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86세대

대한민국의 주요 세대-갈등론

88만원 세대

20대 개새끼론

386세대

4050대 책임론

1. 개요
2. 상세
2.1. 발생
2.2. 대중화
3. 특징
3.1. 사회
3.2. 정치
4. 경제적, 인구적 특징과 비판
5. 용어 비판
6. 기타
7. 나무위키에 기재되어 있는 86세대의 인물
8. 관련 문서

1. 개요

90년대30대였고 80년대 학번에다가 60년대출생 한국의 세대를 인텔CPU 80386를 탑재한 386 컴퓨터에 빗대 '386세대'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이 세대는 1960년부터 1969년까지 10년간 무려 1,000만 명 가량이 태어났다.[1]

2019년을 기점으로 386 세대가 모두 50대를 넘어서면서 '586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2020년을 기점으로 만 나이 기준, 맏이인 1960년생은 686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학창시절로 치자면 1960년 3월생부터 1970년 2월생까지가 386세대였다.

이들과 전후 세대를 합치면 대략 1200만 명 정도로 대한민국 인구의 1/4 수준이다.

2. 상세

통칭 민주화에 기여한 운동권 세대로 여겨진다. 이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68혁명 세대와 상당히 비슷하다.[2] 그러나 동시에 6.29 선언민주화 이후로 다른 여러가지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 문제들의 근원이 되어버린 존재들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486~586세대로 변화하였고, 일부는 686세대까지 접어들고 있는데, 거의 30년 가량 똑같은 세대가 주류를 차지하는 것을 두고 한국 사회는 세대교체에 실패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현재는 정치계를 비롯 언론에서 나이대를 나타내는 앞의 숫자를 빼고 \'86세대'로 부르는 모습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80386', '80486', '80586' 등의 CPU 계통을 'x86'으로 호칭하는 것과 어느정도 궤를 같이한다.

다만 현재의 86세대에 대하는 비판은 대부분 꼰대의 속성을 비판하는 것이다. 베이비 부머[3]와의 공통점도 매우 크다. '진보적이었던 86세대가 기득권이 되니 사회 모순을 그대로 이어받는 걸 비판하는 것이 86 세대 비판론'이지, 꼰대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매우 제한적인 용어를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음에도, 꼰대 비판에 '86'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디자이너 이상봉의 열정 페이 논란 때에 이상봉을 86세대라고 하며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슷한 사례로 서정희의 강제 결혼 주장에 대하며 86세대의 결혼방식이라며 비꼬는 글들이 올라온 적이 있다. 서세원은 1956년생이므로 역시 86세대 아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자 하면, 꼰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을 단순히 '86세대'로 지칭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다.

이러게 된 이유는 '86세대'라는 표현 자체가 동아일보 등 언론의 작품이고, 이를 남용했기 때문이다. '5공 당시 민주화 운동 세대'라는 표현 대신으로 정치색을 제거하고자 당시 최신 사양인 386 컴퓨터에 끼워맞췄기에 엄격하게 연령대를 나누면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실상으로 '민주화 세대', '운동권 세대'의 별칭으로 쓰이는 실정이다.

이 용어가 유명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1960년대 당시에 평균출산율이 5명대를 기록했고, 그래서 이 세대들이 인구수가 다른 세대들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4] 여타의 세대들보다 머릿수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유명인사들도 많이 포진되어 있고, 가장 많은 유권자수를 가진 만큼 정치적인 힘도 막강하다. 그래서 이 세대가 유명한 것이다.

다만 '386세대'라는 용어가 붙여진 때만 해도 정치적으로 반 보수 정서가 강했을 뿐, 민주당계 정당에 전폭적인 지지를 내보낸 것은 아니었고,[5][6] 민주당(1990년), 통일국민당, 신정치개혁당, 통합민주당(1995년). 국민신당 등 제3당으로 표분산이 이루워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민주당에 대하는 지지가 타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강했다고 해도 50~60% 이상의 몰표가 나온 것은 아니다.[7]

김대중 집권기 이후로 민주당계 정당에 대하는 지지세가 막강해지지만[8] 사실 1998년 지선을 기점으로 투표율이 50%에 미달되는 선거가 나온 등 전보다 투표율이 부쩍 떨어졌고, 특히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이 더욱 크게 떨어져서[9] 2000년 총선과 2002년 지방선거에서 결집력이 제대로 발휘된 것은 아니다, 결집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16대 대선 이후이며, 그마저도 2006년과 2007년, 2008년 총선에서는 투표율이 급속히 저조해졌기 때문에 제대로 발휘된 것은 아니다.

2.1. 발생

원래 80년대에는 이 세대를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나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라고 하여 '전후(戰後)세대'로 불러왔다.

펜티엄윈도우 95가 보급되던 95년경, PC통신에서 발생한 단어다. 사회적으로 PC의 도입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적응은 대충 했는데, 그다지 잘은 안 되는 30대를 가리켜 386 CPU로 윈도우 95 돌리기에 비유한 것이라고 보수 언론에서 주장하였고, 당시 활자신문의 절대적 영향력을 보면 정설처럼 굳어졌다. 실제로는 윈도우 95가 출시되기도 전인 93년에도 PC통신에서 X세대와 구분하려고 386세대라는 말을 만들고 사용하였다는 증언이 있으니 언론이 주도해서 만들어 냈다는 말은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이다. 다만 '신조어'라는 것이 근원을 찾기는 어려운데다 그 당시에 PC 통신 하던 증인은 소수에 불과하여 이러한 근원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신문사의 비유 자체는 적절한 것이 386 CPU는 80년대에 나왔고, 윈도우 95는 95년에 나왔다. 컴퓨터의 성능이 부족하여 Windows 3.x[10]도 돌리지 못하는 386 PC가 윈도우라는 환경변화에 적응 못하는 당시의 386세대 사무직과 닮은 구석이 있다.

