG가 아니라서 거절했다고 한다.
  172. [172] 촬영 중에도 DMB로 경기를 시청할 정도로 팬이다.
  173. [173] 아프리카TV BJ 당시 LG 트윈스 편파중계방송을 하였다.
  174. [174] 그런데 롯데 자이언츠 민병헌과 사촌 지간이라고 한다.
  175. [175] 자타공인 LG 광팬 중 하나여서 이로 인해 생긴 별명이 쥐훈. 다만 2013년 말 이후로는 SK에 보다 치중한 모습을 보여서 솩훈(…)이라 까이고 있다. 하지만 이만수 체제 붕괴 이후로는 그냥 구색 취급. 오히려 한화 쪽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칡훈
  176. [176] 이 분은 아예 LG 트윈스의 캐스터로 재직했었다. 어릴 때부터 엄청난 LG팬이였다고 한다.
  177. [177] 마찬가지로 LG팬인 랩퍼아웃사이더와 함께 '무적의 LG'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178. [178] 치고 달려라를 부른 락 밴드. 이 밴드 노래 중 MBC 청룡을 추억하는 동명의 노래가 있다.
  179. [179] 어린 시절 럭키금성 어린이 회원이었다고 한다.
  180. [180] 시사회 때 한 두산 팬이 "두산 경기에 시구하러 오세요!"라고 요청하자 저는 서울팀에서만 시구할겁니다라고 단칼에 거절한 적이 있다. 당연히 쥐갤에서는 찬양받았다 아직은 시구를 한 적이 없고, LG가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면 꼭 가겠다고 한다. 참고로 이 항목은 기분이 나빴던 한 두산팬이 'LG에서만 시구할겁니다'라고 내용을 거짓으로 바꾼 적이 있으나 실제로는 서울팀이라고 발언했다.
  181. [181] 특집 방송 때 커밍아웃
  182. [182] 전남 여수 출생이다 보니 같은 전라도를 연고로 하는 해태/KIA 역시 응원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MBC 시절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LG 그룹과도 친분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식객 등의 작품을 보면 LG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시구는 두산 경기에서 했다(...).
  183. [183] 2013년 LG 트윈스 명예선수로 위촉된 적 있다.
  184. [184] 최근에는 본인 유튜브 채널에 직접 LG 선수 응원가를 제작한 것을 볼 수도 있다.
  185. [185] 유자식 상팔자에서 조갑경과 자녀들이 밝히길 LG가 졌거나 지고 있으면 가족들이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가족들에게 화풀이한다고 한다. 가정불화가 10년이나 갔을 듯 지고 있을 때는 말 걸지 마
  186. [186] 남편과 함께 가끔 잠실야구장을 찾는다.
  187. [187] 구단 창단 당시의 그룹 회장이었던 구자경 명예회장을 비롯해 창단 당시 구단주였던 구본무 회장과 그의 동생인 구본준 前 구단주 등이 열혈 야빠로 유명하다. 심지어 구자경 명예회장의 차남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KBO 전 총재이기도 하다.
  188. [188] OSEN의 LG 트윈스 전담기자로, 2014년 7월경 LG를 중심으로 우주의 기운이 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쥐동설라는 역대급 기사를 썼다. 타어강과 다르게 실제로 우주의 기운인지 결국 4강에 가서 성지 취급을 받는 중이다. 현재는 OSEN에서 기자직을 그만두고 휴식을 갖다가 스포츠서울로 이직하였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구단으로는 뉴욕 메츠, 뉴욕 닉스, 뉴욕 자이언츠가 있다.
  189. [189] 프로 원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잠실로 찾아와서 MBC 청룡과 LG 트윈스를 응원하셨다. 당시 LG 트윈스 선수였던 김재박은 박기홍 옹이 보이지 않으면 반드시 경기가 끝난 후 박기홍 옹의 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봤다.
  190. [190] 흔히 LG 팬들 사이에서 달마 아저씨, 달마아재라고 불리던 열성팬이다. 생전에 박용택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는데 이 분이 세상을 떠나자 박제찬 씨의 빈소에 박용택이 직접 조문하기도 했다. 감동택 의리택
  191. [191] 2009년 주니치로 이적한 이병규 응원가를 물려받았다가 2010년 이병규의 복귀로 지금의 응원가가 나왔다.
