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shiki

X JAPAN의 멤버

Yoshiki

SUGIZO

HEATH

PATA

TO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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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佳樹 1965.11.20 ~

해외 가수인데도 위의 틀이 두개나 붙어있는걸 보면 우리나라에서 이 양반의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1. Biography
2. Works
3. 음악적 성향과 역량
4. 여담

1. Biography

일본비주얼계 록밴드 X JAPAN의 리더이자 드럼, 피아노 담당.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전공했던 그는 어느 날 고교 동창이기도 했던 토시와 함께 록 밴드 KISS의 공연을 보게 된다. 그 둘에게 이 공연은 굉장한 컬쳐쇼크로 다가왔으며 공연이 끝난 후 두 사람은 함께 "반드시 밴드를 만들자"라고 했다고. 고교 졸업 후에 두 사람을 주축으로 X 결성. 활동 당시부터 거의 모든 곡의 작사와 작곡을 맡았으며 독단적인 리더쉽으로 밴드를 운영하기에 이르는데 이 독단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다른 멤버들과의 불화도 자주 일었던 바,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전임 베이시스트였던 TAIJI와의 트러블이나[1] 보컬리스트 토시와의 트러블.[2]

근래에 요시키와 가장 가깝게 지낸 인물은 GACKT로 각트는 요시키를 의외로 재미있는 인물이라 말하였는데, 보통 사람들로서는 전혀 화를 낼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폭발하거나 하는 식의 희한한 사례들을 예로 들어가며 요시키를 두고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장난감 상자 같은 인물이라 평가했다.[3]

각트와 함께 결성한 밴드인 S.K.I.N의 미국 공연 때 서로가 크게 다툰 일이 있었던 이후 이를 계기로서 상호 간의 친분이 끊긴 것이 아닌가 하는 일부의 추측도 있었지만 이에 관해서는 2014년 1월 각트를 향한 “요시키는 잘 지내냐”는 한 팬의 질문에 각트가 “여전히 다투기는 하지만 잘 지내고 있다”고 답변, 요시키 역시 각트의 새 노래인 “P.s I LOVE you”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과 동시에 S.K.I.N의 재결성에 대해 언급을 하기도 함으로서 둘 사이의 친분에는 문제가 없음이 확인되었다.[4]

1986년에 설립한 인디즈 레이블 Extasy Records[5]LUNA SEA, ZI:KILL, LADIES ROOM, GLAY를 비롯한 많은 밴드들 및 아티스트들이 거쳐 간 바 있으며 이와 같은 사례들로 말미암아 한때는 비주얼계 밴드들의 메이저 데뷔 등용문으로서 여겨지기도 했다.

늘상 반복되는 작품의 발매 연기와 "긴급"을 붙인 공연 중단 등으로 관련 업계에서의 악평이 자자한 바[6]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는 순간에마저 그 화려한 전적이 거듭되어[7] 현재 일본 내 그 어떤 레코드사와도 제대로 된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보이며, 이와 같은 사정들로 인해 재결성 이후의 신곡 "I.V"와 "JADE"조차도 CD화하지 못하고 웹 다운로드로만 판매했다. 도쿄돔 라이브 DVD와 블루레이들은 전부 인디즈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지만 2013년에 발표한 솔로 앨범인 "YOSHIKI CLASSICAL"의 경우 워너 뮤직 레이블을 통해 일본 내에서도 발매가 되었는 바 이것은 해외 발매본과 함께 계약이 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2014년의 베스트 앨범도 워너에서 발매했다.

원래 집안이 상당한 재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데다, 직접 레코드사를 설립하여 사업가로서 활동했던 경험도 있었던 탓인지 그간 쌓아 온 재력과 인맥이 절륜하여 현재에 이르러서는 본업인 음악 활동보다도 이런 저런 행사에 불려다니는 경우가 더 잦은데 일본 국내외를 막론하고 온갖 기금 마련 행사나 시상식에 참여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로 대표되는 극우 자민당 세력과도 친분이 있어[8] 고이즈미 전 총리가 개인적으로 호감을 표한 "Forever Love"가 자민당 CM송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2005년에는 아이치 만국박람회 이미지송의 제작에 참여, 2012년에는 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로고송을 제공하기도 했다.