X세대가 자칭 '신세대'라는 기치를 들면서 이전 세대를 구세대로 여기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 당시에 사용하던 컴퓨터인 386 컴퓨터를 사용하며 최신 기술인 PC 통신까지 하는 구닥다리가 아님을 상징함과 동시에 운동권을 하던 자랑스러운 세대라는 의미로, 93년 즈음의 90년대 중반부터 사용해온 용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용어는 언론에서 만든 것으로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 스스로를 '386세대'로 부르며 자랑스러워한 적은 없는 것이다.

2.2. 대중화

'386세대'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대중화가 된 것은 조선일보, 동아일보[11]를 비롯한 보수언론에 의하며이며, 80년대의 대학생활을 하던 세대에게 대해 정치적 의미를 약화하는 개념 규정을 노린 단어 사용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결국 보수나 진보 여부에 상관없이 이른바 386세대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용어가 되면서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일단 그 당시가 아직은 신문 매체의 영향력이 강한 세대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용어로 쓰인 용어 치고는 줄인 말 그 자체로는 특별한 의미 부여가 없는 나름대로 중립적인 용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시 시사 용어 치고는 나름대로 줄임말을 쓴 신묘한 용어였다. 저게 신묘하다니 무슨 되도 않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 용어가 나온 90년대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니 '사오정(45세가 정년)'이니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중한 시간을 위하여)'니 하는 깔깔유머집에나 나올 단어들이 유행하던 시대였다. 아니, 진짜로 깔깔유머집이 직장 분위기를 살릴 유머랍시고 유행하던 시대(...). 어쨌든 그랬던 탓에 한 '세대'에 대한 용어로서 그 전 시대의 '베이비붐 세대', '전후 세대' 같은 딱딱하기 짝이 없는 용어보다는 훨씬 말랑했고, 반대로 뒤에 나온 'X세대'니 'N세대'니 하는 용어보다는 훨씬 직관적이었다. 그리고 민주화라는 과제를 달성하고 남은 학생 운동 세력이 연세대 사태 등으로 물리적으로 박살나 대학생 세대의 동질 의식이 약해진 데다가, IMF 사태로 각자도생에 힘겨운 시대가 찾아 오고서는 이런 '세대'론도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12] '세대'론이 다시 떠오른 것은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제시된 88만원 세대론이 나올 때는 되어서야였고, 그 때까지 n86 세대는 나름대로 '세대'론에서 독보적인 용어로 남은 것이다.

만 나이 기준으로, 시간이 흘러 2009년이 끝으로 60년대 태생인 사람들 중에 30대는 더 이상 없게 되었고, 2019년이 끝으로 60년대 태생인 사람들 중에 40대는 더 이상 없게 되었다. 1969년생이 2019년 생일을 기점으로 50세가 됐기 때문. 그래서 현재는 '586 세대'로 불린다. 2029년을 끝으로 60년대 태생인 사람 중 50대는 더 이상 없게 되어 686세대로 불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3. 특징

3.1. 사회

당시 대졸자 세대의 교육 및 사회환경은 그 사상적 동질감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앞 세대가 논 팔고 소 팔아서 "우골탑"으로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다면, 이들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입어 그보다 쉽게 대학에 들어갔다. 특히 80년대 초반에 이른바 분교설립 열풍과 졸업정원제 실시로 대학정원이 거의 1.5배에서 2배 가까이 팽창했다. 그 당시에는 유화정책 때문에 대학 등록금 인상이 규제되어 있던 시기이다 보니 요즘과 같은 살인적인 등록금 문제도 적었다.[13]

대학생 시대에 5.18 민주화운동, 제5공화국, 6월 항쟁을 목격하면서 민주주의민족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반면, 성장 일로에 있던 당시 경제상황으로 인해 다른 세대보다 고용불안,소득불안정같은 경제적인 부족함은 상대적으로 덜했으며 사회진출의 경로도 매우 넓었다.[14] 이 때문에 고용없는 성장을 겪고 있는 현 88만원 세대보다 이상적인 측면이 강한 편이다.[15]

3.2. 정치

해당 세대의 인구가 가장 많기에 캐스팅보드로 불린다. 실제로 총선이든 대선이든 30대와 40대는 대체로 친 민주당 성향에 가깝고 60대 이상 노년층은 대체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데, 이들 인구는 엇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50대인 86세대가 캐스팅보드 역할을 하는 셈이다.[16]

16대 대선때는 86세대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 후보는 노무현이였고당시 연령별 출구조사. 실제로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참고로 이는 18대 대선에서도 여전히 드러났는데 출구조사상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 10%p 지지율 차이로 우세를 점했다. 정확히는 박 55: 문 45#

19대 대선에선 20대 여성, 3040대와 같이 문재인의 압도적 당선에 기여를 한 세대가 바로 86세대였다. 다만 86세대 중 중도 성향 유권자를 중심으로 안철수의 지지세도 어느정도 나타났다. 자세한 건 제19대 대통령 선거/세대별 결과 문서 참고

4. 경제적, 인구적 특징과 비판

타 세대가 본다면 386세대는 운이 좋은 세대이다.

386세대 바로 직후인 90년대 학번 세대는 대입 수험생 수가 사상 최고로 불어난 반면, 졸업정원제는 폐지(약 30% 감소)되어 입시 경쟁이 격화되었다. 또한 등록금이 싸다고 수년간 푸념하던 대학 당국의 항의가 수용됨에다라, 1989년 대학 등록금 자율화 조치가 시행되었고 대학 등록금이 큰 폭으로 올랐다.[17]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거의 모든 대학이 계속 등록금을 올려왔다.

