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V 1860 뮌헨

TSV 1860 뮌헨

TSV 1860 München

정식 명칭

Turn- und Sportverein München von 1860

창단

1860년 5월 17일

소속 리그

독일 레기오날리가 바이에른(Regionalliga Bayern)

연고지

바이에른뮌헨(München)

홈 구장

그륀발더 슈타디온(Grünwalder Stadion)

회장

로버트 라이징거(Robert Reisinger)

감독

다니엘 비로프카(Daniel Bierofka)

애칭

Die Löwen(사자들), Sechzger(바이에른 방언으로 "60"이라는 뜻)

공식 홈페이지

http://www.tsv1860.de

1. 개요
2. 역사
3. 홈 구장
4. 바이에른 뮌헨과의 관계
5. 기록
5.1. 국내 대회
5.2. 국제 대회

1. 개요

흔히 1860 뮌헨이라 불리는 1860 뮌헨 체조 스포츠 클럽은[1] 독일 바이에른뮌헨을 연고로 하는 스포츠 클럽이다. 축구, 체조, 레저, 골프, 농구,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 부서를 운영하고 있으나 본 문서에서는 축구 팀을 위주로 서술한다.

2. 역사

19세기 초중반 당시 독일 내 자유주의 성향을 지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체조 동호회를 창설하고 해당 모임 안에서 교류를 갖는 것이 유행했다. 1860 뮌헨 역시 이러한 체조 동호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3월 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848년 7월에 뮌헨 내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젊은이들이 체조 동호회를 만든 것이 바로 1860 뮌헨의 시작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3월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체조 동호회는 당국에 의하여서 곧바로 폐쇄되지만, 이미 시대의 흐름은 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고 결국 바이에른 왕국 역시 국민들의 결사의 자유를 인정해줘야했다. 이에 따라 TSV 뮌헨은 1860년 5월 17일에 공식적으로 재설립되었다. 다만 이 시기에는 말 그대로 순수한 체조동아리였고 축구팀은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1899년에야 창단한다.

1902년 최초의 공식 경기를 치룬데 이어 1911년에는 팀의 명칭을 지금과 같은 TSV 1860 뮌헨으로 변경한다. 1920-1930년대 내내 바이에른 지역 리그에서는[2] 강호였지만 당대 독일 내 최고의 팀이었던 샬케 04에게[3] 연이어 발목을 잡히면서 독일 챔피언에 오르는데는 실패한다. 특히 1931년에는 결승전에 올랐지만 헤르타 베를린에게 밀리면서 통한의 콩라인. 바이마르 공화국이 몰락하고 나치 독일이 수립된 뒤에도 이러한 양상은 이어져서, 바이에른 내에서는 강호이지만 전국적으로는 어정쩡한 지위의 팀이었다. 그래도 1942년에는 오늘날 DFB 포칼의 전신이 되는 챠머 포칼(Tschammer Pokal)에서[4] 샬케를 2-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팀 역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2차대전 종전 이후에도 바이에른 지역 리그에서 강호로 활동하다가 1963년 분데스리가가 설립되자 지역 라이벌 바이에른 뮌헨을 제치고 분데스리가 창립 멤버로 참여하는 영예를 누린다.[5] 1960년대 중반은 여러모로 1860 뮌헨 역사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던 시기였다. 1964년에는 팀 역사상 두번째로 DFB 포칼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1965년에는 UEFA 컵위너스컵 결승 진출.[6] 1966년에는 마침내 서독 챔피언을 차지하였으며, 1967년에도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당시 독일 내 최강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라이벌 바이에른 뮌헨프란츠 베켄바우어를 필두로 1960년대 후반부터 황금시대를 열어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1860 뮌헨은 침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급기야 1970년에는 2부리그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고, 무려 7년동안 2부리그를 전전한 끝에 1977년 1부 리그에는 복귀했지만 곧바로 재강등(...) 1980년 다시 1부 리그에 복귀했지만 1982년에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는데, 이 당시 팀의 재정 악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프로 자격을 박탈당해 3부리그로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겪는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수모가 지금 막 진행되고 있다. 이후 베르너 로란트가 1992년 지휘봉을 잡은 끝에 1994년 12년만에 분데스리가로 재진입하는데 성공한다. 베르너 로란트 시기는 팀 역사상 나름대로 제2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우승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1부 리그에서 꾸준히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99/00 시즌에는 리그 4위를 기록하면서 근 40년만에 다시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쾌거를 기록하기도 했다.[7]

