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34

Т-34-85 (Объект 155)
T-34-85 (Object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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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85

개발 및 생산

개발기관

제112호 공장(레드 소르모포 공장)

개발연도

1943~44년

생산기관

생산연도

1938~58년

생산량

  • 34,914대(소련)
  • 4,665대(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운용연도

1944~현재

운용국가

제원

전장

6.1m(차체) // 8.1m(전체)

전폭

3m

전고

2.7m

중량

32t

탑승인원

5명(전차장, 포수, 조종수, 탄약수, 기총사수)

공격력

주무장

54.6구경장 85mm ZiS-S-53 전차포 (56~60발)

조준장치

  • TSh-16(포수조준경)
  • PTK-5(포수잠망경)

부앙각

−5 // +22°

회전각

360°

부무장

DT 동축기관총 2정 (2,898발)

기동력

엔진

ChTZ V-2-34 액랭식 디젤엔진

최고출력 // 회전 수

500hp(370kW) // 1,800rpm

출력비

18.9hp/t(14.kW/t)

현수장치

크리스티 현가장치

무한궤도 폭 // 매수

500mm // 각 72매

최고속력

55km/h(도로) // 25km/h(야지)

항속거리

350km(도로) // 220km(야지)

접지길이 // 접지압력

m // 0.83kg/cm²

초호능력

3.4m

초월능력

0.75m

등판능력

36°

도하능력

1.3m

방어력

장갑형식

주조장갑, 균질압연장갑

차체

  • 45mm//60°(전면상부)
  • 45mm//60°(전면하부)
  • 45mm//40°(측면상부)
  • 45mm(측면)
  • 45mm//48°(후면상부)
  • 45mm//45°(후면하부)
  • 20mm(상하부)

포탑

  • 40~90mm(전면)
  • 75mm//20°(측면)
  • 52mm//10°(후면)
  • 15~20mm(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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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개발
1.2. 표기법
2. 생산 공장
2.1. 부품
2.2. 전차
3. 양산형
3.1. T-34-76
4. 연도별 형식
4.1. 1940년형
4.2. 1941년형
4.3. 1942년형
4.4. 1943년형
5. 개량형
5.2.1. 1943년형 (D-5T 장착형)
5.2.2. 1944년형
6. 파생형
6.1. T-34-100
7. 현대화 개량형
7.1. T-34-85M
7.2. T-34-100
7.3. T-34-122
8. 생산
10. 현재
11. 평가
11.1. 장점
11.2. 단점
11.3. 종합
12. 파생형
13. 독일
14. 대중매체
14.1. 영화, 드라마
14.2. 애니메이션, 웹툰
14.3. 게임
14.4. 모형화
15. 둘러보기

1. 개요

저들의 T-34 소련제 전차는 견고한 무쇠덩어리로써, 국군공포의 도가니로 밀어넣었고...

나레이션, 야인시대 81화에서 [2]

소련러시아의 1세대 전차[3]를 대표하는 전차이자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소련에서 생산되어 기갑부대의 주력으로 운용된 중형전차다. 소련이 만든 걸작 전차로 알려졌으며, 성능도 준수하지만 트랙터 공장이나 기관차 공장에서 찍어낼 정도로 생산하기 쉬운 구조 덕분에 많은 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질적으로 월등한[4] 독일 기갑 전력에 비해서 열세였던 소련의 기갑전력을 채워주었다. 이후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의 전차로 활용되기도 했다.

소련군이 붙인 별명은 로지나(Родина:조국, 모국)이라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쓰인 말이 아니었으므로 현지에서 찾을 때는 그냥 T-34[5]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1.1. 개발

T-34는 BT 전차의 후속 전차로 개발되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T-26, BT 전차는 그럭저럭 쓸만했고 화력도 괜찮았다[6]. 하지만 장갑이 너무 약해서 37mm 대전차포에도 속절없이 뚫렸고, 더 좋은 성능의 전차를 가질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 과정에서 A-20과 A-32가 경합했는데, A-20은 기존의 45mm 구경 포에 20mm 경사장갑이었고, A-32는 76mm 포에 30mm 두께 경사장갑을 발랐다. 이 경합에서 A-32가 승리했고, A-32는 우리가 아는 T-34의 기원이 된다.

하지만 T-34가 채용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1940년 T-34 전차의 채용이 사실상 확정되어 제183호 공장에서 500대,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100대를 생산하기로 계획되었던 차에 독일로부터 3호 전차 2대가 수입되는 난항을 겪게 되었다. 당시 소음에 있어서는 97식 전차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요란하기 그지없었던 T-34에 비해서 비교적으로 소음이 적은 3호 전차는 소련 기술진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안정된 서스펜션과 넓은 포탑 내부 공간, 그리고 전차병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차내 인터폰 및 우수한 성능의 무전기 등 T-34가 3호 전차에 비해 유리한 것은 공격력과 방어력 뿐이었다. 하지만 당장 T-34가 못 쓸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포병 병과원수 그리고리 쿨리크(Григо́рий Кули́к, Grigory Kulik)는 이를 빌미로 계속 시비를 걸면서 T-34의 설계 및 생산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 한다.

그리고리 쿨리크

쿨리크는 1890년생으로 스탈린의 최측근으로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데다가 보수적인 육군 장성이었다. 게다가 코시킨 기사의 상관인 리하초프가 자신의 라이벌이라는 이유까지 있었으니 어떻게든 T-34의 채용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 'T-34에 탑재될 76.2mm 주포가 너무 약하니 107mm 주포를 탑재하라','이런 전차보다는 BT 계열의 쾌속전차를 생산하는 것이 낫다!'는 식의 태클을 시시건건 걸어왔던 것이다. 덕분에 레닌그라드 전차공장 지대에서 수석 설계자로 근무하다가 쾌속전차를 개발하던 하리코프 기관차 공장으로 전속된 후 이 곳에서 설계 중이던 신형 쾌속전차 A-20을 기초로 보다 강력한 76.2mm 주포를 탑재하고, 장갑을 강화하는 한편 광폭 궤도를 적용시켜 유명한 T-34를 만들어서 T-34의 설계자이자 아버지로 불리는 코시킨 기사는 과로와 쿨리크의 방해로 인해 결국 1940년 9월 26일,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 이후 모로조프가 수석 기술자가 되어 설계는 재수정되었지만 쿨리크는 이 때까지도 계속 딴지를 걸어 T-34M(A-43)의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기존 T-34의 생산을 중지할 것을 제의하는 판국이었다.[7]

결국 쿨리크는 딴지 및 몇몇 악재로 인해 1940년 제183 공장과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생산될 약 600대의 T-34/76은 겨우 117대만이 생산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쿨리크는 T-34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만행을 저질렀는데, 대표적인 것이 실탄을 낭비한다고 보병의 기관단총 도입을 막았고, 지뢰도 쓸모없다고 하다가 결국 바르바로사 작전 때 소련군의 대패를 초래했다. 후에 육군 소장으로 강등된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차리다가 전후에 전화로 스탈린에 대한 험담을 하다가 도청에 걸려서 반역죄로 총살당했으니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무덤을 판 대가를 치루었으나, 쿨리크가 저지른 만행은 바르바로사 작전뿐 아니라 독소전 초반과 중반기에 소련군의 막대한 피해를 불러오는 큰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쿨리크가 그렇게 밀던 A-43의 개발은 독소전쟁이 발발된 뒤 T-34의 생산라인에 차질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폐기된다.

1.2. 표기법

흔히 T-34/76, T-34/85 등의 주포별 분류법은 독일에서 사용한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 대신 - 하이픈을 사용하여 T-34-85와 같이 표기했다. 독일은 T-34-76을 세분화해서 분류하였으나, T-34-85 1943년형(D-5T 장착형)과 1944년형(ZiS-S-53 장착형)은 동일하다고 여겼는지 분류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본국 소련에서는 형태에 따라서 특별히 분류하지 않았다. 서방에서도 독일 자료를 의존했으나, 1960년대부터 동구권 국가에서 발행된 책자를 입수한 서방에서는 T-34에 대해서 비교적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2. 생산 공장

비교적 타국 전차에 비해 생산라인이 간단해 트랙터 공장부터 기관차 공장까지 나름 인지도 있는 곳에서 생산되었다. KhPZ와 UTZ의 공장번호는 183으로 공유했다.

2.1. 부품

  • 제9호 야포 공장
당대 소련의 모든 화포의 생산을 책임지는 공장으로 생산된 화포를 필요에 따라 각 지역 공장에 조달했다.
  • 야로슬라블 타이어 공장
충격 흡수를 위해 보기륜에 필요한 고무 타이어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1942년 겨울부터 43년초 봄까지 야로슬라블 강이 얼면서 조달에 차질을 빚자 철제 보기륜을 사용했어야 했다.
  • 무전기 생산 공장
초기 항공기용 무전기를 개수한 무전기를 생산하여 T-34 생산 공장에 납품하였으나, 공장이 소개되면서 한 동안 무전기도 없이 생산되었다. 전쟁 중반기에 공장이 다시 재가동 되면서 영국에 랜드리스 받은 부품으로 신형 무전기를 생산해 조달했다.

2.2. 전차

  • 제183호 스탈린 전차 공장
니즈니 타길에 위치한 UTZ와 1941년 말 이곳으로 피난온 KhPZ가 병합되어 1941년 말부터 1944년 초까지 1만 5천여 대의 T-34-76을 생산하고, 1944년 중반부터 1951년 초까지 3만여 대의 T-34-85를 생산했다.
  • 코민테른 기관차 공장(KhPZ)
나름 T-34 프로젝트를 진행한 본 설계국과 T-34를 최초로 생산한 공장이었으나, 하리고프 공방전의 여파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자, 1941년 9월 12일부터 니즈니 타길의 우랄 열차공장으로 장비를 이전하기 시작했다.
KhPZ가 이전하기 전인 1941년까지만 해도 기관차를 생산하던 공장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동안 T-34 계열 전차를 가장 많이 생산한 곳으로 종전 후에도 T-34-85가 소수 생산되었고 이곳이 바로 러시아의 최대 기업 우랄바곤자보드의 전신이다. 아직도 전차와 열차, 트랙터 등을 주력으로 생산한다.
  • 우랄 공장(UZTM)
우랄마쉬의 전신으로 1942~43년 동안 6천여 대의 T-34-76을 생산했다.
  •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STZ)
스탈린그라드에 위치한 트랙터 공장으로 1941~42년 사이 3천 8백 여 대의 T-34-76을 생산했다. 그러나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여파로 1942년 10월 말 공장 노동자들에게 최종 탈출 명령이 내려지면서 전차 생산은 중지되었다. 공장 설비 대다수는 폭격으로 공장 건물 잔해에 매몰되어 설비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었다. 종전 후 복구되었으나, 더 이상의 전차 생산은 없었다. 볼고그라드 트랙터 공장으로 유지되다가 부도가 나서 2004년 파산했다.
1941~43년 사이 T-34-76을 생산했다. 1943년부터는 이전해 온 레닌그라드 키로프 공장(LKZ)와 병합되어 중전차만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경되었다.
  • 제112호 전차 공장

정식 명칭은 니즈니 노브고로드 기계 공장으로 흔히 레드 소르모포 작업장으로 알려져 있다. T-34-76을 1941~44년 사이 6천 3백 여 대를 생산했으며, T-34-85의 포탑을 설계하고 2만 여 대를 생산하는 등 주요 공장 역할을 전담하다가 종전 후 공장의 주력이던 조선소와 열차 설비 재가동으로 설계국과 공장은 문을 닫았다.

  • 제174 전차 공장
옴스크트란스마쉬의 전신으로 우랄열차공장과 함께 니즈니 타길에 위치한 기계 공장이었다.

3. 양산형

크게 주포에 구경에 따라 분류한다. 76mm L-11 또는 F-34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76, 57mm ZiS-2 또는 ZiS-4M 대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57,  85mm D-5T 또는 ZiS-S-53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85로 분류된다. 이 분류법은 독일식 분류법으로 정작 소련에서는 특별히 형태를 구분하지 않았다.

3.1. T-34-76

T-34-76 1940년형[8]

T-34-76 1941년형[9]

T-34-76 1942년형[10]

화염방사 전차로 개조된 T-34-76(OT-34)

탱크 바이애슬론 대회 시작 전 나온 러시아 육군 소속 퍼레이드용 T-34-76

T-34는 스페인 내전에서 기존의 고속/경장갑 중심의 전차들이 37mm PaK 36같은 견인식 소구경 대전차포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탄생한 중전차이다. 동맹국 생산을 포함하여 1940년에서 1948년까지 약 8만4천여대가 생산된 것으로 추산되어 대전중 생산된 전차로서는 최다 숫자를 자랑한다.

초기에는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대구경인 76.2mm포를 주포로 장비하였으며, 미국크리스티 현가장치는 경쾌한 기동력을, 넓은 캐터필러는 극한지에서의 기동력을 보장하였다. 차체와 포탑의 전/측면 장갑부에 크게 60도급 피탄경사설계를 도입하였다.

독소전 극초기에는 주력 대전차포의 구경이 대부분 37mm에 그쳤기에 전면에서 T-34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없었고, 이는 방심하던 독일군에게 큰 충격을 불러왔다. 기존에 독일의 주력 대전차포인 37mm Pak 36은 T-34의 장갑앞에서 무력했기 때문이며 결국 PaK 36이 "도어 노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다. 물론 105mm 야포나 8,8cm FlaK를 사용하면 격파할 수 있었으나 그 이외에는 대응 수단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후 독일군은 5cm PaK 38과 이를 선회포탑에 장착한 3호 전차 J형을 투입해서 T-34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형식을 보통 T-34-76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생산 시기에 따라 꾸준히 개량이 가해졌기에 주포가 같은 T-34-76이라고 하더라도 1943년형처럼 연도에 따라 별도로 구분하는게 옳다.

경쾌한 기동성과 상당한 화력, BT 고속전차로부터 물려받은 경사장갑 설계로 당시 3/4호 전차가 주력이던 독일군에게 꽤 충격을 주었고, 이후 독일군은 T-34의 장점을 적극 도입한 5호 전차 판터를 새 주력으로 개발하는 등 기갑전력 개선에 박차를 가하지만 이미 서서히 수세에 돌입한 상황에서 독일의 국력은 소련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중기에 유럽 대부분의 자원과 공업력을 장악했고 잘만 운용했다면 풍족한 자원과 함께 엄청난 공업생산력을 가질 수도 있었으나 전통적인 장인 위주의 공업 시스템 때문에 품질은 매우 우수한 반면 생산성은 낮았는데 독일에 점령된 지역의 엔지니어들과 공장근로자들은 국가를 점령하고 자신들을 압제하는 독일에 저항해 생산성 향상은 커녕 마지못해 만드는 물량의 기본적인 품질도 저하시켰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독일은 1941년 즈음엔 이미 총력전 체제에 들어섰으나, 기업들의 낭비와 비효율적인 전시경제체제의 운영으로 인해 공업 효율이 극도로 나빴다. 프리츠 토트 - 알베르트 슈페어 등의 생산개선을 거쳐 독일의 생산력은 1944년 즈음에는 소련과 맞먹는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이미 전세의 주도권이 뒤집힌 상태였다.

반면 소련은 독소전 초기에 주요 공업 지대를 죄다 빼앗겼고 대전 중기까지 미국이나 영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했음에도[11] 빠른 총력전 돌입과 저품질 대량 생산에 의해 여전히 독일에 뒤지지 않는 생산력을 발휘했다. 초기에 소련군 병기의 품질은 독일에 비해 훨씬 떨어졌지만 공장의 규모가 커지고 갈수록 경험이 쌓이면서 생산 속도는 더 빨라지고 품질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고로 전쟁 초반에는 품질이 높고 하나 하나가 강한 병기를 가진 독일군이 매우 우세했으나 숙련공의 느린 양성 속도 때문에 생산량도 답보 상태였고, 전쟁에서 밀리면서 갈수록 연합군의 집요한 폭격으로 공업력과 자원줄도 떨어져 가니 뒤늦게 총력전에 돌입해서 비숙련공을 돌리기 시작해도 이들이 쓸 여유 자원도 공업력도 부족해진 독일에 비해 경험과 규모에 의해 갈수록 더 많이, 쓸만한 품질의 병기가 튀어나오는대다 랜드리스에 의한 추가적인 자원과 영토 해방에 의한 공업력과 인력까지 추가적으로 더 받게된 소련의 생산시스템은 대전후기 생산력차이를 엄청나게 벌려버렸다.

독소전쟁 발발 시점에서 소련군이 배치한 T-34는 960대(생산은 1,220대)였고 이는 독일군이 동원한 전차 3,000여대 중에 3호 전차4호 전차의 수량이 약 2천대 정도였음을 감안해 보면 그렇게까지 모자르지는 않을 정도의 숫자였다. 그러나 막 새로이 배치된 신형 전차다보니 제대로 운용할 줄 아는 승무원 및 정비 인력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대숙청으로 인해 지휘체계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한데다 예비 부품과 탄약비축량마저도 극히 부족해[12] 거의 힘을 쓸 수 없었다.[13] 심지어 한 소련 육군 전차병은 '파시스트 놈들 땅크는 펄펄 날아다니는데 이 쌍놈의 T-34는 조금만 달려도 퍼져버린다. 변속기도 독일 놈들이 더 좋았고, 우리 건 엿이나 바꿔먹으면 딱 맞는다.'라며 비판을 했다.(당시 소련 육군 전차 승무원들이 스펙상으론 T-34보다 못한 영국이나 미국제 전차를 좋아했다는건 이러한 경향이 크다. T-34보다 기계적 신뢰성이 훨씬 뛰어나 운용하기 편했고 상대적으로 뒤떨어져보이는 장갑방어력이나 화력등은 본가인 영국 육군이나 미 육군에겐 불만이었지만 해당전차의 기대치가 그 전차의 체급에 맞는 수준이었던 소련 육군 입장에선 그리 큰 불만요소가 되지 못했다. 사실 일선 장병들은 T-34가 한 방 맞고 터져나가는걸 보고 매우 불만을 표했으나, 알다시피 숙청의 위협 때문에 찍소리도 못했다. 영/미군에겐 셔먼전차가 독일군의 판터나 티거에게 털려나가는게 큰 문제가 되지만 소련 육군 입장에선 셔먼이 판터나 티거를 상대못하는게 당연한 거라서 판터나 티거에겐 일단은 더 크고 자체 실험상 더 강한 85mm포가 달린 T-34들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소련도 독일처럼 중전차를 가지고 있었지만 소련의 중전차는 독일의 중전차와 다르게 대전차전 용도보다는 전선 돌파나 보병 지원용으로 목적이 더 크며 교리상 대전차전은 T-34와 SU-85/100이 우선시되어 투입되었고 IS-2와 ISU-152는 필요하다면 대전차전에 투입되는 정도였다.)

이는 전훈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전투가 이어진 스페인 내전에서 운용된 소련제 전차는 본질적으로 장갑이 얇은 경전차인데다가, 호위 보병없이 단독으로 운영되는 대 실수를 저지르는 등의 삽질이 겹쳐져서 그다지 활약을 못하고 보병에 큰 피해를 입었는데, 공화국군의 군사고문으로 갔던 소련 육군 장교들이 이것을 보고 한 목소리로 "대규모 전차운용은 별로 효과없고, 역시 전차는 보병에 딸린 보조역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소련 육군은 스페인 내전 이후 사단급 이상의 기갑부대를 모두 해체하고 기껏해야 보병사단에 부족한 여단이나 연대급으로만 기갑부대를 운용했다.

그러다가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에서 대규모 전차운용으로 성공을 거두고 겨울전쟁에서 소련이 참패하면서 다시 예전대로 전차부대를 대규모로 편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독소전쟁이 발발하고 신편되거나 재편중이었던 소련 육군 기갑부대는 아직 제대로 전투를 벌일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실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모스크바 방어전 이후에는 생산량도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고 소련 육군 지휘관들이 전차의 집중운용 개념을 어느정도 습득하고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서 1944년부터는 본격적인 개량형인 T-34/85에게 바통을 넘기고, 남은 T-34/76은 새로 보충되지 않고 전장에서 격파될 때까지 사용하다가 박살나면 T-34/85가 보충되고, 박살난 전차는 쓸만한 부품은 다 뜯긴 후 방치되거나 고철로 변했다. 그래서 의외로 생산량에 비해 21세기 시점까지 남아있는 전차수량이 매우 적고 대부분은 박물관에 전시된 상태다.