80년대 학번 대학생에 대한 대표적인 회유정책은 대중교통 요금의 할인제도였다. 대학생 버스요금이 중, 고교생과 같았다. 물론, 같은 나이의 취업자(고졸)들에 대해서는 성인 취급해서 이런 혜택이 없었다. 본격 대학생 우대였다.[18] 그 당시에는 상이군경보다도 훨씬 더 좋은 혜택이었다 볼 수 있다.[19] 이는 무엇보다 인수도권 학생들에게 유리했는데, 서울 시내버스와는 달리 할인폭이 컸다.[20][21]

이들은 병역의무의 측면에서도 많은 혜택을 받았다. 많은 인구수 덕분에 징병률이 낮았었고, 그래서 손쉽게 병역면제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징집대상 남성들 중에 실제로 병역을 수행하는 비율은 40%~50%에 불과했다.#[22] 신체검사에서 조금이라도 이상소견이 있으면 면제를 받았고, 설령 면제를 못받았다 하더라도 6개월 방위병 복무로 퉁치는 경우가 많았다. 병역에 있어 대학생 우대 제도들이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현역복무 판정을 받았더라도 6개월 석사장교로 입대해 편하게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23]

그리고 80년대 초반 학번 대졸자(남성기준)는 가장 취업이 쉬운 이른바 3저 호황 때 취업을 하게 된다. (대학 4년 + 군대 2~3년[24]) 인서울 공대 출신이라면 대기업 취업은 특별히 학점이 개판이든가, 학생운동 경력이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모두 가능했을 정도였다.[25] 명문대 출신은 학점에 관계없이 대기업 서너군데는 복수합격하는 경우가 보통이었기 때문. 하지만 대학 진학문은 굉장히 좁아서[26] 4년제 대학 진학률은 20%도 채 되지 못했고, 전문대 까지 합해도 30%선이다보니 대부분은 고졸로 남게되었는데, 고졸 취업도 상당히 잘 되다보니 고등학교만 나와도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었다. 일반계 고등학교 정도만 졸업해도 딱히 학교에서 사고 치지 않거나 출결만 깨끗하면 어지간한 생산직, 중소기업 사무직은 골라서 갈 수 있었다.[27]

386세대가 내 집 마련을 한 시기는, 대부분 IMF를 갓 지난 2000년대 초반이다. 이후, 엄청난 집값 폭등(수도권 최소 2~3배)으로 집값상승의 단맛도 많이 본 세대다.[28] 심지어 일부는 은행대출을 통해서 부동산 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파트 두세 채 사재기를 했다. 2000년 이전에는 부동산투기가 일반인보다는 소수의 전문 투기세력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였고, 베이비붐 세대는 50년대에 태어나 근검절약이 몸에 밴 세대라서 빚을 지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었다.[29]

그러나 소위 "부자되세요." 열풍[30]에 힘 입은 일반 386 화이트컬러가 대거 가세한 2차 부동산 버블은 그야말로 더욱 복마전이 된 물신 리그였다. 그리고, 그런 투기로 인해 올려놓은 집값은 고스란히 386세대의 아랫세대들에게 일종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장벽이 되고 있다. 이것이 86세대 책임론을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다.[31] 즉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최대의 행운아 세대" 라는 평가다. 이러다보니 겉으로는 복지와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속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더욱 호의적일 수밖에 없고, 이는 이중잣대라는 평을 듣기에 딱 좋다.

386세대들은 인구 숫자도 가장 많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가장 많이 출생한 세대가 1971년생이다. 이들은 제6공화국 출범 직후부터 이미 20대로 투표권을 갖고 있었으며, 보수정당 우위의 정치체제를 흔들어버렸다. 그들은 민주정부 (민주당 정권), 특히 참여정부를 지지하고 탄생시킨 주역이었다. (당시 30대 ~ 40대 초반.) 이들이 참여정부 세력에 대한 지지를 버렸을 때, 이명박 정부가 등장했다. 그리고 18대 대선 즈음에는 이들은 캐스팅보트 인 40대 후반 ~ 50대 초반 세대를 형성했다. 그래서 386세대는 기존 사회의 모순들을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악화시키고 고착화를 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실, 386세대들은 자신들보다 윗세대에 대해서 썩어버린 정치를 강하게 비판하고 저항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사회의 모순과 불만을 폭증시키면서 자신들이 처한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려 하긴 했으나 그 노력의 상당수는 정치적 구조에 대한 저항이 대부분이었고, [32] 그 결과 386세대는 나이가 들어서 자신들이 겪었던 똑같은 모순들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2018년에 벌어진 미투운동의 파장인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기득권이 된 386세대는 그 이전세대와 그다지 윤리의식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 때문에 386이후세대에선 이들을 비판하는 과격한 가사의 노래도 창작되기 시작했다.[33] 운동권으로 대표되는 386정치세력은 민주화를 목표로 했지만 실제로는 비민주적 운영을 하는 집단인 경우가 많았고 결국 이 문제가 표면화된 것이 2018년 미투운동이라는 견해가 있다.#

IMF 외환위기 때도 이들이 별로 피해를 보지 않고 고스란히 자리를 유지했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586세대가 외환위기를 고스란히 피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쟁거리이다. 586세대가 외환위기때 어땠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자료 입증이 되지 않았으며, 주장이 상호간에 상반되기 때문. 입사 2~3년 뒤 외환위기가 터져 회사에 입사동기 10명중 2명밖에 안 남은 이야기가 있는 반면, 당시 586세대는 대부분 신입 직원으로써 해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주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34]영세 자영업이나 일용직 근로자로 생계를 이어가는 86세대도 많은 반면, 중견 관리직 혹은 상층직을 차지하고 있는 86세대도 많기 때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80년대 당시 대학에 다녔던 60년대 출생자들의 숫자는 무려 250만명에 달하는데, 이들 전체를 동질적인 하나의 집단으로 봐야 할지는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표명했으며, 소설가 성석제는 '기득권에 취해 있는 이들보다는 여전히 먹고 살 걱정에 시달리는 순응적인 386세대가 훨씬 많다'고 주장했다. 출처 링크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 세대조차도 양극화가 심하다. # 연령별 소득 수준 분포 자료세대별 월평균 임금

이 세대의 평균적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16, 17대 총선, 특히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신생 정당이던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서울이나 그 근교 지역구에 출마해 열린우리당의 압승과 함께 본격 정계로 진입했고, 대부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화려하게 복귀를 했다.