하지만 베르너 로란트가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해서 03/04 시즌을 끝으로 결국 2부 리그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도 워낙 유서깊은 구단인 탓에 팬층이 두터워서 05/06 시즌 평균 관중 4만 2000여명을 동원하였는데, 이는 04/05 시즌의 2만 명과 1부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된 03/04 시즌의 2만 8000명을 초과한 것으로 2부 리그에서 가장 많은 평균 관객 동원 기록이다. 이 시즌 TSV 1860 뮌헨의 평균 관객 수는 분데스리가 1부를 포함해도 8위에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 승격을 하지 못하고, 2부 리그에서도 중위권에 머물자 점차 관객 수가 감소하여 2만 명 선으로 내려왔다. 12/13 시즌에는 6위, 13/14 시즌에도 13승 9무 12패 승점 48점을 기록하며 7위에 그쳤다. 14/15 시즌에는 부진에 빠져 16위에 가라앉아 강등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상대는 3부 리그 3위인 홀슈타인 킬로 결정되었고, 1차전 원정 0:0 무승부, 2차전 홈에서 2:1 승리를 기록하며 2부 리그 잔류에 성공하였다.

15/16 시즌에도 꾸준히 삽질과 부진을 거듭하며 강등권에서 놀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꾸역꾸역 강등 경쟁팀들보다는 승점을 챙기면서 15위로 2부 리그 잔류에 성공하였다. 언제쯤 뮌헨 더비를 다시 볼 수 있을까?

16/17 시즌 (24라운드 현재) 역시 14위로 강등권과의 승점이 불과 3점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승격은 커녕 3부로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되는 상황이다. 일단 25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며 한 숨 돌리긴 했다만... 결국 최종전에서 2-1로 패배하며 16위를 기록, 3부리그의 얀 레겐스부르크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원정에서 치러진 1차전에선 일단 1-1로 가까스로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2차전에서 2-0 패배를 당하며 3부리그로 강등되었는데 라이센스 문제로 3부 리그도 참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결국 한 단계 하부 리그인 레기오날리가(바이에른 지구)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뮌헨 더비

17/18 시즌은 18라운드 현재 3패만을 기록하며 레기오날리가 바이에른 지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대로의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3. 리가로 승격하기 위한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해보인다. 그리고 1위를 확정지으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3. 홈 구장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2005년부터 알리안츠 아레나를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8] 공생 바이에른 뮌헨과 구장을 공동 소유하고 있었으나 심각한 재정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50%의 지분을 매각하였으며, 구장을 임대하는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을 사용하였다. 레기오날 리가로 강등되면서 구장을 임대할 여건이 되지 않아 그륀발더 슈타디온으로 홈 구장을 옮겼다.

4. 바이에른 뮌헨과의 관계

비슷한 시기[9]에 창설된 두 팀이지만, 사실 초창기에는 별다른 라이벌 감정이 없었다. 애초에 1963년 분데스리가의 창설 이전까지 독일 내에서는 지역 단위의 리그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바이에른 단위의 지역 리그에서 두 팀은 허구한 날 만났고 게다가 두 팀 이외에도 뮌헨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은 수두룩했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이 좀처럼 생겨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