소련 육군의 드미트리 표도르비치 라브리넨코(Дмитрий Фёдорович Лавриненко, Dmitry Fyodorovich Lavrinenko) 근위상위는 T-34/76을 타고 두달 반동안 56대의 독일 전차를 격파했다(1941년 모스크바 전투 중 전사). 연합국 최고의 탱크 에이스임에도 서방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소련에서도 묻혀있다가 소련이 망하기 직전인 1990년에야 소련 영웅훈장을 받았다.

4. 연도별 형식

흔히 T-34가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것과 다르게 생산연도 및 공장에 따라 제각각 전차 모습이 달랐다. 대표적으로 포탑이나 포방패, 보기륜 모양 등을 달리했다.

육각형 포탑의 경우 기존 T-34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성능이 향상된 경우지만, 철제 보기륜 마냥 성능이 이전 생산형보다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경우가 존재했다. 이 경우 고무 타이어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고, 상황이 워낙 급박한 상태에서 생산을 지속해야 했기에 발생한 문제다.

4.1. 1940년형

소련 육군

T-34/76 1940년형 (L-11 장착형)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근방 베르흐냐야피시마 박물관에 전시중인 T-34 초기형. 주석에 "현재까지 살아남은 1940년형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는 틀린 말. 심지어 밑의 T-34-57도 이 차량 바로 뒤에 1량이 생존 전시되어있다.

개발 및 생산

개발 설계국

하리코프 설계국

생산공장

코민테른 기관차 공장(KhPZ)

개발연도

1939~40년

생산연도

1940년

운용연도

1940~41년

생산댓수

117대[14]

운용국가

소련

제원

전장

5.92 / 5.98m (차체 / 포신 포함)

전폭

3m

전고

2.41m

전투 중량

29.2t

탑승 인원

4명 (전차장 겸 포수, 조종수, 탄약수, 기총사수[15])

공격력

주무장

30.5구경장 76.2mm L-11 강선포 1문 (77발)

주포조준장치

상하 부각

−~+°

좌우 회전각

360°

부무장

7.62mm DT 동축기관총 2정 (2,898발)

승무원 무장

기동력

변속기

수동 5단 변속기

엔진

V-2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 엔진

최고 출력

500ps

출력비

ps/t

현가 장치

크리스티 현가장치

최고 속도

45 / 15km/h (평지 / 야지 주행)

항속 거리

300 / 200km (평지 / 야지 주행 시)

접지길이, 접지압력

m, kg/cm²

초호능력

m

초월능력

m

등판능력

°

잠수도하능력

/ m (기본 / 잠수도하장비 장착 시)

방어력

장갑

압연 균질 강철 장갑 및 주조 압연 장갑

장갑 두께 / 경사각도

차체 전면 상단: 45mm / 60°

차체 전면 하단: 45mm / 53°

차체 측면 상단: 45mm / 40°

차체 측면 하단: 45mm / 0°

차체 후면 상단: 40mm / 47°

차체 후면 하단: 42mm / 45°

차체 상부: 16 ~ 20mm

차체 하부: 13 ~ 20mm

포방패: 45mm

포탑 전면: 45mm / 30°

포탑 측면: 45mm / 30°

포탑 후면: 45mm / 30°

포탑 상부: 16 ~ 20mm

T-34/76과 같은 분류법은 소련이 아닌, 독일에서 표기한 것으로 서방권에서는 /대신 -로 표기하여 T-34-76으로 표기했다. 1960년대 이후 동구권에서 발행한 T-34 관련 서적이나 잡지를 서방에서 입수한 이후부터는 더 세분화 된 분류가 가능하게 되었다. A-32가 1939년 정식 채택된 이후 1939년부터 40년까지 대략 소수만 생산되어 붉은 군대에 납품된 T-34 1940년형은 독소전쟁 발발 이전까지 기밀전차로 분류하여 전차병들은 훈련소에서만 볼 수 있었고, 방수포 등으로 씌어진 채 전국 각지의 훈련소로 배치되었다가 독소전쟁 초반에 급히 투입되었다. 대다수의 차량에 무전기가 장착되어 있지 않아서 협동 작전이 힘들었다고 한다. 주포 구경장이 짧아서 포 관통력도 낮았다.

4.2. 1941년형

T-34/76 Obr. 1941

소련 육군

T-34/76 1941년형 (F-34 장착형)

개발 및 생산

개발 설계국

하리코프 설계국

생산공장

코민테른 기관차 공장(KhPZ), 우랄열차공장(UVZ), 니즈니 고브고로드 기계 공장(제112호),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STZ)

개발연도

1941년

생산연도

1941~42년

운용연도

1940~42년[16]

생산댓수

약 3,014 여 대

운용국가

소련

제원

전장

5.92 / 6.62m (차체 / 포신 포함)

전폭

3m

전고

2.41m

전투 중량

25.6t

탑승 인원

4명 (전차장 겸 포수, 조종수, 탄약수, 기총사수 겸 무전수)

공격력

주무장

42구경장 76.2mm F-34 강선포 1문 (77발)

주포조준장치

상하 부각

−~+°

좌우 회전각

360°

부무장

7.62mm DT 동축기관총 2정 (2,898발)

승무원 무장

기동력

변속기

수동 5단 변속기

엔진

V-2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 엔진

최고 출력

500ps

출력비

ps/t

현가 장치

크리스티 현가장치

최고 속도

45 / 15km/h (평지 / 야지 주행)

항속 거리

300 / 200km (평지 / 야지 주행 시)

접지길이, 접지압력

m, kg/cm²

초호능력

m

초월능력

m

등판능력

°

잠수도하능력

/ m (기본 / 잠수도하장비 장착 시)

방어력

장갑

압연 균질 강철 장갑 및 주조 압연 장갑

장갑 두께 / 경사각도

차체 전면 상단: 45mm / 60°

차체 전면 하단: 45mm / 53°

차체 측면 상단: 45mm / 40°

차체 측면 하단: 45mm / 0°

차체 후면 상단: 40mm / 47°

차체 후면 하단: 42mm / 45°

차체 상부: 16 ~ 20mm

차체 하부: 13 ~ 20mm

포방패: 45mm

포탑 전면: 45mm / 30°

포탑 측면: 45mm / 30°

포탑 후면: 45mm / 30°

포탑 상부: 16 ~ 20mm

붉은 군대는 1940년형과 1941년형을 전차병용과 지휘용으로 병행 생산할 예정이였으나, 독소전쟁 발발 이후 1941년형이 양산형으로 채택된다. 장포신의 42구경장 76.2mm F-34 강선포를 탑재하였으며, 1942년형과 43년형 역시 무장은 동일하다.

2,800 여 대 가량이 생산될 예정이었으나 3,014대 가량이 생산되었다. 하르코프에서 1,560대 이상, 니즈니 타길에서는 25대, 112번 공장에서는 173대, 스탈린그라드에서는 1,256대 가량이 생산되었다.

또한, 생산 공장마다 약간 씩 형태가 달랐다. 이는 당시 각 공장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 문제점을 해결하여 생산했기 때문이다. 레드 소르모프 작업장은 76.2mm 포탄의 탄피를 이용해서 엔진시동에 필요한 압축공기탱크를 제작했다.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은 포탑이나 차체를 주조방식으로 제조하여 번거로운 압연방식과 오랜 시간이 드는 용접방식을 대체했다. 공장의 주력인 주물 시설을 이용한 것이다. 또한 보기륜을 감싸는 고무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철제 보기륜을 제작하기도 한다. 여기서 생산된 보기륜은 후에 T-34-85의 신형 경량화 보기륜으로 이어진다. 특히 스탈린그라드에서 생산된 전차는 생긴 직사각형의 엔진룸 덮게와 특유의 육각형 포탑으로 단박에 구분할 수 있다. 독일군들이 스탈린그라드 코 앞까지 와도 밤낮으로 트랙터 공장 노동자들은 쉬거나 대피하지 않고 전차를 생산했다. 생산하는 즉시 도색도 안 한 상태로 바로 투입되었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불필요한 부분의 공정을 최소화시켜 생산력을 올렸다. 

4.3. 1942년형

1942년형은 공장마다 형태의 차이가 컸다. 그 이유는 UTZ와 우랄마쉬, ChTZ의 경우 공장이 위치한 지역이 매우 안전하였기에 6각형 포탑 등 개량형을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전선 코 앞의 STZ의 경우는 개량형은 무슨.. 공장도 언제 폭격 당할 지 모르는 상태였다.

생산성을 간단히 하기 위해 포탑이 주조형에서 용접형으로 제작되었으며, 보기륜은 통짜 철제로 제작되었고, 불필요한 부품은 생략되어 도색도 못 한 상태로 전선에 바로 투입되었다.

  • 용접 포탑
  • 주조 포탑

기존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무겁고 열기도 힘들었던 대형 해치가 2인승 해치로 재설계되어 가볍고 탈출 시에는 전차병이 더 빨리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포탑 또한 약간 대형화되었다. 문제는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생산된 전차인데... 당시 고무 부족으로 통짜 철제 보기륜을 제작하여 달았다. 이는 정말로 끔찍한 소음을 유발했으며, 내부 전차병들은 이 소리를 참고 다녔다. 포탑 역시 주조형으로 1941년형보다도 오히려 비좁았다.

4.4. 1943년형

기존의 1942년형 육각형 포탑에서 전차장 큐폴라가 추가된 형태로 1943년 후반부터 1944년 초반까지 생산되었다. 흔히 1942년형과 혼동된다.

5. 개량형

5.1. T-34-57

단 한 대만 남은 T-34-57 생존 차량으로 똑같이 한 대만이 남은 T-34 1940년형의 생존 차량이 바로 앞에 전시되어 있다.

T-34-57 1943년형의 프로토타입으로 단 한 대만이 존재했다.

소련 T-34/57 중전차

<1941년형 제원>

전장

6.68m

전폭

3.00m

전고

2.45m

전비 중량

26.5t

탑승 인원

4명 (전차장[17], 조종수, 장전수[18], 무전수[19])

엔진

V-2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엔진

최고 출력

500hp

현가 장치

크리스티 현가장치

최고 속도

55km/h

항속 거리

400km

주무장

73구경장 57mm ZiS-4 강선포[20] 1문 (77발)

부무장

7.62mm DT 동축기관총 2정[21] (2,898발)[22]

생산 댓수

'51대"[23]

T-34와 KV-1에 탑재될 예정이었던 76mm F-34 전차포의 생산량이 딸려 조달에 차질이 빚어지자 소련군은 대체할 주포가 필요했다. 때마침 1941년에 제식 채용된 57mm ZiS-2 대전차포는 기존 76mm L-11보다 관통력이 월등했고, ZiS-2를 ZiS-4로 개선시킨 뒤 T-34에 탑재시킨다. 따라서 T-34-57은 T-34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었기 때문에 주포를 빼고 모든 면에서 동일했다. 이는 개발계획의 통합에 따른 것이다.

주포인 57mm 대전차포는 73구경장의 장포신으로 관통력에서는 76mm 전차포 보다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다.[24] 하지만 철저하게 대전차전만 감안한 나머지 고폭탄의 개발이 지지부진했고[25], 양산된 양도 적었으며, 57mm 고폭탄의 성능도 거의 수류탄 수준이라서 의외로 대보병전이나 대참호전같은 곳에서는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중대한 약점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소수가 양산된 T-34/57은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T-34/76과 함께 제대로 된 부품 및 탄약지원없이 전장에 투입되었으며, 안그래도 신형전차라서 부품과 탄약이 기본적으로 모자란데다가, 특수하게 제조된 신형포탄까지 필요한 관계로 T-34/76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투입된 다수의 전차가 제대로 활약도 못해보고 격파당했으며, 살아남은 소수는 간헐적으로 보급되는 약간의 탄약과 물자에만 의지해서 주로 대전차전 전용으로 쓰이다가 소모돼서 사라진다. 이후 나치의 티거가 등장하자 티거를 상대하기 위해 양산이 고려되어 신형 T-34-57이 테스트되었으나, 나치가 판터까지 들고 나오자 작은 탄자를 매우 빠른 탄속으로 관통력을 얻는 방식은 비슷한 수직 관통력을 보이는 대구경, 중포신포보다 경사장갑에 더 취약함이 들어나 실전에 투입되진 않는다. 결국 이 개량형 T-34-57이 원래 추구했던 대전차 성능 개량은 85mm형으로 해결된다.

소련의 기술력이 후달려서 Zis-2 포신을 대량으로 조달하지 못했느니 하는 소리가 있는데 포신이란 건 단지 강선을 판 쇠파이프에 불과하고, 이런 걸 못 만들 정도로 소련의 공업력이 후달리지도 않았다. Zis-2는 종전까지 대전차포로써 9600대가 생산되었다는 것을 보면 완전한 유언비어. (참고로 Zis-4와 Zis-2는 같은 포를 의미한다. 단지 Zis-4는 Zis-2를 전차에 설치한 것을 뜻함.)

5.2. T-34-85

탱크 바이애슬론에 참가 중인 러시아군 소속 퍼레이드용 T-34-85

소련 T-34/85 중(中)전차

<1944년형 제원>

개발연도

1943년

생산연도

1943 ~ 1951년[26], 1952 ~ 1958년[27], 1953 ~ 1955년[28]

생산 댓수

약 65,800여 대[29]

운용 연도

1944 ~ 1958년[30]

운용 국가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북한[31], 그 외 여러 국가.

전장

6.10m / 8.10m (차체 전장 / 포신 포함 시)

전폭

3.00m

전고

2.70m / 0.40m (차체 전고 / 포탑 전고)

전비 중량

32.2t

차체 전면 상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 / 60°

차체 전면 하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 / 60°

차체 측면 상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 / 45°

차체 측면 하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 / 0°

차체 후면 상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32] / 45°

차체 후면 하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 / 45°

차체 바닥 장갑

20mm

차체 상면 장갑

20mm

포방패 장갑

90mm

포탑 전면 장갑

90mm /

포탑 측면 장갑 / 경사 각도

75mm / 75°

포탑 후면 장갑 / 경사 각도

52mm / 52°

포탑 상면 장갑

25mm

탑승 인원

5명 (전차장[33], 조종수, 포수, 장전수[34], 무전수[35])

엔진

V-2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엔진

최고 출력

500hp

출력비

15.6hp/t

현가 장치

크리스티 현가장치

최고 속도

55km/h / 25km/h (평지 주행 시 / 야지 주행 시)

항속 거리

250km / 220km (내장 연료 탱크 적재 시 평지 / 야지),
340km / 310km (외장 연료 탱크 추가 적재 시 평지 / 야지)

주무장

52구경장 85mm D-5T 강선포 1문[36]
54.6구경장 85mm ZIS-S-53 강선포 1문[37] (58 ~ 60발)

부무장

7.62mm DT 동축기관총 2정[38] (2,898발)[39]

초기형 T-34들이 불리한 조건에서 독일군의 전차들을 상대로 분전하며 활약했지만, 반면 한계도 분명했다. 특히 단순 스펙상으로는 우세했으나 관측 및 통신장비가 부실하고 포탑이 너무 작아 전차장이 포수를 겸해야 하는등, 종합적인 전투 효율에서는 단점도 많았다. 이 문제는 꾸준한 개량으로 포탑을 대형화 시키고 전차장석을 독립시키며 큐폴라를 장비하는 등의 성능 향상으로 부분적으로 해결했으나, 본질적으로 2인용 포탑이라는 것을 개선하지 않은데다가 1942년 이후 독일군이 4호 전차의 주포를 개량(단포신 7.5cm에서 장포신 7.5cm로 재장착.)하면서 관통력에서 약간 밀리고 티거, 판터 등의 신형 전차들을 개발하기 시작하자 근본적인 공격력이 답보 상태라 질적으로 압도적인 열세에 처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대적으로 화력을 개선한 것이 T-34/85. 외관상으로도 3인용 대형포탑과 장포신 주포로 인해 T-34/76과 비교하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차체 전면 장갑은 여전히 60도 정도의 45mm 경사 장갑이지만, 신형 포탑의 전면 장갑은 90mm로 강화되어 76mm 탑재형보다 전체적으로 방어력이 약간 향상되었다.

주포로 채택한 54구경장 85mm 포는 티거의 주포보다 파괴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APCR을 사용할 경우 이론상으로는 1km 이내의 표준교전거리에서도 티거의 정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기존의 76mm 주포는 본래 ZiS-3 계열의 경야포를 개수한 것이라 고폭탄의 위력은 그렇다해도 구경에 비해 실질적인 장갑 관통능력이 약하여 독일의 50mm급 대전차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직 장갑이 50mm 수준에 머물렀던 초기형 3호, 4호 전차를 상대로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티거 상대로는 사실상 측후면조차 거의 관통이 불가능했다. 티거야 일종의 중장갑 기병 개념으로 운용되는 중전차계의 괴물이니 그렇다 쳐도, 1943년부터는 그동안 만만했던 4호 전차조차 전면장갑을 80밀리로 강화하며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력이 크게 부족해졌다. 그럼에도 4호 전차는 76mm 주포로 어느정도 계속 상대가 가능했지만 새로 쏟아져 나오는 티거나 판터에게는 답이 없었다.

이를 해결키 위해 85mm포로 교체한 결과 기존의 76mm 주포탑재형에 비해 독일 전차와 충분한 교전 능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수치상의 결과이고, 일단 이론상 관통력과 실전에서 발휘되는 관통력은 상당히 달랐다. 한 때 독일군은 실제로 85mm를 자군의 88mm와 동급으로 분류했으나, 1944년 겨울의 독일 병기국 보고서는 소련군의 85mm 철갑탄은 티거의 전면 장갑을 상대로 500~600m 정도에서나 효과를 볼수 있는 것으로 기록했다. 물론, 1000m이상의 거리에서 명중이 불가능한것은 아니며 실제 관통이 가능한 거리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은 독일에 비해 러시아의 포탄 제조기술이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후의 기록을 연구한 후대의 연구자들도 85mm를 88mm가 아닌 75mm PaK 40과 거의 동급으로 보고 있을 정도.[40] 결론은 제한적이지만 개별적으로는 85mm포로 4호부터 판터까지 좀 무리좀 하자면 기존보다 수월하게 적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게 되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위의 수치가 항상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독일군도 예전처럼 T-34를 만만하게 볼 입장은 못 되었다. 그 사실은 야전 지휘관들과 전차병들이 실전을 겪으면서 금방 알게 되었다.

다만 85mm 전차포가 활약할 수 있는 정도가 제한적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티거, 판터를 상대할 때였고, 다른 독일 전차 상대라면 85mm의 화력은 충분함을 넘어 오버파워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의 T-34는 독일의 4호 전차를 상대할 때조차도 화력이 충분치 않았지만, 이제는 나름 효과적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표적획득 및 정밀조준능력, 그리고 조직적인 전투에 필요한 각종 부가적 요소들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4호 전차가 더 우세한 부분이 있었으나, 슬슬 전차전에 대한 숙련도가 향상되고 점차적으로 그런 문제가 개선되어가는 소련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해볼만한 상황이 되었으며 티거나 판터에게도 숫적 우세가 확보되면 충분히 위협할 수준이 되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T-34/85전차가 대량 투입된다는 사실은 티거나 판터입장에서도 절대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76mm 탑재형 T-34 상대로는 정면에서는 중단거리에서도 견딜 수 있는 티거나 판터전차였지만 T-34/85가 출현하면서 티거는 500m ~ 600m정도의 중단거리에서는 정면장갑이 관통당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했고 판터는 정면은 80mm 경사장갑이라 실제는 140mm의 수직장갑 수준의 방어력을 가져서 정면은 안전하다 해도 약점인 측면은 더 쉽게 관통당할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야 훨씬 우세한 티거와 판터였지만 생산물량이 독일보다 크게 우세한 소련 군대의 입장에서는 예전의 76mm 탑재형의 숫자만큼 85mm 탑재형 T-34/85를 엄청난 물량으로 밀고올 것인데 중단거리에서 위험에 노출이 절대 안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독일군 지휘관들과 전차장들도 금방 알아챘다. 거기다 티거와 판터는 단가나 자원과 제작시간이 T-34/85보다 많이 드는 전차라 손실이 생기면 부대의 전력 손실이나 보충에서 불리했다. 이런 문제들이 IS-2스탈린 전차의 존재와 같이 티거2를 개발하게 된 원인중 하나였다. 그리고 실질적인 주력 전차였던 4호 전차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사형선고 였는데. 이미 T-34/76과 싸움에서도 숫자를 T-34보다 압도적인 주포와 기계 설계의 우월성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75mm 48구경장과 동급인 85mm를 가진 전차가 오로지 숫자로 밀고 나오니, 물량에 지쳐서 우세를 점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44년 이후부터는 4호 전차도 3호 전차 마냥 끝없는 소모전에 휘말려 들어가서, 나중에서는 포탑 회전 모터 제거를 비롯한 염가형 버전인 4호 전차 J형이 나오게 된다.