현대 한국 정치는 386세대의 장기집권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인구가 많다 보니 386세대만큼 대량으로 정치에 입문한 세대가 없었고, 그 후속 세대의 정치 입문은 가뭄에 콩나듯 하는 것이 실정이다. 당장 현재의 2030은 인구 수도 적지만, 정치 참여율이 그렇게 높지가 않다. 정치혐오가 극에 달했기 때문.[35]

공교롭게도 정치인이 아니지만 관료들 중에 개돼지라는 망말을 한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나, 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이정호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 또한 386세대이다.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는 이런 세대론적 고찰을 토대로 386 개새끼론을 펴기도 했다. #

5. 용어 비판

586세대[36]라는 표현에는 문제가 있다는 견해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도 빠지게 된다. 넓게 잡아도, 대학문화를 조금이라도 경험을 해 본 대학 자퇴자 정도이다.

이 때문에 이 386이라는 용어를 소수 엘리트주의라고 비평하는 의견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이전 세대보다 대학 진학이 쉬웠다고는 하지만, 당시에도 여전히 중학교 졸업자의 65% 정도만이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며 일반계 고등학교 진학자의 35% 정도가 대학진학을 했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공부를 어느 정도 잘했어도 부모님들에 의해 상업계 고등학교로의, 반쯤 강요된 진학을 하는 경우가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까지도 비일비재했다.

즉, 60년대 출생자의 80%가 넘는 절대다수가 학력이 고졸 혹은 그 이하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결국 낭만적인 대학 문화를 향유했다는 60년대 태생 젊은이들은 정작 세대 전체로 보면 일부 소수에 불과하다. 당시의 대다수 젊은이들은 당연하듯이 고졸 이하의 학력인 경우가 많았으며, 386세대들의 동생세대~조카세대인 이른바 서태지 세대, 국초딩 세대, 88만원 세대, 삼포세대와 비교를 해 보면, 비교적 일찍 사회에 진출하면서 사회인 생활을 시작했다. 결국, 386세대 젊은이들의 절대다수가 아니라 극소수만 대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86세대라는 표현이 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1960년대에 태어난 대학생들 중 일부가 정치권으로 들어와, 한 시대의 엘리트로서 정치, 경제, 문화, 언론 등 사회의 중심층을 형성하고, 한 시대의 언어를 독점하는 것에 성공하며, 한국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군림하게 되면서 여론을 주도하게 된 것이 큰 원인이다. 즉, 소위 '386세대'는 자연스럽게 '대학 캠퍼스 생활'을 전제로 하면서 과거를 묘사하였고, 다른 형태의 삶을 사는 절대다수의 인물들은 사실상 타자화 • 공백화 하였다.

결국, 상대적으로 절대다수였던 "대학에 가지 못한 60년대 세대"들은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로 학벌이라는 절대적인 가치에 따라서 대학생들을 동경하면서 이들의 가치에 함몰되었다. 자신과 개개인의 삶을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기보다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던 대학생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내면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제5공화국 당시 3S정책과 맞물려서 왜곡된 보수언론을 비롯한 기득권층에서 의도적으로 주입한 것일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일부 소수 인원만이 대학에 진학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캠퍼스 문화가 뉴스나 드라마, 연예 프로 등으로 수없이 많이 미화되면서 노출되었으며, 실제로 대학의 실상과는 억만광년 정도의 차이나 동떨어져 있는 낭만적인 풍토 등을 의도적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공공매체에서 보여줬다.

단적인 예로, 국풍81같은 어용스런 관제 행사라든가, 대학가요제라든가, 대학 캠퍼스를 소재로 한 수많은 청춘 드라마라든가 등등... 특히 대학입시, 그중에서도 명문대 입시에 관한 언론의 뉴스는 입시 경쟁률이 얼마나 된다고 알려주는 내용이 뉴스에서 보도가 될 정도로 과열되고 지나칠 정도였다.

그리고 386세대의 다음 세대가 극심한 교육열[37]에 시달리는 가장 큰 이유도 1940-60년대생의 70%~80%가 고졸 이하의 학력자로, 절대다수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또한 고졸자들이 많이 종사하는 3D업종의 경우는 감전, 신체절단 등 각종 산업재해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된 경우를 많이 봐왔던 문제도 있다.[38] 결국 그들도 경제적으로 나아지기 위해서 미래의 자식세대들에게 강한 기대감과 동시에 부담감을 주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고, 자식세대들을 피터지는 과열경쟁 속으로 던져놓으면서 명문대로 보내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부으면서 올인했고,[39] 심지어, 자식들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면서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반면에 1980년대 영화나 만화, 방송에서는 달동네나 빈곤층을 다루는 묘사는 소위 국격을 해친다면서 '검열'되었고[40], 땡전뉴스보도지침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의 사회적인 저항은 주요 미디어에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축소하거나 왜곡시켜서 보도해버렸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빈곤한 삶은 아예 기록말살형같이 검열을 당했던 것이다. 그 결과 텔레비전같은 미디어에서는 극소수에 불과한 대학생들의 삶만을 정상인으로 대우를 했고, 그나마 그 대학생들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투쟁하는 삶도 완전히 왜곡시켜서 보도했다.

즉, 86세대가 살아온 대학생 시절은 절대다수가 아니라 주류세력도 아닌 비주류세력이었고 상당히 극소수[41]에 속하는 대학생들만 정상인들처럼 보이게 취급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고졸 취업자의 삶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서 철저하게 무시를 당했고, 그 중에서 상당수는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산업재해 등에 시달려야 했으며 노조를 결성하려고 한다면 아예 정부에서 직접, 번개같이 나서서 탄압하고 분쇄했었다.

결국, 미디어에서 보도하고 기록한 당시의 '시대상'은 '진정한 대한민국이 보여주는 1980년대의 시대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거품이 끼어있고 왜곡적이고 허구적인 분식회계나 다름없는 시대상이나 다름없었다. 상당수 대학에 다녔었던 86세대들의 대학생이었던 시절은 사회의 정의를 위해 군부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고 인생을 바쳤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과거 학생운동의 중심이었던 전대협에서는 "오월대, 녹두대"처럼 준군사조직과 비슷한 단체를 만들어 자기 또래의 전경들과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경우도 많았었고, 실제로 박종철 열사 같이 살해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당연하게도 TV에서 나오는 낭만적인 대학생활은 억만광년이나 떨어져 있었고, 사실상 자신을 비롯한 친구들이 언제 정치경찰들에게 죽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대학생활을 즐길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악명높은 독재자의 탄압이 창궐하던 시기가 바로 이들이 대학생이던 시절이기도 했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자면, 운동권의 주류세력은 대학생들 중에서도 일부 소수 명문대생 출신뿐이었다.