2014년 10월 자신의 밴드 X JAPAN을 통해 2012년의 L'Arc~en~Ciel에 이어 아시아 아티스트 사상 두 번째로 뉴욕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단독 공연을 성사 공연의 뒷풀이 자리에서는 B'z의 마츠모토와 GLAY의 타쿠로의 모습도 보였다.

2015년, 방송을 통해 드디어 X JAPAN의 새 앨범 제작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리고 2015년 2월 본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15곡이 수록된 마스터 CD의 사진을 올렸다.[9]

2. Works

곡 재탕의 끝판왕.[10]

X의 메이저 데뷔 2번째 앨범 "Jealousy"가 밀리언을 달성하는 등 한참 인기 절정기를 달리던 1991년 12월 요시키 본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곡을 모은 "YOSHIKI SELECTION" 선곡집을 발매했다. 이례적인 인기를 끌어서 클래식 차트 상위에 올랐다. 이 앨범은 국내에도 2000년 정발되었다.

같은 해(1991년) TM NETWORK(TMN)의 코무로 테츠야와 함께 프로젝트 V2를 결성했다. 12월 5일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사망 200주기를 기념한 라이브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으며 이듬해 1월 발매된 V2의 유일한 싱글은 40만 장을 상회하는 판매량을 보이면서 제법 성공한 편이다. 물론 당시 TMN 활동만으로 인기가 정상을 달리던 코무로 테츠야의 인기가 더해졌음은 고려해야겠지만.

1993년 4월 당시 솔로활동 소속사였던 TOSHIBA-EMI에서 기획하여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편곡과 프로듀싱을 거쳐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X JAPAN의 기존 곡을 클래시컬하게 편곡한 "YOSHIKI Presents~Eternal Melody"을 발매하였다. 20만 장 정도로 역시 클래식 계에선 이례적인 판매고를 기록. 신곡으로는 "Amethyst"가 새로이 작곡되어 클래식 곡으로 수록되었다.

1993년 11월 3일, TBS 방송사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인 NOA라는 유닛의 "今を抱きしめて"가 발매, 요시키 작사[11], 작곡, 편곡 및 프로듀스 담당으로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대단한 인기와 주목을 받았던 싱글이며 [12] Eternal Melody에 수록된 "Amethyst"를 담은 싱글이 같은 해에 발매되었다. [13]

1994년 영국 밴드 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와 협업, 공동 프로듀서로 싱글 "Foreign Sand"를 발매했다. 1번 트랙 "Foreign Sand"의 작곡과 편곡을 담당, 2번 트랙 "Final Destination"은 로저 테일러가 작곡했고 요시키는 로저 테일러와 공동 편곡을 담당했다. 역시 TOSHIBA-EMI의 기획.

같은 해(1994년) GLAY 데뷔 싱글인 "RAIN"의 작사 및 공동 작곡, 편곡 및 프로듀스를 담당했는데, 현악과 피아노 등 자신만의 색채를 너무 입혀서 훗날 GLAY는 라이브 구현도 어려운 편곡이며 자신들의 분위기도 아니라면서 새롭게 편곡해서 앨범에 수록한 전례가 있다.

1996년 11월, 본인이 작곡하여 당시 라이브 투어 오프닝 곡으로 쓰이던 "Amethyst"를 수록이라기 보다 재탕[14] 두번째 클래식 선곡집 "Yoshiki Selection 2" 발매. 당시 사실상 X JAPAN은 신작 정규앨범 "DAHLIA"의 판매고가 전작의 절반 수준이었던 64만 장에 머무는 등 인기가 끝물이었던 만큼, 이 선곡집도 전작 만큼의 반향은 없었다.

1997년 12월 31일, 같은 해 4월 보컬 토시의 탈퇴 요구[15]로 촉발된 팀의 와해로 인해 은퇴 발표 후 도쿄돔에서 거행된 THE LAST LIVE를 마지막으로 X JAPAN은 일단 공식적으로 해체하였다.

1998년 기타노 쇼코의 Begin(6월)과 薔薇と緑(10월) 두 장의 싱글을 발매하면서 프로듀싱, 작사 작곡 편곡을 도맡았다. 그녀는 저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딸로서 무려 PV 감독을 부친인 거장 기타노 다케시가 맡았던 정도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단지 그것 뿐, 연예계에 데뷔할 수준의 몸매도 외모도 안 되는 데다가 무엇보다도 연예계에서 버틸만한 멘탈도 되지 못했다. 그나마도 PV에서도 흔한 일본 폭력물의 일진 소녀처럼 나와서 대중의 호감을 얻는데 실패했고 무엇보다 비음에 가려져 코맹맹이 소리에 가까운 가까운 답답하기 그지없는 쇼코의 보컬은 모든 면에서 감점 사항이 되었다.