포(탄종)

100m

500m

1000m

76mm M1A1 (APCBC M62)

125mm

116mm

106mm

76mm M1A1 (HVAP M93)

239mm

208mm

175mm

7.5cm KwK 40 L/48 (APCBC Pzgr.39)

135mm

123mm

109mm

7.5cm KwK 40 L/48 (APCR Pzgr.40)

176mm

154mm

130mm

85mm D-5T (APBC)

139mm

123mm

105mm

85mm D-5T (APCR)

175mm

136mm

100mm

소련제 85mm 주포는 동 시기 미국의 3인치 포인 76mm M1 계열이나 독일의 7.5cm KwK 40 L/48과 비교했을 때 구경이 커졌기에 고폭탄 성능도 뛰어났고 주력탄 관통력도 뛰어난 편이다.[41] 다만 운이 좋으면 필살기격 탄으로 어쩌면 한발쯤 쏠 수도 있는 APCR[42]을 굳이 가져와서 비교하자면 비교적 떨어지는 성능을 보이는데 76mm M1A1과 비교하면, 고속철갑탄의 관통력은 약 "70mm" 가량 뒤쳐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5cm KwK 40 L/48과의 비교에서도 500m까지는 비슷하지만 그 후부터는 관통력 차이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당시 소련이 가진 제한된 금속가공능력으로 타국보다 훨신 많은 엄청난 숫자의 경심철갑탄을 찍어내기 위해 어느정도 품질의 타협을 봤기 때문이다. 75mm, 76mm APCR이 아무리 스팩상 관통력이 높다 해도 정작 보급이 안되면 밀덕들 스팩놀음과 비디오게임에서 골탄깔때 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이 전차의 기동력과 생산 용이성이 높이 평가되어 T-34의 하부 차체를 그대로 이용하여 SU-85, SU-100, SU-122같은 자주포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알렉산드르 오스킨[43]

여담으로 티거 2는 첫 실전 투입에서 T-34/85 한 대에게 3대가 격파되는 굴욕적인 데뷔전을 치뤘다. 당시 해당 전차병들간의 숙련도 차이를 생각해도 전설로 남을 업적이다. 참고로 이때 해당 T-34/85의 전차장이 알렉산더 오스킨 중위였다. 이 일화는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만화 도로 위의 괴물의 이야기들 중에도 들어있다. 다만 T-26부터 몰았던 오스킨 중위의 경력에서 보듯이 1944년경이 되면 소련군 기갑부대도 세계최강 독일기갑부대를 3-4년간 상대하느라 숙련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야전 기동에 있어서는 독일군에 딱히 뒤쳐지지 않았다. 1944년 바그라티온 작전쯤 되면 소련군도 나름대로 독일군 못지 않은 기갑전력을 보유하게 되었다.[44][45]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T-34들(각 전차는 제11전차군단 소속이고, 전차번호는 k230, k238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후반에는 독일군의 기갑전력이 상당히 감소하고 반대급부로 판처파우스트 등의 보병용 대전차화기의 위협이 증가해서 사진처럼 철망을 가져다가 4호 전차의 쉬르첸처럼 증가장갑을 부착하고 운용한 사례도 많았다.(독일의 쉬르첸처럼 만들어질 때부터 있는게 아니라 현지에서 임기응변으로 농가의 닭장 등을 뜯어서 개조한 것이다.) 원시적인 슬랫아머의 시초이다. 사진은 1945년 4월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소련군 T-34/85이다.

5.2.1. 1943년형 (D-5T 장착형)

거의 T-34-85의 프로토타입 차량의 생산형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85mm KS-12 대공포를 전차포로 개수한 53구경장 85mm D-5T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하였다. 아직 승무원은 기존 T-34와 같이 4인이 탑승했으며, 포탑 형태가 1944년형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5.2.2. 1944년형

T-34-76 1943년형이 1944년 초반에 생산 중지된 이후 같은 해 중반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초기형이다. 주포가 54.6구경장 ZiS-S-53 전차포로 변경되었으며, 승무원은 대형화 된 3인승 포탑으로 5명이 탑승하였다.

니즈니타길의 제183호,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제112호, 옴스크의 제174호 공장에서 생산되었으며, 각 공장 생산분마다 포탑의 용접선이나 환풍기, 큐폴라의 배치나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초기형은 설계 문제로 사격 후 장약 연소 가스의 역류를 방지하지 못해 포탑 내부에 가스가 머물렀는데, 이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환풍기에 의지해야만 했다. 종전 후 생산형에서부터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6. 파생형

6.1. T-34-100

1946~47년 사이에 등장된 프로토타입으로 신형 T-54가 장비하고 있던 100mm D-10과 비슷한 주포인 100mm LB-1 전차포를 장착하였으나, 차체 신뢰성 부족으로 생산되지 않고 T-54가 더 많이 생산된다.

7. 현대화 개량형

생산량이 많은 만큼 동구권 국가에서 현대화 개량형으로 개수되거나 일부 중동 국가에서는 포탑에 곡사포를 장착한 고정포로 개수되었다.

7.1. T-34-85M

T-34-85의 보기륜을 T-55/62의 보기륜으로 교체한 현대화 개수형으로 기존의 포탑 권총구와 차체 동축 기관총이 폐지되었고, 포탑과 차대에 짐걸이나 손잡이를 새로 설치하였으며, 엔진 역시 T-54의 엔진으로 교체된 형태도 존재한다. 소련 말고도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비슷하게 개조가 시행되었다. 심지어 북한에서도 개조한 형태로 퍼레이드에 등장한다.

7.2. T-34-100

7.3. T-34-122

8. 생산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승전직후 모스크바에서.[46] 뒤에 저 점들도 다 T-34이다.

1941년 당시 소련의 전투/전투근무 지원능력은 매우 열악해서 많은 T-34들이 퍼진 채로 줄줄이 노획되거나 자폭했다. 원수같은 쿨리크 원수의 방해 때문에 예비 부품과 구난전차가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1942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실 독일군의 진격을 피해서 원래 있던 공장부지에서 생산시설만 간신히 빼돌렸다가 황무지에 대충 건물 세워서 총력전명목으로 비숙련공까지 동원하여 가동시킨 공장에서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T-34의 경우에는 비교적 복잡했고 주력으로 양산을 하려고는 했으나 설비가 뒤떨어져 41년 당시에는 경전차들을 더 많이 생산했고 42년에도 경전차가 거의 중형전차만큼 양산되었다. 이 시기에는 터져나가는 수보다 훨씬 많은 T-60 경전차와 T-34를 만들어내서 버틴거나 다름없다.[47] 이 찍어낸 전차에 탑승할 승무원들은 바로 스탈린의 강제적인 농업 집단화로 만들어졌다고 과언이 아니다. 집단농장에 수용한 농민들에게 집단기계화 영농을 위해 대대적으로 트랙터, 콤바인의 운전교육을 시켰는데, 이때 교육받은 트랙터 및 콤바인 운전사들을 바로 전차운전병으로 징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집단농장화가 농업의 생산성은 극도로 떨어뜨렸지만 전차병 양산에는 도움을 주었다는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숫자로 메꾸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던 위기상황이 닥친 적도 있는데, 폭증하는 손실에 비해 생산된 전차의 전선 배치 속도, 승무원 훈련의 적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76mm형의 구식화와 85mm형의 개발로 인한 차종 변경 문제 및 재고 차량 처리 때문에 1943년 12월 시점에는 1만 8천 대가 넘는 재고 전차를 후방에 안은 상태에서, 독일군과의 가용 전차 비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1.7:1까지 떨어지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48]

물론 소련군이 그냥 구식 전차에 승무원이 바보라고 해도 닥치는 대로 그냥 밀어넣었으면 이제 독일군은 끝장이나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형벌 부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시점에 이르면 나치 독일의 슬라브인 민간인 학살 정책[49]과 전사자들로 소련에서 병사가 될 남자가 바닥나기 시작한 때였다. 따라서 위의 상황이 닥치자 그야말로 승승장구로 잘나가는 전선에만 전차를 몰아주는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당장 T-34의 생산량을 감안한다면 단순계산만으로도 전차병이 336,000명이 필요하게 되는데,[50] 아무리 격파된 전차에서 승무원이 살아남아서 다른 전차를 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100% 승무원이 생존하는 경우보다는 보통 1명 이상이 죽고, 1명 이상은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전투능력을 영구적으로 상실하는 경우가 많으며, 전차가 폭발해서 승무원이 몰살당하는 것도 많이 있다. 따라서 전차를 몰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좋은 인원을 함부로 소모하는 것은 당시의 소련의 인적자원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위기상황은 1944년 중반쯤 되면 완전히 극복되는데 총력전에 동원된 비숙련공들이 숙련공[51]이 되어 품질도 생산성도 모두 증가했고 미국의 원조로 기술적으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보강도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무전기 등 부품의 신뢰성이 좋아진 덕분에 물량과 품질 양면에서 독일군에게 본격적인 지옥을 보여주게 된다. 당장 위의 위기상황도 한 달 남짓한 사이에 4:1 수준으로 전력격차를 늘렸다.

41년 당시 초기형 T-34-76의 가격은 270,000루블 수준이었으나 이 가격은 급격히 떨어져 44년, 초기형보다 훨신 더 튼튼하고 거대한 포탑과 더 큰 주포, 더 뛰어난 부품을 장착하여 이전보다 30%가량 가격이 상승했다는 비싼 신형 T-34-85조차 고작 160,000루블에 불과했고 45년이 되면 이게 또 140,000루블 수준으로 떨어진다. 생산시간 또한 초기형에 비해 절반의 시간만 요구되었으며 완성도까지 더 높았다. 45년 3월 시점, 독일군이 동부전선 전체를 통틀어 고작 300대의 판터를 굴릴때 소련은 T-34를 한달에만 1200대씩 찍어내고 있었다.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read?articleId=15868287&bbsId=G005&itemId=143[52]

1950년 자금성 앞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의 T-34/85.

전후에도 대량 생산 되었으며 대전 후에는 소련 영향 하에 들어간 동유럽 공산 위성국들이나 세계 각국의 친소 국가들에 대량으로 공여되었다. 56년 형가리 혁명에 투입되었다가 박살난 소련 T-34/85도 있고 베트남 전쟁때도 T-54/55/59식에 비하면 구식이긴 하지만 소수의 SU-76, SU-100과 함께 T-34들이 투입되었으며 그리스 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킬때 사용하기도 했고 이 T-34들은 74년 키프로스 전쟁에도 참가했다. 중동전쟁에서도 역시 SU-100 같은 구형 소련 차량들과 함께 T-34가 사용되었다. 중동권에서는 현지 개수를 가해 1980~1990년대까지도 굴러다녔고 아프리카 일부 빈국에서는 아직도 현역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셔먼 전차와 T-34 중 어느 쪽이 먼저 현역에서 사라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태이다.

9. 조선인민군 육군

T-34-85 중형전차, 서울시청 앞의 조선인민군 육군 215번 전차

공산권 대량 공여의 결과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 육군이 운용했던 전차이기도 하다.

미군에게 격파된 북한 육군 소속 T-34/85

한국전쟁 발발 당시 서울에 진주한 북한 육군의 모터찌클 부대와 T-34/85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T-34-85. 공간 문제로 포탑을 후방으로 돌린 상태다.(내부 청소를 제대로 안하는지 먼지가 지독하게 많이 쌓여있다. 전쟁기념관엔 이 차량 말고도 야외에 한 대가 더 전시되어 있다.)

전쟁기념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T-34-85

T-34/85는 북한군에게 개전 전까지 242대가 공여되었고 이후 북진 직전까지 150대 가량이 추가로 공여되었음이 소련 문서로 확인되고 있다. 소련의 군정이 시작되고 소련은 미국과 달리 북한군의 전력을 강화시키는데 상당히 투자했고 기갑전력또한 강화시켰다. 208전차 훈련연대를 창설해 전차병들을 양성하기 시작한것과 더불어 t-34 전차와 su-76 대전차자주포를 견학시키며 전차 운용법을 가르친다. 1948년 소련은 미군정을 철수시키기 위해 소련군을 철수시키고 북한에 잔류하던 10전차사단또한 철수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기갑세력의 확대개편을 위해서 한인2세인 표들 중좌와 300명의 전차병을 군사고문단으로 남겨두고 150대의 t-34/85전차를 인계했다. 208전차 훈련연대가 10월말 수료했고 최초 208전차 훈련연대의 인원을 주측으로 115전차연대를 창설했다. 115 전차연대는 최초 10대의 t-34/85를 인계받고 표들중좌 연대가 철수하면서 t-34/85전차 60대와 su-76 대전차자주포를 30대를 인계받고 모터사이클 60대를 인계받은뒤 기갑전력을 강화시켰다. 625가 일어나기전 김일성은 t-34전차를 500대 2개전차사단을 편성하기위해 판매 요청했다. T-34전차 구매할 대금으로 철광석과 금괴, 은을 비롯한 각종광물을 보내기로 합의했다. 500대의 t-34전차는 2개전차사단을 편성할 수 있는 수량이지만 소련 군사고문단 또한 한반도는 전차기동이 유럽과는 달리 불편하다고 판단해 항공기 지원으로 바꾸고 절반가량인 총242대의 t-34 전차를 인수해 105전차여단이 창설됬다.

당시 한국 육군이 가지고 있던 대전차화기는 무반동총, 2.36인치(66mm) 바주카, 6파운더의 미국 라이센스 57mm 대전차포 였는데 무반동총과 바주카는 측면에서 트랙을 끊어 전투불능을 시키는 격파(격파라는 용어를 듣고나서 이를 마치 적의 완전한 파괴를 의미한다는 식으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격파라는 것은 적의 전투력 상실을 의미할 뿐이며 적을 완전히 파괴하든 당장 전투력만 상실시키든 똑같이 격파라 할 수 있다. 6.25 초기 바주카로 측면에서 T-34를 격파했다는 전과를 찾아보면 어김없이 바주카로 측면에서 T-34를 격파했으나 곧 북한군이 회수해갔다는 내용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어있는데 이 경우 실제로 T-34를 파괴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며 북한군에 회수되었다면 수리하여 재배치 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사실상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봐야한다.) 전과를 얻는게 최선인 수준이었고 57mm 대전차포는 철갑탄도 충분히 보급되지 않았고[53] 철갑탄을 쓰더라도 500m밖에서는 그 어떤 피해도 줄 수 없고 300m 근처까지 끌어들여야 관통이 가능한 매우 부족한 화력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대전차화기들은 이미 독일군의 전차를 전면에서 사격할 경우 6호 전차 티거같은 중전차도 정면에서 격파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은 66밀리 로켓탄의 저질 위력 때문에 파괴력 부족이라는 점이 입증된 상태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제 성능을 따지자면 2선급 대전차화기였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당시의 한국 육군의 보병용 대전차화기는 이미 능력부족인 상태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강대교한강철교를 너무 일찍 날려버린 탓에 전선에서 후퇴하던 대부분의 57mm 대전차포는 한강을 건너지 못했고 이 대전차포들이 북한군에게 노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육군 대전차병들은 공이를 분해하고 포신과 기관부는 수류탄이나 폭약을 이용하여 파괴해야 했다.

개전 당시 국군의 유일한 기갑차량이었던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의 37mm 포로 T-34를 저지해보려는 시도가 있었고 철갑탄을 발사하여 T-34의 궤도를 파괴하여 소수의 T-34를 격파(궤도파괴=기동불능=전투력 상실=격파) 할 수 있었으나 37mm 포도 통상사격으로는 전차의 무한궤도나 파괴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위력부족이며, 그나마 철갑탄까지 부족한데다가, 매복 후에 1대가 무한궤도를 사격한 후 전차의 조종수가 전차 전면에 있는 조종수 해치를 여는 순간 그 곳에 핀포인트 사격을 가하는 특이한 사항이 아니면 실질적인 파괴가 불가능하므로 결국 적 전차의 반격으로 엄청난 손해만 입고 말았다.(전임 대대장에 대한 불만으로 보복을 하려다 실수로 막 전입온 신임 대대장 일가족을 도끼 참살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형수 고재봉이 죽기 전에 기독교에 귀의하게 만든 종교인이 개전 당시 M8 장갑차 승무원으로 참전하여 37mm 포로 철갑탄을 발사하여 T-34를 격파하였으나 결국 피탄되어 부상을 당했다.)

문제는 당시 한반도에 초기에 투입된 미 육군도 보병용 대전차화기는 한국군의 것과 거의 동일했다는 점이다. 다른곳에 갈 필요도 없이 이 문서에서도 많이 증거 자료를 찾아 볼 수 있듯 미군은 이미 2차대전 당시 소련에게서 T-34를 받아와서 그 스팩을 알고 있었고 그 T-34로 T-34의 이런 저런 장단점에 대해 충분히 테스트도 해보았다. 당시 미군 지휘부도 T-34 전차에 대해 엔진필터가 안 좋으니 소련 공업기술력과 장갑재 관련 것들을 다 알고 있었으며 여기에 한국 특유의 산악지형까지 합쳐져 미국은 한국 같은 산악지형에 전차는 필요없고 T-34 같은 전차는 바주카면 충분히 상대 할 수 있는 전력으로 오판하고 있었다. 한국군이 수없이 바주카로는 도저히 T-34 전차를 상대 할 수 없다고 보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이를 무기의 능력부족이 아닌 한국군의 낮은 훈련도 때문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미 육군 중 최초로 전투에 돌입한 스미스 특임대대가 대혼란에 빠진 것도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미국은 일단 스미스 특임대를 파견하면서 미군이 출동했으니 북한군이 공세를 멈추기를 기대했으나 그런 것은 없었고 곧 전투에 투입된 스미스 특임대는 용감히 바주카와 무반동총을 가지고 T-34와 맞섰으나 그들 역시 T-34의 측면에서 궤도를 끊는 것과 후면에서 엔진을 멈춰서 총 4대의 전투력을 일시적으로 상실시켜 격파한 것 외에는 아무런 전과를 내지 못했는데 특히 정면에서는 T-34에게 그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T-34를 상대로 대패하고야 말았다.(이 바주카가 탄이 불량이었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있으나 당시 실전에서 미군이 선택한 해답지는 T-34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실전테스트를 할 겸 더 강한 슈퍼바주카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 전투로 미국은 미군이 사용해도 바주카로는 도저히 T-34를 상대로 실질적인 전과를 내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들의 테스트 결과로는 도저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데 그 일이 실전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우선 전선에는 스탈린이 북한에 장갑을 더 두껍게 한 T-34를 보냈다는 소문[54]이 퍼졌으며 미국은 동시에 그들이 생각하기에 T-34를 상대할만 하면서도 좀 더 배치하기 용이한 병기를 찾게 되는데 이것이 일본에 있던 75mm포 전차 M24 채피 경전차로 일단 저렴한데다가 가까운 일본에 이미 배치되어 있어 재배치가 용이했고 구형 셔먼과 동등한 수준의 75mm포를 갖춰서 75mm 장착형 셔먼전차가 독일의 3, 4호 전차를 상대 할 수 있었던 것 처럼 T-34 역시 상대 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였으며 경전차라 가볍고 빠르기 때문에 산지에서 운용하기도 적절하다고 판단되어 50년 7월 4일 빠르게 배치된다.