두 팀 사이의 라이벌 의식은 1963년을 기점으로 대폭 증가된다. 역사 항목에 상술됐듯이, 독일 축구 협회는 분데스리가를 창설할 당시 한 도시 내에서 두 개의 팀이 동시에 참가하는 것을 규제했고, 이에 따라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원년 입성이 좌절되면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대폭 커지게 된다. 게다가 바이에른 뮌헨이 분데스리가 진입에 성공한 1960년대 중후반, 양팀이 모두 독일 내 최고의 팀 중 하나였기 때문에 뮌헨 더비는 독일 전역을 들썩이게 하는 최고의 더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후 1970년대 바이에른 뮌헨이 전성기를 맞은 것과 반대로 1860 뮌헨이 몰락하면서 두 팀은 좀처럼 만날 일이 없었다. 오히려 이 시기 뮌헨의 최대 라이벌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94년에는 1860 뮌헨이 분데스리가에 다시 진입했지만, 이 시기가 되면 두 팀 사이의 격차는 너무 벌어진 상황.

양팀 팬들 사이의 입장을 보자면 1860 뮌헨 팬들이 일방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고 있는 상황. 바이에른 뮌헨 팬들은 1860 뮌헨에게 '응 뭐라고? 분데스리가도 못올라오는 찐따라서 안들리는데?' 투의 무관심스러운 태도이다(...)

2015년에는 1860 뮌헨 팬들이 바이에른 뮌헨 팬 한 명을 집단폭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담당 판사가 '바이에른 뮌헨 머천다이스샵 가서 60만원 어치 굿즈 살래 아니면 감옥에서 15개월 썩을래? 둘 중에 하나 골라'라고 판결을 했고 피의자인 1860 뮌헨 팬들이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전자를 선택해서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분데스마니아 요약 빌트 지 (독일어) TZ (독일어)

17/18시즌 1860 뮌헨이 레기오날리가 바이에른 지구로 내려왔는데 바이에른 뮌헨 2군팀과 격돌하게 되었다. 홈에서의 1차전은 0-1로 패배.

참고로 통산 전적은 204전 104승 50무 50패로 바이에른 뮌헨의 압도적인 우세이다.[10]

5. 기록

5.1. 국내 대회

  • 분데스리가 우승 1회
    • 1965-66
  • DFB 포칼 우승 2회
    • 1941-42, 1963-64

5.2. 국제 대회

  • UEFA 컵 위너스 컵 준우승 1 회
    • 1964-1965


  1. [1] Turn- und Sportverein 혹은 약칭 TSV가 이를 의미한다.
  2. [2] 이 당시 독일은 지역마다 리그가 나뉘어져있었다. 그리고 해당 지역 리그의 우승팀들끼리 토너먼트를 거쳐 독일 전체의 챔피언을 가르는 시스템. 독일 전국적인 단위의 리그가 도입된 것은 1963년 분데스리가가 열리면서부터이다.
  3. [3] 샬케 04는 분데스리가가 창설되기 전까지 독일 내 최다 우승팀이었다. 분데스리가가 창설되고 우승한 적이 없다는 것이 함정
  4. [4] 돌격대의 수장이자 체육부 고위 관료를 지낸 한스 폰 챠머의 이름을 따왔다.
  5. [5] 당시 독일 축구 협회에서 한 지역에서는 한 팀 만이 분데스리가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바이에른 뮌헨보다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았던 1860 뮌헨이 분데스리가의 창립 멤버가 될 수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이 분데스리가에 승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2년이 뒤난 1965년.
  6. [6] 결승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만나 2-0으로 졌다.
  7. [7] 다만 조별단계 진출을 위한 예선라운드에서 리즈 유나이티드에게 패하면서 광탈.
  8. [8] 이걸 놓고도 굉장히 말이 많았다. 처음 구단주가 바이에른 뮌헨과 공동으로 홈구장을 쓸 계획임을 밝혔을 때 분노한 팬들이 데모를 벌였을 정도(...)
  9. [9] 역사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TSV 1860 뮌헨이 1860년에 설립된 것은 맞지만 처음에는 그냥 체조 동아리였다. 축구팀이 창설된 것은 1899년의 일. 바이에른 뮌헨 역시 비슷한 시기인 1900년 설립.
  10. [10] 심지어 2008년 DFB 포칼에서 만난 이후로는 십년 가까운 시간동안 더비가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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