첫 싱글의 첫 곡인 "Begin"은 그저 거슬리는 소음에 가까운 싸구려 전자음과 천박한 느낌의 기타 리프, 80년대 유로비트 팝에 못 미치는 마이너 버전임을 연상시키는 수준의 그루브감이 전혀 안 느껴지는 저질스런 리듬 프로그래밍이 가미된 댄스곡. 제대로 된 싸비조차 없는 발라드 I Believe는 그렇다치고 두번째 싱글인 薔薇と緑의 경우는 주선율의 일부를 연주하는 도입부 피아노가 뭔가 기대감을 주나 그것 뿐, 드라마틱한 구성을 염두에 둔 멜로디 자체는 첫 싱글의 곡보다는 조금 더 나은듯 하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조금 빠른 비트의 곡, 귀에 거슬리는 노이즈에 가까운 배경음으로 처리되는 기타 리프는 역시 혐오스러울 정도이며, 프로듀싱한 여타 아티스트는 물론이거니와 X JAPAN 재결성 후의 곡들에서 계속해서 이 기타 "노이즈"가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이후 요시키의 음악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최악의 기타 활용이 처음으로 등장한 곡이다. 후반부 뜬금없이 반복되는 베이스 솔로도 그 자체로는 나쁘지는 않으나 곡의 완결성과 연결되지 못해 감흥이 없다. 종반부의 피아노 선율 반복이 다소 청량감을 주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세 곡 다 미친듯 반복되는 주선율 돌려막기는 짜증을 유발할 정도. 요시키가 VIOLET U.K 등을 통해 시도하고자한다던 다양한 장르의 결합이 처음으로 나타난 최악의 결합물. 프로듀서 겸 작곡가인 요시키 본인이 익숙한 음악클래시컬한 대중가요 발라드거나, 클래식이 들어간 팝발라드라거나, 관현악이 투입된 발라드곡 등등 이 아니라면 나머지 장르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물론 본인의 솔로 프로젝트 음반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같은 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던 X JAPAN의 동료 멤버 hide가 비슷한 시기에 남겼던 솔로 및 공동작업들이 얼터너티브 록, 일렉트로니카, 인더스트리얼, 하드록, 재즈까지 솜씨좋게 결합하여 최강의 결과물로 평단-대중의 호평과 상업적 성공을 함께 거두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양자의 음악적 역량의 차이는 이미 현격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기타노 쇼코의 싱글은 연예계의 거물인 부친인 극진한 서포트에도 불구하고 혹평 속에 처절하게 망했다. 그나마 90년대 초반에 X JAPAN과 NOA의 "今を抱きしめて" 싱글 등의 성공을 통해 쌓아두었던 프로듀서로서의 명성도 큰 타격을 입었다.

1999년 5월 1일, 그 전해에 사망한[16] X JAPAN의 동료 hide의 헌정앨범 "hide Tribute"에 도입곡 격인 "Introduction" 및 엔딩곡인 "Goodbye"를 본인이 담당.

"Intriduction"은 hide의 솔로 1집에 수록된 "Eyes Love You"를 피아노 솔로로 편곡, "Goodbye"는 hide의 솔로 2집 앨범에 수록되어 있었던 동명의 곡을 피아노 및 현악을 활용한 소편성 클래식으로 재편곡하여 수록하였다.

같은 해 11월 12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주선으로 헤이세이 덴노의 즉위 10주년 기념일 날 피아노 협주곡 Anniversary라는 곡을 헌정하고 피아노 연주를 맡기도 했다.