그나마, 1980년대 후반부터 검열이 풀리면서 뉴스비전 동서남북이나 르포 60, 다큐멘터리 5공화국, PD수첩 같이 본격적으로 사회의 치부를 까발리고 취재하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고[42] 이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 나오기도 했지만, 드라마의 경우에는 매우 단기간만 다뤄지거나 방송사 내부검열[43]로 틀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후에는 시청률에 밀리다 보니까 잘 다뤄지지도 않았으며, 시사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초상권 문제나 높으신 분들이 찔리는 문제 같은 것도 있기 때문에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고, 만화의 경우에는 그나마 민중 만화나 시사 만화, 일부 명랑만화에서 다뤘고, 그 이외에도 일부 순정만화에서도 다루기는 했었지만 아무래도 1980년대 만화 중에서 인기 작품 위주로나 출간되는 수준인 데다가 한국 영화에서는 제일 수준이 떨어졌던 시대나 마찬가지였다.

2010년대가 된 지금도 재벌가를 배경으로 하는 막장 드라마가 많이 나오고 예전부터 청소년 드라마 등등, 여러 방송에 나오는 고등학교는 항상 일반계 고등학교인 점도 이러한 맥락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연예인들이 학창시절 연예인 활동을 하느라 제대로 공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분명히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닌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도, 왜 그렇게 인서울권 대학의 연극영화과나 실용음악과로 진학을 많이 하고 학력위조에 목을 맸는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자.

대표적으로, 1980년대 이전부터 문제가 된 심형래학력위조 사건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자서전에다 고려대학교 출신이라 대놓고 거짓말을 써놓은 사례가 아주 유명했고 2000년대에 방송된 개그 콘서트를 비롯해서 그 밖의 예능 프로에서 연고대 출신 연예인들이 나와서 동문대결을 했을 때 심형래도 자주 참가했었다.[44]

이러한 사회문화 풍토와 90년대의 대학진학률이 고도로 높아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에게 20대에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대학생들보다 사회인 생활을 먼저 시작한 것은 "대학을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학을 가지 못한 것"이 되고 말았다. 즉, 60년대생 중에서 대학생이 아니었던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정확한 나이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강한 열등감을 느껴야 되는 일종의 결핍된 요소"로 받아들였으며, 자신의 또래 대학생들보다 사회 생활을 더 일찍 시작한 것은 단지 후회해야 될 인생의 과오일 뿐이었고, "다음 세대에게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자기 자신다운 인생의 형태"로 여기지를 않는다. 이처럼 이 세대의 감정에는 어린 시절의 한(恨)이 서려있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2010년대에서 대학 진학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고 취업이 더욱 어려워진 시기라면, 소위 지잡대를 가는 것보다 고졸 이후 바로 취업하는 것이 더 효용성이 높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소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너무 강한 60년대생의 고졸 출신들은, "나는 입학하지 못했지만, 자식들만이라도 반드시 대학에 보내야 한다."라는 강한 자존심 때문에 지금의 대학 정원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는 시각도 있고, 사실상 정설로 통한다. 그러므로, 86세대가 받았던 혜택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 진학률이 아주 낮아, 대학생들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60년대생의 절대다수가 고졸 혹은 그 이하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취업시장에서는 단지 대학생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우수한 인재로 여겨졌으며 그만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다수인 80% 이상을 차지하고 60년대생의 고졸 이하 사람들에게는 대학생들이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이런 혜택이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의 약 20% 미만인 대학 진학률을 현재에 비교하면, 386세대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대학생은 "대학생"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최소한 인서울 이상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현재 인서울+카이스트, 포공 등을 합쳐도 20%가 안 된다. 사실상 현재의 명문대생과 386세대의 대학생은 거의 같은 포지션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최악이 된 문제는 당시의 한국 사회가 선진국 마지막 문턱에 탑승했던 과도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인서울 대학을 나온 이들과 그들이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인서울 명문대학을 졸업한 많은 대학생들은 왜 청년실업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극소수의 386세대가 누렸던 특권은 그들이 당시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다는 운빨과도 큰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가 힘들다. 요약하자면 역시 그들은 시기적으로 좋은 운을 타고났기 때문에 특권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의 효용성을 완전히 포기하기도 난감한 것이... 1980년대는 대학을 다니던 청년문화의 전성기로 인해, 앞에서 얘기된 대로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등에서 대히트한 노래가 한 세대 전체에 폭넓게 불리거나 대학 캠퍼스를 주제로 만든 청춘연애 드라마가 대단한 인기를 얻는 등, 대학생이 주도하는 청년문화가 한 세대의 문화를 리드하게 되면서 대다수의 청년들에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자체가 작위적으로 분식회계처럼 분칠된 문화였지만 말이다.

물론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힘든 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대학 졸업자들에게도 하늘의 별따기 수준의 고난이도로 분류되는 은행 취업, 공무원 임용, 대기업의 여러 파트에 취업하는 것은 당시의 고졸자들에게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수월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점이 없던 것이 아니었던 것은, 당대에는 까라면 까로 얘기할 수 있는 군대 문화가 더욱 강했던 시절인 데다가 정부차원에서 휴일을 늘려주려는 정책도 펴지 않아서 주 6일제[45]+ 연간 노동시간 3000시간은 기본이었고,[46] 정부나 언론에서 수시로 과소비 타령을 하기 일쑤였던 때라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기는 했다. 오렌지족에 대한 언론보도나 과소비 타령이나 하면서 "샴페인을 일찍 터트리니까 문제다."라는 식의 보도가 난무했다.

6. 기타

2013년 박근혜 정부 이후에는 "신386세대"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이는 30년대에 태어나 80세를 넘은 60년대 인사(사회활동을 시작한)를 뜻하는 말로 대표적인 인물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6~70년대 정치인, 관료들이 대거 복귀하면서 우파색채가 강화되자 내놓은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청소년기 체력이 가장 강인했던 세대였다. 이전 세대는 절대빈곤에 따른 영양부족으로 체력이 떨어졌으나 이들 세대에 들어 보릿고개가 사라지면서 그 문제가 해소되었고, 이들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낼 때에는 아직 컴퓨터와 전자오락 등이 보급되기 이전이라 대부분 밖에서 또래들과 격렬한 신체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렇다.