채피가 배치되자 땅에 떨어져 있던 한국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다시 솟아올랐고 미군 채피병들은 기세좋게 T-34와 전차전을 벌였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채피부대는 T-34와의 모든 전투에서 처참한 패배를 겪게 된다. 심지어 T-34 1대가 반파되는 동안 채피 7대가 몰살당하는 등 압도적인 열세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채피의 75mm포는 T-34를 실질적으로 전혀 관통하지 못했으며 기것해야 T-34 한두대의 궤도를 끊어서 잠시 진격을 멈추는 격파 전과를 얻기 위해 한번 교전에 수대의 채피가 불에 휩싸이며 끔찍하게 완파당했으며 이 75mm포 전차 채피는 이후 대전차전에 부적합한 병기로 판정이나 정찰이나 보병지원용으로 돌려지게 되는데 이 시기에도 대전차소총이나 대전차포에 비교적 쉽게 파괴된다는 단점으로 사용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예상과 달리 채피가 처참한 교전비로 T-34에게 아주 간단하게 털려나가자 이를 예상하지 못한 미국은 당황하며 뒤늦게야 한국 지형은 쓸모가 없니, T-34의 성능이 어떠니 하는 주장을 완전히 버리고 가능한 빨리 대량의 전차를 쏟아붙는데 열중하게 되는데 이 사건 이후 배치되는것이 M26 퍼싱과 M4A3E8 셔먼 전차로 이 전차들은 대거 부산항으로 들어왔다. 이로인해 M26를 필두로 한 미국 기갑부대는 T-34를 완전히 압도할 수 있었고 T-34와 같은 체급인 이지에잇 셔먼도 T-34-85를 상대로 우월한 전적을 내는등 개전 초기 채피의 참극을 완전히 씻어낼 수 있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지며 T-34에 비해 확고히 더 강력한 센츄리온 Mk.III, M46 패튼 같은 전차들이 배치되자 T-34는 초반의 기세를 완전히 잃고 UN군 전차에게 압도적으로 패퇴하고만다.

개전 초기 한국 육군은 대대급 훈련을 받은 부대가 최정예였던 시절이었을 만큼 훈련도가 부족했고 전차에 대한 무지도 겹쳐 일방적으로 격파당했다. 갓 태어난지 얼마 안된 한국 육군은 사기도 낮고 준비도 부족한 만큼 많은 걸 바랄 수 없었다. 당장 전차를 격파했다고 알려진 사례의 상당수가 SU-76 같은 상부개방형 대전차자주포였을 정도로 당시의 한국 육군은 전차와 대전차자주포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한국군은 몰려 오는 T-34에 맨몸으로 화염병이나 수류탄을 들고 뛰어 올라 안에다 던져 넣는, 이른바 육탄돌격'로 알려진 처절한 전술로 대항해야 했다. 말이 육탄돌격이지 전차의 기관총 사격 화망을 무릅쓰고 접근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전술로, 사실상 자살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실제 전과를 확인해 봐도 실질적인 피해는 줄 수 없었던 것 같다. 1952년에 집계된 256대 파괴전과 중 전차포 97(37.9%), 북한군 유기 63(24.6%), 로켓포 및 무반동총 35(13.7%), 항공기 29(11.3%), 포병 28(10.9%), 수류탄 3(1.2%), 미군 지뢰 1(0.4%)다

다만 춘천-홍천 전투의 말고개 전투 사례와 같이 이러한 육탄돌격으로 인해 전차의 기동을 방해하거나 돈좌시킨 사례도 있으며, 개전초기 혼란에 빠진 국군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데 미미하게나마 도움이 될 약간의 시간을 끌 수는 있었을 것이다. 또한 미약하나마 L-4, L-5, T-6같은 연락기나 훈련기도 간이 무장을 달거나 후방석 승무원이 폭탄 등을 던져 T-34를 몇대 해치웠다.

물론 육탄특공에서 크게 성공한 경우들도 있는데 T-34의 약점부위를 정확하게 알고 공략하여 전차를 무력화시켰다. 일단 해치가 열려있을 경우 안에 수류탄이나 화염병을 던져넣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었고, 해치가 잠겼을 경우엔 궤도에 박격포탄을 밀어넣어 파괴해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포탄이 불발이 날 경우는 취약한 엔진 상판부위를 노리기도 했고, 연막 등을 이용해 관측을 방해하여 강제로 해치를 열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한국전쟁 당시에 도로정비가 되지 않아 거칠고 울퉁불퉁하며 좁은 길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앞을 보지 못하고 마구 운전하다가 전차가 돈좌 또는 전복되서 기동력을 상실하면 치명적이었다. 국방부 전쟁사 관련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T-34의 또 다른 취약부위는 관측용 잠망경이었는데, 여기에 진흙을 발라 앞을 가리는 방식으로 무력화한 사례도 있다. 수기 잠망경 부분이 의외로 마무리와 내구도가 허접해 전차에 달려있는 보수용 망치나 돌 등으로 강하게 때리면 비틀려서 공간이 생기는데, 이 약점을 이용해서 공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타 참고자료 다른 취약점은 통풍구 부분이었는데 이곳을 노려 안에다 수류탄이나 화염병 등을 집어넣는 방식의 공격도 행해졌다.

그러나 북한 육군의 전차운용 방식과 훈련미숙 등의 병크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소모되던 중 미 육군이 M4A3E8에 이어서 본격적으로 M26 퍼싱이나 M46 패튼 등의 고성능 전차를 투입한 이후엔 풍비박산이 났다. 만약 북한 육군이 개전 초의 절대우세에 전차를 집중적으로(일명 기갑웨이브) 운용했다면 낙동강 전선이란 말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국군에게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북한 육군의 전차운용은 능숙하지 못했다. 한국전쟁 초기의 탱크 쇼크 효과에 맛을 들인 북한 육군은 전선 강행돌파시에 전차를 자주 동원했다. 이는 소련군의 작전기동군 교리에서 많은 점을 참조한 것이나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 충분한 화력지원과 후속 증원부대의 신속한 투입이라는 점은 빼먹고 기습과 탱크 쇼크의 시너지만을 고집하여 충분한 화력지원 없이 전차와 자주포, 보병만 일회성으로 덜렁 보내곤 했다. 전사를 살펴보면 야간에 전차나 자주포가 뜬금없이 갑툭튀하여 국군과 UN군이 필사적인 항전을 펼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되지만 포격이 동반되거나 돌파구를 후속부대가 확장하여 전선 깊숙히 침입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에 반해 한국전쟁 초기의 혼란을 수습한 국군은 낙동강 전선이라는 천혜의 방어막과 UN군의 막강한 지원화력을 십분 활용, 강행돌파 예상지점에 화망을 미리 구축해놓고 T-34가 걸려들기만 하면 문자 그대로 있는 화력을 모두 끼얹어 버렸다. 특히 낙동강 방어전 당시 북한 육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광복절까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여 적화통일을 이루고자 초조하게 서두르고 있었기에 이는 큰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이러한 양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 전차병들의 숙련도도 낮은 편이어서, 미군이 투입한 이지에잇은 제원상으로는 T-34/85에 열세였으나 승무원들이 2차 대전에서 온갖 험한 꼴을 다 겪어본 베테랑들도 조준장치도 더 좋아서 T-34/85에도 우세를 점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으로 미군이 본격적으로 개입한 이후 북한 육군의 전차는 미 육군의 M26 퍼싱이나 M46 패튼 등의 고성능 전차들에게 다 터져나갔다. 북한군의 전차는 1950년 겨울 즈음엔 거의 전부 소모된 상태였으나, 중공군이 개입시 전차도 갖고 왔기에 T-34/85는 전선에는 계속 나타났다.

참고로 3.5인치(89mm) 슈퍼 바주카의 보급에 힘입어 바주카포로도 전차의 전면에서 충분한 타격을 줄 수는 있게 되었다. 물론 미 육군의 퍼싱이나 영국 육군의 센츄리온 같은 신형 전차들이 왔으니 T-34/85는 더이상 적수가 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육군은 6.25 전쟁 동안 총 3대의 T-34/85를 노획했으며 미 육군식 위장에 태극기를 그려 피아식별을 하였다. 다만 노획전차의 특성상 부품과 탄약공급문제 등으로 인해 오래 사용하기 힘들었고, 여기에 전황 변화 등이 겹쳐서 마지막에는 이중 단 한 대만이 남았다.

알게 모르게 현재 한국 육군의 전략, 전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차로 K-1 전차의 개발과 배치를 위시한 국군 전차전력의 강화엔 이 T-34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한국전쟁 초기 T-34를 앞세운 북한 육군의 빠른 공세에 아무 것도 못하고 밀려난 경험은 지금까지 국군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고, 그것이 각종 신형 전차와 대전차무기의 개발과 배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나 강원도에서 볼 수 있는 대전차 방호벽 또한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으로 북한 육군 기갑부대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있는 것이다.

T-34/76은 오랫동안 북한 육군에 없었다고 알려져 왔다.[55] MBC 드라마에서 T-34/76을 사용하는 장면이 방영되어 고증오류라고 까이기도 했다. MBC 드라마의 등장 장면, 그런데 BBC의 다큐멘터리의 한국전쟁에 투입된 T-34 중 76형 모습을 발견했다. 북한 매체에서 북한 육군이 T-34/76으로 추정되는 전차를 사용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전차인 OT-34는 T-34/76을 개조해서 차체전면 기관총자리에 화염방사기를 부착하는 동시에 76mm 주포는 사용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한 전차이다. 소련군에는 T-34/85 사양의 화염방사전차도 존재했지만 T-44와 T-54의 화염방사 차량이 당장 없는 상황[56]에서 이 전차들은 소련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남겨둬야 했다. 그래서 소련군이 공격용으로 화염방사전차를 줄 경우에는 OT-34/76을 줄 수 밖에 없으므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전쟁 중 제6보병사단에서 열차 안에 있던 T-34를 노획한 적이 있다.

10. 현재

현재 러시아에서는 퍼레이드용으로 일부 남아있다.

태어난지 환갑이 다된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도 꽤 널리 사용되었다. 유고 연방군은 소련과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T-34를 수천대 보유하고 있었고, 할리우드 영화 철십자 훈장(영화)에 나오는 T-34는 모두 유고슬라비아에서 로케이션을 한 것일 정도로 관리도 잘하고 있었는데, 유고 연방이 붕괴되면서, 대다수의 T-34는 세르비아 민병대 손에 넘어갔고, 내전에 사용되었다. 내전의 성격상 중화기가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병들을 상대로 의외로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 유고 내전에 동원된 T-34의 가장 큰 특징은 포탑 큐폴라의 뒷쪽에 M2 중기관총 장착 마운트가 달려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T-34를 공여받은 국가중 일부는 개조를 강행하기도 했는데 윗 사진의 T-34 전차는 쿠바군 소속으로 포탑 앞부분을 잘라내고 D-30 Soviet 122mm 곡사포를 달아놓은 사양이다.

북한에서도 전쟁 발발시 한국군의 특수부대를 상대하기 위해 후방에서 아직도 T-34를 운용중이라고 한다. 일선에는 배치되지 않고 러시아처럼 창고에 박아두고 퍼레이드 등에서 꺼내 쓰는 정도이다. 그뿐만 아니라 85mm 주포는 북한 해군에서는 연안 고속정 전용 함포로도 쓴다. 이쪽은 제2연평해전에서 그 악명을 떨치며 국군에게 T-34 Re-쇼크를 먹여주었다. 85mm는 대공포로 태어나 때때로 야포와 대전차포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전차포로 전용되어 나치를 쳐부수고 결국 노년에 북한에서 함포로 쓰이게 된 기구한 운명의 포다.

영상에서 북한군이 T-34/76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나타났다. T-34/76 Obr. 1943 후기형 버전이다. 사진 참고

1990년대 북한 드라마 민족과 운명 최현덕편의 한국전쟁씬에서 76형 2대가 기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로써 북한이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기동가능한 상태의 T-34/76을 최소 2대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2006년 10월 23일에 헝가리에서 일어난 시위에서[57] 시위대가 박물관을 습격,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956년 헝가리 시위당시에 소련이 진압하면서 썼던 물건과 같은 전시한 T-34/85에 경유를 넣었다. 그런데 엔진이 돌아가고 무한궤도가 움직이는 사태가 발생, 박물관 전시품은 행사 때 가동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윤활유는커녕 외관 정비 외에는 별로 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연료를 넣었다고 해서 움직이는 일은 보통은 없다. 시위대는 마침 시위도 한창이겠다 싶었는지 타고 나와서 다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시물이었기에 엔진은 있었더라도 포탄이나 기관총탄은 없었으므로 사격은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동영상을 보면 조종한 사람의 실력도 수준급이라 인명 피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NBC 방호 따위는 생각도 안했던 물건이었던만큼 결국 운전수는 경찰의 최루탄에 의해 제압당했고 전차는 엔진을 제거한 후 다시 박물관에 돌아갔다고 한다.

2015년 예멘 내전에서도 후티 반군 소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디 정부군도 일부를 운용하고 있다.

아주경제신문에 의하면 T-34는 러시아의 주력전차라고 한다.(사진설명에 주목할 것) 사실 1946년도 신문 아닐까 그럼 우리나라 주력전차는 M4셔먼이나 패튼전차

11. 평가

보통 독소전 초기에는 훌륭한 단차의 공수주 스팩 등의 전술적인 부분이, 독소전 후기에는 신뢰성과 항속거리, 물량과 교육 용이성 등의 전략적 부분이 장점으로 꼽힌다.

11.1. 장점

  • 강력한 화력
독소전 초기에만 해도 76mm급 장포신포는 타국의 주력 중형전차로는 전례가 없는 주포였다. 상대인 나치의 3,4호 전차의 화력은 가장 강력하게 업그레이드 된 것이 기것해야 5cm 주포이거나 7.5cm 단포신포였으며 3.7cm 대전차포도 많았기에 통상탄으로는 T-34의 장갑을 관통 할 수가 없고 기것해야 5cm포로 약점사격을 하거나 귀하디 귀한 APCR을 반드시 써야 T-34를 상대 할 수가 있었는데 T-34의 76.2mm포는 기것해야 50mm 또는 그 이하였던 3, 4호 전차의 전면을 맞추는 족족 뻥뻥 뚫어댔다. 물론 독소전 초기가 지나면 이 장점은 7.5cm장포신을 가진 4호전차 개량형에 밀리게 된다. 이후 85mm로 업그레이드 되어 다시 한번 주요국가들의 주력 중형전차 중 가장 큰 구경을 가지게 된다. 이 경우 APCR의 관통력은 타국보다 빈약하지만 어차피 수급이 좋지 않아 함부로 쓰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고 일반 철갑탄과 고폭탄의 화력은 여전히 중형전차급에서는 강력했다.
T-34는 이전 모델인 BT-7부터 이어진 전면전체 경사장갑이 적용되어 있으며 여기에 더해 타국 전차들과 달리 정면 뿐 아니라 측면과 후면까지 상당한 각도의 경사장갑이 도입되어 있어서 장갑두께에 비해서 실제로는 훨신 더 튼튼하다. 인터넷에서는 소련의 공업기술로는 장갑재가 이러니 저러니 하며 실제 스팩의 반으로 봐야되니 어쩌니 하는 말이 떠돌지만 실전에서는 그런건 없었고 T-34는 구형 셔먼과 동등한 성능을 지녔다는 채피의 75mm포를 측면에서도 튕겨내면서 채피를 학살하고 다녔다.
  •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성
단점 부분에 T-34의 구동계 신뢰성이 나쁘다고 적힌 부분이 많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셔먼 같은 서방제 동맹군 전차와 비교하면 신뢰성이 낮은 것은 사실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이 당시 소련쪽의 신뢰성 개념은 서구쪽과는 많이 다르다. 서구쪽에서의 신뢰성이 단순히 고장 안 나는 것을 의미한다면, 소련쪽의 신뢰성 개념은 저렴하고 좀 고장은 잘 날지 몰라도 쉽게 교체/수리가 가능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 이는 애초에 T-34의 개념부터가 저렴하게 대량양산되어 소모되는 전차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T-34가 조금 마무리 등에서 빈약해서 문제점으로 보이기는 했으나 당장 전선에서 싸우고 있던 나치의 전차들이 고장도 잘 나고 수리도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훨씬 우월한 구동계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전면 맞상대에서는 수대vs1 때로는 십수대vs1 수준의 교전비까지 각오해야 할 정도로 상대가 어려운 나치의 중전차들을 T-34는 나치의 중전차들은 시도조차도 못하는 전략기동으로 조져놓았다. 물론 아래에도 나오는 탁월한 항속거리와 자력으로 전략기동이 가능한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T-34의 신뢰성에 대해 논하는 것은 셔먼 같은 전차와 비교하여 어느 전차가 더 좋으냐를 논쟁 할 때에는 T-34는 신뢰성이 부족하다 할 수 있으나 독소전에 한정해서 본다면 T-34의 신뢰성은 오히려 T-34의 커다란 장점이 된다.
  • 300km가 넘는 탁월한 항속거리
T-34의 경쾌한 주행 능력과 함께 최대 300km가 넘는 항속거리(서울-부산 직선거리정도)는 독일군에게 상상도 못할 속도의 대규모 포위기동을 가능하게 했다. 사실상 43년 가을부터 45년 2월까지의 독소전쟁은 소련군의 대규모 포위기동이 성공하느냐와 독일군이 이를 저지하거나 성공적으로 탈출하느냐의 싸움으로 점철됐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T-34로 편성된 전차군들이었다. 독일 전차들은 항속거리가 100~150km 수준인데다가 그 거리를 T-34처럼 쉬지않고 기동하다가는 주행계통이 고장나며 퍼져버렸다.[58]
  • 가격이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생산시에 숙련된 노동자나 기술자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데, 독소전 중기 이후에는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여 값이 더 떨어졌다. 이 가격은 전쟁 초반에 26만 루블에서 19만 루블까지 떨어졌는데, 당시 티거 1의 가격이 25만 마르크였다고 한다. 당시의 환율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외국 밀덕들의 가격 평가에 의하면 가격비가 1:4~5 정도이며, 4호 전차와의 가격비는 1:1.5~2, 판터와의 가격비는 1:2.5~3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같은 가격을 써서 티거 1대에 T-34 4~5대가 달려드는 셈이니 왜 T-34가 전장에서 떼로 몰려올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59] 당장 T-34의 궤도와 독일제 Sdkfz.251의 궤도를 비교해 보자. T-34는 그냥 궤도 한 조각이 철판 하나고 거기에 핀 몇 개 꽂아서 연결하면 끝이지만 독일제의 경우는 볼베어링과 충격흡수패드 및 온갖 부품이 다 들어간다. 심지어 T-34의 경우 궤도들을 연결하는 핀이 좌우로 미끄러져 빠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장치도 없다! 차체 안쪽에 작은 돌출부위가 있어서 안쪽으로 빠지는 않게 도로 쳐넣는 기능을 했고 안쪽은 그냥 못대가리 형태로 해서 바깥쪽으로는 빠지지 않게 했다. 이렇게 구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서 생산성을 높였던 것이다. 그만큼 마무리가 거칠거나 성능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물량으로 충분히 커버 가능했다. 또, 전차전의 경우와 달리 대보병전에선 T-34도 위력이 충분한 만큼 여러 상황을 종합해서 따지면 T-34 5대가 티거 1대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며, 게임과 달리 실제 전장에서 대보병전에 비하면 대전차전은 매우 드물게[60] 발생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는 굉장한 장점이다. 간단한 예로 티거 1대가 T-34 5대와 붙어서 이길 수 있다 쳐도[61], 보병 전력이 동일하고 주요 거점 5곳을 점령해야 한다는 상황이라면 T-34는 1대씩 보병들에게 딸려 보낼 수 있어 전차 지원을 등에 업은 병력이 4군데를 점령할 수 있는데, 티거는 T-34 1대를 격파하고 1곳밖에 먹지 못한다. 그럼 티거는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략적으론 포위당해서 후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더해 나치의 중전차들은 전략적인 자력 후퇴를 할 수 없는 한심한 구동계 신뢰성을 가지고 있기에 기록상으로는 자폭 또는 고장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로 기록되나 실질적으로는 T-34가 나치의 중전차들을 전투없이 박살내버린게 되어 교전비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숨어있는 엄청난 전과를 만들게 된다.
  • 그 당시 소련의 평균적 기술수준을 능가하는 신뢰성 높고 연비 좋은 디젤 엔진과 크리스티 현가장치로 험지에서 장거리를 고속으로 주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디젤 엔진은 헤드와 블록 모두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었고[62], 공돌이의 본가 독일도 카피가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독일군의 기갑부대는 끝까지 가솔린 엔진으로 움직였는데, 이는 석유자원이 부족한 독일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반대로 소련은 원유는 풍부한 반면 정유기술이 부족하긴 했지만, 디젤엔진에 사용되는 경유는 고도의 정유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소련 기갑부대는 연료가 부족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 훈련을 부실하게 받은 병사도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조작이 간단하다.
소련군은 직전의 농업집단화때문에 농민으로부터 수십만의 트랙터 운전사들을 양성했는데 이들을 모두 전차병으로 징집하여 적어도 전차의 운전병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 구동계가 모두 전차의 후방에 있다.