2000년에 설립한 Extasy Japan에서 신인 및 데뷔시킨 밴드들을 야심차게 프로듀스 했지만 다같이 망했다. [17] 그리고 회사는 도산 크리, 사실 Dir en grey 정도를 제외하면 프로듀스 성공작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Dir en grey의 싱글 중 요시키가 작업한 곡들도 상술한 GLAY와 유사하게 그들의 골수팬들에게 Dir의 색깔이 없는 곡이라고 까이는 걸 감안하면 성공이라 부르기가 좀 애매하긴 하다. 한편으로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기획 록밴드[18]트랙스의 일본 데뷔 프로듀스를 맡았고 자신이 작곡 및 편곡까지 담당한 "Scorpio"와 X JAPAN 시절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TEARS"까지 재편곡 용으로 제공했다. 기획사[19]에서 한일 양국에서 100% ROCK이니 뭐니 ㅎㄷㄷ할 정도로 거하게 언플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판매량과 인지도는 처참했다.[20]

동시에 솔로 프로젝트로 Violet U.K.를 10년 넘게 기획해오고 있다고 밝히며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 2000년에 세븐일레븐 광고로 선보인 곡들이나 2002년에 나온 Last Live의 DVD에 프로모션 영상이 수록되었다. 그동안 요시키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했다던 음악인 Violet U.K.의 이후 15년간 데뷔만 홍보하게 되는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던 건 맞는데, 그리고 아무런 소식이 없다. 영상에 따르면 X JAPAN 활동 당시부터 기획해 오고 있었던 프로젝트라고 한다.

2002년 갑작스럽게 코무로 테츠야의 그룹인 globe에 객원 멤버로 참가하기도 했다. globe의 경우는 싱글 "Seize the Light" 발매. 그외 다카라즈카 극단에 제공한 곡을 보컬 케이코가 부른 데모 음원 하나만 떠돌고 있을 뿐, 사실상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같은 해 도쿄 시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Yoshiki Symphonic Concert featuring VIOLET UK란 콘서트를 거행, 훗날 이 공연은 2005년 DVD로 정발되었다. 실황 음원들이 훗날 나올 두 앨범에 끝없이 우려먹기로 수록되는 것은 덤

2003년, 2005년 아이치 만국 박람회의 주제곡을 맡아서 하와이 출신의 일본인 혼혈인 여성 보컬 DAHLIAX JAPAN의 정규앨범명과 예명이 동일의 곡 "I'll be your love" 2년 먼저 싱글화, 그러나 아이치 만박에서는 그 누구도 이 곡을 공식 테마곡으로 기억하지못할 만큼 폭망, 안타깝게도 달리아 양은 이 데뷔 싱글곡 하나만 남기고 버로우. 도입부에 바로 나오는 주선율의 멜로디는 일견 좋으나 단조로운 구성으로 인해 정작 감상 후에 기억에 남을만한 주제 선율이 없다는 점은 행사 주제곡으로서의 결정적인 문제라 볼 수 있다. 신인급 아티스트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불안한 음역대의 보컬과 일본어 발음 미숙도 지적할 수 있으며 요시키 편곡의 최대 문제점으로 불리는 후렴부의 의미없는 반복과 불필요한 현악남용은 여전했다.

2005년 3월 Eternal Melody 2를 발매하였다. 2000년에 도입부 데모만 살짝 공개했던 히데의 추모곡 "Without You"의 클래시컬 버전이 수록되었다. 99년 공개된 일본 덴노 즉위 10주년 봉축곡 "Anniversary"도 최초 음원화, 그외에 원래 음원조차 공개되지 않은 Violet U.K의 클래시컬 곡이 수록되었던 것까지는 좋으나, 그 옛날 93년 Amethyst 싱글의 커플링 곡 "今を抱きしめて"부터 96년 X JAPAN 싱글로 발매된 "Longing~절망의 밤"에 2002년 심포닉 콘서트 실황 음원까지 그간 발매했던 음원들이 트랙리스트의 대부분을 빼곡히 채우고 있으니 그저 별 노력없이 이미 팔아먹은 음원 채워놓은 충실한 재활용판이라 보는 비판도 있다. 사실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얼마 안되는 솔로 작업에서의 이런 재탕크리는 양반이고 정규앨범 4장에 각종 베스트 앨범을 포함한 비정규 앨범이 수십장에 달하는 X JAPAN의 재탕크리들은 거의 경악스럽기까지 할 지경이니까, 그 모든 것이 이 양반의 기획하에 이루어진 것이니… 어쨌든 국내 정발. 판매량은 그닥…

2005년 9월 22일에 Violet U.K 데뷔 앨범 발매를 다시 고지했으나 보란듯이 연기. 계속되는 발매 연기로 빡친 소속사에서 소송크리. X JAPAN의 정규 마지막 앨범 DAHLIA가 포함된 Atlantic 산하에서 발매된 음원의 본인 소유 저작권을 모조리 넘기는 걸로 합의한 후 계약 해지.