80년대 5공 정권의 과외금지 조치는 이들에게 양날의 칼이었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과외금지로 인해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대학에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와서는 학비를 조달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과외금지로 인해 사라진 꼴이 되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서비스업이 발달하지 못해서 과외를 하지 않는다면 택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는 공장, 노가다 등 뿐이었는데 공장의 경우 운동권위장취업으로 오해받아 쫓겨날 위험이 높았으며, 지금보다 소득수준이 훨씬 낮고 최저임금 개념이 없던 시절에 공장이나 노가다 등을 해서 받는 박봉으로는 학비 조달이 어려웠다.[47]

7. 나무위키에 기재되어 있는 86세대의 인물

※ 가나다순으로 배열되었다.

8. 관련 문서


  1. [1] 연도별 대한민국 출생 및 사망 통계
  2. [2] 모두 대학생이 중심인 것으로 같다.
  3. [3] 한국 기준 1955~63년생. 86세대와 중첩된 1961~63년생을 제외하면 1955~60년생.
  4. [4] 사실 출산율로 치면 50년대 종반이 더 높으며, 1960년대생이 태어난 무렵의 출산율은 평균적으로 5명대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연간 100만씩은 태어났기에 그만큼 수가 많은 것이다. 사실 현 80~90년대 생의 쪽수가 전보다 비교적으로 적고 남초인 건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기 인구정책의 영향이 크다.
  5. [5] 사실 김대중은 1987년과 1992년, 1997년 대선 예측조사를 보면 의외로 역대 대통령 후보 가운데서는 세대별로 표를 골고루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즉, 당대의 젊은층에게조차도 호불호가 갈린 후보였다는 얘기다.
  6. [6] 반대로 1987년 대선에서의 김영삼, 1992년 대선에서의 정주영, 1997년 대선에서의 이인제는 오히려 젊은층들에게 상대적으로 표를 많이 얻은 경우이다.
  7. [7] 사실 15대 대선에서조차도 당시 386 세대들이 김대중에게 몰표를 던진 것은 아니다. 15대 총선 투표자조사를 보면 김대중이 20대와 30대에게서 상대적으로 많은 표를 얻기는 했지만 해당 세대 내에서 50%에 못미치는 지지율을 얻은 것으로 나온다(MBC-한국갤럽 예측조사 20대 43.1%, 30대 43.8%).
  8. [8] 그 윗세대 제3정당 지지자의 태반이 보수정당 지지로 흡수된 것과는 비교된다.
  9. [9] 16대 총선의 경우에는 투표율이 당시 기준으로 최저치를 찍었고 2002년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이다.
  10. [10] 최소성능: 286(영문), 386(한글)이상 CPU
  11. [11] 황중환의 386c가 대표적이다.
  12. [12] '밀레니엄 세대' 같은 직관성이 높은 용어를 제외하면 X세대, N세대는 그나마 히트한 축에 속하고, G세대니 C세대니 하는 지금은 사전에서나 볼 법한 용어들이 쏟아졌으나 살아남은 것은 거의 없다. 가장 히트했다는 X세대도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X세대 패션'이 유행했기에 잘 정착한 것이지 '자유롭고 규정할 수 없다'는 X세대의 특징은 딱히 현 시대 그 사람들에게 남은 것이 없고 자연히 쓸 이유도 없어졌다.
  13. [13] 1985년 기준, 학기 당 서울 국공립대는 20만원 이하, 사립대는 50만원 정도였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대학생 자녀를 둔 중견기업 직장인 1-2달치 급여 정도로, 견딜만 했다.
  14. [14]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던 시절이라,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졸업생 학과 불문, 이공계 전문대졸 남자라면 거의 100% 취업이 되었다.
  15. [15] 위 서술에서처럼 86세대들이 '개나소나' 대학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과거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진학률을 보였다는 것이지 겨우 30% 수준의 대학진학률을 보였을 뿐이다. 87년 중앙일보 기사 그러니 대학졸업하고 좋은 직장으로 프리패스했다는 묘사는 86세대의 과반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16. [16] 20대는 행정안전부의 연령별 인구숫자 자료와 한국갤럽의 지지 정당 여론조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구수가 적은데다가 정치혐오 무당층이 많아서 캐스팅보드가 되기 어렵다.
  17. [17] 그나마 첫해인 1989년도에는 대학들이 눈치를 보느라 등록금 인상을 하지 않은 대학이 더 많았으며 모 대학처럼 인상했다가 학생회의 반발로 인상분을 도로 환불받은 사례도 있었다.
  18. [18] 정확히 말하면 중,고,대학생 할인을 받으려면 현금승차는 안되고 "회수권"이라는 것을 구매해야 하는데 중고생용과 대학생용이 있었다. 대학생용은 일반인의 전용을 막기 위해 대학 학생회관 매점에서만 팔았으며 좀 깐깐한 대학에서는 그 대학 학생증까지 보여줘야 팔았다. 참고로 노량진 재수학원가에서는 어디서 빼돌렸는지 대학생 회수권을 확보해 10~20원의 프리미엄을 얹어 팔기도 했다. (1989년 기준 일반인 140원, 중,고,대학생 회수권 100원)
  19. [19] 이러한 사례 중에서 좀 더 심한 사례는 번화가에서의 미성년자 음주단속이였다. 1980년대 당시는 만 20세 미만은 미성년자였는데 대부분의 대학 1년생과 생일을 지나지 않은 대학 2학년생은 대부분 미성년자였으나 단속 시 봐 주는 분위기였다. 물론 재수생은 무조거 단속. 이게 일견 법적 일관성에 모순점이 있었지만 인텔리 계층으로써 사회에 불만을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크던 대학생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유지되었다. (참고로 결국 이런 모순된 상황은 미성년자 기준을 만 19세 미만으로 낮췄어도 안 없어지는 관계로 음주 가능 시기를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20. [20] 이 정책은 1990년부터 없어져서 인수도권 대학 학생들은 교통비가 2배로 올랐다.
  21. [21] 수도권 전철은 상당히 늦게까지 학생 할인이 유지됐다. 1회권은 할인이 없었지만 정액권은 할인이 됐다. 기준은 '신분'이고 나이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 만학도도 당연히 할인 대상이 됐다.
  22. [22] 참고로 2019년에는 징집대상 남성의 94.3%가 현역 또는 보충역으로 징병되었다.#