이는 BT 고속전차 시리즈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소련 전차의 특징으로, 당시 독일군도 전차의 구동계를 최대한 후방에 설치하려 각종 기술적 시도를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것이 장점인 이유는 당시 전차들은 엔진이나 변속기의 고장이 잦아 잦은 수리를 해야했는데 변속기가 전면에 있는 경우 일단 변속기가 들어갈 공간까지 고려해서 전면장갑을 붙여야 하기때문에 T-34같은 경사장갑을 쉽게 도입하기 어렵다. 도입하더라도 승무원의 공간을 많이 희생해야 했었고. 게다가 수리를 하려면 정면장갑 일체를 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야전에서는 수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서 단지 크레인으로 엔진룸 상부장갑을 연뒤 손상부위만 교체하면 되던 T-34와의 정비 편의성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물론 정면에 변속기가 있어서 일종의 이중방호는 가능하다고는 할 수 있을진 몰라도 굳이 그것때문에 관통시 기동력이 무력화되게 설계하는게 나았을지 아니면 관통되더라도 기동력이 살아있도록 설계하는게 나았을지는 대충 생각해봐도 알 수 있을것이다. 일반적인 총력전 상황에서라면 어지간히 인구가 부족해서 승무원 한명 한명을 아껴야 되는 상황이 아닌 이상 당연히 후자가 유리하다. 그리고 소련은 그렇게 멸망위기 수준으로 인구가 모자라진 않았고.

11.2. 단점

보통 독소전 초기에는 훌륭한 공수주 스팩에 비해 뒤떨어지는 소프트스팩이, 독소전 후기에는 단차시점에서 나치의 중전차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스팩이나 서방제 전차와 비교되어 신뢰성 부분이 까인다.

(왼쪽이 전차장 겸 포수 자리,오른쪽은 탄약수 겸 동축기관총 사수)

  • 승무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구조와 승무원의 배치. 실제로 T-34의 내부는 온갖 장비들이 꽉차서 지나치게 비좁았고, 승무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포탄 피격 및 관통시, 최소한 3명은 중상 또는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 2인용 포탑을 사용하므로 전차장이 포수의 역할도 해야하기 때문에 사격시에는 주변관찰이 안되고, 주변관찰시에는 사격이 안되므로 독일의 전차보다 반응속도가 엄청나게 떨어진다. 이점 때문에 T-34는 카탈로그 스펙상으로는 동등한 4호 전차는 물론, 카탈로그 스펙상으로는 T-34가 우위인 3호 전차에게도 맥없이 무너졌다. 이 문제는 T-34의 개량형인 T-43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하여 해결되었으나, T-34보다 기동성이 나빠서 생산되지 못했으므로 결국 T-34/85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해서 해결한다.(소련 전차의 1인 2역의 역할은 PT-76에서 드디어 끝난다.)
  • 부실한 조준장치의 문제가 있었다. 렌즈의 시야가 왜곡되고 상이 흐리게 나오며 사격시 충격으로 깨지는 등 전반적인 품질이 뒤떨어져 조준에 크나큰 지장이 있었다. 렌즈는 고난도의 재료 및 가공기술을 요하는 물건으로 조금만 삐뚤게 깎아도 상이 왜곡되거나 희미해지는 문제가 생기므로 숙련된 기술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대량생산에는 이런 품질을 유지할 노하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또한 광투과율에도 큰 문제가 있어 광량이 부족한 새벽, 해질녂은 물론이고 기상이 나쁠때에도 조준기를 통한 상 획득이 쉽지 않았다. 미국과 더불어 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독일은 이미 충분한 기술적 노하우를 쌓은 후여서 전쟁시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후발주자였던 소련은 이런 기술적 토대가 부실했다. 더욱이 렌즈를 제작한다고 해서 좋은 조준경을 만드는 건 또다른 문제인 것이 조준경은 포 발사에서의 엄청난 충격을 견뎌낼 내구성 및 조준 정밀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노하우를 요구하는 건 똑같았다. 미 병기국이 공여받은 T-34를 테스트하며 "미국제 조준기에 비하여 선진적이다"라고 극찬했다는 이야기를 인용하며 2차대전의 잘못 알려진 신화 10가지라며 영어권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 있는데 이는 전간기 교환장교들이 독일전차를 탑승해보고 자이스사의 슈트리히 조준법을 기억해 소련 기술자들에게 리버스엔지니어링 시킨 부분에 대한 칭찬이었다. T-34의 조준기는 광학적 품질에 있어 명백한 실패작이었다.
  • 조준장치의 문제와 겹쳐 관측용 잠망경의 품질과 시야확보가 상당히 부실했다. 넓은 시야와 주변 관측은 전차전이건 대보병전이건 생존성과 방어, 선제공격 등 여러가지와 직결되는 부분인데, 잠망경의 시야가 20~30도 정도만 확보 가능할 정도로 끔찍하게 좁았고 진흙 등의 이물질이 묻는 것에 매우 취약했다. 게다가 보이는 영상의 품질까지 엉망이라 기동중에 흔들거리면 잠망경을 통한 주변 관측은 더더욱 힘들었다. 그로 인해 평상시는 물론 전투중에도 해치를 열고 운전하거나 시야를 확보하려 하는 막장사태가 벌어졌고 이는 전차장갑에 보호받지 못하는 취약점까지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은 물론 한국전쟁 당시에도 이 부분을 공격받아 파괴당한 사례들이 상당히 많다. 참고자료와 잠망경 사진포함
  • 트랜스미션 레버가 옆의 무전수(및 전방 기총 사수)의 탄약고(기관총 탄약을 넣어두는 곳)와 가까워서, 레버가 앞으로 가 있으면 기총수가 기관총 재장전을 할 때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또한 이 전방기총사수용 관측창은 오로지 손가락만한 기총 조준구밖에 없었다.
  • 포탑이 전방에 치우쳐 있으므로 전면장갑을 강화할 경우 차체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장갑강화가 힘들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42년 이후에 등장한 대전차 화기 상대로는 방어력의 우수성이 퇴색했다.

[63]

  • 포탑이 너무 앞으로 치우친 관계로 전차 상면에 조종수 해치를 못 만들기 때문에 전면장갑에 조종수용 출입구를 만들었다. 게다가 조종수용 관측창도 작아서 시야 확보가 힘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이동시에는 위사진과 개요의 영상처럼 출입구를 열고 다니는 일도 많았다. 이렇게 되면 차체 전면에 큼직한 약점이 생기는 셈이라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심지어 한국전쟁때는 이 약점을 노린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의 37mm포에 당하기도 했다.[64]
  • 해치의 수량이 모자라고 위치가 빠른 탈출에 적합하지 않다. 포탑의 전차장 해치와 조종수/보조 조종수겸 기관총수 바로 위의 해치를 합쳐서 총 3개의 해치를 설치한 M4 셔먼과 다르게, 이쪽은 해치가 2개밖에 없으므로 탈출을 제 때 못하다가 승무원이 유폭으로 사망했다. 특히 전면 조종수 해치는 구조적인 약점이었으므로 일반적인 해치보다 작게 만들 수 밖에 없었는데, 키가 큰 현대인들은 전면 해치를 열어두어도 탈출하기 버거울 정도다. 바닥에는 조종수용 탈출구가 있었지만 크기가 워낙 작았으므로 실효성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서방연합군에서 T-34에 대비되는 M4 셔먼에 비해 압도적으로 승무원들의 생존율이 낮았는데 특히 조종수는 거의 90% 확률로 사망하였고 전방기총사수도 조종수보다는 낫지만 어차피 피차일반으로 생존율이 낮았다. T-34가 격파될 때마다 생존하는 승무원은 평균 2~3명밖에 되지 않았다.
  • 트랜스미션 자체가 소련의 저열한 금속가공 기술 덕분에 수명이 매우 짧았고 조작하기가 힘들어 어떤 때엔 기어 자체가 안 들어가 망치로....때려 넣어야 했다. 따라서 운전수는 망치를 필수품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런 점이 비좁은 운전석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기동력을 저하시켰다. 물론 상대인 독일전차들의 구동계 신뢰성은 이토록 신뢰성이 부족한 T-34와 비교해서도 매우 안 좋아서 독소전에서 이 부분은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되었다.
  • 전차 내부가 비좁아 내부에서 이동이 상당히 제약되었다. 전술한 것과 같이 조종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처럼 있어야 조종이 가능했다. 3인용 포탑을 채용했지만 전차장은 좌석에 앉을 경우 무릎이 포수의 등에 닿아 방해가 되었고, 장전수는 딱히 앉을 공간도 없이 탄약 상자 위에 서서 허리를 숙여 탄을 장전하는 생고생을 해야 했다. 이 같은 내부공간 협소로 인해 체구가 평균적으로 작은 동양계를 선호했다.[65]
  • 이건 모든 소련제 병기에 해당되지만 부품자체의 정밀도가 낮거나 마무리가 거칠어 단순하고 고장안나는 이미지의 소련군이 무색하게 잔고장이 심했다.[66] 그래서 소련군은 아주 단순무식한 해결책을 내는데 '고장난 부품을 현장에서 교체한 후 고장난 부품은 버린다.'라는 해결책이었다. 고장난 부품을 갈아 끼우는것은 흔한 일이지만 여기서 교체하는 부품은 캐터필러나 탐조등 같은게 아니라 바로 엔진 그 자체였다. 게다가 브레이크 라이닝 등 툭하면 고장나는 부품은 아예 고장날 것이라고 간주하고 해당 부위 전체나 예비부품을 전차에 탑재한 상태로 출격했다. 원래 이런 경우에는 보통 고장난 곳을 수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소련군은 야전 수리능력이 딸려서 나름대로 현장에서 응급처치가 쉽고 간편한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67] 이런 잦은 엔진 고장의 원인은 초기형에 사용하던 공기 필터가 대기중 부유물을 걸러내기는 커녕 공기의 흐름만 차단하는 불량품이었기 때문이다.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니 출력 자체가 낮아지고, 걸러지지 않은 모래는 실린더 내부로 끼어들어가 엔진 자체를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애버딘 시험장에서 평가를 받은 보고서에서는 미군이 '스파이가 방해 공작의 일환으로 설계를 엉망으로 한 것 같다'고 혹평했다는 언급까지 있다. 이 문제는 1943년형 등 후기형에서 일명 사이클론 필터로 교체하고서야 해결되었다.[68] 겨우겨우 시베리아로 뜯어옮긴 공장에서 여성, 노인, 소년 같은 비숙련공들이 완성도가 어떻든 일단 닥치는대로 뽑아대던 1942년도에 생산된 T-34/76의 경우에는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Studies 28-1호에 실렸던 보리스 카발레르칙의 Once Again About the T-34 에서 설계상 보장시간이 100시간밖에 안 되었으며 이것마저도 야전에서는 고작 70시간 정도뿐이라는 매우 뒤떨어지는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까였다. 애초에 소련의 공업화 수준이 낮았는데다가, 이를 감안하지 않은 단기간에 이룩한 과도한 공업화에 따른 부작용, 낮은 공업화 수준을 통한 전시 대량생산을 시도했고, 이는 전차 대량생산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영국 또한 2차대전 당시 엄청난 삽질을 벌였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다고 봐야한다. 이런 T-34와 반대로 셔먼은 고장이 적어 호평이었는데 T-34가 T-34/85로 전환되는 과정에 수천대의 구형 T-34/76 재고를 안고도 전선에는 전차가 부족한 공급문제가 생겼을 때가 있는데 이때 랜드리스로 들어온 2000여대의 M4 셔먼을 부족한 T-34 대신 정예부대에 집중적으로 몰아주었으며 전차병들은 셔먼을 무고장 전차라며 사랑했다. [69] 전차병들의 경우 T-34보다 한단계 체급이 아래인 경전차에 불과한 스튜어트와 발렌타인의 전차병으로 배치되는 것을 T-34 전차병으로 배치되는 것보다 더 선호했다고 한다.[70] 물론 셔먼[71]이나 발렌타인같은 전차는 T-34/85에 비해서 화력이 떨어짐으로 지휘부 입장에서는 비교적 쉬운 임무에 투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차병 입장에서는 어찌 되었든 잘 고장이 안나면서도 어차피 어려운 임무는 강력한 T-34가 먼저 투입되고 화력이 떨어지는 랜드리스 차량들은 비교적 쉬운 임무에 투입되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72]
  • T-34는 중기형 까지 무전기가 없어서 각 전차들에게 무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전차장은 해치를 열어 다른 전차에게 손짓이나 작은 깃발로 지휘를 해야만 했다. 무전기가 장착된 차량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상부의 지시를 수신받을 지휘차량만 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즉, 차량간 긴밀한 전술 이행을 위한 용도가 아니었으므로 차량간 통신은 수신호에 의존해야 했다. 게다가 주변을 관측할수 있는 관측장비가 부족했다.[73] T-34에 무전기가 일찍이 장착되었더라면 적어도 손실율은 많이 줄었을 것이다. 사실상 초기 모델에도 전 무전기를 장착하려 했으나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우랄 산맥 너머로 공장 이전중이었다) 다수를 투입할 수가 없었기에 지휘 차량에만 보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급 상황이 나아진 이후에는 전 차량에 설치하게 되었고(대략 43년 중반) 1944년에 나온 85모델은 차체에 있던 장비를 포탑으로 옮겼다.

11.3. 종합

장단점을 종합해보면 전반적으로 물량으로 승부하는 싸구려 무기라는 인식이 강하지만,[74] 그것만으로는 무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전쟁무기로써 우수한 전차란 전차 자체의 기계적 능력뿐 아니라 생산성, 운용편이성, 유지보수능력 등 제반사항까지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제아무리 기술적으로 우수한 무기라도 생산 및 운용비용이 너무 비싸거나 고장이 잘 나면 결국은 전투에서는 이기지만 전쟁에서는 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거기에 T-34의 대량생산에 무기대여법을 통한 서방연합국의 지원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것도 이야기도 반만 맞는 이야기이다. 무전기등 부속설비의 장비에는 서방연합국의 지원물자가 요긴하게 쓰였고, 또 다른 장비의 생산에 투입될 노력이 T-34에 집중되며 생산량 증폭에 크게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우선적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T-34 자체가 생산성이 높은 전차였다는 점이다. 일례로 T-34가 첫 생산된 1940년 9월부터 독소전쟁 발발 직전까지 랜드리스는 꿈도 못꾸고, 전시체제도 아닌 평시상황에서, 쿨리크 원수의 지속적인 방해 속에서, 단 2곳의 전차공장에서 9개월간 생산된 T-34의 수량이 1,220대였는데, 독소전이 가열되던 1943년 한해 동안 독일이 생산한 (숫적 주력인) 4호 전차의 총 생산 수량이 3,013대였던 것을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다.

단지 단일모델 일변도의 대량생산을 통한 최고 효율의 규모의 경제[75]를 유지하기 위해 소련군은 나치 독일에 비해 개량사항이 상당히 늦게 반영되는 편[76]이라 화력강화가 상당히 늦은 시점에서 결정되었으므로 불필요한 희생이 컸으며, 독소전쟁 후반기의 소련의 진격속도를 느리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을 쓰던 간에 전장에 적정수준 이상의 능력을 가진 전차를 대량으로 쏟아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인데, T-34는 이 기준에 거의 완벽히 적합하며, 소련 정부가 여성과 노인, 소년으로 이루어진 노동자들로도 이 전차를 대량 생산 및 대단위로 전선투입을 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영국 전차기술학교에서 1944년 작성한 T-34에 대한 보고서에서도 잘 나타나있으며, T-34가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명세를 떨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12. 파생형

(위에도 설명된 T-34/57, T-34/76과 T-34/85의 년도별 바리에이션은 제외)

  • 소련
    • T-34M: A-43
    • T-43: KV-1과 T-34를 통합하는 주력전차 계획에서 T-34를 개량하여 발전시킨 모델 차량. 채택되지 않고 T-34/85에게 포탑을 건네준다.
    • OT-34/76(85): 화염방사전차.
    • SU-122: T-34 차체를 이용하여 122mm M-30 곡사포를 장착한 다용도 중형 자주포 모델.
    • SU-85: T-34 차체를 이용하여 85mm 대공포를 전용한 전차포를 장착한 대전차 특화 중형 자주포.
    • SU-100: SU-85에서 장갑등을 개량하고 100mm D-10을 올린 대전차 특화 중형 자주포.
    • SU-100M-1: 우랄 중기계공장에서 T-34/85의 차체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전투실은 전차 후면에 있었다. 양산에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는 T-44의 차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SU-100M-2가 더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대전차 특화 중형 자주포.
    • T-34/100: 2종류가 만들어졌었는데 183번공장에서는 T-34/85에다가 100mm ZiS-100/D-10T을 올린 시제 T-34를 만들어 보았으나 별로라는 취급을 받고 탈락하였고 92번공장에서는 T-34/85에다가100mm LB-1(D-10T의 친척)을 올려서 만들었는데 이쪽은 그럭저럭 평은 좋았으나 아예 새로설계된 전차( T-44 , T-54)를 뽑는게 좋겠다는 판정을 받고 대량생산은 되지 못했다.

포탑을 제거하고 구난전차로도 개조되었다. 사진은 쿠르스크 전투에서 T-34/76을 견인 중인 모습. 34/76이 포탑 날아간 전차를 끌고가는 게 아니다
  • 중국
    • 58식: T-34/85의 중국 복제판. 전차장 해치와 큐폴라를 개량하고 더한 58식-I와 58식-II이 있다. 양산되지 않았다.
    • 63식: 58식을 베이스로 63식 대공자동포를 쌍열로 사용하는 대공자주포. 베트남 전쟁 당시 월맹군 장비로 사용되었다.
  • 이집트
    • T-100(T-34/100): 이집트에서 T-34에 포탑을 마개조하고 100mm BS-3 대전차포를 올린 버전. 오픈탑이며 목돌이다.
    • T-122(T-34/122): 이집트에서 T-34에 포탑을 마개조하고 122mm D-30 곡사포를 올린 버전. 오픈탑이며 목돌이다.
  • 나치 독일
    • Flakpanzer T-34: 노획한 T-34에 2cm 대공포를 올린 자주대공포. 시험기만 만들어졌다.1944년 중반에 653 중구축전차대대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 폴란드
    • T-34-85M1/M2: 폴란드에서 개량한 T-34, 각각 소련의 T-34 Mod.60과 Mod.69과 흡사한 개량이 되었다.
  • 시리아
    • T-34/55: 현대화 사양.
    • T-34/122: 시리아에서 T-34에 122mm D-30 곡사포를 올린 자주포. 이집트 버전과는 달리 포탑이 없고 포와 포방패만 있다.
지휘용, 구난전차, 소방전차(Big Wind, 포탑을 제거하고 MIG-21의 엔진 2개를 장착해서 대량의 물과 진화용 약품을 쏟아낸다.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의 유전에 불을 지르고 튀었을 때 투입되었다.)의 (상대적으로) 비전투 모델은 제외했다.