2012년 9월 Violet U.K. will finally debut in 2013!이라는 티저를 띄웠다. 물론 역시나 이후 아무런 소식이 없다. 본인이 계획했다고 하는 X JAPAN 시절까지 합치면 실로 20년의 떡밥.

2013년 9월 요시키의 솔로 앨범 YOSHIKI CLASSICAL이 발매 되었다. 문제는 역시 Violet U.K 활동과는 상관없다는 사실. 신곡은 제일 첫 트랙 "MIRACLE"이 전부이며 그외 최근에 온라인 음원으로 발매된 "Golden Globe Theme"(2012)이 '최초로 CD화 되었다' 정도로 의미부여할 수 있으며, 같은 곡이 Quartet(4중주) 버전으로 재편곡된 버전도 수록되어있다. 나머지는 과거에 발매한 Eternal Melody 1, 2의 수록곡이 대부분이다. 곡 재탕의 끝판왕이라니까!

일본판과 해외판이 다른 것도 특징. 일본 내 발매본에는 2002년에 치뤄진 본인 클래식 콘서트에서 연주된 "The Last Song" 클래식 버전이 실황 녹음으로 실려있고 해외 발매본에는 그 대신에 무려 1993년에 Eternal Melody 1에서 수록된 "Say Anything"의 클래식 버전이 수록, 그외 곡 순서가 상이하고 재킷 사진 차이 정도가 다르다. 일단 일본 및 세계 동시 발매이며 일본판은 오리콘 앨범 차트 주간 4위로 데뷔, 차트에 8주간 머물렀으며 iTunes 클래식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3. 음악적 성향과 역량

감성적이면서 유려한 멜로디를 잘 잡아낸다. 워낙에 인성이 안좋은 것으로 실제로도 안 좋지만 업계에 소문이 났지만 그의 멜로디 감각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하지만 X 시절에는 팬이였다가 X JAPAN 이후 안티로 돌아선 팬들은 음악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크게 지적을 한다.[21] 90년대 일본 음악시장이 분명 거대했지만 90년대 초에 락밴드로서 밀리언을 달성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으며, 사실 한국에서 X JAPAN의 인기가 상당부분 과대포장되어 알려져 있지만 어쨌든 주간 오리콘 차트 1위에 싱글과 앨범을 자주 올린 것 또한 사실이니까, X 시절까지는 평단에서 주목받는 밴드이기도 했으며 작곡가로서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 이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주로 발라드에서 그 멜로디의 장점이 크게 부각되는데, 밴드 X를 인디계의 유망주에서 일약 메이저 밴드로 확실히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게 된 발라드 Endless Rain[22] 1992년 NHK 홍백가합전 주제곡이자 이후 X JAPAN의 곡으로 발매되어 요시키 개인 및 X JAPAN 역사상 최다 싱글 판매작인 Tears(1993년 발매, 83만장 판매) 같은 곡에서 멜로디 감각은 최근작(?)인 "Without You"(2005, 클래식 버전으로 발매, 히데 추모곡으로 작곡됨), "Scarlet Love Song"(2011, 극장용 애니메이션 "Buddah"의 O.S.T), 정말 극히 최근작인 "Golden Globe Theme"(2012)에서도 여전하다. 2000년의 어느 일본 예능프로그램에서 그 유명한 파문전사 50대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가 리포터로 LA의 요시키 자택을 방문했을 때 즉석에서 피아노로 만든 곡이 해당 프로그램의 로고송이 되었으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뭐.[23]

그러나 장점은 여기까지. 그의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 최고의 장점이자 이제는 유일한 장점인 것으로 들통이 났달까? 문제는 극악의 편곡력에 있다. 자신의 곡을 편곡해줄 사람이 없다면 소위 멜로디 돌려막기만 하다가 끝난다라는 악평을 평론계에서 들을 정도로 편곡 능력이 좋지 못하다. X 및 X JAPAN 시절 작곡자가 요시키임에도 굳이 편곡자가 X 혹은 X JAPAN인 이유가 있다. 특히나 록 성향의 곡을 편곡하는 능력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X 시절에는 베이시스트였던 TAIJI가 사실상 편곡을 전담하여 WEEK END, 紅, SILENT JEALOUSY 등 수많은 명곡을 함께해냈고 그의 조력이 있었기에 결과물이 가장 빼어났던 시절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타이지가 요시키에 의해 쫓겨난 이후 음악성의 저하와 팬층의 이탈로 어어졌다.