  192. [192] 2012년 이택근의 FA 이적 후에는 윤요섭, 윤요섭의 이적 후에는 이천웅에게 넘어갔다.
  193. [193] 그 이전에 2010시즌, 오카모토 신야가 시즌 초에 좋은 모습을 보일 때 잠시 사용하기도 했고, 2013시즌엔 팀 응원가로 쓰기도 했었다.
  194. [194] 동요같이 유치하다는 지적이 많다.
  195. [195] 서울 관련 응원가들은 LG의 마지막남은 자존심이라고 불릴 만한 곡들이기에 팬들의 불만이 더욱 컸다.
  196. [196] LG 트윈스 갤러리, 아이 러브 트윈스가 서로 간에 거의 의견이 안 맞는 커뮤니티인 것을 감안하면 두 커뮤니티에서 위아더월드로 까인 최동훈의 응원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알 수 있다.
  197. [197] 얼굴이 잘 생겨서 얼빠들이 많다. 그래서 오렌지석 206블록에가면 얼빠가 많다는걸 알 수 있으며 이런 이유때문에 오렌지석에 가기 싫어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198. [198] 실제로 고작 1점 냈는데 아파트나 여행을 떠나요를 틀어서 야구장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적이 있다.
  199. [199] 서로의 홈구장이 걸어서 3분거리다.
  200. [200] 서울 SK는 2017년까지 이어지던 FA 먹튀들에 질려버린 나머지 2018년 안영준을 비롯한 드래프트로 뽑은 젊은 선수들로 우승했다. 유일한 FA선수 정재홍은 정규시즌 주전 가드 김선형이 1년 내내 부상으로 고생하며 백업역할을 하며 팀에 우승에 일조했다.
  201. [201] 방성윤은 은퇴 이후의 일생이 흑역사에 가깝고 김재현은 2004년 FA 체결 과정에서 각서 파동을 벌이며 LG 구단과 크게 갈등했다.
  202. [202] 사실 2017-18 시즌 SK는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동반 역사가 드디어 끊어지나 했지만, 겨울에 완전히 망했다(…).
  203. [203] 2018-19시즌 2018년엔 완전히 꼴아박던 SK는 2019년이 되자마자 갑자기 상승세를 타면서 뒷북이긴 하지만 20승까지는 찍었고, LG는 2019년 투타가 잘 맞아들어가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또한 SK나이츠도 2019년에 시작한 시즌에서 1위를 질주하고 있다.
  204. [204] LG는 어린이날 더비 제발 그만하자고 팬들이 구단에게 애원하고 있는 상황이고 SK는 홈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더비에서 4년 연속 삼성에게 졌다.
  205. [205] 끔찍했던 이 사고은 한국시리즈 기간 중 발생한 사고였다.
  206. [206] 한일 월드컵이 열린 후 다시 3번의 월드컵이 또 열렸다
  207. [207] 쌍방울은 김기태가 홈런왕을 차지하기는 했다.
  208. [208] 물론 구장이 큰 것도 있지만 구단 자체가 홈런과 담쌓은 팀컬러인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같은 구장을 쓰는 두산은 약물 전적이 있는 선수를 제외하더라도 이나 잠실 홈런왕을 배출했고 선수 개인 기록으로도, 팀 통산 홈런으로도 LG에 비해 상당히 우위에 있다.
  209. [209] 2013년에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지만 두산에게 지는 바람에 순위에서 밀려 2015년 개막전을 KIA 홈구장에서 치뤄야 했다. 거기다... 루징시리즈... OTL 홈에서 치렀다면 당하지 않았을 역전 끝내기 패배도 있었으니 이게 어쩌면 2015시즌을 시작부터 꼬이게 만든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210. [210] 따라서 2007년 이후 9년만에, 자력으로는 2003년 이후 13년만인 2016년 시즌에 잠실 홈개막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는 2014시즌에 LG가 두산의 탈락 확정을 직접 만들어내고 LG는 4강에 합류하면서 성사가 된 것이다.