13. 독일

독일군이 노획한 T-34 1940년형[77]

독일군이 노획해 운용한 T-34-85[78]

독일식 위장무늬까지 칠해서 운용중인 독일군의 T-34-85

Flakpanzer T-34 대공전차[79]

독소전쟁 발발 1년전에 히틀러는 독일의 3, 4호 전차 생산공장에 소련 기술진 방문을 허가해 주었는데, 소련 기술진과 무관들은 당시 독일군의 주력이었던 이 전차를 보고 "이것은 T-34나 KV-1으로 해볼만하다"는 평가를 내렸고, 도리어 "독일놈들이 페이크로 한물간 놈을 우리에게 보여준게 아닐까?"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독일측에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장래를 위해 3호 전차에 장포신 60구경장 5cm 전차포를 빨리 장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나, 소련의 신형 전차로 실제 어떤 물건이 튀어나올 지는 예측하지 못했고, 그래서 앞서 언급한 충격을 받게 된다.

독일군의 기갑부대 지휘관들이나 일선 전차병들도 대부분 T-34를 꽤 위협적으로 평가했다. 독일 기갑부대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은 "몇 가지 기계적인 문제가 있지만, 여태까지의 독일전차보다 훨씬 우수하다."며 이 전차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정했다. 회고록 "기계화 부대장"의 모스크바 전투를 기록한 부분에서도 T-34 때문에 독일 기갑부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판처 클라이스트"라고 불린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원수 또한 "지금까지 나온 전차 중에서 가장 좋은 전차"라고 인정했다. 또한 독소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영미군 기갑부대와 싸워본 프리드리히 폰 멜란틴 중장은 후에 저서에서 "우리에겐 T-34에 맞설만한 것이 없었다."고 호평을 했다. 심지어 전설적인 티거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조차 동부전선에서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T-34라고 기록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반 독일군에게 T-34보다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KV-1 전차였다. 하지만 KV 전차는 구식 방식으로 바른 떡장갑만 빼고는 독일의 기술진들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전차였고, 오히려 부작용으로 느린 속도와 둔중한 반응속도, 게다가 중전차 주제에 T-34와 동급의 주포를 장착해서 화력이 빈약하다는 약점까지 있었기에 일단 초기의 충격을 이겨낸 독일군에게는 T-34와 비슷하거나 약간 처진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단, KV 전차 때문에 독일 전차의 중장갑, 중무장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사실이다.(KV-1 한대가 8.8cm 대공포까지 동원한 독일군의 공격에도 며칠간 버틴 사례가 있다. 이것이 독일 육군에게 4호 전차의 후속 차 설계 사상을 확립하는 데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국가 사정이 도통 전쟁을 치룰 상황이 아니었던 소련군은 초기 생산분의 기계적 결함과 숙련병 부족, 전황의 악화로 인해 멀쩡한 T-34를 비롯한 자군의 장비를 대량으로 유기했고 독일군은 이렇게 득템한 T-34중 상당량을 'Panzerkampfwagen T-34 747(r)' (r은 러시아라는 뜻)이라는 제식명을 붙이고 열심히 운용했으며, 독일식 큐폴라를 설치한 T-34 747(r)도 있다.

제23장갑사단 소속 T-34 747(r)

하지만 독일이 물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용했다는 것은 반만 맞는 이야기인데, 대전 말기 독일군은 서부전선의 연합군 차량도 노획한 적이 있지만 적성장비 시험용으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독일군이 노획한 다음에 전선에 투입한 적군 전차는 T-34 전차뿐이다. 독일에도 T-34 전차 에이스가 있는데 스위스 태생의 에밀 자이볼트란 사람으로 제2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에 입대하여 종전 때까지 노획한 T-34 전차를 타고 적 전차 65대를 격파하여 세계 최고의 T-34 에이스 전차장이 되었다. 이이제이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 밖에도 1941년 여름에는 노획한 T-34 전차 중 3대를 핀란드에 판매한 적도 있다.

14. 대중매체

영화,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 프라모델 등등, 2차 대전의 소련군과 냉전기 공산국가 군대가 등장하는 매체라면 거의 등장한다. 편의상 가나다순으로 기재한다.

14.1. 영화, 드라마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미국, 소련, 러시아 영화들에서는 아직도 주행이 가능한 T-34가 그대로 등장한다. 한편 라이언 일병 구하기켈리의 영웅들에서는 외형이 적당히 개조된 T-34가 독일군티거 역을 맡았는데, 포탑이 약간 앞으로 달려 있어서 VK 45.01(P)와 비슷하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대한민국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종종 등장하는데 보통, M48 패튼이 대역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 로드 넘버 원
    76mm포 탑재형의 레플리카를 만들어서 촬영을 하였다. 문제의 고증오류라고 까였던 그 전차 맞다. 허나 위에 써있듯이 현대 매체에서 북한이 76mm형을 쓴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서부전선에서는 몇몇의 오류를 제외하고는 제대로된 T-34/85가 등장하였다.

  • 인천상륙작전(영화)
    영화 후반 상륙작전에서 림계진이 타고 나온다. 하지만 무리하게 언덕을 올라가다가 주인공 장학수가 노획했던 자주포에 의해서 차체 하단이 뚫리면서 격파된다.

이하는 기타 작품.

  • 번개맨 극장판
    위의 서부전선에 나온 T-34-85 레플리카가 공식 예고편에서 작 중 악당인 잘난마왕이 해치를 열고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씬으로 등장한다. 개봉 이후 추가바람. 번개맨:너 이 자식 퍼싱맛을 못봤구나

  • 앤트맨(영화)
    대런 크로스가 과거 냉전 시절 행크 핌의 활약상이 담긴 흑백 영상을 보여줄 때 배경에 153번 T-34/85가 등장하며 승무원을 던져버리고 그 전차를 탈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에는 행크 핌 박사의 열쇠고리에 달려있는 자그마한 전차 모형으로 등장하는데...귀여워후반부에 시한폭탄이 장치된 핌 테크놀로지 밀실 안에 갇히게 될때 그 전차모형을 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행크 핌이 과거에 탈취해서 축소시킨 진짜 T-34/85였고, 이후 그걸 원래 크기로 돌려놓은 후 안에 탑승하고 조종하여 그 밀실을 탈출한다.[80] 레플리카가 아닌 오슈코시 군사 베테랑 박물관에서 가져온 진짜 T-34이다.

14.2. 애니메이션, 웹툰

프라우다 고교소속으로 등장하는데 76mm포 탑재형과 85mm포 탑재형이 모두 등장한다.

76/85형 가리지 않고 거의 전편 등장한다. 2차대전 그중에서도 독소전을 주로 다루다보니 4호 전차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일단 물량빨을 보여주지만 가끔 각성(?)하면 판터티거도 잡는다.

도깨비 탱크 T-34라는 이름으로 나오긴 하는데 T-34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거 치고는 생김새도 전혀 다른 모양이라 연관성은 불명하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2화에 등장하는 토오노 시키 쟁탈 두근두근 비치발리볼 대회에서 나이스어택 상품으로 귀전차(鬼戰車) T-34가 경품 목록에 등장한다. 물론 MVP상인 '시키씨와 둘만의 개인실 숙박권'에 그냥 넘어간다.

14.3. 게임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프로토타입, 76mm버전과 85mm버전 그리고 T-34M의 3가지가 존재.

T-34/76 형이 등장하긴 하는데... 1942년형 고증에 따라서 전차장의 관측용 큐폴라가 없다... 비슷한 포지션의 독일군측 4호전차에 비해 크나큰 단점. 따라서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선 해치를 열고 봐야하는데 이럴경우 저격수한테도 죽고. 숨어있는 독일군 보병에게도 소총맞고 죽을수가 있다. 다만 경사장갑 버프인지 4호전차에 비해 약점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전차'의 기본 모델로 T-34/85가 등장한다. 참고로 독일은 '팬저'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티거의 외형이다[81]. 게임 특성상 동급 보병과 기동성 말고는 아무런 보너스가 없기 때문에 도시 막타용으로나 쓰지 잘 안쓴다. 석유는 다른 필수 유닛들이 많이 사용하기도 하고..
워게임: 에어랜드 배틀에서 동독군과 폴란드군이 끌고다닌다. 스팸용 전차라서 수도 엄청나다. 후속작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는 북한군과 소련군도 T-34-85를 끌고 나와, 이론상 T-34만 운용할 경우 160대라는 미친 물량을 보여줄 수 있다.또한, 워게임: 유러피안 에스컬레이션에선 폴란드군 소속 유일한 폴란드군 전차로 나온다.(당시 시대배경이 60-70년대 사이에다가 폴란드는 1980년대 바웬사 정권도입전까지 공산정권이었으니 당연하다.그외의 체코같은 나라들은 탱크도 없다.)일반적인 이미지에 비해 주포가 매우 강력하며 2차대전 버전이든 60년대 후반의 개량형이든 상관없이 85mm 주포의 관통력이 1575m에서 무려 8이나 된다. 채피의 75mm포가 관통력 4, 판터의 75/70 주포를 개량하여 사용하는 AMX-13/75의 75mm가 관통력이 6이며 보통 소련제 85mm와 자주 비교되는 미제 76mm를 장착한 헬켓의 관통력도 6에 불과하여 소련의 85mm에 밀린다. 앞의 전차들은 심지어 사정거리도 T-34와 동일하다. 사정거리 문제로 실제 관통력은 T-34에 비해 조금 더 높지만 단순하게 사정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T-34와 관통력이 동일한 차량을 찾아보면 가관인데 일반적으로 확실히 85mm보다 상급으로 평가받는 미제 90mm 주포를 장착한 잭슨이나 초기형 M48, 일본의 61식 전차, 기타 서방제 90mm포를 가진 카노넨야크트판터 등도 역시 T-34와 동일한 관통력 8이며[82] 심지어 센츄리온 mk5의 20파운더도 85mm와 동일한 8의 관통력을 지닌다.[83]즉 이 게임에서 T-34의 85mm 주포는 일반적으로 밀덕들에게 박힌 이미지와는 달리 화력에 한정하면 1세대급 주력전차들에 준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관통력과 화력을 자랑한다. 역시 이 강력한 주포는 레오파르트 같은 물장은 물론이고 초기형 T-55나 M48 같은 방어에 신경 쓴 전차들의 전면도 뚫어낸다. 심지어 M1IP 같은 3세대 전차들도 T-34에게 측면을 보여주게 되면 T-34의 최대사정거리인 1575m에서 뚫리기 때문에 이에 몇몇 유저들은 T-34가 T-72와 동일한 거리에서 M1IP 에이브람스를 격파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하기도 한다.

소련 트리

중형전차 라인

프리미엄 전차

2 랭크

2 랭크

T-34 1940년형 L-11장착형

T-34 1941년형

T-34 Prototype 판매 종료

T-34 1941년형 (제1근위전차여단)

T-34 1942년형

T-34E STZ

T-34E

3 랭크

T-34-57

T-34-85 D-5T장착형

T-34-85

4 랭크

T-34-100

T-34-85E

독일 트리

프리미엄 전차

3 랭크

T-34 747(r)

워 썬더/지상 병기/소련 트리/중(中)전차 라인과 프리미엄 전차에서 2~4 랭크에 거쳐 많은 T-34 파생형이 등장한다. 2랭크에서는 T-34 1940~42년형과 T-34E STZ가 등장하며, 3랭크에서는 T-34-57과 T-34-85 D-5T 장착형, 4랭크에서는 T-34-85이 등장한다.프리미엄 전차에서는 2랭크에서 T-34 Prototype과 T-34 1941년형 (제1 근위전차여단), T-34E, 3랭크에서는 T-34-57 1943년형, 4랭크에서는 T-34-100와 T-34-85E가 등장한다.
천조국의 셔먼산맥과는 다르게 하나도 거를 타선없는 완벽한 T-34산맥이 수 많은 바리에이션의 T-34들의 장점은 모두 다 다르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물장갑이라는것.뭔 개소리지 독일 유저 앞에서 그 소리 해봐[84] 다만 경사장갑의 효율이 상당히 좋은 게임에 포탄의 경사장갑 착탄각에 따른 관통력 감소가 APCBC기준으로 60% 가까이 감소되는지라 킹타이거의 88mm Kwk43의 APCBC도 방심하고 쏘면 도탄이 날 수도 있다. 1942년형 이전의 형들은 차체 전면 상단 우측의 조중수 해치를 맞으면 한 방에 갈 수 있다.[85] 또한, 절대로 측면을 내주면 안 되는 이유가 공구상자와 예비장비가 있는 차체 전면 쪽에 가까운 상부 양쪽에는 연료탱크가 있는데, 이걸 맞으면 활활 불탄다(...) 소화기로 진압을 못하면 유폭하거나 소화기를 쓸 틈도 없이 바로 유폭이 되기도 한다.다만 T-34/57이후로 독일군 못지않은 탄속과 관통력을 가지게 되지만, 대신 작약량이 줄어 살상량이 영국철갑탄 상향판이란 느낌이 드는 정도로 줄어든다. 85mm 부터는 확실히 펀치력이 88mm가 부럽지 않을 정도.

T-34/76

T-34/85

T-34/85M

T-34/85 루디

T-34/85 Victory

소련 테크트리의 5,6티어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5티어는 76밀리 탑재형이지만 사람들은 거의 57밀리를 쓴다. 6티어는 85밀리 형태. 다른 나라의 5티어 탱크, 특히 같은 중형인 셔먼이나 4호 전차에 비해서 앵벌머신이라는 이름은 듣지 못하지만 크레딧 벌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특유의 경사장갑때문에 장거리 포격시 도탄 확률이 좋다. 57미리 속사포로 꾸준하게 데미지를 줄수도 있고, 76미리로 한방을 노릴수도 있다.(보병을 상대할 일이 없어 고폭탄 사용 여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게임 특성상 속사 화력이 좋게 설정된 57mm의 평가가 원본 76mm보다 더 좋다. 응? 근데 T-34는 애초에 대전차전을 하라고 만든거에 가까울텐데) 다만 장갑은 그렇게 좋지 않은 편이며 동 티어 전차들중에서는 고티어방에 끌려갔을 시 화력부족으로 가장 약해지는 전차이기도 하다.[86] 중국산 T-34도 있는데 거의 동급이라고 보면 된다. 6티어의 T-34-85는 동 티어 중에서도 가장 좋은 중형전차에 속한다. 준수한 기동성과 높은 화력이 합쳐져서 36,01이 중전차가 된 이후 6티어 최고의 중형전차로 꼽힌다. 물론 포탑장갑만 5티어에서 강화되어 장갑은 약하지만 중형전차에 장갑을 요구하는 것이 모순이다.원판 T-34는 엔진 마력 수치와 추중비에 비해 가속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이는 원본이 지녔던 기계적인 결함으로 인한 기동성의 악화를 약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조금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전차로는 독일의 판터가 있다.기프트샵 전용 골드탱크로 T-34/85M도 있는데 포는 T-34/85보다 약하지만 전면 장갑이 강화된 형태다.T-34의 후속작으로 거론되던 A-43과 A-44 등은 2차 중형 트리로 갈라져나왔다. A-44의 성능 평가는 좋지 못하다.

Type T-34

Type 58 (58식 중형전차)

T-34-1

T-34-2

T-34-3

중국은 T-34의 중국 버전인 Type T-34를 5티어부터 운용하게 되며, 6티어인 Type 58 역시 소련 T-34-85의 모양까지 똑같은 중국 버전이다.[87] 오만가지 마개조를 하여 원판과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7, 8티어 T-34-1/T-34-2/T-34-3까지 T-34의 이름을 쓴다.
T-34/76을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무기고에서 85mm 주포 업그레이드를 마치면 T-34/85를 사용할 수 있다.
T-34/76이 등장하며 독트린에 따라서 T-34/85를 호출하는것이 가능하다.
T-34/76형이 등장한다. 세계대전 때부터 지을 수 있는 군사기지를 지으면 1개 분대, 총 3대가 지원된다. 공격력과 체력이 높지만 이동속도가 느리다. 냉전 때 반응장갑 업그레이드를 통해 체력을 높일 수 있다.

라 푸에르타에 있는 한 고철상에 가면 T-34/85형 고철이 있다.[88]

14.4. 모형화

2차 대전의 대표적인 전차다보니 왠만한 모형 회사에서는 다 내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티거와 마찬가지로 가장 많은 T-34 바리에이션을 낸 메이커이다. 심지어 '1940년형' 극초기형도 발매하였으며, 각 형식과 공장생산 차량을 충실히 발매하였다. 그래서 다양한 T-34를 수집하고 싶은 사람들은 드래곤을 선호하는 편. 매직 트랙과 에칭 등 내용물도 충실했다, 그러나 DS 궤도(...)와 에칭을 뺀 채(!) 재발매된 킷의 수준은 충격과 공포 수준. 또한 T-34/85 독일군 노획형은 박스아트의 형태를 재현할 수 없는 황당한 오류마저 있다. 블랙 레이블 시리즈와 더불어 이해할 수 없는 드래곤의 병크 중 하나.
최근에 1/35 스케일의 T-34/85 1944/45년형 112공장제와 한정판으로 183공장제의 베를린 전투버전을 발매했다. 문제는 112공장제와 183공장제 둘 다 꽤 많은 오류들이 있다(...) 특히 포탑과 용접선 또한 전면의 조종석 해치와 포탑의 환기구 등의 주조질감 재현이 너무 과장되어 많은 모델러들이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실차와 비교해 보았을때 실제로도 상당히 주조질감이 거친 모델들도 있어 논란이 되는 부분. 여하간 많은 모델러들이 고대하던 아카데미제 T-34임에도 불구하고 포탑 문제로 인하여 상당히 논란이 되었던 키트이기도 하다. 특히 183공장제는 포탑 프로포션도 뭔가 어색해서 더 비판받는 부분이 있다. 가격은 3만원 미만으로 아카데미답게 국내에서는 싼 편이라, 오류를 감수하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T-34/85를 장만하고 싶은 초보자라면 하나쯤은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트랙은 반 연결식으로 재현되어 있으며, 에칭도 들어있다. 183공장형은 베를린 전투 버전으로 베드스프링도 에칭으로 함께 들어있으니 나름 가치가 있다. 특이하게 여분 부품중 우랄 공장형 곡면 펜더가 들어있어 다른 바리에이션 확장을 염두하고 있나 예측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2016년 2/4분기 신제품 예고에서 T-34/76(1943년형) 독일군 노획 개량 버전(큐폴라가 4호 전차 전차장 큐폴라.)을 발매했다. 이번 T-34는 평가가 좋은 편이다.
다양한 스케일로 40년형(1/100),42년형, 43년형, 43년형 마인롤러 장착형, T-34/85이 발매되었다. 1/100 1940년형은 5개(...)의 부품으로 1940년형 T-34를 그럭저럭 재현했으나, 공축기관총이 없어서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 에이스모형
1/72 T-34-85를 발매했다.
1/35 스케일의 T-34/76과 85의 여러 버전이 있다. 타미야답게 품질이 준수하지만 가격 대비는(...) 구난용 목제와 애칭을 포함한 1/24 스케일의 T-34/85 한정판[89]을 최근 발매했는데 가격이 후덜덜하다. [90]
무려 1/16 스케일에 내부를 완벽 제현(!)한 T-34/76 1942년형과 1943년형, T-34/85 1944년형 174공장, 183공장제 등 총 4가지가 있다. 크리스티 현가장치 구현과 금속 애칭 세트, 준수한 품질 등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답지 않게 괜찮다. 대신 12만원대라는 비싼 가격과 생각 이상의 많은 양의 도색 필요, 김치통만한 작지 않은 크기, 예비 부품마저 없어서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멘탈이 깨질 수 있으므로 매우 주의를 요한다
  • AFV클럽
대만 메이커인 AFV클럽에서도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발매하였으며, 전 라인업이 내부 재현에 일부 제품에서는 클리어 외장까지 제공하는 등 생각보다 구성이 충실한 키트다. 일단 타사 T-34 킷들의 경우 오류가 많은 아카데미 정도를 제외하면 의외로 최신 금형이 거의 없는데 반해 T-34/76은 2009년, T-34-85은 2013년에 판 따끈따끈한 금형을 쓰며 재현도나 품질도 우수하다. 2017년 4월 현재까지 나온 라인업은 내부재현 부품을 볼 수 있도록 포탑/차체에 클리어 부품을 쓴 제품이 T-34/76 42년형 112 공장제, T-34/76 42/43년형 183 공장제, T-34/85 44/45년형 174 공장제 세 종류 있으며 내부가 가려지는 통상적인 킷은 T-34/76 42년형 112 공장제, T-34/76 42/43년형 183 공장제, T-34/85 44년형 각각 174와 183 공장제까지 네 종류가 있다.
  • Revell
독일 메이커 레벨에서도 T-34를 발매했는데 동구권 메이커 재포장인지는 확인 바람.
  • ICM
동구권 메이커 ICM에서도 1943년형 T-34/76을 초기 후기형의 2가지 바리에이션으로 발매하였다. 자세한 정보는 추가 바람.
  • 종이모형
워게이밍 러시아 서버에서 독일노획,T-34/76,T-34/85의 도면을 제공하고 있음.(독일 노획): http://worldoftanks.ru/ru/media/10/pz_kpfw_747_T-34_r(76): http://worldoftanks.ru/ru/media/10/paper_tank_t-34(85): http://worldoftanks.ru/ru/media/10/t_34_85_fan_model

2차대전 라인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독일의 티거, 판터, 그리고 미군의 반궤도장갑차 다음으로 공개되었다. 티거 출시 당시의 아쉬운 점이었던 포탑의 각도제한이 수정되어 수직은 물론 목 뒤까지 젖힐 정도로 포신이 가동하며, 마침 지난 분기에 출시한 제품이 한국전쟁 사양 이지에잇 셔먼이라서 한국전쟁 구성도 가능해졌다. 한국에서 블록으로서 구할 수 있는 최초의 소련제, 그리고 공산권 전차라는 큰 의의가 있다.