인디즈 데뷔 앨범인 "Vanishing Vision"부터 바로 그 타이지의 해고 전에 발매된 마지막 음반인 "Jealousy" 까지의 앨범과, 원래 "Jealousy" 수록곡으로 기획되어 타이지가 편곡과 녹음에 참여했었던 미니앨범 "Art of Life", 그리고 타이지 탈퇴 후 그나마 기타 리프를 짜주던 히데가 참여했던 "DAHLIA" 앨범끼리만 서로 비교해도 곡의 짜임새와 드라마틱한 구성에 현격한 차이가 있고 두 명의 사망 이후에 발매된 신보들의 경우는 그 사운드의 빈약함이 과연 같은 작곡가의 음악인가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아무리 드러머 출신이라지만 무려 데뷔 30년이 넘은 밴드의 리더가 "기타 리프" 하나 짜지 못하고 그저 배경 노이즈로만 처리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또한 곡 메이킹을 보면 락이란 장르에 대해 이해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엑스 해체 이후 요시키가 프로듀싱한 곡들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는 특징 중 하나로, 본인이 좋아하는 피아노와 관현악이 주 멜로디를 연주하는 식으로 곡을 구성하고 있고 기타와 베이스음은 뒷배경으로 밀려나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이 두 가지가 조화롭게 편곡되어 있었다면 모를까 전체적으로 요시키가 만든 노래에서는 그 조합이 좋지 않다. 그냥 꼭 넣어야 하니까 억지로 집어넣은 듯한 느낌이랄까. 엑스 재결성 이후 요시키가 프로듀싱한 곡 jade에서도 이 특징이 드러나는데, 인트로 부분에서 뭔가 대단한 음악이 나올 것처럼 기타 리프가 요란하게 튀어나왔다가 막상 주선율이 시작되니 기타 리프는 그냥 배경 간주 수준으로 밀려버린다.

좋은 편곡 능력이 있는 뮤지션과 콤비를 이루고 활동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평. 실제로 X 시절 타이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툭하면 치고 싸웠지만, 능력 면에서는 최상의 궁합이었다. 요시키 작곡-타이지 편곡 콤비는 X 초창기 시절 많은 명곡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시키 본인의 인성 문제와 성격 때문에 X JAPAN 해체 이후에도 본인이 편곡 능력을 기르는 건 물론이고 타이지 같은 콤비 뮤지션을 구하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작사의 원천은 자살. 어릴 적 아버지가 자살한 모습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겨 자살과 죽음에 대한 가사가 굉장히 많다. 엑스재팬의 대표곡인 "Blue Blood", TEARS[24], "Week End"과 "Silent Jealousy"만 하더라도 자살이 소재로 쓰였을 정도. 특히 TEARS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소재로 한 곡이다.

90년대 한참 X JAPAN의 인기가 국내에 드높던 시절 한국에만 들리던 소문으로 전세계적으로 3위의 드러머 안에 든다는, 참으로 근거없는 헛소리가 유행했다. 우선 드럼 "실력"에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실력이라는 것이 성적처럼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연주하는 장르도 다르며, 같은 장르라고 해도 연주자에 따라 각자 연주하는 스타일이 있는 법인데 순위를 매긴다는 자체가 넌센스. 실력이 아닌 인기 투표는 실제 있긴 하지만 어떠한 드러머 관련 인기 투표에서도 요시키가 3위권 안에 들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드럼은 다른 악기와 달리 타악기라는 특성상 분당 몇 번 치는지 재거나 하는 일도 있는데 이 부분에서도 요시키가 그동안 보여준 속도로는 최상위권은 택도 없는 수준이다.