  23. [23]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역시 석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24. [24] 당시 육군 현역병 복무기간은 30개월이었으나 대학생들은 대부분 1,2학년 때 1주일씩 군사교육을 받고 복무기간을 3개월 단축해줘서 27개월이었다. 방학기간과 잘 맞춰서 2년 휴학이 대세.
  25. [25] 학생운동 경력도 경력 나름이라 또 학생회장쯤 되면 문제가 없었고, 소위 개판 학점의 용인 범위도 지금과는 천지차이였다(...). 졸업예정자로 대기업에 취업했는데 여러 이유로 졸업을 못한 경우에도 입사규정과는 별개로 취업을 받아줬다. 지금 같으면 100% 규정위반 입사취소다.
  26. [26] 그래도 2000년대 인기 학과인 연예계 학과처럼 100:1 을 넘는 경쟁은 없었다. 세다 하면 3~4대 1, 경쟁률이 아무리 높아도 10:1 을 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지방대 같으면 미달 하과가 넘쳤고 서울 소재 학교도 SKY급, 서성한급 인기학과 제외하고 아랫급이거나 잘 나가는 학교라도 비인기 학과는 정원 미달도 꽤 있었다. 대학 문이 좁은 게 아니라, 고졸자 대비 대학에 가려는 사람이 적었다. 고교만 나와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으니 집안이 가난하거나 공부에 취미가 없으면 갈 이유가 없던 것.
  27. [27] 당시에는 대졸 이상은 생산직으로 들어가는 것이 전면 금지되어 있었다. 대학교에서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알고 온 졸업생들이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것을 막으려는 정부의 정책. 2010년대 현재는 고졸 이상 학력, 학위를 가지고 있어도 사내에서 행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학력 제한 없이 고졸이나 전문대졸을 대상으로 한 직군, 생산직 취업이 가능하다.
  28. [28] 자세한 것은 부동산, 버블세븐 문서를 참고하자.
  29. [29] 다만 이건 IMF 이전에 은행 이자율이 10%나 그 이상급으로 매우 높았기에 빚을 빌려쓰기도 힘들었던 데다가 복지제도 같은 것이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던때라 (사실 지금도 별로 좋지 않지만) 빚을 거하게 졌다가 바로 한강이나 낙동강으로 입수할 판이라서 그랬던 영향이 강하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빚을 3000만 원 졌다 하면 1년에 300-400만 원씩을 추가로 갚아야했다. 역으로 이자율이 높았기에 은행에 돈을 저축해놓으면 부동산은 모르지만 적어도 주식이나 펀드에 돈을 집어넣은 것보다는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었기에 저축상품이나 전세가 흥했던 것이다. (은행에 가서 1억 원 저축을 하면 1년에 이자로 1000만 원을 얻어먹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해서 IMF의 후유증 극복과 경기부양을 이유로 이자율이 2%대까지 낮아지고 대출문턱도 낮아지면서 빚을 지는 데 부담이 덜해졌고 그래서 대출이 급증하게 된 것. 양심 팔아치운 수준의 부동산 거품 때문에 은행 이자 불어나는 것보다 땅값이 더 빨리 오르므로(...) 빚내서 집 사도 이득이다.
  30. [30] 2000년대 초반 히트친 모 카드사 광고다.
  31. [31] IMF 사태 이후 일어난 벤처 지원의 특혜는 386세대에 집중되었고, 이후 사교육 열풍을 주도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하는 등 # ##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그들에게 주어진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부동산 거품을 일으키는 바람에 다음 세대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 ## #
  32. [32] 아래에서 언급한 안희정 비서 사건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독재정권타도라는 대의를 위해 탄압받는 재야가 뭉쳐야 되고, 뭉치기 위해서는 작은 실수정도는 모른체하고 넘어가야 재야세력 분열로 인한 투쟁력 상실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안그래도 386세대는 유,초년시절 극단적인 사회(유신정권) 하에서 초,중등교육을 받아 집단주의가 몸에 밴 상태라서 이러한 사고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었다. 물론 80년대의 학생운동이 정말 목숨 걸고 해야될 수준이라서 내심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나 그 때 생긴 속성이 30년이상 지난 지금에까지 이어지는것은 문제다.
  33. [33]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중략) 너희들이 정녕 민주화를 아느냐 이 손으로 일군 민주주의 대한민국 / 요즘 어린 것들은 몰라도 한참 몰라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투쟁도 혁명도 이제는 모두 봄날의 꿈 / 그리웠던 혁명동지 돈을 꾸러 찾아왔네 / 골프채로 쫓아내니 마음속이 허전해 / 내일은 미스김의 보지냄새 맡아야지 - 밤섬해적단 - 386 Sucks 중에서.
  34. [34] IMF 사태의 기폭제가 된 기아자동차 부도유예-법정관리 건을 예로 들어보면, 당시 부도유예부터 현대차에 인수될때까지 기아차 임직원 중 많은 인원이 직군 직위 관계 없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빠른 386세대 인원들은 당시 이미 과장급 이상으로 정리해고, 권고사직, 명예퇴직 대상이었다.
  35. [35] 80~90년대 출생자들의 86세대에 대한 비판의식은 매우 강한 편이다.
  36. [36] 2019년 기준 1969년생이 50세에 접어들었으며, 60년생은 2020년이 되면 60대에 진입한다.
  37. [37] 다만, 교육열 자체는 그 이전부터 분명히 존재했던 상태이기는 했다. 하지만, 더더욱 지독한 학력 인플레이션 때문에 그 목표가 지속해서 높아져 갔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토익 700이니 800이니 해도 취직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38. [38] 이 문제는 산업현장에서 안전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거나 보호장구 착용에 있어서도 미숙한 부분이 많아 생기는 문제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보호장구를 착용했다 해도 사고 위험성은 높지만. 또한 2012년 11월 9일에 방송되었고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가 출연하였던 "MBC스페셜" '골든타임은 있다. - 외상외과' 편에서 하루에 전국적으로 100여 명이 사망하는 중증외상 환자 거의 대부분은 생업현장에서 다치는 경우라고 언급되었던 점과, 설령 다치지 않는다 해도 이러한 직종에서 종사할 경우 보험회사의 상해위험등급에서 높은 등급을 받아 보험가입 시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9. [39] 2014년 기준으로, 20, 30대의 부모님들(40, 50대들) 가운데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잘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 생각을 해 보자.