15. 둘러보기

제2차 세계 대전의 소련군 기갑차량

전차

경전차

T-26, T-27, T-37, T-38, T-40,
BT 전차, T-50, T-60, T-70, T-80, NI 전차

중형전차

T-24, T-28, T-34, T-44

중전차

T-35, KV-1, KV-85, KV-2,
IS-1, IS-2, IS-3

장갑차

D-8/12, BA-3/6, BA-10, BA-11, BA-20, BA-27, BAL/BAL-M, FAI/FAI-M, BA-64, 이조르스크 장갑차

자주포

BT-7 KT-28 76밀리 곡사포 장착형, ZiS-30, SU-122, SU-76, SU-152, SU-85, ISU-152, ISU-122, SU-100

다연장로켓

카츄샤 다연장로켓

차량

T-20, GAZ-64, GAZ-AA(AAA), GAZ-MM, GAZ-M1, GAZ-03-30, ZiS-5, ZiS-6, YAS-6, 코민테른 포병용 트랙터, 보로실로베츠 중 포병 트랙터

모터사이클

M-72

랜드리스 차량

M3/M5 스튜어트, M3 리 / 그랜트, M4 셔먼, 발렌타인, 처칠, 마틸다, SU-57, 브렌건 캐리어, CCKW, 윌리스 MB, 포드 GPA

노획 및 개조차량

3호 전차, 3호 돌격포, 4호 전차, 판터, 티거S, 티거 2S, 마우스S, 페르디난트S, 야크트티거S

프로토타입

S-51, SU-14, KV-220, KV-3, KV-13, A-20, A-32, A-34, A-40, A-43, A-44, T-43, T-46, SMK, T-100, T-150, SU-100Y, IT-45, IT-76, SU-122-44, T-54C, IS-4C, IS-6

페이퍼 플랜

KV-4, KV-5, 소련의 기갑병기 설계안 중 일부, LTP, MT-25, LTTB, 오비옉트 212

그 외

KV 전차, 스탈린 전차, 소련군/차량, 무선전차, KhTz-16 트랙터 전차

※ 윗첨자S: 노획하였으나, 운용하지 않음
※ 윗첨자C: 프로토타입 상태로 종전 후 양산 됨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군 기갑장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장갑차

반궤도 장갑차

Sd.Kfz. 251, 마울티어, Sd.Kfz. 250

장륜 장갑차

M35 Mittlere Panzerwagen (ADGZ) , Sd.Kfz. 221, Sd.Kfz. 231, Sd.Kfz. 234

전차

경전차

Pz.Kpfw. I, Pz.Kpfw. II

중형전차

Pz.Kpfw. III, Pz.Kpfw. IV, Pz.Kpfw. V Panther I

중전차

Pz.Kpfw. VI Ausf.E Tiger I, Pz.Kpfw. VI Ausf.B Tiger II

구축전차

Jg.Pz. 38(t) Hetzer, Jg.Pz. IV, Jagdpanther, Tiger (P) Ferdinand / Elefant, Jagdtiger

대전차 자주포

Panzerjäger I, Marder, Nashorn

돌격포

StuG.III, StuG.IV, Sturmpanzer IV, Sturmtiger, 돌격보병전차 33B

자주포

1호 자주포, 베스페, 2호 자주포, Grille, Hummel, Karl, 105mm leFH18(Sf) LrS, 150mm sFH13/1(Sf) LrS, 판처베르퍼, 부르프라멘 40

자주대공포

4호 대공전차(뫼벨바겐, 비르벨빈트, 오스트빈트, 쿠겔블리츠), 38(t) 대공전차

노획차량 및 개조품

Pz.Kpfw. 35(t) , Pz.Kpfw. 38(t) , le.Pz.Kpfw. TK(p), le.Pz.Kpfw. TKS(p) , Pz.Kpfw. 7TP 731(p) , T-15 경전차 , 르노 UE 슈니예트 , 르노 AMR-33/35 , Pz.Kpfw. 35R 731(f) , Pz.Kpfw. 35H 734(f) , Pz.Kpfw. 38H 735(f) , Pz.Kpfw. 737 FCM(f) , Pz.Kpfw. S35 739(f) , Pz.Kpfw. B-2 740(f) , Pz.Kpfw. T-34 747(r) , T-28 746(r) , T-35 , Pz.Kpfw. KV-1 756(r) , Pz.Kpfw. KV-II 754(r) , Mk.II 748(e) , Mk.III 749(e) , M3 Lee , Pz.Kpfw. M4-748(a) , P40 737(i) , M15/42 , Semovente M43

프로토타입

T-25 , L.tr, G.tr, Neubaufahrzeug, 호이슈레케 10, D.W. 1 / 2, Pz.Kpfw V/IV, VK 시리즈, 기갑 자주포, VK 30.01 / 02, VK 36.01, VK 45.01(P), VK 45.02(P), VK 65.01, Panther ll, Pz.Kpfw Maus, E-100, Geschützwagen Tiger, Räumer S, 8,8cm waffenträger

페이퍼 플랜

Pz.Kpfw.III/IV,Pz.Kpfw.IV Schmalturm ver. ,VK 16.02 레오파르트, Pz.Kpfw VII Löwe, Pz.Kpfw IX /X, E 시리즈, 돌격전차 Bär, Strumpanther, Landkreuzer P-1000 Ratte/라테, P-1500(몬스터), Pz.Kpfw VI Ausf.B TIger ll mit. 10.5cm Kw.K. L/68, waffenträger auf Pz.IV

차량

퀴벨바겐, 슈빔바겐, 오펠 블리츠, 메르세데스 벤츠 G5, 메르세데스 벤츠 LG3000, 규격승용차(Einheits-PKW)

모터사이클

R-75, Sd.Kfz. 2 (케텐크라프라트, 케텐크라트)

그 외

동부용 궤도식 트랙터, Goliath, 보르크바르트 4호, VsKfz 617, 판처베르퍼, 쿠겔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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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전쟁을 포함한 제2차 세계대전기의 핀란드군 기갑장비

전차

경전차

르노 FT-17 &quot;Koiras&quot;/&quot;Naaras&quot;, 카든 로이드 Mk.VI, 카든 로이드 M1933, 비커스 Mk. E/T-26E, BT-5SO, BT-7SO, T-26A/B/CSO, T-50SO, T-37SO, T-38SO

중형전차

T-28SO, T-34/76SO, T-34/85 &quot;Sotka&quot;SO, 4호 전차 J형 &quot;Ravistin&quot;

중(重)전차

KV-1E &quot;Klimi&quot;SO

화염방사전차

OT-26SO, OT-130SO, OT-133SO

장갑차

L-182, FAISO, D-8SO, BA-3SO, BA-6SO, BA-10SO, BA-20SO, BT-43

돌격포

3호 돌격포 G형 &quot;Sturmi&quot;, BT-42

자주포

SU-76SO, SU-152SO, ISU-152SO

자주대공포

40 ItK/38

화포견인차

T-20 콤소몰리예츠SO

※ 윗첨자SO: 소련군에게서 노획(운용 수량이 1, 2대 수준에 불과한 차량이 많으니 제식여부는 별도로 알아보자)

냉전기의 소련군 기갑장비/소련식 분류

전차

시대별 구분법

1세대 전차

中전차

T-34, T-44

重전차

IS-2, IS-3

2세대 전차

中전차

T-54, T-55, T-62

重전차

IS-4, T-10

경 수륙양용 전차

PT-76

미사일 구축전차

IT-1

3세대 전차

1세대 주 전차

T-64[A]

2세대 주 전차

T-72

3세대 주 전차

T-80

MBT 기준 세대구분

1세대 MBT

T-62B, T-64, T-72, T-72A

2세대 MBT

T-64BV, T-64BM, T-64E, T-72B, T-80, T-80A, T-80U

장갑차

장륜장갑차

BTR

궤도장갑차

차량

소형

UAZ-469, GAZ-64

트럭

ATS-59,GAZ-66

자주포

ISU-152, SU-122-54, ASU-57, ASU-85, 2S1 그보즈디카, 2S3 아카시아, 2S4 튤판, 2S7 파이온, 2S19 Msta-S

다연장로켓

카츄사 다연장로켓 시리즈


  1. [A] 1.1 다만 T-64A부터 T-64는 중형전차라고 불렸다.

냉전기 체코슬로바키아 인민군 기갑차량 둘러보기

{{{#!folding 【틀 펼치기/감추기】

냉전기의 체코슬로바키아 인민군(1954~1990) 기갑차량

기타 전차

T-34, IS-2, T-40

MBT

1세대

T-54(A/AM/AR Reika), TVP,
T-55(A/AM1 · M1B/AM2 Dyna-1 · M2B/AMB)

2세대

T-50/51,T-62, T-72(M1/M1CZ · M2CZ)

장갑차

장륜장갑차

OT-64(A/C), OT-65, BRDM-2

궤도장갑차

OT-810, BPzV, OT-62(A/B/Vydra), BVP-1 · OT-90, BVP-2

차량

소형

스코다 1101 VO, UAZ-469

트럭

타트라 148 · T-813 · T-815, 스코다 6L · RSO · 706, 프라가 V3S

자주포

자주곡사포

ShKH vz.77 Dana, 2S1 Karafiát, 2S7 Pivonka

자주박격포

2S4

대전차 자주포

SU-100, ISU-152

대공 차량

자주대공포

Vz.53/59 PLDvK, STROP-(1/2)

단거리 대공미사일

PLRK S-1M2, PLRK S-10M, 9K33(M2/M3) 오사

다연장로켓

BM-24, RM vz. 70

이텔릭체: 외산차량
취소선: 계획되었으나, 취소된 차량

}}}

한국전 북한군 공산군 기갑차량

전차

중형전차

T-34/76, T-34/85

중전차

IS-2

장갑차

BA-64, BA-3/6

자주포

SU-76, SU-85, SU-100

다연장로켓

카츄샤 다연장로켓

차량

GAZ-64, GAZ-AA(AAA), ZiS-5, ZiS-6

모터사이클

M-72

노획 병기

M5A1 스튜어트, M4A2 셔먼, A27M 크롬웰, 95식 경전차 하고, 97식 전차 치하[A]


  1. [A] 1.1 취소선 처리된 차량들 전부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 이를 입증할 사진이나 문서가 없으므로 취소선 처리함.

베트남전기의 베트남 인민군(월맹군) 기갑장비

{{{#!folding 【펼치기 · 감추기】

전차

경전차

PT-76, 62식 전차

중형전차

T-34/85

MBT

T-54, T-55, 59식 전차

APC

BTR-60, BTR-50, BMP-1, 63식 장갑차

자주대공포

ZSU-57-2, ZSU-23-4 쉴카

기타

SU-100, IS-2

}}}

현대 북한군 기갑차량 둘러보기

{{{#!folding 【틀 펼치기/감추기】

현대의 조선인민군 기갑차량]]

기타전차

T-34-76/85WPRG

MBT

1세대

T-54, T-55, 59식

2세대

T-62, 천마호 (가 ~ 바)형M

2.5세대

폭풍호, 선군호

경전차

PT-76, PT-85M, 62식 전차, 63식 전차

장갑차

장륜장갑차

BTR-152, BTR-60PB, BTR-80A/Y, BRDM-2, M-1992 WAPC, M-2010 WAPC

궤도장갑차

BTR-50P/PK, 63식, BMP-1, VTT-323, M-2010 준마

차량

소형

GAZ Vodnik, GAZ-69, UAZ-469/승리-415, BZ-2020SJ, 갱생-68/85

트럭

ZiL-130 · 131 · 135 · 151 · 157,
MAZ-7310, Ural-4320, 로만, 승리-58/61WPRG

자주포

자주곡사포

M1978 · 1989 곡산, M1977 100mm, M1992 122mm, M-1975 · 1981 · 1991 122mm,
M-1977 · 1992 130mm, M-1974 · 1985 152mm

자주박격포

M-1992 120mm

대전차 자주포

SU-76WPRG, SU-100WPRG, M-1974 85mm, M-1972 100mm

대공 차량

자주대공포

ZSU-57-2, ZSU-23-4 쉴카, M-1985 37/57mm, M-1992 30mm

단거리 대공미사일

9K31, 번개-3

다연장로켓

63식, 75식 MRL 여맹호, M1977 107/122mm, M-1977 · M1985 · M1993 122mm,
BM-11, BMD-20, BM-24, M-1989 · 1991, KN-09, KN-16