드럼 실력에 있어서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관해서는 무리가 없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레코딩에서는 종종 세션을 기용하기도 했으며[25] 80년대 후반 인디즈 시절부터 90년대 초 젤러시 투어 시절까지는 더블 베이스 연타와 같은 스피디한 연주도 즐겼으나[26] 1995년 달리아 투어 시절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플레이를 다소 자제하는 경향을 보임과 동시에 그 속도의 저하도 현저해졌다. 드럼을 칠 때의 특유의 자세와 그 세팅에서 비롯한 데미지 때문에 경추부의 디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바, 1996년 3월 달리아 투어 나고야 공연에서 쓰러진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대에 오를 때는 쭉 목에 깁스를 채운 상태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극악한 고음병 환자로 토시에게 무리하게 고음을 내지르게 하는 등 마치 고음과 테크닉에 집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그리고 이 전통은 현재 우리나라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가수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히데의 곡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확실히 히데의 곡에서 토시의 보컬이 더 안정적으로 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3년 2월 1일 NHK 50주년 기념 공연에서 조성모와 SPEED의 전 멤버 시마부쿠로 히로코가 "君だけだから"[27]를 부르는데 당시 전성기가 아니었다 해도 맑은 고음으로 이름 높은 그 조성모가 가성으로 헉헉댈 정도로 극악의 고음을 요구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 성향은 요시키가 프로듀스한 거의 모든 가수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4. 여담

X 활동 초기에는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신비주의 컨셉의 일환으로 X의 상징이자 X 그 자체라는 식으로 프로필란의 생년월일이나 혈액형 등을 전부 X로 표기했었으며 본명 역시도 밝히지 않았었다.[28]무슨 나이에 민감한 여자연예인도 아니고...

2002년 서울 소년원에서 재능기부 차 위문공연을 가진 사진이 요시키의 굴욕이라는 짤방으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29] 필름기그의 개최로 방한하게 된 김에 친분이 있던 박삼중 스님의 제의로 국내 가수와 합동 공연을 펼친 것이라고 한다.