  40. [40] 참고로 이런 조치가 입식생활이 맞지 않는 대한민국 가옥들에 침대가 보급되게 만든 것도 한 몫 거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드라마에 나오는 집들 중에서 침대가 없는 집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설령 바닥에서 생활하는 집이 나온다고 해도 그건 서민이나 빈곤계층 아니면 농어촌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나 등장한다. 사실 침대생활을 하려면 바닥 난방이 아닌 벽난로, 라디에이터, 팬코일유니트 등으로 난방을 해야 한다. 결국, 한국의 주거공간에는 침대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41. [41] 아무리 많아봐야 15%를 넘지 못했다.
  42. [42] 물론, 그 이전에도 추적 60분이나 MBC 리포트 같은 프로그램이 존재했었지만 방송시기가 5공 시절이었기 때문에 검열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43. [43] 주로 3당 합당 이후의 1990년대다.
  44. [44] 사실, 이 학력위조는 고려대 측도 할 말이 없는 것이 학력위조를 확인해 줘야 될 학교 측이 나서서 대놓고 심형래를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선전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개그 콘서트를 고려대에서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특별 초대손님으로 자랑스런 선배라고 대놓고 구라를 치면서 심형래가 등장을 했다는 것이다. 교내에서 벌어지는 공식행사에서 대놓고 동문이라고 말을 하는데, 고려대 측이 오히려 심형래를 감싸주면서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력위조가 밝혀진 다음에 고려대 측에서는 "학부는 아니지만 고대에서 개설한 과정을 수료했으므로 넓은 의미의 동문으로 본다."는 희대의 개드립을 시전했다. 당시의 명문대학들은 돈을 벌고 유명인사들을 이용해서 학교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최고경영자 과정이나 평생교육원 등을 운영했고,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교육도 진행하지만 수강생들을 자신의 학교 인맥으로 묶어서 동문의식을 심어주고,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일가를 이뤄낸 중장년층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동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그러면서 가방끈 비스무리한 것 하나 달아주면서 학교에서는 수업료도 걷고 기부도 받을 수 있고, 유명인이 나서서 대학 홍보도 해줬으니 손해를 볼 것이 없는 일석이조나 다름없었다. 이처럼 불공정한 관행이 있는 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아직도 유명 연예인들을 수능도 제대로 보지 않고 실력과 상관없이 입학시키는 악습이 존재하는 것도 이런 사유 때문이다. 결국, 나중에 고려대에서는 이건희 명예박사 사건이 터지면서 화룡정점으로 변한다.#
  45. [45] 노무현 정부에 와서야 주 5일제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46. [46] 이 시절에는 음력설 쇠는 것조차도 이중과세라고 하면서 정부차원에서 징계를 내렸던 시절이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에 신민당 돌풍을 이유로 풀어버리기는 했지만 그때의 유산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47. [47] 80년대에 노가다가 고수입 직종이었다는 낭설이 퍼져 있는데, 노가다 임금이 급격히 상승한 것은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르면서 3D직종 기피 풍조가 가속화된 90년대의 이야기이지, 적어도 80년대 중반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48. [48] 정계에서 '386하면 김민석'이라 할 정도로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386 운동권 출신의 독보적인 대표주자였다.
  49. [49] 후술할 신해철, 김용태와 동갑이지만 4수했다. 공부를 못한 건 아니고 오직 서울대학교만 고집하다가 이렇게 되었다. 물론 현역병 입영 통지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홍익대학교에는 입학했다. 90년대 학번이지만 거의 같은 세대에 정치성향도 586쪽이다.
  50. [50] 김어준과 마찬가지, 사실상 5수를 했는데, 중간에 군복무기간이 포함된 수치이다. 친분이 있는 정치인들 모두 586세대 정치인들이 대부분.
  51. [51] 중간에 중퇴하였다.
  52. [52] 기업인이다.
  53. [53] 빠른 65년생이지만 재수를 했다.
  54. [54] 중간에 중퇴했다. 2018년 사망 당시 만 50세.
  55. [55] 빠른 66년생으로 재수해서 85학번이다.
  56. [56] 중간에 중퇴했다. 2014년 사망 당시 만 46세.
  57. [57] 위의 남경필과 대학 동기이다. 실제로 친분이 있다고.
  58. [58] 재수를 했다. 그래서 이혜훈과 대학 동기이며, 꽤 친한 사이라고 한다.
  59. [59] 검정고시를 봤다.
  60. [60] 위의 우상호와 연관이 깊은 인물이기도 하다.
  61. [61] 호적상의 나이는 1962년 생이지만 실제 나이는 1960년 생이다.
  62. [62] 중퇴했다.
  63. [63] 임수경 방북 사건으로 유명한 인물. 후술할 임종석, 하태경과 같이 통일운동을 했었던 인물이다. 이후 지향점이 완전 달라졌지만(...)
  64. [64] 만 4세에 초교에 입학, 대학 입학 당시 만 16세로 알려졌으나 실제 1963년생이다.
  65. [65] 만 4세에 초교에 입학, 대학 입학 당시 만 16세로 알려졌으나 호적상 생년 기준이며 실제로는 1965년생이다.
  66. [66] 특이하게 4월생임에도 만 6세에 초교에 입학하였고, 대학 입학 당시 만 1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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