※ 윗첨자M: 개조 차량
※ 윗첨자WPRG: 준군사조직인 로농적위군 (Worker-Peasant Red Guard)에서 사용하는 차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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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레닌그라드 키로프 185호 공장으로 키로프 공장과는 다르다.
  2. [2] 최근 야인시대 합성물에서 자주 봤을 견고한 무쇠덩어리이석재나, 의사양반이 드는 쇠몽둥이를 지칭한다.
  3. [3] 서방식 세대구분법과는 다르다.
  4. [4] 전쟁 초기에는 T-34의 성능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숙련도와 전술문제로 밀린 것과 전쟁 후기 훨신 거대한 티거나 판터 같은 중전차를 상대로 성능상 부족했던 것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다.
  5. [5] 떼-뜨리 치띄리
  6. [6] 당장 그 천하의 독일 3호 전차도 비슷한 시기에 45mm와 비슷한 체급의 50mm 썼다는 걸 유념하자.
  7. [7] 사실 A-43은 T-34 초기형에서 단점으로 거론되었던 2인용 포탑 대신 3인용 포탑을 사용하고 여러가지 설계상의 문제점을 고칠 목적으로 개발되던 것이라 완전히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Zaloga, S., Sarson, P., T-34/76 Medium Tank 1941-1945, 1997, 13) 개발이 T-34의 생산과 같이 진행되어 방해를 주지 않았으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쿨리크 본인의 사사로운 호불호 때문에 T-34의 생산을 완전히 중단시키라고 압력을 넣은 것이었다.
  8. [8] L-11 전차포를 장착한 초기형으로 쿨리크 원수의 방해공작 때문에 1940년에는 117대만 생산되었다. 이전 내용에는 현재까지 살아남은 1940년형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라고 했으나, 러시아의 예카테린부르크의 한 지역인 Verkhnyaya Pyshma의 군사/역사박물관에 한대가 전시되어있다.
  9. [9] F-34 전차포를 장착한 사양으로 1941~42년에 생산되었다.
  10. [10] 1942~1943년까지 생산되었으며 포탑이 육각형으로 변경된 후 방어력이 올라가고 내부 공간이 조금 넓어졌다.
  11. [11] 이란 방면을 통한 랜드리스는 42년이 되어야 운영되기 시작하며 랜드리스의 혜택은 이미 소련이 우세해진 43년이 되어서야 재대로 누리게 된다. 그리고 43년이면 이미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막 끝나고 독일이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다.
  12. [12] 철갑탄을 아예 지급받지 못해서 대전차전에서 별 소용이 없는 고폭탄만 쏘거나, 심하면 포탄이 아예 없어 동축 기관총만 쏘다가 산화되기 일쑤였다. 이 역시 쿨리크가 포탄 생산을 방해해서 벌어진 사태이다.
  13. [13] Zaloga, 10-11
  14. [14] 500대 가량이 생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리고리 쿨리크 원수의 방해 공작으로 프로토타입을 포함한 117대만 생산되었다.
  15. [15] 초기엔 무전기가 장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님이라 불릴 정도로 차체 전방기총을 발사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보통은 뻑뻑한 5단 변속기를 조중수와 함께 변경하거나 전차장에 조수 역할을 했다.
  16. [16] 독소전쟁 초기에 대다수가 투입되어 소모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운용기간을 알 수 없다.
  17. [17] 2인용 포탑이기 때문에 포수다.
  18. [18] 포방패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
  19. [19] 무전과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
  20. [20] ZiS-2 대전차포를 전차포로 개조한 것이다.
  21. [21]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석과 포탑 장전수석에 각각 1정씩 있다.
  22. [22] 3,087발까지도 적재되었다는 얘기가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23. [23] T-34-57은 단 50대만 생산되어졌다. 1943년형 프로토타입까지 포함하면 51대
  24. [24] 어느 정도냐 하면 BR-271P 포탄 기준으로 100m 거리의 관통력이 88mm 전차포와 맞먹는다.
  25. [25] T-34/57 의 주포는 원래 대전차전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ZiS-2 대전차포였기 때문. 기술이 모자랐던 2차 대전 당시에는 일반적인 고폭탄을 탄속이 빠른 장포신 포에 넣고 쏘면 포탄이 포신 안에서 자폭할 위험성이 있었으므로 단포신 곡사포를 쓰거나 포탄의 벽을 두껍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포탄 벽의 두께를 늘리면 그만큼 들어가는 작약의 양은 줄어들어 위력도 감소한다. 영국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겪어서 2파운더용 고폭탄은 포 자체가 도태되기 전까지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고 6파운더17파운더용 고폭탄 역시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26. [26] 소련에서 생산한 기간이다.
  27. [27]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면허 생산한 기간이다.
  28. [28] 유고슬라비아에서 면허 생산한 기간이다.
  29. [29] 소련에서 25,000여 대 정도가 생산되고, 나머지는 체코슬로바키아와 유고슬라비아에서 면허 생산된 것을 포함한 것이다.
  30. [30] 단 이것은 소련의 운용기간으로 현재도 여러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아직도 M4 셔먼과 함께 현역으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31. [31] 현재도 예비용으로 T-34/76과 함께 운용 중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북한군 병사들을 T-34/76 위에 태운 채로 운용하는 영상이 찍혔다.
  32. [32] 차량에 따라 다르지만 후면장갑은 40mm 혹은 45mm였다.
  33. [33] 3인용 포탑이기 때문에 더 이상 포수의 역할을 병행하지는 않지만, 포수 또는 장전수가 전투 불능 시에 포수 또는 장전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34. [34] 포방패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
  35. [35] 무전과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
  36. [36] 1943년 초부터 1944년 3월까지 생산된 전차에 장착되었다.
  37. [37] 1944년 3월부터 1951년초까지(소련에서 생산 종료된 시기) 생산된 전차에 장착되었다.
  38. [38]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석과 포탑 장전수석에 각각 1정씩 있다.
  39. [39] 3,087발까지도 적제한다는 소리가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40. [40] 실제로 85mm의 APCR 관통력은 175mm 내외였고, Pak 40의 APCR 관통력은 180mm 수준이었다. 물론 Pak 40이 APCR을 보급받을 수가 있다면 말이지.
  41. [41] 또한 큰 차이가 있지는 않으나 T-34-85는초기형의 D-5T보다 약간 더 길고 전체적으로 약간 더 뛰어난 ZiS-S-53 포를 주력으로 사용했다.
  42. [42] 사실 게임에서 골탄으로 넣고 쏘거나 그냥 스팩딸 칠게 아닌 이상 APCR 관통력 비교는 별 의미가 없는데 2차대전 시점에서는 연합군이든 추축국이든 APCR(HVAP) 같은 특수탄은 매우 비싸고 생산도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단차 시점에서는 탄약고를 탈탈 털어도 단 한발도 없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아주 아주 아주 희귀한 탄이었기 때문이다.(그나마 WW2후기 소련만이 APCR을 통상적인 정규탄으로 보급하여 유별나게 어마어마하게 풍족히 가지고 다녔는데 이 어마어마하게 풍족하다는게 차량당 4발이다.) 이 귀한 탄은 혹여나 보급받으면 아끼고 또 아껴줬다가 중전차 상대로나 쓸 수 있었는데 이 상황은 희귀금속이 부족해서 애초부터 고급탄을 많이 뽑을 수가 없는 나치는 물론이고 비교적 자원이 풍족했던 미국의 셔먼전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셔먼용 HVAP탄은 유럽에서 전쟁 끝나기 직전인 45년 3월에야 제식으로 채용되었으며 이 때문에 셔먼에게 HVAP탄은 HE 70%, AP 20% 연막탄10%의 WW2 당시 셔먼의 일반적인 탄약구성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프로토타입 HVAP탄을 가끔 임무에 따라 한두발 운 좋게 받을 수 있었다. 셔먼용 HVAP탄은 WW2가 아닌 6.25시기가 되서야 예상외로 튼튼한 T-34를 상대하기 위해 이지에잇 셔먼에게 통상적인 정규탄으로 지급되었다. Steven Zaloga, M4 (76mm) 1943-1965
  43. [43] 1920~2010. 1939년에 대학을 마치고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40년 장교로 징집되었다(당시 소련도 임박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을 확장하고 있었으나, 장교부족 사태 때문에 대학생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에게 속성교육을 시키고 학사장교로 임관시켰다. 전쟁이 터진 후에는 아예 조금이라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조리 장교로 임관시켜 소대장이나 중대장을 맡겼지만, 이렇게 군사훈련을 전혀 안받은 전술적 무학자들이 소대나 중대를 지휘하다가 소련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이들도 짬밥이 생기면서 베테랑이 되고 소련군의 전력은 급상승한다). 기갑병과로 배치된 그는 1941년에 독소전쟁이 터지자 T-26을 몰다가 이후 T-34/76을 거쳐 T-34/85를 몰게 된다. 1942년 큰 부상을 당해 후방으로 이송된 그는 회복되자 기갑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다시 전선으로 복귀했다. 1944년 바그라티온 작전시인 8월 12일 그는 독일군 티거2 전차 3대를 격파하고 1대를 나포해서 소비에트연방영웅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군에 남아서 중령까지 올랐고, 1971년 퇴역후 전차설계에 종사했다.
  44. [44] 게다가 이 경우 소련이 공격, 독일이 방어하는 입장이며 방어자가 더 유리한데도 대등한 손실비를 보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만큼 소련군의 기갑부대가 발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45. [45] 단, 1:1 설은 과장의 여지가 존재한다. 독일군의 병력 가용규모는 글랜츠, 오렌스타인 저서에 따르면 전차와 돌격포를 다 합쳐도 1330여대 규모 정도이나, 당시 소련군이 동원한 전차의 규모는 글랜츠와 하우스 저서에서는 5,818대, 프레이저 저서에서도 대략 4,000여대 수준이며, 당시 소련군 전차+돌격포 손실량은 크리보쉐프 저서(Soviet Casualties and Combat Losses in the Twentieth Century. London: Greenhill Books. ISBN 1-85367-280-7.)에 따르면 2,957대. 당시 참전한 독일군 전차가 전부 터졌다고 쳐도 교환비는 애초에 1:1이 될 수 없다.
  46. [46] 이 사진의 전차병의 군장의 변화에 주목할만하다. 원래 소련군 전차병은 헬멧을 제외한 피복이 보병과 다를바 없었으나(그래도 추가로 정비병 마냥 검정색 커버롤(coverall)이 지급되기는 했었다), 소련이 승기를 잡아가고 군복이 대폭으로 개편되면서 전차병은 흑색 가죽제복을 지급받는다. 독일군과 마찬가지로 소련군도 전차병은 엘리트병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독일군처럼 보병과 차별화된 제복을 입게 된것이다.
  47. [47] 실제로 41년 소련의 전차 손실은 약 2만대인데 42년까지 모든 전차를 합쳐 2만 5천대를 생산해서 버텼다.
  48. [48] 이 상황에서 소련은 랜드리스로 받은 셔먼을 T-34 대신 전방 주요 부대들에 투입했으나, 셔먼을 받았던 이 부대들은 곧 T-34/85로 다시 교체된다.
  49. [49] 가장 큰 이유다. 독소전은 물론 양측의 병력 손실 규모도 어마어마한 전쟁이었으나 그 막대한 병력손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저 슬라브인 민간인들을 더 저렴하고 간단하게 더 잘, 더 많이 죽일 수 있을까에 대해 엄청나게 연구하던 나치 정부의 적극적이고 계획적이며 체계적인 슬라브 민간인 학살로 인한 피해가 더 심각했다.
  50. [50] 독소전쟁중의 인원수에 비해 적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보병계열은 무식하게 가르쳐줘도 수만이든 수백만이든 보병으로 징집이 가능한데 비해, 전차를 운용해야할 전차병을 보병 가르치듯 가르쳐주고 투입하면 팀킬은 물론 각종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안봐도 뻔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T-34는 배우기가 몹시 쉽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전차병 수요 충당이 가능했던 것.
  51. [51] 심지어 숙련공들이 징집되어 전선으로 나가고 여자와 노인, 소년들이 맡아서 일을 했음에도 시간이 지나자 생산시간과 가격이 초기의 50%수준으로 떨어지고 여기에 완성도까지 올랐다!
  52. [52] 저 T-34는 독일군이 노획하다 방기된 전차다. 3컷에서 철십자가 보이며 결정적으로 전차장 큐폴라가 독일제다. 자세한 사항은 후술.
  53. [53] 백선엽 장군의 회고에는 철갑탄 자체가 없었다고 하지만 정작 대전차포 운용병들의 회고에는 철갑탄을 써서 격파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철갑탄보다 고폭탄을 더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하는걸로 봐서 충분한 수량은 아니었던듯.
  54. [54] 이후 노획해서 재봤는데 똑같았다.
  55. [55] 위 내용을 봐도 알 수 있겠지만 T-34/85가 개발된 이후 76mm 장착형은 생산이 중지되고 이미 있는 재고들은 전선에서 소모되면 상태에 따라서 그대로 폐기하거나 쓸만한 부품을 몽땅 떼내어 유용한 다음 폐기하곤 했기 때문에 1945년 종전 시점에서 76mm 장착형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56. [56] T-54가 47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하여 1950년에는 두가지 형식을 합하여 2천여대가 뽑혀나온 상황임에 반해 T-54의 화염방사 차량인 Object 481(OT-54 또는 TO-54)은 55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했으며 주포를 완전히 화염방사무기로 변경한 완전한 화염방사전차인 Object 483은 당연히 취소되었고 T-55사양의 화염방사 전차인 TO-55, Object 482는 60년 또는 61년에 양산하기 시작하여 10대 정도가 생산되었다. 전부 합쳐서 100대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전체 T-54계열 생산량에 비하면 한줌 수준이며 한국전 당시에는 양산되지 않아서 의미도 없다.
  57. [57] 당시 사회당이 선거에서 총선에서 승리한 뒤로 공약과 다르게 복지정책의 축소를 감행하면서 반발을 샀고, 거기에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시위가 거하게 터졌고, 결국 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이 대패하고 말았다. 시위가 잠잠해진 뒤로도 결국 사회당은 지지율이 낮은 상황이었고 2008년 금웅위기까지 터져서 2010년 선거에서 대패하고 그 과실을 오르반 빅토르가 땄다.
  58. [58] 대전 중반부터 불거진 치명적인 문제로 사실상 독일 기갑부대가 거덜난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손꼽힌다. 티거나 판터나 기동계통이 약해 장거리를 이동할 때에는 반드시 철도수송을 해야 했는데 갈수록 악화되는 전장 상황에 그럴 여유는 전혀 없었고 결국 이런 중전차들은 포위망을 여는데에 소모되거나 퇴각하는 아군을 따라 같이 가지 못하고 뒤에 남겨져 소련군의 진격을 최대한 막는데 사용되었고 그것으로 끝났다.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되고 7월 한 달 동안에만 티거가 무려 130여대가 손실되었는데, 티거 총 생산 대수의 10%에 달하는 숫자이다. (당시 동부전선에 전개된 중전차대대 6개 대대 중 전멸 1, 장비전손 및 탈출 2, 심각한 손실 1, 반도 고립 1)
  59. [59] 참고로 T-34의 대량 생산 경험이 나중에 T-54/55의 기계적 신뢰성을 담보하는데 유용한 피드백이 되었다.
  60. [60] 추축국은 연합군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의 전차를 가지고 있었고 이 부족한 숫자의 전차들로 전과를 내기 위해 이 전차들을 집중적으로 모아서 사용했다. 이 때문에 연합군 전차들 개개가 추축국 전차를 만날 확률은 매우 낮았는데 이 때문에 심지어는 대전차전을 상정하고 운용된 미국의 대전차 자주포들도 고폭탄을 철갑탄만큼 넣고 다녔으며 소련 전차들은 티거2나 야크트티거가 존재하던 대전 후기에도 철갑탄보다 고폭탄을 훨신 더 많이 싣고 다녔다. 애초에 전차부대를 상대한다고 해도 근처에 보병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소련의 엄청난 전차물량을 소수의 전차로 방어해야하는 나치의 전차들도 AP와 HE의 비율이 5:5수준은 맞췄다. 물론 기행의 나라에서 만든 모 전차는 연합군 소속이지만 철갑탄만 가지고 다니는 기행을 펼치기도 했다..-이 부분의 출처:월탱붕미 공홈-얼망겜의 20가지 구라
  61. [61] 물론 대전차전에서도 티거1 1대가 T-34/85 4~5대를 상대로 이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 17:1 같은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다.
  62. [62] 2010년도에도 대배기량 디젤 엔진 블록을 주철로 만든다.
  63. [63] 영화 서부전선 예고편의 한 장면. 참고로 해당 영화에서는 T-34 내부 모습을 판터를 능가할 정도로 매우 크게 묘사했다.(승무원들이 정좌세로 앉아있고, 안에서 일어서기까지 한다.)
  64. [64] 제대로 된 전면전에선 생각외로 큰 약점이 아닌데, 해치만 노리고 쏘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고 후기형의 경우 해치의 두께가 전면 장갑보다 더욱 두껍도록 개조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무거운 해치를 여는걸 돕기 위해 전용 스프링 장치가 달려있어서 해치를 열 때는 스프링의 힘으로 밀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전면 장갑에 저렇게 큰 구멍을 뚫을 경우 전면 장갑의 강성과 내구성이 전체적으로 약해지고, 당연히 전차의 전체적인 생존성에 악영향을 끼친다. 후기형 전차인 IS-3T-44에서 전면 해치를 없앤 결정적인 이유이다.
  65. [65] 그래서 월탱에서 연재되던 웹툰인 붉은 마녀에서 동양인 병사들이 승무원으로 나오며, 영화 화이트 타이거: 최강전차군단에서도 T-34의 탄약수로 동양계 병사가 등장한다.
  66. [66] 셔먼과 비교하면 이런데 2차대전에서는 셔먼과 싸운 일이 없고 상대인 나치의 전차들 신뢰성이 훨신 구렸기 때문에 나치의 전차들을 T-34의 우월한 신뢰성으로 조져놨다. 이후 6.25에서는 셔먼과 붙긴 하는데 이때는 장갑재 수준이나 신뢰성 문제가 특별히 없었기에 대전 중 받아온 T-34로 테스트하여 아래 나온 장갑재나 신뢰성 부분의 단점을 상정하고 전투력을 계산하였던 초기 미군의 전략은 의외로 높은 신뢰성과 함께 장갑재 열화는 커녕 스탈리움을 쳐발랐나 싶은 스팩 이상의 우수한 장갑으로 완전히 박살이 났었다.
  67. [67] 미국도 B-29 정비할때 저렇게 했는데 미국은 아예 비행시간 75시간마다 모든 엔진 교체로 고장을 해결했다.
  68. [68] 소련이 미국에 운반을 위해 유조식 여과기에 오일을 제거한 것을 미국인들이 건식 여과기로 착각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의 기술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시험평가 때는 실물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설명서 및 제원표도 같이 보내어서 평가받도록 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신빙성이 낮다. 6.25 전쟁 당시 노획한 T-34/85를 미국이 애버딘에서 재평가한 테스트에서도 앞선 테스트에 비해서 나아진게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차량 상태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69. [69] 물론 이 75mm 셔먼들은 T-34와 다를바 없이 금방 다 터져나갔고 남은 차량들도 곧 신형 T-34-85로 교체된다.
  70. [70] 스튜어트는 전차 자체와 내부부품의 신뢰성과 속도를 제외하면 T-34에게 밀리는 형편이며, 발렌타인 또한 장갑과 내부부품의 신뢰성을 제외하면 T-34에게 밀리는 형편이다. 독소전 후기에 가게되면 화력과 장갑이 부실한 스튜어트는 인기가 떨어지게 되지만, 장갑만큼은 T-34에 뒤지지 않는 발렌타인의 경우 셔먼 못지 않게 전쟁 후반까지도 소련 전차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71. [71] 랜드리스 셔먼의 대부분은 75mm여서 화력면에서 T-34-85의 비교대상이 되지 못했고 전쟁 후기에 들어온 76mm 셔먼이라 할지라도 통상탄은 말할 것도 없이 소련제 85mm포가 더 강력하며 여기에 더해 소련제 85mm는 성능이야 어떻든 APCR도 타국과 달리 나름대로 통상적으로 일정 수량이 보급될 만큼 비교적 넉넉히 보급되어 있었는데 반해 셔먼전차용 고속철갑탄은 WW2시절 제식채용과 대량생산이 매우 늦어서 대부분의 기간동안 재대로 보급되지 못했다. 이 문제로 미군소속 셔먼조차 보통은 고속철갑탄을 아주 많이 보급받아봤자 한두발 밖에 사용하지 못했으며 상당 경우 단 한발도 보급받지 못하기도 했다. 미군의 셔먼전차조차 이런 상황이었는데 소련군 소속 셔먼의 경우에는 말 할 것도 없었기에 T-34-85가 APCR를 사용하고 76mm 셔먼이 통상탄을 사용할 경우 화력과 관통력 모두 T-34-85가 76mm셔먼을 완전히 압도하게 된다.
  72. [72] 과거 한국군 전차병들의 선호전차는 M47 > M48 > K1 순이었다. 뒤로 갈수록 성능이 훨신 좋지만 갈수록 좁아져서 전차병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73. [73] 중기형인 T-34/76까지 이랬고 T-34/85부터는 관측장비를 늘렸다. 하지만 여전히 기총사수는 손가락만한 기관총 조준구밖에 관측장비가 없었다.
  74. [74] 이것도 사실 옳지 않은 인식이다. 대체로 티거 등에게 터져나갔기 때문에 이런 인식이 있는 것인데, 애당초 티거는 T-34의 2배가 넘는 중전차이다. 오히려 같은 체급의 4호 전차 등과 비교해야 옳으며, 이렇게 보면 무게 대비로는 대단히 좋은 전차에 속한다.
  75. [75] 전시의 전차생산은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의 효율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알려진 자동차 산업보다도 훨신 규모의 경제가 잘 먹히는 분야다. 반대로 나치 독일은 잦은 형식 변경이 있었으며 용도가 상당히 겹치는 다양한 종류의 병기들을 생산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압도적으로 떨어지는 생산성을 선보이게 된다. 똑같이 100의 공업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1년에 한번씩 개선사항이 적용되는 단일 모델을 뽑으면 규모의 경제로 150만큼 뽑겠지만 몇달에 한번씩 있는 잦은 개량과 함께 여러 모델을 동시에 뽑으면 같은 공업력으로도 생산량이 총 50도 나오기 힘들며 소련과 나치의 생산 시스템을 비교하면 딱 이러하다고 볼 수 있다.
  76. [76] 심지어 그 개량들도 상당수는 성능이 아닌 생산성을 더 높이기 위해 도입되었다.
  77. [77] 단포신 L-11 전차포를 장착한 극초기형이다.
  78. [78] T-34의 경우 독소전쟁 초반에 소련군이 패주했을 때 많이 노획해 사용한 예가 많으나 소련군이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한 이후에 나온 T-34-85는 노획 사용 예가 거의 없다.
  79. [79] 기존 T-34의 포탑을 제거하고 4연장 기관포를 장착한 형태로 총 3대가 제작되었다.
  80. [80] 게다가 원래 크기로 돌아왔을때 자세히 보면 열쇠고리의 고리까지 통째로 커져서 전차에 달려있다.그런데 유지보수 같은건 어떻게 하고,열쇠고리를 한 번 이라도 떨어뜨리면 전차가 망가지지 않을까
  81. [81] 팬저는 Panzer 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으로 뜻은 전차. 끝(...) 근데 애초에 팬저는 영어권에서 흔히 쓰이는 독일군 전차들을 칭하는 고유명사기에 문제는 없다. 괴상할 것도 없고.
  82. [82] 국군이 사용하는 M48A3등 개량형들은 같은 M41포라도 사정거리가 약간 더 길고 관통력도 85mm보다 1 높은 9다.
  83. [83] 당연히 이 전차들은 최대 사정거리가 T-34보다 길기 때문에 T-34와 동일한 1575m에서는 1~2정도의 추가 관통력을 갖게 되어 T-34보다 실질 관통력은 더 높다.
  84. [84] 2랭크부터 시작되는 T-34 트리는 2랭크에서는 KV-1을 능가하는 중전차마냥 다닌다. 그냥 룰루랄라 다녀도 맞아도 뚫릴 확률이 낮다. 따라서 국뽕이라 욕먹는중. 물론 T-34-85가 서식하는 4랭크에서는 각종 판터, 티거2 따위가 판을치니 물장으로 느껴지겠지만 이게 물장이면 독일 유저들은 여태까지 질소장갑을 들고다녔다고 봐도 된다.
  85. [85] 고증대로 차체는 후기형인 T-34/85까지 거의 변화가 없지만 포탑 장갑은 두꺼워진다.
  86. [86] 물론 골탄을 쏘기 시작하면 7티어도 못뚫을게 없고 정신나간 DPM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의외로 할만하긴 하다. 어차피 105mm 곡사포 쓰는 다른 5티어 중형도 고 티어에 의미있는 데미지를 주지는 못한다.
  87. [87] 다만 Type T-34나 Type 58이나 소련제와 모양과 스펙은 똑같은데 다만 한가지, 대륙의 기상 때문인지 소련제 원조와는 달리 포를 숙이지 못한다. 중국 특유의 특성인 부각이 극악이라 소련제보다 언덕전에서 다소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88. [88] http://forum.worldoftanks.eu/index.php?/topic/302125-gta-5-ve-t-34-85/
  89. [89] 사실은 30년을 훌쩍 넘은 구제품의 재판이지만, 키트의 퀄리티 자체는 최초 발매 시기를 생각하면 상당히 훌륭하다.
  90. [90] 타미야의 XF-61 다크 그린은 냉전시기 영국군 차량에 맞는 짙은 녹색이고, 자사 컬러 기준으로 올리브 드랍(XF-62)보다는 올리브 그린(XF-58)이 낫다. XF-62는 1940년대 미군 전차에 사용된 갈색 기운 짙은 녹색이며, XF-58은 1943년 이후부터 사용된 황색기가 도는 짙은 녹색(모형계에서는 그 이전에 쓰던 밝은 녹색과 구분하는 의미에서 전자를 러시안그린1, 후자를 러시안그린2라고 부른다)과 색감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적절한 대체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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