  1. [1] 타이지 생전의 자서전 'X의 생과 사'에 수록된 인세와 관련 문제에서 비롯된 스튜디오 뮤지션(세션)으로서의 별도 계약, 그리고 해고나 다름이 없었던 일방적인 탈퇴 요구 등
  2. [2] 요시키 본인도 스스로 인정한 바 있는 토시를 노래 부르는 기계나 다름없이 취급했던 점 등
  3. [3] LA에서 자신의 스텝진들과 식사를 하던 중이었던 각트를 찾아 온 요시키에게 각트의 스텝진들이 식사를 권하자 3번을 거절하더니 4번째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면서 "먹으라면 먹을게!"라고 대답(…) 근데 너무 잘 먹어서 한 번 더 먹기를 권하자 갑자기 또 버럭 화를 내면서 "알았어! 그렇게 먹으라고 하니깐 먹을 거니까 먹을 거야"라고 대답(…) 각트로서는 이런 요시키가 재미는 있을 지언정 이해는 할 수 없었다고.
  4. [4] 다만 각트가 주변 인물들과 불화가 있더라도 이를 잘 해결하는 편이고, 직접적으로 누군가와 다툰다는 식의 언급등은 잘 하지 않는 타입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서 일부에서는 여전히 “둘이 꽤나 심하게 싸우는 거 아닌가?“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5. [5] 현재는 활동중단
  6. [6] 흔히 지적되곤 하는 온갖 베스트의 남발을 비롯한 과도한 상업화 러쉬보다(사실 베스트 앨범을 몇 개를 돌려 팔던 자기 이름을 걸어 콘돔을 팔던 뭘 팔던 간에 이건 그냥 안 사면 그만 문제는 없다. 다만 좀 없어 보일 뿐이지) 실제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이 것
  7. [7] 신작 연기, 마스터테이프 분실 사건, 레코드사와의 불화 등
  8. [8] 단 어디까지나 그런 쪽의 인맥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요시키 본인으로서는 전범기를 앞세우며 어그로를 끄는 짓이라던지 극우적 발언 따위는 한 적이 없다.
  9. [9] 사진으로 봐서는 The Last Song, Jade, Beneath The Skin, Hero의 순서로 보인다. 나머지 트랙에는 Scarlet Love Song, Born To Be Free, I.V등의 선공개된 곡들이 묶일듯...이었지만 2015년 공개한다던 새 앨범이 2016년 3월로 다시 밀린것으로 봤을때 트랙리스트에 변동이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10. [10] 원래 볼드처리도 없었고 취소선 처리되어 있던 문장이지만 엄연히 사실이므로…
  11. [11] 白鳥 瞳(시라토미 히토미)는 요시키의 가명이다.
  12. [12] 2013년에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13. [13] 今を抱きしめて의 클래시컬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싱글에만 수록되어 있어서 나름 희귀성을 인정받던 이 트랙은 당연하게도 2005년에 발매된 ETERNAL MELODY 2에서 재활용된다 -.-;
  14. [14] 해당 음원은 "Eternal Melody"와 요시키 솔로 싱글에 수록된 그 음원 그대로다.
  15. [15] 훗날 부인으로부터 전도받은 "홈 오브 하트" 라는 사이비 종교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그녀 또한 원래부터 사이비 종교 교주의 내연녀였으며 X 시절의 명성과 부를 노려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16. [16] 불의의 사고라는 설이 우세하다.
  17. [17] 자신의 전 연인이었던 쿠도 시즈카를 영입해서 "深紅の花"라는 곡을 주고 프로듀서로서 싱글을 발매했다. 사실 쿠도 시즈카는 왕년의 대스타였지만 이미 전성기가 지나 가창력도, 미모도 예전만 못한 그녀가 음악으로 성공하긴 불가능했으며 자기도작 수준의 발라드 곡이란 혹평을 나올 정도로 곡의 퀄리티도 수준미달이었으므로 상큼하게 망함. 다만 그녀의 음원 성적과는 별개로 같은 해에 일본 연예계 최고의 인기남인 2살 연하의 키무라 타쿠야를 잡아채서 결혼에 골인한 행운의 여자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그외 여성보컬인 Shiro와 밴드 BEAST、Revenus 등의 아티스트 들을 프로듀스했으나 지금은 그 누구도 기억되지 않고 있다.
  18. [18] 어느 정도 독자적인 문화로서 궤도에 올라 있었던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도 인디씬이 홍대 인근에서 한참 불타오르고 있었던 시기였지만 애초에 그런 경험 따위는 없었던 일천한 수준의 연습생들을 가지고 한일 양국을 노린 기획상품으로 만든 밴드, 연주력은 물론이거니와 보컬 또한 비슷한 착안의 기획 상품인 문차일드 수준만도 못했다.
  19. [19] 국내 기획사는 SM엔터테인먼트이었고 일본 기획사는 당시 SM이 제휴했던 최대 레이블인 AVEX TRAX.
  20. [20] 불행 중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트랙스의 멤버였던 노민우는 빼어난 외모와 나쁘지 않은 연기력을 통해 현재 연기자로 활동 중인데 TV 드라마 락락락의 주연을 맡는 등 배우로서의 입지를 제법 굳힌 상태다.
  21. [21]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편곡을 담당하던 TAIJI해고탈퇴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22. [22] 한국 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 김민종의 "나를 위해" 등의 원곡이다. 즉 당시 많은 한국가요들이 대놓고 베낀 곡. 일본에서도 X JAPAN 최고의 발라드로 인기가 높지만, 한국에서의 인지도와 인기가 훨씬 높았던 대표곡. 요시키의 발라드곡 들은 확실히 한국인 감성에 훨씬 더 호소하는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
  23. [23] 요시키의 아직도 남아있는 팬들 중에는 요시키의 이런 능력이 좋아서 팬이 된 경우도 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요시키 개인의 인성은 싫어한다. 굳이 우리나라 사정에 비유한다면 신해철?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실제로 디시인사이드일베저장소같이 전반적으로 극우 성향이 강한 사이트에서도 신해철의 정치 성향(자신들과 정반대니까), 발언이나 행적들은 가루가 되도록 까이지만 그의 음악성&노래들은 절대 안 까인다는 점이 비슷하다.)
  24. [24] 우리나라에서 MC THE MAX가 '잠시만 안녕'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한 그 원곡이다.
  25. [25] 작곡이나 프로듀싱 등 이것 저것을 다 하기 때문에 프로 드러머로서의 자각은 다소 부족한 것일지도 ,,, DAHLIA 일부분에서는 레코딩시 실 연주가 아닌 전자음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직접 밝히기까지도 했다.
  26. [26] 이에 관해서는 Vanishing Vision에 수록된 I'LL KILL YOU, Blue Blood에 수록된 オルガスム, Jealousy에 수록된 Stab Me In The Back과 같은 곡들이 대표적
  27. [27] 한국명은 "그대 뿐이어서", 조성모 5집 수록곡
  28. [28] 토시가 방송에서 실수로 그의 본명을 말해버린 것이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29. [29] 초라해 보이는 사진 속의 모습과는 달리 전 날 그가 입국하던 당시의 공항에서는 그를 보러 온 팬들로 인해 온통 난리가 났었으며 이 당시의 상황은 공식 발매된 LAST LIVE DVD에도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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