  211. [211] 2018년 KBO 리그 개막전은 기존 방식과 다르게 2년 전 상위팀의 경우 각 팀의 홈구장에서 개막을 하지만, 상대팀의 경우는 흥행을 고려해 KBO 측에서 임의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2018년 개막전은 LG가 원수 같은 NC의 홈구장에서 치르게 되었다. 어부지리로 홈에서 개막전을 치르는 6위팀 SK...
  212. [212] 이 외에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가 남의 집에서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13. [213] 사실 이것은 2015년까지(실제 규정의 적용은 2014년까지) 있었던 잠실 중립 경기 규정이 가장 큰 이유다. LG와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거나 한국시리즈 진출팀 중 어느 한 팀이라도 홈구장의 수용인원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5~7차전을 무조건 잠실에서 했기 때문에 잠실에서 한국시리즈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립구장 경기문서 참조.
  214. [214] 이 규정 때문에 의외로 자신들의 홈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LG나 두산을 제외한 다른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자신들의 홈에서 우승하려면 정규리그 우승팀이 중립경기가 적용되지 않는 매치업에서 최소 6차전을 가거나(1998년과 2000년의 현대, 2002년과 2013년의 삼성, 2007년의 SK), PO를 거치고 올라와서 4연승으로 끝내거나(1987년의 해태), 아니면 PO를 거친 팀이 중립경기가 적용되지 않는 매치업에서 5차전 이내에 끝내야만 하는데, 모두 확률상 낮은 일이기 때문. 실제로 LG를 제외한 7개 구단 모두 우승컵을 가장 많이 들어올린 구장은 잠실이었다.
  215. [215] 김재박은 본인 잘못도 매우 크고 김재현은 이제 팀과의 인연이 사실상 끊어졌다고 봐야 한다.
  216. [216]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원년 개막전 선발투수였다. 즉, KBO 리그의 역사가 그의 손으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217. [217] 어찌보면 7번보다 최악의 번호인데 승부조작범과 사생활이 심각했던 투수의 번호였다.
  218. [218] 신계석이 2시즌 사용한 이후에 김용수가 사용했다.
  219. [219] 오지환이 달았다가 10번으로 옮겼다. 데릭 지터의 2번도 유명해서 유격수 번호로 최근팬들은 인식하고 있고 김동수의 통수사건도 있어서 포수 번호로는 안 유명하다. LG는 포수에게 27번, 42번(심재원)을 주고 있다.
  220. [220] 보통 투수의 번호, 지금은 임찬규의 등번호다.
  221. [221] 심지어 뒤에 언급한 3명은 모두 1994년 입단 동기이다.
  222. [222] 2017년 9월 9일의 승리는 이 시즌 홈경기 두산전 유일한 승리였으며, 두산에게 다시 승리하기 까지 이 날 이후로 1년이 넘게 걸렸다.
  223. [223] 마지막으로 10승 투수 배출에 실패한 시즌은 MBC 청룡 말년인 1989년이다. 그리고 그 시즌이 MBC-LG가 유일하게 10승 투수를 배출하지 못한 유일한 시즌이다. 이 시즌의 최다승은 김기범이용철이 7승을 하는데 그쳤으며, 팀 성적도 반 경기차로 간신히 꼴찌를 면할 정도로 당연히 좋지 못했다.
  224. [224] 두산은 우승했던 01년과 7위를 기록한 03년 10승 투수 배출에 실패했고, 키움은 꼴찌한 11년에 10승 투수가 없었다. SK도 02년과 06년에 10승 투수가 없었으며 KIA는 05, 07, 13년에 10승이 없었다. 삼성은 96년, 18-19년 10승 투수 배출 실패, 롯데는 02-04, 19년, NC는 18년, 한화는 12-14년과 16년, kt는 16-18년 10승 투수가 없었다.
  225. [225] 원래 이 부분 최다 기록은 빙그레-한화의 26년 기록이었다. 창단 원년이던 1986년부터 2011년까지 꼬박꼬박 10승 투수 한 명씩은 적어도 나왔다.
  226. [226] 그런데 트윈스란 팀명 때문에 미네소타 트윈스팬들의 유입도 생겨났다. 더우기 미네소타 역시 1991년 월드시리즈 우승이 마지막이라 어떻게 보면 동병상련이기도 하다.
  227. [227] 서울 이랜드 FC는 창단 전이었으며 FC 서울의 모기업인 GS가 범 LG가이다.
  228. [228]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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